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경희대 ssk연구단 연합세션Ⅱ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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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17:50│1물리관 317호(308-317) 가톨릭대-경희대 SSK연구단 연합세션Ⅱ 사회 이영희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 * * 새로운 기술-환경 거버넌스를 위한 고찰 : 환경현상학 및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접점에 대한 탐구 이준석(경희대학교 과학기술사회연구센터) 성별화된 위험인식과 지식의 구성 –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유해화학물질 사용례를 중심으로- 김명심(경희대학교 과학기술사회연구센터), 김희윤(경희대학교 사회학과) 사전예방원칙과 합성생물학 거버넌스 : 생물다양성협약의 합성생물학 논의를 중심으로 우태민(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 * * 토론 강윤재(동국대학교) 박진희(동국대학교) 김지연(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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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17:50│1물리관 317호(308-317)

가톨릭대-경희대 SSK연구단 연합세션Ⅱ

사회

이영희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 * *

새로운 기술-환경 거버넌스를 위한 고찰

: 환경현상학 및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접점에 대한 탐구

이준석(경희대학교 과학기술사회연구센터)

성별화된 위험인식과 지식의 구성

–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유해화학물질 사용례를 중심으로-

김명심(경희대학교 과학기술사회연구센터), 김희윤(경희대학교 사회학과)

사전예방원칙과 합성생물학 거버넌스

: 생물다양성협약의 합성생물학 논의를 중심으로

우태민(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 * *

토론

강윤재(동국대학교)

박진희(동국대학교)

김지연(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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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환경 거버넌스를 위한 고찰: 환경현상학 및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접점에 대한 탐구1)

이준석

초록

이 논문은 우선, 최근 형성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이해의 틀 두 가지를 살펴 보고나서 이 두 이론의 접점을 탐구하고자 한다. 첫째는 십여 년쯤 전 새롭게 등장한 환경현상학이다. 환경현상학은 환경담론 분야에서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인류의 공통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다만 아직 국내외 과학기술학계에서는 환경현상학과 연관된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에, 본고의 앞부분은 이 새로운 사상조류를 검토해 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환경현상학에서는 기술과학을 현존재의 경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인간이 기술과학을 잘못 활용하여 현재의 환경위기가 발생하였다면 인간과 기술 사이에 올바른 거버넌스의 관계를 구축하고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론은, 과학기술학계에 등장하여 사회학, 인류학, 인문지리학, 생태학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이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기술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해석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특히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주요 이론가인 브루노 라투어의 사상은 인간과 환경 및 기술과학에 대해 근대주의를 너머서는 새로운 이해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환경 거버넌스를 위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유용한 도구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이론의 접점을 모색해보고, 그것이 자연과 사회, 역사적으로 구성된 인간 주체와 물리적인 시간 속의 비인간 객체 사이에 프래그마토고니(pragmatogony)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제시할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주제어: 기술-환경 거버넌스, 환경현상학, 행위자-연결망 이론, 근대화의 이분법, 프래그마토고니

1) 이 논문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3S1A3A205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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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워쇼스키 형제(Wachowski brothers)는 기발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학영화(SF)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형제 감독이다. 형 래리 워쇼스키와 동생 앤디 워쇼스키로 구성된 이들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던 세기의 전환기에 발표되었던 『매트릭스(The Matrix)』 3부작일 것이다.2)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면서 환경파괴와 기술에 의한 인간지배를 극단적으로 묘사했던 『매트릭스』 3부작은, 초고속카메라를 활용하여 총알이 지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갑작스럽게 늘리는 ‘총알-시간 들어가기(entering the bullet-time)’ 기법과 수십 대의 카메라를 대상 주변에 360도로 배치하여 특정 순간의 전방위 피사체 이미지를 구성하는 새로운 영상기법3) 등으로 우리에게 미학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울러 시각 효과 못지않게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영화가 서술하고 있는 근미래에 대한 묘사였다. 『매트릭스』의 세계관에 의하면 미래는 소수의 레지스탕스를 제외한 인류 전체가 기계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는 세상이고, 인간의 신체가 생산하는 미세한 생체전류를 기계가 전력원으로 사용하게 되는 세계를 영화는 묘사하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데 기술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이 기계의 배터리로서 활용된다는 기술의 역지배에 대한 발상,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의 인간들은 정작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디스토피아적 줄거리가 여러 가지 사고할 거리를 제공한 까닭에 이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담론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되었다(Irwin 2002, 2005; Lawrence 2004; Yeffeth 2003).

기술의 잘못된 활용으로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기술-환경이 결합된 아상블라쥬(assemblage)가 자연-사회를 지배한다는 이분법적 디스토피아의 설정 못지않게 이 영화와 관련되어 인구에 회자되었던 사실은, 『매트릭스』 삼부작을 제작할 당시 ‘워쇼스키 형제’였던 감독들이, 이후 4번째로 제작한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4)를 발표할 2012년 7월에는 ‘워쇼스키 남매’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형제 감독중에서 형인 래리 워쇼스키가 이름을 라나 워쇼스키로 개명하고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서 일어난 일이다. 래리/라나 워쇼스키는 자신들이 영화에서 묘사하곤 했던, 기술을 통해 인간의 몸과 정체성을 조작하는 포스트휴먼적 삶을 스스로 택한 것이다. 라나 워쇼스키의 행동과 결부된 논의는 본고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자세히 기술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은, 그/녀가 기술과학을 적극적으로 전유하여 자아정체성 형성과 결부된 자신의 몸을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술을 통한 그러한 정체성의 변용은 남성으로서의 몸-환경을 여성으로서의 몸-환경으로 바꿈으로서 가능했다.

2) 3부작의 제목과 발표연도는 각각 다음과 같다: 『매트릭스(The Matrix, 1999)』, 『매트릭스 리로디드(Matrix Reloaded, 2003)』, 『매트릭스 레볼루션(Matrix Revolution, 2003)』.

3) 영화 1부 초반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트리니티(Trinity)의 유명한 학락조(鶴落爪, crane kick)장면에서, 시간이 정지한 채 공중에 뜬 상태의 트리니티를 중심으로 카메라의 시점이 360도 회전한다. 이를 뜻한다.

4) 한국인 배우 배두나가 주인공 사이보그이자 미래의 신으로 등장해 언론의 관심을 끌었었다. 연구자의 사견으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불교의 윤회론 내지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하는 니체의 영겁회귀적 세계관을 훌륭하게 다루어 『매트릭스』 세계관을 완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평단의 비평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정작 흥행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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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워쇼스키가 보여준 행위는 인간이 기술과학을 사용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어느 정도까지 극단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시사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기술과학의 도움으로 극단적으로 변형시킨 래리/라나는,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로 명명한 유기체와 기술과학의 합성물이라고 할 수 있다(Haraway 1991). 라나 워쇼스키는, 사이보그론을 주장했던 해러웨이의 저서에 부제로 달려있던 ‘자연(본성)의 재발명(the reinvention of nature)’이라는 표현대로 자신의 젠더라는 본성(자연)을 재발명하고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재발명ㆍ재구성이 일어날 때 주체는 필연적인 경험의 변화를 겪으며, 경험의 변화는 곧 자신과 세계ㆍ타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인류가 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온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기술과학을 발전시켰고, 특히 17~18세기를 전후해서 근대화와 과학혁명을 경험하며 자아와 세계 및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을 정립하였다. 근대화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세계관은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대상이자 객체인 자연을 엄밀히 분리시켰고, 후자에 대한 전자의 지배와 이용을 정당화하였다. 1967년 『사이언스』에 기고한 논문에서 기술사학자 린 화이트 주니어는, 이러한 근대적 사유방식(특히 서양 기독교에 의한)이 현대에 우리가 경험하는 생태학적 환경위기의 근원이라고 해석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White Jr. 1967).5)

기술과학을 통해 자아와 환경을 변화시켰던 라나 워쇼스키가 중대한 경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을 체험하였듯, 기술과학을 통해 자아와 환경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온 인류 역시 공유된 경험(shared experience)을 통해 체험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등 최근의 환경위기와 결부된 담론구성을 통해, 인류가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아울러 그러한 사상적 담론의 구성과 인류 커뮤니티의 상호 형성은 환경사회학 뿐 아니라 과학기술학(STS)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새로운 담론을 창발시키며 인간은 경험과 인식의 변화를 다시 한 번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우선 새롭게 창발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 두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는 이 두 가지 주요한 이론의 접점이 존재하는가를 탐구해 보도록 하겠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을 요청하는 두 가지 이론적 프레임이 유사성을 넘어선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것을 통찰함으로써, 우리는 두 가지 사상의 융합과 상호 발전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펴볼 두 가지 이론의 하나는 21세기에 들어 새롭게 등장한 환경현상학(eco-phenomenology) 분야다. 환경현상학은 환경담론 분야에서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인류의 공통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십 여 년쯤 전에 등장한 이론이다. 다만 아직 과학기술학계에서는 환경현상학과 연관된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본고의 앞부분에서는 이 새로운 사상조류를 검토해 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환경현상학에서는 기술과학을 현존재의 경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파악한다. 인간이 기술과학을 잘못 활용하여 현재의 환경위기가 발생하였다면 인간과 기술 사이에 올바른 거버넌스의 관계를 구축하고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생명공학기술은 어느 한계까지 탐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ELSI적 논의6)

5) 이 주장은 ‘린 화이트 주니어 명제’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다만 린 화이트 주니어가 행한 유명한 기술결정론적 연구인 등자(stirrup)가 중세 유럽의 봉건제를 야기했다는 주장도 ‘린 화이트 주니어 명제’라고 불리우기도 하니 혼동을 조심할 것(White Jr. 1962, 1967 참조).

6) ELSI는 잘 알려졌다시피 기술과학의 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s (혹은 Issues)의 약자다.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과학의 윤리적ㆍ법적ㆍ사회적 함의를 연구하는 ELSI의 기원은, 인간게놈프로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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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민사회의 합의를 통해 대체 에너지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거버넌스의 문제, 혹은 특정 기술과 연관된 관련사회집단이 해당 인공물에 대한 거버넌스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논의는, 기술적 거버넌스와 연관해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의미있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현재의 환경위기를 초래한 기술 거버넌스와 인간의 경험을 해석하는데 있어 환경현상학은 새로운 준거틀을 마련해준다.

이 글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론은, 지난 세기 말 과학기술학(STS)계에 등장하여 최근 사회학, 인류학, 인문지리학, 생태학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이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기술과학을 해석하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하며, 특히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주요 이론가이자 주창자인 브루노 라투어(Latour 1993, 2004, 2013 등)의 사상은 인간과 환경 및 기술에 대해 근대주의를 넘는 새로운 이해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환경거버넌스를 위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유용한 도구를 마련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이 두 가지 이론의 접점을 모색해보고, 그것이 사회와 자연, 인간과 환경사이에 어떤 새로운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제시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환경현상학

1) 환경현상학의 등장

현상학이란 매우 다양한 방법론과 접근을 제시하는 사상 조류다. 세계에 존재하는 현상학적 방법론의 수는 세계에 있는 현상학자의 수와 같다고 할 정도로 이들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방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렇기에 피에르 테브나즈(Pierre Thevenaz)는 20세기 중반에 서술한 고전적인 현상학 해설서에서, 현상학을 “때로는 논리의 본질이나 의미에 대한 객관적 탐구로, 때로는 하나의 관념론으로, 때로는 심오한 심리학적 서술 또는 의식의 분석으로, 때로는 ‘선험적 자아(Ego transcendantal)’에 대한 명상으로, 때로는 경험 세계에 대한 구체적 접근 방법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그런가 하면 사르트르나 메를로-퐁티에서처럼 전적으로 실존주의와 합치되는 듯이 보이기도 하는 프로테우스(Protee)와 같다”고 적고 있다(테브나즈 1982[Thevenaz 1966]: 13).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에게 학문 분과를 비유하는 이 설명은 현상학적 방법론의 다양성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세계를 분석하고 기술하는 다면적 이론체계인 현상학을 연구해온 일군의 연구자들이, 최근 전 지구적 규모의 환경위기를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로써 ‘환경현상학(eco-phenomenolog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제안하고 있다. 찰스 브라운(Charles Brown)과 테드 토드바인(Ted Toadvine) 등으로 대변되는 일군의 신진 학자들과 데이빗 우드(David Wood) 등으로 대변되는 중견 학자들은 1999년 가을, 150년 전통의 캔사

트(HGP)를 초기에 이끌던 제임스 왓슨이 연구비의 3~5%를 신기술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는데 사용하겠다고 밝힌 데서 비롯된다. 1989년 9월, 미 국립보건원(NIH)과 에너지성(DOE)은 HGP의 ELSI를 탐구하는 조인트 워킹그룹을 결성하였고, 이 연구그룹은 ELSI의 시급한 연구주제로 네 가지를 천명하였다. 이들은 차례로 (1) 유전체 검사의 질과 접근도의 보장, (2) 보험회사와 고용주들에 의한 유전정보의 올바른 이용 보장, (3)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와 비밀 보장, (4) 전문가 및 일반 시민사회에 대한 관련 사항 교육이었다(Cooper 1994).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는데, 비판자들은 ELSI라는 프로그램이 생김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그것이 인간의 유전체에 대한 연구와 조작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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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주 Emporia 주립대학에서 지역환경 관련 콜로키엄을 개최하였고, 그 콜로키엄에서 발단된 사유체계를 발전시켜 이를 환경현상학이라 명명하였다. 해당 연구결과는 집대성되어 2003년 뉴욕주립대(SUNY) 출판부에서 『환경현상학: 지구 그 자체에로』라는 제목 하에 출판되었고, 이 책은 환경현상학 분야를 최초로 주창한 저서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후 비록 소수이지만 관련분야를 탐구하는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환경현상학을 발전시키고자 노력중이다. 가령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환경현상학적 분석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폴 에니스(Ennis 2007)의 연구나 섀론 하비(Harvey 2008)의 연구, 저명한 호주 시인 앤서니 로렌스(Anthony Lawrence)의 작품에서 환경현상학적 관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에밀리 비토(Bitto 2008)의 연구, 환경현상학을 발전시켜 생태론적 로고스(eco-logos)라는 개념을 추출하고자 하는 찰스 브라운(Brown 2005)의 연구 등이 두드러진다. 환경현상학은 특히 에코페미니즘과 결부되어 논의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분석의 예로는 캐런 워렌(Warren 2000)의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을 분석한 켈리 번스(Burns 2008)의 연구 등이 널리 읽힌다.

2) 환경현상학의 초기 연구들① 후설적 전통을 계승한 환경현상학 연구들

이처럼 발전 초기단계에 있는 환경현상학을 최초로 주창한 책은 앞서 언급했던 2003년의 연구서, Eco-Phenomenology: Back to the Earth Itself (Brown and Toadvine 2003)이다. 서론을 포함하여 이 저서에 실린 13편의 논문이 사실 이 분과학문의 기초를 다졌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섹션에서는 환경현상학 최초의 연구인 이들의 주장을 간단히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기술적ㆍ환경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술 경험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브라운과 토드바인은 이러한 맥락에서 책이 출간된 배경과 12편의 논문을 소개하며 새로운 사고체계의 구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현상학은 심리학주의 및 지나친 과학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해 후설이 창안한 학문이다. 비록 후대의 현상학자들이 후설 자신에게서도 벗어나는 새로운 방향의 연구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상학의 여러 분파들에서는 시조(始祖)인 후설의 그림자가 찾아진다. 환경현상학도 예외는 아니며, 찰스 브라운(Charles Brown)과 레스터 엠브리(Lester Embree), 그리고 에라짐 코학(Erazim Kohak)은 후설의 전통에 기초한 현상학적 관점에서 환경현상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정초를 시도하였다.

우선 이 책의 편집 총괄인 브라운(Brown 2003)은 자연주의에 대한 후설의 비판이 곧 그를 급진적 생태주의자7)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고 분석하였다. 브라운은,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기술과학을 통한 자연의 지배를 허용하고 장려하는 문화를 창조했기 때문에 오늘날 환경문제가 초래된 것이라면서, 린 화이트 주니어 명제와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 근대의 자연주의는 자연과 환경을 인간 경험의 외부에 위치한 외재적 요소로 파악하므로, 이것이 오늘날 환경위기가 도래한 원인이다. 현실을 연장(extension)과 인과관계로만 해석하는 데카르트적 자연주의는 사실과 가치를 양분하는 사상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술과학은 사실의 영역에서 실재(the Real)만을 다루고, 이는 선(the Good)과 올바름 등을 다루는 가치론과

7) 브라운은 또 급진적 생태주의자(radical ecologist)를 깊은 생태주의자(deep ecologist)ㆍ사회적 생태주의자(social ecologist)ㆍ에코페미니스트(eco-feminist)로 분류한다(ibid, 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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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후설이 제시하는 지향성의 개념은 가치론적 합리성(axiological rationality)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하므로, 이것이 환경현상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브라운의 견해다. ‘가치론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에서 앞부분의 ‘가치론적(axiological)’은 사실-가치 이분법에서 가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뒷부분의 ‘합리성(rationality)’은 사실-가치 이분법에서 사실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8) 따라서 이 개념은 두 영역의 하이브리드로서 작동하게 된다. 데카르트적 이분법에 의하면 기술과학은 자연을 객체로 다루는 사실과 합리성의 영역에서 작동하며, 따라서 가치론적 요소는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가치론적 합리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기술과학을 무제한으로 발전시키며 자연을 이용하는 것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윤리론적 근거를 가지게 된다. 브라운은 이러한 가치론적 합리성을 ‘생태론적 로고스(eco-logos)’라 명명하였고, 2005년의 후속연구(Brown 2005)에서 이를 개념적으로 더 발전시켰다.

후설에 기반하여 환경현상학을 정초하고자 하는 엠브리와 코학의 기본 입장도 브라운과 유사하다. 특히 엠브리(Embree 2003)는 사회ㆍ문화적인 생활세계 안에서의 ‘경험된 자연’과 환경에 대한 ‘마주함’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논의를 시도하였다. 엠브리가 사례로 언급했던 것은 책상과 잔디밭이다. 책상과 잔디밭은 단순히 나무로 만든 객체라거나 식물이 자라는 공간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책상은 그것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위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 인간의 경험과 연계될 때 비로소 세계 속에서의 ‘의미’를 획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객체(사실)의 영역과 주관적 가치의 영역이 크로스오버되는 현상이다. 잔디밭 역시 단순히 풀이 사는 장소가 아니며, 그 위에서 인간이 강아지나 아이와 놀기도 하고 일광욕도 하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생활세계 안에서의 사회문화적 객체로 현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후설과 엠브리에게 생활세계는 전적으로 문화적인 것이다. 엠브리에 의하면, 환경과 결부되어 올바른 기술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인간은 따라서 문화적 관점에서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등산이나 하이킹 등 자연을 즐기는 행동도 미학적-레크리에이션으로 경험할 수 있고, 친환경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 행위도 가치판단적 환경보호주의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이들은 현존재가 환경과 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행위들이며, 이는 환경에 대한 단순한 인식적 마주함과는 다르다(ibid, p. 45). 그리고 우리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환경과의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마주함이다. 엠브리가 예로 드는 동물의 권익보호 운동 외에도 오존층 보호 운동이나 탄소발자국 줄이기 운동 등은 그 자체로 의지적이고(volitional), 실천적이며, 정치적인 환경과의 마주함이 된다. 다만 이런 활동의 상당부분은 인간중심적이므로, 우리는 정치의 대상을 지구라는 환경에 거주하는 생물계 일반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엠브리는 이 확장된 정치성을 인간중심적 주관주의와 대비되는 생명중심적(biocentric)이라 부른다. 후설의 후기사상과 후설의 후학인 알프레드 슈츠의 입장은 흔히 구성현상학(constitutive phenomenology)이라고 불리우는데, 엠브리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이 후설적 전통을 계승하여 ‘환경에 대한 구성현상학’을 정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코학(Kohak 2003)의 입장도 엠브리와 유사하다. 코학은 후설이 정초한 초월적 현상학에서 새로운 합리성의 개념을 추출하고자 한다. 그는 물질적이고 기계론적이라 할 수 있는 기존의 합리성과 이성을 발전시켜 가치가 적재된 새로운 합리성과 이성을 우리의 사회와 문화 속에 구성하자고 역설했다. 이는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면서 코학이 취한 방법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가치의 이분법에서 종교는 가치의 영역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성주의를 설파하는 코학은 정작 지속적으로 기독교 바이블을 인용하며 논지를 전개하였다. 이는 주장을

8) 이 글 3절의 <표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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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진하는 자신의 방식 속에서 이미, 사실 영역의 이성 및 합리성과 가치 영역의 가치적재성(value-ladenness)을 융합시키고자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장기지속(longue duree, Braudel 1958)의 구조 속에서 환경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합리성에 직관적 요소를 덧붙이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다만 코학은, 앞서 논의된 브라운 등의 주장과는 반대로 현대의 환경위기가 서구문화 일반에 내재된 경향성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으며, 오히려 이성을 끝까지 추구하는 방식으로, 즉 근대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합리성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후설의 초월적 주관성 개념을 전유하며, 코학은 자신이 창안한 ‘질적 합리성(qualitative rationality)’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서구사회에서 그동안 중시되어온 합리성은 양적 합리성(quantitative rationality)이라고 할 수 있고, 양적 합리성은 기계론적이고 수량적인 정확성을 강조함으로써 근대화 이후 기술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코학은 양적 합리성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질적 합리성을 주장한 것인데, 우리가 질적 합리성의 세계로 전환한다면 다음의 몇 가지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우선 질적 합리성은 우리의 경험세계를, 인과관계를 통해서만 영향을 주고받는 시공간적 객체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잠김(interlocking)9)을 통해 연결된 요소들의 시스템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지식추구 방식이었던 경험론적ㆍ자연과학적 방법에서 벗어나 환경현상학적인 지식추구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거버넌스에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를 단순히 시공간 속에 객체들이 모여 있는 조작의 대상(‘대상적 세계’)으로 보지 않고, 가치판단이 포함된 ‘경험으로서의 생활세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입장을 전환시킬 것이다.

②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 등을 계승한 환경현상학 연구들

후설의 현상학을 계승하여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다음 세대의 대표적 학자들로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이 있다. 초기의 환경현상학 연구들은 특히 하이데거를 많이 전유하고 있는데, 마이클 짐머만(Michael Zimmerman)과 존 르웰린(John Llewelyn), 모니카 랭거(Monika Langer)와 돈 마리에타 주니어(Don Marietta Jr.) 등이 대표적이다.

짐머만(Zimmerman 2003)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퓌지스(physis) 개념을 전유한 하이데거의 관점을 논하면서, 그것이 전통적인 윤리적 규범(norm)을 부정하고 존재론과 윤리론을 분리시키는 한계가 있다고 설파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만유내재신설(萬有內在神說, panentheism)을 제안하였는데 영성을 강조하는 그의 이런 주장은 스피노자적 범신론의 색채가 짙다. 그동안 영ㆍ미적 사상전통은 자연에 대한 논쟁을 인간중심주의와 생명중심주의로 대비해서 분석하였다.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은 사회와 문화의 영역에 가치론적 요소가 내재하고 자연은 도구적 성격만을 갖는다는 견해이고, 생명중심주의는 인간세계ㆍ사회와 환경ㆍ자연 사이에는 경계로 구분되는 단절적인 요소가 없다는 견해다. 따라서 생명중심주의적 관점에서는 가치론적 사유가 인간사회와 자연환경 양자에 대해 연속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짐머만에 의하면 현상학자로서 하이데거의 사유는 이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비평가들은 하이데거가 인간중심주의적이라고 분석하지만 정작 하이데거 본인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ibid, p. 73). 또 자연보존에 대한 하이데거의 견해도, 그가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것

9) 코학의 표현인 ‘상호 잠김(interlocking)’은, 이 글 3절에 나오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에서 브루노 라투어가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소의 ‘얽힘(entanglement)’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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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보기 때문에 가치론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이라고 짐머만은 분석한다. 이 때문에 그의 사유는 사회와 자연을 분리하는 영ㆍ미 전통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가치체계를 우리에게 제시하며, 이것이 환경현상학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하이데거 기술철학에서 환경의 ‘가치’는 자연에서 활용도를 발견하는 근대인간의 주체 영역에서 생겨난다. 그에게 기술적 근대성이란 주체영역에서 발생한 가치체계를 비인간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근거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초기 하이데거의 다소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는, 자연은 인간에게 유용성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저장소와 같았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소박한 실재론을 비평하기 위해 그가 제시했던 기술과 도구의 용재성(用在性, zuhandenheit [readiness-to-hand]) 및 전재성(前在性, vorhandenheit [presence-at-hand])에 관한 분류는 이에 대한 확장된 사유를 우리에게 제시하였다. 용재성의 개념은 기술적 도구가 인간에 의해 사용되면서 그 존재가 망각되는 수준으로 사라지는 경우를 뜻한다. 가령 망치질을 하고 있는 능숙한 목수는, 손으로 쥐고 있는 망치를 자신이 잘 붙잡고 있는지, 망치가 무슨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지 등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망치는 그 유용성을 통해 현존재와 관계를 형성하고 이것이 망치의 용재성이다. 하지만 망치질 도중 망치가 망가지게 되면, 목수에게 망치는 새로운 존재로 드러난다. 이제 손 안의 망치는 그 재질이 무엇이고, 왜 그런 형태를 띄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요소들이 결합하고 있는지 등이 중요하게 경험된다. 이는 그 순간 도구로서 망치가 드러내는 전재성이다. 이러한 분류는 주변 환경에 대한 경험을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짐머만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을 재분석하는 토마스 시한(Thoman Sheehan)의 해석을 설명하며,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반(反)인간중심주의적인 환경주의와 연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임을 고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환경현상학적 작업이 될 것이다.

환경현상학자 르웰린과 랭거도 기존의 연구전통에서 친(親)-생태적인 현상학의 필요성을 도출했다. 르웰린(Llewelyn 2003)은 현존재에 대한 하이데거의 분석과 초월적 주체에 대한 후설의 개념을 연계시키면서 이 작업을 하였고, 랭거는 하이데거 외에도 니체와 메를로-퐁티를 읽으면서 작업을 진행하였다. 후설의 주체 개념이 간주관성을 중시하고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세계를 도구적 유용성의 총체(totality)로 인식하는 것은 두 사상이 갖는 인간중심주의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들을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다. 환경현상학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인 브라운과 토드바인에 의하면, 르웰린의 작업에서 가장 독창성이 드러나는 부분은 그가 하이데거의 ‘네 겹(Fourfold)’의 개념과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타자와 마주하는 얼굴의 단일성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요청’의 개념을 통해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데 있다(Brown and Toadvine 2003: xiv). 후기 하이데거 사상에 등장하는 네 겹은 하늘ㆍ땅ㆍ신ㆍ인간(sky, earth, gods, mortals)을 의미하는데, 만일 환경이 신과 하늘의 영역에 속한다면 사회는 인간과 땅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땅과 하늘이 자연을 뜻하고 인간과 (문화적으로 구성된 존재로서) 신이 사회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본다 하더라도 이 네 겹의 존재들이 본질적으로 끝없이 서로 상호기반(interdependence)한다는 하이데거의 관점은 결국 자연과 사회, 비인간과 인간이 항상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얽혀있고, 타자로써 자연의 얼굴을 마주하는 인간이 그 경험에서 윤리적 함의를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인간 외에 세계를 구성하는 비인간도 포함하는 새로운 형태의 친-생태적이고 윤리적인 사유체계를 갖게 될 것이다. 르웰린은 이를 ‘심층 환경현상학(deep eco-phenomenology)’이라고 불렀고, 그는 심층 환경현상학이 기존의 인간중심적인 ‘표층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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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학’을 대체할 것으로 보았다.르웰린의 작업을 포함하여, 그동안의 생태학적 담론에서는 하이데거의 저술이 자주 인용되

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이 연구들은 주로 기술철학자로서 하이데거를 다룬 것이었고, 본고에서 논하고 있는 일군의 학자들은 그의 사상이 갖는 현상학적 함의의 분석과 발전에 집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랭거(Langer 2003)는 특히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세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였는데 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가치’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은 필연적으로 해당 객체를 주관적 사유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예를 들어 ‘환경윤리’를 정립하고자 하는 연구들은 역설적으로 환경을 주체의 하위에 놓는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무엇이 ‘사유’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하이데거는 사유를 계산적 사유(calculative thinking)와 명상적 사유(meditative thinking)로 분류하였다. 전자는 근대화 이후 우리의 세계에 만연한 사유방식으로서, 환원적이고 강압적이며 목적지향적이다. 계산적 사유는 생산성ㆍ효율성ㆍ유용성ㆍ규칙ㆍ계획ㆍ통제 등과 연관된다(ibid, p. 113). 이에 반해 명상적 사유는 사유의 대상을 객체화하거나 통제하고자 하지 않고 존재의 기저에서 함께 작동하고자 한다. 친환경적 현상학은 명상적 사유로의 이행이 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언어의 중요성을 숙고해야 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언어가 인간을 비인간과 구분시키는 요소이다. 급격히 증가하는 환경파괴에 대한 담론적 언어는, 현존재로 하여금 무언가 빨리 사유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급격하게 새로운 환경 거버넌스를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은, 그것을 ‘계산적 사유’를 통한 정치적ㆍ사회경제적인 방식으로 이루고자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인간을 존재에서 멀어지게 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랭거의 분석이다.

나아가 그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현상학적 작업으로 읽었다. 많은 고등학생들이 즐겨 읽고 감명을 받는 이 책은, 초인(超人)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수많은 우화와 비유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 책에서 액자구조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우화의 상당부분은 동물의 비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의식의 진보과정을 설명하는 유명한 우화에서 이 초인은 어린 아이 이전에 낙타와 사자를 등장시킨다. 랭거에 의하면 니체의 이러한 사유방식은 비인간과 환경을 생활세계에 포함시키고, 극단적인 과학주의 및 합리주의에 반대하며, 데카르트 이후 우리의 세계를 지배하는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환경현상학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물을 포함하는 비인간(non-human)보다 인간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여성보다 남성을 우월한 존재로 보며, 제 3세계보다 서양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자연과 환경보다 사회와 문화를 우월한 존재로 보는 서구적 이분법의 사유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환경위기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니체를 전유함으로써 우리는 이를 극복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환경현상학적 분석이다.

아울러 랭거는, 메를로-퐁티가 주장하는 살(flesh)의 존재론과 신체성의 발견도 환경현상학의 구성에 이용하고자 한다. 세계가 살로 구성되어 있다는 메를로-퐁티의 사유에 의하면 가령 깃털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낮은 문을 피해서 통과하고자 하는 경우 그의 신체성이 모자장식인 깃털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상학적 관점에서는, 특정한 기술과학을 사용하는 주체의 경험에 비인간인 기술적 인공물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또 몸(신체, 물질)과 사유(정신, 빗물질)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나와 타자도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 그의 관점은 환경현상학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이원론에 대한 대안이 된다. 다만 여류 환경현상학자인 랭거는, 니체나 메를로-퐁티 모두 남근중심적인 사유를 전개하였고 이들은 자연에 대한 정복이 곧 여성에 대한 지배와 같은 맥락의 사유임을 통찰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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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에코페미니즘적 접근이 빈 공간을 메꿔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환경현상학자 마리에타 주니어는, 데카르트적 세계관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분석을 재분석하였다. 메를로-퐁티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성과 함께 우리가 가지게 된 지배적 사유방식을 ‘객관주의적 존재론(objectivistic ontology)’으로 보면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였다. 객관주의적 존재론은 인간의 경험을 주관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진리의 근거와는 무관한 것으로 본다. 객관주의적 존재론에 의하면 오직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써만 진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메를로-퐁티의 사유에서 두 가지 중요한 통찰을 배울 수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경험이 분절되지 않고 총체적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된 세계 속의 우리의 의식에서 사실 정보와 의미ㆍ가치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Marietta Jr. 2003: 122). 이처럼 인간의 자아와 환경을 분리하지 않고 사실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도 구분하지 않는 새로운 환경현상학적 사유양식을 마리에타 주니어는 ‘비판적 전일론(critical holism)’이라고 명명하였다. 비판적 전일론을 통해 우리는 인간중심적 사고와 데카르트적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환경과 사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 마리에타 주니어를 포함한 환경현상학자들의 주장이다.

3.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1)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근대화의 이분법

잘 알려져 있듯이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은 파리 학파(Paris school)라고도 불리우는 브루노 라투어(Bruno Latour)와 미셀 깔롱(Michel Callon), 그리고 당시 랭카스터대에 있던 존 로(John Law) 등 일군의 학자들이 1980년대 이후 구성해온,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사유체계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조금씩 다른 이론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위 세 명을 중심으로 논의가 발단되었고, 스티브 울가(Steve Woolgar) 및 마들레인 아크리치(Madeleine Akrich)등 사회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초기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었다.

필자가 보기에 행위자-연결망 이론이 기술과학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라투어와 울가(Latour and Woolgar 1986[1979])가 공저한 『실험실 생활(Laboratory Life)』의 표지그림이 잘 보여주고 있다(<그림 1> 참조). 『실험실 생활』의 표지는 붉은색 바탕위의 흑백 바둑판을 그려놓고 있는데, 바둑판 위에는 흑돌과 백돌이 대마들을 형성해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고 있다. 바둑을 두는 동안 기사들은 미리 결정된 수순을 따라 돌을 놓는 것이 아니며, 전개되어가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그때 그때 최선의 수를 생각해서 두는 것이다. 이 메타포에서 우리는 흑돌을 기술과학으로 보고 백돌을 사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흑돌과 백돌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결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게임이 전개되어가는 와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고받으면서 한 판의 게임을 공동구성 내지는 상호형성(co-construction, co-shaping 혹은 coproduction)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흑돌(기술과학)이 백돌(사회)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주장하거나 흑돌의 대마가 백돌(사회)과 무관한 독립변수처럼 작동하면서 내적 논리에 의해 발전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사회와 무관한 기술경로(technological path)를 통해 기술이 진화한다고 주장하고 역사적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서 기술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기술결정론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백돌(사회)의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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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SST, social shaping of technology) 혹은 사회적 구성론(SCOT, 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등의 사회결정론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둑은 흑돌과 백돌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구성된다. 때로 백돌의 영향력이 강해 보이는 시점도 있고, 때로 흑돌이 상대적으로 판의 흐름을 강하게 움직이는 듯한 경우도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기술과학(흑돌)과 사회(백돌)는 매 순간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으면서 공동구성된다. 이는 우발성(contingency)을 강조하는 구성주의적 관점과도 일치한다. 한 판의 대국은 그때그때 우발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기사들의 노력을 통해 구성되어가는데, 이는 실험실에서의 기술과학적 실천을 점진적이고 순간적인 정당화 과정(piecemeal and ad hoc justifications)의 연속으로 분석한 과학기술학의 실험실 연구 전통(Lynch 1985)의 묘사와도 일치한다. 또 바둑알이 놓이는 위치가 완전히 임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소적 상황과 대국의 맥락을 통해 정해지듯 인간이 구성하는 기술과학도 언제나 상황적이고 정위된 지식(situated knowledge, Haraway 1988)이 된다.

기사들은 앞선 수(手)에 기반하여 현재의 수를 두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temporality)이 아닌 앞선 수와의 맥락적 역사성(historicity)에 근거해서 새로운 수가 두어짐을 뜻하며, 선행하는 지식 혹은 패러다임의 맥락 하에서 현재의 새로운 지식과 패러다임이 구성됨을 의미한다. 또 마치 개별 돌(행위자) 하나하나와 전체 대마에서의 형국(연결망)을 함께 고려하는 바둑 기사처럼, 행위자-연결망 이론가들은 개별적인 행위자 혹은 행위소들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이들이 어떻게 상호 연결망을 구성하여 번역의 연쇄(chain of translation)를 이루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필자가 보기에 개별돌과 대마의 관계는 행위자와 연결망의 관계이기도 하고, 개별자와 환경의 관계이기도 하며,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이기도 하다. “기술(적 인공물)은 사회가 지속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Technology is society made durable.)”라는 라투어(Latour 1990)의 표현을 떠올려보면, 하나의 행위자나 행위소 안에는 곧 방대한 네트워크가 결절(結節, punctualization)된 채 블랙박스(blackbox)화 되어있음을 알 수 있고, 그때그때 변화하는 사회의 복잡한 과학적 지식ㆍ기술에 관한 이론ㆍ물질적 요소들ㆍ연구 기금ㆍ인적 자원ㆍ법률과 제도ㆍ종교와 윤리의 가치판단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행위자-연결망 아상블라쥬(assemblage)가 물질화를 통해 구현된 것이 곧 특정한 기술(적 인공물)임을 알 수 있다.

즉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개별적인 행위자만을 다루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들을 대칭적으로 함께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엄밀히 말하면 해당 행위자와 연결망을 구성하지 않은 채 존재하는 별개의 ‘환경’이란 것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프로젝트 기준으로 본다면 행위자들 간에 연결망을 형성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지만 장기지속 수

<그림 1> 『실험실 생활』(Latour and Woolgar 1986[1979])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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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 긴 시간적 관점에서 본다면, 특히 인류와 지구 환경(라투어의 최근 표현으로는 ‘가이아(Gaia, Latour 2013)’)의 관계처럼 수 십 만년 정도의 긴 호흡으로 분석하는 경우 연결망은 점점 더 결속되어 왔다고 보아야 한다. 지구상의 각종 비인간 행위소들(자연의 영역)과 인간 행위자들(사회의 영역)은, 근대화 이후 분리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연결망을 상호 구성하였기 때문이다(Latour 1993). 근대화와 더불어 자연과 사회의 영역에서 발생했다고 가정되어 온 분리작용을 라투어는 순수화(purification)라 부른다. 마치 물과 물 안에 떠다니는 부유물질들을 정수기를 통해 분리하듯, 자연과 그 안에 섞여있던 사회적 요소들을 분리해버린 것이 곧 17세기 정도에 발생한 근대화의 과정이었고, 갈릴레오와 뉴턴의 고전역학 혁명ㆍ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천문학 혁명ㆍ라부와지에의 화학 혁명 등이 17~18세기에 발생한 것은 그러한 근대화의 결과로써 수반된 일이라는 것이 근대화 이론에서 주장한 바였다. 인간은 종교, 미신, 신화, 마술, 형이상학 등의 ‘사회-문화’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순수한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이를 ‘객관적’으로 탐구하게 됨으로써, 더 이상 ‘자연철학’이 아닌 ‘과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전자인 사회ㆍ문화ㆍ주관성의 영역은 가치(value)의 영역과 결부되고, 후자의 자연ㆍ객관성의 영역은 사실(fact)의 영역과 결부된다. 자연과학이란, 전자의 사회문화적이고 주관적ㆍ가치판단적인 요소들은 걸러내고(purification) 후자의 자연만을 객관성을 통해 분석하여 거기서 사실을 추출해 내는 행위라고 생각되었다. 여기서 인간 행위자는 사회와 문화를 구축하였고 자연은 비인간 행위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논의를 하나의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기 도표는 본문에서 서술한 자연축과 사회축의 분리를 정리한 것이다. 이 표가 보여주듯 근대화 이후 인간은 자연축과 사회ㆍ문화축으로 세계를 분리하였고, 객체(객관성)와 주체(주관성), 비인간과 인간, 물질과 정신, 사실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 등을 분리하였다. 흔히 언급되는 자연/문화 분리(nature/culture divide)나 본성/양육(nature/nurture) 논쟁, 사실-가치 구분 등은 모두 이 도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맨 마지막 항목의 자연환경과 인간의 분리다. 앞서 환경현상학을 언급하며 살펴보았듯, 인간은 근대성을 통해 자연을 활용하고 (다소 강한 어조로는) 수탈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그 물질적 배경에는 자연계를 의도대로 다룰 수 있게 된 기술과학적 발전이 있었고, 정신적 배경에는 그것을 허용하고 조장했던 서구의 종교와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날 환경위기를 초래하게 되었고, 이제 인류는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근대화의 이분법이라는 분리도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환상이다. 실제로 자연축과 사회축은 순수화의 과정을 통해 물과 부유물처럼 걸러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 행위자들이 더 많은 비인간 행위소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가며 행위자-연결망을 점차 확장시킨 것이 근대화 및 과학혁명의 실체이다. 라투어는 순수화와 반대되는 이러한 과정을 하이브리드화(hybridization)의 과정이라고 명명하였다. 자연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은 점점 더 얽혀왔으며,

자연축(nature-pole) - 비인간행위소

객체-객관성-시간성

대상으로서의 물질 –데카르트적 연장

사실 – 기술과학- 유용성, 합리성

자연환경(Gaia)

사회축(society-pole) - 인간행위자 - 문화

주체-주관성-역사성

사유하는 정신 – 데카르트적 코기토

가치–윤리,종교,도덕,법,정치 - 의미,감성 인류

<표 1> 근대화의 이분법과 세계의 분리(이준석(2012)의 표를 발전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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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예는 실험실에서 파스퇴르와 같은 과학자가 세균과의 힘싸움(trial of strength)에서 승리하게 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알 수 있다. 과학자는 실험실 내부에서 현미경 등의 실험도구, 동료 과학자들, 외부 연구기관의 동료과학자들, 학술단체와 우편으로 배송되어오는 논문ㆍ학술지 및 그 안에 실려있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 등의 요소들과 점점 더 많은 네트워킹을 하였고, 그것이 세균을 이기도록 만든 원동력이다. 즉 인간은 순수화가 아닌 더 많은 하이브리드화를 통해 근대화와 과학적 발전을 가능케하여 왔다는 것이 라투어의 스케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근대화(to modernize)라는 기획에 더 이상 기댈 수 없다. 근대화라는 잘못된 환상의 결과가 환경파괴와 인간 스스로의 자멸이라는 위기를 초래한 것이라면, 우리는 근대화의 대안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안은, 사회와 자연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단히 복합적인 중합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올바로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라투어는 근대화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이를 생태화(to ecologize)의 과정이라 부른다. 생태화의 과정은 <표 1>과 같은 근대화의 이분법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이것이 인간과 비인간을 대칭적으로 다루고 자연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을 굳이 분리하지 않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근간이 되었다. 한편 이러한 논의는 라투어를 비(非)근대주의(amodernism)의 주창자로 만들었고, 근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이 한창이던 ’90년대에 라투어는, 근대성 자체가 없었기에 이러한 논쟁이 무의미함을 보이면서 비트겐슈타인적 의미에서 이 논쟁을 ‘해결’이 아닌 ‘해소’시켜 버렸다.

2) 조립주의와 프래그마토고니, 그리고 새로운 정치생태학

이후 라투어의 비근대주의는 이십년 정도 지속적인 발전을 하였고, 그동안 있었던 행위자-연결망 이론 자체의 개념적 발전을 반영하여 ‘조립주의(compositionism)’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되었다(Latour 2010). 아직 이 명칭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조립주의의 핵심은 크게 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과 비인간이 얽혀있고, 자연과 사회가 구분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영역에 속하는 기술과학과 가치영역에 속하는 정치 영역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상기 도표에서 보듯, 상단의 영역과 하단의 영역 사이를 가로지르는 근대성의 명확한 분기를 부정하는 인식론적 통찰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고 사회와 자연(Gaia)을 아우르는 전혀 새로운 존재론적 세계관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요청하고 있으며, 새로운 존재론 하의 세계에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가치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 새로운 사유체계 하에서는 가치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ㆍ법ㆍ종교ㆍ윤리가 사실의 영역에 속하는 기술과학과 연계될 것이다. 근대성이 지배하던 지난 2~3세기 동안 인류는 기술과학의 영역에서 종교적ㆍ정치적 함의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가령 특정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가치체계를 담고 있는 우생학은 가치-사실 이분법을 건너뛰는 존재였기에 참된 과학이 아니었고, 생명공학의 급격한 발달을 목도한 지난 세기 말 이전까지는 법을 제정하고 사회제도를 정비하는 데에 과학의 결과를 끌어 쓰려던 시도가 종종 과학주의라고 비판받았다. 앞의 사례는 사실의 영역에 가치영역이 틈입한 것으로 비난받았고, 뒤의 사례는 가치의 영역에 사실의 영역이 침입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행위자-연결망 이론 혹은 ‘조립주의’에서는, 산과 강, 바위와 동식물 등의 자연환경과 메르스(MERS) 바이러스 및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종말고고도지역방위 체계와 같은 비인간행위소를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써 정치-과학의 융합체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근대화의 이분법에 의하면 자연-비인간-객체-사실의 영역은 사회-인간-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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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와는 분리된 요소로 다루어졌지만, 이러한 (틀렸다기보다는 좋지 않은) 사고방식의 결과는 좋지 않은 행위자-연결망의 ‘조립’을 가져왔다. 좋지 못했던 조립의 결과는 생존을 위협하는 가이아의 임박한 죽음으로 다가왔고, 질주하는 저거넛(juggernaut)처럼 쉽게 멈춰지지 않으면서 전체 생명권(biosphere)을 위협하는 오존층 파괴나 온난화 문제로 현현하게 되었다. 상술하였듯, ‘근대화’라는 잘못된 조립의 결과로 일어난 좋지 못한 결과를 만회하기 위하여 라투어는 ‘생태화’라는 새로운 조립방식을 제안한다. 새롭게 조립되는 인간과 비인간, 사회와 자연의 집합체(collective)는 새로운 사물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를 가져올 것이고, 이는 새로운 사물정치(Dingpolitik)로 발전할 것이다(Latour 2004). 그리고 이처럼 객체ㆍ비인간ㆍ자연을 사회ㆍ인간ㆍ가치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라투어는 프래그마토고니(pragmatogony)라고 명명하였다.

프래그마토고니는 라투어가 많이 인용하는 프랑스 철학자 미셀 세르(Serres 1987)가 고안한 개념으로서, 인간과 비인간의 역할을 교환하고 주체가 객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객체가 주체를 향하도록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그림 3> 참조). 세르는 ‘우주속 존재의 기원(cosmogony)’과 같은 맥락에서 이 용어를 조어했으며, 객체 혹은 물체와 같은 비인간 행위소에 대한 신비스러운 계보학(mythical genealogy of objects)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라투어는 밝힌다(Latour 1999: 176). 근대화의 이분법이 주체에서 객체로 향하는 일방적인 세계인식과 통제를 강조했다면, 프래그마토고니는 역방향의 기원과 힘인 객체에서 주체로 향하는 영향력, 대상인 자연이 주체인 인간에 갖는 역통제, 인간에서 연원하는 객체가 아니라 사물에 기원하는 인간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대화의 프레임속에서 사회에 거주하던 인간 주체는 자연ㆍ대상과의 연결을 지워버렸고, 그 결과 의미가 제거된 비인간행위소들이 거주하던 자연과 환경을 대상화하였다. 하지만 프래그마토고니를 되살리게 되면 이처럼 자연을 분석하고 해체하고 무제한으로 활용하는 것에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근대화의 이분법이 야기한 폐단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연속의 비인간 객체와 문화속의 인간 주체간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재정립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의 역전은 새로운 당위성의 정치학을 예비할 수 있기 때문이며, 라투어는 그러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프래그마토고니로 이해한다.

프래그마토고니의 개념을 확장하기 위해 라투어는 11단계의 사회축과 기술축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였다(Latour 1994). 이들은 차례로 1. 사회적 복잡성(social complexity), 2. 기본도구(basic tool kit), 3. 사회적 복합(social complication), 4. 테크닉(techniques), 5. 사회(society), 6. 내재화된 생태학(internalized ecology), 7. 메가머신(megamachine), 8. 산업(industry), 9. 권력의 네트워크(networks of power), 10. 기술(technologies), 11. 정치생태학(political ecology)의 11가지이며, 홀수 번째의 항목은 근대화의 이분법에서 사회ㆍ문화ㆍ인간축의 영역에, 짝수 번째의 항목은 이분법에서 기술ㆍ자연ㆍ비인간축의 영역에 속한다. 이처럼 사회기술적 연계(sociotechnical association)는 1단계부터 시작하여 11단계까지에 걸쳐 일어나며, 이행하는 매 단계는 하나의 영역에서 반대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경계넘기(crossover)이다. 라투어는 각각의 경계넘기에 대해 명칭을 부여하고 있지만, 본고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각각의 이행단계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분석은 생략하겠다. 다만 10번의 ‘기술’항목에서 11번의 ‘정치생태학’으로 넘어가는 프래그마토고니의 최종 단계는 살펴보고자 한다. 각각의 크로스오버는 인간 행위자 및 비인간 행위소들에 의한 매개(mediation)를 통해 일어나는데, 마지막 단계의 프래그마토고니에 붙여진 명칭은 ‘자연의 정치학(politics of natur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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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정치학’이란 올바른 정치생태학을 정립하기 위해 인류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며, 이 마지막 층위의 프래그마토고니를 분석한 라투어의 2004년 저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새로운 ‘과학기술학적 정치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라투어는 기존의 사실-가치 이분법을 부정하면서 도래하는 결론을 더욱 심화해서 탐구한다. 자연축과 사회축, 사실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을 나누는 이분법이 부정된다는 의미는, ‘과학은 사실을 다루고 정치는 가치를 다룬다’는 식의 소박한 사고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엄밀히 말하면 비인간 객체를 사실의 영역안에서 조립하고, 인간사회만을 가치와 조립하려고 한 잘못된 정치적 사유가 생태위기를 초래한 것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이분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 대안으로 라투어가 제시하는 것은 새로운 양원제(bicameralism)이다. <그림 2>를 참조하면, 좌측에 보이는 양원(two house) 집합체의 도식은 기존의 자연-사회 이분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측의 도식은 라투어가 제안하는 새로운 기술-환경 거버넌스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좌측 도식에서 보면 왼쪽에 있는 동그라미가 자연-사회 이분법에서 자연의 영역을 지시하며, 오른쪽의 동그라미는 자연-사회 이분법에서의 사회의 영역을 뜻한다. 왼쪽의 자연영역은 사물 및 비인간의 집합(국회)이고, 우측의 사회영역은 인간들의 집합(국회)이다. 근대성의 이분법에 기초했던 기존의 양원 집합체는 이 둘이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라투어는 이러한 이분법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측 그림과 같은 새로운 체제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우측의 도식에는 자연과 사회, 사실과 가치가 구분되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행위자-연결망 중합체 동그라미로 묘사되어 있다. 이 안에서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소들은 행위자-연결망을 끝없이 만들 것이다.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 있는 우측의 상태가, 새로운 행위소(가령 프리온 단백질 혹은 침몰한 선박)의 등장으로 인해 흔들리고, 의문시되며, 논쟁에 빠지게 된다. 기존의 양원제가 사실과 가치의 두 조건으로 나뉘었다면, 새로운 양원제는 ‘새롭게 등장한 인간ㆍ비인간 행위소를 고려해서(taking into account)’ 논쟁이 일어나는 영역과, 임시로 구성된 사실ㆍ인공물에 의거해서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arranging in rank order)’ 영역으로 나뉜다. 새로운 행위소를 생활세계에 포함시켜 논의를 하게 되는 전자의 영역은 다시 당혹(perplexity)과 상의(consultation)의 두 요소로 나뉜다. 가령 프리온 단백질,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 바이러스, THAAD 미사일 시스템 등 새롭게 등장한 행위소는, 어느 정도

<그림 2> 라투어의 새로운 정치생태학이 제안하는 기술-환경 거버넌스의 도식(Latour 2004: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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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화되어있던 집합체의 안정성을 흔들면서 새로운 고려를 하도록(taking into account) 요청한다. 이때 프리온이 광우병을 야기하는지, 메르스라는 질환이 어느 정도 위험한지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단계이므로 사회 구성원은 ‘당혹’을 느끼게 된다. 당혹을 느낀 행위자들은 전문가나 연계전문가, 심지어 일반인 행위자에게까지 네트워크를 펼쳐 ‘상의’를 할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당혹’과 ‘상의’ 사이에서 실험실로 들어가 해당 문제에 대한 과학적 발견을 추구할 것이고, 사회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도 이 단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에 대한 재해석과 해법을 찾고자 할 것이다. 이 작업들은 모두 자연과 사회의 경계를 넘으면서 일어난다.

이처럼 고려(taking into account) 단계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해법이 찾아지면, 자연-사회 중합체에 거주하는 인간-비인간의 행위자들은 그 해법을 현실에 적용시켜 질서부여작업(ordering)을 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단백질이 위험하다는 것이 (그 당시의) 사실로 발견된 경우, 이를 통제하는 검역절차와 방역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정치적 작업이 이 단계에서 수반된다. 이는 질서부여(arranging in rank order)에 해당한다. 질서부여 영역은 고려의 영역보다 훨씬 안정화되어있고, 사실-인공물(fact-artifact)의 스펙트럼에서 사실에 가까운 문장(statement)을 다루며, 실질적인 정치적 행위가 발생한다. 기술 및 환경과 연관된 거버넌스도 질서부여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고려 영역과 질서부여 영역은, 마치 정치체제하에서의 하원과 상원처럼 양원제로서 작동한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사물, 이슈도 하나의 영역에 머무르는 일 없이 끊임없이 두 사이를 왕복하며 자연-사회 중합체와 영향력을 주고받게 된다. 비록 특정한 시점에 확실한 사실로 생각되면서 질서부여의 영역에 위치하던 텍스트(예. “특정한 쇠고기를 수입하면 대다수 한국인의 건강에 유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혹은 “어떤 선박이 어떤 이유로 침몰했다.” 등)도 다음 순간 다시 고려 영역으로 이동해서 처음부터 점검받게 될 수 있으며, 고려의 영역에서 논쟁이 진행되던 텍스트(예. “광속도는 모든 계에서 일정하며 중력은 빛을 휘게 만든다.” 혹은 “DNA는 이중나선 형태이다.”)가 다음 순간 인공물이 아닌 사실의 지위를 획득하기도 한다. 이러한 질서부여 영역에서는 위계화(hierachization)와 제도화(institution)의 요소가 관찰된다. 위계화는 고려의 영역에서 넘어온 특정한 텍스트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예를 들어 현실의 어느 위치에 새로 틈입된 문장을 삽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계이고, 제도화는 ‘자동차연료 탄소배출 제한법’과 같은 법률적 제도화를 통해 특정한 텍스트(예. “CO2가 온난화를 야기하며, 파국이 올 수 있으므로 자동차연료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한해야한다.”)가 갖는 행위력을 고정시키고 강화시키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생태화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 새로운 정치생태학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4. 새로운 기술-환경 거버넌스의 제안

2006년 6월 2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천성산에 거주하는 꼬리치레도롱뇽(Onychodactylus fischeri)과 내원사 주지 김정심, 미타암 주지 김병일, 그리고 환경단체 ‘도롱뇽의 친구들(대표자 조경숙)’이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소송수계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을 대상으로 낸 경부고속철도 원효터널 공사 반대소송을, 대법원 제3부 결정으로 기각하였다(사건 2004마1148 공사착공금지가처분 2004마1149(병합)). 1957년생인 지율(속명 조경숙)은 경남 양산시 내원사에 거주하며 ‘산감’이라는 소임을 맡아 천성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던 스님인데, KTX 경부고속선을 건설하기 위해 길이 13.5km로서 한국에서 세 번째로 긴 원효터널을 만드는 공사를 보고 심각한 충격을 받아 생태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2001년 11월 지율스님은 천성산을 관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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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노선의 재검토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단식을 하였으며, 그와 함께 2003년 10월 15일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진 위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4년 4월 8일 울산지방법원의 1심 원고패소 판결과, 2004년 11월 29일 부산고등법원의 2심 원고패소 판결을 거쳐, 대법원에서도 동일한 최종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대법원은 위 판결문의 모두에 기록된 ‘신청인 도롱뇽의 당사자능력에 관하여’라는 항목에서 비인간행위자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현재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짧기 때문에 원문을 그대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원심결정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도롱뇽은 천성산 일원에 서식하고있는 도롱뇽목 도롱뇽과에 속하는 양서류로서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위 신청인의 당사자능력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대한민국 대법원 제3부. 2006.6.2. 판결문).”

이상의 대법원 판결문에 의하면 도롱뇽과 같은 자연물로서의 비인간 행위소는 인간 행위자들의 법적 공간에 들어올 자격이 없으며, 당사자능력 즉 법적 행위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말은 사회속의 인간 행위자가 주체로서 구성한 가치의 영역ㆍ의미의 영역에, 자연속의 비인간 행위소는 연결될 수 없다는 근대성의 사유를 보여준다. 이와 연관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대칭성의 결여’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적 사고로는 특정한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행위자나 행위소와 연결망을 구성해야 한다. 인간의 행위 혹은 인공물의 작동이란 것은, 사실 다른 행위자ㆍ행위소와의 연결망 구성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 존재하는 행위소들과 필요에 의해 연결망을 형성하며 이를 이용해온 인간 행위자들이, 해당 대상물의 ‘유용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대상물의 권리는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어떤 경우에는 자연물과 네트워킹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자연물과의 네트워킹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필요하면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일을 시키면서도 월급은 주지 않는 기업의 경우와도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대칭성의 파괴는 해당 행위자-연결망 아상블라쥬의 내파와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상의 기업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과 회사원의 관계는 굳이 외적ㆍ법률적 힘을 빌리지 않는다 하여도 내적 반발과 태업 등으로 인해 곧 연결망이 와해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유용성만을 뽑아 쓰고 생존권과 보존될 수 있는 권리를 대칭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인간은, 자연 측에서 먼저 관계의 단절을 요청해올 수 있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건설한 여러 안전장치들을 무력화시키는 자연재해의 발생은 자연측이 보내는 절교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본고의 2절에서 살펴보았듯이 환경현상학은 인간과 환경사이의 경험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해하는 틀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3절에서 살펴본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사회와 자연 사이의 비대칭성을 폐기하고 이를 대칭적으로 다룰 것을 주장하였다. <그림 3>을 보면 이 두 이론

<그림 3> 프래그마토고니와 두 이론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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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공통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환경현상학과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모두 근대적인 이분법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넘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 환경현상학의 경우 특히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골조로 하고 있으며, 새로운 현상학적 프레임워크의 도입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ㆍ생태론적 전환이 가능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전환은, 자연에서 사회로 향하는 힘과 객체 및 환경의 계보학을 분석하고자 하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프래그마토고니와도 일맥상통하였다. 특히 라투어가 주장하는 새로운 정치생태학 혹은 생태주의적 정치론은, 기존의 인간중심 정치학에서 벗어나 사물의 의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사물의 의회를 구성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된 새로운 사물정치 체계를 구축하려는 이론적 시도였다. 또 이는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코스모고니적 접근을 벗어나 프래그마토고니를 구축하려는 노력이기도 하였고, 표층적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심층적 환경현상학자들이 목표하는 바이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현상학 분야의 몇몇 연구자들이 생태중심적인 사유체계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김애자 2004, 2005; 송석랑 2014; 홍성하 2008 등). 과학기술학 진영에서도 곧 생태현상학과 과학기술학을 결부짓는 연구들이 등장하리라 기대되며, 두 이론 간의 연계를 통해 서로가 이론적인 확장과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시도는, 우리가 거주하는 자연-사회 중합체에 새로운 기술-환경 거버넌스를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와 객체, 사회와 자연을 넘는 라나 워쇼스키의 사이보그적 모험은 특수사례가 아니라 일반사례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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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화된 위험인식과 지식의 구성 -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유해화학물질 사용례를 중심으로-

김명심・김희윤

1. 서론

2008년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이 ‘의문의 집단 백혈병’ (한겨레, 2008.12.19.)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그동안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인정 운동은 ‘삼성백혈병’으로 명명되어왔지만,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는 특정 기업이나 특정 질병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비록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최종판결이 내려지지 않아 ‘삼성백혈병’으로 알려진 집단행정소송에서 승소한 ‘삼성’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백혈병’ 노동자인 고황유미씨와 고이숙영씨에 대한 직업병 인정은 계류 중에 있지만, 2013년 3월 매그나칩 반도체 엔지니어 고김진기씨의 백혈병이 인정 되면서,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백혈병에 대한 산재가 입증되었다. 그 외에도 근로복지공단에서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유방암(삼성전자, 고김도은)과 재생불량성빈혈(삼성전자, 김지숙)과 같이 ‘백혈병’ 외의 직업성 암과 희귀질병에 대해서도 승인이 이루어졌다. 즉 ‘삼성백혈병’으로 명명었지만, 삼성을 넘어 비삼성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를 포함하고, 백혈병 외에 다른 희귀 질병의 직업병 발생 가능성을 제시한,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을 포괄한 노동보건운동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산업재해 인정에 대한 논쟁은 이해 당사자인 정부, 기업 그리고 노동자 간의 법적 다툼을 넘어 우리 사회 노동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의 원인으로 지목된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판단하고 규제하는 과학기술의 전문성과 객관성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직업병 인정 운동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지목하는 질병의 원인은 전문가들이 의학적・법률적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는 원인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산재의 특성상 맥락화 되어 있는 노동자의 ‘몸’을 통해 건강의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경험되며, 노동자의 몸 그 자체가 질병의 증거로 작용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보편적 상황을 가정한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과학적・의학적 판단은 종종 노동자들의 질병경험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성 질병의 인정에 대한 판단은 질병이 경험되는 노동자들의 몸과 전문지식을 통해 규정되는 질병원인에 대한 과학적 판단 사이에서 부단한 갈등과 대립의 과정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에 과학기술학에서는 대중역학과 시민운동의 사례연구를 통해 일반시민들이 특정한 맥락 속에서 경험하는 환경보건 문제들의 원인에 대한 합리적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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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기와 조직적 대응을 통해 전통적인 전문가중심의 질병프레임을 극복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해왔다. 시민들은 기존의 의료지식이 설명하지 못하는 요건들을 환경적 요인에서 찾아 대항담론을 구성하는데 문제의 참여주체가 질병의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과학적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하거나, 전문가들과 연대해서 지식을 재구성하는 대중역학(popular epidemiology)을 통해 전문가중심의 주류과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Brown, 1992: 268-269). 따라서 대중역학과 주류과학의 대립은 지배적 역학 패러다임(dominant epidemiological paradigm)과 대중적 패러다임(popular paradigm)의 경합(Brown, 2007: 22-25)으로 그려지며,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벌어지는 시민들의 보건의료운동은 질병경험을 기반으로 한 지역적 지식(local knowledge), 전문성의 정치(politics of expertise), 과학의 이해연계(interest-ladenness of science)와 같은 문제들에 직면한다(김종영・김희윤, 2013).

이 같은 과학기술학적 관점에서 수행된 ‘삼성백혈병’에 대한 기왕의 연구들은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인정’의 문제를 둘러싸고 과학기술정치가 구성되는 과정에 대해 분석해왔다(김종영・김희윤, 2013; 방희경, 2014). 이들의 연구는 ‘삼성백혈병’이라고 명명되는 직업성 질환의 인정 과정을 학문적 관점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노동보건운동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건강위험을 인식하고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전문가들의 지식에 대항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지식을 재구성해내었는가에 대한 분석은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서구와는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이 상이한 한국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기술학적 관점의 논의는 아직 공백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삼성백혈병’의 문제가 보건의료운동에 이해관계를 갖는 다양한 계층의 일반시민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특수한 상황과 맥락에 놓인 노동자임을 인지하고, 노동보건 측면의 접근이 요구하다. 즉, 노동자라는 계급적 이해와 산업재해라는 위험의 특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삼성백혈병’이 어떻게 질병으로서 경험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특정한 산업현장에서 구성되는 노동자들의 위험인식과 질병의 지식정치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기술학적 접근과 별개로 기왕의 산업재해에 대한 논의는 주로 보건의학 분야에서 건강과 예방차원의 문제에 초점을 둔 연구나 법률적 규정과 사회복지 차원의 정책적 지원 논의에 집중되어있다(석재은, 2003; 임준, 2007; 권영준, 2009; 최윤희, 2009; 박동욱, 변혜정, 최상준, 정지연, 윤충식, 김치년, 하권철, 박두용, 2011).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가 산업재해에 대한 예방・판단・대응의 문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측면에서 사업장의 위험요인에 대한 정보전달과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나 조사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관리자나 사업보건관리자의 특성에 따른 교육의 효과를 측정하거나(김기웅・박진우・정무수, 2012), 보다 체계적인 화학물질 안전보건 관리를 위해 유해물질 정보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유해위험성 정보전달이 정확히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임경택, 김현옥, 김영교, 조해원, 마용석, 이권섭, 임철홍, 김현영, 양정선, 2007). 국내만이 아니라 서구 역시 작업장에서의 유해 화학물질 위험성에 대한 인식 관련 연구는 최근까지도 거의 이루어진 바가 없다(Hambach et al, 2011). 드물지만 작업자와 관리자의 위험인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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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내의 연구 역시 정보의 제공자인 관리자 집단에 비하여 작업자의 화학물질의 유해위험성 정보전달에 대한 이해와 인지정도가 낮음을 보고하면서, 정보수용자들이 올바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위험인식이 제대로 심어졌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조용민・김희정・최재욱, 2012).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위험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서 일방향적인 전문가중심의 정보전달과 수용자의 이해 증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쌍방향적・민주적 위험커뮤니케이션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근래의 논의들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전통적․권위적인 위험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는 같은 연구에서 작업현장에서 노출되거나 노출될 수 있는 화학물질이 건강 유해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관리자 집단보다 작업자 집단이 해당 화학물질이 가진 건강유해성에 대하여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결과는 관리자와 작업자 간의 위험인식의 차이가 실재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작업현장에서 유해물질과 같은 위험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이에 따른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위험인식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화학물질의 광범위한 사용에 따라 불확실성으로 인한 유해성 논란은 증폭되는데, 이를 규제하는 국가적 차원의 규제정책이 전문가 중심의 일방향적 정보전달에 한정된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변화의 요구 역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연구는 보건의료분야에 국한되지 않으며,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다양한 논쟁과 법률적・정책적 대안이 다각적으로 제시되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학제적 관점과 분석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유해물질을 다루는 작업환경에 있는 노동자들이 과연 단일한 위험인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의 종류, 직무상 지위, 성별과 같이 노동자 각각이 노동현장에서 가지는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 위치 차이는 위험에 대한 인식에 있어 상이한 맥락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노동자들이 위험에 대한 공통된 이해와 인식을 갖는 단일한 집단으로 구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이 성별에 따라 위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성별에 따른 노동자들 간의 구조적 분리가 그들의 위험인식의 차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기왕의 노동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의 연구들은 노동시장이 단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별분업과 성별직무분리가 존재함을 증명해 왔는데, 이는 남성과 여성의 작업장에 대한 인식과 경험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산업재해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들 역시 남성과 여성이 경험하고 인지하는 위험의 종류나 정도가 상이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Larsson & Month, 1986, Byrbes, Miller & Schafer, 1999, 정진주․김형렬․임준・정최경희, 2011). 특히, ‘삼성백혈병’의 경우 대부분 엔지니어인 남성과 오퍼레이터인 여성으로 직무가 분리되어 있고, 이들이 경험하는 질병 역시 다양한 증후들과 분화된 병명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성별’이 직업성 질병에 대한 위험인식과 질병 원인에 대한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이 연구는 반도체 전자사업 노동자의 성별에 따른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인식과 질병경험을 통한 질병원인에 대한 지식의 구성 과정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성별이 위험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선행연구들을 토대로 위험인식에 대한 젠더효과를 검토하였다. 또한, 노동의 측면에서 산업재해에 대한 연구들이 성별의 효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작업현장의 위험요소인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성별에 따른 위험인식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구조적․맥락적 원인을 도출할 것이다. 둘째, 반도체 전자산업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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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대한 현장연구와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환자)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자료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작업과정에서 경험하게 된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인식과 질병 경험을 통해 질병원인에 대한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에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는지를 밝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역학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단일한 위험인식과 이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분화되고 층화된 정체성을 가지며, 이러한 이질적 정체성들이 노동자들의 노동보건운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위험인식, 지식정치와 젠더

1) 위험인식에 대한 심리학적・사회문화적 접근

위험인식에 대한 기왕의 연구들은 일반시민의 위험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도출하는데 집중해 왔다(Fischhoff, Slovic, Lichtenstein, Read & Combs, 1978; Slovic, 1992; Nathan, Heath, & Douglas, 1992 Renn, 1992, Bennett, 1999). 위험인식에 대한 연구는 크게 심리측정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위험인식 및 위험판단과 관련변수들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심리학적 접근과 개인이 속한 사회집단의 공유된 가치에 의해 위험인식이 구성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개인이 속한 조직 또는 사회유형에 따른 위험인식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접근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심리학적 접근은 대표적으로 Slovic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수행된 위험인식에 대한 다수의 연구들에서와 같이 위험인식 및 위험판단과 관련 변수들 간의 관계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어왔다. 위험인식에 대한 심리적 접근에 따르면 위험과 편익을 판단할 때,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신념뿐만 아니라, 판단의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느낌과 감정을 이용(Slovic, et al., 2004; 페터슨 외, 2009:45)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위험인식은 객관적인 사실과 무관하게 형성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심리적 접근은 위험인식을 개인적인 변수들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는 경향이 있어 위험인식과 위험커뮤니케이션을 개인차원의 문제로 제한하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원자력에 대한 통제가능성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통제하고 규제가능하다고 믿는 것과는 다르게 미국인들은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Renn, 2008)는 점은 동일한 위험에 대한 인식이 왜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조직 또는 사회집단에서 다르게 나타내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즉,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험들은 집단화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집합적 차원에서 개인의 위험인식은 개인이 속한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특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심리적 접근이 가진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위험인식에 대한 사회문화적 접근은 개인이 속한 조직 또는 집단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위험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 왔다. Douglas와 동료들은 개인은 위험을 인식할 때 사회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기준의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개인의 위험인식은 사회의 문화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주장한다. 이들의 연구는 특히 인류학적 문화이론의 시각에서 위험인식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적 접근과는 다른 차원의 위험인식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위험인식에 대한 문화적 접근은 어떻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회가 위험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이는가를 발견하는데 기여하며, 복잡한 사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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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들의 다양한 사회적 층위로의 사회화가 조직의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위험에 대한 인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임을 주장한다(Douglas & Wildavsky, 1982; Thompson, 1984; Rayner, 1986). 일례로 Rayner는 창살(gird)-집단(gruop) 모형을 토대로 한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방사선 위해성에 대한 인식차이를 연구한 결과 의료기관에서 종사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방사선 위해(hazard)에 대한 인식차이가 실제 함을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방사선의 위해성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해고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종종 위험 감수 행위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였다(Rayner, 1986). 하지만 이 같은 위험인식에 대한 인류학적・문화적 접근 역시 이들이 제시하는 네 가지 문화적 편향의 유형들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위험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접근 중 과학기술학에서 제기하는 위험인식에 대한 접근은 일반시민들의 인식이 문제시되는 경우의 대부분이 과학기술에 의해 파생되는 위험을 둘러싼 논쟁들임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일반시민들이 전문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문가들과 논쟁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박희제, 2004:24). 특히, 대중의 과학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PUS)’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구성주의적 접근방식을 통해 대중과 과학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는 구성주의 PUS연구를 수행해왔다. 구성주의 PUS는 대중이 갖고 있는 상황맥락적인 시민지식을 드러내고 공식지식과 대립하고 협상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해 일반시민들이 갖는 회의나 저항의 저변에 놓여있는 사회적․문화적 합리성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일반시민들을 비합리적인 대중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과학을 이해할 수 있고, 오히려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인식하며 이에 기반하여 과학의 의미를 협상하고 구성하는 적극적인 존재로 부각시켰다(Wynne, 1992).

이상의 논의들을 종합해볼 때, 위험인식에 대한 각각의 이론들이 접근방식과 방향에서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시민들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위험에 대한 정보의 양이나 객관적인 위험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위험에 대한 인식은 심리적인 요소, 사회적인 맥락, 조직 차원의 고려 요인, 문화적인 정보 처리 과정 등이 관련되어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위험에 대한 인식과 위험 관련 행위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김영욱, 2008, 133).

2) 개인적 특성과 위험인식 : 젠더효과

기왕의 연구들이 다양한 관점과 차원에서 위험인식을 다루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위험과 관련한 개인적 특성이 위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는 미미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이는 위험인식에 대한 연구가 주로 심리측정학적 방법을 주된 연구방법으로 활용하였기 때문(페터슨 외, 2009: 43-44)이라는 점과 사회문화적 접근과 같이 집단화된 개인의 문화적 편향이 중요한 요인으로 설명되거나 맥락화 된 지식의 구성 과정에 집중함에 따라 개인의 판단과정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한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경보건에 대한 성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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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른 위험인식에 대한 연구들은 젠더가 환경위험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발견하였으며(Slovic, 1999), 건강과 안전이 여성에게 중요한 주제이고, 일반적으로 여성의 위험인식이 높은데 특히, 아이가 있는 여성은 위험인식의 수준이 높음을 보고하고 있다(Davidson & Freudenburg, 1996). 또한, 남자는 여자보다 위험을 감수하고 더 참여하고자 하는 성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Wester-Herber, Misse, & Warg, 2002). 하지만 젠더를 제외하고 계량적인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관련된 범주들을 분석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인구통계학적 변수들은 사람들의 위험인식이나 위험수용에 대한 판단을 체계적으로 예측하지 않았다는 것이다(Henwood, Parkhill & Pidgeon, 2008). 개인적 특성이 위험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일련의 연구에서 젠더와 연령이 위험인식과 지속적으로 상관관계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젠더에 따른 위험인식과 관련한 연구 역시 상대적으로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페터슨 외, 2009;44). 젠더와 위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들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위험연구에서 성차(gender differences)는 오직 양적인 용어들로 등장하며, 젠더 이론과 관련되어 다루어지는 것은 드물다는 것이다(Gustafson, 1998:805).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인식과 젠더효과를 다룬 기존의 연구들은 설문조사 등의 양적방법과 인터뷰 등의 질적방법을 통해 성별에 따른 위험인식의 차이가 실제 하는가에 주목해 왔다. 위험인식에 대한 정량적 분석들은 환경적・기술적 위해(hazard)에 대한 젠더 차이가 발생함을 경험적 연구를 통해 증명하고자 노력해왔다. 위험인식의 성차에 대한 연구들 중 Fischer 등이 실시한 건강, 안전, 환경위험 인식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환경위험에 대해 남성은 안전과 건강(보건) 문제에 대한 위험인식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Fischer, Morgan, Fischhoff, Nair & Lave, 1991) 또한, 노동과 같은 특정한 이슈와 관련한 위험인식에 있어서도 건강과 사고위험에 대한 조사 결과 남성은 산업 재해에 대해 여성은 과로로 인한 부상, 전염성 질병에 대해 더 많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하였다(Larsson & Month, 1986). 화학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위험인식 조사결과에서는 남자는 여자보다 생산품 및 업무와 관련된 위험에 대해 상대적으로 지식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Byrnes, Miller & Schafer, 1999).

이 같은 연구들은 위험인식의 성차에 대해 여성과 남성의 우려의 정도가(levels of concerns) 다르고, 인지하는 위험의 종류가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여성과 남성이 인식하는 위험의 종류와 정도에 차이가 있으며, 이는 위험인식에 젠더효과가 작용함을 의미한다. 성차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위험인식에 있어서 성차는 권력, 지위 그리고 신뢰와 같은 정치사회적 요인들에 상당 정도 기인한다고 보았다(Flynn, Slovic & Mertz, 1994). 그러나 정량적 분석들에 대한 문헌연구의 결과 이러한 ‘젠더 효과(gender effect)’는 통계적으로 작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주장한다. 양적연구들은 위험인식에 대한 심리적 접근을 통해 여성이 남성보다 위험인식이 높으며, 위험인식에 있어 성차가 발생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설명은 불분명하거나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Davidson & Freudenger, 1996; Gustafson, 1998; Henwood et al, 2008:663).

이상의 논의를 통해 위험인식에서 개인적 특성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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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그 결과 역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앞 절에서 살펴본 위험인식에 대한 심리적 접근과 사회문화적 접근이 공통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개인특성의 영향에 대한 진전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성별직무분리 등과 같은 젠더 불평등과 개인의 위험인식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체화된 보건운동에 대한 연구들은 예를 들어 천식이나 유방암의 사례에서 인종, 계급, 젠더 그리고 이러한 요인들의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맥락이 질병 경험 그 자체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모렐로-프로쉬・자베스토스키・브라운・앨트먼・매코믹・메이어,2013:301) 따라서 질병을 경험하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위험인식에 대한 논의 역시 개인의 특성과 사회구조적 특성이 상호작용을 통해 어떠한 맥락을 형성하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노동현장의 위험인식: 성별화 된 산업재해 경험

서구에서 보건과 환경에 대한 젠더 이슈는 주로 1) 성차(gender difference) 2) 성별분업(division of labor) 3) 지위와 권력의 차이(differences in pover and status) 등의 세 가지 범주에서 접근이 이루어져왔다(Sim & Butter, 2002;203). 반면, 한국사회에서 직업안전보건 영역의 젠더에 관한 이슈는 일-가정 균형, 감정노동과 같은 사회심리적 요인에 대한 관심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환경보건과 젠더이슈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대부분 젠더 관점에 입각한 모성에 초점을 둔 환경보건 이슈를 다루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 과정에 대한 연구들은 생산자로서의 여성이 유해물질에 어떻게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김명희・김현주, 2012; 347-351). 건강권의 문제를 다룬 연구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의 건강상태가 작업환경 인식에 영향을 미치며(김현주, 1991; 이명선, 1991; 문영한・박종연・이경종・조명화, 1992; 조정민・이숙희,1994; 이경용, 2000), 대부분의 건강위험 요인들에 대한 여성들의 위험인식이 남성보다 높다는 점을(김경희·김해준·이은일·김상후·최재욱, 2014)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과학기술과 여성 그리고 노동에 대한 과학기술학과 여성주의적 관점의 연구들은 주로 ‘모성’과 ‘재생산’ 문제에 초점을 맞추거나(박홍주, 2005; 조주현, 2006; 이수정, 2008; Paki, 2012), 건강권의 문제를 성차의 관점에서 접근한 논의(장필화・조영미, 2001, 꿈지모, 2002, 박홍주, 2005, 송다영, 2011)가 주를 이뤄왔다. 특히, 노동과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 건강불평등에 집중하면서 성별에 따른 건강불평등의 실제여부와 그 차이를 분석해 왔다. 연구들은 노동형태에 따라 노출되는 작업환경이 다르고, 남성보다 여성이 열악한 노동상황 속에 있어 건강상태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노동형태별, 성별에 따른 건강불평등을 다룬 연구들은 주관적 건강평가 뿐만 아니라 유병율, 미치료율, 건강행태 등과 같은 객관적 지표를 통해 건강불평등이 실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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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함을 주장해왔다.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노동부나 통계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성 및 전체 평균근로자들과 업무내용 뿐만 아니라 작업조건에서도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되고 있다(정인경, 20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건강권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운동의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한 채 주변화 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는 여성들이 건강과 관련한 지식의 생산과 공급, 그 사용에서 주변화 된 위치에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는 여성의 건강권을 둘러싼 젠더 불평등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수정, 2008:223-224). 산업재해에 대한 젠더 불평등을 다룬 연구들 역시 사회구조적 차원이나 제도적 차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산재보험급여에 있어서도 젠더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증상의 경증정도, 직장문화,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 등이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정진주・김형렬・임준・정최경희・나성은, 2008, 정진주・김형렬・임준, 정최경희, 2011). 그러나 이러한 원인들을 성별에 따른 작업현장에서의 위험인식의 차이와 연결을 시도한 연구는 아직 미미한 수준에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 같은 현상은 첫째, 산업재해와 안전보건에 대한 연구들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삼성백혈병’ 사례를 통해 촉발된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사용되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과학적 판단의 근거는 주로 이에 대한 기왕의 연구결과들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현장의 위험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있다. 1988년부터 2011년까지 연구된 반도체 웨이퍼 가공 근로자에게 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생식독성과 암에 대한 역학연구들 중 생식독성에 대한 연구는 총 16편으로 자연유산(10편), 월경주기 이상(3편), 선천성 기형(1편), 임신지연(1편), 남성 근로자 생식능력(1편) 등 이었으며, 암 위험과 사망률에 대한 역학연구는 8편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박동욱・이경무, 2012;12). 또한, 산업안전보건에 있어 위험커뮤니케이션 측면의 연구들 역시 위험정보의 수신자로서 노동자의 역할을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연구들은 화학물질 유해・위험성에 관한 정보전달의 실효성에 집중하여 정보와 정보 전달자의 특성이 정보전달의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왔다(Janicak, 1996; 김기웅・박진우・정무수, 2012). 따라서 왜 어떤 위험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인식되고 더 많은 우려를 나타내게 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둘째, 대부분 여성 건강권 논의는 재생산과 모자보건에 맞춰져 있거나 노동시장을 다루는 연구들은 주로 성별분업에 관심을 둠에 따라 ‘모성’으로서의 여성과 ‘노동자’로서의 여성이 동시에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인 사례 접근을 통해 젠더 불평등이 성별이라는 개인의 특성에 어떠한 형태로 반영되고, 실제 직업적 위험에 처한 노동자로서의 여성은 어떻게 위험을 인식하고 위험행동을 취하는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게 되는 산업재해의 많은 부분이 위험관리의 실패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개인화된 일상에서의 과학기술의 위험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노동현장이라는 집단화된 일상 속 과학기술의 위험과 인식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동자들의 개인적 특성과 사회구조적 위치가 위험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 연구는 ‘삼성백혈병’으로 명명되는 반도체 전자사업의 산업재해 피해자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질적연구를 통해 노동현장의 유해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성별화된 위험인식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위험인식의 다면성과 한계를 살펴보고 위험인식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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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구방법

이 연구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약 28개월 간 수행된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인정 운동에 대한 현장연구와 인터뷰 자료에 근거한다. 현장연구는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인정을 위한 법적 활동과 사회운동에 대한 참여관찰에 기반 한다. 주된 자료는 환자(가족)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 Supporters for Health and Right of People in Semiconductor Industry)의 공식적, 비공식적 자료들을 모두 포괄한다. 진행 중인 행정소송 방청, 반올림이 주관한 학술발표 및 세미나, 반올림과 환자(가족), 환자(노동자)들의 보도자료 및 기자회견 자료, 국정감사 자료, 언론매체의 등을 비롯하여 반올림의 정기적인 회의, 각종 행사와 일윈시위, 운동 등의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수집한 자료들을 활용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총 16명에 대한 인터뷰 자료를 분석의 자료로 활용하였다. 인터뷰의 대상에는 삼성전자에 근무한 노동자뿐 아니라 매그나칩(하이닉스) 반도체, 반도체 전자산업 하청업체의 노동자도 포함되어 있다. 심층인터뷰는 환자(가족), 환자(노동자)를 대상으로 하였고, 초점집단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자의 특징에 따라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인정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환자(가족),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 경험이 있는 환자(노동자) 그룹으로 나눠서 진행하였다. 14명의 환자(가족), 환자(노동자)의 심층인터뷰와 2그룹을 대상으로 3차례 수행된 초점집단 인터뷰1)의 녹취록을 통해 질병 인식, 노동 환경, 참여 경로와 목적, 주된 활동, 직업성 암에 대한 과학적, 제도적(산재 행정처리), 법적 이해에 대해 분석하였다. 그 외에도 법정자료, 국정감사 자료, 학술논문, 연구 사례에 대한 언론보도 등에 대한 문헌연구도 병행되었다.

4. 반도체 전자산업의 특수성과 성별화 된 위험인식 및 지식정치

1) 반도체 전자산업의 특성일반적으로 반도체 전자산업의 직업병 인정 운동이 이슈화되기 전까지는 반도체 산업 노동

자와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의 인식 모두 반도체 산업의 특성과 질병 발생 가능성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2008년 삼성백혈병 직업병 승인 운동으로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이슈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과서에 나타난 반도체 산업의 이미지는 자원이부족한 한국에서 물과 모래만으로 창출하는 첨단 산업이자 청정산업이었다. 그런 이미지를 창출한 것에는 특히 반도체 생산의 주된 공정이 이루어지는 클린룸의 영향이 컸다. 클린룸은 먼지 등에 민감한 웨이퍼를 보호하기 위해 청정도의 유지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온도, 습도, 기압, 그리고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은 제품 보호를 위한 것이며, 관리되어야 할 ‘파티클(먼지)’의 대상에서 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깨끗하게 잘 관리되는 공장의 상징으로 흔히 알려진 방진복과 방진마스크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품 보호를 위한 것이다. 주된 재료로 알려진 실리콘을 가공하여 반도체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단순히 물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에는 수백여 종의 화학물질이 사용

1) 인터뷰이의 성별, 직무, 이해관계(환자, 가족 또는 시민단체) 등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부록1]에 수

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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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 외에도 방사선, 고전압 등과 국내 제조업 특성상 존재하는 교대근무, 장시간 노동 등 일반적인 제조업의 건강유해요인도 존재한다.

반도체 공정은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콘을 가공하여 웨이퍼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얇은 원형 판인 웨이퍼가 설계된 전자회로를 통해 웨이퍼에 옮겨지는 것이 웨이퍼 가공이다. 웨이퍼 가공(fabrication : 공정명과 업이 진행되는 공간을 축약해서 FAB이라고 부름) 공정은 노광(Photo), 식각(Etch), 박막·증착(Thin-Film), 확산(Diffusion), C&C(CMP&Cleaning)를 수 백 번 반복해서 진행된다. 각각의 공정에서 이루어지는 작업과 유해노출 인자는 다음과 같다. 우선 노광작업은 웨이퍼 위에 설계된 회로 패턴을 입히기 위한 과정이다. 이에 PR용액이라고 불리는 감광제를 바르고, 현상액을 분사한 후 사진을 찍듯이 자외선을 투과하여 선택적으로 설계도면을 입힌다. 노광 공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해인자는 주로 화학물질이다. HMDS와 같이 도포 작업에 활용되는 단일 물질 외에 PR용액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있다. 2-헵타논, 에틸벤젠, 에틸락테이트, 사이클로섹사논, 1-메톡시-2-프로판올, 2-메톡시-1프로판올, 1-메톡시-2-프로필아세테이트 등은 물론 노광 작업 과정 중에 부산물로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페놀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PR용액은 휘발성이 높은 유기용제인데, 복합물질이기 때문에 성분이 다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한 노광 공정의 장비를 유지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아세톤이나 IPA, TCE 등이 유해할 수 있다. 특히 TCE는 현재는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지만 과거 반도체 산업에서 유기용제로 쓰여서 논란이 된 적 있다. 그 다음 공정인 식각은 웨이퍼 표면을 선택적으로 깎아내어 회로 패턴을 만드는 공정이다. 식각공정은 회로의 막질을 벗겨내는 데 화학물질로 깎아내는 습식 식각과 가스로 깎아내는 건식 식각이 있다. 습식시간에서는 화학물질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불산, 염산, 황산, 과산화수소, 질산, 암모니아수 등에 노출되고 화학반응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건식 식각은 유해한 가스에 노출될 수 있다.

확산공정과 박막 증착은 웨이퍼에 화학반응을 통해 도전체와 절연체를 형성하는 공정으로, 역시 수많은 화학물질과 가스, 화학물질을 이온화하기 위한 전리방사선이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C&C 공정은 웨이퍼 표면을 갈아내는 작업과 깨끗하게 닦아내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웨이퍼 표면을 연마액(Slurry: 실리카 등)으로 갈아낼 때 형성될 수 있는 물질과 정비작업을 할 때 노출 될 수 있는 물질로 주로 산성, 알카리성 물질이다. 이러한 공정을 수차례 순차를 반복하여 하나의 웨이퍼가 완성되고 이렇게 완성된 웨이퍼는 테스트를 거친 다음 후공정인 칩 조립 공정(PKG)으로 넘어간다. 가공되고 테스트 된 웨이퍼를 칩으로 만들어서 조립(package)하는 칩 조립 공정(공정명과 작업공간을 축약해서 PKG라고 부름)은 웨이퍼를 절단하여 칩으로 만들고, 이를 전기적 연결을 통해 동작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과정을 거쳐, 우리가 알려진 반도체 칩의 형태로 완성하는 공정이다. 그 다음으로 다시 테스트가 진행되고 제품 포장이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공정이 완료된다. 조립 공정은 비교적 화학물질이 덜 사용된다고 알려졌지만, 정비 작업이나 세정 시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칩을 회로기판에 장착하는 작업에서 사용되었던 납이나 플러스 등의 유해요인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나열되지 않았지만 단일한 화학물질의 유해성만이 아니라 복합물질로의 유해성에 가능성과 고온 상황에서의 화학적 변화 등 복합적인 화학반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긴접적인 위험성 역시 최근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의 변화된 환경은 그러나 과거 작업의 유해성을 짐작하기 어렵게 한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공정, 다양한 화학물질을 사용 등은 동일 공정이라고 해도 같은 작업이라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수행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더욱 위험성을 평가하기 어렵다. 최근 복합적인 유해인자 노출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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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반도체 전자산업에 대한 유해성 평가는 측정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 채 변화 속에 남겨져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직업병 발병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가치적인 평가가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노출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산업재해보험의 목적한 바에 맞게 직업병 인정 기준을 형성하는 것이 ‘객관적’일 수 있다.

2) 성별 직무 분리와 위험정보 및 위험인식의 비대칭성

노동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은 노동시장과 조직문화가 남성중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어 성별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음을 주장해왔다. 실제 노동과 관련된 여러 지표들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권한이 적은 하위 직급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별 직무 분리 현상은 여성과 남성의 직무를 구분하고 조직 내에서의 권한을 제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구조화된 성별 불평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작업현장의 유해요소에 대한 위험인식에 있어서도 성별에 따른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수직적 분리를 통해 하위 직급에 상대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분포함에 따라 열악한 작업환경과 위험상황에 대한 통제권이 낮고, 수평적 분리를 통해 동일한 직급 내에서도 작업의 종류가 달라지는데 직무의 차이에 따른 위험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피해노동자들의 경우 남성은 엔지니어로 여성은 오퍼레이터로 직무가 구분되어 있다. 엔지니어는 관리직에 해당하여, 오퍼레이터는 생산직으로 구분되는데 관리직인 엔지니어는 남성이, 생산직인 오퍼레이터에는 여성으로 직무분리가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위험물질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도 남성-엔지니어와 여성-오퍼레이터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엔지니어 G에 따르면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환경수첩’2)은 엔지니어에게만 제공되었다고 한다.

환경수첩은 법적으로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 갖고 있어야 되는 거, 엔지니어한테만 줬고요. 법으로는 그 화학물질이나 이런 거를 보유한, 그 만지는 사람들은 그거에 대한 교육을 받고, 그 물질을 어떤 걸 쓰고 있다는 교육을 받아야 돼요. 알고 있어야 되고 검사를 받아야 하고, 1년에 한 번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교육이나 이런 걸 따로

2) ‘환경수첩’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관리자인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배포한 것으로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수십 가지 유해물질이 명시돼 있었는데, 당시 이 수첩은 기밀로 분류되어 회사 밖으로 유

출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제보자를 통해 입수된 것이었다. 한겨례 신문이 환경수첩을 토대로 ‘공정

별 환경영향 인자’ 목록에 나오는 화학약품·가스 50여종의 유해성 여부를 윤충식 서울대 보건대학

원 교수, 최상준 대구가톨릭대 교수(산업보건학) 등 전문가팀을 통해 분석한 결과 6가지 발암성 물

질과 40여종의 자극성 위험물질이 사용되었음을 보도하였다. 더군다나 이 ‘환경수첩’은 생산직 직원

들에게는 지급되지 않고 관리직인 엔지니어들에게만 지급됐다는 것이다.(한겨레, 2010.05.17.).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경수첩’에 적혀 있는 물질들은 교육용으로 일반적인 물질까지 적혀 있

는 것이다. 반도체공장에서 꼭 사용되는 물질만 기재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였다. 또한, 환경수

첩이 관리직에게만 지급된 것에 대해 “화학물질은 취급자와 작업자가 분리돼있다. 관리직에 있는

엔지니어들이 직접 이 물질들을 관리하기 때문에 생산직 직원들에게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

명했다. 덧붙여 “엔지니어들이 생산직 직원들에게 직접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을 한다.”고

설명하였다(메디컬투데이, 2010. 05.18.) 하지만 인터뷰 결과 엔지니어들조차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 잘 알고 있지 못했다고 응답한 점을 미루어볼 때 엔지니어들이 오퍼레이터들에게 교육을 했다

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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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으니까. 수첩을 만들어 갖고 그걸 나눠준 거죠. 소지하고 있어라. 그래서 그걸 나눠준 거라고요. 어떤 환경에 어떤 걸 쓰고 어떻게 해야 한다…(중략)…엔지니어 입장에서 보면 저희 같은 경우에는 화학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반도체 전문가잖아요. 교육을 받은 거는 화학물질에 위험이 몇 가지 위험이 화재나 독성이 위험한 물질이니까 요거는 노출이 안되게 해라. 요 정도지 요거에 화학물질이 어떻게 돼서 부산물이 어떻게 나올 수 있다. 이런 것까지 자세하게 모르거든요. 화학자가 아니니까. 반도체 어떻게 되는지 이런 거나 자세히 알지…(중략)…환경수첩에 나열된 건 자세한 건 잘 안봤어요. 사람들이. 엔지니어들 조차도. 그리고 뭐 작업할 때 보면 맨손으로 한다는 내용도 나오잖아요. 손으로 이렇게 넣었다 뺐다 하는, 그렇게 해서도 위험한지 몰랐었는데, 아, 이렇게 위험할 수도 있구나라는 걸... (G, 남성-엔지니어)

인터뷰 내용에서도 드러났듯이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교육을 통해 적극적으로 위험을 알리기보다는 ‘환경수첩’과 같은 형태로 정보를 소지할 수 있는 정도의 위험정보 전달에 그치고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가 작업현장의 위험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더군다나 당시 존재한 환경수첩, 혹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는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관련질병에 대한 단순 정보를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찾아본다고 하더라도 존재하는 정보는 파편화된 정보로 제한되어 있었다. 나열된 정보는 단일 화학물질이지만 실질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위험요인인 복합적인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나 화학반응을 통한 부산물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주된 작업에서 직접 피부나 호흡기 등에 노출되는 것만을 위험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성-엔지니어 G는 ‘환경수첩’을 제공받은 엔지니어들조차도 위험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으며, 반도체 산업은 ‘깨끗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물질들을 엔지니어들조차도 사실은 이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인식을 잘 못했어요. 그러니까 뭐 90년 초에 돈 많이 벌고, 우리나라 이끌어간다고 그러니까. 다 좋은 거다. 그리고 굉장히 깨끗하다는 의지가 강하잖아요. 거기가 그 안에 들어가려면 에어 샤워 두 번 하고 뭐, 방진복 다 입고 들어가야 하고 그러니까 깨끗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죠. 그냥 뭐 나중에 독가스 이런 거 가스 막 움직이고 이런 때, 화재난다. 그리고 한 두 가지 굉장히 위험한 독성 물질이 있다. 퍼지면 안 된다. 그 정도였지. 뭐, 업계가 어떻게 암 발생한다. 뭐 이런 거까지 자세하게 몰랐거든요(G, 남성-엔지니어).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전달 역시 제한된 노동자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점에서 정보의 종류 및 수신여부에 따라 위험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제공된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는 ‘환경수첩’을 통해서만 전달되었으며, 이 또한 관리자인 엔지니어들에게만 제공되었다는 것은 남성-엔지니어와 여성-오퍼레이터로 직무가 분리된 조직 환경에서 여성들이 위험정보로부터 배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엔지니어와 여성-오퍼레이터라는 직무분리가 위험정보의 선택적 전달이 이루어지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다. 즉, 성별에 따른 직무분리의 위계와 대칭적으로 위험에 대한 정보에 있어서도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장비를 점검, 정비하고 관리하는 엔지니어는 오퍼레이터에 비해 사용하는 물질에 대한 정보와 이해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다. 하지만 관리직인 엔지니어들이 위험물질에 대해 상대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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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많은 정보와 높은 이해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터뷰에서 들어난 바와 같이 이들 역시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유해 화학물질의 실질적인 위험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학 전문가’가 아니라는 남성-엔지니어 G의 설명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작업현장의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인식이 낮은 상황이 반드시 무지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교육을 통해 위험성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하더라도 작업장 내 안전보건 문화에 의해 위험은 저평가 되거나 체계적으로 무시되기도 한다. 여성-오퍼레이터였던 정애정씨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것이 “믿기 때문인 거”같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위험한 물질을 다룬다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지를 않”으며, “함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원들이 위기의식을 가질 만큼 분위기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직문화는 조직에 대한 자발적 신뢰와 믿음을 토대로 하기도 하지만 조직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강압적이고 경쟁적인 조직문화가 신뢰를 강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약간 위험할 수도 있는데 여기 사람들이 쓰고 있으니까. 괜찮은가보다”라고 생각했다는 점은 주변 동료와 조직문화 등이 위험에 대한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분명히 위험할 수도 있는데 계속 그렇게 사용하고, 그 자연히 사용하는 것 보니까. 위험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무시”했다는 이야기는 위험에 대한 개인의 합리적인 문제제기가 조직의 압력이나 주변의 위험감수 행동을 통해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조직에 대한 순응과정을 통해 위험인식이 감소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 같을 거라 생각해요. 위험하다는 생각을 아예 못해요. 또 아예 생각을 못하는게, 믿기 때문인 거 제일 많은 거 같아요. ALE기 때문에, 그게 우리가 사고가 크게 나거나 그런 건 없거든요…(중략)…냄새가 나긴 나는데, 그게 눈에 보이거나 물질이 묻어서 내 손이 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거에 아예 무감각한 거 같아요. 회사에서도. 왜 이렇게 우리 여사원들이. 남사원들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여사원들이 왜 그렇게 안이한가. 어떻게 그렇게 믿고 일할 수 있냐. 분위기가 그게 위험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런 물질을 만진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지를 않아요. 함구하고 있잖아요. 교육을 해도 우리가 이런 물질을 만지고, 이런 해가 있고, 이렇게 저렇게 되고 뭐.. 이렇게 교육을 해주면, 위험할 수 있구나. 일 할 때 조심을 해야겠구나. 생각을 할 순 있을거 같아요…(중략)…내가 10년을 다녔는데 딱 1번 들었어요. 저는 신입사원 때 그런 얘기 안 들은거 같애 .일하는데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그냥 설비만 다루고. 그냥 생각 있는 사수는 이런 거 조심해야한다, 이런 거 알려줄 수 있겠지만. 저는 더 무감감 했던거 같아요. 그니깐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깐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지. 아예 사원들이 위기의식을 가질 만큼 분위기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거지. 결코 그렇게 하지도 않고..(정애정, 여성-오퍼레이터, 고황민웅, 남성-엔지니어 아내)

인지를 못했던 거예요. 그냥 무시를 했던 거예요. HF를 담갔다 빼고 그러거든요. HF가 뭐, 대학 다닐 때는 그런 거 많이 맡으면 불임이 된다. 폐가 썩는다. 뭐, 얘기는 들었어요. 근데, 거기 들어와서 보니까 여사원들 이렇게 그냥 맡고 있더라고요. 우린 실험할 때 냄새를 안 맡으려고 했는데 최대한. 근데 여기 들어와서는 계속 연 채로 고무장갑만 끼고 넣었다 뺐다 하더라고요. 아, 이거는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나쁘지가 않다라고 인식이 된 거지. 전문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안전에 대해서. 그래가지고 약간 위험할 수도 있는데 여기 사람들이 쓰고 있으니까. 괜찮은가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 거지. 이거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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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위험할 수도 있는데 계속 그렇게 사용하고, 그 자연히 사용하는 것 보니까. 위험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무시한 거죠. 그리고 무시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보니까. 유미씨 같은 사건이 터지고 나보니까 아, 이게 위험한 거 맞지. 이런 생각이 든거지.(G, 남성-엔지니어)

특히,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경우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한 호감과 신뢰가 자신이 경험하는 질병의 원인을 작업현장의 유해 화학물질에서 찾기보다는 질병을 경험하는 개인의 문제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반도체 산업의 직업병 발병 가능성이 이슈화되고, 피해자들이 해당 질병에 대한 유전적 영향이 부재하고, 비슷한 사례의 중복 등 심증이 충분해도 질병은 개인화되기 쉽기 때문에 직업적 요인에서 발병 원인을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은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개인적이라고 생각”하고 “절대 그거와는 상관이 없다”던 아내의 생각을 바꿜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의 질병에 대한 판단과 조언이었다. 질병을 개인화함으로써 조직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지속하고자 했던 피해자 여성-오퍼레이터의 판단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그 만큼 조직문화가 개인의 위험인식과 위험판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죠. 개인적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거는 와이프 생각이라고 생각한거고. 이제 와이프가 그나마 소식이 좀 마음을 접었던건 뭐냐면 교수님이 말했을 때, 그때 상담했을 때, 소견서를 마지막 산재신청을 하기 위해서 제출했을 때, 그때 이제 교수님이 이야기 하더라고요. 와이프 있는 데서 말하더라고요. 장기적이고 절대로 단기적이 아니다. 그리고 옛날 근무했던 상황을 보니까 이건 백프로라고. 아마 그때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 아마 그런 병명 또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때 와이프가 수긍하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와이프는. 절대 그거와는 상관이 없다. 와이프 삼성 많이 좋아했어요. 많이 좋아했어요.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더 배신감 느끼죠. 저는. 모든 집에 물건이든 다 삼성, 삼성 아니면 안할 정도로 다 그랬는데. (강덕원, 고김도은, 여성-오퍼레이터, 남편)

성별 직무 분리의 영향은 노동자의 ‘몸’에 대한 통제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특히, 남성-엔지니어보다 여성-오퍼레이터들의 노동경험에서 ‘몸’에 대한 통제 경험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반도체 제품의 특성상 생산 라인의 청결, 즉 ‘먼지 없음’은 공정 과정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 하나이다. 설비는 물론 노동자의 몸 역시 제품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검사하고 청결이 유지되어야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몸은 제품 생산을 위해 각별히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방진복을 입거나, 작업시 대화를 금지하거나, 화장, 손톱의 매니큐어, 머리카락에 대한 규율 등은 주로 제품 보호라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규율 준수를 강요한다. 특히, 노동자들 중에서도 일명 ‘미스 클린’으로 불리는 여사원을 통해 여성-오퍼레이터들의 몸에 대한 관리와 통제가 이루어진다. 청정관리는 여성-오퍼레이터들의 몸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기본적인 복장에 대한 감독뿐만 아니라 화장을 하거나 손톱을 기른 것 까지도 관리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여성-오퍼레이터들의 몸에 대한 통제를 정당화하였다.

미스 클린이 하나 있는데, 청정관리를 하는 여사원 하나가 있었어. 뭐를 보냐면, 라인에 들어가면 모자나 옷 같은 거, 일단은 그런 것들 하고, 아줌마들 관리도 하고, 우리도 화장은 전혀 안했으니까…손톱 긴 거 어쩐 것보다도 왜 투명한 매니큐어라고, 그거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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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왜냐면 20대 초반에 한창 멋 부리고, 손톱 길고, 화장도 하고 하잖아. 근데 너무 길면... 이렇게 웨이퍼 혹시 만지고 하다 보면 상처 나거나 사고 난다고…(중략) (민숙, 여성-오퍼레이터)

반면, 남성-엔지니어들의 작업공간은 여성-오퍼레이터와 같은 강도의 몸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여성-오퍼레이터와 남성-엔지니어의 작업공간이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고, 남성-엔지니어들의 작업공간은 “청정을 조금 덜 지켜도”되기 때문이다. 청정수칙 담당자 역시 여성-오퍼레이터들의 작업공간에 대해서는 청정 유지를 위한 관리와 감독을 수행하지만 남성-오퍼레이터들의 작업공간까지는 가지 않기 때문에 청정유지를 위해 직접적인 관리와 통제가 행해지지는 않는 것이다3).

설비 안쪽에 있는, 청정을 조금 덜 지켜도 되는데.. 그런 서비스 에어리어라고 있거든. 엔지니어들이 설비다루는 공간이 있거든요..…(중략)…청정수칙을 담당하는 잡이 하나 있는데, 그분이 우리 작업 공간 에어리어.. 제조하는 공간에서는 하는데, 뒤에 엔지니어들이 있는 서비스에어리어에서 까지 가서 하지는 않아요. 거기는 반도체를 제조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공간이지만 분리되어 있어요. 서비스에어리어 가려면은 에어샤워를 하고 또 나가야돼. 거기 까지는 청정을 그렇게 강요하진 않기 때문에…(중략)(정애정, 여성-오퍼레이터, 고황민웅, 남성-엔지니어 아내)

이상에서와 같이 성별 직문분리는 노동자들의 위험정보에 대한 접근의 차이를 만드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성-엔지니어와 여성-오퍼레이터들의 분리된 작업공간은 청정관리를 위해 요구되는 몸에 대한 통제의 수준이 다르게 적용되는 근거로 작용한다. 즉, 성별 직무 분리의 근본적인 원인인 성차에 따른 불평등은 노동현장의 유해성 위험물질에 대한 정보와 노동자의 몸에 대한 통제권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차이는 위험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도 차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남성-엔지니어들 역시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다는 점은 또 따른 측면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젠더화 된 위험정보와 위험인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조직문화가 노동자들의 위험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동시에 고려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 직무분리를 통한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작업환경과 같은 물리적 조건과 위험정보의 양 및 접근 가능성에 있어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3) 질병에 대한 지식의 재구성과 젠더화 된 질병의 경험

앞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대부분 그들이 다루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의구심이 생기더라도 주변의 보편화된 위험감수 행동을 통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들이 실제 질병을 경험하기 전까지

3) 반도체 공장의 작업장은 많은 변화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반도체 공장에 따라 서비스 에어리어가

없거나, 라인 개념이 희박한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공정의 변화에 따라 사용하는 기기, 화

학물질도 바뀌었다. 심지어 공정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운동을 주장하

는 주체가 ‘현재’ 작업장으로 ‘과거’를 측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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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인식은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경쟁적이고 강제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질병은 개인의 결함이나 주의부족으로 이해되고 개인차원에서 감수해야 할 문제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작업환경에서 겪었던 질병의 징후들에 대한 경험과 유사한 질병을 앓고 있는 동료의 발병에 대한 인지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여성-오퍼레이터 D와 같이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었고, “아픈 사람을 봤지만” 그들이 겪는 질병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공통의 원인이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질병의 피해 당사자가 되는 순간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사원들의 ‘생리통’이나 ‘갑상선’과 관련한 질환이 일련의 관련성을 가지는 사건들로 재구성된다. 여성-오퍼레이터 C 역시 “같이 일을 했었”던 동료가 먼저 같은 “유방암”을 겪고 퇴사하고, 1년 후 본인과 또 다른 동료가 동일한 질병을 경험하게 됨으로써 질병이 개인적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고황유미씨의 아버지인 황상기씨 역시 같은 병원에 고황유미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가 입원하게 되면서 작업현장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전에는 솔직히 저도 뭐 그랬고, 회사 일 하면서 아픈 사람은 봤지만 이렇게 막 눈여겨보진 않았어요. 왜냐면 내가 그냥 나만 일하고, 나만 뭐 건강하고 회사 잘 다니면 되니까. 근데 지나고 제가 생각해보니까. 주변에서 좀 아팠던 사람도 있었고, 안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런게 좀 많은 거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다른 저기 보다는 조금 더 있는 거 같고, 또 여사원들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여성 그런 뭐 생리통이나 이런 그런거? 갑상선 그런게 여성은 좀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도 있었던 거 같고. 그렇더라고요.(D, 여성-오퍼레이터)

처음에 가서는 몰랐었어요. 나중에 일하면서 이제 얘기 들은 거죠. 얘기 들었는데. 이제 그 앞전에 세 사람은 모르고, 한 사람은 저보다 먼저 걸린 네 사람 중에 한 사람만 제가 알아요. 같이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나 병 오기 일 년 전에 그 사람이 벌써, 그 사람도 또 그런 병이 와서 나하고 똑같은 이런 유방암으로 와가지고 그 사람이 먼저 퇴사를 해가지고 치료를 했고. 1년 후에 여기 반장님하고 나하고 또 다시 둘이 나온 거지(C, 여성-오퍼레이터).

병실에 있고 병실에 밖에 휴게실처럼 의자도 조금 있고. 보호자들 쉬라고. 그래 아줌마들 있길래 아줌마들이 물어봤어. 그래 삼성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고 얘기를 했어. 한 아주머니가 저기 저기도 삼성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다고 그러더라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다가 어떤 사람이 그런가 하고 물어보러 갈려고 갔는데, 병실에 명패가 있고 사람이 없더라고. 문은 꼭 닫혀있고 면회금지 이렇게 되어있고 그래서 사람을 못 만나고.. 계속 치료받고 다니는데. 그래갖고 있는데, 병원에 유미하고 같이 일했던 이OO이가 병원에 입원한거야.(황상기, 고황유미, 여성-오퍼레이터 부친)

남성-엔지니어 G의 경우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갖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개인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질병간의 유사성을 인식하면서부터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G는 동료의 문병을 위해 병원에 방문하였을 때, 동료가 먹고 있는 약이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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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용 중인 약과 같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질병원인에 대한 지식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백혈병하고 베게너하고 전혀 상관이 없다라는 식으로... 들었고 알았는데 희귀한 병이라서 관련을 모르고 있었는데, 나는 (문병) 안가도 됐었는데 아팠다가 난 사람이니까 한 번 니가 가서 가면 조언이 될 거다라고 해서 갔는데, 얘기하다보니까... (같은 약을 먹고 있었음) 어, 이거 그런 거지.(G, 남성-엔지니어)

이전까지는 “백혈병”, “베게너”, “흑생종”, “뇌출혈” 등 질병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업병에 대한 의심이 크지 않았으나 같은 약을 먹는 것을 보고 희귀병이지만 질병 간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질환들 간의 직업병으로서의 관련성을 찾게 된 것이다.

계기는, 친한 친구가 한꺼번에, 동료들이 한꺼번에 나오잖아요. 부서별로. 부서별로 희귀한 병이 생긴 거 자체는 갑자기 한 곳에 생겼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같은 부서에 병 생기는 게 백혈병 부장님 생기고, 저는 베게너, 약간 다르긴 하지만 희귀한 병이 갑자기 생기잖아요. 그리고 다른 파트인데 그 사람들은 또 흑생종 생기고 어떤 사람은 뇌출혈 생기고 아픈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 많아지더라고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문제의식이 생긴거지. 그리고 색다르게 보기 시작한 거지. 옛날에 좀 무시하고 있던 그런 것들이 좀 이상하다고.(G, 남성-엔지니어)

따라서 질병 경험과 질병 원인에 대한 지식은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가진 동료들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개인적 질병의 프레임을 벗어나 산업재해로서의 질병에 대한 지식으로 재구성된다. 자신의 몸을 통해 경험하는 질병의 ‘징후’들은 특히 여성에게 생식과 관련한 문제들과 결합된 형태로 드러나면서 남성-엔지니어들과는 다른 여성-오퍼레이터들만의 질병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여성-오퍼레이터들은 이러한 ‘징후’들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데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부인병 같은 거라” “결혼하지 않은 여사원”들이 드러내기가 어렵다는 여성-오퍼레이터 D의 설명은 자신이 “생식기”와 관련한 질병으로는 처음으로 산재신청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또한, 여성-오퍼레이터였던 이성옥씨에 따르면 생리불순을 겪는 여성-오퍼레이터들의 경우 난임과 같은 임신의 어려움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만둔다거나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채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는 여성의 ‘생식’과 관련된 징후들을 공론화하는 것이 금기되는 사호적 분위기와 질병을 개인화하는 조직문화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성-오퍼레이터들은 ‘생식’과 관련된 징후들을 통해 몸의 이상을 인지하지만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 부재하거나 조직내 권한이 낮은 상태에 있다. 따라서 여성-오퍼레이터들의 생리적 증상에 대한 호소는 일반여성들에게 흔하게 발견되는 증상으로 축소되고, 조직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제한된다.

그게 다른 거는 몰라도 아무래도 이게 여성... 약간 어떻게 보면 여성 그 부인병 같은 거라 좀 그렇게 드러내기가 좀 그렇잖아요. 어떻게 보면. 좀 여사원들 결혼했으면 몰라도 결혼하기 전이면 아무래도. 그래서 그런가 제가 처음이라 그러더라고요. 노무사님도 그 생식기 쪽으로 하는 거는. 저는 뭐 아무 그런 게 없었으니까 이게... 그래서 했는데 아마 알게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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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게 또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많이 고민하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말은 못하고. 예.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D, 여성-오퍼레이터)

저는 그런 건 없는데, 후배들 중에, 생리양이 거의 없는 거. 하긴 하는데 거의 없어. 거의 끝에 무렵 하는 것처럼 그렇게만 하고 끝내는 친구도 있고, 안하는, 건너뛰는 친구도 있고, 그냥 두 세 번씩, 그냥 이렇게 두 달을 건너뛰는 애도 있고, 근데 그런 친구들이 나중에 애기가 잘 안 생겼어요. 그 후배도 한 5년? 결혼하고 한 5년 정도? 임신 안됐어요. 임신 안되고 나중에 됐어요. 임신이 안되 가지고 그냥 포기하고. 그냥 라인 생활을 계속 했으니까. 지금도 하고 있어요. 애기 낳고서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냥 그 상태에서 계속 라인생활 했는데 생겼어.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어요. 나중에. 사내커플이었는데, 회사, 반도체 그만두고 바리스타 일 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다가 애기 생긴 거 같아. (이성옥, 여성-오퍼레이터)

사실 노동현장에서 생리통 호소 등 여성의 생식독성 관련 의심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보호방안이나 규정은 미비하다. 또한 생리불순, 생리통 등의 징후는 단순히 여성의 개인적인 약함으로 치부되기 쉽고, 생식독성과 여성건강의 문제는 여성 개인에게 보다 민감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덜 알려지는 경향이 있다. 2013년 10월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반도체 전자산업 여성 노동자의 생식독성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이후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고 있지만 아직 가시화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생식독성이 여성에게만 특별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남성의 생식독성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진행된 연구가 많지 않다. 앞 절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1988년부터 2011년까지 연구된 반도체 웨이퍼 가공 근로자들의 생식독성과 암에 대한 역학연구들 중 남성 근로자 생식능력에 대한 역학 연구는 단 1편에 불과했다(박동욱・이경무, 2012)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질병에 대한 공통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들은 ‘몸’의 징후들과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작업현장의 연관성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지식을 재구성하게 된다. 인터뷰이 중 한명인 정애정씨의 경우 반올림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도 고황민웅씨의 질병에 대한 의문보다는 당시 반도체 작업 공정에 대해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났다고 하다. 그러나 반올림과의 만남에서 반도체 작업 공정을 진술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작업이 어떤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화학물질뿐 아니라 이전에는 그냥 넘겼던 ‘의자’나 ‘화장실 허락’, ‘다른 동료들의 건강징후’ 등과 같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상적인 노동 과정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진술한다. 이는 박민숙씨와 이성옥씨의 경우에서도 동일한 과정을 통한 위험인식과 질병에 대한 지식의 재구성이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역시 투병 생활과 다른 동료들의 건강상의 문제들을 확인하게 되면서 반올림의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진술하면서 기존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노동과정에 대한 재해석, 질병을 경험하는 몸에 대한 지식의 재구성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전에는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건강하지 않은 몸 상태를 드러내는 신호들과 노동환경과 노동과정을 연결시키게 되면서 ‘징후’들은 질병 그 자체이자 그 원인을 잠재적으로 드러내는 표상이 된다. “여드름 등 피부질환으로 피부과 치료를 받았었는데 지금은 여드름이 싹 나았다(이성옥, 여성-오퍼레이터)”거나, “끊이지 않고 고생하던 생리통이 퇴사 후 사라졌다.(D, 여성-오퍼레이터)”는 진술을 통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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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듯이 습진, 두드러기, 코피나 생리통, 생리불순과 같이 아픈 몸은 아니 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신호들을 인식하고 그 상황을 재구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환자(노동자)들은 질병 경험을 통해 기업의 관점에서 관리된 노동자의 몸과 기업의 몸 담론에 익숙했던 틀에 의문을 갖거나 저항적인 시각을 갖추게 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과 노동 환경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5. 토의 및 결론

‘삼성백혈병’ 사례는 산업재해 피해자인 노동자들의 질병 경험이 전문가들의 과학적 판단과 일치하지 않는 이유가 단지 노동자들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비합리적이거나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유해 화학물질이 질병의 원인인가에 대한 논쟁은 직업성 질병의 인정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며, 법적으로 이를 입증할 책임은 노동자에게 존재한다. 하지만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에 기인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전문가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이 노동자의 질병경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공식적인 제도적 틀 안에서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작업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의 몸에 질병들이 동시에 여러 병명과 징후들로 드러나고, 이는 노동과정을 통해 ‘병들었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문제제기의 단초를 마련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작업환경에 대한 경험들을 소환하고, 주위에 자신과 비슷한 질병을 경험하는 동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질병에 대한 지식을 재구성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반도체 전자산업의 직업성 질병에 대한 논쟁은 과학적・법률적 판단의 제도화된 틀을 벗어나 다양한 층위의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질병에 대한 지식정치가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위해 요소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위험으로 인식되며, 왜 같은 상황에서도 위험이 체계적으로 무시되거나 문제시 되지 않았는가는 노동보건운동이 발화하는 바로 그 지점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반도체 전자사업 노동자들이 작업현장의 유해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직업성 질병에 대한 지식을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노동보건운동으로 이어지는 연결지점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성별에 따른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인식과 질병경험의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특히, 노동현장의 특수한 맥락 즉, 성별 직무 분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적 맥락에서 위험에 대한 인식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가에 주목하였다. 노동보건 운동의 주체로서의 노동자(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인터뷰를 분석결과 위험정보에 대한 접근성(환경수첩의 배포 및 소지)과 지식의 수준에서는 차이가 드러났다. 기업은 관리직인 남성-엔지니어들에게만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담긴 환경수첩을 제공하고 생산직인 여성-오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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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들에게는 극히 적은 교육기회만을 제공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위험에 대한 정보전달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성별 직문분리는 노동자들의 위험정보에 대한 접근의 차이를 만드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성-엔지니어와 여성-오퍼레이터들의 분리된 작업공간으로 인해 청정관리를 위해 요구되는 몸에 대한 서로 다른 수준의 통제가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성별 직무 분리의 근본적인 원인인 성차에 따른 불평등은 노동현장의 유해성 위험물질에 대한 정보와 노동자의 몸에 대한 통제권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위험인식의 차이를 발생시킬 것으로 가정한 것과 달리 남성-엔지니어들조차 위험에 대한 인식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었다는 점이 인터뷰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는 정보의 접근성과 지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성-엔지니어와 여성-오퍼레이터 간의 위험인식의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성별의 차이를 떠나 기업의 조직문화가 경쟁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충성과 신뢰를 강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생산성 경쟁을 위해 노동자들은 보다 많은 위험 감수 행동을 하고, 이 과정에서 작업현장의 위험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성별화 된 질병 경험의 차이 여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구분이 필요하다. 우선 질병의 경험으로부터 질병에 대한 지식이 재구성되는 과정에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개인화되기 쉬운 직업성 질병은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가진 동료들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개인적 질병의 프레임을 벗어나 산업재해로서의 질병에 대한 지식으로 재구성된다. 이후 시민단체와의 결합을 통해 공식지식에 대응할 수 있는 시민지식을 형성하는 등의 노동보건운동으로서의 공론화 과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병을 인식하는 ‘징후’들에 있어 여성-오퍼레이터들은 생식독성의 영향으로 지목되는 생리적 징후들을 보다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오퍼레이터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경험하는 질병의 ‘징후’들은 여성의 생식과 관련한 문제들과 결합된 형태로 드러나면서 남성-엔지니어들과는 다른 여성-오퍼레이터들만의 질병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노동보건운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위험인식, 질병경험, 질병 원인에 대한 지식의 재구성 과정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질병의 징후들을 인식하는 과정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성별 직무분리가 위험정보와 위험인식에 미치는 영향은 일관된 해석이 적용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특히 위험인식에 있어 성별에 따른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위험인식이 성별이라는 개인적 특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 연구의 전체 가정이 적합하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위험인식의 차이를 다루고자 한 것은 여성의 건강권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주변화 되어 있는 문제가 여성들이 건강과 관련한 지식의 생산과 공급 및 사용에서 주변화 된 위치에 있는(이수정, 2008) 불평등의 영향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위험인식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었으나, 위험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구조적 차원의 불평등(성별 직무 분리)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위험정보에 대한 체계적인 배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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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적으로 위험에 대한 불평등을 발생시키며, 낮은 직급과 권한이 적은 직무에 배치되어 있는 여성들은 위험에 대한 적절한 통제권을 발휘할 가능성 역시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동질적 집단이 아닌 성별 등과 같은 개인적 특성과 이를 다르게 취급하는 사회구조적인 영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이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중역학이 구성되는 과정 역시 단일한 이해를 가진 노동자들이 단일한 위험인식과 이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분화되고 층화된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동현장에서의 위험인식과 질병의 경험 그리고 질병에 대한 시민지식이 구성되는 과정에 젠더의 문제를 포함함으로써 남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이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의 이해를 구성해가는 과정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러한 이질적 정체성들을 가진 노동자들이 노동보건운동을 구성해가는 과정에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에 대한 진전된 이해와 분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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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1] 심층 인터뷰 및 초점 집단 인터뷰 참여자 목록

<심층 인터뷰>

번호 성명 면접일자 성별 직업 운동과의 연계점

1 정애정 2013년 2월 3일 여성 환자 고황민웅 유족, 삼성일반노조 활동

반올림 조직, 삼성일반노조

활동

2 황상기 2013년 2월 5일 남성 환자 고황유미 유족 반올림 조직

3 송창호 2013년 2월 15일 남성 환자 반올림 조직

4 A 2013년 8월 14일 여성 환자(오퍼레이터) 산재신청

5 B 2013년 8월 15일 남성 환자(엔지니어) 산재 불승인

6 C 2013년 8월 15일 여성 환자(오퍼레이터) 산재신청

7 이성옥 2013년 8월 19일 여성 환자(오퍼레이터) 산재신청

8 박민숙 2013년 8월 20일 여성 환자(오퍼레이터) 산재신청

9 D 2013년 8월 21일 여성 환자(오퍼레이터) 산재신청

10 강덕원 2013년 8월 26일 남성 환자 고 김도은 유족 산재 인정(민사 소송 준비 중)

11 E 2013년 8월 30일2013년 11월 7일 여성 환자(오퍼레이터) 산재신청

12 F 2013년 10월 18일 여성 환자 산재신청

13 G 2014년 2월 18일 남성 환자(엔지니어) 산재신청

14 H 2014년 2월 20일 여성 환자(오퍼레이터) 산재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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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족 초점집단 인터뷰>

<환자-노동자 초점집단 인터뷰>

면접일자 소송 상황 성명 관계 병명

2012년 7월 26일

1차 소송단2심 진행

황상기(환자 가족) 고황유미 부친 백혈병

정애정(환자 가족) 고황민웅 아내 백혈병

송창호(환자) 환자 본인 비호지킨스림프종

2차 소송단

정희수(환자 가족) 고이○○ 남편 악성 뇌종양

김시녀(환자 가족) 한혜경 모친 뇌암(뇌종양)

유○○(환자 가족) 유○○ 부친 재생불량성빈혈

면접일자 소송 상황 성명 직업 병명

2013년 11월2013년 12월

산재신청 접수

박민숙 환자 유방암

이성옥 환자 갑상선암

D 환자 포상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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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예방원칙과 합성생물학 거버넌스: 생물다양성협약의 합성생물학 논의를 중심으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우태민

서론 합성생물학은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새로운 분야로 기존의 생명시스템을 재설계 하거나 자

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체 또는 생명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생명체를 재설계해 인류에게 유익한 생명물질을 만들어 냄으로써 에너지, 식량, 질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생명윤리, 생물안전성, 생물테러 등의 위험 또한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의 이러한 양면적 잠재성은 새로운 학제의 발전에 대한 기대와 함께 합성생물학의 위험을 미리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논의를 불러 일으켰고, 연구분야가 빠르게 국제화되고 연구주제가 확장되면서 초국가적 거버넌스의 형태로 논의의 장이 확장되고 있다.

이 논문은 합성생물학의 초국가적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요한 정치적 공간 중 하나로 생물다양성협약에서 전개되고 있는 합성생물학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생물다양성협약은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환경협약으로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이용, 그리고 생물자원을 이용해 얻어지는 이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 협약은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이용과 관련해 숲, 해양, 농업, 외래종,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의제들을 검토하고 논의하고 있는데, 특히 새로운 생명공학기술이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협약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왔다. 1980년대 말 시작된 협약의 준비과정에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환경 및 인체위해성 문제는 LMO의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2000년 생물안전성에 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를채택하면서생물다양성협약은LMO의 국가간 이동으로 인한 잠재적 위해성을 사전예방적 접근을 통해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최초의 국제환경협약이 되었다.

생물다양성협약은 2006년 과학자문보조기구의 역할로 “새롭게 등장한 이슈(New and Emerging Issue, NEI)” 메커니즘을 강조하고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들을 검토해 당사국 회의의 새로운 의제로 상정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생명공학기술의 결과로 나온 제품과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오 연료와 합성생물학이 새로운 NEI로 제안되었고, 생물다양성협약 내에서 1990년대 카르타헤나 의정서 채택 당시 벌어졌던 LMO의 위해성 논란 이후 또다시 생명공학기술의 발전과 생물다양성 문제에 대한 첨예한 갈등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

이 연구는 합성생물학이 생물다양성협약의 새로운 의제로 선정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현재 진행중인 온라인 포럼, 전문가 회의, 그리고 제13차 당사국 회의(COP13) 준비과정에서 전개되는 논의 내용의 실시간 분석을 통해 합성생물학의 초국가적 거버넌스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물다양성협약은 196개국의 당사국들의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구성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적 공간이며, 온라인 포럼과 전문가회의는 LMO, 바이오 연료, 합성생물학 분야의 연구자, 정부 관료, 정책결정자, 사회과학자, NGO, 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각자의 입장을 펼치고 특정 종류의 지식과 이해를 생산해 내는 전문가 정치 또는 지식 정치의 장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현재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합성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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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구조와 쟁점을 분석함과 동시에 이를 생물다양성협약의 초기 논의인 LMO와 생물안전성, 그리고 카르타헤나 의정서에 적용된 사전예방원칙의 해석을 둘러싼 논의들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현재 협약의 논의과정에서 구성되고 있는 합성생물학 거버넌스를 보다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생물다양성협약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성생물학의 잠재적 위해성에 대한 실시간 논의 분석을 통해 기존의 국제회의 논의 분석에서 드러나지 못했던 점들을 드러낼 수 있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특히 국제협약은 한가지 주제를 둘러싸고 복잡하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경합할 뿐만 아니라 논의의 규모가 크고, 장기간에 걸쳐 온라인 포럼, 전문가 회의, 실무그룹회의, 과학기술자문기구회의, 서면을 통한 상호 평가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논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사회과학적으로 어떻게 분석해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생물다양성협약과 카르타헤나 의정서의 채택 과정에서 있었던 논의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역사적 기술이나 논의의 구조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에 따른 것이었다면, 첫 번째 NEI로 제안되었던 바이오 연료의 잠재적 위해성을 둘러싼 논의과정에 대해서는 방법론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접근 중 하나가 “Collective Event Ethnography (CEE)”라고 불리는 실시간 논의에 대한 집합적 민족지 연구이다.이러한 연구방법론들을 통해 국제회의 논의분석에 대해 새롭게 포착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 살펴보고 합성생물학 거버넌스 논의에 대해 앞으로 어떠한 접근들이 가능할 것인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생물다양성협약과 사전예방원칙 사전예방원칙은 생물다양성협약의 가장 중요한 전제이자 협약에서 벌어진 논의에서 당사국

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수 차례 재해석되고 재구성된 논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예방원칙은 1980년대 이후 보건 및 환경문제에 관련한 사회, 정치적 논의에서 중요한 요소로 적용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오늘날 국제 협약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기술 관련 법령 및 정책형성 과정에 핵심원칙으로 적용되고 있다.사전예방원칙은 비록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선제적으로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이는 과거 전통적인 위험평가 및 관리가 위험에 대한 과학적 증거 (또는 “건전한 과학”의 역할)가 확보될 때까지는 안전하다는 가정에 기초했던 것에 비교해 볼 때 위험과 불확실성에 대해 상당히 차별화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예방원칙에 대한 해석과 적용 범위, 그리고 정책결정과정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떠한 합의가 없다.따라서 사전예방원칙은 다양한 이슈에 적용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사회적 맥락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상이하게 해석되고 있어, 다양한 논쟁에서 개념 자체의 해석과 적용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Lujan과 Todt은 과학기술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부재하다”고 인식되는 상황에서 사전예방원칙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가열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결국 사전예방원칙에 대한 양극단의 해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즉, 사전예방원칙은 특정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일시적 중지(moratorium, 모라토리엄)를 위한 근거로 해석되는 한편, 과학기술의 발전의 측면에서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전예방원칙에 대한 이러한 양극단의 해석들은 생명공학기술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생물다양성협약에서도 잘 표출된다. 생물다양성협약의 제 19조 3항은 생물안전성에 대한 의정서를 마련하고 사전예방원칙에 따른 사전통보합의 절차를 규정해야 할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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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생물다양성협약의 논의 초기부터 LMO와 LMO의 위해성에 대한 사전예방적 접근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사국들은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생명공학기술에 유래한 LMO의 안전한 이전, 취급 및 이용의 분야에서 특히 사전통보합의 등을 포함한 적절한 절차를 명시하는 의정서의 필요성과 그 세부원칙(modalities)을 검토한다. (CBD, 1992, 생물다양성협약 제19조 3항)

위의 협약문에 포함되어 있는 “LMO”와 “사전통보합의(Advance Informed Agreement, AIA)”의 개념들은 협약의 작성과정에서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가장 중요했던 쟁점들이다. 생물다양성협약의 생물안전성 의정서 협상과정을 분석한 Gupta는 초기 논의에서 LMO와 사전통보합의에 대해 비록 임시적인 합의에 불과했지만 그 경계를 마련함으로써 이후 논의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고 지적했다.LMO와 사전통보합의는 사실 개발도상국에서 지적한 GMO의 잠재적 위해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해 화학 폐기물에 대한 국제협약인 바젤협약에 적용된 바 있는 사전동의절차 (Prior Informed Consent, PIC)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취했던 미국이 새롭게 제안한 정의들이다.Gupta는 GMO를 LMO로, PIC를 AIA로 바꾸어 협약의 내용을 작성함으로써 비록 의미가 같더라도 미국과 개발도상국이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논의가 계속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생물안전성 의정서 작성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1995년 11월 제2차 당사국회의에서 마련된 실무그룹회의(BSWG)은 1996년부터 “생물안전성”의 범위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LMO 수출국과 수입국들은 생물안전성 의정서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LMO의 범위를 두고 또다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미국과 같은 수출국들과 제약회사들은 의약품, 밀폐사용 목적, 농산품 등 특정 종류의 LMO 제품들은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므로, 의정서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종류의 LMO와 이를 활용한 제품에 대해 엄격한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하자는 입장의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의 이러한 주장에 “그렇다면 의정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LMO로는 도대체 무엇이 남는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LMO의 위해성에 대해서도 미국은 환경위해성만을 주장한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환경, 인체 및 사회경제적 구조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GMO 수출국과 수입국은 사전예방원칙에 입각한 의사결정과정의 성격에 대해서도 상이한 해석을 갖고 있었다. 개발도상국과 NGO들에게 사전예방원칙은 LMO의 수출입에 의한 인체 및 환경 위해성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이윤과 비용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적용하기 위한 필수 전제라고 해석된 반면, LMO 수출국과 산업계에서는 규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은 국가(즉, 개발도상국)들이 LMO와 같은 현대 생명과학 기술의 결과로 등장한 제품들에 대해 과학에 기반한 위해성 평가 절차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성 정도로 해석하거나, 사전예방원칙은 결국 위장된 무역장벽일 뿐 국제 협약의 실무적 조항으로는 결코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완고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주요 쟁점들에 대한 수출국과 수입국들의 입장차이로 인해 논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종적으로 당사국들은 총 세 개의 협상연합(Miami Group, Like-minded Group, European Group)을 구성하게 되었고, 마지막 회의였던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특별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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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현재 생물안전성에 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는 환경 및 인체위해성을 예방하기 위해, LMO를 환경방출용 및 기타 LMO, 식품, 사료용, 가공용 LMO, 밀폐사용 LMO로 구분하고, 사전통보합의(AIA) 절차를 각각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Gupta는 생물안전성 의정서 작성과정을 분석하고, 생물다양성협약 내에서 생물안전성 거버넌스 논의의 특성을 지적했는데, 특히 생물안전성 의정서 작성은 처음부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LMO의 “위험” 여부 자체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위험 자체의 존재 여부 보다는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를 주로 다루는 다른 국제협약과는 출발점부터가 상당히 달랐다고 강조했다.뿐만 아니라 논의 과정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의 영역과 과학적 평가 및 숙의의 영역 사이의 구분은 생물안전성에 대한 합의에 이끌어내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즉, 논쟁이 되었던 주요 개념들 - LMO, 생명공학, 고의적 방출 등 – 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정치적인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생물다양성협약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는 과학기술그룹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이로 인해 논의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본인들의 역할에 대해 “(정치적) 협상이 아닌 과학적 자문과 이해를 제공하고자 온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Gupta가 포착한 이러한 특징들은 이후 전개된 바이오 연료와 합성생물학 논의에서도 관찰되는데, 다음 장에서는 새로운 의제로 등장하게 된 두 가지 이슈를 둘러싼 논의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서, LMO 논의를 통해 구성된 생물다양성협약의 생물안전성 거버넌스가 새로운 의제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재구성 되고 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NEI (New and Emerging Issue) 메커니즘의 도입과 바이오 연료 생물다양성협약은 현재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이용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생물다양성협약 내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이슈들에 대한 기본적인 과학기술적 검토와 평가는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SBSTTA, Subsidiary Body on Scientific, Technical and Technological Advice)가 담당하고 있다. 2006년 제8차 당사국회의 결정문에는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의 여러 가지 역할 중 하나로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이용과 관련된 “새롭게 등장하는 이슈(NEI)”를 찾아내고 검토하는 임무를 추가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각 당사국들과 옵저버들은 새로운 이슈들을 제안할 수 있고,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는 제안들을 검토해 생물다양성협약의 NEI로 추천할 것인지에 대해 숙의과정을 거치게 된다.생물다양성협약에 새롭게 도입된 NEI 메커니즘은 아직 과학적 지식이나 거버넌스가 확립되지 않은 이슈들에 대해서도 생물다양성협약 내에서 직접 검토하고, 의제로 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또한 LMO의 생물안전성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났듯이 논의 대상이 생물다양성협약에서 다루어져야 할 적합한 주제라는 기본적인 전제에 대한 기본적인 동의가 없으면, 이후의 논의과정이 더욱 첨예한 갈등의 형태로 전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NEI 메커니즘의 도입은 생물다양성협약 내에서 더욱 논란이 많은 주제들이 다뤄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공식 의제로 상정하기 전에 이슈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미국 뉴저지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인 Deborah Scott은 총 17명의 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된 “Collective Event Ethnography (CEE)” 연구팀의일원으로, 바이오 연료가 NEI로 제안된 제10차 당사국회의에서 공식 의제로 상정되어 논의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Scott은 전공분야가 서로 다른 세 명의 팀원들과 함께 제10차 당사국회의 동안 바이오 연료에 대해 열린 총 3개의 회의와 4개의 부대행사에 참석하고, 회의의 기본 자료로 발간된 자료들을 검토하고, 논의를 실시간으로 관찰했으며, 주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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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특히 Scott은 서로 다른 연구자가 실시간 관찰한 내용을 사회학자인 미셸 칼롱이 제시한 네 단계에 걸친 “번역”과정 – 문제제기, 관심 끌기, 등록하기, 동원하기 – 의 틀을 적용하여 각 단계들이 논의 과정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였다.

Scott은 바이오 연료 논의에서 다음과 같은 쟁점들을 포착하였는데, 첫 번째는 바로 바이오 연료의 정의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질문은 곧 바이오 연료를 기존의 의제에 포함된 것으로 보지 않고 새롭게 등장한 이슈 – 즉 새로운 위험- (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브라질과 같은 바이오 연료를 옹호하는 당사국들은 농업에 기반한 바이오 연료로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해양조류 또는 숲 등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정의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오 연료의 범위를 설정하는데 대한 논의는 이 사안에 대해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한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전제를 마련하는 과정이므로 특히 개발도상국과 기술 선진국들의 이견이 크게 갈렸다.

또한 바이오 연료에 대한 논의는 바이오 연료가 생물다양성에 대해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쟁이 더욱 가열되었다. 바이오 연료는 1990년대부터 화학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청정에너지로서, 온실가스 감소, 에너지 접근성의 증가, 나아가 국가 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 속에서 성장해 오고 있는 분야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바이오 연료는 환경 정책의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면서 바이오 연료 산업의 성장은 사막화를 초래할 수 있고, 농업 생물다양성의 감소와 토양침식, 식량 안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생물다양성협약 내에서도 바이오 연료는 NEI로 제안되기 이전에는 주로 긍정적 영향만이 언급되었지만, 제10차 당사국회의에서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그룹들이 산업계와 브라질의 의견에 강하게 반격했다.

바이오 연료 논의의 마지막 쟁점은 합성생물학 문제를 함께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합성생물학의 경우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데에만 제한되는 분야가 아니므로 생물다양성협약 내의 다른 포럼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 제기된 한편, 합성생물학이 아직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사전예방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Scott은 합성생물학에 대한 논의에서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입장을 개진하는 점을 흥미롭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 포럼에서 주로 지식 정치를 펴는 쪽은 기술선진국들이었으며, 개발도상국들은 주로 전문가 지식의 불확실성과 격차를 지적하는 입장이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중요한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Scott은 바이오 연료의 논의과정과 최종 결정문에 반영된 내용에 대해 번역의 첫 번째 과정인“문제 제기” 단계에서부터 실패한 논의라고 평가하며, 바이오 연료에 대한 논의과정은 참가자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바이오 연료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해석은 집합적 참여관찰이라는 연구방법론을 통해 개인, 그룹, 또는 사물 (즉, 바이오 연료)이 네트워크 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논의 과정 속에서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해 낸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Scott과 CEE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 연구방법론은 각 연구자들의 관찰한 내용이 주관적일 수 있다는 점, 생물다양성협약의 논의의 역사적 맥락과 구조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집합적 실험이 단순히 연구 범위를 키우는 데에 집중해서는 안되다는 점 등의 한계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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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협약 내의 합성생물학 거버넌스생물다양성협약 내 생물다양성 이슈는 바이오 연료가 NEI로 제안되면서 함께 논의되었지만,

사실 합성생물학이 생물다양성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이슈였다. 2008년 ETC 그룹은 제13차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회의에서 MIT의 저명한 합성생물학 연구자인 드류 앤디 교수와 함께 합성생물학에 관한 부대행사를 개최했고,2010년,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에서 “자가 증식하는 합성 박테리아세포”를 만들었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이는 같은 해 열린 제14차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회의에서는 처음으로 합성생물학이 생물다양성협약의 NEI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필리핀 대표의 제안으로 이어지게 되었다.필리핀 대표는 합성생물학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물체에 대해 강력한 사전예방에 입각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데에 국제적인 동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유럽연합 등은 합성생물학에 사전예방적 조치를 취한 것뿐만 아니라 NEI로 제안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2010년 제10차 당사국회의에서 바이오 연료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결정문에는 논의과정에서의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당사국과 그 외 정부들에게 합성생물체, 합성세포, 또는 합성게놈을 환경에 방출하는 경우에 대해서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이슈에 대한 결정문에서 합성생물학에 대한 정보를 제출하라고 발표해 합성생물학의 위해성에 대해 본격적인 정보수집이 시작되었다.

2012년과 2014년 개최된 두 차례의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회의(제16차, 제18차 회의)에서 그 동안 제출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합성생물학이 NEI의 7가지 검토기준을 모두 충족하는지 검토하였지만 두 회의 모두 아직 합성생물학이 새로운 NEI로 제안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2년 제11차 당사국회의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이슈에 대한 결정문을 통해 당사국들로 하여금 합성생물학으로부터 야기되는 생물다양성의 심각한 감소 및 소실에 대한 위험을 다룰 때에는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하도록 권고했고,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위해성에 대한 논의나 의사결정 절차에 대한 논의는 시작되지 못하였다. 2014년 개최된 제18차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회의에서도 현재까지 이용 가능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합성생물학이 “새롭게 등장한 이슈”의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이 반복되었고, 2014년 제12차 당사국회의에서는 사무국의 주도 하에 합성생물학에 대한 전문가 그룹회의를 구성하고, 이를 준비하고 지원하는 성격의 온라인 포럼을 개최하기로 발표하였다.

바이오 연료가 NEI로 제안되고, 이듬해 당사국 회의의 공식 의제로 상정된 과정과 비교해 볼 때, 합성생물학에 대한 논의는 당사국들과 비당사국 옵저버들이 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립하고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현재 합성생물학에 대한 논의는 2016년 12월에 개최되는 제13차 당사국회의를 앞두고 [표 1]과 같은 일정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표 1] 생물다양성협약 합성생물 관련 활동 일정활동내역 활동주체 일정(기한) 현황

온라인포럼 참여 전문가 추천

당사국, 비당사국, 토착민, 지역공동체, 관련 이해당사

자 등

15. 3. 1 ~ 3. 31 확정

온라인 포럼 토론 온라인포럼 15. 4. 27 ~ 7. 6 진행 중AHTEG 소집회의 AHTEC 2015. 9 잠정제12차 SBSTTA SBSTTA 2016. 4. 25 ~ 5. 7 확정

제13차 생물다양성협약당사국 총회 (COP13)

COP 2016. 12. 4 ~ 12. 17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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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협약 내 합성생물학 관련 활동은 현재 온라인 포럼 참여 전문가 추천이 완료되고, 총 5개의 토픽에 대한 온라인 포럼이 진행 중인 상태로, 총 5가지 토픽 중 3가지 토픽에 대한 토의가 완료된 상황이다. 이 장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합성생물학에 대한 온라인 포럼의 논의내용의 바탕으로 생물다양성협약 내에서 합성생물학 거버넌스 논의가 어떠한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합성생물학의 온라인 포럼의 구조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온라인 포럼에는 [표 1]의 “활동주체”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당사국 외에 다양한 범위의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당사국에서는 총 116명의 과학자, 정책결정자, 연구소 소속 연구자, 대학교수 등이 등록하였고, 비당사국과 관련 이해당사자들도 개인 또는 소속기관별로 “옵저버”의 형태로 등록하였는데, 개인 옵저버가 총 8명이며, 국제시민단체, 대학, 연구소, 개인 연구자 등을 포함한 기관 옵저버가 총 67명이 등록한 상태이다. 각 참가자들의 전공분야를 살펴보면 대부분 유전학, 식물육종학, 미생물학 분야의 과학분야 전문가들임을 알 수 있고, 예외적으로 대학과 시민단체 소속 참가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기관 옵저버에는 소수의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온라인 포럼은 원칙적으로 비당사국, 토착민, 지역공동체, 관련 이해당사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참가를 전제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과학자들 중심의 논의의 공간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국에서 제시한 온라인 포럼의 첫 번째 토픽은 “합성생물학과 생물다양성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약 2주간의 토론 기간 동안 총 90개의 답변이 달렸다. 첫 번째 토픽의 진행을 맡은 일본의 Ryo Kohsaka 교수는 생물다양성의 보존 측면, 생물다양성의 구성요소들의 지속 가능성의 측면, 그리고 유전학적 자원의 사용을 통해 생기는 이익의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 측면 등 생물다양성협약의 세 가지 맥락에서 합성생물학의 영향을 논의하도록 유도했다. 시민단체와 영국 등 ETC Group을 포함한 일부 참가자들은 생물다양성의 보존에 대해 기존에 존재하던 생명체를 합성생물학 기술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합성생명을 만들어 내게 되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고, 따라서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독일, 브라질, 일본, 영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 등 많은 참가자들이 합성생물학이 기존의 생명공학기술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따라서 합성생물학의 결과물이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LM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LMO에 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를 그대로 적용하거나 일부분을 변형해 적용하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우세한 의견이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오히려 합성생물학이 생물다양성의 보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합성생물학의 위해성 보다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생물다양성의 지속 가능한 이용에 대한 논의는 첫 번째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생물다양성의 지속 가능한 이용과 합성생물학의 발전을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참가자들이 (과학적)위험평가의 중요성을 제시했고, 위험평가의 대상은 합성생물학 기술이나 과정보다는 제품과 같은 결과물을 위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토픽은 카르타헤나 의정서에서 정의하고 있는 LMO와 합성생물학의 제품, 구성요소, 생물체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한 질문으로, 총 46개의 답변이 달렸다. 과학기술자문보조기구는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성생물학”에 대해 합성생물학의 제품,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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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요소, 생물체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각각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시하였는데, 온라인 포럼에서는 이 구분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상당수 제기되었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논의의 대상이 합성생물학의 결과인 “제품” 특히 살아있는 생물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정의를 따를 경우에는 현재 합성생물학의 기술 수준에서는 대부분의 결과 또는 제품이 살아있지 않은 생명물질이므로, LMO에 대한 규제로 충분하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일부 참가자들은 합성생물학의 일부 분야들(가령, Xenobiology)은 기존의 생명공학기술과 다른 합성생물학 만의 새로운 특성이며, 기존의 LMO의 정의를 보다 확장하거나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합성생물학이 새로운 종류의 위해성을 가질 잠재성을 인정하는 하더라고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거버넌스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었다.

세 번째 토픽은 합성생물학의 조작적 정의에 대한 것으로, 이를 통해 합성생물학에 포함되는 것, 또는 배제되는 제품, 구성요소, 생물체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합성생물학 분야는 2000년대 초 등장해 아직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합의된 정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참가자들이 생물다양성협약에서 합성생물학의 조작적 정의를 논의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합성생물학의 조작적 정의를 설정하는 작업은 이후 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기 때문에, 가장 활발하게 토론이 벌어진 내용이기도 했다. 에스토니아 참가자가 진행을 맡은 세 번째 토픽은 총 75개의 답변이 달렸고, 다음과 같은 쟁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첫 번째 이슈는 합성생물학 정의의 범위에 대한 것으로,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합성생물학의 정의에 대해 광범위하고, 간단한 정의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고, 이를 통해 합성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등장하게 될 기술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합성생물학의 정의를 광범위하게 설정하자는 의견은 카르타헤나 의정서 이상의 규제가 합성생물학에 가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참가자들의 의견일 뿐만 아니라, 합성생물학을 특정 기술이나 제품에 한정하여 구체적으로 정의할 경우, 합성생물학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 구성요소, 제품들이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우려하는 참가자들의 의견이기도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나머지 두 가지 토픽에서 던져진 질문들은 합성생물학의 생물체, 구성

요소, 그리고 제품이 생물다양성의 지속 가능한 이용과 인체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 혜택과 위해는 무엇이며, 사회경제적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것과 마지막으로 합성생물학을 규제할 수 있는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 제도의 적절성에 대한 것이다. 특히 합성생물학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제품이나 기술이 활용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합성생물학에 대한 사전예방적 접근은 LMO의 생물안전성 논의에서보다 더욱 정치적이고,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상이하게 해석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나머지 두 질문에 대한 온라인 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합성생물학의 온라인 포럼의 논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합성생물학을 별도의 사전예방적 조치가 필요한 새로운 종류의 “잠재적 위험”으로 보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고, 환경 NGO와 일부 개발도상국들이 이에 맞서고 있지만, 전자의 견해가 훨씬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기관 옵저버로 논의에 참가하고 있는 소수의 사회과학자들이 있지만, 온라인 포럼에서 이들의 실질적인 발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합성생물학 온라인 포럼에서는 LMO와 생물안전성 논의에서 드러났던 쟁점들이 상당히 비슷한 구도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일부 참가자들은 합성생물학 논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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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vs. New”, 또는 “제품 vs. 기술”과 같은 오래된 구도로 전개되는 것에 벌써부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합성생물학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논의는 결국 사전예방적 규제의 대상을 정의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진행되는 회의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앞으로 온라인 포럼과 전문가회의, 그리고 당사국 총회에서의 협상과정에 이르는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생물다양성협약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공간에서 구성되고 있는 합성생물학 거버넌스가 어떤 과정과 형태로 구성되어 나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현재 생물다양성협약은 총 168개국이 서명했고, 196개의 당사국이 공식 가입한 상태이다. LMO의 주요 수출국 중 하나인 미국은 생물다양성협약에 서명은 했지만 공식 가입은 하지 않은 상태이며, 우호국가들을 통해 자국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특히 자국의 국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 (ABS)와 관련한 논의에 있어서는 관련 민간기업이 옵저버 형태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있음 (박수진, 최근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회의에서의 기후변화 관련 논의동향 및 대응방향, 2011년 해양환경안전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2011. 11, p72)

카르타헤나 의정서 체결 후 산업자원부의 생물산업 국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생명공학연구소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생명공학안전성소식(Korean Biosafety Information)” 창간호에서는 카르타헤나 의정서의 국문 명칭으로 “생명공학안전성에 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를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바이오 안전성 의정서”라고 통일해 사용되고 있다. (참조: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센터연혁, available at http://www.biosafety.or.kr/05_center/sub0201.asp) Lisa M. Campbell, Catherine Corson, Noella J. Gray, Kenneth I. MacDonald, and J. Peter Brosius, Studying Global Environmental Meetings to Understand Global Environmental Governance: Collaborative Event Ethnography at the Tenth Conference of the Parties to 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Global Environmental Politics 14(3), 2014 Lujan JL and Todt O, Precaution: A taxonomy, Social Studies of Science 42(1), 2011: 143-157 김은성, 사전예방원칙의 정책유형과 사회문화적 맥락의 고찰: 유럽 및 미국 위험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정책학보 45(1), 2011: 141-169, p143 Murphy J, Levidow J and Carr S, Regulatory standard for environmental risks, Social Studies of Science 36, 2006: 133–160 Lujan and Todt, 2011 생물다양성 전문에 대한 한글 번역본은 한국 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 (CBD-CHM Korea) 홈페이지를 참고 (available at http://www.cbd-chm.go.kr/home/main.jsp ) 제19조 3항의 영문버전은 다음과 같음; “consider the need for and modalities of a protocol setting out appropriate procedures, including, in particular, advance informed agreement, in the field of the safe transfer, handling and use of any living modified organism resulting from biotechnology that may have adverse effect on the conservation and sustainable use of biological diversity” (CBD,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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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pta, Aarti, 1999. “Framing ‘Biosafety’ in an International Context”, ENRP Discussion Paper E-99-10,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Harvard University (available at http://environment.harvard.edu/gea) 바젤협약은 유엔환경계획(UNEP)의 후원 하에 1989년 3월 22일 스위스 바젤에서 채택된 협약으로, 병원성 폐기물을 포함한 유해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 시 사전통보(PIC, Prior Informed Consent)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유해폐기물의 불법 이동을 줄이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1992년 발효됨. 우리나라는 1994년 2월 28일 가입서를 기탁하고, 1994년 5월 29일부터 발효되었음 Peter Andree, The Cartagena Protocol on Biosafety and Shifts in the Discourse of Precaution, Global Environmental Politics 5(4), 2005, p26 Juan Mayr (Chair of the ExCOP and Former Colombian Minister of the Environment), Doing the Impossible: The final negotiations of the Cartagena Protocol, in Cartagena Protocol on Biosafety: From Negotiation to Implementation, CBD News Special Edition (available at https://www.cbd.int/doc/.../bs-brochure-02-en.pdf ) Gupta, 1999 CBD, New and Emerging Issues, See COP8 Decision VIII/10 and Cop9 Decision IX/29(available at https://www.cbd.int/emerging/) Deborah Scott, Sarah Hilchner, Edward M. Maclin, Luis Dammert B. Juan, Fuel for the Fire: Biofuels and the Problem of Translation at the Tenth Conference of the Parties to 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Global Environmental Politics 14(3), 2014; NEI를 위한 세부 검토기준은 2008년 제9차 당사국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a) Relevance to the convention, (b) New evidence of unexpected and significant impacts, (c) Urgency of issues/risks, (d) Actual geographic coverage and potential spread of the issue, (e) Evidence of the absence or limited availability of tools to limit or mitigate the negative impacts, (f) Magnitude of actual and potential impact on human well-being, (g) Magnitude of actual and potential impact on productive sectors and economic well-being (CBD Decision IX/29) Deborah Scott이 속한 CEE 연구팀은 총 17명의 사회과학자로 구성되어 있고, 다음 4명이 주축이 되어 연구를 진행하였다: Lisa Campbell (Duke), Peter Brosius (Univ of Georgia), Ken MacDonald (Univ of Toronto), and Noella Gray (Univ of Guelph) Scott, 2014, p88 Side Event, Synthetic Biology: The Implications of “Extreme Genetic Engineering” for Biodiversity and the CBD’s programme of work, Organizer: ETC Group, 18 Febuary 2008 13:15-14:45; 이들은 유전자와 게놈 합성이 빠르고 값싸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면, 어떤 생명체를 자연에서 찾아내고 실험실 또는 냉동고에 저장된 샘플로부터 얻는 것보다, 합성하는 것이 훨씬 쉬워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봄. 또한 생물학적 샘플들은 유전자 서열을 밝히고 디지털 형태로 한번 변환되고 나면 즉각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함. 부대행사를 통해 합성생물학이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며, 생물다양성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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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논의에 어떤 기회와 어려움을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짐 (available at https://www.cbd.int/kb/record/sideEvent/1151?Event=SBSTTA-13) CBD (2010) SBSTTA 14 Recommendation XIV/16. New and emerging issues(available at https://www.cbd.int/recommendation/sbstta/default.shtml?id=12263) Louise Sales, Throwing precaution to the wind: the government’s attempts to thwart the regulation of synthetic biology, Chain Reaction 122 (2014. 11)(available at www.foe.org.au/chain-reaction) CBD, Portal on Synthetic Biology (available at https://bch.cbd.int/synbio/ ); 합성생물학 온라인 포럼 내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관련 정보 제출, 활동 일정, 과학기술자문기구에서 발간한 보고서, 참가자 명단, 전문가 추천 명단 등을 확인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