2016...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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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Move · 꽃들은 저마다 개화시기가 다르다. 3 에는 벚꽃이 피고, 5 월에는 장미가, 여름철에는 수국이 피어난다. 수국이 꽃보다 늦게 피어난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늦게 피어날 , 수국은 자체로 아름답다. 아직 늦은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피는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니까. 내가 피어났듯이 다음은 당신이 차례라고 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꽃처럼 아름다운 모든 청춘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서 송이 꽃을 피우기를 기원한다. 당신은 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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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6...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청춘 국경은무대 없다 꽃들은 저마다 개화시기가 다르다. 3월 에는 벚꽃이

2016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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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꽃들은 저마다 개화시기가 다르다. 3월 에는 벚꽃이 피고, 5월에는 장미가, 여름철에는 수국이 피어난다. 수국이 벚

꽃보다 늦게 피어난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늦게 피어날 뿐, 수국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아직 늦은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꽃 피는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니까. 내가 피어났듯이 다음은 당신이 꽃 필 차례라고 응

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꽃처럼 아름다운 모든 청춘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서 한 송이 꽃을 피우기를 기원한다. 당신은 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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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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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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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4

수기부문

대상 당신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 김세정 12

최우수상 도전하는 사람에게 길이 보인다 이예섭 20

내 이름 석 자가 신문에 나던 날 박경미 26

우수상 떠나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보여줄 게 없다 최지현 34

국경 밖으로 전진하라 김다영 40

꿈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 이아림 46

인생의 찬란한 아침을 준비하다 이슬아 52

중앙아시아에서 찾은 꿈의 씨앗 최아영 58

장려상 글로벌 비즈니스 엔지니어를 꿈꾸다 김현식 66

멈추지 않는 99도의 열정으로 홍예지 72

한국인의 감성, 홍콩에 뿌리내리다 김효섭 78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이병만 84

K-Move,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90

Let’s Go For It, 일단 해보자구요! 김민섭 94

내가 담아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 채송이 100

Active Joon의 기초공사 박성준 104

꿈 너머의 꿈을 향한 비행 김동겸 110

한식을 ‘한컵’에 담다 손영빈 116

목차

사진부문

대상 노다지! 체코의 작은 울산, 오스트라바 강국희 124

최우수상 하늘에서 동(東)과 서(西)를 배우다 김소정 126

숫자송으로 하나 된 교실 박정민 128

우수상 프랭클린에서 보낸 기적의 시간들 이성균 130

어디가 또? You Know What I’m Saying? 김혜림 132

DCA공항에서 나를 발견하다 김희선 134

한글로 전하는 한류 윤상필 136

사랑은 국경을 넘어 노래 138

장려상 굿바이, 미코토상! 그동안 고마웠어 강명구 140

동고동락하며 함께 달려온 우리들 이도훈 142

꿈에 그리던 캐나다 공기업에 들어가다 레이첼 백 144

공포의 월요 회의, 나를 궁지로 몰다 김준성 146

공중풍력발전을 알기 위해 떠난 공대생들 홍진석 148

물음표를 버리고 느낌표를 얻다 김훈정 150

컴퓨터를 처음 만난 순간 이승수 152

오늘 만들어 볼 빵은요? 서진영 154

우리가 너희들의 꿈을 응원할게 조소영 156

우리는 캄보디아 한 가족 박정연 158

K-Move 프로그램 안내

준비단계 165

연수참여 166

일자리매칭 168

사후지원 17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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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0504

[ 발 간 사 ]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에서 수기 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세정 씨

의 글입니다. 청년 실업이 심화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청년들의 어깨가 많이 무겁

겠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보내 주신 사

연과 사진을 보면 걱정을 떨치고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됩니다. 우리 청년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자 진취적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여러분의 이런 용기와 도전 의식이야말로 청춘을 더욱 빛나 보이게 합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느끼는 청년들이 더욱 안정적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K-Move’라는 국정과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 준비

를 시작하는 청년부터, 실제 취업에 성공한 청년까지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

해 K-Move 스쿨(해외연수), 해외취업알선, 해외취업성공장려금 지원, K-Move 멘토링, 현

지 K-Move센터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K-Move의 수많은 정

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외 진출 통합정보망인 ‘월드잡플러스’를 운영하고 있습

더 큰 일자리를 찾아 기회의 땅에 도전하는 청춘들을 응원합니다

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박 영 범

니다. 동시에 서울K-Move센터를 운영하여 1:1 전문가 상담, 해외취업 아카데미와 같은 오

프라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국가별 · 직종별 취업 준비 지원을 강화하고 더욱 우수한 해외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해외취업 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프로그

램들을 잘 활용해서 해외진출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 책

에 실린 36개의 작품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 도전한 청년들

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작은 힘들고 서툴렀지만,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끊임

없이 노력한 끝에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을 품은 우

리 청년들의 꿈이 K-Move를 통해 더욱 크고 찬란하게 뻗어 나가도록 항상 지원하고 응원

하겠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개화시기가 다르다. 3월에는 벚꽃이 피고, 5월에는 장미가,

여름철에는 수국이 피어난다. 수국이 벚꽃보다 늦게 피어난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늦게 피어날 뿐, 수국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아직 늦은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꽃 피는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니까. 내가 피어났듯이

다음은 당신이 꽃 필 차례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꽃처럼 아름다운 모든

청춘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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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되어 주세요

청 년 여 러 분 !

최근 K-POP 열풍, 국내기업의 해외진출 확대 등에 따라 대한민국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높아지고 있어 우리 청년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 되고 있는 사회 전반적 변화, 유리해진 해외진출 여건 등을 고려하여 각 부처의 해외진출 프로그램을 통합하여 운영함으로써 더 효과적이고 내실 있는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K-Move 국정과제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K-Move는 고용 · 산업 · 교육 · 외교부, 중기청 등 기관 간 협업을 통해우리 청년들을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고 해외진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청년의 해외진출을 돕는 K-Move !

해외취업설명회

K-Move 멘토링

K-Move 스쿨

서울K-Move센터

KOTRA 글로벌취업상담회

민간 해외취업알선 지원

해외취업성공장려금

해외취업

월드프렌즈 코이카 봉사단

해외봉사

글로벌 창업기업 육성사업

- 글로벌청년예비 창업가(GYB) 육성 사업

해외창업

대학 글로벌 현장학습

전문대학 글로벌 현장학습

한 · 미 대학생 연수(WEST)

국제(ODA) 청년 인턴

글로벌 농업인재 양성

청년법조인 해외진출

외교부 재외공관 공공외교 현장 실습

해외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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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1 6 K - M o v e

해 외 진 출

성 공 수 기 · 사 진

공 모 전

수 상 작 품 집

수기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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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11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꽃들은 저마다 개화 시기가 다르다. 이를 테면 3월에는 벚꽃이 피고, 5월에는 장미가, 여름철에는 수국이 피어난다. 수국이 벚꽃보다 늦게 피어난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늦게 피어날 뿐, 수국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아직 늦은 게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꽃피는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나도 해냈으니, 다음은 당신이 피어날 차례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모든 청춘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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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3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12

스물여덟 취준생, 일본 취업을 꿈꾸다

‘불합격입니다.’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토익시험 비용, 대구에서 서울까지 면접을

위한 교통비를 벌어 가며 남는 시간을 쪼개서 영어 공부와 면접 준비를 해왔는데 이번에도

불합격이라니!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불합

격 메일을 확인하고 눈물이 왈칵 났다.

이젠 익숙할 법도 한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는 합격할 거야”라며 응원해 주신 부

모님께도 죄송했고, 무엇보다 ‘난 왜 이 모양일까’라고 자책하며 얼마 남지 않은 자신감마저

바닥나게 만들었다. 이젠 취업이란 걸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일본인 친구의 권유를

들었다. “너 일본어 자격증 1급도 있으니까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해 보는 건 어때?” 이 말

은 거듭된 좌절로 괴로워하던 스물여덟 취준생이었던 나에게 처음으로 해외 취업이라는 가

능성의 길을 열어 보였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소통하고, 무언가를 서비스하는 일에 자신

이 있었기에 공항에서 근무하는 공항 지상직이라는 업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상직 취

당신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

Japan 일본 | 간사이공항 지상직

김세정

나는 지방의 4년제 대학 국문과를 나왔다. 2015년 봄, 나는 초조했다. 남들보다 졸업이 늦었고,

부랴부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오랫동안 취준생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입사를

해서 정신없을 시기에 불합격 통지를 받으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차에 〈글로벌 취업상담회〉

공고를 보고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운이 따랐고, 나는 간사이공항에서 지상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다만, 남들보다 조금 늦게 꽃을 피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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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51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해외 취업을 통해, 더 멋진 나로 성장하다

집을 떠나,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생활하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낯선 일투성이였

다. 공항 업무라는 것이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

니 힘든 면이 많았다. 늘 일본어를 해야 하는 생활환경, 구두를 신고 손님을 찾으러 북쪽 게

이트에서 반대쪽 남쪽 게이트까지 뛰어다니느라 다리는 늘 퉁퉁 부어 있었다.

입사 3개월 차에는 목감기가 심하게 걸려 목소리가 잠겼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더 열심

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겨우겨우 목소리를 내어 가며 일을 했다. 폭우와 기상

악화로 결항이 되자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는 승객들에게 온갖 상소리를 듣기도 했다. 특히

아직 익숙지 않은 자전거를 몰고 출근하다 넘어져 온몸에 멍이 들었던 날에는 서러움이 북

받치기도 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일하는 딸이 안 그래도 걱정일 텐데, 부모님이 이 사실

을 알면 괜한 걱정만 늘까 싶어 “오늘도 일 잘 하고 왔어. 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라

며 처음으로 거짓말도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내가 이러려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나, 하

업 준비를 위해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얻고, 학원에 등록해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

에 다니며 항공시스템을 배우던 중 인터넷 검색으로 코트라와 월드잡플러스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때마침 서울 킨텍스에서 열리는 〈글로벌 취업상담회〉 공고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몇 군데서

면접이 잡히면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면접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고, 부 교수님을 만나

발음교정 지도를 받았고, 휴대폰에 일본 방송을 담아 버스 안에서 들으며 일본어 공부를 했

다. 피곤함을 잊을 만큼 면접을 준비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웠다.

면접관이 던진 뜻밖의 질문들, 뒤따른 행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일산 킨텍스로 향했다. 하지만 일본인 면접

관이 던진 질문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나이가 많네요. 결혼은 언제쯤 하실 건가요?” “남자

친구는 있어요?” 국내 기업의 면접 자리에서 수없이 들었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왜 일본에 취업을 하고 싶나요?” “열심히 해서 성적장학금을 받았네요.” “백화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어떤 걸 배웠나요?” 이런 질문들이 나한테 주어졌다. 나이나 개인사가 아니

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궁금해 하고, 나란 사람의 가능성과 경험을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글로벌 취업상담회〉 참가로 나의 부족한 점과 보완할 점을 알게 되었고, 나 자신

을 돌아보게 계기가 되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일본 취업이라는 꿈을 찾아서 부산에서 이곳

까지 온 같은 면접 조원의 이야기를 듣자 그 열망이 더욱 커졌다.

2015년 여름, 여느 때처럼 이력서를 쓰던 중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지난번에 공항 지

상직 면접을 보셨죠? 내정자가 당장 일본행이 어렵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 아직 취업

이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 회사에 오실 생각이 있으세요?” 불합격 통보를 받아 포기하고 있

던 차에 온 전화였다. 합격자가 포기하는 바람에 지원자 중 성적이 높았던 나를 내정자 명

단에 넣고 싶다며 의사를 물었다.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 나 합격했

어!” 뛸 듯이 기뻤다. 2015년 10월, 길게만 느껴졌던 취업준비생을 졸업하고 나는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간사이공항의 서비스회사에 11월 입사자가 되어 새로운 생

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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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71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저하고 끈기

가 없던 내가 일 년 만에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젠 새로운 일에 부딪쳐 보자는 자신감

이 생겼다. 힘들어도 이제껏 잘 버텨 온 경험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제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일본어를 더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영어 공

부도 다시 시작했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오늘도 열심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신이 꽃필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때 ‘현대 일본의 이해’ 수업에서 일본 국민그룹 SMAP의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

(世界に一つだけの花)」이라는 곡을 배운 적이 있다. 노래 마지막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

다. ‘작은 꽃과 큰 꽃 무엇 하나 같은 건 없으니, 최고가 되지 않아도 좋은 원래부터 특별한

단 하나(小さい花や大きな花一つとして同じものはないから, NO.1 にならなくてもいいも

ともと特別なOnly one)’

꽃들은 저마다 개화 시기가 다르다. 이를 테면 3월에는 벚꽃이 피고, 5월에는 장미가, 여름

철에는 수국이 피어난다. 수국이 벚꽃보다 늦게 피어난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

다. 다만 조금 늦게 피어날 뿐, 수국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졸업이 늦

어졌기에 주위에서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고, 나 또한 그런 내 자신이 싫었던 시기가 있었지

만, 해외 취업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이십대 후반

또는 삼십대 분들 중에서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라며 포기하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아직 늦은 게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꽃피는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나도 해냈으

니, 다음은 당신이 피어날 차례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모든 청춘들에게 파이팅을 전한다. 나

의 수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해외 취업을 할 수 있게, 새

로운 꿈을 꾸게 해주신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월드잡플러스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을 전한다.

는 생각에 다 그만두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경험이 쌓였고, 이제 입사 일 년 차가 되었다. 몇 번이고 자전거를 타

다 넘어지길 반복하던 일 년 전과 달리, 지금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씽씽 달리는 나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벌벌 떨며 안내방송을 하고, 발음과 억양이 어색하다는 지적을 매일같

이 받던 나는 일본인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녹음을 한 목소리를 듣고 발성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호된 연습 끝에 이제는 방송도 능숙하게 하고, 일본인 고객에게 현지인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 고객 응대도 자연스러워졌다.

“선배, 정말 원어민처럼 발음하세요. 멋져요!” 이제 막 신입으로 들어온 한국 후배들에게 이

런 말을 들으면 일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를 돌아보면 내가 조금은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비행기 한 대를 하늘로 띄우려면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이 뒤따른

다. 나의 조그만 실수로 비행 출발 시간이 지연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을 책임감으로 이겨내

야 한다. 모두가 노력해 비행기를 제시간에 출발시켰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일본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난여름 유카타를 입고 아름다운 불꽃축제를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카운터에서 “아유, 일본에 와서 정말 고생 많아요” 하고 웃는 한국인 고객의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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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91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모두 필사적으로 취업난을 이겨내기 위해 뛰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기는 사람은 ‘발로 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하지 않는 자에게는 핑계가, 하려는 자에게는 방법이 보인다는 걸 잊지 말자.

남들 모두가 바라보는 곳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 용기를 안고 도전을 했으면 한다. ‘보여 주기’식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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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212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또 하나의 길을 보다

대학을 마치고 늦은 나이로 현역 육군에 입대한 나는, 제대 후 진로를 놓고 부담과 고민이

많았다. 생명공학 전공을 살려 진로를 정하고 싶었지만,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망설

이며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한국무역협회에서 주관한 〈일본 취업성공 전

략 세미나〉에 대한 공고를 보고 휴가를 받아 참가했다. 부전공인 일본어를 취업과 연관 지

어 생각하지 못했던 나에게 또 하나의 길이 열린 기분이었다. 왜 일본에서 글로벌 인재를

필요로 하는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조언을 들으며 취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이어진 3일간의 취업 선택 프로그램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

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한일 기업 문화의 차이, 채용 과정의 흐름 등 일본 취업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현지 전문가의 열띤 강연은 큰 도움이 되었다. 부대에 복귀한 나에게 새로

운 선택지 하나가 더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일본 취업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뒤늦게 군대에 들어갔다. 제대 후 진로를 고민하다 〈일본 취업성공 전략 세미나〉에

참가했다 가까운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로슈그룹의 일본 자회사인 쥬가이 제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회사를 점찍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회사 자료가 든, 5백 페이지가 넘는

두 권의 책을 엮어 면접장을 찾기도 했다. 나는 결국 합격했다. 부대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았더라면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예섭

도전하는 사람에게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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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232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안 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일단 해보자

한국무역협회와 일본의 취업 사이트 ‘마이나비’가 공동 주관하는 취업 합동면접회가 7월 초

에 예정되어 있어, 당장이라도 준비를 해야 했다. 여러 회사들 중에서 관심이 있는 화장품

과 제약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중에서도 꼭 가고 싶었던 기업이 바로 쥬가이 제약이

었다. 글로벌 제약회사 로슈그룹의 일본 자회사로 ‘바이오 의약품’에 주력하고 있어 대학 전

공을 살리기에 최적의 회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학교를 졸업한 상태였고, 군인 신분

으로는 원하는 회사, 직종을 위한 경험을 쌓는 일 등 소위 말하는 ‘취업 스펙’을 바꿀 수 있

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내가 할 수 있

는 일은 ‘기업과 직무 분석’, ‘이력서 작성과 적성시험의 준비’였다. 한국과 다른 이력서 작성

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서류전형 이후에 있을 적성시험은 인터넷

을 이용하여 유형을 찾아보고 책을 사서 틈틈이 계속 준비했다. 기업 연구를 위해 회사 홈

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모으는 동시에, 관련 업계의 뉴스나 정보를 스크랩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른 회사가 아니고 왜 이 회사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며 면접을 준비했다. 그리고 첫 번째 관문인 서류전형을 통과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첫 면접, 경험이 없으면 더 용감해진다

한국 기업들의 공채를 보기도 전에 인생 첫 면접을 맞이했다. 서류전형 발표가 나고 일주

일 만에 있는 면접이어서 아무리 연습을 해도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열심히 준비하며 달려

온 나를 믿고 일본행 티켓을 위해 도전했다. 이력서 작성과 면접을 위해 찾아낸 회사 자료

와 주력 의약품에 관한 정보를 총 5백 페이지가 넘는 두 권의 책으로 엮어서 면접장에 들고

갔다.

면접은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과 내가 맞는 부분을 잘 연결해서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 도전하는 정신’에 대해 말하며, 면접까지 오게

된 준비 과정을 말했다. 준비해 간 두 권의 책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며, 내가 왜 이 회사를

지원하게 되었는지와 연관 지어 자기 PR을 마쳤다. 이어진 면접관의 질의에서 놀랍게도 나

의 ‘스펙’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 다만 내가 어떤 사람이며, 이 회사의 직무에 맞는 사람인지

에 관한 인성 평가가 질문의 주를 이루었다. 의약품에 대한 전문 지식에 관한 질문이 나올

까 걱정했던 불안감은 씻은 듯 사라지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면접이 있

고 이틀 후에 바로 연락이 왔다. 2차 면접 장소는 일본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2주 후에 도쿄 본사에서 2차 면접과 임원 면접이 이뤄졌다. 실무진과 임원진 앞에서는 ‘의

욕’만 가지고 합격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직무 분석에 최선을 다했다. 쥬가이 제약만의 기술,

차별점 등을 정리하여 읽고 또 읽으며 면접 준비를 했고, 어렵게 부대에서 국외여행 허가를

받아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

1차 면접 때와는 다른 긴장감으로 실무진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무이기에, 모든 사원들이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규정상

학력 제한은 없지만, 현재까지 합격한 내정자들도 모두 석사 이상인데 과연 내가 그들과 맞

춰서 따라올 수 있겠느냐가 질문의 요지였다. 외국인인 데다 학력까지 모자란 상황이라 순

간 좌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내가 쥬가이 제약

을 왜 선택했는지, 서류와 면접 준비를 하며 조사했던 회사 정보들과 더불어, 내가 자신 있

는 분야들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비록 석사 학위는 없지만,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학부를

비롯하여 길지 않은 시간에 일본어를 습득할 수 있었던 자세와 열정, 글로벌 기업이 꼭 필

요로 하는 영어 실력에 대한 이야기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내놓았다. 이어진 임

원진 면접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내

가 준비해 온 것들을 당차게 설명했다.

다음 날 귀국 후 부대로 돌아왔다. 합격 여부 통지에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는 인사부 직원

의 말을 되뇌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임상개발 본부장님을 비롯한 모든 면접관들의 만장일치로 합격되셨습니

다. 내년 4월부터 쥬가이 제약에 꼭 입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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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겠습니다.” 합격 통지였다. 전역 후에 마땅히 돌아갈 곳이 없었던 나에게, 가야 할 곳이 정

해진 순간이었다.

하려는 자에게는 방법이 보인다

군복을 입고 부대 안에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나의 한계를 정해 버렸다

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조로 상상을 뛰어넘다[創(そう)造(ぞう)で想(そう)像

(ぞう)を超える]”가 쥬가이 제약의 정신이다. 새로운 신약의 ‘창조’를 통하여 난치병 치료에

대한 ‘상상’을 뛰어넘겠다는 정신. 취업을 단순히 꿈과 같은 ‘상상’이 아닌, 나의 노력과 의지

로 새로운 길을 ‘창조’하여 개척해 냈다.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언제

나 눈과 귀를 열고 주변을 둘러본다면 모든 것이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취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두 필사적으로 취업난을 이겨내

기 위해 뛰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기는 사람은 ‘발로 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취

업은 ‘아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언어와 능력이 갖춰져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영역이다. 혼자서 뛰어다닐 필요는 없다. 해외 취업을 지원하는 센터들이 많이 있고,

내가 참여한 해외취업 박람회 등을 이용하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하지 않는 자에게는 핑계가,

하려는 자에게는 방법이 보인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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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인 턴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 광고 대행사 PANCOM 인턴

박경미

K-Move로 해외인턴의 꿈을 이루다

오늘은 내가 미국으로 온 지 딱 아홉 달째 되는 날이다. 어렸을 때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를 다녀오는 친구들의 모습이 나와는 참 다르게 느껴졌고, 해외로 나가려면 돈이 많이 든

다는 편견이 있어 단 한 번도 제대로 꿈을 꿔보지 못했다. 그 흔한 여권도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만들어 본 적이 없고, 대학교 4학년 때 짧게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온 것

이 해외 경험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K-Move 스쿨> 프로

그램에 대한 광고를 보았다. 놀랍게도 우리 학교는 K-Move 스쿨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 프로그램은 꼭 이수해야지’라는 막연한 꿈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당히 지원서를 내고 결과 발표를 기

다렸다. 그런데 내 이름은 합격자가 아닌 보류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한 달 안에 영어 점

수를 만들어 오지 않으면 탈락이라는 뜻이었다. 4년의 재학 기간 중 나는 누구보다 학교생

대학 4학년 때 <K-Move 스쿨>을 이수하고 미국 LA의 광고 대행사인 팬컴 인터내셔널에

인턴사원으로 취업했다. 보류자 명단에 있다 영어 점수를 올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덕이었다.

그렇게 용감무쌍한 해외인턴 생활을 시작했고, 농심의 신라면 시티투어 버스 디자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내 이름 석 자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금도

미국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내 이름 석 자가 신문에 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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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인 턴

활을 열심히 했고 열정이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합격 문턱

에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틈틈이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새벽잠을

쫓으며 영어에 매달렸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결과 보류자 명

단에 있던 내 이름이 합격자 명단으로 옮겨졌고, 학교 벽에 걸린 해외취업자 명단 플래카드

를 보고 부러워하기만 하던 내가 해외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호기심 가득, 나의 첫 미국 생활

2016년 1월 7일,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을 뒤로한 채 부푼 꿈을 안고 LA행 비행기에 올랐

다. 미국에 첫발을 디딘 날, 숟가락 하나 없이 와서 내일 당장 머무를 집도 구하지 못한 채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을 묵기도 했고, 총기 소지가 가능한 미국 땅에서 겁도 없이 깜깜한

거리를 걸어가겠다고 나선 용감하고도 무식한 인턴이었다. 처음 오믈렛을 먹던 날 오믈렛

안에 왜 밥이 없냐며 놀라기도 했고, 식당에서 왜 숟가락을 주지 않느냐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1달러를 아끼겠다고 차로 30분도 안 되는 거리를 버스로 달려 왕복 170정거장을 돌고 돌

아 두 시간 만에 바다에 닿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배움을 얻고,

도움도 받으며 미국 생활에 많이 적응했다. 사실 처음엔 한인타운에 거주해 미국이란 게 실

감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스타벅스에서 맥북을 펴놓고 베이글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고 어릴 적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아, 이곳이 미

국이구나!’라고 실감했다.

신문에 내 이름 석 자를 올리기까지

대학 3학년 때 ‘기획과 광고’ 수업을 들으면서 광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K-Move 스

쿨 준비 당시 광고 대행사인 PANCOM에 입사하고 싶었다. 정말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재학 시절 만들었던 작업물들로 진솔한 포트폴리오를 꾸려 면접을 보았고, 나의 가장 큰 장

점인 ‘열정’과 ‘성실’을 집중해서 부각시켰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은 누구에게

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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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313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인 턴

첫 출근을 하던 날 잔뜩 차려입고 간 나를 보고 다들 “너 계속 그렇게 입고 다닐 거니?”라고

물었다. 자유로운 미국 광고회사에서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직원들 사이에서 잔

뜩 차려입은 내가 얼마나 튀어 보였을까? 지금 나는 Creative Team에서 제작 파트의 인턴

으로 있다. 나름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무에서는 미숙함이 많

아 속으로 위축된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배우고, 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매 순간 회사 생활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처음 내가 만든 시안이 채택되고

신문 전면에 실린 날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성취감으로 뿌듯했다.

최근에는 농심 아메리카(주)에 신라면 시티투어 버스 디자인을 의뢰받아 작업을 한 바 있

다. 지금 그 이층버스는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달리고 있다. 인턴 신분인 내가 뉴욕의 거리

를 달리는 시티투어 버스를 디자인한 것이 이슈가 되어 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했다. 유명

인사나 대단한 일화만 신문에 실리는 줄 알았는데, 내 이름 석 자와 함께 사진이 여러 신문

에 도배되던 날은 얼떨떨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나를 믿고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맡겨 준

회사 측에도 정말 감사하다.

넓은 시야로 과감히 도전해 보자

한국은 고학력자가 넘쳐 나고 취업의 문은 한정되어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스펙 쌓기에 바쁘고, 토익 점수 올리기에 전전긍긍한다. 그 좁은 취업문 앞에서 과연 그들

이 원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내가 이곳에서 인

턴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큰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다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인

턴의 의견도 존중하며 모든 일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재학 시절 서울로 취업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움이

큰 아이였다. 그런 내가 K-Move를 만나 미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만의 틀에 갇혀 살았는지, 얼마나 아등바등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여행 사진이나 좋은

쪽 이야기만 듣고 ‘해외 근무는 즐거운 거구나!’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밤늦게 야근을

하기도 하고, 신분 때문에 혜택을 못 받는 일도 많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 해외인턴은 정말 많은 경험을 주고 나 자신을 더 성장하게 만든다.

내가 그러했듯 월드잡플러스의 K-Move 프로그램에 수시로 관심을 가진다면, 국내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나도 인턴 신분인 데다 앞날이 어

떻게 풀릴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직무 능력을 향상시켜 회사에서 인정받은 직원으

로 거듭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남들 모두가 바라보는 곳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 용기를 내

어 도전을 했으면 한다. ‘보여 주기’식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

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경험의 기회를 잡고, 스펙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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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불가능 또한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이번 도전은 앞으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과 앞날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도전하는 자에게 길은 열려 있다. 가진 게 없다고 낙담하지 말자. 문밖의 길들은 다 당신 것이다.

처음부터 뜻대로 진행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눈앞의 난관과 환경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상상해 보자.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무한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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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aUSTRaLIa 호주 | 홈케어 전문 기관 AFEA 직원

최지현

나의 꿈 해외 간호사

나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였다. 신임 시절엔 내가 보살피던 환자가 돌아

가시면 보호자 따라서 나도 같이 눈물을 흘리고, 한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쉽

게 빠지던 내가 3년 남짓 다니다 보니 환자들의 죽음에도 무뎌지고 매너리즘을 느끼게 되

었다. 언제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병마와 치열하게 다투며 살아야 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함과 회의감으로 매일 하루를 마감하고 집에 가면 지쳐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되새겼던 나의 꿈이 해외 간호사였다. 때가 되면 떠나리라 희망을 놓지 않고

기다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K-Move 스쿨 Aged care 해외교육진흥원의 모집 공고. 간

호사와 사회복지사를 우선으로 뽑는다니 나에겐 사막의 오아시스마냥 느껴졌다. 이십대 초

반부터 꿈꿔 왔던 해외 생활. 일도 하면서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울 수 있는 삼박자를 다 갖

춘 호주 워킹홀리데이. 그곳에서 나의 간호사 경력을 살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니 바로

이거다 싶어서 지체 없이 수속을 진행했다.

3년 남짓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쳇바퀴 같은 삶을 이어가던 중 오래전부터 품어 온 해외

간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이 쉬울 리 없었다.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불안의 날들을 견디고 홈케어 전문 기관에 취업해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간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내 길을 가는

중이다.

떠나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보여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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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소식을 들은 간호사 동료들과 팀장님은 내가 그만두고 마주칠 현실,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

면서 나를 설득시키려 했다. 친구들도 몇몇은 응원해 주었지만 대부분은 안정된 직장을 왜

때려치우느냐며 이해가 안 간다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런 말과 눈길에 상처받기보단 묵

묵히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가

장 큰 걱정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치가 양 어깨에 짊어진 짐처럼 늘

무거웠는데, 내 욕심을 앞세워 그 짐을 내려놓으려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부모님과 술

한 잔 하면서 어렵게 퇴직 의사를 꺼냈고, “네가 어디를 가든 너의 길을 응원해 주겠다”는

말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리하여 나는 부푼 마음으로 호주가 아닌 필리핀으로 떠났다.

좋은 추억으로 가득한 필리핀 어학연수

대학 졸업 후 영어는 손을 놓고 살았던 터라 자신이 없어 택한 필리핀 세부 2개월 어학연

수.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같은 방 룸메이트 외국인들에게 “신발 벗어도 돼?” 이 한마

디를 못해서 어리벙벙하게 굴며 온몸으로 보디랭귀지를 하던 내가, 첫 평가시험에서 초급

자 레벨을 받고 생각보다 높은 레벨을 받았다면서 좋아하던 내가, 영어울렁증 때문에 쉽게

말문을 트지 못하며 전전긍긍하던 내가, 필리핀을 떠날 때는 외국인들과 영어로 편지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실력이 늘어, 마지막 월말 시험에선 중급자 레벨까지 끌어올리며 5등 안에

드는 영광을 누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개월의 세부 어학연수는 앞으로 어떻게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고, 여러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며 한국문화와는 또 다른 다

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평일엔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마다 친구들을 모아

세부 근교로 여행을 다녔다. 일본과 대만의 친구들과 함께했던 1박 2일 카모테스 섬 투어,

고래상어로 유명한 오슬롭의 스노클링, 저가 항공사의 프로모션을 적절히 활용해 왕복 8만

원 티켓으로 다녀온 보라카이 여행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시작

호주에 도착 후 시드니의 머큐리 대학에서 17명의 친구들과 시작하게 된 Aged care 과정은

사실 내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간호사로 일하고 온 나에게 RN(Registered Nurse: 공인간호

사)이 아닌 AIN(Assistant in Nursing: 간호조무사)에 관한 공부들이 주어졌다. 매일 쏟아지

는 엄청난 양의 과제들 때문에 가끔씩 너무 벅차 주저앉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주말

마다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 주제의 과제들을 영어로 하나하나 작문

을 해가며 내 의견을 표현하는 데 한계에 부딪혀 자괴감을 느낄 때면 후회가 밀려와 나 자

신을 무너뜨렸다. 그때마다 한국에서 오직 자식 잘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을 부모님 생

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또 발음이 이상하거나 생소한 내용들은

담임이었던 칠레 선생님, 유지니아에게 물어보며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약 5개월간의 이론 공부가 끝나고 2016년 2월 8일부터 2주간 양로원(Nursing Home)에서

실습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다. 무작위로 배정받은 실습지는 시티에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맨리 지역의 여성 치매 전문 양로원이었다. 치매 환자들이 내뱉는 알아듣기 힘든 말들, 기

억상실, 이따금씩 나오는 폭력적인 행동들을 이미 수차례 한국에서 경험해 본 터라 덜컥 겁

이 났다. 한국말로 해도 알아듣기 힘들어 치매 환자들과의 소통에 애를 먹었는데, 내가 과

연 영어로 그들과 원만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실습을 나가기 전날 밤은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며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실습지로 향했다.

한 달 반의 노심초사 끝에 성공한 취업

나의 반가운 인사에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응시하던 할머니 치매 환자들이 맨 먼저 눈에 들

어왔다. 첫인상이 엄격해 보이던 엠마라는 매니저에게 기본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선생님

한 분과 짝을 이뤄 같이 일을 시작했다. 1주일간 나를 교육해 주신 너무나 친절했던 피지에

서 온 나의 선생님, 펠레. 이건 정말 쉬운 일이라며 계속 허둥대던 나에게 조언과 칭찬을 아

끼지 않았고, 두려워하지 말라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잠들어 있는 노인들을 깨우는 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는데, 침구 정리부터 샤워, 옷 갈

아입히기, 용변 보기, 음식을 일일이 떠먹여 주는 일까지 어느 하나 AIN의 손길이 필요하

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밥을 먹이는 일도 치매 환자들에겐 음식이 폐로 들어갈 수 있어 신경

을 써야 했다. 주의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침구 정리도 내가 집에서 하던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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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393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아닌 그들만의 방법을 배워 나가야 했다. 아침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점심시간이 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할머니들을 챙기며 뛰어다니다 보니 여덟 시간이 훌

쩍 지나 있었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2주 동안 선배들의 꼼꼼한 가르침 덕에 혼자서도 할머니를 돌보고 어려운 기구들을 혼자서

척척 사용하며 AIN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다. 덕분에 마지막 날, 양로원 관리자와

매니저가 너무 잘했다며 같이 실습한 언니와 함께 자기네 양로원에 고용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2주간의 고생은 날아가고 나의 미래가 탄탄대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취업

은 예상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지원했던 양로원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사

람은 뽑지 않는 곳이라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내야 했고, 그마저도 사람이 이미 찼거나 비자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을 취업에 힘썼다.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던히 노력했다. 견디다 못한 생활고와 취업난에 몇몇 친구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일자리를 구하러 떠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꼭 해내겠다는 믿

음 하나로 견뎠다. 지지부진한 하루에 경제력과 심적인 부담감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AFEA라는 홈케어 전문 기관에 서류 심사, 면접까지 통과하고 계약서를 쓰

고 나서자 마음고생으로 밤잠을 설치며 불안에 떨던 날들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동안 갈

대처럼 마음이 흔들렸지만, 현실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이 너무 고마웠다.

낙담하지 말고 내 길을 가자

호주에 와서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 화려한 야경,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즐기며 늘

좋은 것만 보고 느끼던 내게 홈케어는 또 다른 면을 보여 주었다. 텅 빈 집에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들, 음식을 스스로 요리할 수도 없고 씻을 수도 없어 돌보는 사람이 올 때까지 마

냥 기다리는 장애인들, 돌봄이 절실한 치매 노인들 같은 호주의 어두운 이면을 보고 느낀

시간이었다. 마음이 아파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고 싶어 짧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

이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해 필요한 부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처음엔 영어도 서투른 동양인 여자애가 와서 왜 저럴까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사람들이 나

중에는 마음을 열어 주었고, 그들과 친밀감이 쌓일 때마다 나의 조국,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갔다. 방문할 때마다 한국 과자, 차 등을 선물했고 가끔씩 한국 요리도 만들어 주었

더니 나중에 자주 놀러 오라는 말로 따듯함을 전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병률의 산문집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세상의 경계에 서보지 않은 나에게, 세상은 아

무것도 가져다 줄 게 없다.’ 떠나지 않는 이들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나 역

시 떠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여 대학병원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쳇

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영어 울렁증으로 외국인들만 보면 도망을 가던

내가 이젠 그들과 능숙하게 소통을 하고 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을 먹고 불안해 하

던 모습이 이제는 우습게 느껴진다. 불가능 또한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이번 도전은 앞으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과 앞날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도전하는 자에게 길

은 열려 있다. 가진 게 없다고 낙담하지 말자. 문밖의 길들은 다 당신 것이다. 나는 최종 목

표인 ‘해외 간호사’가 되기 위해 묵묵히 내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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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414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3개월 수습 후 정규직 전환

많은 유학생이 해외에서 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학생들

다수가 현지 취업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나 또한 그중 한 명이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친인척 없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유학을 시작한 나였기에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문과 학부생으로서 취업 비자를 받지 못하고 귀국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뿐 아니라 여러 인턴십을 거쳤고 대외 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스펙을

쌓았다. 졸업을 준비하면서는 뉴욕 소재의 한 회사에서 무려 6개월간 인턴 생활을 했다. 하

지만 회사 측에선 외국인 비자 스폰서 문제를 회피했고 곧 유학생 비자가 만료되었다. 꼭

다시 해외 취업을 하리라 결심을 하고 귀국했을 때가 2014년 가을이었다.

귀국 후 나는 ‘3개월 수습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문구를 내건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취

업난 속에서 겨우 합격한 곳이었지만 직급 중심의 동료 관계, 삶과 일의 균형을 무시한 채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근무로 의욕을 잃었다. 3개월 후 회사는 ‘일을 함께 해보니 내가 직무

오랫동안 해외 취업의 문을 두드려 왔다.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자문했다. 그때 ‘회계사’란 직군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했고, 1년이 넘는 고시 생활 끝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력서를 보내길 수차례, 홍콩의 한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절실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고,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당신도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다 보면, 국경 밖에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HOnG KOnG 홍콩 | 공인회계사(USCPA)

김다영

국경 밖으로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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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434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정규직 전환을 거부했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로 불려 들어가 회사의 통보를 받고 울며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회사에

소모품 취급을 당한 것 같아 씁쓸했고 자존심이 상했다. 당시엔 우울했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큰 전환점이 되었다.

첫걸음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

백수가 된 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월드잡플러스 웹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다시 해외로 나

갈 기회를 모색했다. 다양한 기회가 많았지만, 이것들을 추려 낼 키워드조차 찾지 못했다.

KOTRA에서 주최하는 해외 채용박람회에 가서도 무분별하게 이력서를 돌리며 회사 사정

에 따라 영업원이 되었다가, 컨설턴트가 되었다가, 물류 관리자가 되었다가 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뚜렷한 목표 없이 부르는 대로 왔다 갔다 스펙을 바꿔가며 무작정 해

외 취업만을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저 화려한 스펙 쌓기에 빠져 내가 진정으로 하

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달간 여행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

는 시간을 보냈다.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에 대해 깊이 생

각했고, 온라인으로 하는 성격 테스트로 나한테 맞는 직업군을 분석하기도 했다. 단 하나

뚜렷했던 나의 목표는 해외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꾸준한 갈망이었다. 따라서 해외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군이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성찰의 시간을 보낸 후에 가고 싶은 나라를 정했고, 그 나라에서 비자를 받기에 가장 유리

한 직군을 뽑아 보았다.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아일랜드,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 등 영

어권 국가 위주로 선정을 했고, 지난 10년간 취업 비자를 내준 직군 명단을 분석했다. 회사

가 선호하는 직군은 대부분 엔지니어, IT 인력, 의사, 간호사, 요리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다. 그러던 중 ‘회계사’라는 직종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시민이나 전공자가 아니어도

시험을 통과하고 경력을 채우면 미국의 공인회계사(USCPA)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났다. 불현듯 이걸 따면 외국인 신분으로 전문 인력에 해당하여 취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물론 이 면허가 바로 취업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지

만, 준비된 자에게는 꼭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진행하리라 마음먹었다.

비전공자의 미국 공인회계사 도전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버텨야 하는 오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더 큰 세상

에서 경력을 쌓고 싶었고 더 큰 무대에서 살고 싶었다. 국제관계학이라는 대학 전공과는 딴

판이라 한 번도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분야였지만, 혼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 붙겠

지 하는 바람으로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했다. 결정 후에는 바로 한국에 몇 안 되는

USCPA 학원에 등록했고 고시 생활에 들어갔다. 초반에는 눈을 어지럽히는 숫자들이 도무

지 이해가 되지 않아 큰 애를 먹었다. 수많은 회계 전공자들 사이에서 정말 악착같이 공부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 번이나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1년 3개월이라는 고

시 생활을 끝내고 USCPA 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이었다. 막상 외국에 지원을 하자

니 쓸 만한 경력도 없고 회계 관련 경험도 전무했다. 지인도 없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여러 경로로 가장 승산이 있는 나라를 추리기 시작했다. 각종 해

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

구 아이디를 빌려 학교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대사관에 전화를 하

고, 회사에 직접 연락을 취하며 정말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써서 보냈다. 그러다 국제무역

의 중심지인 홍콩이나 싱가포르 쪽에서 서류가 통과하는 일이 생겼고, 가장 유력한 후보라

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구직 사이트의 검색란에서 ‘회계’로 키워드를 쳐서 가려냈다. 또 홍

콩의 미국 영사관 웹사이트에 들어가 홍콩에 사는 미국 시민이나 기업들이 세금 신고를 할

때 이용하는 American Tax Firms의 리스트를 뽑았고, 회사마다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일

이 되려고 했는지, 하필 그때 딱 한 군데 회사에서 미국 회계사로 일할 신입을 뽑고 있었다.

시험에 합격한 자료를 회사에 보냈고, 장문의 메일로 또다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마음이 닿았는지 그곳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홍콩의 회계사가 되어 미국을 경험하다

긴장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는데 생각보다 미국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이 그냥 얘기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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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이 인터뷰를 이끌어서 편했다. “당신은 한국에서도 좋은 직장에 얻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다

른 나라에 지원을 했나요?” “홍콩에 아는 사람은 있습니까?” “가족도 한국에 거주합니까?”

직무보다는 개인적인 동기를 궁금해 하는 질문을 했다. 회사로 보면,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나 현지인을 채용해도 충분할 터인데 굳이 외국인을 불러들이는 일이 반길 일은

아니었다.

초반에 회사 측은 관심을 보였으나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연락이

뜸해졌다. 하지만 회사로 집요하게 이메일을 쓰며 이 기회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왜 이

회사여야 하는지에 대해 표현했고 인터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고시 공부를

하며 수없이 생각하고 원했던 일이기에 “왜 우리 회사에 오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답변

하는 것이 굉장히 쉬웠고, 준비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일주일 뒤에

국제전화가 왔고, “포지션 오퍼를 주겠다. 취업 비자는 길게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다. 계약

서를 보내니 검토하고 사인을 바란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었다.

현재 나는 홍콩에 있다. 미국인과 미국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신고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국계 다국적기업부터 홍콩 내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 미국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인 등 다양한 고객들이 사무실을 방문한다. 직원들도 반 이상은 외국인이며, 사무

실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며 다양한 언어들이 오고간다.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 법이기 때문에 항상 국제 시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 대선 결

과에 따라 사회적 변화들이 어떻게 법에 반영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홍콩과 중국의 관계,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고객들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한다. 나는 매일 리서치를 하고, 고객들과 소통하며, 법에 따르는 논리를 생각

하고, 꼼꼼함과 세밀함으로 미국 정부에 세금 신고를 한다.

멀리 내다보는 자가 승리한다

주 40시간을 일하며, 내가 그토록 원하던 느긋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오후 6시에

퇴근을 하면 운동도 하고 요리도 하고 여가 생활을 보낼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족

과의 삶을 중시하기 때문에 정해진 퇴근 시간을 넘지 않으며, 집에 일이 생기면 휴가나 반

차도 눈치를 보지 않고 쓸 수 있다. 회사가 나에게 잘해 주니 나도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직업도 중요하지만 일 외에 나만의 삶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주말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친구들과 산으로 캠핑을 간다. 금요일엔 휴가를 내고 가까운 나라인 타이완, 싱가포

르, 태국, 베트남으로 짬짬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많기에, 이십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최대한 많은 나라를 방문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졸업 후 약 2년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짧고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결국 해외 취업에 성공했다. 돌이켜 보면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내 인생을 계획한

것에 두고두고 감사하다. 장기적인 비전이 없으면 어디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고, 시

작 후에도 이를 발전시키고 유지할 원동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원동력 덕분에 단 한 번도 지금의 자리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해외 취업은 해당 분야

에 꾸준한 관심을 두고 계획적으로 철저하게 준비해 온 사람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본다면 해외 취업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무궁무진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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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내 꿈은 항공정비사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

이었고, 내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비행기를 타볼 기회가 조금 더 있었다. 큰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순간의 설렘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배경 삼아 롤러코스터의 정점을 향해 오르는 짜릿한 기분. 나는 그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을

두고 좋아하게 되었다.

여자 항공정비사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을 떠나 호주에 첫발을 디딘 그날을 잊지

못한다. 한국과는 다른 넓은 대륙과 광활한 자연, 그리고 즐겁고 여유로운 호주 사람들. 내

가 지낸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내 꿈의 준비 과정이자 시

작이라 할 수 있는 호주의 한 항공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업 과정은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았다. 먼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과 실습, 그리고 통과 아니면 불합격의 기준이 되는 깐

내 꿈은 한결같았다. 비행기를 정비하는 항공정비사가 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호주의

항공학교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취업문은 열리지 않았다. 국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릎을 다쳐 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K-Move 멘토링〉 덕에 멘토의 도움으로 호주의 한 헬기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잡았다. 포기하지

않고 정진한 덕에 고용 연장을 약속받았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당신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aUSTRaLIa 호주 | 항공정비사

이아림

꿈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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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깐한 시험. 1점만 모자라도 그 과목은 불합격 처리가 되고 남은 4주 동안 나머지 공부를 해

야 하며, 그 뒤에 다시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는 체계가 때로는 굉장한 압박감으로 다가

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낙오자가 나왔고, 반 정도의 학우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상황이 생

기기도 했다. 내가 여기서 이걸 견디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다짐으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아침에 있는 자율 실습도 자진해서 참여했고,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가 실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를 아는 학교의 직원들이 ‘워커홀릭’으로 부를 정도였다. 덕분에 100퍼센

트 출석률로 무사히 시험을 통과했고, 졸업 시에는 상장도 받게 되었다.

나는 자신감이 붙었고, 어떤 회사든 들어가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으리란 기대로 구직 활동

에 나섰다. 이력서를 들고 여러 회사를 찾아다니면서 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여

러 번 얼굴을 비치며 회사에 가서 내 상황을 설명했고, 어디서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는 말로 인사 담당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경력이 없는 외

국인에게, 그것도 항공정비사의 기회를 주는 일은 드물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대형 항

공사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면접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작은 회사들은 한국 자

격증을 중시해서 내가 호주에서 배워온 것들은 큰 의미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시련이 닥쳤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무릎 수술을 받아야 했다.

고등학생 때도 같은 부위를 다쳐 한동안 재활 훈련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이 중요

한 시기에 날벼락 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무릎을 굽히거나 펼 수 없는 상태라 수술을 바로

하기도 힘들었다. 일상생활에 무리 없이 복귀할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나이

가 스물아홉 살이었고, 빠르게 회복하더라도 다시 취업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이는 서른이나

서른한 살은 되어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 나이로는 결코 적지 않았고, 내가 항공정비사가 될 가능성이 점점 줄어

드는 것만 같아 고민도 깊어지고 자괴감도 많이 느끼던 시기였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후에

도, 휠체어에 앉아 있던 그 순간에도, 재활 훈련을 하는 그 시간에도 내 머릿속의 꿈을 떨

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대로 포기한다면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 자신이 행복

하다고 느끼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포기하는 그 순간까지 도전해 보자!”

K-Move 멘토링으로 기회를 잡다

회복기 동안 인터넷 검색을 하고 해외 취업 상황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월드잡플러스에서

〈K-Move 멘토링〉을 알게 되었다. 멘토 분들을 검색하던 중에 한 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항공 관련 일을 오래 해온 분이어서 내가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멘티를 신청하게 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 멘티들과 어울리거나 따로

멘토를 만나면서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 과정이나 해외 항공 현황들을 알

게 되었다. 또 멘토의 주선으로 현직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현장

의 상황과 해외 경험담, 항공정비사의 기본자세 등 큰 배움을 얻었다.

멘티 활동을 시작하고 2년 뒤에 나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멘토 님이 알고 있던

호주의 한 헬기 회사에서 일을 해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

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는 상태로 호주 땅을 밟게 되었다. 도착한

첫날 회사 직원이 마중을 나와 내가 단기간 머물 회사 기숙사로 데려다 주었다. 가는 길에

광활한 자연을 보니 다시 고향에 온 것처럼 너무 반갑고 들뜬 마음이었다.

아침에 도착한 나는 짐 정리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회사

측에서 제시한 첫 수습 기간은 2∼3주. 그 시간의 평가로 내가 여기서 일을 더 할 수 있을

지 없을지가 결정되었다. 학교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회

사가 바쁠 시기라 모든 일들이 빨리 진행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거나, 눈

치껏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다니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우리 파트의 주 업무는 전기, 전자와 관련된 일이었다. 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점을 파

악해 보수를 하거나 잘못된 전기 배선이나 회로 등을 다시 만들어서 기계가 작동하도록 했

다. 나는 팀원들과 함께 문제의 해결점을 찾았고, 간단한 작업들은 내가 해결하거나 수리에

나서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팀원들과 다른 회사의 직원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알려 주었고, 나는 나대로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좋은 이미지를 심으려 노력했다. 수습 기

간 동안 설레고 행복했다. 내 인생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침

에 눈을 뜨고 내가 정말 원하던 그 일을 하러 가는 출근길에는 콧노래가 저절로 흘렀다. 미

래의 일이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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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꿈을 향해 정진하다

드디어 결정의 날이 찾아왔다. 일하는 도중에 인사 담당자가 와서 “일을 잘 하고 있지만, 앞

으로 6개월만 고용해야 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경력이

없는 나를 붙잡아 두기에는 비자 진행 자체가 어렵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6개월 뒤에

는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한국에 가서도 항공 엔지니어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후회 없이 이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졸업 후 구직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단 한 번이라도, 정말 긴 기간이 아니어

도 좋으니 내가 꿈꿔 온 일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 있고, 이 공기를 마시며,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셈이었다. 회사의 결정이 나온 후에도 나는 좌절하지 않고 더 새로운 것

들을 배우기 위해, 팀원으로서 도움이 되기 위해 밤이 늦도록 혹은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모든 열정을 쏟았다. 피곤해서 집에 가서 쓰러지는 날이 있어도,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실망감이 밀려와도, 내가 일을 하는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

기 때문이다.

본연의 나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점심을 먹으며 쉬

고 있는데 사장님이 날 찾아왔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하더니 “이제부터 훈련생으로 시작해

도 좋다. 비자는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서 여기서 더 지낼 수 있는지 알아보자”고 했다. 나는

믿기지 않아서 “Really? Really?” 하며 계속 물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그게 네가 원하던 것

이 아니냐”며 웃으며 말을 받았다. 난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울컥할 정도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로 팀장님을 찾아갔다. 알고 보니 팀

장님이 사장님을 먼저 만났다.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좋게 본 팀장님이 기회를 한 번 주

자고 말했고, 사장님이 고심 끝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열심

히 노력한 행동들이 빛을 본 순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정진한다면 기회라는 것

이 오고, 그걸 넘어선 기적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느꼈다.

가슴을 뛰게 하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자

나는 아직도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 꿈은 라이선스를 가진 항공정비사가 되어 비행기

가 뜰 때 마지막으로 서명을 하는 그런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한 분

이 말씀하셨다. “항공정비사라는 것은 어쩌면 의사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직업일지 모

른다. 의사는 자신의 실수로 한 명의 목숨을 잃게 할지 모르지만, 항공정비사는 그 실수로

몇 백 명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막중한 책임감과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실수하지 않기

위해 힘써야 한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과정들과 거쳐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나는 이제 첫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없다.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이 첫발을 내딛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다사다난했

던 나에게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때는 내 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미련이 남아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주위에서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현실을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안정적

이고 평범하게 남들과 다름없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나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다. 나는 그대

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면 꼭 나 자신을 버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취업난이 악화되면서 해외 취업을 지향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처음부터 뜻대로

진행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홍수같이 넘쳐나는 정보들 중에서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분별력 있게 판단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월드잡플러스나 해외 취업 사

이트, 본인이 원하는 직종과 연관된 사이트들을 주기적으로 들어가서 취업 동향을 읽고, 취

업에 유용한 자격증을 따거나 경험을 쌓으며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해외 취업박람회

나 상담회, 후기 등 간접 체험의 기회도 실전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눈앞의 난관과

환경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상상해

보자.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무한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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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535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인 턴

THaILanD 태국 | UNCCD 아태지역

사무소 인턴

이슬아

암흑 같던 순간들

어릴 때부터 남들이 하는 것처럼 공부하고 힘든 수험생 시절을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4년도 취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일명 ‘스펙’을 쌓으며 지냈다. 나름대로 부지런하게 보냈

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마주한 현실은 냉정했다. “불합격입니다.” 취

업이라는 관문 앞에서 지난 십여 년의 시간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한참을 실패 속에

서 허우적거리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사회가 정한 기준대로 살아오느라 정작 내가 원

하는 걸 모른다는 점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취업

하고, 취업하면 돈 벌고, 돈 벌면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 재단해 놓은 틀을 따라가면 그것

이 성공한 인생인 양 믿고 지금껏 달려왔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동경하던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내가 바란 것은 그간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에 기여하며 온전히 나 자신을 마주하는 삶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이

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해외 인턴의 길을 결심했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사회가 정한 기준대로

살아왔다는 아픈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시행하는 국제기구 인턴십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고, 과감히 지원해서 합격했다. 나는 태국 방콕에 있는 UNCCD(유엔 사막화방지 협약)

아태지역 사무소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같은 이상을 그리는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을 통해 내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게 되었다. 앞으로 국제환경 전문가라는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것이다.

인생의 찬란한 아침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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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555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인 턴

여명을 기다리는 시간

막상 해외 취업의 길을 알아보니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이제 갓 대학을 나온 뜨내기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없었고, 그나마 남은 일자리마저 영어 실력이 부족하면 합격하기가 힘

들었다. 경력이라도 쌓아 볼까 싶어 인턴십 자리를 알아봤지만, 무급인 곳이 많아 경제적으

로 부담이 되었다. 환경공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유관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공고가 많이 올라오지 않아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시행하는 국제기구 인턴십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한국환경공단

의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은 전문가들에게 환경에 대한 심층 교육을 받고, 국제기구

의 일원으로 갖춰야 할 기본 소양과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

다. 국제사회에 진출해서 활발히 활동하는 선배들이 많고, 인적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

다는 점도 좋아 보였다. 전공을 살린 일을 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절

호의 기회라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원에 필요한 영어 점수와 자기소개서를 열

심히 준비하며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다. 교육을 수강하는 동안에도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전 세계 경쟁자들에 대한 생각에 위축이 될 때도 많았지만, 포

기하지 않고 계속 커버레터와 이력서를 다듬으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태국 방콕에 있는

UNCCD(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cation: 유엔 사막화방지 협약)

아태지역 사무소에서 연락을 받아 국제기구에 한 걸음 발을 내딛게 되었다.

자율과 다양성, 그리고 소통

현재 내가 있는 이곳, UNCCD는 국제 3대 협약(기후변화 협약, 생물다양성 협약, 사막화

방지 협약)이 체결되면서 독립기관으로 발족되어 생겨났다. 사막화방지 협약은 다른 협약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지속가능한 토지 사용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지닌 유일한 국제 협약이

기에 그 중요성과 의미는 상당하다. 국가 간 기술이나 지역 이전도 지역사무소를 통해 진행

되기에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크게 피부로 느끼는 점은 자율

과 다양성이다. 인턴들이 스스로 여러 현안을 살펴보고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분위기다. 이곳에 도착한 첫날 슈퍼바이저가 한 말을 기억한다.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국제사회를 관찰하고,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 그리고 그걸 하면 돼.” 그

의 말처럼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장

려하는 분위기에 감탄했다. 이것은 비단 국제기구뿐만이 아니라 해외에 있는 다른 기업들

도 비슷할 것이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전만 하더라도 영어를 무조건 원어민처럼 해야 살아남을 거라고 생

각했다. 그래서 출국 전까지 영어 공부에만 시간을 쏟았다.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유창

한 영어 실력’보다 ‘유창한 소통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

고 전달할 수 있다면 그 밖의 요소는 부수적인 항목이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일하면서 느

낀 점 중 또 하나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국제시민으로서 역할이다. 한국 정부는

UNCCD를 비롯한 여러 아태지역의 국제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우리들

이 국제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여러 현안에 대

해 국가들이 협력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제시민으로서 자랑스

러움을 느꼈고, 이는 앞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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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575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인 턴

찬란한 아침을 준비하는 자세

UNCCD 아태지역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2개월 남짓 남았다. 인턴으로 일한 기간

은 1년이 되지 않지만, 이곳에 온 후 나의 꿈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 되었

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도 세계 속에서 배우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역량을 쌓아갈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나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보았기에,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릴 계획이다. K-Move의 해외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진정한 국제환

경 전문가로 나아가고자 한다.

해외, 특히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것’은 내가 이전에 쌓아온 경험과 지식들의 연장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배우는 것’은 목표와 사람이다. 같은 이상을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

들과 함께 청사진을 그린다는 것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며, 그걸

알기에 일하는 매 순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지금의 경험을 토대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목표를 크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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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595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봉 사

KYRGYZSTan 키르기스스탄 | 해외 단기 교육봉사

최아영

늦깎이 교대생의 새로운 도전

2016년 여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서 나는 대학 3학년 여름방학

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스물다섯 살에 대학에 입학한, 소위 말하는 ‘장수생’이다. 오랜 꿈이

던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 늦깎이로 교대에 입학했고 어느덧 3학년이 되었다. 교대 생

활 3년째, 그렇게 원해서 온 학교지만 수업과 과제가 넘쳐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몸과 마

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많은 경험을 통해 폭넓은 사고를 가져야 하는 것이

교사임에도 교대의 특성상 그러한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는 온실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곱게 자라는 화초 같았다. 나는 과연 이대로 교사가 되어도 좋은가? 그저 주어진 과

제만 하며 이렇게 교사가 되는 것이 맞을까?

내 머릿속은 진로에 대한 고민들로 넘쳐났다. 그러던 중 학교 홈페이지에서 국립국제교육

원이 주관하는 〈해외 단기 교육봉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망설

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서류 통과 후 면접을 보았고, 총 스무 명이 6개의 과목(한국어/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 스물다섯 살 늦깎이로 교대에 입학했다. 수업과 과제가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3년간 학교생활을 이어왔다. 키르기스스탄 단기 교육봉사는 그런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한 달간 비쉬켁의 두 학교를 돌며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과연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인지, 내가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지를 돌아보는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다. 나는

교육자가 되어 더 넓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갈 것이다.

중앙

아시아에서 찾은 꿈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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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616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봉 사

국문화, 기초수학, 기초과학, 미술, 음악, 체육)의 선생으로 봉사단이 꾸려졌다. 그중 나는 한

국어/한국문화를 맡았다. 막상 합격 소식을 듣고 나니 실감이 안 나고 막막했다. 학교에서

도 해외봉사는 첫 진행이라 현지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출국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았고, 그 안에 모든 수업 준비를 마쳐야 했다.

7월 내내 해외 파견 봉사자의 정신, 공적개발원조(ODA), 세계 시민의식과 관련한 사전교

육 특강을 들었고, 밤에는 조원들과 수업 지도안을 짰다. 수업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신

이 있었지만, 현지의 교실은 컴퓨터는커녕 칠판에 판서도 거의 불가능한 환경이어서 수업

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한국에서 챙겨가야 했다. 전지에 글자를 쓰고 스케치북에 사진을

붙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었다. 출국 전날까지도 지도안을 수정하며 수업

난이도를 조정하고 교구를 만들었다. 보통 해외봉사가 2주 정도 진행되는 것과 달리, 우리

는 한 달 프로그램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켁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국교육

원의 현지 통역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학교

이름이 번호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가는 학교는 1번과 66번 학교였다.

폭탄 신고로 시작된 교육봉사

설렘과 긴장을 안고 도착한 1번 학교. 거짓말처럼 첫날부터 사건이 터졌다. 4교시 수업 시

간에 무장 경찰들이 들이닥쳐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들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학교 밖 공터로 나갔다. 더 많은 경찰들이 밖에 있었

고, 폭탄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하게 되었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폭탄 신고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자세한 경위도 모른 채 우리는 불안에 떨면서 수색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결국 우리는 각자 가져 간 짐과 수업 교구를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

가야 했고, 5, 6교시로 잡혀 있던 한국어 조와 기초과학 조의 첫날 수업은 자연스럽게 취소

가 되었다. 폭탄 신고는 많은 수의 외국인을 본 동네 주민의 오해로 밝혀졌고, 우여곡절 끝

에 다음 날부터 정상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긴장으로 가득한 시작이었지만, 아이들과 교실

밖에서 신나게 뛰어논 덕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1번 학교의 수업이 익숙해질 무렵의 어느 날, 평소 귀여운 장난으로 우리들의 관심을 끌곤

했던 무스타파라는 아이가 옆 반 친구의 목을 조르며 겁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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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636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봉 사

이는 놀라서 그대로 집에 가버렸고, 내가 애정을 두고 지켜본 무스타파가 그런 행동을 한

사실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목을 조르는 행동은 열두 살 아이의 장난으로는 심하다고

생각했고, 주의를 분명히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스타파에게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세 줄 정도 되는 긴 문장을 현지어로 연습하여 “무스타파가

친구를 괴롭혀서 마음이 안 좋아. 앞으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어”라는 말을 더듬

거리며 했다.

그날 숙소에 돌아온 후 ‘무스타파를 혼낸 것이 맞았을까? 더 좋게 타이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날 무스타파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

고, 사흘 연속으로 결석을 했다. 감기에 걸려 못 온다고 했는데, 혹시 내가 혼을 내서 겁을

먹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 수업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교감선생님

을 찾아 그간의 일을 설명 드리고, 내일이 마지막 수업이니 무스타파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

는 연락을 전화로 부탁 드렸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되었고 무스타파가 학교에 나왔다. 나

는 반가운 마음에 학교 현관으로 달려가 꼭 안아 주면서 몸은 괜찮은지, 너무너무 보고 싶

었다고 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무스타파를 보니 그동안의 걱정이 씻은 듯 사

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수업을 했고, 대기실에서 합창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욘, 아

욘!” 하는 서툰 발음으로 무스타파가 나를 불렀다. 나가 보았더니 키르기스스탄 전통 낙타

인형을 내밀며 우리 다시 볼 수 있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어쩔 줄 몰

랐다. 내가 미워서 혼을 낸 것이 아니라는 걸 안 것일까? 나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많은 감

정들이 뒤섞였다.

꿈의 씨앗을 발견하다

그렇게 아이들과 추억을 쌓으며 66번 학교의 모든 수업도 끝이 났고, 이제 정말로 헤어질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날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눈물을 닦고 있는 나에게 통역봉사자 사이

칼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도 몇 년 전에는 이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어요. 선생

님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한국어를 잘하게 된 거예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사이칼은 중

학생이었을 때 봉사를 온 한국인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한국어를

공부해 현재 통역을 할 만큼 성장했다.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며 내 손을 잡는 사이칼을 보

며 왠지 모를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난 아이들도 이번 기회

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내가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내 가슴이 뭉클한 것. 이것이 바로 내

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였다. 나라는 사람, 내 행동이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이 내 인생의 목표임을 깨달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내가 도

움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르기스스탄 교육봉사를 통해 누군가는 우리를 만나 꿈의 씨앗을 품었을 것이고, 나는 교사

가 되고 싶었던 이유, 그 꿈의 씨앗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교직의 특성상 개인의 재

량을 뽐내거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더 넓은 세

상에서 교육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싶다. 훗날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여

교원 해외 장기 파견 프로그램에도 지원할 생각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지원 사업과

국내 다문화 가정과 다문화 교육에도 관심이 생겨 이를 위해 힘쓰고 싶다. 나는 한계를 정하

지 않고 다양한 일에 도전할 것이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꿈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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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656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일본 취업을 준비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뇐 말이다. 나는 당신들의 도전이 성공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그냥 영어 좀 배우고, 외국 경험을 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와서는 해외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며, 무엇을 얻어 갈 것인지, 명확하게 정해 놓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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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CHIna 중국 | 상하이 화학플랜트

설계회사 직원

김현식

꿈을 찾아 중국 상하이로 날아가다

나는 늘 자문자답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곳에 왔나?”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고

자 이 먼 타지에서 고생을 하는가?” “현재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중국 상하이에서 나

태해지지 않도록, 초심이 잃지 않도록,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습관처럼 자신한

테 던지는 질문들이다. 한국에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은 누구

인가?” “현재 위치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당신이 추구하는 꿈은 무엇인가?”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꿈에 대해 숙고하여 답을 찾는다면 해외 취업뿐만 아니라 그 후에 어떠한 본인의 선택

과 갈등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며, 자기 주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원

하는 꿈을 찾고자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중국 땅을 밟기 일주일 전만 해도 나는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는 직업군인이었다. 꿈을 추

구하는 삶을 살고자 전역을 결심하고 상하이로 가는 길을 찾던 중 월드잡플러스 홈페이지

바다를 지키는 해군 장교였다. 그러다 전역을 결심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니하오마?”라는

인사말 하나만 외워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중국어 능력시험에는 관심이 없었다. 광대가 되어 탁월한

친화력으로 중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탁구장에서 만난 할머니와 공원에서 만난 꼬마들이 나의

중국어 선생이었다. 휘둘리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갔다. 중국어 실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준비하는 자세와 긍정적인 마음가짐, 추진력을 높이 산 화학플랜트 설계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동기들

중에는 내가 최초였다.

글로벌 비즈니스 엔지니어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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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696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에서 〈중국 상하이 연수취업 프로그램〉 정보를 발견했다. 입항을 해서 늦게 확인한 터라 서

둘러 지원 서류를 제출하고 차로 열 시간 넘게 오가며 면접까지 끝냈지만, 일주일 후 돌아

온 답은 불합격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길을 찾던 중에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침 전역 당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월드잡플러스입니다. 김현식 님이시죠? 다른 한 분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를 못하게 되어 추가 합격자로 선발되셨습니다. 참여하시겠습니까?” 어리둥

절했지만, 운 좋게도 상하이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게 되었다. 여권, 비자 등 출국 준비를

하면서 가족, 친구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전역 일주일 만에 상하이로 날아갔다. 비행기 창으

로 꿈에 그리던 푸둥공항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상하이에 대한 기대와 설

렘은 비행기 안이 마지막이었다.

어둑한 안개처럼 보이는 스모그,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를 오가는 혼잡한 교통, 정신없이 지

나다니는 전동차들, 코를 찌르는 알 수 없는 냄새…. 중국에 와서 받은 솔직한 느낌이었다.

“니하오마?”라는 인사말과 자신감을 무기로 중국인들을 대하기에는 힘에 겨웠다. 중국 땅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국제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입국 심사부터 등에 땀이 흘렀다. 식사를

주문하는 것도,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중국어 실력이 뛰어난 기수들의 도움 없이는 불

가능했다. 몸은 중국에 있지만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하나도 모르니 몸만 자란 애어른

이 따로 없었다. 그제야 실감이 됐다. 아니 심각성을 느꼈다.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중국

에 내가 있구나.

살아남기 위해 광대가 되다

낯선 언어와 문화, 다른 생활 방식. 배경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살아남기 위한 적응이 절실

했다. 적응의 첫째는 언어 장벽을 깨는 일이었다. 어학연수로 정해진 시간은 길어야 5개월.

그 안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여기서 살아남아 취업에 성공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생

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부분의 연수생들은 HSK 시험(중국어 능력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중

국에 와서 원하는 HSK 급수를 따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5개

월이란 시간을 책상에 앉아 책만 보고 있기에는 너무 억울하단 생각이 들뿐더러 내 성향과

맞지도 않았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활동적이고 쾌활하며, 사람 만나

는 일을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선택했다.

같이 온 주변의 동기들은 시쳇말로 나를 ‘돌+아이’로 부를 정도였다. 길을 가다 무작정 중국

인에게 “지하철역이 어디에요?”라고 물었고(나는 길을 알고 있었다),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

면 앞으로 알고 지내자며 위챗(WeChat: 대륙의 카카오톡) ID를 교환했다. 또 학교 체육관

에서 운동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같이 껴서 운동을 했고, 술집에서도 중국인들끼리 술을 마

시고 있으면 능청스럽게 옆에 앉아 장난을 치며 함께 마시자고 제안했다. 나는 남녀노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행동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탁구장에서 만난 할머니부터

공원에서 만난 꼬마들까지 나에게는 좋은 친구이자 중국어 선생님이었다.

자정 전에는 거의 숙소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이렇게 석 달 정도를 보내고 나자 중국인 친

구들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의사소통에 서툴렀던 나는 자리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우스

꽝스러운 손짓과 몸짓으로 그들을 웃겼다. 덕분에 말문이 막힌 상황에서도 이야기가 끊어

지지 않았고, 나의 서툰 중국어를 알아듣기 위해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집중을 해줬기 때문

이다. ‘같은 사람인데, 즐겁지도 않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본인의 시간을 쓰

려 할까?’ 이런 생각에 나는 더더욱 광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플랜트 엔지니어의 꿈에 한 발 다가서다

어학연수가 끝나갈 때쯤 플랜트 엔지니어의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바로 해외에서 원

하는 직업을 선택하여 취업을 하는 일이었다. 중국어에 많은 노력과 애정을 쏟았지만 그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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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은 한참 모자랐다. 언어를 익히는 데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구직 활동에 발

목을 잡혔다. 상하이에 있는 플랜트 엔지니어 회사가 그리 많지 않았고, 원하는 회사에 이

력서를 내도 중국어 성적이 없는 나에게는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플랜트 엔지

니어로서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기회가 보이지 않았고 답답함만 늘었다. ‘이대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어학연수를 좀 더 해서 중국어 실력을 키워야 하나?’ 자신감

하나로 버티던 나에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동기들이 농담으로 던진 “한국 언제 가?”라는

말이 이제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예전처럼 웃어넘길 수 없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자는 생각에 하나씩 일을 만들었다. 우선 중국 운전면

허증을 취득했고, 해외 비즈니스 엔지니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제무역사 과정을, 상하

이 화동정법대학에서 중국 비즈니스 중간관리자 과정을 수료했다. 이렇게 하나씩 단계를

밟아갈 즈음, 화학플랜트 설계회사란 곳에서 면접을 보겠느냐며 먼저 연락이 왔다. 며칠 뒤

회사를 찾아 면접을 보았다. “왜 상하이에 왔나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앞으로 어떤 쪽

일을 해보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끝으로 면접을 마치고, 그날 바로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

다. 여러 모로 많이 부족했지만 준비하는 자세와 긍정적인 마음가짐, 추진력을 높이 평가한

것 같았다. 중국어 최하위 실력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시됐던 내가 단 한 번의 면접

에서 취업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함께 상하이에 온 동기들 중에서 가장 첫

번째 취업이었다. 회사는 상하이에 있지만 베이징, 청두, 쑤저우, 르자오 등 중국 전역으로

출장을 다니며 일하고 있다. 화학플랜트 P&ID, 3D 설계와 관리 감독, 영업에 이르기까지

기술 사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비즈니스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생각의 방향성, 나를 움직이는 힘

나는 대학에서 IT제어자동화 공학을 전공했고, ROTC를 거쳐 바다를 지키는 해군 장교로

근무했다. 대학을 다닐 때도, 군에 있을 때도 항상 스스로 질문을 했다. “무엇을 위해 이 과

정을 겪고 있는가?” “남들처럼 대학을 나오고, 안정된 직업을 얻고, 그 다음은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을 찾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중에서도 내 결정에 가

장 큰 영향을 준 질문은 이것이었다. “제3자의 눈으로 20년 후의 내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

라본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자리에서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 할까? 지난 선택에 만족하면서?” 눈을 감고 천천히 상상해 본다면, 본인이 정

말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떠오를 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글로

벌 비즈니스를 펼치는 플랜트 엔지니어다. 전 세계에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각 회사의 지사

를 설립하여 플랜트 설계뿐 아니라 생산과 영업, 판매에 이르는 비즈니스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현재 회사에서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습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취업 후에도 중국어

학원에 등록해 매일 출근 전에 수강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영어회화 모임에 나가 비즈니스

에 필요한 외국어 실력을 꾸준히 쌓고 있다. 나는 천천히 그 꿈에 다가가는 중이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해외 취업이 막연한 도피처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목표가 밑바탕이 되는 해외 경험은 한국 안에서 겪은 경험보다 더 값질 것이다. 중국에 좌

정관천(坐井觀天)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자.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생각의 방향성

을 명확히 한다면, 그 생각들이 나를 이끌어 주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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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 금융인

홍예지

정부 해외인턴사업에 도전하다

‘나중에 어떻게든 취업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꿈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학교를 다니

던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4학년이 되고 나서 해외 무역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러나 인턴십 경험도, 해외 경험도 전무한 나를 써주겠다는 기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간신

히 서류를 통과한 기업에서 면접을 보았지만, 외국계 기업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해외

인턴이 되어 실무 능력과 영어 실력을 모두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그

렇게 정부 해외인턴사업에 도전했지만 영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진 것은

소소한 경험들과 열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를 듣고 시작한 창업 이야기와 무역

인이 되고 싶다는 열정을 자기소개서에 최대한 녹여 냈다. 그리고 꿈만 같았던 서류 합격

후 떨리는 마음으로 KOTRA 면접을 통과해 1차 면접 합격자에 이름을 올렸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해외 기업에 면접을 볼 수 있는 ‘면접 입장권’이 주어졌을 뿐,

‘기업 매칭’ 단계를 통과해야 최종 합격이라 할 수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화 면접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해외인턴사업에 도전하면서 인생의 꿈을

찾았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전문 금융인이 되고 싶었다. 인턴의 티를 벗고 미국계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들어갔지만 그 꿈만은 버릴 수 없었다. “멈추지 않는 99도의 열정으로 100도를 넘어

수증기가 되겠다”는 각오로 도전을 거듭했다. 합격 통지를 받아 이제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멈추지 않는 99도의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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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 오후 4시 30분으로 기억한다. 간절함과 진심을 담아,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내

가 꼭 필요한 사람임을 전하려고 애썼다. “해외에 한 번도 안 나가 봤는데 괜찮겠어요? 영어

로 한번 답변을 해보세요.” 질문을 받자마자 물 만난 고기가 되어 수백 번도 넘게 외운 답

변을 유창하게 말했다. “그 정도 영어 실력이면 충분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과 짜

릿함은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가장 원하던 기업으로 1차 매칭에

서 최종 합격했다.

열정과 패기를 세일즈하다

정부 해외인턴사업에 합격하여 현지에 도착했을 때 바이어 섭외를 첫 과제로 맡았다. 처음

으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나에게 인턴 신분으로 한 기업의 구매 담당자, 대표자들을 설득

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매일 아침 있는 회의는 고역이었다. 다른 외국인 직원들과 비

교했을 내가 섭외한 바이어의 숫자가 너무 적어 주눅이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 기업 담당자와 통화하는 일을 혼자 연습하면서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하

면 가능할 것”이라는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정신으로 제

품의 장점을 설명하고 제안서를 보냈다. 회사 비서진에게 판매원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

로 끈질기게 연락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마침내 현지 직원들과 비슷한 수의 바이어들을 섭

외할 수 있었다. 서툰 현지어, 인턴이라는 직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품을 보러 온 것은,

제품을 팔기 이전에 나의 열정과 패기를 ‘세일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칭찬은 팀원들을 춤추게 한다

무역사절단으로 2회의 수출상담회를 치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팀원들과의 ‘협

력’이었다. 나는 행사 시작 전 네 차례에 걸쳐, 팀원들의 바이어 리스트를 취합하여 중소기

업진흥공단에 보내는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팀원들 모두가 각자의 업무와 행사 준비로 바

빠 마감 시한이 다 되도록 바이어 리스트를 제때 제출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동료

들이 리스트를 보내 줄 때마다 “고마워, 바쁜 업무 중에도 정말 잘 정리했네. 역시 네가 최

고야” 하고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리스트를 늦게 제출하던 직원들이 “나도 잘했는

지 봐달라”며 미리 바이어 리스트를 보내기 시작했다. 칭찬은 팀원들을 춤추게 했고, 마감

시한 엄수는 물론 서로의 바이어를 찾아주는 등 모두가 한 목표를 향해 업무를 돕는 분위기

가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모든 동료들이 한마음이 되어 노력한 끝에 계약 추진액 456만5

천 달러에 이르는 성공적인 무역사절단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OCBC은행 한국지점의 인턴이 되다

그렇게 하루하루 치열했던 인턴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해외 취업에 대한 열망은

더 강해졌고, 부족한 어학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

던 중, 싱가포르의 화교계 은행인 OCBC에서 일할 인턴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학

실력도 높이고, 금융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을 준비하기 시

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공고가 마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리나케 학과 사무실에 전화

를 했지만 “마감이 되어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교수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해서 “저에게 한 번만 인터뷰할 기회라도 주세요. 잘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라

고 진심을 담아 말씀 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교수님과의 인터뷰 후 꿈만 같게도 서류 지원

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서류 합격 후에 치른 1차 면접에서 내가 정부 해외인턴으로 일하면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알고 보니 본부장님이 해외 취업 멘토로 활동하며 나

처럼 해외 취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해외인턴의 경

험과 열정을 높이 산 본부장님, 인사부 직원, 지점장님의 면접을 거쳐 OCBC은행 한국지

점의 최초이자 유일한 인턴이 되었다. 공고 마감 소식을 듣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렇게 ‘무조건’ 해내는 근성은 내가 정부 해외인턴

십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자산이다.

나는 인턴으로 일하며 매일 새로운 과제를 만났고, 어떤 업무든 끝까지 해내는 근성과 치

열한 도전정신을 길렀다. 경제 동향 조사와 시장 조사, 바이어 발굴과 섭외, 무역사절단 참

여, 세일즈 미팅 주선, 업체별 마케팅과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쉬운 일은 없었다.

이를 통해 수출입과 통관 절차, 각종 계약 결제 방식 등 무역 전반에 대한 지식과 해외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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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마케팅 전략, 시장 조사, 경제 리서치 방법을 배웠다. 또 정부에서 해외 파견 인턴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실력을 쌓았다. 비즈니스 영어 강의와 업무 관

련 마케팅 강의가 주를 이루었고, 노트에 빼곡히 정리한 내용을 틈틈이 공부했다. 회화 실

력이 크게 늘었고, 이때 배운 이메일 작문법과 마케팅 지식 등은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내가

열망하던 일을 하면서 얻는 짜릿한 성취감은 인턴에게 주어지는 ‘덤’이다.

‘한국의 월스트리트’ 서울 파이낸스 센터에서 인턴을 한다는 것은 가히 환상적인 일이었다.

매일 아침 뉴욕시장과 국제금융 속보에 귀 기울이며 마켓 이슈를 분석하는 법을 배웠고, 부

족한 경제용어를 공부하기 위해 근무가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장외파생상품

라이선스 취득을 위한 금융 법규를 리서치하며 금융 산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외환 트레이드와 세일즈 비즈니스에 관한 이론과 실무를 익히고, 규범 준수(Compliance),

금융위험 관리(Risk Management) 등 다양한 부서와 상호 협력하며 싱가포르 본사, 미얀마

은행 등 여러 국적의 직원들을 만났다. 이러한 경험들을 쌓으며 전문성을 갖춘 금융인을 동

경하게 되었다. 또 실시간으로 듣는 블룸버그를 통해 미 연방준비위원회(Fed)의 파급력을

몸으로 느꼈고, 세계경제와 금융의 심장인 미국을 무대로 꼭 일해 보고 싶다는 꿈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끊임없는 열정으로 행운을 거머쥐다

인턴 생활 중에도 인턴 생활이 끝난 후에도, 나의 목표는 오직 ‘국제무대의 전문 금융인’이

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월드잡플러스 홈페이지와 K-Move 멘토링 사이트 등을 이용해 비

자 공부를 시작했다. 학사 출신인 내가 비자 추첨을 기다리지 않고 당장 갈 수 있는 비자는

오직 하나, 유효 기간 1년의 J-1비자이며, 나중에 이를 회사의 후원을 받아 H-1b비자로 바

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비자는 후원을 받더라도 비자가 당첨이 될지 안 될지 모

르는, 그야말로 무작위 로또 방식의 추첨을 따랐다. ‘미국이란 나라는 참으로 진입 장벽이

높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경력을 쌓으면 추첨 없이 비자 취득이 가능한 한국에 있는 미국계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고, 정규직에 최종 합격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중심지, 미국에서 금융인으로

일하고 싶다는 꿈은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고 괴롭혔다. 구직 활동을 멈출 수 없었고, 월드

잡플러스를 비롯하여 안 들어가 본 미국 취업 사이트가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미국 취업에

미쳐서 살았던 것 같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미국 기업과 은행에 보

냈다. 시민권자가 아닌 외국인 고용 절차에 거부감을 보이는 답변들이 많았고, 인터뷰 기회

를 잡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두 달이 넘도록 진행되는 개인 면접, 단체 면접, 최종 면접, 미

국식 에세이 쓰기를 하고도 떨어졌을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땐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를 악물었다. 또 글로벌 채용상담회가 열리면 휴

가를 내고 무조건 가서 다른 사람이 면접하는 것을 듣거나 하다못해 분위기라도 느끼고 왔

다. 기업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채용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미국에 있는 금융기업과 회계기업 두 곳에 최종 합

격하는 행운을 쥐었고, 현재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리는 근성

인생은 어떻게 보면 끊임없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만약 정부 해외인턴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더라면, 국제무대에서 일하는 전문 금융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

었을까? 가마 안에 든 도기는 몇 도에서 금이 갈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

각한다. 낯선 환경에 부딪혀 살아 보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어디까지 해낼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정부 해외인턴십을 통해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었고, 부족함을 인정

하고 스스로 노력하여 ‘능력’으로 증명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다 아는 사람은 없으며, 부족한 점은 하루하루 조금씩 채워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끈질기게 도전하고 배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내가 낯선 환

경에서 인턴십 기간 동안 고군분투하던 모습을 되새기며 심기일전할 것이다. 해외 경험 한

번 없던 내가, 배짱과 열정으로 해외인턴의 문을 열었고, 그 뒤로도 수없이 많은 문을 두드

려 활짝 열었다. 꿈을 현실로 이끄는 기회는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리는 근성에서 나온다.

나는 그 근성을 인턴 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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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패션 디자이너의 길

나는 보통의 가정에서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 진학을 앞두고

는 고민이 많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전공으로 삼고 싶었고, 주변의 극심한 반대

에도 이공계열이 아닌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로 경

력을 쌓았고, 그 후엔 디자이너 부티크에 입사하게 되었다. 부티크의 특성상 의상뿐만 아니

라 모자, 가방, 구두, 액세서리 등 패션 잡화류 디자인부터 브랜드 기획, 생산, 유통, 구매와

판매, 협찬까지 다양한 분야의 직무를 맡았다. 그동안 다섯 번의 서울패션위크를 치르며 패

션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하이앤드 감성을 키울 수 있었고, 한국 패션산업의 시스템을 이해

하는 등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웠다. 디자이너로 3년 가까이 근무한 후에는 대학원

에 진학했고, 기능성과 활동성을 중시한 워크웨어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유니폼 디자인이

라는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지금 홍콩에 있다. 캐주얼웨어, 유니폼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로컬 업체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나의 이십대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패션계에 발을 들인 순간

예정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코트라 해외취업 박람회를 찾아 무작정 면접을 보았고,

최종 합격했다. 지금은 홍콩이라는 낯선 땅에서 문화적인 시야를 넓히고 예술적인 감성을 키우며

나만의 감성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중이다.

HOnG KOnG 홍콩 | 유니폼ㆍ패션 디자이너

김효섭

한국인의 감성, 홍콩에 뿌리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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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818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았지만, 큰 문제없이 여러 프로젝트를 무사히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격동지인 홍콩은 서울 면적의 1.8배로 매우 작지만, 다양한 분야

의 다국적기업들이 들어와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많은 근로자들이 사무실이나 작업실, 고

객을 상대하는 공간에서 늘 입고 있는 옷이 바로 근무복이고, 그들의 유니폼을 디자인하

는 일이 나의 주 업무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클라이언

트들의 디자인 업무를 수행했다. 홍콩의 공공기관, 대기업, 크루즈 회사, 박물관, 항공사, 버

스 회사, 병원, 초중학교, 놀이동산,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 등 가지각색의 유니폼을 디자인

했고, 현재 그 옷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을 홍콩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보통은 해당 기업에서

주기적으로 일감이 들어오지만, 내가 기업을 직접 찾아 디자인을 제안하고 일을 따낸 경우

도 여럿 있다.

유니폼 디자인은 브랜드 옷보다 디자인적인 요소가 적고 실루엣이 단순해 디자인이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소비자가 아닌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스타일을 잡아야 하는 점은 단

점에 든다. 한국에 있을 때 길거리에서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마주쳤을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이십대의 내 삶은 매 순간이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로 인한 우여곡

절도 많았다. 전공의 선택부터 직장 생활, 대학원 진학에 이르기까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에 내린 결정도 거침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취업을 준비하던 중 K-Move 해외취업지원 사업을 알게 되었고, 월드잡플러스 홈페이

지를 통해 각국의 취업 공고를 살피게 되었다. 입사 지원을 위해 전공과 맞는 공고를 몇 개

로 추리고 서류를 준비했으나, 착오로 온라인 서류 제출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원서를 한

곳도 넣지 못했다. 다행히 현장 접수를 받는 업체가 있어 KOTRA 글로벌 취업상담회 당일

날 무작정 정장을 차려입고 면접장을 찾았다.

취업을 원한 기업의 부스를 찾았지만, 이미 많은 지원자들의 면접이 진행되고 있어 현장 접

수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다 마침 한 분이 참석하지 않아 면접자 명단 맨 마지막

에 턱걸이로 이름을 올리고 1차 면접을 보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1차 면접을 통과하고 몇

주 뒤에 한국에 온 업체 사장님과 2차 면접을 진행했다. 내가 아는 영어로 나만의 경험과

능력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감사하게도 내 경력을 높이 평가해 주셨고, 세 번의 개인 과

제를 더 수행한 후에야 비로소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합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두려움

이 엄습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관이 없으면 용기

도 없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현실적인 두려움 앞에서 꿈을 향한 용기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기에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낯선 홍콩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유니폼 디자인의 매력에 빠지다

디자이너 경력 덕분에 처음부터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내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

는 로드숍이나 백화점에 입점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되는 캐주얼웨어 디자인, 두 번째

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근무 환경에 적합한 회사 유니폼 디자인이다. 업무량은 3대 7 정

도로 유니폼 디자인 업무가 주를 이룬다. 내 직급은 시니어 디자이너로, 처음 업무를 맡아

서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구할 사수가 없었다. 홍콩의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실수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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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때 가장 보람이 컸지만, 그 빈도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버스를 타고

관공서를 가거나,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을 찾거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상생활에서 내 손을

거친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분들과 자주 마주친다. 그 옷을 입고 본인의 자리에서 열정적으

로 일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실무적으로는 활동에 불편함이 없는지, 기능적

인 부분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심미적으로 적합한지 등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것이 내가

홍콩에 큰 애정을 쏟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디자이너라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자극이 필요하다.

홍콩이라는 도시는 이중의 매력이 있는 배움의 장소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져 친숙

하기도 하고, 때론 낯설고 새로운 일들이 충돌하듯 벌어진다. 미술 전시회나 건축물을 관람

하고, 여행을 다니거나 영화를 보면서 문화적인 시야를 넓히고 예술적인 감성을 키울 수 있

다. 이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삶의 활력소가 되는 동시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디자인

을 풀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

다시없을 성장의 기회

해외 취업은 국내 취업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공간에서 전혀 다른 문화

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 그리고 K-Move를 통해 해

외 취업에 성공하게 되면 지원 혜택이 주어지는데, 내가 받은 〈해외취업성공 장려금〉이란

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자칫 쉽게 포기할 수도 있고, 현지 적응이 어려운 해외

취업자에게 재정 지원은 큰 도움이 된다. 1, 2차로 나누어 지원을 함으로써 근속을 유도하

는 점도 돋보인다.

나의 단기 목표는 일단 홍콩에 머무르며 오래 일하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며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 기회가 나 자신을 크게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리라 믿

어 의심치 않는다. 또 이러한 경험을 살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

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이다. 스스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곧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

으로도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어느 곳에서든 각고의 노력으로

힘써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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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Japan 일본 | 도쿄 CMS사 직원

이병만

창업은 성공하면 본전, 실패하면 실업자

예전부터 그랬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유명인의 삶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들을 따

라 한다면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으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회사를 창업해 2년간 일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에게 남은

건 비루한 고졸 학력이었다. “스타트업은 성공하면 본전, 실패하면 실업자”라는 말이 나에

게 해당되는 순간이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몇 달간 잠을 설쳤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을 다시 다니거나 새로

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 무렵이었다. 나는 일본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일본에서 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본에 가서 다시 시작해 보자

는 결심을 했다. 막상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취업 준비에 나섰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

는 취업 초짜였다.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도, 면접을 해본 적도 없는 내가 한국도 아닌 일본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은 우주의 별만큼 많았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창업에 나섰다. 2년을 버텼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 무렵 일본 취업을

결심하고 국비를 지원받아 취업교육을 받았다. 일본어 능력시험을 준비하고 방통대 수업도 들었다.

월드잡플러스와 일본 취업 세미나에서 정보를 얻어 이력서를 쓰고 면접에 대비했다. 도쿄로 날아가

구직에 나섰다. 무려 네 차례에 이르는 면접 끝에 홈페이지 제작 툴을 개발하는 업체에 들어갔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도전한 끝에 이룬 성과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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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국비지원 교육으로 내일을 그리다

일본 취업을 목표로 삼았지만, 혹시라도 실패한다면 또다시 1년 이상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꼴이었다. 한 번 실패의 쓴맛을 보았기에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았다. 국내 취업도 어렵다고

난리인데 해외는 오죽할까 싶어 작은 일 하나를 결정할 때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국

비지원 취업교육은 그런 내게 어느 정도 부담을 덜어 준 안전장치였다. 6개월 동안의 규칙

적인 일과, IT업계 취업을 위한 교과 과정,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

다. 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일본어 능력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올해 어떻게든 일본 취업을 이루겠다고 다짐했기에 공부에 투자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국

비지원 수업은 6월 종료, 일본어 능력시험은 7월에 있었다. 그 기간에 함께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이 있어 늘 시간에 쫓겼다. 특히 1년에 두 번밖에 없는 일본어 능력시험 1급에 대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막 3급에 합격한 상태였고, 곧바로 1급에 도전하는 일

은 극히 드물었다. 스스로도 ‘정말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오전부터

오후 6시까지 국비지원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일본어 수업과 방통대 수업을 받고, 집에 와

서는 잠들기 전까지 일본어 단어를 외우는 고단한 일과의 연속이었다. 나는 창업을 위해 자

퇴를 했던 터라 대학 졸업장이 없었다. 일본의 신졸 채용에 지원하려면 2017년도 졸업이

꼭 필요했다. 결국 방통대는 한 학기만 다니고, 2학기부터는 학점은행제를 통해 간신히 졸

업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력서와 면접 준비는 월드잡플러스로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내며 국비지원 교육을 무사히 마쳤다.

센터에서 3개 조를 짜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우리 팀이 최우수상을 받아 자신감도 붙은

상태였다. 이후에는 하루 열세 시간씩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준비했고, 다행히 8월 말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제 취업만 남았다는 생각으로 의기양양했다. 출국 전에

남은 것은 이력서와 면접 준비였다. 하지만 신입 공채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내

게 이력서가 있을 리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던 차에 우연히 월드잡플러

스에서 주최하는 일본 취업 세미나를 알게 되었다. 한 번에 두 시간 동안 이틀에 걸쳐 진행

되는 강좌였고, 일본 취업시장에 대한 설명과 이력서 작성법, 면접 자세와 복장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신청을 했다. 부산에서 KTX를 타고 상경해서 강의를 들었다. 당

시 나는 일본 기업의 채용 정보를 마이나비를 통해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이나비 한국지사

부사장의 강의는 이후 면접을 받을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어 회화 실력이 부족하

다고 느끼던 참이었고, 예상 면접 질문을 통해 미리 답변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9월 초에 무작정 도쿄로 가서 15개 회사에 구직 서류를 넣었고, 서류 심사와

면접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한국에서는 분명 일본 IT업계의 취업이 쉽다고 들었는데,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회사에 따라서는 외국인을 뽑을 생각이 아예 없는지 채용 설명회

에 올 수 없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불합격 소식이 이어지자 괜히 일본에 왔다는 자괴감

으로 후회가 들었다. 출국 당시 하늘을 찌른 자신감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러다 운이 좋

게도 한 회사에서 최종 면접을 받게 되었다. 일본에 와서 2주 만에 보는 최종 면접이었고,

무난하게 붙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전형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 회사라서

만만하게 본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면접관은 전공을 살린 프로젝트나

개인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지만, 대학 중퇴에 학점은행제로 겨우 졸업한 내게

그런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면접관들도 실망했는지, 마지막에 흔히 주어지는 역질문 기

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자 실망감은커녕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독

하게 준비해서 면접관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빈손으로 돌아가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후에는 절대로 면접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수십 개의 예상 질문을

만들어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면접에서 중요한 건 역시 일본어였다. 회사는 나의 경

력과 지식을 높게 평가했지만, 그보다는 나의 열정과 지망 이유를 더 궁금해 했다. “왜 일본

에 오고 싶어 하죠?” “많은 회사들 중에서 우리 회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월드

잡플러스에서 익히 본 예상 질문이 나왔을 때는 속으로 큰 고마움을 느꼈다.

우연히 알게 된 회사에서 인연을 느끼다

탈락과 도전을 거듭하던 중 한 회사의 설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CMS라는 홈페이지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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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툴을 개발하는 회사로, 초등학생 때부터 홈페이지 제작이 취미였던 내게 잘 맞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회사는 이상할 정도로 외국인인 나에게 친절했다. 물론 다

른 회사의 담당자들도 친절하긴 했지만, 양복 차림의 직원들이 조용히 앉아서 일하는 보통

의 사무실과 달리, 뭔가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IT회사의 분위기가 돌아 참 특이하다는 인상

을 받았다. 사장이 미국인이라는 걸 아직 모를 때였다. 다른 회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이 회사에서 무려 네 번의 면접을 보았다. 면접에 참여하면서 설명회에서는 알 수 없

었던 회사의 업무와 미래 목표에 대해 마음껏 물을 수 있었고, 직원들의 밝은 표정과 자신

감에서 이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자라났다.

최종 면접은 토요일에 카페에서 사장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진행되었다. 마지막 문턱에서

떨어진 트라우마가 있어 새벽까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백 번이나 예상 질문에 대

한 답을 되뇌며 부디 무사히 면접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미국인 사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많아, 마지막 역질문 시간에는 그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했다. 반대로 사장은

일본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입사 후 겪게 될 향수병을 걱정했다. 과거 외국인 직원들

이 그런 이유로 퇴사했다며 채용을 망설이는 눈치였다. 승부의 타이밍이었다. 내 답변에 따

라 결과가 달라지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는 일본 취업을 결코 가볍게 결정하지 않

았고, 지금까지 내가 취업을 준비한 과정, 일본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설명했다.

한 시간의 면접이 끝이 났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겠는가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은 초조했다. 면접에서 저지른 사소한 실수가 떠올라 걱정으로

잠을 설쳤다. 통보는 메일이 아닌 전화로 왔다. “부디 내년 4월에 우리 회사에 입사해 주셨

으면 합니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통화가 끝날 때까지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반

복했다. 그렇게 나는 일본 취업에 성공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어느 날 뉴스에서 본 기사에서 출발했다. ‘일본이 한국의 IT 인력을 적

극적으로 뽑고 있다’는 기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몸소 부딪쳐 보고

느낀 점은, 쉽게 들어가는 회사일수록 쉽게 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일본의 조각가 히라쿠

시 덴추는 생전에 이런 말을 즐겨 했다고 한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일본 취업을 준비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뇐 말이다. 소망을 현실로 이루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도전하

지 않는다면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당신들의 도전이 성공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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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919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InDOnESIa 인도네시아 | RGA International

Indonesia 인턴

김우중

첫 번째 K-Move, 나는 국가대표다

모교인 경희대학교 입학식 때 총장님은 ‘인류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만 보고 달

려오기 바빴던 스무 살 청년에게 ‘인류’를 논하고 ‘공존’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접했다. 친구들과 회기동 자취생들을 위해 〈냉장고 쉐어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

고, 지역 아동센터 봉사활동, 농활 같은 대외 활동으로 작게나마 사회 공헌에 이바지하는

대학생이 되어 갔다. 또 2012년 1월에는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의 단원으로 인도네시아 스마

랑의 작은 마을에 파견되어 한 달간 봉사활동을 했다. 당시 유니폼의 왼쪽 가슴에 달린 태

극기를 보며 ‘나 또한 국가대표다’라는 자부심을 새겼고, 그곳 사람들의 따스한 온정이 마음

에 남아 훗날 다시 인도네시아를 찾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K-Move, KITA 글로벌 무역 인턴십

2016년에 대학 4학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해외 근무가 가능한 기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저자인 김우중 회장과 동명이인이다. 부끄럽지만 고2 때 용돈을 모아

처음 산 책이기도 하다. 김우중 회장의 메시지에 감화되어 대학에서 영어 통 · 번역학을 전공한 바

있다. 나는 세계무대에 우뚝 선 대한건아가 되고 싶었고, 한국무역협회의 〈글로벌 무역 인턴십〉에

선발되어 그 기회를 잡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글로벌 물류 운송 업체에서 일하며 조만간

‘사원’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K-Move,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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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939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이나 직군을 알아보던 중 한국무역협회(KITA)의 〈글로벌 무역 인턴십〉에 선발되는 큰 행

운을 손에 쥐었다. K-Move의 취지와 더불어 김우중이라는 청년이 그리던 꿈, 그리고 인도

네시아의 봉사 경험 등이 이 행운을 잇는 연결점이 되었다. 인턴십 국내 연수 기간 동안 많

은 분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무역협회 조상현 실장님부터 무역학과 교수님, 대기업 해외

영업 담당자, 해상 물류기업 임원, 관세사 등 대한민국 무역산업의 주역들에게 실무뿐만 아

니라 관련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며 나 또한 ‘이분들의 뒤를 잇

는, 대한민국 무역산업의 첨병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열정 넘치는 K-청년의 인도네시아 적응기

내가 발령받은 회사는 RGA International Indonesia라는 글로벌 운송(Forwarding) 업체였

다. ISO 탱크 컨테이너를 주력으로 인도네시아 5개 지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

지부를 둔 다국적기업이었다. 막상 큰 포부를 안고 도착한 자카르타였지만, 처음 한 달은

너무도 고된 시간을 보냈다. 인도네시아어로 작성된 온갖 통관, 수출입 서류들이 내게는 너

무나 낯설었다. 인턴을 시작한 후 첫 2주까지는 오고 가는 서류를 점검하기에도 벅찼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간 숙소에는 원인 모를 악취와 바퀴벌레가 나를 맞이했다. 교환학생을

했고, 세계 일주를 하며 가장 외롭다는 아프리카도 씩씩하게 잘 다녀온 나였지만 첫 달의

고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언어 공부라

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어보다 이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첫 단추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부 업무에서도 수출입 통관에 필요한 모든 서류들을 체화하

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열정 하나로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 또한 K-Move로 세계

에 나온 청년의 임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한진해운 사태,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입사 첫날 대표님과의 미팅 때 운송 업무의 가장 기본은 ‘서비스 마인드’라는 점을 배웠다.

운송 업무를 단편적으로 서비스업에 넣기는 어렵지만, 그 기본은 화주에게 필요한 서비스

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입사 후 보름이 지나자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렀다. 한진해

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우리 측 화주의 컨테이너가 자카르타까지 오지 못하고 싱가포

르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진해운이 컨테이너 보증금(Deposit)을 약 열 배로 올

리면서 회사에 큰 부담이 되었다. 최악의 경우 한진해운의 도산으로 보증금 회수가 어려울

수도 있어, 업계에서는 한진 컨테이너의 반납을 미루자는 말까지 돌았다.

따로 주어진 업무는 아니었지만, 한진해운의 보도 소식을 정리하여 우리 직원뿐만 아니라

화주에게 지속적으로 보고를 올렸다. 또한 KOTRA, 무역보험공사 등에서 발간된 대처 요

령 등을 실시간 공유했다. 과감히 COD(Change of Destination: 양륙지 변경)를 제안했

고, 컨테이너 반납을 미루며 발생한 체선료에 대해서는 한진에 협상을 제의했다. 특히 체선

료로 450만 루피아(약 40만 원)가 발생했으나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한진에 양해를 구하

고 분담하는 성과를 거뒀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할 즈음 화주로부터 좋은 소

식이 전해졌다. 지속적인 소식 업데이트로 우리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고, 앞으로 더

많은 물량을 할애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입사 첫날 대표님에게 교육받은 ‘서비스’

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나 또한 뿌듯했다.

정규직 사원 제의를 받다

며칠 뒤 대표님이 방으로 나를 따로 부르셨다. 그동안의 적응기와 인턴십 종료 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인턴 계약이 끝나는 3월부터 김우중 ‘사원’

으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사수인 대리님의 추천이 있었고, 대표님 또한 나의 가능성을

보고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크게 감격했다.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에 스스로 다짐했던 말

이 있다. “기억에 남는 인턴이 되자.” 그 목표를 이뤘다는 점에서 스스로 대견했다.

이제 사회에 첫 걸음마를 뗀 내가 이곳에서 석 달 동안 해야 할 과제와 꿈을 찾았다. 인니

의 통관 시스템과 자유무역협정(FTA)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이어갈 것이며,

그렇게 10년, 20년 후에는 한국-인니 무역산업에 공헌을 할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다. 또

한 더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인니에 진출할 수 있도록 무역협회, KOTRA와 지속적으로 교

류하며 K-Move, 내가 일으키는 파란을 더욱 더 드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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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959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InDIa 인도 | 현대모비스 인도법인 인턴

김민섭

인도로 Go! Go!

“엄마, 아들 인도 가게 생겼어요!” 현대모비스 인도법인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은 2015년 12

월 초였다. 석 달 전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렛츠 런 더 월드〉 2기 모집 공고가 나를 인도

로 이끌었다. 이는 한국마사회 재단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해외

일자리를 알려 주고 취업 비용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예전

부터 해외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높이고, 내 인생에 터

닝 포인트가 되는 기회를 꼭 붙잡고 싶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면접을 준비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용인의 한 체육관에 합격자들이 모여 4박 5일간 교육을 받았다. 각국의 취업 정보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GHR 팀장님이 인도를 추천했다. ‘인도? 인도라니!’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베트남 같은 한국과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치안이 괜찮은 곳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을 때였

다. 하나 소개를 받은 직무와 기업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번역과 경영지원이 주요 업무

한국마사회의 재단에서 운영하는 <해외 청년희망 일자리 사업>에 지원해 합격했다. 내가 고른 나라는

인도였다. “국가보다는 직무를 보고 가는 게 낫다”는 말에 혹해서 현대모비스 인도법인에 지원했다.

지금은 멀고 먼 인도 땅에서 번역, 자료 조사 일 등을 하면서 해외영업에 대한 역량을 쌓아 가고 있다.

뚜렷한 목적 없는 도피성 해외 취업은 반대한다. 차근차근 알아보고 준비해서 자신감 있게 ‘렛츠 고’

하기 바란다.

Let’s Go For It, 일단 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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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979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였는데, 교육학을 전공한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여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또 “국

가보다는 직무를 보고 가는 게 낫다”는 말에 혹해서 인도 현대모비스에 지원하게 되었다.

서류를 제출한 후부터 면접, 합격까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영어 면접을 의외로 잘

봤고, AIESEC 동아리와 필리핀 교환학생 경험을 강조한 것이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인도에 가는구나!”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이런 일

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인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여기에는 내 직무에 대한 우려도 들어 있었다. ‘내가 번

역을 잘할 수 있을까?’ 예전에 번역 의뢰를 받은 친구를 도와 사이트 영문화 작업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번역이란 것이 집중력이 필요한, 내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일이라는 걸

그때 절감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일을 할 수 있고, 영어든 생활이든 내 한계를 깰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확신이 있었다. 현대모비스란 회사 또한 경력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

로 인도행을 결심했다. 아마도 내 평생 가장 큰 결심이었으리라.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비자 문제를 처리하고,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등 이런저

런 일로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2016년 1월 2일, 인도행 비행기

에 올랐다. 현지에서 같이 일하게 된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홍콩을 경유해서 하이데라바드

로 날아갔다. 우리가 인도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었다. 수속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우여곡

절 끝에 공항에 마중을 나온 차장님을 만나 숙소로 향했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

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군대에 들어간 듯 기분이 묘했다.

정식 출근을 하루 앞두고 숙소 주변과 회사 인근을 둘러봤다. 회사에서 차량과 운전기사를

지원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평일 출퇴근 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현지의 교통

사정과 치안 때문이라는데,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더 놀라운 것

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퀄컴, 노바티스, 딜로이트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눈

앞에 있었고, 건물도 번듯하고 구획이 잘되어 있어 마치 판교 테크노밸리 한가운데에 서 있

는 듯했다. 그랬다. 인도에는 뛰어난 공학 인재들이 많고, 노동력이 싼 데다, 영어 사용 국가

라 글로벌 기업들이 앞 다투어 들어와 있었다. 하나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릴 때 학

교에서 배운 「성북동 비둘기」란 시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는 풍경이 나왔다. 외곽의 구시가

지는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인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행착오는 인턴의 특권

첫 출근을 해서 이틀간은 회사 등록 절차나 개인 집 문제 해결, 부서 배치 등으로 보냈다.

그러고 나서 곧장 실전에 투입되었다. 사흘 만에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인수인계

도 없었고, 전문용어나 줄임말, 번역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그에 반해 번역 양은 어마어마했다. 100쪽짜리 PPT부터

500쪽에 달하는 설명서까지 다양했다. 앞서 근무한 인턴이 1년을 다 채우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쌓인 문서들이었다. 지금도 번역엔 초짜지만, 당시에는 명함도 없던 터라 온 시간을

업무에 바쳐도 감당이 안 됐다. 입사 초기에는 일찍 출근해서 조금 늦게 퇴근했다. 번역에

필요한 각종 단어들을 수집하여 정리했고, 문장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문법 공부도 조

금 했다. 한 달 정도 고생을 하고 나자 조금 숨통이 틔었다.

줄임말이나 전문용어는 논문 자료를 많이 검색했고,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지식인에 물

었다. 이마저도 안 되면 문맥에 맞게 접속사를 넣어 설명하는 식으로 문구를 추가했다.

몇몇 한자는 대체할 만한 영어가 없어 말을 만들기도 했다. 가령 ‘정물일치(靜物一致)’를

‘Matching stock with document’로 번역하는 식이었다. 아마 해외에 있는 한국 회사에 취

업을 하면 누구나 이런 일을 자주 겪을 것이다. 한국에 비해 회사 규모가 작고 한국인 직원

도 많지 않아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바로 위 상사가 대리급이 아

닌 차장님이라 뭘 묻기가 어려웠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이겨 내야 했고,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내 힘으로 하다 보니 남이 가르쳐 준 것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있었다.

현지 법인장인 이사님이 인도 자료 조사를 요청한 적이 있다. 인도에 관한 전반적인 자료를

비롯하여, 인도의 자동차 시장과 부품 시장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맡은 큰 업무라

뭔가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 열심히 준비했다. 업계 관계자에게

질의도 하고, 논문을 잘 쓰는 친한 누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1차 PPT를

완성했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부장님의 지적에 따라 다시 고치고 매만지는 일이 반

복되었다. 허탈했다. ‘또 고칠 건데, 열심히 자료 조사를 해서 뭐 하게?’라는 회의감이 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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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도 했다. 보고서에서 중요한 것은 자료의 양이 아니라 글의 요지와 흐름에 맞는 전개였다.

나는 그 점을 간과했다. 부족한 자료와 정보의 한계를 가리려다 보니 논지가 흐트러지면서

내용이 장황해졌다. 그런 사실을 망각한 채 내가 열심히 해서 정보를 많이 찾았다는 사실

에만 집착한 것이다. 알맹이 없이 내용만 많아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이런 사실을 유념하고

보고서를 만들자 전보다 훨씬 수정 과정이 짧아졌다.

해외취업성공 장려금 받기

한 푼이라도 아쉬운 해외 취업자에게 〈해외취업성공 장려금〉은 큰 힘이 된다. 2016년 기준

으로 개발도상국에 취업한 사람의 경우, 입사 후 1개월 이후 200만 원, 6개월 이후 200만

원을 합쳐 총 400만 원의 장려금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제출 서

류가 필요한데, 그중 핵심은 재직증명서와 근로계약서이다. 아포스티유(Apostille) 공증 절

차를 거친 재직증명서와 근로계약서가 필요한데, 근로계약서의 경우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

관에서 공증을 해주지만, 재직증명서의 경우 2016년 부로 아포스티유 협약 국가에서는 한

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공증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포스티유 홈페이지에 공증 절차가 있지만 명확하지 않고 설명이 부족했다. 현지 직원들

도 그 내용을 몰라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물어야 했다. 과장 하나 없이 백 차례 넘게 전

화를 돌린 끝에 정확한 절차를 알아낼 수 있었다. 먼저 회사에서 재직증명서와 근로계약서

를 발급받은 후 법무사무소의 공증을 받는다. 그 후 상공회의소에서 공증을 받고, 인도에

있는 외교부를 찾아 아포스티유 공증을 마무리하면 된다. 법무사무소의 공증은 어렵지 않

게 받았지만 상공회의소가 문제였다. 이곳 인도 현대모비스는 텔랑가나 주 상공회의소 회

원이 아니라 공증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답답했다. 답을 구하기 위해 어렵사리 인도

시청사의 담당자를 만났지만 돌아온 답은 같았다. 상업용 문서와 관련한 아포스티유 공증

은 상공회의소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이 과정을 말로 해서 쉽지, 실제로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전화를 안 받기도 하고, 전화를

받으면 자기 부서 일이 아니라며 떠넘기기 일쑤였다. 인턴 신분으로 업무 시간에 외출할 형

편도 아니어서 아포스티유 공증을 알아보는 데만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사정을 산

업인력공단에 전하니, 아포스티유 공증 대신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가서 번역 공증을 하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번역 공증은 제출자 본인이 꼭 방문을 해야 했다. 그때가 7월경으로,

한 차례 여행을 다녀온 뭄바이를 그 일로 다시 찾았다. 영사관은 평일에만 문을 열어서 피

같은 월차를 써야 했다. 다행히 무사히 번역 공증을 받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서류를 보

내 1, 2차 장려금을 한꺼번에 받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꼭 맞았다.

명확한 목적과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인턴 기간을 마치는 대로 해외영업직에 지원할 생각이다. B2B(기업 간 거래) 업무를

주로 하는 해외영업에는 영어 소통 능력, 부서 간 중간자 역할, 국가나 회사의 시장 조사 능

력 등이 필요하다. 인턴으로 있으면서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화력을 길렀고, 코

디네이터로서 본사와 인도연구소를 잇는 중간 고리 역할을 했고, 시장 조사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이런 능력들을 강조할 생각이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해외영업에 필요한 역량을

키웠다는 점에 만족한다. 앞으로 취업 후에도 기회가 된다면 인도 관련 무역 일을 해보고

싶다.

뚜렷한 목적 없이 ‘그냥 영어 좀 배우고, 외국 경험을 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와서는 해외

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

며, 무엇을 얻어 갈 것인지, 명확하게 정해 놓고 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국내 취업

이 어렵다는 이유로, 즉 도피성 해외 취업이나 막연한 기대로 나가면 오래 버틸 수 없다. 생

각보다 일이 힘들어서, 월급이 너무 적어서, 직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사람들에게 실망해

서…. 이런 핑계를 대며 중도에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 중간에 그만두면 그 피해는 막심하

다. 기회비용이 너무 크고 경력에 넣기도 애매하다. 또 업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억지로 계

약 기간을 채우는 것도 경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해당 국가에 살고 있거

나 최근에 다녀온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얻고, 본인도 그 나라 정보나 직무 정보를

최대한 알아보고 가야 한다.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은 좋지만, 그 이면에 있는 실패의 위험

성을 잘 생각해서 준비를 했으면 한다. 그렇다고 너무 완벽을 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100퍼

센트가 아니더라고 자신이 있고 준비가 됐다면 용기를 내어 떠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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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HUnGaRY 헝가리 | 해외문화PD

채송이

가장 중요한 건 ‘마음’

음식점에 가면 맛있는 것보다 안 먹어 본 메뉴를 고르는 아이였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

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그 갈망은

이어졌고, 더 넓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나는 복수 전공으

로 영화학을 선택해 영상 제작을 배웠다. 그런 나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문화체육관

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원의 〈해외문화PD〉 사업이 그것이었다. 해외문화PD는 해외 현지

의 한류를 취재하고, 한류 확산을 위한 문화 · 기획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했다. 과제 영상

을 만들고, 영어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해외 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

았다. 영어를 잘하는 쟁쟁한 지원자들을 많이 봐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합격 통

보를 받고 무척 놀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면접장에서 강조했던 나만의 친화력과 간절함이

합격의 길을 열어 준 게 아닌가 싶다. ‘친화력’은 열린 마음, ‘간절함’은 그 일을 꼭 하고 싶다

는 마음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다.

대학에서 복수 전공으로 영화학을 택해 영상 제작을 배웠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문화정보원의 〈해외문화PD〉 사업에 선정되어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나게 된 것이다.

한국문화원에 머무르며 헝가리의 한류를 취재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또 헝가리 내 시리아 난민

문제를 취재한 영상이 KBS 9시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 알을 깨고 나와 더

큰 세계를 마주해야 한다. 나는 이제 내가 담아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궁금하다.

내가 담아낼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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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0310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나에게는 아직 낯선 헝가리, 그들에겐 이미 익숙한 한국

합격보다 더 놀라웠던 건 내가 헝가리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비자 등의 이유로 나는

선택지에 없던 헝가리로 파견되었다. 헝가리는 세계 3대 야경으로 꼽힌다는 부다페스트의

나라로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한국과 헝가리는 2013년부터 워킹홀

리데이 협정을 맺었다. 헝가리가 한국처럼 성과 이름 순으로 표기한다는 것도, 고추를 많이

먹는다는 것도 해외문화PD가 되어 헝가리를 찾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기준으로 왕궁이 있는 부다 지역과 쇼핑거리가 몰려 있는 페스

트 지역으로 나뉜다. 나는 부다 지역에 있는 한국문화원에 근무했고, 이곳은 한국문화를 찾

는 헝가리 사람들로 연일 북적였다. 매일 한식, 서예, 동양화 등의 문화강좌가 열렸고, 그중

에서도 한국어 강좌는 유독 인기가 많아 등록이 어려울 정도였다. 헝가리에서는 2008년도

에 드라마 〈대장금〉이 유럽 최초로 방영되어 50퍼센트에 이르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뒤이어 〈선덕여왕〉, 〈동이〉, 〈파스타〉 등이 방영되면서 두터운 한류 팬 층이 생겨났다. 자발

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즐겼고, 헝가리 사람들로 구성된 전통춤 무

용단 ‘무궁화’의 경우에는 공연을 하러 한국에 갈 정도로 그 실력이 뛰어났다. 한류 수요에

비해 이를 가르치는 강사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해외문화PD의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는 그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었

다. 촬영을 하며 여러 현지인들을 만났고, 인터뷰를 하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가야금

연주단 ‘민들레’의 단장 레나타는 헝가리 엘테대학의 한국어학과 학생으로, 아이돌 그룹 엑

소의 팬클럽 회장이었다. 정용화와 박신혜가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를 보

고 가야금을 배웠는데, 가야금 산조뿐 아니라 엑소의 노래를 가야금으로 연주해 보고 싶다

는 바람을 전했다. 나는 이들과 이야기하며 문화 콘텐츠는 국경이나 피부색, 언어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다채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데미안』

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구절이 딱 어울렸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를 외국의

다른 누군가가 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알을 깨고 나와 ‘세계의 확장’

을 경험한 것이다.

무지의 장막, 두려움 걷어내기

늘 쉽고 편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헝가리에서 때마침 시리아 난민 문제가 불거졌다. 급

한 연락을 받고 2박 3일간 뉴스 보도용 취재 영상을 촬영하게 됐다. 카메라를 들고 부다페

스트의 켈레티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역을 개방해 달라는 난민들의 시위가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이십대 동양인 여성’은 나 혼자였다. 아우성치는 군중 사이를 지날 때마다 나를

신기한 듯 훑어보는 시선, 조롱이 섞인 듯한 뜻 모를 외침이 두렵게 다가왔다.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보다는 ‘해내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겨야 했

다. 경찰과 난민들의 대치가 극으로 치닫자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두려움을

떨치고 재빨리 벽을 기어올랐다. 이 상황을 놓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경찰과 대치한 전경

컷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난간을 붙잡고 촬영하는 내게 한 헝가리 기자가

자신이 가져온 사다리를 쓰겠냐고 물었다. 나는 “꾀쐬뇜(고맙습니다)”을 연거푸 외치며 냉

큼 사다리에 올라 촬영을 이어갔다. 덕분에 역 광장의 전경을 제대로 담을 수 있었다.

식료품, 옷 등을 가져와 난민들에게 나누어 주던 시민들이 나를 향해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

넸다. 그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자 두려움은 씻은 듯 사라졌다. 낯

선 동양인을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낮추고, 의심의 눈

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공격적인 태도의 인터뷰이나 카메라를 피하던

엄마와 아이들이 차츰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이틀 후에 내가 찍은 영상이 KBS

9시 뉴스에 나왔다. 현장에서 보낸 72시간이 3분 남짓한 뉴스 영상에 담겨 있는 걸 보니 기

분이 묘했다. 현장의 생생함이 살아 있는 좋은 현장 르포라는 평을 들었을 때는 보람도 컸다.

낯선 외국 땅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았다. 나는 이제 ‘이방인’도, ‘키 작은 동양

인 여성’도 아니다. 내 쪽에서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한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감을 갖고 용기 있게 도전하려 한다. 나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도록 말

이다. 헝가리에서 보낸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는 꼭 난민 현장 촬영에만 국

한되지 않는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 낯선 타국일지라도 나만의 두려움을 깨는 것이 중

요하다. 무지의 장막, 두려움을 걷어낸 헝가리에서 나는 꿈을 넓힐 수 있었다. 훗날, 아름다

운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내가 만든 콘텐츠로 더욱 빛낼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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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0510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 뉴욕 건설회사 인턴

박성준

좀 더 넓게, 깊이 파기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스피노자가 한 말이다. 우연히 조우한 이 문장

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타이밍이 적절했다. 이 네덜란드 철학자의 말은 내가 새로운 삶의

윤곽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실체론이라는 철학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나는 토목공

학도로서 깊이 공감했다. 지난 4년간 내가 배운 공학이론도 이를 뒷받침했다. 건물을 세우

기 전 하중 지지를 위해 기초공사가 선행되는데, 기초공사는 버팀목을 깊이 박을수록 안정

성이 높아진다. 그러자면 넓은 범위에서 터파기를 시작해 지경을 좁혀 깊숙하게 지반을 파

야 한다.

높은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선 뿌리 역할을 하는 기초공사가 필요한데, 그 ‘기초공사’의 핵

심을 스피노자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4학년 말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이치

도 이와 같지 않을까?’ 주변의 친구들처럼 바로 취업을 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

고 느꼈다. 즉, 높은 건물(꿈)을 세우기에는 하중을 견딜 만큼 나 스스로 튼튼한 기초를 닦

나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이다. ‘글로벌 건설인’이 목표였지만, 스스로 실력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취업이 늦어지더라도 ‘기초공사’를 제대로 해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 취업연수 프로그램

덕분에 뉴욕의 한 건설회사에 인턴으로 근무하는 기회를 잡았다. 살아남기 위해 독하게 영어를

익혔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분야와 목표를 분명히 정해 현장에서 기초를 닦았다. 인턴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미국 공인 프로젝트 매니저 자격증(PMI)을 얼마 전에 획득했다. 이젠 ‘액티브’하게 건물을

올릴 일만 남았다.

Active Joon의 기초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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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0710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다. ‘글로벌 건설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에 맞는 자질이 부족했다. 영

어 회화에 서툴렀고, 내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도 모자랐다. 취업이 늦어지더라도 기초를

제대로 닦기 위해 ‘좀 더 넓게, 깊이 파기’로 마음먹었다.

공사의 첫 삽을 뜨다

평소 미국의 건설 수주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에 관심이 많았다. 이전에 건설 관련 공

모전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EPC공사의 수주 · 계약 방식과 PM의 사례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사들도 미국의 PM 시스템을 도입하고 벤치마킹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래서 건설 선진국의 방식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마침 정부에서 운영 중

인 한미 취업연수(WEST: Work English Study Travel) 프로그램에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

었다. 정부의 지원금과 비자 후원을 받아, 미국에서 어학 공부와 인턴십을 장려하는 프로그

램이었다. 미국 건설회사에서 직무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구체적인 직무와 목표를 정하고 자기소개서를 쓴 뒤 면접을 준비했다. 운 좋게도 서류 심

사와 1, 2차 면접을 통과했다. WEST 선발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국립국제교육원의 서

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직무, 영어에 대한 기본 소양을 평가한 뒤, 이를 통과한 사람에 한해

스폰서(미국에서 인턴십 매칭에 도움을 주는 업체)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내가 제출한 어학

점수와 학점은 고만고만했다. 다만 배우고 싶은 분야와 이루고 싶은 목표가 분명해서 1차

면접(국립국제교육원 면접)과 2차 면접(스폰서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그렇게

WEST와 연이 닿아 기초공사의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영어

WEST 규정상, 인턴십 매칭 이전에 어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그래서

시애틀에 있는 한 어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일자리 제안이 오기를 기다렸다. 업체와의 인터

뷰를 최종 통과해야 미국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기에 회화 실력을 더 끌어올려야 했다. 토

익학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어학원 교육은 처음이었다. 판서가 아닌 놀이와 역할극으로 채

워진 수업은 충격이 컸다. 그 충격은 어학원을 벗어나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 더 두드러졌

다. 어학원 안에서는 그나마 쉬운 단어, 정확한 발음, 느린 속도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수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학원 밖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슬랭과 연음,

특유의 악센트, 빠른 말투 때문에 소통이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첫 주를 보내며 물갈이란 걸 했다. 약을 하나 사려고 증상을 설명하는 일마저 녹

록치 않았다. 손짓을 섞어 가며 겨우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의사의 처방 어쩌고 하다, 그

냥 참고 말자는 생각으로 돌아서서 약국을 나왔다. 창피함과 함께 절망감이 몰려왔다. 생존

을 위한 영어 공부가 절실했다. 이때부터 학원 밖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 가장 좋은 파트너는 홈스테이 아주머니였다. 어떻게든 대화를 많이 하려고

했다. 모르는 단어나 숙어가 나오면 양해를 구한 뒤 사전을 찾아보고 정리했다. 특히 저녁

시간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 현지 발음에 적응하려고 거리의 노숙자, 편의점 점원, 은행원

에게 의도적으로 말을 걸어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매일 표현법과 단어를 엑셀로 정리하

며 연습했다. 석 달이 지날 무렵 나는 사전을 내려놓고 아주머니와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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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0910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Active Joon

3개월의 어학연수가 끝나 갈 즈음 뉴욕에 있는 한 건설회사(King Rose Construction)에서

일자리 제의를 받았다.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동안 정

리해 둔 엑셀 파일을 참고해서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뽑았다. 미국 회사의 인터뷰는 보

통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묻는다는 말에 주제별 예상 질문과 답변을 서른 개 정도 준비했

다.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대답이 나올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연습을

했다. 또 각 주제에 맞는 키워드를 정해 그 단어만큼은 꼭 언급할 생각이었다.

사흘 정도 원고를 준비한 뒤 일주일가량 연습을 했다. 홈스테이 아주머니와의 사전 인터뷰

가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면접관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인터뷰 중간 중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정중하게 다시 물은 뒤 간략하게 답변했고, 역으로 질

문을 하면서 대화를 풀어 갔다. 특히 회사에서 나의 역할, 어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지, 인

턴십 기간에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물었다. 인터뷰는 예정된 30분을 훌쩍 넘

겨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 식은땀이 흐르며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

다. 그렇게 합격 통보를 받았고, Estimator로서 뉴욕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마침내 배우고 싶었던 프로젝트 수주 · 관리 일을 하게 되었다. 훗날 면접관이었던 사수가

말하길 “직무와 회사에 대해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한, 액티브(Active)한 면접자는 네가 처음

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좋은 인상을 받았고, CEO에게 긍정적으로 보고한 후 채용을 결정

했다고 한다. 나는 인턴 기간 내내 그런 액티브한 첫 인상을 이어가고자 했다. 사수가 알려

주는 모든 내용을 받아 적고, 나만의 업무 노트를 정리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경험한 내용

으로 나만의 근무일지를 채워 갔다. 게다가 하나를 배우면 스스로 다른 프로젝트에 이를 적

용해 보고 검토를 받았다. 일이 손에 익을 무렵 사수가 실수로 입찰 계약서에 빠뜨린 프로

세스와 금액을 발견해 제안서의 완성도를 높여 수주에 기여할 수 있었다.

6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콜롬비아대학교 실내 건물 개선 공사, UN 사무실 보수 공사 등 총

천만 달러 이상의 공사 프로젝트 수주에 일조했다. 또 미 국무부에서 인턴십 학생(J1비자)

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리더십 향상 컨퍼런스(I-LEAD)에 한국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컨

퍼런스는 워싱턴 DC에서 5박 6일간 진행되었다. 30개국 60명의 대표단 학생들과 문화 교

류를 하며 인턴십에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했다. 내 위치에서 리더십으

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점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컨퍼런스 후

에는 다시 Active Joon으로 활약하며 프로젝트가 완수되도록 도왔다. 그렇게 소중한 인턴

기간을 마친 뒤 CEO의 추천서를 들고 귀국길에 올랐다.

꿈을 위한 기초공사

며칠 후면 내가 미국으로 떠난 지 딱 1년이 된다. 막연하게 ‘글로벌 건설인’을 꿈꾸던 내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발전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겉보기에는 아직 층수(높이)에

대한 변화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지난 1년간 높은

건물의 하중을 견뎌 낼, 튼튼한 기초공사를 해왔다. 생존 영어를 위해 노력한 시간들, 업무

에 대한 적극성을 인정받은 지난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밤새 토론하며 소통했던 시간

들은 내가 이룬 넓고 깊은 터파기 영역의 증표였다. 이는 훗날 ‘글로벌 건설인’으로서 맞닥

뜨리게 될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다양한 국적의 고객을 상대하고, 현지 엔지니어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 영어로 소통하는 상

황에 대한 연습, 직무에 대한 선행학습, 그리고 리더십 컨퍼런스를 통해 여러 문화권의 친구

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또한 인턴십 경험과 함께 정리한 업무 노트를 기반으로 미국 공인

프로젝트 매니저 자격증(PMI)을 얼마 전에 획득했다. 이런 넓은 범위의 터파기 공사는 깊게

파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WEST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1년간 기초

공사를 튼튼히 했고, 이는 내 꿈을 이루는 든든한 지지대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멋지게 완성

될 ‘박성준’이라는 건축물의 청사진을 그리며 오늘의 공사일지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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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 아시아나항공 JFK공항 지점 인턴

김동겸

Step 1. 비행 전 브리핑

2012년 1월 대한항공에서 받은 메일 한 통! ‘고객님께서 말씀 하시는 남성 분은 뉴욕공항에

근무하는 대한항공 직원입니다. 지상직 직원이며 정확한 직함은 운송담당입니다. 이민국에

서 통역 업무도 맡고, 카운터에서 탑승 수속 업무도 합니다.’ 스무 살에 처음으로 혼자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뉴욕 JFK공항에 도착한 순간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 앞에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였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저 순한 양처럼 공항 한가운데를 서성이고 있던 내게 한

직원이 다가왔다. 입국 심사부터 짐을 찾는 일까지, 친절한 직원의 도움으로 나는 무사히 뉴

욕에 발을 디딜 수 있었고, 나의 첫 해외여행 도전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새내기 대학

생 시절, 나는 공항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그 직원처럼 누군가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15년 4월, 나는 꿈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뉴욕 JFK공항 지점에 인턴으로 합격한 것이다. 꿈이 생긴 곳에서 꿈

을 펼친 아름다운 이야기,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한 진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려 한다.

몇 년 만에 미국 뉴욕의 JFK공항을 다시 찾았다.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난 순진한 학생이

아니라, 공항 지점에서 근무하는 인턴 신분이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일하는 동안 스무 살 청년의

막연한 꿈은 더욱 선명한 상을 얻었다. 1년간의 인턴 경험은 내 그릇을 키웠고, 꿈 너머의 꿈을 향한

멋진 도전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나는 난기류를 이겨 내고 이 멋진 비행을 꼭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꿈 너머의 꿈을 향한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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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Step 2. 나에게 맞는 활주로 찾기

해외 취업에 성공한 한 항공 승무원이 있었다. 그 승무원은 블로그를 통해 비행 에피소드

뿐 아니라, 해외 취업 준비 방법이나 장단점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었다. 나는 항공업에 대

한 관심으로 블로그에 들어갔다 관심이 생겨 즐겨찾기를 해두고 자주 들락거렸다. 해외

취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블로그에 댓글을 달고 소통했다. 그 승무원은 자신이

K-Move 글로벌 네트워크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며 월드잡플러스라는 사이트를 알려 주

었다.

2015년 1월, 때마침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최하는 〈제5차 글로벌 네트워크 멘토링 설명

회〉 공고를 보게 되었다. 해외 취업에 성공한 여러 멘토들의 강연에 관한 것이었다. 앞서 승

무원과의 소통에서 멘토의 필요성을 느끼던 참이라 해외 취업 노하우를 얻기 위해 고민 없

이 참가했다. 설명회에서 멘토들은 해외 취업 도전 과정과 해외 적응 이야기, 진로와 방향

성 등을 놓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많은 조언 중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

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학점, 토익 등 남들이 가는 길을 따르는 데 그치지 말고, 나 스

스로 선택한 가치 있는 도전으로 어떻게 살지를 정하라는 조언이었다. 그것은 세계무대에

서 내 능력을 뽐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설명회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감이 붙었고, 대학생 자격으로 해외 인턴을 준비

하게 되었다. 조언대로 월드잡플러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채용 공고나 합격 후기 등 다양

한 정보를 수집했다. 원하는 기업에서 채용 공고가 뜨면 영어 인터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동영상 면접 등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웠다. 학교 시험 기간과 겹치는 데다 처음 해보는 도

전이라 어려움이 정말 많았지만, 3년 전에 받은 열정 가득한 메일 한 통을 떠올리며 그 어

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마침내 아시아나항공의 뉴욕 JFK공

항 지점에서 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Step 3. 마침내 첫 비행

2015년 6월 1일, 대망의 첫 출근 날! 인턴이라는 설렘을 안고 아시아나항공이 있는 JFK공

항 4번 터미널에 도착했다. 하지만 설렘은 잠깐이었다. 항공사 사무실은 보안 검색대를 통

과해야 했는데, 100밀리리터 이상의 액체는 보안 검색을 통과할 수 없어 가지고 있던 향수

를 버려야 했다. 첫 인턴을 기념해 구입한 향수였지만 아깝다기보다는 내가 정말 중요한 곳

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사무실에 들어섰

다. 첫 느낌은 ‘조용하다’였다. 대다수 직원들은 카운터와 게이트에서 업무를 보는 중이어서

빈자리가 많았다. 인사 담당인 과장님이 준 서류를 받아 서명 난을 채워 갔다. 평소 체크카

드로 물건을 살 때 하는 서명과는 완전히 달랐다. 인생에서 가장 신중하게 집중해서 쓴 내

이름 석 자였다. 서류 작성이 끝난 후 과장님을 따라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체크인 카운

터는 탑승권을 발행하는 곳이다. 첫 출근이라 항공사가 어떤 업무를 하며, 어떻게 돌아가는

지 지켜보면서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했다.

체크인 카운터의 풍경은 나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탑승권을

받으려고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뉴욕 노선은 A380이라는 대형 기종이

투입되었는데, 총 수용 인원이 495명에 달했다. ‘하늘 위의 호텔’이라는 별명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체크인 카운터 직원들은 미소 띤 얼굴로 손님 한 명 한 명을 응대하

고 있었다. 게이트 쪽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보안 검색대에 지갑을 두고 왔다는 손

님, 이미 부친 수하물에서 꺼내야 할 서류가 있다는 손님 등의 요구를 들어 주느라 게이트

직원들도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1:25 pm OZ221 Push Back!” 오후 1시 25분에 뉴욕발 인천행 아시아나항공 221편의 항

공기가 출발했다는 신호가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자 직원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

늘도 안전하게 항공기를 출발시켰다는 무언의 확인 같았다. 여유도 잠시, 사무실로 돌아간

직원들은 오늘의 특이 사항을 정리하거나 내일 예약을 확인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

으로 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수백 명의

승객들, 분주한 직원들, 낯선 공항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날들을 그리자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무조건 잘해야만 한다!’ 항공기 한 대를 무사히

띄우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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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Step 4. 난기류를 이겨 내고 비행 중

공항은 비상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승객이 다 내린

항공기는 일정 시간 점검을 받은 후 다시 도착지를 향해 날아가야 한다. 일련의 과정이 막

힘없이 흘러야 비행 스케줄이라는 승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항공기에서 승객

들이 내리고 나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곤 한다. 기내에 여권을 두고 온 승객, 인천에서 출

발하기 전 라운지에 옷을 두고 내린 승객, 다음 환승 편을 놓친 승객 등 온갖 일들이 벌어

진다. 그럴 때마다 담당자인 나는 신속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프로답게 대처해야 했다. 그래

서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게 되었다. 업무 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실수를 할 때마다

메모를 해두었다. 또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매뉴얼을 가다듬었다. 결

과적으로 이 매뉴얼을 통해 업무 현장에서 더욱 꼼꼼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작은 미담이지만, 10년 넘게 근무한 과장님이 내 매뉴얼을 보고는 잘 만들었다는 칭찬을 아

끼지 않았고, 한 장을 복사해 가기도 했다. 인턴이 끝난 지금도 한국에 들어오는 직원들과

가끔 만나 식사를 하곤 하는데, 비록 비공식 매뉴얼이긴 하지만 내가 만든 매뉴얼이 동료

직원들에게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뿌듯해지곤 한다.

Step 5.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여

가슴 뛰는 꿈이 생겼다. 한 나라의 관문인 공항에서 국제 여객 운송의 사명을 다하는 프로

가 되겠다는 꿈. 항공사 인턴으로 일하면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고, 이를 향해 달려가

겠다는 단순한 취업 이상의 꿈이 생긴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걱정으로 가득했던 스무

살 청년. K-Move 설명회에서 멘토의 조언을 듣고 월드잡플러스에서 해외 취업 정보를 찾

아보며 치열하게 준비했다. 그 결과 막연하던 꿈이 인턴이라는 소중한 기회로 다가왔고, 미

국이라는 기회의 땅에서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실력으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

었다.

동시대의 청춘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해외 취업은 낯선 것이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라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도전하는 청춘’이었기에 이룰 수 있었다. 인

턴 경험으로 내 그릇을 키울 수 있었다면, 해외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성숙한 안목을 갖

게 했다. 이젠 꿈 너머의 꿈을 향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더 이상 고민하거나 두

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그것을 왜 해야만 하는지 알게 되

었기 때문이다. 고민 많았던 평범한 대학생의 당찬 도전! 이것은 오늘을 사는 평범한 청년

의 리얼 도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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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중국 | 닝보대학 앞 한식당 창업

손영빈

진짜 한식의 맛

나는 2015년 새 학기를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맞았다. 내가 다니는 영남대학교와 자매결연

을 한 중국 닝보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중국어라고는 인

사말 정도였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이름도 생소한 ‘닝보(寧波)’에 가게 되었다. 체류 기

간은 총 1년, 두 학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상하이로 날아가 기차를 갈아타고 닝보로

향했다. 닝보는 아시아의 물류 도시인 부산의 뒤를 바짝 쫓는, 경쟁력을 갖춘 항구도시였다.

닝보대학의 학교 앞 상권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지방 소도시의 읍내 수준이었다. 그런

데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이 두 개나 있었다. 우리나라에 자장면이나 짬뽕을 파는

중국 음식점이 있듯, 중국인들 사이에 한류가 크게 유행하면서 한식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

와 욕구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폭발적인 수요에 비해 한식당의 환경이나 메뉴는 기대에 못

미쳤다. ‘내가 진짜 한국 음식을 선보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창업의 의지를 다진 건 그

때부터였다.

교환학생으로 중국 닝보대학에 들어갔다. 학교 앞에 한국 식당이 있었지만, 정통 한식을 내는 곳은

아니었다. 내가 하면 뭔가 될 것 같았다. 기숙사에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맛을

검증받았다.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한컵’이란 이름의 작은 식당을 열었고, 학교 앞 명물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나는 제대로 된, 더

큰 ‘한컵’으로 대륙의 입맛을 사로잡을 생각이다.

한식을 ‘한컵’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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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1911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창 업

나랑 함께 온 한국인 교환학생은 총 5명으로 외국인 기숙사에 머물렀다. 소수의 한국인을

포함해 중국의 우방인 러시아, 이란, 터키,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함께

생활했다. 한국 학생들은 영어 실력이 좋아 말이 잘 통했고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 기숙사에 살면서 나는 한국 음식을 자주 해 먹었다. 외국 친구들을 불러 같

이 먹을 때가 많았는데, 메뉴는 한국에서 즐겨 먹는 불고기, 비빔밥, 김밥, 찜닭 등 다양했

다. 그때마다 향신료 맛이 강한 중국 음식보다 입맛에 맞는다며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들

중 몇몇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 ‘한타이’에서 매일같이 김치볶음밥과 비빔밥을 먹

는다고 했고, 내가 만든 음식이 훨씬 낫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학교 앞에서 내는 음식은

중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된 한국 음식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정통 한식을 계속 먹었으면 좋

겠다고 했고, 나는 나중에 한식 시식회를 열어 주겠다는 약속으로 화답했다.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면서 중국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어떨 때는 한국말을 듣고 먼저 다

가와 말을 건네기도 했다. 대부분 여자였고, 한국의 드라마나 음악, 화장품 등에 관심이 많

았다. 그들에게 지드래곤은 우상이었고,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는 잡화점을 찾아 한국 화장

품을 샀다. 또 학교 앞 한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나

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들에게 중국어를 배우면서 나는 종종 떡볶이, 치킨, 김밥 같은 한

국 음식을 대접했고, 그 친구들 또한 한국 식당에서 먹던 맛과 크게 다르다며 호들갑을 떨

었다.

학교 앞 가게, 한컵의 성공

외국 친구들뿐 아니라 중국 친구들도 그 맛을 인정했다. 나는 용기를 얻었고, 막연하고 추

상적이었던 창업의 꿈에 한 발 다가서게 되었다. 마침 외국 학생들이 각국의 부스를 만들

어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 학교 행사가 있었고, 그날을 기회로 삼았다. 한국 유학생들이 합

심하여 한식 시식회를 선보이기로 했다. 여학생은 예쁜 한복을 입고 부스를 홍보했고, 우리

가 준비한 김밥, 송편, 불고기 덮밥 200인 분은 입소문을 타고 한 시간 만에 동이 났다. 그

때 다짐했다. 이 음식들을 날마다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비록 전문 요리사는 아니지만,

외국인 친구들이 한식의 다양한 맛을 캐주얼하게 즐기도록 하겠다고.

막상 창업을 결심했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한국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창업을 중국에서 하

겠다니! 창업에 대한 지식은커녕 방법조차 몰랐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학생 비자를 받고 온

유학생 신분이라 정식으로 창업할 수 없었다. 시작부터 난관을 만났다. 그렇게 꿈을 접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마침 한국인 유학생과 사귀고 있던 ‘은평’이라는 중국인 여학생이 내 계

획을 듣더니 기꺼이 사장이 되겠다고 나섰다. 중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동업을 한다는

것은 큰 결심이 섰거나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훗날 은평이에게 왜 그때

사장이 되겠다고 했는지 물었더니 “장사가 잘될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계 3대

상인에 드는 중국 민족의 후예다운 답변이었다.

은평이가 합류하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풀렸다. 거듭된 회의 끝에 아침을 꼭 먹는 중국 학

생들을 위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컵밥’을 개발하고, 맵지 않아 중

국인뿐 아니라 외국 친구들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궁중떡볶이를 메뉴에 넣기로 했

다. 은평이와 학교 앞에서 유동 인구를 살피고 빈 점포를 수도 없이 보러 다녔다. 또 매일

몇 십 인분의 컵밥과 궁중떡볶이를 만들며 맛을 연구했다. 상호는 한국의 ‘한(韓)’과 영어

‘컵(cup)’을 합친 ‘한컵(韓cup)’으로 정했다. 나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던 동생에게 간판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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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2112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수 기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창 업

자인을 의뢰했다. 다행히 은평이는 각종 허가와 서류 처리를 전문가처럼 발 빠르게 해결했

다. 그렇게 가게를 열었고, 당시 유학을 와 있던 한국인 친구들이 매일같이 가게에 나와 내

일처럼 일손을 거들고 홍보를 해주었다. 우리 가게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인들과 교류

하는 ‘만남의 장소’로도 입소문이 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젊음의 패기로 무한도전

돈벌이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나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었고, 그저 다양한 맛이 있는 한식을

캐주얼하게 소개하고 그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식당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

의 도움과 나의 무모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인과 외국인 친구들이 가게를 찾

아 ‘한컵’을 매 끼니처럼 먹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이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학

업을 마친 후, 요리 실력을 다듬고 메뉴를 더 개발하여 제대로 된 ‘한컵’으로 승부를 보고 싶

었다. 학교 앞 분식점 수준이 아니라 항구도시 닝보, 더 나아가 중국 전역으로 진출하고 싶

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준비와 재정비를 위해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나는

결단을 내리고 은평이에게 나의 진심과 의중을 얘기했다. 은평이는 이별을 아쉬워하면서도

이내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 “백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를 다짐했다.

내가 특별해서 해외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어쩌면 무모할 정도로 무계획적이

고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젊으니까 조금은 무모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는 생각한 걸 이룰 수 있는 패기와 열정이 있으니까! 지금은 한국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

며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고 있다. 주변의 자문도 받고 전문 서적도 보면서 열심히 공부 중

이다. 조만간 더 큰 ‘한컵’이 되기 위해, 더 많은 중국 친구들에게 ‘한컵’의 맛을 선보이기 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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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1 6 K - M o v e

해 외 진 출

성 공 수 기 · 사 진

공 모 전

수 상 작 품 집

사진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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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2512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대 상 / 해 외 취 업

바늘구멍보다 더 통과하기 어렵다는 한국의 취업문.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스트레스가 심한 한국의 회

사 생활로 해외 취업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체코 오스트라바를 소개하려 한다. 체코의 수도 프라

하는 사계절이 성수기라는 말이 있듯이, 손꼽히는 유럽의 관광도시이다. 특히 대한항공이 프라하공항의 지

분을 인수하면서 더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래서인지 프라하 거리를 거닐다 보면 체코사람들

이 「곰 세 마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종종 마주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울산’이라고 칭한 오스트라바는 체코 제3의 도시로 공단의 모습에 가깝다. 체코에는 현대자동차, 슬로

바키아에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다. 생산 대수만 연간 약 80만 대, 직원만 총 6천 명이 넘는 대규

모 공장이다(사내 아웃소싱 협력업체를 더하면 1만 명이 넘는다). 생산법인과 판매법인, 관련 부품을 납품하

는 협력사들이 진출해 있는데, 크게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폴란드에 집중되어 있다. 백 개가 넘는 협력사가

있으니 ‘유럽의 울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자동차의 생산법인이 생기면서 한국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까지 함께 들어오면서 한국 기업이 많이 자리를 잡았고, 교민은 2천 명 수준으로 늘어

나 한국 커뮤니티까지 생겼다. 감히 ‘취업 시장의 노다지’라고 말하고 싶다.

소통에 신경 쓰고,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자동차 시장에서 근무하며 해외 생활을 2년간 해오면서 나름대로 느낀 점이 많다. 비단 체코만이 아니라, 해

외에 법인이 있는 한국 기업은 대부분 영어를 잘 하는 현지인이 매니저 직책에 있다. 한국 직원들은 그 매니

저와 소통을 하고, 다른 현지 직원들을 매니저가 관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체코인 대부분

은 영어에 서투르다. 한국 직원이 유창하게는 아니어도 체코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면 직장 생활이 한결

편해진다. 해외에서 일을 해본 사람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해외 근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소통’이다. 소통

의 부족이나 오해로 빚는 갈등, 상사와의 불화, 타 부서 간의 논쟁 등이 아주 많다. 이럴 때 체코어는 큰 장

점이 된다.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언

어를 알아야 현지 사정과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해외 근무에

도전하지만, 80퍼센트 이상은 6개월이나 1년을 못 채우고 돌아간다. 그 이유는 바로 ‘외로움’이다. 나는 독

립적이고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교환학생도 했고, 매 학기마다 해외 봉사활동을 다녔고,

배낭여행도 세 번이나 다녀왔기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부딪쳐 보니 회사 생활은 ‘나

혼자 산다’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너무나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고, 외로웠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해외 근무에서는 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업무적으로는 현지인들과 잘 소통하고, 한국인 상사들과의 소

통에서는 중간 고리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생활적으로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이겨 내

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연애이다. 나는 연애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 가

지를 갖춘 사람이라면 여유와 안정감을 누리며 해외 근무를 오래,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CZECH 체코 | 현대자동차 체코공장 직원

체코의 3대 도시 오스트라바시 인근의 노소비체 현대자동차 체코공장(HMMC)에서 직원들과 함께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강국희

노다지! 체코의 작은 울산,

오스트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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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2712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2016년 나는 알리탈리아(Alitalia) 항공사에서 한국인 1기 기내통역 승무원으로 채용되어 기내서비스와

한국어 기내방송을 담당하고 있다. 서로 다른 동양과 서양의 직원들이 로마-인천 구간을 오가며 우리는 매

비행마다 서로 배우고 또 배워 나간다. 아직은 미숙한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소통을 하지만, 이탈리아 승무원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이탈리아의 문화와 언어를 하나둘 배워 가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출신인 동료는 재빠르고 부지런하지만 남부 출신의 동료들은 느긋하고 정이 많다. 서로 다른

문화권이지만, 우리는 비슷한 점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은 한국 사람도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거나

우리나라를 무작정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을 잘 모르는 동료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간외교관으

로서 한국문화를 전하고 알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에서 매번 배울 수 있

다는 것은 신이 주신 귀한 선물 같다.

ITaLY 이탈리아 | 알리탈리아 항공사 스튜어디스

이탈리아 로마에서 출발해 한국의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이탈리아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나다.

김소정

하늘에서 동(東)과 서(西)를

배우다

해당 사진은 본인 요청에 의해일시적으로 비공개 처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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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2912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최 우 수 상 / 해 외 봉 사

대학사회봉사협의회가 주관한 월드프렌즈코리아(WFK) ‘청년해외봉사단’으로 미얀마를 다녀왔다. 나는 아

웅보디 초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 눈

을 못 마주칠 정도로 소심하던 내가, 누구 앞에 나서서 뭘 가르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 명도 아닌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영어와 미얀마어로 교육하는 일은 큰 도전이었다. 부담감을 이기려고 수업

준비를 더 철저히 했고, 따로 미얀마어를 외우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막상 아이들 앞에 서니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막막하던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한 번 입을 열자 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눈빛과 환한 미소가 내 등을

토닥이며 응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덕분에 자신감이 붙은 나는 한껏 목에 힘을 주고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고 열성을 다했다. 혹여 소외

되는 아이가 있을까 싶어, 책상 앞을 기웃거리며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을 꼽으

라면, 아이들과 함께 율동을 하고 노래를 불렀을 때다. 영어로 숫자를 표현하는 법을 알려 주고, 내용을 재미

있게 습득할 수 있도록 「숫자송」 율동과 노래를 준비해 갔다. 발표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

고 나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순수하고 귀엽던지. 수업이 끝난 후 양손을 모으고 노래하듯 감사 인사를 외치

는 아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나 또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MYanMaR 미얀마 | 월드프렌즈코리아 청년해외봉사단

미얀마의 아웅보디 초등학교를 찾아 영어 수업을 했다. 「숫자송」을 따라 부르던 아이들의 맑고 천진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박정민

숫자송으로 하나 된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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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3113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프랭클린(Franklin). 그 이름만으로 추억과 행복에 잠기게 된다. 내가 태즈메이니아에서 두 번째로 일하게

된 식당으로, 호주 생활의 기적이 시작된 곳이다. 프랭클린은 호주의 미슐랭 Chef Hat Awards에서 Hat

두 개를 받은 곳으로, 로컬 재료를 이용한 현대적인 건강식으로 유명하다. 내가 태즈메이니아에 도착했을 때

요리사 자리는 이미 다 찼고, 운 좋게도 3주 동안 키친핸드로 일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8년의 요리 경력이

있어 굳이 키친핸드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타국에서는 이마저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프

랭클린의 음식과 시스템,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설레는 기분이었다.

비록 설거지 담당이었지만 말없이 나서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도왔다. 늘 무엇을 하든 “Do My Best”가 몸

에 배어 있었고, 이것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움직였는지, 어설픈 영어로 제대로

말도 못하는 나를 동료로 봐주기 시작했다. 첫 휴일엔 프랭클린이 소유한 포도밭에 함께 가서 포도를 따고

내추럴 와인을 마시며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와인을 사랑하는 나에겐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호주에 오면

꼭 와이너리에서 포도를 따고 와인 만드는 걸 배워야지 했는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일이 이뤄진 것이다.

3주가 훌쩍 지나 마지막 날이 되자 요리장이 나를 불렀다. 여기는 자리가 다 찼지만, 원한다면 이 회사에 속

한 다른 레스토랑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속으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제가 요리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뭘 믿고 저를 소개해 주신다는 건가요?” 이렇게 묻자 요리장이 대답했다.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중요한 건 태도와 인성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가 닿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의 직원들은 내가 원했지만 살 수 없었던 와인과 그날 받은 팁을 모아 나에게 깜짝 선물로 내놓았

다. D’meure란 이름이 붙은 이 특별한 와인은 우리가 함께한 작은 와이너리에서 만든 네이처 와인으로, 전

량 프랭클린으로 공급되기에 원해도 살 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모아 준 마음이자 내 삶이 열어 준 기적

이었다. 그때 받은 와인은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만나면 함께 마시며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이 와인은 좀 특별하다고.

aUSTRaLIa 호주 | 요리사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프랭클린 식당에 키친핸드로 들어가 3주를 일했다. 나를 동료로 대하며 마음을 열어 준 고마운 분들과 함께했다.

이성균

프랭클린에서 보낸 기적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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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3313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취 업

인도에서 일을 하면서 제일 자주 만나는 제1 거래처의 담당자이다. 사실 1년 넘게 이 친구와 일을 하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많이도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돌발 변수에 대응하는 경우의 수도 늘어났지만,

역시나 “여기는 인도”라는 말만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늘 약속을 잡지 않고 매일매일 출근하는

식으로 이 거래처에 방문한다. 사전 브리핑이 있거나 임원이 끼지 않는 미팅 자리라면 시간 약속 따위가 지

켜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회사로 출발하면서 시간이 괜찮은지 묻고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좋다”는 답변이 왔다. 근데

가보면 없다. 다른 층을 오르내리고 회의실을 두리번거리고 난 뒤에야 카페테리아에 있다는 연락이 온다. 늘

이런 식이다. 인도에서는 “sorry”가 없다. 미안한 일은 다 남들이나 다른 상황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담당자의 부재로 허탕을 치게 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이전의 미팅이 길어져서, 점심시간을 놓

쳤기 때문에, 혹은 내가 적절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인 것이다. 하지만 인도인의 사고방식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거래처 담당자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또한 인도의 매력이다. 많은 비즈니스

가 인맥과 친분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허물없이 지내다 보면 정말 거래처 이상의 많은 결과물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InDIa 인도 | 회사원

인도 거래처의 담당자이다. 미팅이 있을 때마다 두문불출하며 말이 자주 바뀌지만, 여기는 인도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러다 정들어서 아무 말 못한다.

김혜림

어디가 또?You Know What I’m S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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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3513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인 턴

미국 워싱턴 DC의 로널드 레이건 내셔널 공항(DCA공항)의 Travelers Aid 소속으로 인턴 일을 했다. 고

객 서비스 부서로, 공항 터미널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서 승객이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여행 안내와 공항

안내 같은 전반적인 서비스 업무를 맡았다. 하루 평균 200여 명의 다양한 국적, 성별, 연령대의 승객들과 소

통하는 게 내 일이었다. 인턴십을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나의 강점임을 알게

되었고, 내 도움을 받은 승객들이 흐뭇해 하는 모습에서 큰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처음에는 안내 데스크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했지만, 점차 혼자 근무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 혼자 이 많은 승

객들을 안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전문적으로 승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순

발력을 키우면서 일도 익숙해지고 자신감도 붙었다. 나에게는 잊지 못할 4개월의 인턴 생활로, 나 자신을 발

견하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 DCA공항 고객 서비스 부서 인턴

DCA공항 75주년을 기념해 내가 근무했던 안내 데스크에서 찍은 사진이다. 4개월의 인턴 생활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김희선

DCA공항에서 나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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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3713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봉 사

인도네시아 공립 이슬람 대학교(UIN: Universitas Islam Negeri)로 IT봉사를 나갔다. 현지의 꽤 많은

학생들이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K팝은 물론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이나 관광 등에 흥미를 보였다. 우

리는 이런 학생들을 모아 한국 여행에 필요한 간단한 한글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자음, 모음 같은 한글 기

초부터 시작해 이름 쓰기, 간단한 인사 등을 가르쳤고, 차츰 난이도를 높여 한국 방문에 필요한 몇몇 문장

을 가르쳤다. 봉사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는 제기차기, 딱지치기 같은 전통놀이를 하며 일상에서 한국어를

말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한복을 입어 보는 시간에는 교수님들도 함께 참석했다. 또 현지에서 재료를 공수해 떡볶이와 미역국을 만들

었고, 50인 분에 이르는 떡볶이와 미역국으로 식사를 함께하며 문화 교류의 대미를 장식했다. IT봉사도 중

요했지만, 문화 교류의 시간이 정말로 뜻 깊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한류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고, 우

리가 그 중심에서 한국을 알리고 있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들이 고마움을 전할 때 ‘아, 이런 기분에 봉사를

오는구나’ 하고 느꼈다.

InDOnESIa 인도네시아 | IT봉사단

IT봉사단으로 인도네시아 공립 이슬람 대학을 찾아 학생들을 만났다. 한글을 가르치고 전통놀이를 함께하며 문화 교류의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윤상필

한글로 전하는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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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3913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우 수 상 / 해 외 봉 사

대학 4학년 때 ‘대학사회봉사협의회 해외봉사’에 신청해서 봉사활동을 떠났다. 인도네시아 반둥 인근의 산골

에 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모여 밤새 준비를 한 기억이 난다. 우리는 7

시간 넘게 비행을 한 뒤, 차를 타고 또 5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팀원들은 아이들의 건

강관리를 위한 보건 교육, 정보화 시대에 꼭 필요한 컴퓨터 교육, 한류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위한 한글

교육을 했다. 또 K팝이나 태권도 배우기 같은 재능 봉사를 했고, 다 같이 모여 사회복지센터의 집짓기에 힘

을 보태거나, 학교 벽에 예쁜 벽화를 남기기도 했다.

봉사를 위해 찾아간 우리였지만, 나눔을 통해 베푼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았다. 학교나 책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달았고 큰 보람도 느꼈다. 이별의 마지막 날, 버스 앞에서 아이들이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팀원들도 아쉬움과 슬픔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말없이

전해지는 감동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었다.

InDOnESIa 인도네시아 | 대학생 봉사

여러 대학의 학생들과 인도네시아 반둥 인근의 산골 마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나눔을 통해 베푼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은 시간이었다.

노래

사랑은 국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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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4114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벌써 일본에 온 지 반년이 넘었다. 시간 참 빨리 간다. 이 사진은 다들 즐겁게 찍었다. 게스트하우스 카오산

의 스태프 미코토상이 마지막 일을 끝내고 다 같이 모였다. 미토코상은 다음 달에 호주로 떠나 영어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일본에서 일을 막 시작할 때 미코토상도 함께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이 많이 쌓였다. 물론 다른 스태프들도 한국에서 온

나를 많이 챙겨 주고, 하나하나 일을 가르쳐 줘서 큰 도움이 되었다.

솔직히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일할 때는 걱정이 많았지만, 숙소에 묵는 80퍼센트 이상의 손님이 외국인이라

그런지 여느 일본 회사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내년 초가 되면 곧 1년이 된다.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

서 일본어를 열심히 익히고 있다. 카오산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 함께 지내면서 배우고 느끼

는 점이 많다. 정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 특히 일본으로

진출하려는 분들이 이 사진을 보고 큰 힘을 얻었으면 한다.

Japan일본 | 카오산 스태프

게스트하우스의 동료 스태프인 미코토상이 마지막 일을 끝내던 날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소통하며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

강명구

굿바이, 미코토상!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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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4314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나는 일본 오이타 현에 있는 초정밀 금형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에 교수님의 추천

으로 K-Move 해외 취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친구와 같이 ‘K-Move 일본 취업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

었다. 국내가 아닌 해외 취업이라 신청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평소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신청자들 중에 총 15명의 학생이 1기생으로 선발되었다. 그중 12명은 다

른 기업으로 갔고, 나와 두 친구는 한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함께 일하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온 두 친구가 곁에 있어 회사 적응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아직은 일본어 대화나 회사

업무에 능숙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꾸준히 노력한다면 나중에는 인정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거나 진로를 두고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

은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젊고 미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정하고도 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도중에 쉽게 포기하기 때문이다. 꿈을

향한 길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의지만 있다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 공대를

졸업하고 일본어 한 마디도 못하던 내가 일본 기업에 취업한 것처럼 말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Japan일본 | 금형회사 엔지니어

K-Move 일본 취업 1기생이 한자리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친구들이 곁에 있어 더 든든하고 행복하다.

이도훈

동고동락하며 함께 달려온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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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4514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취 업

나는 현재 캐나다 밴쿠버 BC(British Columbia) 주 공기업에서 바이어 프로젝트 리더로 활동하며 연간

300억 원 규모의 구매를 담당하고 있다. K-Move를 통해 호주에서 해외 인턴십을 시작한 후 미국 뉴욕의

회사에 취업했고, 이후 캐나다로 들어와 세 번의 이직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다. 2011년에 미국 생

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왔을 때 목표로 삼은 기업은 두 곳이었다. 첫 번째 회사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대기

업, 두 번째 회사는 캐나다 공기업이었다. 2011년 캐나다 현지 중소기업을 거쳐 2013년에 목표로 하던 대

기업에 들어갔고, 2015년에는 공기업으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서 무역 사무 보조로 일을 시작한 후, 큰 꿈을 안고 해외에 나가 살면서 영어도 크게 늘었고 경력도

제법 쌓여 구매 담당자, 구매 총괄 바이어, 제품 개발자를 거쳐 매니저가 되었다. 그런 내가 2015년에 계약

직 일반 사무직 입사 시험을 치러 공기업에 들어가게 된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업무

분야를 바꿔 가며 거꾸로 가는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2011년에 처음 캐나다

로 왔을 때 지금의 공기업 구매 담당 자리에 지원을 했다 떨어진 적이 있었고, 그 후로도 재도전을 했지만

서류 전형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었다. 자리나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어떻게든 입사를 해

서 내 능력을 보여 주리라 마음먹었고, 그렇게 나는 일반 직원으로 도전을 해서 합격한 것이다.

공기업에 들어가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직원들과 융화하면서 현직 구매 담당자들에게 정보를 얻으며

일을 배워 나갔다. 6개월 동안 서류 양식, 규정, 계약서, 온라인 교육, 사내 교육 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구매

담당자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주변의 평도 좋았고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하고자

하는 내 열정이 통했는지 입사 동기 6명 중 유일하게 단기간에 승진한 사례를 남겼다. 자리를 탓하지 않고

앞을 보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다. 하루하루 도전하는 마음으로 바쁘게 살고 있지만, 그만큼

성장해 가는 내 모습을 보는 일이 행복하다.

CanaDa캐나다 | 밴쿠버 BC 주 공기업 직원

오전 8시 반부터 시작해 오후 4시 반까지 진행된 긴 회의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다. 팀원들 한가운데에서 웃고 있는 여자가 바로 나다.

레이첼 백

꿈에 그리던 캐나다 공기업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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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4714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월요 회의!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미국 SMART사 프레스 생산관리팀에 인턴으로 들어갔을 때 회사는 신차

개발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사에게 뭘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기대는 접고 ‘맨

땅에 헤딩’하듯 일을 익혀야 했다. 기본적인 서류 작업이나 간단한 게시물 관리는 할 만했다. 하지만 지난 주

특이 사항을 보고하고 업무 분담을 통해 한 주를 계획하는 월요일 회의는 지옥 같았다. 회의에서 통역을 맡

았지만,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해야 했다. 특히 한 주간 쌓인 직원들의 불만이나 건의 사항을 그 자리에서 처

리해야 해서 빠른 의사소통과 결단력이 꼭 필요했다. 엉성한 영어 실력으로 생산 라인에서 쓰는 전문용어를

소화해야 했고, 수십 명의 작업자 이름을 입력하느라 머리에 쥐가 났다. 그 시간이 너무 싫어서 ‘월요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상사들은 그런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장님과 대리님, 현지 매니저들은 묵묵히 기다려 줬다. 그 결

과 몇 달이 지나자 나는 부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영어도 제법 늘었고, 부서의 중요한 결정에 내 의견

을 반영하는 단계에 올랐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스스로 헤엄치는 법을 알아 버린 셈이었지만, 그런 압

박의 시간을 견뎠기에 지난 1년간 내가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인턴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OPIc(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 컴퓨터 활용 실무 회화 능력 테스트)에서 최고 등급인

Advanced Low를 달성했을 때, 호랑이 같았던 차장님과 현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고마움을 전했다.

이제 아찔한 월요 회의는 없지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또 한 번 자신을 몰아갈 힘이 이제는 생

겼다고 자부한다.

UnITED STaTES OF aMERICa미국 | SMART사 프레스 생산관리팀 인턴

인턴 신분으로 월요 회의에 들어가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 압박의 시간을 견뎠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젠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다.

김준성

공포의 월요 회의,

나를 궁지로 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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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4914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인 턴

나는 전북대 공대생으로, 동원그룹에서 주최하는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를 통해 해외 탐방을 다녀왔다.

우연찮은 기회에 유럽에서 연구 중인, 연과 드론을 활용한 공중풍력발전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궁금증이 일면 꼭 알아보는 성격이었고, 평소 풍력발전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나는 해당 회사

를 찾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 연락처를 수소문해 긴 시간 동안 CEO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최종 약속을 받아 베를린으로 날아갔다.

내가 방문한 곳은 독일의 신재생에너지협회, 네덜란드의 Ampyx Power, 독일의 Skypoint-e GmbH였

다. 특히 두 회사는 각각 드론을 이용한 공중풍력발전, 연을 이용한 공중풍력발전을 연구하고 있었다. 한국

에는 풍력발전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지만, 두 나라는 신재생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선진국이었

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Skypoint-e GmbH는 인터넷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그들의 제품과 기술, 미래의 연

구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연을 이용한 풍력발전이라니! 그들이 내놓은 신기한 아이디어에 감탄

할 수밖에 없었다.

공중풍력발전 기술은 구글을 비롯하여 미국, 유럽, 호주 등 많은 나라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한국에서

는 그런 정보를 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현지에서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설명을 들으며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향후 이 분야로 해외 진출을 원한다면 기꺼이 돕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얼떨결에 해외 취업이 거의

확정된 순간이었다. 또 신재생에너지협회의 활동을 통해 독일이 신재생에너지 강국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는 한국의 사정과는 크게 비교가 되는 부분이었다. 아직은 전기전자공학부 학생이지

만, 앞으로 대한민국이 신재생에너지 강국이 되기를 소망하며 한국에도 공중풍력발전 회사가 탄생하는 그날

을 위하여 한 발 한 발 나아갈 생각이다.

GERManY독일 | 해외 업체 탐방

연을 활용한 풍력발전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독일의 Skypoint-e GmbH를 방문했을 때 사진이다. 놀랍고도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홍진석

공중풍력발전을 알기 위해 떠난

공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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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5115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봉 사

내 꿈은 전공 국가인 인도를 속속들이 알아보는 살아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었다. 인도에 가서 몸으로 직접

부딪쳐 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수중에 쥔 돈은 백만 원이 전부였다. 비행기 값을 치르고 나면 턱없이 부족

한 예산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셀카봉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젊음의 패기로 친구 세 명과 함께

셀카봉 400개를 사서 무작정 인도로 출발했다.

난생 처음 하는 장사였다. 그것도 낯선 이국땅에서.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을 내던지고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했다. 현지인이 시비를 걸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Shall we take a picture?”라고 외치며 열심히 셀카

봉을 파는 것만이 무일푼인 우리가 살아남는 길이었다. 일주일을 그러고 다녔더니 어느새 두려움과 부끄러

움은 사라지고 전문 장사꾼이 다 되어 있었다. 한 명이 싸구려 담요를 바닥에 깔고 앉아 돈을 받고 물건을

건넸고, 나머지 셋은 셀카봉을 들고 홍보에 나서는 것이 우리의 판매 전략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리에서 구걸하는 꼬맹이들과 친해졌다. 녀석들은 동양에서 온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고, 땅따먹기 같은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우리는 장사가 한가해지면 같이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

내곤 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인도에 오기 전에는 여기 사람들이 미개하고 더럽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처음에는 꼬맹

이들이 내민 손을 잡지 않았고, 그들의 호의를 경계했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이 늘수록 바보 같은 편견이

란 걸 알게 되었다. 녀석들은 누구보다 순수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데다 똑똑하기까지 했다. 그 뒤로 나

와 친구들은 가난 때문에 거리로 나선 아이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학습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

각을 했다. 그래서 9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셀카봉을 판 수익금 중에서 꼭 필요한 경비를 뺀 나머지 돈으로

학용품을 잔뜩 사서 빈민촌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하면 공부에 대한 욕심이 일 것 같았고, 이

친구들이 좀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전보다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딪치며 인도에 대해 깊이 경험하고자 했던 내 꿈은 이제 가슴 뿌듯한 현실의 상으로 변했다. 떠

나기 전에 내가 던진 작은 물음표는 제자리로 돌아와 큰 느낌표가 되었다.

InDIa인도 | 배낭여행에서 현지 봉사

인도를 속속들이 알고 싶어 친구 셋과 함께 배낭여행을 떠났다. 셀카봉을 팔아 여행 경비를 벌었고, 그 돈의 일부로 학용품을 사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누었다.

김훈정

물음표를 버리고 느낌표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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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5315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봉 사

정부 파견 해외봉사단 통합 브랜드인 월드프렌즈코리아(WFK)의 ‘월드프렌즈 IT봉사단’에 지원해 베트남 하

노이와 하노이에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나항 다비의 시골 마을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나는 한 달가량 베

트남에 머물렀다. 하노이에서는 대학생들을, 나항 다비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IT 수업을 하고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베트남어를 잘 몰라 걱정을 많이 했지만,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대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진은 베트남 나항 다비에서 초등학생들에게 IT 수업을 시작한 첫날이다. 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학생이 도

움을 요청했고, 그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베트남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던 중에 이 사진을 발견했고, 내

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운 날이 떠올라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경제적인 이유로 컴퓨터를 접하기는 어렵지

만, 얼굴에는 그늘 대신 웃음이 가득했다. 이들을 도우며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VIETnaM베트남 | 월드프렌즈 IT봉사

베트남으로 IT봉사를 떠나 나항 다비의 시골마을에서 이 아이들을 만났다. 처음 보는 컴퓨터에 눈을 떼지 못하는 천진한 얼굴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이승수

컴퓨터를 처음 만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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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5515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봉 사

고등학교 때 요리를 시작했지만, 한식 조리사 자격증 시험에 다섯 번이나 떨어지면서 요리에 트라우마가 생

겼다. 그러다 보니 섬세함이 필요한 제과ㆍ제빵 분야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코이카 ‘월드프렌

즈 NGO봉사단’의 기회가 찾아왔다. 초등학교에서 급식 관리를 담당하겠거니 했는데, 뜻밖의 제안이 들어

왔다. “탄자니아 직업훈련학교에서 베이킹 수업을 한번 해보실래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며 늘

요리 분야에 관심을 두고 살았지만, 제과ㆍ제빵을 가르치는 일은 또 달랐다. 나에게는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용기를 내어 그 제안을 받았다. 요리를 놓지 않은 경험 덕분인지 두 달 만에 제빵과 제과 자격증을 모두 취

득했고, 출국 날까지 케이크 데커레이션을 배우며 열의를 보였다.

막상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도착해 보니 제과ㆍ제빵 기술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

다. 정전이 잦았고 물이 깨끗하지 않았다. 특히 스와힐리어가 나를 괴롭혔다. 1년이라는 봉사 기간 동안 제

과ㆍ제빵 수업은 두 달 일정으로 총 다섯 차례가 잡혔다. 처음에는 스와힐리어가 어눌한 데다 손에 익지 않

은 기계를 다루느라 실수를 남발했지만, 3차 수업부터는 어느 정도 숙달이 되었다. 특히 3차 때 만난 학생들

과는 한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가족처럼 지냈다. 사진만 봐도 손짓을 섞어가며 열성

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가. 나만 바라보며 수업에 집중하는 마마(엄마)들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TanZanIa탄자니아 |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탄자니아 직업훈련학교에서 제과ㆍ제빵 강사로 1년을 보냈다. 3차 수업 때 손짓을 섞어가며 열성을 다해 가르치는 중이다. 마마들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서진영

오늘 만들어 볼 빵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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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5715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봉 사

몽골에 가서 내가 하고 싶었던 활동은 음악교육 봉사였다. “좌절하지 말라. Dum spiro, spero(숨을 쉬는

동안 희망은 있다). ‘희망樂서’를 제안합니다!”라는 기획안을 내고 음악교육 봉사를 준비했다. 노래와 음악은

치유력이 있다. 삶의 아픔이나 기쁨이 녹아 있는 말들을 가사로 담아, 함께 노래하고 웃으며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인류의 문화 중 가장 오래되고 의미 있는 것이 음악이

라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한국어 동요를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기획안을 열 번 넘게 수

정했다.

걱정과는 달리 몽골의 아이들은 수업을 잘 따라왔고, 진심으로 우리를 반겼다. 몸과 마음이 지쳐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조원들과 ‘같이’의 가치를 나누며 지혜롭게 난관을 이겨냈고 성공적으로 해외 봉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내 기획안의 부족한 점을 뒤에서 받쳐 준 훌륭한 조원들, 마음을 열고 다가온 아이들 덕분에 가능

한 일이었다. 우리들은 봉사의 마지막 날 「거위의 꿈」을 합창하며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몽골에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났고,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교육 봉사를 다시 시작했고,

아이들을 만나러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바라본 그 여름의 밤하늘, 그리고 내가 몽골에

서 느낀 감동의 시간들이 가슴 한곳에 선명하게 자리를 잡았다. 매 순간 소중하게 다가온 한여름의 꿈같은

날들을 나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다시 꺼내어 볼 것이다. 아끼는 사진첩을 펼치듯.

MOnGOLIa몽골 | 음악교육 봉사

봉사 마지막 날, 그동안 함께한 아이들을 위해 촛불을 들고 「거위의 꿈」을 합창했다. 몽골에서 보낸 그 여름의 시간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소영

우리가 너희들의 꿈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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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59158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사 진 부 문 ]장 려 상 / 해 외 창 업

단돈 20만원을 들고 무작정 캄보디아로 떠나온 지 어언 15년째다. 혈기왕성한 삼십대 초반에 도전정신을

앞세워 배짱 하나로 덤빈 사업이었다. 처음에는 일이 술술 풀리는가 싶더니,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

생을 참 많이 했다. 전기세가 밀려 언제 꺼질지 모를 형광등을 보며 노심초사한 적도 있다. 직원들의 월급이

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사진 속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지 않고 십 년 가까이 동고동락하며 내 곁을

지켰다. 한동안 서로 다른 문화 차이로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도 했고, 내 속을 모른다며 나무란 적도 많았다.

야근 후에는 삼겹살에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포를 풀기도 했다. 캄보디아 직원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우리 회사는 잡지책을 만든다. 월간이라 디자인, 인쇄, 제본, 배포에 늘 시간이 쫓긴다. 그 외에도 국제기획

이벤트, 물류 수송 대행업도 하고 있다. 그동안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현지 직원들이 곁에서 애를 써준 덕

분에 사업은 일정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직원들 중에는 이십대 초반에 들어와 결혼

을 해서 가정을 이룬 직원이 여럿 있다. 식구가 늘었으니 책임감도 커졌다. 사람들은 회사가 잘 굴러가야 직

원들도 잘 살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직원들이 잘 살아야 회사도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

다. 내 가족처럼 아끼는 캄보디아 식구들이다. 이들과 함께 미래의 꿈을 키워 가고 있다.

CaMBODIa캄보디아 | 잡지사 대표

어려운 상황에도 회사를 떠나지 않고 십 년 가까이 동고동락하며 내 곁을 지킨 직원들이다. 이제는 한 식구나 다름없다. 이들이 잘되어야 회사도 성장한다.

박정연

우리는 캄보디아 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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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K-Move프로그램 안내

준 비 단 계

연 수 참 여

일 자 리 매 칭

사 후 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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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M o v e 프 로 그 램 안 내 ]

해외취업의 시작부터 성공까지,K-Move 해외취업 지원 프로그램과

함께하세요!

취업성공 및 사후지원

해외취업성공장려금

“해외취업에 성공했나요?”

연수 참여 “직무/어학 능력이 부족하세요?”

K-Move 스쿨

일자리 매칭“좋은 해외 일자리를 찾고 있나요?”

서울K-Move센터 민간 해외취업알선 지원

준비 단계 “해외취업,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월드잡플러스 멘토링

해외진출통합정보사이트월드잡플러스를 소개합니다!

월드잡플러스는 해외 취업, 인턴, 봉사, 창업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제공하는 해외통합정보 사이트입니다. 해외진출의 모든 것을 한 곳에서 알아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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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에 필요한모든 정보 제공

핵이득

실시간 정보& 공지사항

빠른메뉴를 통해주요 지원 프로그램확인/신청 바로가기 가능

실시간 가능한채팅 상담까지!

정보 원스톱 제공

해외진출통합정보사이트 (www.worldjob.or.kr)

취업, 연수, 인턴, 창업, 봉사, 모집 공고

해외취업 알선 구인, 구직자화상면접 시스템

대륙별, 국가별커뮤니티

긴급 문의사항실시간 고객응대

구직자 홍보 진출희망자 멘토링 해외진출홍보

SNS 매쉬업해외유망직종 경력정보 및

수료정보 통합관리

월드잡플러스

다국어 지원증명서 관리 취업애로

청년층 지원해외취업

성공장려금 지급국가정보, 비자정보해외안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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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65164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K - M o v e 프 로 그 램 안 내 ]

1. 해외진출 준비에 필요한 정보 찾기 해외취업가이드 메뉴에서 주요국가 해외취업전략, 국가별 기본정보, 유망직종 등 정보/ 선배들의 해외취업 성공수기/ 어학능력 역량진단 테스트까지 준비과정에 필요한 정보 확인 가능

현지 전문가, 해외취업 성공 청년 등으로 구성된 멘토들이해외진출 노하우를 멘토링 방식으로 지원해 드립니다.

K-Move 멘토링

누가 참여할 수 있나요?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청년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준비 단계 해외취업,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어떤 혜택이 있나요?

구분 주요 내용

정보제공해외취업 태도 및 자세. 현지 생활정보, 해당국 주요 기업 채용방식, 문화적 유의사항 등 생생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취업상담이력서 작성 및 면접 스킬 등 해외취업 노하우, 구인 기업에서 원하는 글로벌 역량 등을 조언해 드립니다.

현지 네트워크 한인 기업 등 현지 인적 네트워크를 소개해 드립니다.

K-Move 사업 지원

해외 현지 멘토링, K-Move센터 등 현지에서 청년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K-Move의 사업을 지원합니다.

구분 주요 현황

거주지 국내 거주자 118명, 국외 거주자 123명

권역별

동북아 68명, 북아메리카 46명, 유럽 35명, 동남아 30명, 오세아니아 29명, 중남미 11명, 중동 10명, 아프리카 6명, 중앙/남 아시아 5명, 남아메리카 1명

분야 전자, 금융, IT, 교육, 컨설팅, 법률 등

K-Move 멘토단 현황

2. 해외 일자리 직접 검색해 보기

연봉, 근무환경을 중점 고려하여 월 2회 발표하는 우수 일자리

지원가능한 K- Move 스쿨 연수과정 정보

키워드로 원하는 일자리 직접 검색!

어떻게 참여하나요?

매년 초, 신규 멘티 및 멘토를 모집하며 월드잡플러스(www.worldjob.or.kr)에서 신청 가능합니다. (모집 기간은 별도 공지)

월드잡플러스 메인 > 상단메뉴 > 해외취업 상담 > K-Move멘토링 > 멘토 찾기 > 멘토링 커뮤니티 페이지에서 멘토 확인 후 신청 진행

접속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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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67166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K - M o v e 프 로 그 램 안 내 ]

어떤 혜택이 있나요? 구분

1인 최대 지원금액

구직자 비용 부담

지원 분야

장기과정

(6~12개월) 800만원 공단지원금의

20% 이내(신흥시장 10%)

- 글로벌기업, 해외진출기업, 해외유망직종 기업 등의 취업 연계

- 동남아, 중동 등 신흥시장 일자리 연계- 해당국 부족 직군, 기술 · 기능 및 전문직종으로 자격취득 또는 해당국 맞춤형 훈련과정 이수 후 취업 연계

단기과정

(3~6개월) 580만원

대학580만원 또는 800만원

없음

누가 참여할 수 있나요?

구분 내용

민간 과정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아래 요건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 만 34세 이하로 해외취업에 결격사유가 없는 자 (30% 범위 내 초과모집 가능)- 구인 업체가 요구한 채용조건(연령 등)에 부합하는 자

대학 과정

만 34세 이하 미취업자로 사업 참여 학교의 졸업자 또는최종학년 재학 중인 자로 연수 종료 후 졸업 및 해외취업이 가능한 자

공통 제외 기준

- 연수 개시일 기준 최근 1년 이내에 공단의 해외취업 연수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는 자 ※ 기준 일자는 수료일 또는 중도 탈락일부터 가산

- 연수 종료 후 취업률 산정기간 내 졸업 및 해외취업이 불가능한 자- 연수참여(예정)일 기준 고용보험가입 또는 개인사업자 등록 중인 자 단, 이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일용직 포함- 해외연수 및 취업을 위한 비자 발급이 불가능한 자- 연수참여(예정)일 기준 해외여행에 제한이 있는 자- 연수 개시일 1년 이내에 8개월 이상 연수, 취업 대상 국가에 해외체류 사실이 있는 자

※ 단 해외유학생 대상 과정 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해외에 체류한 기간은 예외 인정

구인 기업이 요구하는 어학, 직무능력, 생활문화교육 등맞춤형 연수과정 수료 후 취업까지 원스톱으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K-Move 스쿨

연수 참여 직무/어학 능력이 부족하세요? K-Move 스쿨이렇게

신청하세요!

월드잡플러스 로그인 후,메인페이지 우측빠른메뉴의

K-Move스쿨 클릭

사업, 국가, 유형, 직종,교육장소 선택 및세부 키워드 입력 후검색버튼 클릭

검색 후 해당 연수과정의자세히보기를 클릭하여세부 내용을 확인

연수과정 세부 페이지 하단의 온라인 지원하기를 클릭, 이력서 선택 후 지원(월드잡플러스 내 이력서 사전 등록 필요)

1. 월드잡플러스 접속

2. 연수과정 검색

3. 연수과정 확인

4. 온라인 지원하기 클릭

어떻게 참여하나요?

월드잡플러스 사이트(www.worldjob.or.kr)에서 신청 가능합니다.(모집 과정 및 일정은 연수 과정에 따라 상이)

월드잡플러스 메인 > 오른쪽 빠른 메뉴 > K-Move스쿨 클릭접속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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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 M o v e 프 로 그 램 안 내 ]

어떤 혜택이있나요?

구분 혜택 내용

해외취업 오프라인 상담(사전 예약 필수)

해외취업 관련 상담을 통해 국가별비자 발급 안내 및 유망직종 등 관련 정보 제공

해외취업 아카데미

해외취업 구직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제공(글로벌 인재의 조건, 네트워킹 스킬, 영문 이력서 작성 및 영어 면접법 등을 진행)- 신청 : 매월 신청 진행, 기수당 정원 50명 내외로 선발- 혜택 : 영어 수업 진행, 교육비 전액 무료, 수료증 발급 등

해외취업 알선 한인 기업 등 현지 인적 네트워크 소개해 드립니다.

해외취업 상시채용관해외 현지 멘토링, K-Move 센터 등현지에서 청년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K-Move의 사업을 지원합니다.

서울K-Move센터(선릉역 1번 출구 금강빌딩 4층)에 방문하면, 해외취업 상담 및 일자리 매칭 서비스 등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서울K-Move센터

일자리 매칭 좋은 해외 일자리를 찾고 있나요?

누가 참여할 수 있나요?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청년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프로그램별 사전 예약 및 신청 필요)

구직자

구인을 희망하는 해외 기업, 해외취업 유관기관(민간알선기관, 연수기관, 해외취업패키지 사업 운영기관, 리쿠르트사 등 공단 해외취업 수행 유관기관)이라면 상시채용관 이용 신청이 가능합니다.

구인 기업

어떻게

참여하나요[email protected]메일 제목란에 희망 상담일자/이름/연락처를 기재하여 신청상담시간 평일(09:00~12:00, 13:00~18:00) / 토, 일, 공휴일 제외

오프라인 상담

구분 담당자 연락처

유럽(독일) 02-6964-7073(7075)

미국 02-6964-7076

호주/뉴질랜드 02-6964-7071

중동 02-6964-7081

중남미 02-6964-7072

캐나다 02-6964-7092

싱가포르, 홍콩 02-6964-7082

중국 02-6964-7074

일본 052-714-8625

기타 아시아/아프리카 052-714-8626

국가별 담당자 직통번호

메일 제목란에 희망일자/기관, 기업 단체명/연락처를 기재하여 신청

상시 채용관 신청

[email protected]아카데미 관련 문의

[email protected]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410, 금강타워 4층 서울K-Move센터(선릉역 1번 출구)

주소

1577-9997전화

K-Move센터,이렇게

찾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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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 171170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 K - M o v e 프 로 그 램 안 내 ]

국내외 민간 알선기관 네트워크 활용을 통해 해외 양질의 일자리를 발굴하고 우수한 해외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민간 해외취업알선 지원

어떤 혜택이있나요?

민간 해외취업 알선을 통해 해외에 취업하게 되는 경우, 구직자가 부담해야 하는 알선 수수료(200만원)를 공단에서 알선 기관에 직접 지원합니다.

누가 참여할 수 있나요?

취업 인정 기준에 부합하고 동일회사에서 1개월 이상 근속한 해외취업자

• 취업일 ’16. 10. 13(목) 이후 취업자(예정)• 직종 청소원, 가정부, 음식서빙, 주유원 등 단순노무직 배제 • 비자 해당국 취업비자 취득• 근로조건 근로계약기간 12개월 이상, 연봉 2,400만원 이상• 근무지 취업자의 근무지가 국외로, 업무수행을 위해 출국 후 실제

근무 시작

취업 인정 기준

어떻게

참여하나요?월드잡플러스 사이트(www.worldjob.or.kr)에서 각 알선 업체별 지원 내용을 확인하세요.

월드잡플러스 메인 > 상단 메뉴 > 해외취업가이드 > 민간해외취업 알선업체 > 지원사업 모집 공고 확인 및 지원하기 클릭

접속방법

취업비자 발급 대행, 도착 후 픽업서비스 등 알선 업체별로 제공하는 부가서비스에 대해서는 개인이 그 실비를 부담해야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역은 각 취업정보별 개인 부담금 내역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최근 일부 알선기관의 허위 및 과장 광고로 인한 피해사례 등이 접수되고 있으니 세심한 주의를 당부 드립니다.

주의사항

민간알선지원

사업 참여기관

기관명 주요 담당 국가연락처

URL

GHR 미국 · 싱가포르 · 베트남 · 중국 02-558-2278ghr.or.kr

㈜글로벌터치코리아 일본02-319-2999www.global-touch.co.kr

㈜JSL 인재개발원 일본042-242-4412www.jslhrd.com

제이커리어 일본02-732-0948www.jcareer.co.kr

㈜글로벌인턴쉽컨설팅 미국 · 싱가포르 · 호주 · 일본 · UAE 02-2277-6543www.globalinternship.or.kr

㈜아이비코리아 일본 · UAE · 카타르 · 필리핀 · 싱가포르 02-556-4513/5356www.recruitivy.com

지인코리아 중국02-424-7622www.g-inkorea.com

주식회사 단잡 미국 · 싱가포르 · 중국 02-554-7574donjob.co.kr

해외인턴쉽교류센터㈜ 미국 · 호주 · 중국 · 일본 · 싱가포르 · 필리핀 02-516-1602www.globalinternshi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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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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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업에 성공 시, 해외에서 초기정착 및 장기근속을 할 수 있도록 해외취업성공장려금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해외취업성공장려금

사후지원 해외 취업에 성공했나요?

어떤 혜택이있나요?

구분 혜택 인원 지원 금액중동 및 신흥국 등 지원금 우대 국가

2,500명 예정(선착순)

400만원(1차 200만원/2차 200만원)

선진국 등 그 외 국가 200만원(1차 100만원/2차 100만원)

취업애로계층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장애인 등)

400만원(1차 200만원/2차 200만원)

어떻게

참여하나요?

지원절차

1. 월드잡플러스 회원 가입

반드시 취업 전, 가입 및 구직 등록 필요

2. 취업성공(인정 기준 부합)

취업증빙서류 확보 및 1차 장려금 신청 준비

3. 1차 장려금 신청(취업기간 1개월 후)

- 2017년의 경우 11월 30일 18시까지 신청 가능 ※ 예산 소진 시 조기 마감

- 월 15일 및 말일 기준 승인 후 익월 입금- 지원요건 미충족시 반려

3. 2차 장려금 신청(취업기간 6개월 후)

- 취업기간 6개월 시점 기준 익월 말일까지 신청

- 월 15일 및 말일 기준 승인 후 익월 입금- 지원요건 미충족시 반려

누가 참여할 수 있나요?

- 만 34세 이하, 본인 · 부모 및 배우자 합산소득 8분위 이하 해외취업성공자 ※ 2017년 신청자의 경우, 취업 전 월드잡플러스 사이트에 사전 구직등록 후 2016년 9월

4일 이후 취업자에 한함

- 취업인정기준 : 연봉 1,500만원 이상, 근로계약 1년 이상, 단순노무직 제외

월드잡플러스 사이트(www.worldjob.or.kr)에서 신청 가능합니다.

월드잡플러스 메인 > 오른쪽 빠른메뉴 > 해외취업성공장려금 클릭접속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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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무대 국경은 없다2016 K-Move 해외진출 성공수기 · 사진 공모전 수상작품집

발행처 한국산업인력공단

발행일 2017년 1월 23일

주소 울산광역시 중구 종가로 345(교동) 한국산업인력공단

문의처 K-Move 해외진출 고객센터 1577-9997

홈페이지 www.worldjob.or.kr기획 · 제작 (주)유브레인커뮤니케이션즈

© 이 책을 무단 복사 및 복제, 전재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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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넓히면 더 나은 길이 보입니다

학벌과 스펙에 좌절하여 자신만의 강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청년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포드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는 “비행기는 순풍이 아니라 역풍을 타고 이

륙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내어 도전한다면 또

다른 기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해외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서른여섯 명의 진솔한 경험담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