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비즈니스모델 Ⅰ - bigbook.or.kr€¦ · 육성, 기업의 csv 사업기획,...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Ⅰ

사회적기업

비즈니스모델

지식총서 02

초판인쇄 2015년 2월 9일

초판발행 2015년 2월 27일

지은이 강민정 김수현 김창엽 남영숙 배영 설동훈 심성보 윤순진 이동연 한준

책임편집 강민정

공동기획 SK사회적기업가센터, MYSC

발행인 김정태

발행처 에딧더월드/MYSC

편집장 백현모 권영진

편집 권혁신 김영준

디자인 윤동혁

컨설팅 윤지선 이예지 한성휘

행정 남상미 류준선

주소 100-042 서울시 중구 퇴계로 20길 37, 302호(남산동 2가, 열매나눔빌딩)

전화 070-8650-2271 팩스 0505-827-0871

이메일 [email protected](영업) [email protected](원고)

출판신고 2009년 3월 24일 제302-2009-000022호

ISBN 979-11-85059-36-5

979-11-85059-34-1 (세트)

MYSC(미스크)는 민·관·사회부문 간 새로운 협력시대를 여는 사회혁신 전문 컨설팅·인큐베이팅·

임팩트 투자 기관입니다. 국내외 양극화와 사회문제를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 해결하기 위해 소셜벤처

육성, 기업의 CSV 사업기획, 개발협력 비즈니스모델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에딧더월드는 MYSC의 출판 브랜드로서 사회혁신, 사회적 기업가정신, 임팩트 투자, 디자인씽킹 등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있습니다. 에딧더월드는 콘텐츠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적출판을 지향하며, 꿈꾸는터와 함께합니다.

이 책은 SK사회적기업가센터와 MYSC가 공동으로 기획한 사회적기업 비즈니스모델 지식총서 시리즈로

발간되었습니다.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Ⅰ

CONTENTS

추천사

들어가며

서론 :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으로의 초대

| 강민정, SK사회적기업가센터 부센터장 |

1. 이 책의 목적 .023

2. 이 책의 구성 .034

3. 이 책의 활용 .039

제1장 혁신형 사회적 기업 창업을 위한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 강민정, SK사회적기업가센터 부센터장 |

1. 사회적 기업의 혁신성 .045

2.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방법론 .061

6 |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Ⅰ

추천사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이전의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해 왔

습니다. 2차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식량과 물질적 풍요를 제공해 왔

으며 30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러한 풍요를 담보하는 사회적, 경제적, 정

치적 제도와 문화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탐색해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만 해도 인류의 집단지성이 인류에게 더 나은 삶과 공동체를 제공하는 제도적

발전과 탐색을 계속해 가리라는 긍정론이 우리 인류를 지배해 왔습니다. 60년

대서부터 뒤늦게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해서 고도성장을 누려온 우리나라는

이러한 긍정적 사고가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말에 닥친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사회적 충격은 이러한 믿음

에 커다른 의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장기 침체와 남유럽 국가의 도산

위기, 그리고 2008년에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가 갖고 있던

현재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경제와 기

타 영역의 글로벌화, 급격한 인구변화, 지구 종말을 경고하는 기후변화 등이 겹

치면서 이제는 전 지구적으로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사회적 문제에 새로운 사

회적 문제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새로운 소외계층이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 노숙자, 탈북민, 노인 빈곤층 등은 우리 앞세

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적 약자이며 소외계층입니다. 경제의 양극화

와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 속에서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에 지속되어 온 인류의

집단지성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옅어지고 있습니다.

추천사 | 7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체

제와 제도에 대한 탐색이 전 인류적인 과제로 등장하였습니다. 인류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과 풍요의 증진을 위해 크게 시장과 정부라는 두 가지 수단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 왔습니다. 최근의 사회 양극화와 새로운 소외계층의 양산, 환경

에 대한 위협은 시장경제의 비완결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정부는 늘 비효율성과

복지의 함정과 같은 한계를 보여 왔습니다. 우리가 굳게 믿었던 두 수단의 장점

은 보존하면서 또한 최근에 노출된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안으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인류가 공동체로서의 가치를 공유하고 환경과

다른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지키려는 이 시도는 어쩌면 인류의 진보에 새롭고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실험인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투자, 특히 가치 중심으로 살고 싶은 젊

은 이들의 열정은 매우 뜨겁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어떻게 육성되고 경

영되어야 하는지? 사회적 가치는 어떻게 나누어져야 하는지? 기존의 시장과 정

부와는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여야 하고 상호보완적으로 정립되어 고질적인 사

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전통기업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기에는 그 역사가 너

무 일천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과 증거가 축적되어야만 사회적

기업이 정말 인류에게 의미있는 탐색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인류의 공

동선과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긍정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


니다. KAIST 경영대학의 ‘SK사회적기업가센터’는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

해 대답하는 지적탐색을 지원하기 위해 <사회적기업 비즈니스모델 지식총서>

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1차 발간에는 『사회적경제 전망과 가능성』,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사회적기업가를 위한 디자인 접근법 Design Thinking』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KAIST 경영대학에서 실험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의 교육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회적 혁신기업가의 경영이슈

와 자질, 사회적 경제 전반에 관한 탐색이 이 분야의 파이오니어들에 의해 논의

되고 탐색된 이 총서가 인류가 당면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사람들, 특히 가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도 저희 SK SE센터는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 기업가들에 대한 파이

오니어들의 Thought Leadership이 널리 전파되도록 열심히 지원할 예정입니

다. 독자들도 이 총서를 통해 선구자적인 탐색을 하고 있는 저자들의 지적 노력

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총서를 기쁜 마음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카이스트 SK사회적기업가센터장

이병태

들어가며 | 9

들어가며

사회 변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훌륭한 사회혁신가이자 기업가로 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는 2013년 그 첫 걸음을 떼었다. ‘소

셜이슈 분석 및 기회 탐색’이라는 강의를 맡아,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젊은이들

을 만나고 대화하는 한편으로, 한국의 다양한 사회 문제 전문가들과 사회적 기

업의 실천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내게 사회적 기업가

정신에 대해 실질적인 성찰의 기회를 가져다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이

러한 경험을 보다 넓은 세상의 사회적 기업가와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가진 분

들과 나누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세상에 나왔다.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와 이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꾸려가기 위해 설

립한 SK사회적기업가센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소셜 벤처이다. 2012년 5월 SK

와 KAIST가 사회적 기업가 MBA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하고 나서, 프로그램 설

계를 위해 여느 때처럼 해외 사례를 찾았고, 도움을 주실 전문가들을 찾았다.

준비를 시작하고서야,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가 세계 최초로 시도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몇 개의 강의가 개설되거나, MBA 내의 전공 트랙이 생겨나고 있었고*, 사회적

* 하버드 경영대학 MBA 프로그램 내 세부전공 ‘사회적 기업 이니셔티브(Social Enterprise Initiative)’

트랙, 노스웨스턴 대학 켈로그 경영대학(Kellogg School of Business) MBA 과정 내 세부전공(Major)

‘SE Track‘, 듀크 대학교의 푸쿠아 경영대학(Fuqua School of Business) 정규 MBA 과정 내 세부 특

화(Concentrations) 과정 등. 국내외 사회적 기업 분야 석사과정 커리큘럼에 대해서는 강민정 외(2014)


기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지원 인력을 육성하는 두 개 정도의 석사 과정

이 있었지만*, 교육 과정의 목표를 사회적 기업가 육성에 두고 2년 Full time

MBA를 개설한 예는 없었다.

KAIST의 MBA는 이미 세계 수준에서 인정받는 경영자 육성과정이어서, 경

영자로서의 소양을 쌓는 것은 기대할 수 있었지만, 사회적 기업가 MBA가 배출

하고자 하는 인재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을 만들어갈 사람이었다. ‘Ashoka U’

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미국의 Babson College, Santa Clara 대학 등의 프로

그램을 벤치마킹하는 등 창업 과정과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대학 교육 과정을 지

속적으로 연구하면서**, 선발제도와 정책을 수립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

를 참고하기 바란다.

* 헐트 국제경영대학원(Hult Intl. Business School) 사회적 기업가정신 석사과정(2009년 개설, 1년 전일

제), 골드스미스컬리지(Goldsmiths College, London Univ. UK) 사회적 기업가정신 석사과정(2009

년 개설, 1년 전일제)

** 아쇼카 유(Ashoka U)는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가 지원기관인 아쇼카(Ashoka) 재단이 대학 이상의 고

등교육 기관을 통해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조직이다. 전 세계

대학과 지역 고등교육기관과 협력하여 사회적 기업가 교육 커리큘럼 개발, 캠퍼스 내 사회혁신 활동 전파

등에 주력하고 있다(http://ashokau.org/about/what-we-do). 미국의 밥슨 컬리지(Babson Col-

lege)는 창업명문 대학으로 학부과정부터 대학원 MBA 과정까지 기(창)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되어 있어 창업교육의 롤모델로 제시되곤 한다(http://www.babson.

edu/about-babson/Pages/home.aspx).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산타클라라 대학(Santa Clara

University)은 Global Social Benefits Institute(GSBI)를 통해 전 세계 사회적 기업가를 대상으로 하

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의 혁신형 벤처가들이 창업 멘토로 활발히 참여

들어가며 | 11

고 실행해나가는 일이 그 이후로 계속되고 있다. 잘 뽑고 잘 길러내야 하는 과제

는 무겁고도 고단한 일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그 무거움은 별로 가벼워지지 않

은 상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 땅에 나타난 ‘새로운 종種’인 사

회적 기업가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인지 감

을 잡아가는 중이다. 사회적 기업가 MBA로 KAIST 경영대학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늘 뭔가 모여서 대담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상대

적으로 자아가 강하고 자유 분방한 그들을 접하면서 KAIST의 사람들은 반가

워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다. 그들은 분명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가면서, KAIST SE MBA의 각종 제도와 정책, 프로그램

들이 진행되었지만, 아직도 새로운 실험과 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수

정하는 일로 마음이 바쁜 가운데, 이제는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대학 교육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분들이 KAIST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궁금해하고 물으러 온

다.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가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세상은 급격하게 사

회적 기업가들을 키워내는 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젊은이들은 또 자신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길을 꿈꾸며 말을 걸어온다. 오늘

도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는, 실제로 2년간 지나온 길이 우리가 추구했던

바, 이 땅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기업가라는 ‘종’에 대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

하고 있다(http://www.scu.edu/socialbenefit/entrepreneurship/gsbi/).


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이

프로그램의 심화와 확산을 위한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는 중이다.

‘소셜이슈 분석 및 기회탐색’ 강의는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에서 ‘사회

적 기업가정신’ 과목과 함께 첫 번째로 신입생을 맞는 과목이다. 2년의 MBA 과

정을 통해 경영자로서의 소양을 닦는 것은 물론, 사회적 기업 창업이라는 분명

한 성과를 내야 하는 학생들은, 첫 학기 동안에 주목하는 사회문제를 선정하

고, 그 문제를 어떠한 혁신적 방법을 통해 해결하며, 이를 통해 세상에 어떠한

임팩트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목은 그러한 여정

을 함께 해주는 과정으로 설계된 것으로서, 사회적 기업 창업의 첫 단추를 꿰는

과목이다. 학생들은 사회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사회혁신 분야를 새로운 사업기

회로서 포착하는 것이 기대되는데, 이 과목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사회적 이슈의 역사성 속에서 사회문제를 비판적으

로 인식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 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의 접근 방법을 적용

하여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이슈별로 전문연구자 혹은 실천가를

초청하여 사회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였다. 학생들은 각자가 관

심을 가진 사회 이슈에 대하여 분석하고, 현재의 접근 방법에 대한 비판적 인식

을 할 수 있으며, 사회 이슈 해결을 위한 사회혁신 아이디어를 모색하여 ‘사회혁

신 방안 제안서’을 제출할 것이 요구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사회적 기

들어가며 | 13

업가로서 각자의 ‘소셜 미션’을 정립해나가게 된다.

첫해는 먼저 사회적 기업의 형성과정, 생태계 등에 대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

로 혁신적 사회적 기업 창업의 의미를 다루는 몇 개의 세션을 구성하는 한편,

소셜이슈를 직접 강의해줄 전문가들을 널리 접촉하였고 다행히 각 소셜이슈별

로 이론의 전문가이면서 사회적 실천에도 적극적인 분들을 모실 수 있었다. 그

분들은 기꺼이 각각의 소셜이슈가 갖는 역사성과 변화를 위한 비판적 통찰들을

나누어 줬다. 그리고 학생들과 어떻게 사회적 기업의 방법으로 사회문제에 접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적 대화들을 이끌어주셨다. 강의실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기업가들과 사회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화는 어쩌면, 이 땅의 많은 사회적

기업가들도 듣고 싶고, 참여하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 이 강의를 통해 사회혁신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 즉 주목하는 사회

문제를 선택하고 이를 분석하여 소셜 미션화하는 과정을 학생들이 생각보다 어

렵게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치열한 고민과 실천의 과정이기

도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보다 구조화한 형태로 제공한다면, 사회적 기업가들

의 외로운 여정이 든든하고 덜 고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사

회과학을 공부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분석과 성찰의 과정이 다양한

학문적 훈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었고,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분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사업기회를 찾고 이를 다시

소셜 미션화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이슈들에 대하여 누군가가 기존 학문의

지적 자산들을 통해 답해주거나 적어도 고민의 과정을 함께할 방법들을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첫 학기를 맞아 그동안 사회적 기업 연구를 통해 정리한 지식을 학생들과 고

민하고 토론을 시작했고, 다음 해에는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적 대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들의 고민과 함께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지적 자산들을

구조화한 내용들이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게 되면서 과정의 내용과 형식에 자

신감을 얻어갔다. 이 책의 제1장에서 다루고 있는 관점과 방법론은 사회적 기업

가가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고, 설득해나가는 데 있어서 맞닥뜨리는 고민

들과 문제의식들에 대하여 답하는 과정을 구조화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사회

학의 사회변동론, 기술학의 ‘혁신체제론’과 ‘기술전략’에서의 다양한 지적 자산

들부터 도움을 받았다. 특히 기술 혁신과 관련된 연구 성과들은 사회적 기업가

를 ‘혁신가’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 기술 혁신에서의 혁신가들을 떠올

리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 혁신체제론,

파괴적 혁신, 최종판세이론과 같은 기술 혁신과 전략 분야의 지적 자산들을 접

목해보는 시도를 하였다.

들어가며 | 15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학적 지식들은, 나의 오래된 책꽂이에

서 여전히 빛을 발하는 내용들을 사회적 기업가에게 적용한 내용들이다. 사회

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개론적인 수준의 이야기이지만, 사회적 기업가들에

게는 소중한 통찰이 될 수 있어, 과감히 그 내용들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였는

데, 이러한 과정은 내게 강렬한 지적 자극을 주었다. 이러한 나의 시도를 보고,

앞으로 사회학, 경영학, 기술 혁신 분야의 연구자들이 사회적 기업가들을 위해

서 그들의 학문 분야에서의 깊은 지식과 통찰을 나누어주고, 사회적 기업 연구

와 접목시키는 시도를 많이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또한 실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사회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

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사회문제는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루고 있

는 사회문제들은, 한국사회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을

위한 실천이 보다 직접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슈들이 무엇일까라는 관점

을 가지고 선별하였다. 이러한 이슈를 선별하는 데 있어, 국내외 사회적 기업계

의 구루Guru나 연구자들의 추천 분야를 참고하였고, 한국사회의 특성을 고려하

였다. 그리고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보여준 관심

주제들이 중요한 선택의 준거가 되어 주었다. 이 분야들은 지속적으로 피드백

을 받고 보강되어 나가야겠지만, 이러한 분야들이 현 단계 한국의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적합한 선택인가에 대한 평가를 논하기 이전에, 사회적 기업

가의 관심과 실천이 직접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들을 선

정하려 노력한 결과라는 의미를 보아주셨으면 한다.

이 책은, 사회적 기업을 ‘혁신’의 관점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맞닥

뜨리게 되는 첫 번째 관문인 ‘소셜 미션’ 수립 단계에서 ‘소셜이슈 분석과 사업

기회 탐색’의 여정을 함께하는 지침서이다. 또한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는

물론, 대학 교육을 통해 사회적 기업가들을 육성하거나, 학부에서 학생들로 하

여금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경험하게 하고자 애쓰고 있는

교수진과 연구자들에게 참고가 되거나 교재로 쓰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썼다.

KAIST SK사회적기업가센터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의 인력 육성을 위해 대

학원 수준에서 학위 과정을 개설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국내 몇몇 대학들의

시도가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 이를 위하여 그간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기업 관련 강의들에 대한 교재 출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관련 강

의가 대학마다 흩어져서 개별 교수진의 관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데, 교재

출판 사업이 이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분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

이 되어주고, 또 이를 통해 사회적 기업 분야의 연구와 교육의 저변이 보다 넓어

지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기획하면서, 첫 번째 시리즈에 과감

히 이 책을 올리게 되었다.

들어가며 | 17

‘소셜이슈 분석 및 기회 탐색’ 과목도 실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 수립을 도와줄 과목으로서 이 방법이 최선이냐라는 질문을

누군가 해온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아직도 부

족한 점을 계속 보완해나가고 있는 중이고, 당분간 그럴 것 같다. 사회적 경제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안적 모델로 떠오르고 있고, 혁신형 사회적 기업가를 육

성해내는 과제가 절실한 이때에, 그래도 이것이 ‘현재 시점에서’ 해낼 수 있는 최

선이라는 생각에, 이 책이 완벽해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조금이라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

려놓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땅의 훌륭한 연구자들이 비판하고,

평가하면서 더욱 발전시키도록 하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책은 또한 사회적 기업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

적 기업에 관심을 가진 일반 대중들이 사회적 기업가란 어떤 고민을 하는 사람

들인지 아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 속에 출판되었다. 이 책의 여정을 함께

하다 보면, 사회적 기업가라는 사람들이 굉장히 가까이에서 우리의 삶의 문제

를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다

뤄진 성찰적 질문들은, 우리 각자의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들

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하며 변화를 꿈꾸던 시절에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내용들

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내용을 이루던 사회 문제나 억압적인 현실들이, 사실은


사람들의 생활세계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시간이 지나면서 고착화된 것

이지, 누군가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면, 훨씬 달라

질 수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방법이 예

전처럼 생을 걸고 덤벼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이의 문제들을 이웃과,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누군가의 혁신적 아이디어에 의해서 ‘사업 기

회’가 되는 것과 같이, 재미나고 즐거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실천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먼저 시작하는 사람

들이 사회적 기업가이고, 그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변화의 성공 체험들을 이

미 여기저기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 주목하는 사회문제는,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통

해 그 해결 방법을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사업 기회’로 정의된다. 사회 문제가 사

업기회로 정의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

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 어떠한 영향력을 가져올 것인가를 성찰하고 증명하여야

한다. 어쩌면 ‘사회 문제’를 ‘사업기회’로 표현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본이 드디어 사회 문제까지 시장에 끌어

들이려고 하는가라는 반감도 접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많은 일상이

시장과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시장의 역할이 과

연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우려를 가

들어가며 | 19

지고 있는 분들에게 사회적 기업가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회적 기업가는 ‘사회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만, 그렇다고 거대한 벽으로 느

끼고 해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신의 힘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통

해 해결 가능한 ‘기회’로 전환함으로써, 사회 문제 해결에 무한한 ‘긍정성’을 전파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사회적 기업계에 전문 연구자가 많지 않다 보니, 짧은 연구와 교육 경험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럽게도 이 책의 에디터를 맡게 되었다. 제2장의 챕터를 써주신

한 분 한 분의 저자들은 모두 당해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각자의 책을 내신 분이

기도 하고, 전문성으로나 실천적인 차원에서나 존경을 받고 있는 분들이다. 여

러 저자 분들의 공동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통합성과 일관성 차원에서 잦은 수

정 요청을 하게 되었는데, 모두들 여기에 너무 성실히 응해주셨다. 송구하고 감

사한 일이다. 또 옥고를 주시고 책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신 분

들도 계시다. 공동작업에 기꺼이 참여해주시고, 짧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에디

터에게 조언과 격려로 답해 주신 저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훌륭한 파트너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SK사회적기업가센터

의 출판 사업을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고 계신 에딧더월드의 김정

태 대표, 권영진 컨설턴트의 인내와 도움에 감사드린다. SK사회적기업가센터가

설립된 이래로 나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며, SE MBA과정을 충실히 지원하

는 한편으로, 출판 사업의 작은 디테일까지 묵묵히 챙겨준 김혜규 연구원에게


깊은 신뢰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나를 연구실 밖으로 나오게 하여 KAIST

SK사회적기업가센터의 Co-Director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SK행복

나눔재단 유항제 총괄본부장과 KAIST SK사회적기업가센터장 이병태 교수님

의 신뢰와 격려에 감사를 전한다.

KAIST SE MBA의 ‘처음’을 함께하며, 내게 영감과 성찰의 시간을 준 우리

학생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이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책이 그들의 ‘처음’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회문제

해결과 대안적 가치 제안을 위해 긍정성과 열정으로 사회적 기업가의 여정에 나

서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이 작지만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5년 2월

강민정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으로의 초대

강민정 • SK사회적기업가센터 부센터장

서론

서론 :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으로의 초대 | 23

1)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점

(1) 혁신형 사회적 기업

사회적 기업은 사회 문제 해결을 우선적 목적으로 하면서 재화와 서비스 생

산 및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으로서, ‘혁신성’과 ‘시장성’이라는 자본

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여 “기존의 제도적 접근이 실패한 곳에서 사업기회를 찾

아내 기존 구조에 도전하는 개인, 조직, 네트워크의 산물”, 즉 사회적 기업가정

신을 구현하는 조직이다.* 공공성과 효율성을 담보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정부

* Alex Nicholls and Albert Cho, “Social Entrepreneurship: The Structuration of a Field”, In Alex

Nicholls(Ed.), Social Entrepreneurship: New Models of Sustainable Social Change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Geoff Mulgan et al., Social Innovation: what it is, why it matters, how it can be accelerated,

Oxford Said Business School Skoll Center for Social Entrepreneurship Working Paper

(2007).

1

이 책의 목적


는 복지분야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공 지출 부담을 완화할 수 있고, 시민

사회는 기존 사회운동에 기업의 효율성과 시장기제를 접목함으로써 사회운동

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사회적 기업과의 협

력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은 현 시기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

인 대안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편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실업 대책과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 정책의 산

물로서 성장해오는 가운데, ‘혁신성’을 놓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7

년 IMF 이후 경제복지의 방법론으로 떠오른 사회적 기업은 2007년 사회적 기

업법의 제정 이후 매년 가파른 양적 팽창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부 주도형에서

출발한 국내 사회적 기업은 시장과 지역공동체의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는 서구

선진국의 사회적 기업에 비하면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도약에 한계가 있다는 평

가다.* 또한 국내 사회적 기업은 고용노동부 주관 인증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세제 혜택 등 각종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고, 취약

계층에 대한 고용 창출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품질의 사회 서비스

공급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복지서비스의 대체나, 고용 창출 정책과 밀접

히 연관되면서, 수익 모델을 갖춘 ‘기업 활동’으로서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

이나 시장경쟁력 확보방안 등이 논의되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과

‘정책’의 관점이 주요 의제가 되어 왔다. 이는 사회적 기업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

을 제한해 왔는데, 이러한 사회적 기업의 개념은 ‘social enterprise’의 개념이

기보다는 ‘social firm’에 가깝다. ‘social firm’으로서의 사회적 기업은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의 하부 조직과 같은 형태로 영·미 사회에서 60년대

* 김동열,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한 5대 과제,” 『서울경제』 no.3 (2011).

** 송위진, 『사회적 혁신과 기술집약적 사회적기업』 (서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09).


이후 꾸준히 발달되어 온 바 있다.*

다른 한편, ‘혁신성을 기반으로 사회문제를 기업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조직

체’로서의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 등장한 개념인 ‘사회적 벤처’에 가깝다. 사회적 벤처는 기존 벤처처럼 비즈

니스 모델의 혁신성과 모험심, 도전을 강조하고 있어, 사회서비스를 대체하는

기존의 사회적 기업Social Firms과 구별된다. 사회적 벤처는 ‘혁신형 사업 모델’을 특

징으로 하는데, ‘사회혁신’을 사업 모델상에 구현하여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추

구한다. 이들 사회적 벤처는 ‘산업 클러스터’의 형태로 발전해오고 있으며,** 영

국의 ‘사회혁신론’을 통해 그 이론과 사례가 오늘날의 사회적 기업들에 확산되

어 가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잠재된, 실현되지

않은 사업기회를 발견하여 이를 포착하는 사업모델’을 구현하고, ‘경제, 사회, 환

경이라는 혼합된 가치를 추구Blended Value Proposition’한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는 전통적으로 상호 배제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다. 사회적 기업은 이러한

모순적인 개념을 하나의 조직체에서 구현한 것으로서 ‘혁신’을 통해 이러한 모순

이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형용모순을

잇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적 기업이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혁신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업가정신과 함께 사회적,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높은 비즈니

스모델의 정립이 필수적이며,**** 그 속에서 혁신적인 접근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 Kim Alter, Social Enterprise Typology (Virtue Ventures, 2004).

** Tanimoto Kanji and Doi, Masaatsu, “Social Innovation Cluster in Action: A Case Study of the

San Francisco Bay Area,” Hitotsubashi Journal of Commerce and Management 41(2007).

*** Geoff Mulgan, Simon Tucker and Nick Wilkie, Social Silicon Valleys: A Manifesto for Social

Innovation - What it is, Why it Matters, How it Can be Accelerated (The Young Founda-

tion, 2006).

**** 라준영, “사회적기업의 비즈니스모델,” 『벤처경영연구』 13, no.4 (2010).


(2) 사회혁신론과 사회적 기업가정신

사회혁신론Social Innovation은 오늘날 ‘혁신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 활동의 성

격과 방향성을 정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흐름이다. 사회혁신은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을 통해 개발

되고 확산되는 혁신적 행위와 실천’이자 ‘전략과 조직화된 행위를 통해 나타나

는 사회변동의 과정들’로 이해되는데, 사회적 기업이야말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대수명 향상으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들(연금, 주거, 노인 돌봄서비스 등),

기후 변화에 따른 탄소배출 감소를 위해 필요한 사회 재조직 이슈(산업, 교통, 환

경 등), 국가와 도시 단위에서 급증하는 다문화성과 관련된 이슈(언어교육, 정체

성, 주거 등),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 정신 질환 등 사회적 질병들

과, 풍요함에서 비롯된 비만, 알코올 및 약물중독, 도박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

에 대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기업은 사회혁신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은 정부정책과 시민사회의 몫이었던 ‘사회

적 목표’의 추구에 대해, ‘혁신성’과 ‘시장성’이라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적극적으

로 도입한 개념으로서,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통해 기업은 사회문제 해결의 적극

적인 주체actor로서 부상한다.*** 기업에게 있어 ‘사회적 기업가정신’은 사회참여와

사업기회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활동의 새로운 지평이다. 즉 기업은 ‘사회변동

* Geoff Mulgan et al., Social Innovation: what it is, why it matters, how it can be acceler-

ated, Oxford Said Business School Skoll Center for Social Entrepreneurship Working Paper

(2007).

** Ibid.

*** Dees, J. Gregory, The Meaning of "Social Entrepreneurship" (2007) http://www.caseat-

duke.org/documents/dees_sedef.pdf; Alex Nicholls and Albert Cho, “Social Entrepreneur-

ship: The Structuration of a Field”, In Alex Nicholls(Eds.), Social Entrepreneurship: New

Models of Sustainable Social Change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으로 인해 나타나는 숨겨진, 실현되지 않은 사업기회를 포착하는 비즈니스 모

델’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자선활

동, 사회공헌 활동에서 진화된 기업의 사회참여 방식으로서 사회적 기업과의 협

력이라는 방식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점은, 국내 사회적 기업 생태계의 질적 도약

과 저변 확대를 위해 사회문제에 대한 비즈니즈적 접근을 강조하고자 하며, 이

를 통해 궁극적으로 혁신적 창업에서 기량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가의 창업을 돕고자 한다. 기존의 사회적 기업계가 전통적인 시장 구조 속

에서 비영리 대 영리의 관점, 그리고 사회서비스와 일자리창출의 개념에서 사회

적 기업을 인식하고, 그 중간지점으로 사회적 기업을 정의하던 것과는 달리, 사

회적 기업의 사업형태와 사회서비스·일자리 생산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회적 기

업을 벤처 창업Start-up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기

업의 방식으로 기존에 시민운동이나 정부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던 문제에 접

근한다는 점에서 ‘중층적 성격’을 띠게 되며, 이러한 중층적 성격으로 인해 사회

적 기업을 중간자적인 프레임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의 중층적 성격,

즉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위해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 조

직으로서 인식한다.

이에 따라, 사회적 기업이 제시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가능성과 혁

신성, 그리고 그것이 창출할 사회적 가치와 영향력Social Impact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여,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개발, 실행, 운영해나갈 수 있는 소셜벤처가·창업가

Entrepreneur가 육성되어야 하며, 이 책은 그러한 혁신적 사회적 기업 창업가를 위

해 쓰여졌다.

* Jason Saul, Social Innovation, Inc.: 5 Strategies for Driving Business Growth through Social

Change (Jossey-Bass, 2011).


2) 사회적 기업 창업의 특징과 소셜 미션(Social Mission)*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급격하게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대와 꿈은 널리 퍼지

고 있으나, 이를 실현에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적 가치’라는 숭고한

꿈을 가지고 도전한 많은 사람들이 ‘시장성’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즉 ‘혁신’이 수

반되어야 한다는 지점에서 좌절을 겪는 일이 많다. 실제로 사회적 기업이 진정

한 의미에서 ‘혁신성’과 ‘시장성’을 담보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여기에 사회적 기

업에 대한 창업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사회적 기업의 창업에 대한 관심 또는 동기가 최근 활발한 담론을 형성하면

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실제 창업을 결정짓는 수준으로 이

어지는 데에는, 기업가정신의 유무, 교육수준, 경제적 환경 여건 및 사업추진

여건 등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창업 역량은 창업을 결심하는 창

업의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고,***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여를 하겠

다는 의식 그 자체가 바로 사회적 기업 창업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데, 이

는 사회적 기업의 창업에 관심은 있지만, 실행적 의지를 보이는 창업열은 개인

별로 차이가 있고, 구체적인 실행 단계 수준에서 개인별로 많은 역량상의 차이

가 있기 때문이다.****

* ‘소셜 미션(social mission)‘은 사회적 기업 창업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넓게 쓰이는 용어로서, 여기서는

애써 번역하여 사회적 소명의식이라고 하기보다, 현실을 반영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한편 본고에서 다룬 ‘소셜 미션’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강민정 외(2015)의 관련 논의를 보강한 것이다.

** 라준영, “사회적기업의 비즈니스모델,” 『벤처경영연구』 13, no.4 (2010).

*** Johan Wiklund and DEAN Shepherd, “Knowledge-based resources, entrepreneurial ori-

entation, and the performance of small and medium-sized businesses,” Strategic Man-

agement Journal, 24, no.13 (2013).

**** Teemu Rantanen and Timo Toikko, “Social Values, societal entrepreneurship attitudes

and entrepreneurial intention of young people in the Finnish welfare state”, Poznan Univer-

sity of Economics Review; 13 no.1 (2013).


사회적 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 역시 사회적 기업 창업 프로세스와 창업

행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 중에 하나이다. 실제 경험적 연구에 따

르면,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대표적 특징으로 논의되는 혁신성과 진취성, 위험

감수성, 소셜 미션은 목표지향성과 자기효능성self-efficacy이 반영되는 창업 프로세

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또한 동시에 발견행동, 개척행동 등과 같은 창업

행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

식이 있거나, 보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있는 청년 집단들이 실질

적인 사회적 기업 창업 활동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는, 예비 창업가 또는 사회

적 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창업 역량을 강화하여, 창업가 개인의 창업의

지와 창업의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으며, 창업이 진행 중인 보육 과정 중에

는 환경 변화에 상관없이 긍정적인 창업행동을 발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핵심 요소들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사회적 기업을 ‘혁신’의 관점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회

적 기업가정신의 중요한 요소인 ‘소셜 미션’ 수립 단계에서 도움을 주기 위한 지

침서이다. 사회적 기업의 창업은 ‘창업’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창업이 거쳐야 할

과정을 모두 거치게 된다. 사업모델을 수립하고, 시장, 기술, 정책, 경쟁 측면을

포괄한 환경분석을 통해, 사업모델의 실현가능성을 확인하며 사업전략을 수립

하게 된다. 사회적 기업의 창업이 일반적인 창업 과정과 다른 중요한 차이를 이

루는 것으로서, 사회적 기업의 창업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가 만나는 최초의

관문이 ‘소셜 미션의 명확화’인데, 소셜 미션의 명확화를 위해 사회적 기업가가

수행해야 할 과제를 구체적으로 풀어서 쓴 말이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이

라고 할 수 있다.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은 사회적 기업 창업에 있어서 가장 초창기에 이

* 박재환, 김재호, “청년 예비창업가의 사회적기업가정신, 사회적 지지, 창업가적 프로세스 및 창업행동

에 관한 연구,” 『경영교육연구』 29, no.2 (2014).


루어져야 할 부분으로서, 사회적 기업가는 주목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고 사업기회를 탐색하게 된다. 이러한 탐색의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자신의 소셜 미션을 분명히 하게 되며, 이러한 소셜 미션의 실현을 위해, 시장조

사와 환경분석을 진행하고, 사업 모델과 사업 추진전략을 수립하며, 1차적인 계

획이 끝나면 이러한 내용을 시제품 개발이나 파일럿 등을 통해 실험하고 자신

의 사업모델을 검증해나간다. 이러한 과정의 다른 한편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팀

을 모으고, 네트워크를 쌓아가게 된다.

사회적 기업의 사업계획서는 창업자가 자신의 ‘소셜 미션’을 대내외에 설득

하기 위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다. 즉 1) 주목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무엇

이고, 2) 정부정책, 시장, 시민운동 등 기존의 접근방식에 대하여 그 성과와 실

패원인을 분석하고, 3) 나는 그래서 어떠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 문제

에 접근하겠다는 스토리를 제시하여야 하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무엇을 어떤

방식을 통해 변화시켜 어떤 사회적인 임팩트를 낼 것이다’라는 구조의 ‘소셜 미

션’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이렇게 간명하게 제시된 소셜 미션

은, 사회적 기업가가 자신의 기업활동에 대한 의의를 대내외에 소통하기 위한

기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부분으로서, 사회적 기업이 아무리 아름다운 사업

아이템이 있어도 이 부분이 설득력을 잃거나 흔들리게 되면 사회적 기업으로서

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힘들게 된다는 점에서 창업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요컨대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서 ‘소셜 미션’은 사회적 기업 창업을 통해 이

루고자 하는 ‘상’이며, 자신의 사업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이다. 외부의 자원과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 명

확한 ‘소셜 미션’은 중요한 소통의 도구이다.

사회적 기업은, 다른 창업기업들처럼 시장에서 사업기회를 먼저 보고, 그 속

에서 사업이 갖는 의미를 설득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회적 기업가의 마

음을 움직인 이슈에 천착하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


를 모색한 후, 그 아이디어가 갖는 시장기회 등에 대해서 검증해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적 기업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상’(목표)를

먼저 상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가는 시장 접근 방식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검

증해나간다는 점에서, 일반 창업에서 요구하는 논리구조와 많이 다를 수 있다.*

최근에 창업 과정에서 많이 쓰이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방식의 경우, 사회

적 기업의 특정 사업 모델을 검증해나가는 과정에서 빠르게 시장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훌륭하게 접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사회적 기업 창업에 있

어서 어떤 소셜 미션을 향해 갈 것인가 자체에 대해서는 ‘린 스타트업’을 통해 검

증하기 전에 사회적 기업가 스스로의 깊이 있는 문제의식과 성찰이 동반된 과

정으로서 수행되는 내용이다.

이렇듯 사회적 기업의 사업계획서는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두

괄식’으로 구성되고, 임팩트 투자자가 보통의 투자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러

한 소셜 미션에 공감한다면, 비즈니스 모델의 합리성 이전에 투자자의 철학이

나,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 수준이 투자 의사결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

다 보니 일반적인 사업계획서에서 정치, 사회, 경제적인 내용이 사업 환경의 거

시적인 ‘환경’ 정도로 취급될 수 있는 데 비해, 사회적 기업의 창업에서는 ‘소셜

미션’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 기업 창업에 일반 벤처 창업의 방법을 적용하는 과

정에서 일종의 긴장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기존 벤처창업계의 자

원을 활용하여 사회적 기업 창업을 지원하거나, 임팩트 투자의 의사결정을 함

에 있어, 사회적 기업의 창업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가 다를 수 있다는

* 야마모토 시게루. 『사회적 기업 창업교과서: 사람을 도와 일을 창출하는 소셜비즈니스의 모든 것』, 김

래은 역,(생각비행, 2011).

**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창업(start-up) 전략으로 핵심 사업 아이디어

부터 실행 과정까지 고객의 검증을 핵심 요소로 하고 있으며, 낭비 없이 빠르게 시제품 제작 및 시장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공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조성주(2014)를 참고하기 바란다.


점이 이해되어야 하며, 의사결정 또한 사회적 기업 창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

하여 이루어지도록, 사회적 기업 창업 과정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개념의 정의’

가 필요하다 하겠다.

3) 사회적 기업 창업 과정에서 ‘소셜이슈 분석 및 기회탐색’이 갖

는 중요성과 역할

‘사회적 가치’는 이렇듯 사회적 기업을 여타의 기업과 차이를 나타내는 요소

이며, 사회적 기업 창업을 일반창업보다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회

적 기업가는 본인이 선택한 특정 소셜이슈에 대하여, 그 이슈가 왜 중요하며, 이

이슈를 해결했을 때, 어떤 사회적인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대내외적으

로 설득하여야 한다. 소셜이슈를 분석하고, 이 속에서 사업기회를 탐색해나가

는 과정은, 주목하는 사회문제와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를 명확히 하는

과정이며, 또 한편으로 사회적 기업가의 열정과 삶의 가치, 존재에 대한 의미가

녹아드는 과정이다. 사회적 기업 창업에 있어서 소셜이슈를 정의하는 과정은,

‘소셜 미션’ 수립 작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소셜 미션 수립과정의 첫 단

추를 꿰는 일이다.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이 명확해지는 것은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

치가 명확해진다는 것이고, 그 부분에 동의가 된다면, 이를 어떻게 비즈니스적

으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업모델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소

셜 미션 자체가 수정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의 방법에 대

한 것이지, 사회적 기업가가 가지고 있는 이슈자체가 사업모델 수립 과정에서 변

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들 중에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것이 정책적 노력을 통해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다른 사회문제

로 옮아가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가가 가진 현실 인식 자체가 천박한 수준이라

면, 그것을 위해 기존에 노력했던 많은 정책, 시민운동의 노력들조차 알지 못했

을 가능성이 많다. 사회적 기업가는 사업모델을 수립하기 전에 사회적 기업가로

서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어떤 사회적 영향

력이 생겨날지에 대해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다음 단계

로, 사업모델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시 자신의 ‘소셜 미션’을 보다 강화할 수 있

다.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은 먼저, 주목하는 사회문제를 정의하는 것인데,

여기서 사회적 기업가는 주목하는 사회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

여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최소한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와 토론이 가능한 수준

의 지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대안이 어떤 의미

가 있는지에 대해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목적은, 사회적 기업 창업의 초기단계인 소셜 미션 수립단계에서 사

회적 기업가가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문제 인식-기회탐색-사회적, 경제적 가

치 명확화의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가 지닌 사회혁신 아이디어와 접근방법이

갖는 의미를 보다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점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

탐색의 관점과 방법론에 대한 부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실제 한국사회의 소셜

이슈에 대한 이해를 위한 부분이다.

제1장에서는,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고, 설득해나가

는 데 있어서 맞닥뜨리는 대내외적인 이슈와 관점 그리고 방법론을 다루었다. 이

부분은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의 ‘소셜이슈 분석 및 기회탐색’ 강의를 진행

하면서, 학생들로부터 혹은 사회적 기업가들로부터 제기된 문제의식들에 답하

는 과정을 구조화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사회학의 사회변동론, 기술학의 ‘혁신

체제론’과 ‘기술전략’에서의 다양한 지적 자산들부터 도움을 받았다.

제2장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실제 사회적 기업 창업을 염두에 두고 사회

적 기업가가 접근할 만한 한국사회의 소셜이슈를 다루고 있다. 20세기 후반 들

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 아래 식량, 에너지, 물 부족과 같은 공공재의

위기가 발생했고, 이는 계층, 지역, 인종, 민족에 따른 양극화 현상을 낳고 있다.

2

이 책의 구성


우리 현실을 돌아볼 때, 기후 변화, 에너지 고갈, 식량 위기에 대한 체감수치는

아주 낮으며, 다른 나라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신자유

주의 세계화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세계화에 대한 구체적 비전과 정책대

안이 절실한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와 지역중심의 호혜적, 순환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실험이 본격화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활약이 기대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사회문제는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다양한 의견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문제들은, 한국사회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을 위한

실천이 보다 직접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슈들이 무엇일까라는 관점을 가

지고 선별하였다. 이러한 이슈를 선별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기업 구루Guru들의

추천분야, 한국사회의 특징, 그리고 KAIST사회적 기업가 MBA과정을 통해 학

생들이 보여준 관심 주제들이 중요한 선택의 준거가 되어 주었다.

실제, ‘소셜이슈 분석 및 기회탐색’의 강의는,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 사회

문제 정의와 사회적 가치의 명확화를 통한 ‘소셜 미션’ 수립이 최종적인 목표이

며, 이 과정에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실천적 학자들이 각자의 전문분야에

서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사회적 기업가들이 어

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성찰적 질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대개 한 번에 2~3시간 정도의 강의가 이루어졌는데, 이

러한 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각각의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모두 소화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특정 사회문제가 지닌 복잡성과 역사성을 이해하고 해당

이슈에 접근하는 다양한 시각과 실천의 방법을 전해 듣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책에서는,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에서 각 분야를 강의해주신 연구

* 임현진, 공석기, 『뒤틀린 세계화』(서울: 나남출판사, 2014)


자와 실천가들이 한국사회의 소셜이슈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수행한 내용을

담았으며, 특히 이슈별 분석의 말미에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주는 성찰적 의미를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기업가들이 특정 사회 이슈를 이해하고 사회적 기업의 방

식으로 접근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도시화와 주택문제’에서 저자는, ‘부동산 인질사회’와 ‘취약한 주거 안전망’을

화두로 한국 사회의 주택 문제가 가진 뿌리 깊은 역사성과 사회구조적 요인들

을 밝혀주고 있다. 오늘날 중산층의 위기와 밀접하게 관련된 이슈로서, 사회 문

제가 어떻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 우리의 삶을 옭죄고 있는지 여실히 보

여주는 한편, 그 뿌리가 깊은 만큼 사회적 기업가에게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이슈라는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저자는 주택문제에 접근하는 정책 관점에

서의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협동조합과 지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혁신적 접근에 대한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건강과 보건의료’ 이슈에서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건강’ 이슈에 중

요한 ‘사회적 결정요인’임을 밝히고 한국의 보건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

한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같은 사회변화와 더불어, 한국 보건의료의 시장형 체

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기업가들이 진정한 보건의료의 공공성

을 회복해줄 것을 당부한다.

‘한국교육의 현실과 교육혁신의 새로운 방향’에서 저자는, 공교육의 위기가

한국사회에서 형성되어온 역사성과 사회성을 분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

으로 세계 교육 개혁의 흐름, 핀란드 사례 등과 최근 우리 사회의 괄목할 만한

실천 방식인 ‘혁신학교’에 대해서도 논한다.

위의 세 가지 이슈가 우리 사회에서 그 역사적 뿌리가 깊은 사회 문제라면,

‘글로벌 빈곤문제와 국제개발협력’은, 사회적 문제가 비교적 쉽게 드러나는 저개

발국의 ‘빈곤’ 문제와 이에 접근하는 국제개발협력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국제


개발 분야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바, 과거의 단순 원조 방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 속에서 다양한 민관협력지원사업 등이 전개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사회

적 기업가에게 풍부한 협력의 기회가 펼쳐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앞의 이슈들이 각각의 사회가 지닌 ‘역사성’ 속에서 그 문제의 뿌리가 이해되

어야 하는 이슈들이라면, 다음의 ‘기후 변화, 에너지, 지속가능발전’, ‘이민과 다

문화’, ‘소셜네트워크의 부상과 새로운 기회’는 사회 변동의 과정에서 등장한 이

슈들로서 사회 변화 속에서 숨겨진 사업 기회를 발굴해내는 사회적 기업가의 역

할이 보다 요구되는 분야이다.

‘기후변화, 에너지, 지속가능발전’에서 저자는, 이 의제가 다분히 체제적 성

격을 가지고 있으며, 체제유지를 지지하는 강력한 이해당사자들의 존재와, 대

다수 사회구성원이 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현실에서, 체제의 변화와 전환이 결

코 쉽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 참여 확대를 통한 대안적 지

역 에너지 활용 등의 사례들을 폭넓게 제시하며 사회적 기업가들의 참여가능

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민과 다문화’에서는 우리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급속히 전개된 외국인 이

민이 아직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을 받지 못해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현상을 살

펴보고 있다. 결혼 이민 등 일부 ‘다문화’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피상적 인식과 외

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 등, ‘소수자’의 문제가 ‘사회적 배제’의 위험 속에서 커

다란 사회문제화될 수 있어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적 기업

가들의 관심과 실천이 필요한 영역임을 일깨우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의 부상과 새로운 기회’에서 저자는, 인터넷과 IT 활용에 따

른 ‘부작용’에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과 활용 방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

는 데’에 보다 집중해줄 것을 제안한다. SNS라는 환경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기

회 영역이 이전과 다른 형태로 펼쳐지기도 하며, 동시에 이러한 환경은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 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 변화된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

가 많음을 지적한다.

지금까지의 주제들이 ‘사회적 문제’에 집중했다면, 다음의 두 가지 주제는 보

이지 않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 주목하는 ‘대안적 가치 제안’과 보다 관련이 많다.

‘어소시에이션과 문화자립-새로운 대안문화 네트워크 만들기’는 문화 예술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예술의 ‘교환 양식’에 주목하면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하여, ‘사회적 연대’를 통한 노동자계급의 예술적 향유가 가능하도록

하고 이를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을 통해 창출할 것을 제안한다.

‘행복 추구와 삶의 질’에서 저자는, ‘행복’과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

사회적 기업이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과 행복 추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을 조망한다. 오늘날 탈물질주의 가치관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인생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늘리는 것이 행복추구에 중요한 요소이며, 가치

와 선택을 중시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기업과 같은 대안

적 경로에 대한 지지가 늘어날 수 있음에 대한 성찰적 논의를 전개한다.


1) 사회문제의 정의와 분석

사회적 기업가들은 대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회문제가 처음부터 있

고,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진행하는데, 이 책의 독자가 이미 사회이

슈를 선택한 사회적 기업가라면, ‘전문가 수준’의 이슈 파악을 위해 각 전문가가

진단해 놓은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해 읽고, 이를 단초로 보다 넓고 깊은 연구와

자료수집 등을 통해 자기만의 이슈분석을 진행하여야 한다. 사회문제의 정의와

분석의 과정에서 이 책의 ‘사회적 기업가의 상상력’을 참조하면 사회문제 정의와

관련한 방법과 성찰적 고민들에 대한 논의를 접할 수 있다.

이 책의 독자가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으나 관심 분야가 다소

광범하여 아직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 창업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탐색 중

인 독자라면, 제2장에서 다루어진 한국 사회소셜이슈와 사회적 기업가에게 주

는 각계 전문가들의 성찰적 논의로부터 영감과 지식을 얻어, 이를 계기로 자신

3

이 책의 활용


의 관심사를 좁혀나가고 그 깊이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독자가 사회적 기업에 대하여 관심 정도만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통해 사회 문

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사회혁신의 필요성과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사업기회의 탐색과 사업모델을 통한 검증

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자기만의 이슈 분석이 끝났다면, 이

제 그 사업기회의 탐색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즉 정부, 시장, 시민사회가 기존

에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 분석하고, 또한, 여타의 사회적 기업이 특정분야에

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국내외적인 사례들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이

러한 과정을 통해, 본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이러한 아이디어 중 집중 가능한 아이디

어를 선택하여, 그것에 대한 사업기회를 탐색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탐색

의 과정은 사업모델을 구체화하는 과정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사업기회의 탐색 과정을 소셜 미션으로 정립하기까지 그 과

정상에서 거치는 분석의 내용과 전략 수립의 방법들을 정리해놓았다. 사회적

기업가가 창업 초기에 소셜 미션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너무나 당연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나, 이 흐름 속에서 학생들이 분석을 진행하고,

토론하고 교수나 멘토 혹은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소

셜 미션의 정합성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셜 미션은, 실제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고객 검증과 시장 검

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정합성을 끊임없이 조정해나가야 한다. 즉 경우에 따라


서는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이 ‘시장성’을 결합해나가는 과정에서, 도저히 시

장에서 먹혀들 수 없는 경우라면, 그것은 사회적 기업이 아닌 사회운동으로 방

향을 재정립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면, 방법상에 있어서 시장성을 결합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가 되어야 하며, 그

렇지 않으면, 비영리 활동을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3) 사회적 가치의 설득

사회적 기업가가 주목하는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

적인 방안을 내놓았다면, 이러한 방안이 어떠한 영향력을 가져올 것인가가 설

득되어야 한다. 사회적 활동으로 진행된 일에 대하여 그 결과가 특정 활동에서

연유된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나, 사회적 기업가는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혁신적 방법이 의미 있음을 설득

하여 자원을 동원하고, 또 그러한 방법이 계속 퍼져나가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

에서, 자신의 활동이 어떠한 영향력을 가져올 것인가를 측정하고, 설득하는 일

은 중요하다. 소셜이슈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이

러한 방법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력에 대하여 끊임없는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거치게 되며, 어떠한 지표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것인가는 어떠한 결과가 사

회적 기업가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인가를 말한다는 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임팩트에 대한 가치측정은 그 자체가 중요하고 방대한 주제이며, 이

책에서는 사회적 임팩트 측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혁신적 사회적 기업 창업을 위한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강민정 • SK사회적기업가센터 부센터장

제1장

1-1. 사회적 기업의 혁신성 | 45

1) 사회문제 해결 방법으로서의 사회적 기업

사회적 기업은,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정부, 시민사회, 기업의 접근

방법을 중층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면서, 이들 각각이 사회문제 해결에 접근해온

방식의 한계를 넘는 방법으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방

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인데, 전통적으로 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

는 주체로 인식되지 않아 왔다. 사회문제의 해결은 정부정책이나 시민운동의 영

역으로 여겨져 왔는데, 정부 정책의 관점에서 사회복지 시스템은 중요한 사회문

제 해결의 기제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정책실패의 분야

들이 있는가 하면, 정부는 조직이나 예산구조 등 느리고 경직된 특성 때문에,

사회문제에 기민하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 기업가가 정부의 접근 방식과 달리 효율적일 수 있는 부분은 풀뿌리

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기업가는 주목하는 사회문제에

1

사회적 기업의 혁신성


대해 특정한 방법을 ‘시도’하며, 이 과정에서 피드백을 얻고 조정 과정을 거치며

실험을 거듭한다. 끊임없는 조정 과정을 통해 사회적 기업가는 자원을 끌어 모

으고 다른 사람을 설득해나간다. 정부와 달리 처음부터 자원을 가지고 시작하

는 것도 아니고, 공공의 이해라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설득적 장치가 이미 존재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기업가는 의미 있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함으로

써,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또 그들이 사회적 기업가가 제시한 방식에 공

감하여 그러한 혁신적인 변화들을 전파해 나간다.

정부 정책의 경우 수립된 방향에 따라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실행하는데, 실

제 세부 사항에 대한 치밀하고 세심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부 정책

은 관료화된 조직의 부패와 효율적 예산 사용을 가로막는 낭비적 요소를 예방

하기 위한 장치 등을 규칙과 절차로 마련해놓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규칙과 절

차들은 큰 그림에서 예산을 집행하는 데는 적합할지 몰라도, 실제 사업이 전개

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융통성과 대응력 측면에서는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

다. 또 사업 전개 과정에서 결함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수정해서 적용하

는 데 오랜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다. 또한 ‘예산’이 확보된 상황에서 정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해관계자가 생겨나면서, 애초에 그 정책이 왜 만들어졌

는지보다, 누가 그 예산을 쓸 것인가 때문에 정책이 살아남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정부 조직의 훌륭한 엘리트들이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종종 무력감을 겪는

데 비해, 사회적 기업가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전략적 성찰을 얻어가고, 빠르

게 수정하고 적응하면서 창의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정부 조직은 사회적 기업

에 대해, 정부 정책을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들과 협력하여 그

들의 창의성, 민첩성, 유연성들을 활용해나갈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기업가의 입

장에서도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창의성

과 유연성을 활용하도록 제안하여 정부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나갈 필

요가 있다.


시민사회 또한 사회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실천력으로, 정부가 제도

적으로 진행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사회문제를 해

결해 왔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시민사회 운동의 전통이 강한 사회이다. 오랜 민

주화 운동 경험을 통해 적지 않은 수의 시민사회 활동가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러한 토양은 한국사회의 사회적 경제가 풀뿌리에서 강한 역동성을 보여주는 데

있어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경제민주화, 생산적 복지, 지역공

동체 구축, 구성원 간의 신뢰회복을 통한 지역 거버넌스 구축 등은 사회적 경

제의 중요한 담론을 이루고 있으며, 구체적인 운영 프로그램으로 이어져야 하

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정신이 추구하는 변화를 위한 혁신적 제안은 기실 시민운동

과 많이 닮아 있다. 시민사회와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이상은, 어떻게 하면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자원과 소

득의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각각 다른 방법을 선택하여 움직이고 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민운동 혹은 소비자 운동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람들의 인식이나 태도를 변화시키는 캠페인을 해나가고, 대중의 공감과 행동

을 통해 정치적 압박을 가하며, 정치가들 혹은 기업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러

한 시위와 운동은 분명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데 영

향력을 미친다.

이에 비하여 사회적 기업가는 실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직체로서 시장의 메커니즘을 활용한다. 또한 사회적 기업가는 ‘외부’에서 영향

력을 행사하기보다 전술적으로 ‘내부’로 진입하여 변화를 이끌어낸다. 예를 들

어 사회적 기업가들이 대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대기업 내부의 환경, 혁신과 관

련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민운동이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기업에 납득시키

는 일을 한다면, 사회적 기업가들은 이후 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나가


야 하는가를 협력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업사이클링 제품에 주력하던 터치포굿의 박미현

대표는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를 다니며 지금까지 해오던 것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방향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즉 대규모 폐기물을 쏟아내

는 대기업이나 행사 등을 주목하고,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보다 임팩트 있는 업

사이클링의 혁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관련 사례 : 터치포굿).

사회적 기업이 정부 정책이나 시민운동과 다른 접근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

결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나 시민운동이 가진 고유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면

서도, 그러한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는 점에서, 정부정책과 시민운동과 전술적으로 결합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결합은 일반 시민들이나 기업가들이 광범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고 사회문제 해

결에 있어서의 ‘성공’ 체험을 하게 해준다. 이러한 성공체험은 건전한 시민사회

의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편 기업도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나 사회참여를 해왔는데, 사회책임경영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나 자선 활동이 그것이다. 또한 사회공헌을 넘어 기업

의 사업전략 속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개념인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을 통해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또 중요해

지고 있는 추세이다.*

요컨대 정부정책, 시민운동과 비교하여 사회적 기업을 특징짓는 요소는, i)

사회적 임팩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이나 정부정책과 같은 수

준의 목적지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 인한 ii) 광범한 책임성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은 정부 정책이나 사회운동과 같은 수준의 책임성을 동반하며, 이

* 비즈니스의 변화와 사회적 기업의 관계에 대하여는, 강민정, “비즈니스의 변화와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전망과 가능성』, 심상달 외 (에딧더월드, 2015) 참조.


| 사례 보기 : 터치포굿 Touch4 Good |

터치포굿은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생산, 판매함으로써 자원을 재활용하는 인식 확산에 주력해온 사회적 기업이다

(2008년 설립). 현수막처럼 사용기간이 짧고, 고민 없이 폐기되는 재료가 지속적

으로 재생산되는 악순환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혁신적 비즈

니스 차원의 대안을 제시하고 한다. 초기에는 주로 선거 홍보 현수막, 콘서트 현수

막 등 대규모 행사에서 반복적으로 배출하는 폐기물을 회수하여 가방이나 장바구

니 등의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해왔다.

최근 사업의 방향을 다시 잡았는데, 단순 폐기물 재활용을 넘어서, 산업구조상 불

가피하게 발생하는 폐기물을 기업이 경영활동에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유무

형의 맞춤형 솔루션 제공으로 업사이클링 산업의 진화를 선도해가고 있으며, 업사


는 일반적인 기업 활동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기

업들에 대하여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고, 기업에 대하여 높은 수준의 책임

성이 요구되고 있는 환경은, 사회적 기업이 지닌 광범한 책임성이 보다 의미 있

게 다가오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iii) 사회적 기업은 시장 지향성을 통해

문제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 활동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시민운동이나 정부정책과 확연히 다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적 기업이 정부정책, 시민운동과 비교하여 가지는 장점은 실제로

‘장점’일 수 있을 때,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존재의의가 있는 것이지, 오히려 정부

정책이나 시민운동이 가진 ‘단점’을 잘못 결합할 위험 또한 없지 않다. 사회적 기

업이 가진 ‘중층적 성격’은 오히려 현실에서 사회적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

며, 정부 정책이나 시민사회가 행할 일을 섣부르게 참여하였다가 문제를 일으킬

이클링 계의 IDEO로 변신을 시도하는 중이다.

즉 터치포굿은 대기업이나 정부투자기업 등 산업폐기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기업

들에게, 이 쓰레기로 어떻게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해주고(컨설

팅과 판매), 그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업 내부 구성원이 사회공헌 프로그

램에 참여하면서 산업폐기물의 재활용 사업에 함께하도록 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환경친화적인 실천을 해나갈 수 있고, 사회

적 기업으로서도 초점을 가지고 영향력이 큰 기업을 대상으로 환경운동을 실천하

면서, 동시에 컨설팅과 판매를 통한 수익을 통해 경제적인 지속가능성을 실현해가

고 있다.


수 있는 소지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기업이 진정한 사회적 기업의 장점을 살려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속가능하여야 한다sustainability. 사회적 기업이 기업의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스스로 경제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내고 자립

하여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의 표현이다. 사회적 기업은 또한 기민한 대응과 유

연성 즉 속도에 있어서 기존 방식보다 월등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정부

나 기업이 프로그램을 진행함에 있어 사회적 기업을 파트너로 삼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회적 기업은 또한 일정 정도의 규모scalability를 유지하고 추구하여야 한

다. 사회적 기업은 주로 한 사람의 영웅적 실천에 의하여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고 하더라도, 주변의 지지와 자원을 끌어내어 일정하게 규모를 갖추지 않는다

면, 영세 자영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기업은 궁극적으로 시

스템 변화systemic change를 가져와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비록 작은 한걸음을 내디

딜지라도, 그것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결정

적critical’인 한걸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사회운동이 시스템 변화를 추구하지만, 규모나 지속가능성에 있어

서 도전이 많고, 정부 정책은 규모나 지속가능성은 크지만 속도가 떨어진다고

했을 때, 사회적 기업이 ‘기업’의 방식을 도입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면, 지속가능성, 속도, 규모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시

스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사회적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사회적 기업 스스로도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중심으로 사회적 기업이 어떻게 사회문제 해결의 대

안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이 실제 작동하

는 환경에 대하여는 깊이 있는 논의를 다루지 못하였다. 사회적 기업이 작동하

는 환경은, 일반 시장경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경제’와의 결합을 통해


우리 사회의 대안적 가치를 시민들 스스로 경험하고 성장하는 토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최근 우리사회는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빈곤층이 확대되자 이에 대

한 복지정책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이른바 ‘생산적 복지

모델’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 모델을 실현하는 개념으로서 ‘사회적 경제’

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의 기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유통 과정을 합리화하고 상업이윤을 제거하기 위해 풀뿌리 시민 스스로 조

직하는 자주적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질서를 긍정하고

유통과정의 합리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산업자본에 대해 안도감과 친밀감을

주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정신이 사회적 경제와 결합되는 과정에 대하여는, 앞

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의제로서,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2) 사회적 기업가에게 ‘사회혁신’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가?

국내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이라

는 다소 협소한 개념이 지배적이어서, ‘사회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사회적 기업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혁신적 사업모델을 사회적 기업으로

인식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가치’ 자체에 대한 설득과 합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

이 있다. 이 책에서 의미하는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 대상의 사회서비스에 초

점을 둔 사회적 기업보다는 외연이 넓은 개념으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혁신적 비즈니스를 가리키고 있다. 한편 이러한 사회

적 기업은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섹터 내의 여러 조직들과 협력적 관계를 구

축하고,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을 혁신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데 기여

함으로써, 사회적 경제 조직이 지향하는 대안적 가치들을 공유하고 강화해나가


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가에게 사

회 혁신은 어떤 의미인가?

사회혁신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대안적 가

치를 제시하는 활동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종종 사회적 기업가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즉 사회적 기업가는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의 본질에 대해 꿰뚫고 이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분석수준을 가

질 것을 요구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접근 방식은 무엇이고, 다른 어떠한

접근방식과는 달리 나의 모델이 갖는 혁신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대답을 내

놓아야 한다.

이때, 사회적 기업가가 다루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 입증해야 하는 수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

이 있다. 빈곤, 의료 등 우리들 삶의 기본적인 필요에 의한 것, 즉 ‘고통pain’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이러한 필요necessity에서 출발한 문제의 경우, 그 자체가 왜 문

제인가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문

제라는 점을 합의한 상태에서, 사회문제의 분석은 객관화된 지표를 논리적으

로 전개하는 정도의 분석을 요구하게 되며, 여기서는 ‘얼마나’ 혁신적인 방법으

로 이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한 관심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다루는 문제들은, 필요에서만 출발하

지는 않는다. 사회적 기업가에게는 설령 그 문제가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출발

하였더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는 객관적으로 역

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사회학적 상상력’*과 통찰력이 중요하다. 즉 사회의 구성

* 본 책의 2장 2.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방법론 1) 사회적 기업가의 상상력: 어떻게 사회문제를 정의하

고 분석할 것인가?를 참조하라.


원들이 아직 보편적으로 문제라고 여기지 않은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을 문제

라고 여기고, 문제라는 점을 설득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혁신적

대안을 내놓는 것은 오늘날 ‘혁신적 사회적 기업가’들이 해주어야 할 중요한 역

할이다. 사회 혁신을 시도하는 동기로서, 당면한 사회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접

근에 의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중심적 접근 외에도,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실험적 노

력을 하는 가치 중심적 접근 역시 중요한 혁신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앞의 접근을 ‘사회문제 해결’이라고 칭하고, 후자를 ‘대안적

가치 추구’라고 이름 짓도록 하자. 사회문제 해결이나, 대안적 가치의 추구나 모

두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한 삶

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치들이 제

시되고,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혁신적 사회적 기업가에게 더욱 요

구되는 안목은 ‘대안적 가치 추구’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오히려 사회적 기

업의 ‘가치’를 논함에 있어 이 부분을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사회적

기업가가 기존의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했을 때보다, 실제로 그 문제가 왜 사

회적 문제이며, 사회적 기업가가 왜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도

전에 많이 직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많은 좌절을

겪기 때문이다.

모두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회문제가 기존의 필요에서 출발하여 경제적,

물적 수준의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향이 있다면, ‘대안적 가치 추구’의

영역은, 우리사회의 사회문화적 억압을 벗어나는 개인의 가치와 선택의 자유 그

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

날 탈물질주의가 확산되면서 생태주의 환경운동, 반전 반핵 평화운동 등의 신

사회운동 등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흐름과 다름 아니며, 사회적 기업가

는 이러한 신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슈를 발견하고, 이를 기업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안적 가치 추구’ 영역은, ‘사회문제 해결’과 혁신의 과정을 달리한다.

즉 사회문제 해결의 접근은 문제중심의 탐색을 통해 일어나게 되는데, 실제로

‘혁신’은 문제 중심 탐색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혁신들은 특정

한 필요와 상관없이 혹은 우연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혁신을 낳은 새로운

실험과 시도는 특정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관

심 혹은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실험과 상상은

직면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긴박한 필요의 압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로부터 자유로울 때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여기서 ‘필요’에 의한 혁신과 ‘자유’에 의한 혁신을 구분해서 보기로 하자. 필

요에 기반을 둔 행위는 목적-수단의 틀 안에 머무르는 것이며, 자유를 추구하

는 행위는 새로운 목적을 구상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자유에 기반을 두어 기존

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행위는 기능적 필요와 제도적 규칙에 구속

된 행위와는 다른 상상력의 영역이다. 사회적 기업가가 시스템적인 변화를 추구

하는 과정은, 기존제도의 한계 혹은 문제점에 대한 수동적 대응에서 출발한다

면 한계를 가질 수 있는 반면, 오히려 제도를 변화시키는 적극적 행위, 즉 대안

적 제도와 경로에 대한 실험과 같은 경우는 자유의 영역에서 나오게 될 가능성

이 크다(관련 사례 : 리아프 ‘LIAF’).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를 통해서 혁신형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LIAF’

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꽃’의 가치를 심고자 한다. LIAF의 창업자 남슬기 대표

는 어릴 적부터 꽃을 가까이에서 접했고, 꽃의 생육은 물론, 산업에 대하여도 전

문가이다. 메마른 사람들을 꽃을 통해 치유하고 행복을 선사하겠다는 그의 가

* Herbert. A Simon, Models of Discovery: And Other Topics in Method of Science (Springer,

1977); 본고의 ‘대안적 가치추구’와 혁신의 특성에 대한 논의는, 연세대학교 한준교수로부터 도움을 받았

으며, 본 책 2장 9. 행복추구와 삶의질에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 사례 보기 : 리아프 ‘LIAF’ |

Life Is A Flower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지어진 LIAF(리아프)는 사람들의 삶이 꽃

처럼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꽃이 생활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

업이다. 꽃과 식물이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현대사회에 만연한 정서적 결핍과 우울증, 강박증 등

의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해 과감하게 ‘꽃’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세계꽃식물원’을 모기업으로 하여 설립된 리아프는 원예전문판매점인 Flower

Station을 통해 합리적 가격의 화훼류 판매는 물론, 화훼와 가드닝(Gardening, 원

예) 관련 교육과 ‘액티브 원예 힐링 캠프’ 등 원예 관련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함으로써, 일상생활 속에 꽃이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게 만들고자 한다. 특히

사업 초기에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중장년 남성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치는 종종 ‘그것이 왜 사회적 기업이냐’는 도전을 받았다. 그것이 왜 사회적 기업

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는 ‘사회문제 해결’을 사회적 기업 역할의 전부라고 인

식하고 있는 상태이며, 사회적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제안한다는 역할에 대해서

는, 접해보지 않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 기업의 정

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교차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왜 사회적 기업이냐?

에 대한 질문을 공격적으로 하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기업일 수 있는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혁신’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사회적 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의가 되고 있으

나, ‘추구하고자 하는 대안적 가치가 무엇인가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과연 우

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사회적 기업가는 많은 사람들이 문제

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

야 하며, 또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대안적 가

치를 제시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삶에 또 다른 가치와 대안을 보여줄 수 있다

면, 이 또한 훌륭한 사회적 가치가 될 것이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당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무엇인지에 더하

여, 당신이 제시하고자 하는 새로운 대안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더할

때, 사회적 기업가가 창출할 수 있는 혁신의 범위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사회

적 기업가는 역사와 사회에 대하여 ‘열린 진보성’을 가져야 한다. 즉 어느 방향

이 진보인지를 미리 정해놓기보다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통해 진보의 기준 자체를 의심해볼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사회적 기업가는 우리 사회에 대안적 가치를 내놓은 혁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사회적 기업의 혁신형 사업모델

사회적 기업의 ‘혁신형 사업 모델’은 ‘사회혁신’을 사업 모델상에 구현하여 경

제적,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 여기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은 ‘사회적 필요에 부

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을 통해 개발되

고 확산되는 혁신적 행위와 실천’*이다. 사회혁신의 특징은 첫째, ‘과정’ 중심이

다. 개방적으로 문제해결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확장된 네트워크와 협력을 통

* Geoff Mulgan et al., Social Innovation (2007).

[표 1] 세계를 움직인 사회혁신

개방 대학

(Open University)

1971년 영국에서 처음 설립,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 대상

프로그램으로, 혁신적 모델로 인정받아 전 세계로 확산

공정 무역

(Fair Trade)

1940-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생산자 보호를 위한 공정 무역 운동

그라민 은행

(Grameen Bank)

방글라데시의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 기반의 빈곤퇴치

사업으로서,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전파됨

옥스팜(Oxfam)

(the Oxford Committee for Relief of Famine) 1942년 영국에서

시작된 지역사회 단위의 빈곤퇴치 운동으로서, 현재 전 세계

98개국에서 활성화됨

리눅스

(Linux S/W)

리눅스, 위키피디아, 오마이뉴스 등 다양한 분야를 변화시킨 오픈

소스 방식

암네스티 인터내셔널

(Amnesty International)인권 보호와 성장을 위한 다양한 운동 조직체

국민건강 상담서비스

(NHS Direct)

영국의 국민건강청(National Health Service)이 제공하는 24시간 건강

상담서비스로서, 전화, 스마트폰, 웹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속 가능

빅이슈(Big Issue)

영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모델로서, 노숙자의

자활을 돕고 사회구성원과의 소통을 돕는 잡지 사업-일반인들은

빅이슈를 구입하거나, 잡지 콘텐츠에 재능을 기부함으로써 노숙자를

도와줌. ‘홈리스 월드컵’과 같은 모델을 파생시키기도 함

자료 : Geoff Mulgan et al., Social Silicon Valleys: A Manifesto for Social Innovation (The Young Foundation, 2006).


해 실천한다. 둘째, 경제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끌어내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차

원의 변화를 도모한다. 셋째, 복제 가능한 모델과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인 사

업모델이 경쟁우위를 위해 가능한 한 모방을 기피하는 데 비해 사회혁신은 복

제성을 지향한다.

[표 1]은 영국의 Young Foundation이 ‘세계를 움직인 사회혁신’을 선정한

것인데, 영국 사회의 특수성 속에서 더욱 의미가 있는 내용들도 있지만, 보편적

인 의미에서 이미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되는 변화들이 작은 한걸음의 혁신을 통

해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들을 가져왔음을 보여준다.

혁신형 사업모델을 통해 사회적 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건전한 수

익구조를 가져야 하고, 나아가 저수익 구조를 당연시하기보다는 기존 기업들과

의 경쟁 속에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사회적 가

치가 점점 소비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아가는 오늘날 이러한 모델은 오히려 사

회적 기업이 갖는 ‘경쟁력’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충분히 가능하고, 또 세계

적으로 그 예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기업의 혁신형 사업모

델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시도되고, 투자가 가능하여야 한다.


| 혁신형 사회적 기업의 예 |

• Elvis &Kresse(영)은 재활용품을 활용한 패션사업으로 재활용품에 대한 인식전

환을 꾀하고 수익의 50%를 기부한다. 2007년 영국에서 설립한 회사로서, 산

업 폐기물을 재활용(연간 약 150톤)하여 패션 핸드백, 노트북 케이스, 키홀더 등

을 생산하고, 2011년, 프랑스, 벨기에, 싱가포르, 홍콩 등 9개국에서 25개 점포

를 운영 중이다.

• Give Something Back(미)은 B2B시장에서 사무용품 판매로 얻어진 수익을 기

부하고, 고객들은 GSB로부터 사무용품을 구매하여 지역사회의 비영리기관을

간접 지원하는 혁신적 가치사슬 모델을 구현한다. 설립 초기인 1999-2001년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50개 기업에 선정되었으며, 2013년까지 총 6백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였다. 현재 17,000여 고객을 기반으로, 3개 도시에 40개의

유통 센터를 설립하였다. 3개 도시에 40개의 유통센터를 두고, 2천6백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캘리포니아 최대의 사무용품 제공업체이다.

• KickStart(미/케냐)는 저비용 기술을 활용한 기계를 발명, 판매하여 저개발국 농

부들의 수입 창출을 돕는다. 미국의 Martin Fisher가 케냐에서 1995년에 설립

한 회사로서, 소규모 농부들을 위해 펌프나 농기계를 저가로 판매하여 수입 창출

을 도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2014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 전역

에서 약 65,000명이 Kickstart 기계를 사용하여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13,000

개의 관련 신규 기업이 생겨나 1천1백만 달러의 농가 수입(이윤profit과 수입

wage)이 창출되었다. Kickstart 사업이 시작된 이래 창출된 누적된 가치만 따지

면, 14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어 총 8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총 1

억 4천만 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창출하였다.

1-2.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방법론 | 61

1) 사회적 기업가의 상상력 : 어떻게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분석

할 것인가?

사회적 기업가는 어떻게 사회문제를 선택하게 되는가? 일반적으로 기업이

라면 창업을 위해 자본, 인력, 기술, 지식과 같은 자원들을 성공적으로 동원해

야 하며, 동시에 시장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회를 포착해내는 것이 중요하

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서는 이에 더하여,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또한 사회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소셜 미션화하기까지는 많은 경

로를 거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개인의 경험과 신념이 바탕이 되기 쉬우며, 이

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단초가 되어 신념화되고, 이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사회변화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은 지

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

2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방법론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을 갖출 것이 기대된다. 사

회적 기업가가 사회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은 다소 피상적인 수준에서 시작할 수

도 있는데, 이것이 왜 문제이며, 어떤 연유로 시작된 것인가를 파헤쳐나가는 과

정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수준은 거의 전문가의 수준에 이

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사회학자가 사회문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

은데, 사회학자들은 일상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하여, 그 현상을 나타내게 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헤쳐가는 과정에 역사적, 사회적 상상력을 펼치게 된다.

한 사회 속의 개인들의 행위는 자신들에게는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사회적 수

준에서 보았을 때는 단순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개인들의 일

상 속에서의 행위는 비록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어렵거나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무관심해서 그렇지, 상당부분 역사적, 사회구조적 상황 변화

의 산물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한 제도나 규칙들을 내포하는 사회적 관계

(또는 사회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 및 조건들의 변화

는 때로는 직접적으로, 또 때로는 간접적으로, 때로는 느낄 수 있게, 또 때로는

느끼기 힘들게 늘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어떻

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개개인들의 삶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역사적 과정에 대한 관계적(또는 구조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

는데, 이것을 우리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사회 관계가 특정한 방식으로 유지되고 변화되는 경향성과 규칙을 파

악할 수 있으며,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 이러한 사회학적 상상력은 중요하다.

Anthony Giddens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역사적, 인류학적, 비판적 상상

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비판적 상상력이란, ‘현재 사회의 모습이 바람직한 것

인지, 바람직하지 않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 Wright. C Mills, 『사회학적 상상력』, 강희경, 이해찬 역 (서울: 돌베개. 2004).


며, 지금까지 당연시되고 정당화되어 왔던 모든 질서, 가치, 규범을 상대화하고

의문시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러한 비판적 상상력은 역사적, 인류학적 상상

력으로부터 생겨난다. 역사적 상상력이란 과거의 물질적, 정신적 유산들이 현

재의 사람들의 사고 및 행위 양식을 형성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

악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적 변화를 낳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류학적 상상력이란, 개인들이 자신의 특수한 삶

의 조건들과 경험들 속에서 형성된 가치, 규범, 정서, 감정 등을 사회의 일반화

된 기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에 대한 반성으로서,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유

산에 따른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인정하는 열린 지성을 뜻한다.*

사회적 기업가들은 많은 경우 소외와 배타성을 넘어 포용과 화해 협력을 지

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사회가 가진 불평등과 부조리에 주목한다. 즉 사회

란 개인들에게 무한정한 기회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가 전체적으로 허

용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된 기회들을 제공할 뿐이다. 이러한 기회의 제한은 무

엇보다도 자원 총량의 제한과 자원분배가 이루어지는 특정한 관계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사회와 사회의 개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감정, 의식, 가

치, 규범, 의도, 행위, 처지 등이 어떠한 사회적 관계들 및 조건들 속에서 형성

되고 또 작용하는지를 생각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리고 이러한 사회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하면 사회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자원과 소득의 공정한 분배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회적 기업가의 상상력은 ‘비판적’ 상상력이다. 즉 사회를 바라보는 기존의

눈을 바꾸면서 기존의 사회 형태를 비판하고, 대안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이를 위

* Anthony Giddens and Philip W. Sutton, Sociology (Polity Press, 2013).

** Ibid.


한 현실적인 분석을 수행해야 하며, 이러한 분석이 비판적 상상력을 뒷받침할

때 대안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 리서

치, 인터뷰, 사례 연구 등은 중요한 현실 분석의 도구이며, 이러한 현실 분석을

통해 사회문제를 명확하게 꿰뚫고 변화의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만약에 이

러한 현실 분석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기업가는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이에 따른 비판은 또 다른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

는 가능성이 크다.

2) 사회적 기업가의 가치관련과 사회적 가치 창출의 변증법 : 사회

적 가치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1) 사회적 기업가의 가치 관련

사회적 기업가의 상상력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지는 경

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에 정부 정책 담당자가 사회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가 무엇이냐를 놓고, 우선순위를 정

하는 등의 작업이 ‘합리성’의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특

정 사회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하

다는 사회적 가치의 객관적인 인정 이전에 왜 그 사회문제가 특정 사회적 기업

가에 의해서 다뤄지게 되었고, 왜 그 사회적 기업가가 그것을 잘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곤 한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선

택해가는 과정은 단순히,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놓고 어느 것이 중요한가를 객

관적으로 선택해가는 과정이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수한 경험 속에서

시작되었을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가치 판단, 가치 관련의 문제가 등장한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서 가치판단은, 특정 사회이슈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작용하며,

이는 먼저 어떤 대상을 의미 있는 변화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를 선택하고, 사

회학적 상상력을 통해서 이 대상의 특정한 인과관계에 주목하고, 어떻게 변화

를 이끌어낼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용한다. 이러한 연유로

사회적 기업가는 왜 그 문제가 중요한지에 대한 끊임없는 외부로부터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며, 내가 정말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

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객관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회적인 문제는 존재하는 것

인가? 특정 사회문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해결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은,

그 문제가 가진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설득 작업이 수반되는

한편으로, 그 문제를 선택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판단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회적 기업가가 선택한 사회문제는 어차피 슈퍼마

켓의 진열대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 아닌, 스스로에게 정말 중요

하다고 느끼는 문제의 ‘특수한’ 경험의 형태를 존중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기업

가의 개별적인 경험의 형태가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방식으로 성큼 다가가게 하는

데 중요한 ‘혁신’의 고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 또한 인정하여야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져오는 임팩트의 객관성을 입증하는 과정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통찰력과 특수성이 끊임없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가가 마주할 현실이다.

사회학 연구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는데, Weber는 ‘가치판단은 결

코 학문적으로 논증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인정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

다. 가치판단은 어떤 연구대상의 선택에 작용하는데, 먼저 어떤 대상을 의미 있

는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를 선택하고, 이 대상의 어떠한 인과 관계를 연

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사회과학적 현상’이 가지는 성격은 그 자체가 ‘객


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개별적인 사건에 부여

하는 특수한 문화적 의미에서 도출되는, 인식에 대한 관심의 방향에 의하여 규

제된다. 연구의 대상과 인과관계에 의한 추적의 정도는 학자와 그 시대를 지배

하는 가치 이념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현상에 대한 인식은 항

상 특수한 관점에서의 인식이며, 따라서 전적으로 객관적인 학문적 분석이란

있을 수 없다.* Weber의 논의를 통해 해석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기업가의 개

인적 경험과 통찰력이라는 부분은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한편 사회적 기업가는 외부의 자원과 공감을 얻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자

신이 이뤄내는 변화와 임팩트에 대하여 객관적 검증을 해내야 한다. 사회적 기

업가가 사회문제를 선택함에 있어서 작용하는 가치관련은, 사회적 기업가의 몰

입과 ‘소명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존중되어야 하지만, 특정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져올 사회적 가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

며, 얼마나 많은 사회적 영향을 가져왔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적 기업가가 창출해낸 가치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

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즉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2) 사회적 가치 창출의 정의와 평가

사회적 기업가에게 소셜이슈는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이거나,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가운데 발견되는 사업기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가에게

특정 이슈가 사업기회로서 인식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는 무엇일까?

사회적 기업가가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인 지표로 보여주는 것이

* Max Weber, From Max Weber: Essays in Sociology, Trans. H. H. Gerth, C. Wright Mills

(Oxford University Press, 1958).


가장 손쉬운 방법이리라. 그러나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인 지표로 보여준다는 일

자체가 손쉬운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는, 사회적 기

업가는 물론, 임팩트 투자와 관련하여 기업가치 평가에서도 중요한 이슈이며,

이에 국내외적으로 사회적 기업계가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는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나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가

운데 발견한 사업기회에 대하여,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여야 하며, 이를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사업모델을 통해 정의하여야 한

다. 그리고 이를 시장에서 실현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과학적 분석과 조사를 수

행하여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시장접근 전략을 포함한 사업전략을 수립하고,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을 동원하여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여타의 창업 활동에 더하여 ‘사회적 가치’가 그러한 활동

에 어떻게 녹아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창업이

나 기업경영보다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인 ‘소셜이슈의

분석과 기회 탐색’이 그 여정을 하나의 긴 과정으로 다루고 있다면, ‘사회적 가

치’는 그러한 과정을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내는 결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는 사회적 기업가가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 혁신을 이루어

놓은 다음에 측정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기업가는 특정 소

셜이슈를 선택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과정

에서 그러한 방법이 가져올 사회적 임팩트에 대하여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를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과, 측정 결과를 객관

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회계 자료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한 국내 연구로는 이승규와 라준영(2010), 문철우(2012), 김혜란(2012), 조영복

(2012, 2014) 등이 수행한 바 있다. 한편 SIEN(Social Impact Evaluation Network)은 국내에서 사회

적 가치 측정에 대한 합의 도출을 위하여 구성된 연구 네트워크로서 SK의 후원으로 2013년 이래로 활

동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문제가 더 의미가 있고, 또 어떤 방법이 더 의미 있는 사

회적 가치를 창출해낼 것인가? 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사회문제의 유형에 따

른 측정기준과, 또 사회문제 간의 비교가 가능하여야 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가

치 측정은, 각각의 사회문제가 지닌 역사성과 각각의 사회가 처한 현실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일률적인 과학적, 객관적인 잣대를 가져갈 수 없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란 이렇듯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가치 측정은 사회적 기업의 확산과 성장, 특히 임팩트 투자 분야에서 중요

한 전제가 되어 온 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방법에 따라, 어떤 지표를 가

지고 가치를 평가할 것인가를 도출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는데, GIIN*이 개발한

IRIS**가 그것이다. IRIS는 사회적 기업가가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을 지식의 생

산과 개발, 제품 개발과 판매, 기술 등 역량 개발, 인프라 개발, 정책 개발과 같

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각각의 접근 방법이 가져 올 수 있는 사회적 임팩트에

대한 측정 지표의 모둠을 개발해서 정리해 놓고 있다.

IRIS가 사회적 가치 측정을 위한 측정 지표의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면, ‘사회적 투자회수율SROI’은 사회적 가치를 ‘일자리 창출’로 단순화한다는 단점

은 있지만, 그동안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SROI

는 미국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 ‘벤처형 자선기관Venture Philanthropist’인 REDFRoberts

Enterprise Development Funds에서 개발되었다. REDF***는 투자의사 결정을 함에 있어서

* GIIN(Global Impact Investors Network)은 사회적 영향 투자자와 중간전문조직이 중심이 되어 만들

어진 대표적 국제적 파트너십 기관이다. http://www.thegiin.org/

** IRIS(Impact Reporting and Investment Standards)는 GIIN이 성과 평가 Tool로서 개발하여 보급

하고 있는 것으로서, 사회적·환경적·재정적 가치를 측정하고, 사업 거래(deals)를 평가할 수 있는 성과

측정 지표(performance metrics)이다. 임팩트 투자 영역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관련 투자의 신뢰성

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있다. https://iris.thegiin.org/about-iris/

*** REDF는 자본 투자는 물론, 투자된 자본금이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경영 컨설팅을 통해 사회적 벤

처를 지원하고 있다. 매년 20-30만 달러 정도를 투자금으로 운용하며, 3-5년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


사회적 가치 창출의 목표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역량을 평가하는데, 수익과

사회적 기여 부분을 사회적 투자회수율SROI: Social Return on Investment을 통해서 평가

한다. “사회적 투자회수율(SROI) = 미래 창출 가치(business value + social

purpose – debt) /Investment“를 도입하였고, 이는 오늘날 사회적 가치 평가의

주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사회적 임팩트의 가치 평가는 그 자체가 방대한 주제이며, 이 책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여기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기업가

가 소셜 미션을 수립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창출해내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객

관적인 측정을 위한 노력의 과정을 거친다면,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소셜 미션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 과정에서 불완전하나마 사

회적 가치 측정 과정을 거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렇게 측정된 내용은, 이후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재무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

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소셜 미션이 보다 단단해질 수 있다.

3) 사회적 기업의 사업기회 탐색 : 어디에 기회가 있는가?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 주목하는 사회문제는, 혁신적 비즈니즈 모델을 통

해 그 해결 방법을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사업 기회’로 정의된다. 사회 문제가 사

업기회로 정의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

이다. REDF의 투자 대상은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을 집행하는 비영리단체이면서, 재무적으로 건전하고,

운영효율성이 있는 곳을 택한다. REDF는 전통적 방식의 '기부'를 벗어나 '투자' 형태로 지원하는 벤쳐캐

피탈 형태의 접근법을 도입한 만큼, 투자처의 성과 평가가 중요한 작업이 되었다. REDF는 사회적 목적

실현의 평가 도구인 SROI를 만들어낸 기관으로서, 1997년 이래로 사회적 벤처의 성과를 정량적 방법으

로 측정하는 SROI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왔다.

*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기준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라준영. “사회적기업 생태

계와 사회적 가치 측정”, 심상달 외. 『사회적경제 전망과 가능성』 (에딧더월드, 2015).


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 어떠한 영향력을 가져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사회적 기업가가 주목할 수 있는 소셜이슈는 빈곤, 보건의료, 에너지 등 다

양한 이슈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슈는 보편적이기보다는 개별 사회

가 처한 역사와 사회적 특성에 따라 중요성이나 문제의 본질이 다를 수 있다. 사

회적 기업가는 따라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의 깊숙한 역사적 본질을 꿰뚫

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보편타당한 사업기회란 애초부터 찾기 힘든 영

역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국내외 사회적 기업과 사회혁신을 다루고 있는 서적,

연구 성과 등을 참고하고, 여기에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여, 아홉 가지 소

셜이슈로 분류하였다. 여기서는 이러한 분류가 나오기까지, 사회적 기업가의 사

업기회에 대해 접근한 몇 가지 내용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1) 사회변동으로부터의 기회

영국의 Young Foundation은 오늘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새롭게 등장

하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주목하는 가운데, 필요한 사회혁신의 영역을 제안하

고 있다.*

• 기대수명 향상으로 인한 연금, 주거, 도시계획, 노인돌봄서비스 분야

• 기후 변화에 따른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도시, 교통, 주거 환경 등에 대

한 재조직의 필요성

• 국가와 도시 단위에서 급증하는 다양성diversity으로부터 비롯되는 학교, 언

어교육, 주거 등의 분야에 대한 재조직의 필요성

•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 정신질환 등 사회적 질병을 해결해

* The Young Foundation, Social Silicon Valleys (2006).


야 하는 필요성

• 장기질병 발생률의 상승 - 아토피, 우울증, 암, 심장 관련 질병 등 새롭게

등장하는 의학적, 사회적 지원 모델의 필요성

• 풍요함에서 비롯된 각종 문제들, 예를 들어 비만, 알코올과 약물중독, 도

박, 지방과다 등에 대한 혁신적 접근의 필요성

• 성장기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안정된 직업, 관계, 삶의 질을 추구하도록 성

공적으로 지도할 필요성

• 진정한 행복추구가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으로부터 비

롯되는 다양한 접근 방법

(2) 사회기저층(BoP, Bottom of the Pyramid) 시장으로부터의 기회

앞선 논의에서 지적되었듯이, ‘필요’에 의한 사회적 문제 정의는 훨씬 명확하

고 보편타당하다는 점에서 분명한 사업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필요’가 가

장 잘 나타나는 곳이 BoP* 시장이다.

최근 들어 저개발국 BoP 시장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 이들 시장에

대한 상품과 서비스의 제공에 대하여, 기존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 개척의 새로

운 패러다임으로서 바라보면서, 기업의 마케팅 능력을 사회공동체의 필요와 접

목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즉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소외되었

던 ‘빈곤층’을 시장으로 바라보면서, 빈곤 지역의 경제발전은 물론 사회 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 사회기저층(BOP: Bottom of the Pyramid)은 연소득 $1,500 이하, 혹은 일소득 $5 이하의 저개발국

40억 명에 해당하는 인구. 이들에 대한 교육, 의료, 삶의 질과 기회를 확장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주목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혁신 영역으로 부상되었고, 이들의 구매력은 약 5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Prahalad(2004; 2012)는 세계의 빈곤층(Bottom of Pyramid)을 새로운 소비자층으로 인식

해 비즈니스에서 혁신성이 지속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MDG의 목표와 이행 성과 |

• 절대빈곤 및 기아 퇴치(Eradicating extreme poverty and hunger): 1일 소득

이 1.25달러 미만인 인구를 반감하며, 1990년에서 2014년까지 하루 1불 이내

소득자 비율을 절반으로 감소시키고, 여성과 청년층을 포함하여 완전하고 생산

적인 고용과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여 1990년에서 2015년까지 기아인구층을

절반 수준으로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2010년 기준, 1990년 대비 절

대 빈곤비율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되었으나, 고용불안과 만성기아, 지역 갈등으

로 인한 피난 등 관련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 보편적 초등교육의 실현: 2015년까지 전 세계 모든 남녀 어린이들이 동등하게 초

등교육 과정을 이수토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90년 이래 개도국을 중심

으로 초등교육 보편화의 많은 진보가 있었으나, 2012년 기준 개도국 아동의 약

10%, 선진국 아동의 약 4%가 초등교육을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 양성평등과 여성의 능력 신장: 모든 교육수준에서 남녀차별 철폐를 목표로 하

며, 2005년까지 초등과 중등교육에 대한 성별 불균형 타파, 2015년까지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성별 균형에 도달할 것을 목표로 하였다. 남학생 대비 여학생

의 학교등록비율을 수치화한 성차지수(Gender parity index)가 0.97 – 1.03 수

준일 때 양성평등을 달성했다고 본다면, 2012년 기준 거의 모든 개도국 지역이

초등교육(0.97), 중등교육(0.96), 고등교육(0.99)에서 양성평등 수준에 도달했

다고 평가받는다.

• 유아사망률 감소: 4.5세 이하 아동사망률 2/3 감소, 2015년까지 1990년 기준

5세 미만 유아사망률 2/3 감소를 목표로 하였다. 5세 이하 사망률의 감소 속도

는 지난 1990-1995년 1.2%에서 2005-2012년 3.9%로 점차 빨라졌다. 2015

년까지 유아사망률을 2/3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2013 – 2015년의 감소율


이 현재보다 4배는 더 커져야 한다.

• 모성보건 증진: 2015년까지 산모사망률 3/4으로 감소하고, 모든 여성이 출산 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90년 대비 2013년에는 산

모사망률이 45% 감소하였고, 관련된 분야의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

고, 저개발국 지역의 산모 사망률은 선진국에 비해 14배나 높은 수준이다. 2015

년까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 질병 퇴치: 말라리아와 AIDS 확산의 저지. 2015년까지 HIV/AIDS와 말라리아,

기타 주요 질병의 확산을 멈추고 감소세로 전환시키는 한편, HIV/AIDS 치료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료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을 달성하게 하는 것으로 목

표로 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HIV/AIDS에 감염된 성인의 비율은 2001-2012년

사이 44% 감소하였고, 말라리아 및 백혈병 치료제의 보급 등을 통해 이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많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2012년 기준 매일 600명의 어린이들이

AIDS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 지속가능한 환경 확보: 안전한 식수와 위생환경에 접근 불가능한 인구의 수를 반

으로 줄이고, ‘지속가능 발전의 원칙(principles of sustainable development)’

을 국가 정책과 계획에 통합시키고, 유실된 환경자원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다. 또한 생물 다양성 손실 감소 및 멸종률 완화, 안전한 식수와 기본적인 위생 시

설에 접근하지 못하는 인구비율의 절반 축소, 2020년까지 빈민가에 거주하는

적어도 1억 명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2년 기준, 이산화

탄소 배출량은 1990년 대비 50% 이상 증가하였고, 1990년 대비 안전한 식수

를 마실 수 있는 인구가 23억 명으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7.5억 명 정도의 인구

가 식수 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수준이다. 도시 거주자의 1/3 정도가 여전히 슬럼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 개발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 최빈국 및 내륙 개도국(landlocked devel-


이러한 BoP 시장은, Prahald가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Bill Gates가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설파하면서, 급격히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창조적 자본

주의의 개념을 통해 Bill Gates는 “기업은 자본주의의 시장논리에서 소외되어

있는 빈곤층을 새롭게 해석하여, 기업 본연의 기술혁신과 경영효율성을 도입함

으로써, 빈곤층의 삶을 개선하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하

고, 기업이 사회 참여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간다는 점에서 ‘창조성’의 의미

를 부여하고 있다.

BoP에서의 사업기회는, UNDP가 지정한 MDG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통해

정의해 볼 수 있다. MDG는 2000년 UN에서 개최된 Millennium Summit에

서 채택된 빈곤 타파에 대한 의제로서, 2015년까지 빈곤을 반으로 감소시키자

는 범세계적인 약속을 뜻하는 것으로, 빈곤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계적 수준의

문제정의로 사용될 수 있다.

* 2008년 Davos Forum 연설 中.

oping countries), 소규모 도서지역(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의 개발 관

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선진국의 저개발국에 대한 공적개발원

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규모는 2013년 약 1350억 달러에 이

르러,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한편 개도국 부채의 수준은 2000년 이래 급격

히 감소하다가, 2006년 전후로 정체 수준으로 보이고 있다.

출처: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Report 2014, UN


그렇다면 BoP 시장으로부터의 기회는 우리사회와 무관한가? 한국사회는

급격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성장에 따른 분배가 실현되고 제도화되는 데 있어 아

직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OECD국가라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

어 나라 전체가 BoP 시장으로 인식되지는 않아도,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이 한

국 사회 특유의 BoP적인 문제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는 사회의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인 박탈감의 문제를 넘어 절대적인 빈곤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빈곤은 단순한 소득수준을 넘어선 사회문제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 핵심 연

결고리가 바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의 개념이다. 빈곤 문제는 사회안전망과 사

회관계망의 확대 여부와 관련된 ‘기회’에 대한 문제이며,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고용 정책뿐만이 아닌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과 제도화의 영역이다. 빈곤

은 삶의 다양한 차원, 즉 소득, 재산, 건강, 주거, 교육, 환경, 노동 등에서의 결핍

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빈곤을 부추기는 문제는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와, 농민과 영세상인

의 빈곤수준이 임계점을 넘어 위험수준에 다다르고 있으며, 가구 소득수준이

빈곤선 이하인 가구를 나타내는 한국 사회의 빈곤층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 밖에 한국사회가 직면한 사회문제들은 결코 BoP적인 시각에서 자유로

울 수 없으며, 한국사회의 특성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 문제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빈곤 문제는 남의 사회의 문제가 아니며, 이 분야 또한 사회적 기업가의

성찰과 실천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한국사회의 주요 소셜이슈로

선정되어 다루지는 않았다.

* 임현진, 공석기, 『뒤틀린 세계화』(서울: 나남출판사, 2014)

** 2010년 현재 비정규직 수는 56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33%이며(정부 통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50.2%인 855만 명에 이른다.

*** 유진성, 허원제, 『빈곤가구의 빈곤탈출 요인분석과 시사점:빈곤층 취업활성화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연

구원 2014년 9월 정책보고서 (서울: 한국경제연구원, 2014)


(3)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에서 정의한 기회

사회적 기업가의 필독서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에서 John Elkington과

Pamela Hartigan은 사회적 기업가가 그동안 주목해 왔으며, 앞으로도 주목해

야 할 사회문제 10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인구 문제

비대칭적인 연령분포, 즉 고령화사회나 청년인구가 많은 나라 등은 각기 그

나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있다. 또한 개발과 함께 농촌에서 도시

로 이주현상이 급증하면서 도시빈민이 증가하여 발생하는 사회문제 등이 있다.

금융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문

제제기이다. 자본주의의 심화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극단적인 부의 불균형은 사회의 대재앙이 될 수 있다.

영양

기아, 배고픔, 영양결핍으로 인한 발육부진, 신체 허약, 만성 영양실조 등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8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린다고 추

정되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

자원집약적 농업과 산업의 확산, 인구 증가로 인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

* John Elkington and Pamela Hartigan,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강성구 역 (에이지

21, 2008).


협할 만큼 천연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또한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의 에너지 양

극화는 개발도상국의 가난고착화와 지역적,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 환경의 지

속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환경

저개발국의 환경문제는 깨끗한 식수, 공중위생, 실내외 오염의 위험, 자연재

해에 대한 취약성의 문제인 반면, 선진국의 환경문제는 소음, 교통체증, 공기와

물의 오염, 장기적인 기후 변화, 물 부족 등의 문제이다.

건강

HIV/ AIDS, 말라리아, SARS와 같은 잠복성 광역전염병 문제는 불가항력

적인 분야이다. 세계 보건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한 해에만, 거의 1,100만 명

에 이르는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예방이 가능한 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통

계가 있다. 결국 질병은 영양, 환경, 그리고 빈곤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성 평등

여성의 사회적, 법적 지위에 대한 문제이며, 사고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

부의 창출과정이 정보와 지식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짐에 따라, 국내외적으

로 교육의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디지털화

IT 혁명은 또 다른 양극화를 발생시키며, 휴대폰, 컴퓨터, 인터넷 등 신기


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지만, 빈곤층의 신기술 접근성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안전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에너지 관련, 물 관련 여러 안보 문

제가 등장하고 있다. 국제적 테러리즘과 지역안보, 환경문제와 식량안보 등과

관련된 이슈들이 있다.

(4) 한국 통계청의 사회이슈 분류에서 본 기회

한국사회의 사회이슈에 대하여, 한국사회과학도서관에서 발간하는 한국 통

계청에서 분류한 사회이슈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안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화재, 산업재해, 교통사고, 범죄율 증가.

인구

수도권인구 집중과 고령화, 가족의 분산과 가구구성의 변화, 이민자 증가.

가족과 가구

1인가구 증가(미혼과 이혼 등), 연령증가에 따른 부부관계 만족도 감소, 초

혼연령 상승과 만혼, 한부모가정, 맞벌이 부부.

건강

암, 자살, 우울증과 스트레스, 소득에 따른 의료서비스 격차, 우리시대의 병

* 통계개발원, 『한국의 사회동향 2012』 (서울: 한국통계청, 2012)


아토피 질환의 등장, 서구형 질환 증가.

주거와 교통

수도권 거주자의 출근전쟁(소득과 통근시간 반비례 관례 형성 등), 주거 안

정성 문제, 최저주거기준 미달된 주거빈곤가구 문제, 도로의 지역 간 불균형 문

제 등.

사회통합

노인자살, 다문화 수용성 문제와 국민정체성, 1인가구의 사회적 지원과 공

정성 문제.

(5) 이 책에서 정의한 소셜이슈와 사업기회

위와 같은 사회 이슈 정의를 참고하여 KAIST사회적 기업가 MBA의 ‘소셜이

슈 분석 및 기회탐색’ 과목에서는 아홉 개의 소셜이슈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각

각의 사회문제에 대한 심층 분석이 이 책의 제2장에서 소개되어 있다.

• 도시화와 주택문제

• 건강과 보건의료

• 교육

• 글로벌 빈곤문제와 국제개발협력

• 기후변화와 에너지, 지속가능한 발전

• 이민과 다문화

• 소셜네트워크의 부상과 새로운 기회

• 문화와 예술


• 행복 추구와 삶의 질

(5) 소셜이슈에 따른 사회적 기업가의 기회와 한계

혁신가로서의 사회적 기업가가 해결할 수 있는 이슈와 해결할 수 없는 이슈

가 따로 있을까? 즉 사회적 기업가가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사회문제는 따로

있을까? 예를 들어 분단과 분단으로 인한 제반 사회적 현상, 우리사회에 뿌리박

힌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비정규직 문제, 노동3권의 보장, 불평등 구조, 청년 실

업 등,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사회적 기업가는 어떠한 답

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러한 구조적인 사회문제에 사회적 기업가가 접근한다

고 했을 때, 사회적 기업가로서 내놓을 수 있는 해답에 적절한 방식은 존재하

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사회적 기업가의 접근이

갖는 의미와 한계는 무엇일까?

창신동을 중심으로 지역재생을 위한 혁신형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신윤예, 홍성재 대표는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재생

사업의 롤모델을 제시해나가고 있다.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에서 주목하

는 소셜이슈로 다루어지지 않은, 상당히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그들은 우리가 다루는 소셜이슈의 지평을 실천적으로 넓혀주고 있는 젊은

이들이다(관련 사례: 000간).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전태일 열사가

온몸을 불살라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한 그곳이 바로 70년대

의 창신동 봉제공장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투쟁했던 70년대와 그 본질에서 크

게 다르지 않은 노동현실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위


| 사례 소개 : 000간 |

‘소외지역 재생을 위한 커뮤니티 브랜딩’이라는 소셜 미션을 추구하는 ‘000간(공

공공간)’은 예술 컨텐츠를 통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커뮤니티 기반 사회적 기

업이다.

000간의 신윤예, 홍성재 대표는 한국의 산업 구조 재편에 따른 지역의 주변화와

이로 인한 공동체 해체라는 사회 문제에 주목하고, 이를 예술 활동과 관련지어 해결

하고자 한다. 이들이 활동하는 창신동은 서울의 소외 산업 지역 중의 하나로, 1970

년대 국내 봉제산업이 호황기였을 때 급속히 성장하였다가, 1980년대 이후 타 제

조업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해외이전 등의 이유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 지

역경제의 침체와 노후화된 주거환경, 지역 아동의 교육 및 육아 문제는 지역이 직면

한 주요한 사회 문제이다.

이들은 ‘제로웨이스트’라는 친환경 재단 기술로 제품을 생산하기도 하고, 봉제공장

에서 대량으로 버려지는 자투리천을 활용한 아이디어 상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거

나, 지역 어린이를 포함한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적 체험 프로

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를

통해, 신윤예·홍성재 대표는 창

신동의 지역재생 경험을, 여타

의 지역사회에서 복제가능한

모델로 성장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험한 작업환경*, 비정규직 문제, 쌍용차해고노동자** 문제 등에서 우리는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쌍용차해고노동자 문제는 신자유주의 환경 속에서 우리사회의

고용안정성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으며, 또 그로 인해 한국사회 중산층의 꿈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

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질서와 그것에 익숙한 국민들의 정서

속에서 고립되고 잊혀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적나라한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음에도, 사회적 기업가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사회에는 사

회적 기업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정부

와 시민사회를 통해 해야 할 일들이 존재하며, 사회적 기업은 분명히 중요한 변

화의 흐름이지만, 그 한계 또한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정부 정책이 나서야 하는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성찰

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실업’이나 ‘빈곤’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함

에 있어, 실업과 빈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사회적 기업

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칫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는 위험 또한 존재한다.

*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고용노동부 산하)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의 림프조혈기 계통의 암 발

생 위험은 일반인의 2.67배이고, 특히 조립공정 생산직 여성은 5.16배에 이른다(2008년 역학조사 결과).

200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숨지는 등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

체 부문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 의혹’이 불거지면서,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 건강과 인권이 주요 사회 문

제로 대두되었다(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330315.html, http://www.

huffingtonpost.kr/2014/07/28/story_n_5625564.html).

** 지난 2009년 4월 쌍용차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전체 인력의 37%에 달하는 2,646명을 구조조정하고,

희망 퇴직 등의 퇴사자(1,666명)를 제외한 나머지 98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대량 해고 사태를 낳았다. 그

중 노사 합의를 통해 일부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등으로 정리되고 최종 165명이 정리해고되었다. 이후 노

조를 중심으로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해고무효 소송 등의 법정 투쟁과 해고자 복직 요구가 계

속되었으며,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2014년 11월까지 해고자 가족의 자살이나 질환 등의 이유로 사

망한 노동자만 25명에 달해 주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관련 기사: http://www.hani.co.kr/arti/

society/society_general/664329.html).


창신동에서 전태일의 뒤를 이른 노동운동가들의 피와 땀을 통해 우리 사회

의 노동환경이 조금씩 나아져왔다면, 신윤예, 홍성재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방

식으로 꿈을 꾸는 새로운 종류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

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새로운 ‘종breed’이며, 바로 사회혁신가이다. 빈곤과

소외에 대한 문제를 ‘삶의 질’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지역재생의 방법으로 접근

하여, 빠른 경제 성장의 뒤안길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성장의 과실

을 누리지 못한 지역 공동체의 팍팍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그들은

사회혁신가의 길을 가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구조적 문제에 대하여 행위 중심으로 접근하는 변화추구자

이기에,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져올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다음

에서 보다 자세히 그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4) 사회혁신을 위한 변화의 방법과 전략 : 어떻게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1) 변화의 방법 : 구조와 행위

사회적 기업가가 다양한 소셜이슈 속에서 혁신을 이뤄낼 사업 기회의 탐색

을 마쳤다면, 이제 어떻게 변화를 이루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단계이다. 사

회적 기업가는 ‘변화추구자’이다. 사회적 기업가는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

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야 하며, 그러한 변화과정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가운데 실제로 지속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 사회적 기업가가 활용할 수 있는

* Ryszard Praszkier and Andrzej Nowak, Social Entrepreneurship: Theory and Practi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변화의 방법에 대해 사회변동에 대한 이론들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진화론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진화론을 주창한 사회학자인 Spen-

cer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복잡성의 단계가 높아진다고 보았으며, 인간사회가 단

순한 패턴에서 복잡한 구조로 변화하는 진화의 과정을 거친다고 보았다.* 사회

적 기업가는 부조리, 고립, 좌절, 모순된 현실로부터 시작하여 신뢰와 협력에 기

반을 둔 변화 과정을 조직화한다는 점에서, 진화론적 관점은 사회적 기업가에

게 중요한 변동의 관점이 될 수 있다.

변화에 있어서 또 다른 관점은 갈등론적 변화이다. 갈등론적 관점에서 갈

등은 인간에 내재한 속성으로서, 파괴적이거나 건설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고 보았다. 변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며, 건설적

인 갈등을 어떻게 조직화하는 것인가라는 점은, 사회적 기업가가 변화를 추구

하는 과정에서 고려하여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변화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은 ‘사회심리적 변화’이다. 사회는 사람들로 구성되

어 있으며, 사람들의 인식, 신념, 편견, 태도 등은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을 이루

고, 또한,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은 사람들의 신념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

면 사람들의 사고방식mindsets이 변화하는 기제는 무엇일까?

사회심리학적 변화의 기제의 중심에는 ‘일관성consistency’의 요소가 주목할 만

하다. 즉 사람들은 겉으로 나타난 인식의 부조화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내면이

신념을 재구조화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단계의 내적 통합 단계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그들이 도운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을 싫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새로운 변화의 상황이 전개될 때, 그것이

과거의 신념에 위배되더라도, 새로운 상황을 전개함에 있어서 여러 이해관계자

의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사람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체계

* Ibid.

** Ibid.


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인식체계로 재구조화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생각

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통념이지만, 상황의 흐름이 변함에 따라 자신이 믿

고 싶은 것을 믿어버리는 것 또한 인간의 사회심리적인 요소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심리적 변화의 기제는 사회적 기업가가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전략을 수립할 때 도움이 된다.

변화에 대한 다음의 관점은 ‘구조기능적인 변화’이다. 사회적 기업가가 변화

를 추구할 때, ‘구조’에 집중할 것인가? 혹은 사회적 소통, 관계, 기능에 집중할

것인가? 사회적 기업가는 구조와 기능 모두에 주목한다. 즉 변화의 초기단계에

새로운 사회관계를 도입하고, 신뢰와 협력을 증진해나가며 궁극적으로 사회적

구조, 절차, 법과 제도를 개선해나간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사회적 기업가에게 있어서 변화의 방법이 ‘구조’적 접근인지, ‘행위’적

접근인지에 대한 질문은 어느 하나만 선택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회적

기업가는 대개 ‘행위’로 접근을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구조’를 변화시킨다

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소셜이슈 자체가 ‘구조’적이라 할지라도 대개 사회적 기

업가가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은 ‘행위’를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서 출발한다. 또한 변화의 전략을 수립해 나감에 있어, 장기적인 변화의 표적은

구조일지라도, 단기적인 표적은 개인, 집단 등 전략적인 선택을 해나갈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가 다루는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으나, 사회적 기업가

의 실천과 접근 방식은 대체로 지극히 구체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즉 구조적인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정책이나 시

스템을 바꾸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사회적 기업가는 정책담당자나 혁명가

로서가 아닌, 작지만 결정적인critical 실천을 통해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사회문제에 대

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 기업가가 가진 아이디어와 자원을 통해 가

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사회문제에 접근한다. 그 사회문제를 한꺼


번에 해결할 수는 없으나, 작은 한걸음으로 결국에는 큰 변화를 이루어내는 방

식이다. 이를 시스템적인 변화라고 일컬으며, 아쇼카 재단의 비벌리 슈와츠 부

회장은 ‘파장Rippling’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즉 사회적 기업가의 접근방식은 작

은 물방울이 떨어져 점점 파장을 넓혀가는 것과 같은 변화의 단초가 되는 실천

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불평등한 대중의 문화적 향유와 소비에 대한 문제에 주목하는 사

회적 기업 위누를 보자. ‘위누’는 어릴 때부터 예술을 지속적으로 접해온 허미호

대표가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스스로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향유

한 예술적 안목과 취향이라는 자산을 활용하여 평등한 문화적 소비라는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관련 사례: 위누).

문화 관련 사회적 기업가 중에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는 곳들이 종종 있

는데, 기실 문화가 진정한 ‘다양성’과 ‘취향’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불평

등을 낳는 경제적, 정치적인 조건들 자체가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기업

이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해결방식은 사회구조를 평등하게 하기 위

해 사회를 전복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문화가 소비되는 시장에서 예술가를 노

동자로 인식하고 이들이 소비되는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넓히고, 또 대

중들이 이들을 가깝게 하는 장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냄으로써, 대중의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가고 있다.

(2) 사회적 기업의 혁신체제

사회적 기업가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새로운 문제해결이나 대안적 가치를 제

시하는 일은 ‘혁신적 사업모델’을 통해 구현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

* Beverly Schwartz, Rippling: How Social Entrepreneurs Spread Innovation Throughout the

World (Jossey-Bass, 2012).


| 사례 소개 : 위누 Weenu |

문화예술 전시 기획 대행과 예술교육 서비스 제공, 온/오프라인 예술 콘텐츠를 제

작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일상생활에서 예술 작품을 즐기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누

릴 수 있는 대중적 시장을 형성해, 신진 작가들의 판로를 넓혀 소득을 증대하는 한

편, 예술 영역에 대한 대중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을 소셜 미션으로 삼고 있다.

대중과 예술의 접점을 좁히기 위해 중저가 예술 컨텐츠 시장을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를 위해 유통마진이 없어 10만 원 이하의 작품이 거래되는 예술품의 직거

래 축제인 ‘헬로 문래’ 페스티벌, 대중의 예술에 대한 이해와 참여를 높이기 위한 ‘헬

로 아티스트’, ‘아트업 페스티벌’, ‘미술관 데이트’, ‘수상한 아트캠프’ 등의 프로그램

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부천문화재단, 서울시 등의 지자체 및 주요 대기

업과 협력하여 문화예술 작품의 유통과 체험의 장을 넓혀가고 있다.

2007년 설립하여 ‘예술 DIY KIT’(예술작품 만들기 Tool Kit) 사업 이후 본격적으

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였고, 2012년 Asian Social Entrepreneurs Summit의


가에게는 ‘창의적 사고력’이 중요한데, 창의적 사고력Creativity은 주어진 문제나 현

상에 대해서 기존과는 다른 접근과 유연한 사고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

하는 문제 해결의 새로운 단서를 찾아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서 혁신성이란

새로운 제품, 서비스, 기술적 프로세스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 참신

성, 실험, 창조적 과정을 지원하는 기업의 성향*으로, 데이비드 본스타인은 사회

적 기업가란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다고 정의한 바 있다.**

아쇼카 재단도 사회적 기업가의 중요 자질로 무엇보다 새로운 아이디어A New

Idea를 강조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해결안solution이거나 아니면

이를 고안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접근approach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하고,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가라면, 목표와 비전 설정뿐만 아니라 그 비전을 현실화하는 수준

에서도 역시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의적 사고력’은 근본적인 측면에

서 문제의 원인이나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틀 밖에서 여러 각도로 새로운 옵

션과 가능성을 탐색하여 상황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능력으로, 주어진 가

이드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내고 과제에

* 최지원, 김준기, “사회적 기업가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 『지방정부연구』 18, no.1 (2014)

** David Bornstein, 『사회적 기업가와 새로운 생각의 힘』, 박금자, 나경수, 박연진 역(지식공작소, 2013).

*** 아쇼카 재단의 Ashoka Fellow 선발 기준: ‘새로운 아이디어’(A New Idea), ‘창의성’(Creativity), ‘창업

가적 자질’(Entrepreneurial Quality) ‘사업 아이디어의 사회적 영향력’(Social Impact of idea), ‘윤리

적 기질’(Ethical Fiber). http://edit.ashoka.org/support/criteria

SE Start 10 선정, Red Herring Asia Top 100 Finalist에 진출한 바 있다. KAIST 사

회적 기업가 MBA를 통해 현재 사업을 온라인 환경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사업 확

장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 중에 있다.


대한 그림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정부나 시민사회가 담당해오

던 사회문제를 시장 안에서 해결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에게, 혁

신성은 이러한 모순된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출발점이며, 이는 창의적 사고력

에 기반을 둔다.

Greg Dees는 종래 혁신의 경우,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의 발명에서 시작되

곤 했으나, 사회적 기업가의 경우 본인 스스로 발명가가 될 필요는 없으며, 오히

려 다른 사람들이 발명해 놓은 것들을 창의적으로 적용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창의성’의 영역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즉 혁신의 방법과 연관된다. 이에 '혁신성'을 중요한 키워

드로 하고 있는 기술연구의 지적자산인 ‘혁신체제’를 통해 사회적 기업가의 변

화에 대한 전략 수립에 적용해보기로 하자.**

기술학Technology Studies에서 '혁신체제'란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고 개량하며 확

산시키기 위하여 활동하는 공공 및 민간 부문 조직들 간의 네트워크이며 기술

혁신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체들의 집합”***이다. 혁신체제는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특정사회의 기술적, 사회적 요소들을 포괄하며, 특정 기술의 혁신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목적과 관심이 교차하는 장으로서 특유의 ‘동학dynamics’

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술시스템의 진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을

‘시스템 건설자system builder’ 혹은 ‘기업가entrepreneur’라고 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사회

* Dees, J. Gregory, The Meaning of “Social Entrepreneurship” (2007).

** 강민정, “‘사회적 기업 혁신체제’ 접근을 통한 사회적 기업 연구경향 분석,” 『한국비교정부학보』 18, no.

1(2014).

*** Richard Nelson and Nathan Rosenburg, “Technical Innovation and National Systems”,

Nelson, R.(ed), National Innovation Systems: A comparative Analysis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 Thomas P. Hughes, “The Electrification of America: The System Builders,” Technology and

Culture 20 no.1 (1979).


적 변화의 시스템 빌더로서, 사회/기술 창조 시스템 빌더로서의 기업가에 더하

여 ‘사회 혁신가’를 결합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기술연구의 지적 자산 중에서도,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Social Shaping of Technologies’

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기술 개발과 전파에 있어서 ‘사회기술적 구성요인socio-

technical constituents’은 사회적 기업의 혁신과정을 이해하고 혁신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기술적 구성 요인에서 제시한 문제의식과 분석

틀은, 사회적 기업의 혁신적 접근이 형성되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데, 이해관계자의 목적과 담론이 상호작용하는 ‘조정alignment’ 과정을 거친다

는 것과, 이와 같은 조정 과정이 ‘조직 간 합의구조Inter-organizational governance’를 변화

시키기도 하고, 조직 간 합의구조는 이러한 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 혁신체제Social Enterprise Innovation System’를 살펴보기 위한 요소는 [그림

1]과 같다. ‘사회적 기업 혁신체제’는 Molina**의 ‘사회기술적 구성요소socio-technical

constituencies’를 응용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기술혁신 연구에서 일반적인 ‘혁신체제’

를 포괄하면서도, 이해관계자들 간의 상호작용과 ‘조정alignment’을 보다 강화한 분

석틀로서, 사회적 기업의 변화에 대한 역동성을 담아내는 분석틀이자 전략 수

립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하다.

‘사회적 기업 혁신체제’는 네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구

성요소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이해관계자의 목적

과 의도Players' Goals & Purposes’는, 사회적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각자가 표방한

목적, 인식, 개념, 사업 전략 등을 의미하며, 이를 반영한 정책, 법제화된 제도

등을 포함한다.

* Robin Williams and David Edge, “The Social Shaping Of Technology,” Research Policy

25 (1996).

** A. Molina, Analyzing European Technology Policy: Networks, Communities, System and

Sociotechnical Constituents, Research Center for Social Sciences (The University of Ed-

inburgh,1993).


[그림 1] 사회적 기업 혁신 체제(Social Enterprise Innovation System)

이해관계자의

목적과 의도

(Players' Goals &

Purpose)

• 이해관계자 각자가

표방한 목적, 인식,

개념, 사업 전략 등을

의미하며, 이를 반영한

정책, 법제화된 제도

등을 포함

• 사업 모델 사례,

전략적 제휴 형태,

성과측정 방법

• 사회발전 방향

• 특정기술이나

사업과 경쟁 혹은

협력하게 되어

통합적 발전을

가져오는 관계

• 개인 간, 그룹

간, 기업 간에

이루어지는 행위,

관계, 상호작용,

교환, 갈등 등을

지배하는 규칙

사회발전 경향과

표준 (Social

Trends and

Standards)

타 분야와의

경쟁과 협력

(Competing &

Collaborating

Constituents)

조직 간 합의

구조 (Inter-

organizational

Governance)

‘타 분야와의 경쟁/협력 관계Competing & Collaborating Constituents’는 특정 기술이나 사

업 영역과 경쟁 혹은 협력하면서 통합적 발전을 가져오는 관계에 주목하며, 이

는 기술연구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부분인데, 사회적 기업 관련하여서는 인

접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타 분야에서 사회적 기

업적인 접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등의 내용이 해당하게 된다.

사회적 기업은 정부정책, 시민운동 등 기존에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들과 협

력적 혹은 경쟁적 관계 속에서 상호 작용을 통해 진화해나갈 것이다. 사회적 기

업이 발전하게 되면서 이를 둘러싼 각종 이해관계들이 산업표준화를 통해 표출

되고, 이는 또한 사회발전 방향과 관련이 있다. 이를 ‘사회발전 경향과 산업표준

Social Trends & Industrial Standards’으로 개념화하였으며 여기에는 사업 모델 사례, 전략적

제휴 형태 등을 포함하며,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줄 사회문화적 자


산과의 결합이 고려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직 간 합의 구조Inter-organizational Governance’는 개별기관의 전략적

입장, 드러나지 않은 규칙과 합의 등을 뜻하며, 특정 산업이나 기술 개발과정에

서 일어나는 개인 간, 그룹 간, 혹은 기업 간에 이루어지는 행위, 관계, 상호작

용, 교환, 갈등 관리 등을 지배하는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규칙legislation과 합의

consensus로서, 특정 산업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 자

체가 생성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 혁신체제’는, 개별 사회적 기업의 사후적인 형성 과정을 분석하

는 데 있어서도 유용한 분석틀이 되어줄 수 있고, 사회적 기업의 실천 전략 수립

을 위한 입체적인 환경분석과 조정 전략 수립의 틀로서도 유용하다.

(3) 사회적 기업가의 꿈과 합리성의 변증법

사회적 기업가가 이루고자 하는 미래와 현재 시장의 ‘수요’ 사이에는 격차가 존

재한다. 어찌 보면, 바로 이러한 격차 때문에 사회적 기업가의 변화를 위한 실천이

필요한 것인데, 우리는 종종 사회적 기업가의 사업 모델을 평가할 때, 시장과 수요

를 고려한다. 여기서 현재의 시장 상황을 놓고, 사회적 기업가가 제시하는 미래의

사회적 혹은 경제적 가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가가 지향하는 변화의 ‘

상’이 미래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은 논의일 수 있다. 이는 통상적인 ‘

수요예측’의 한계이기도 한데, 사회적 기업가는 지향하는 미래와 현재 시장의 수요

사이에서 어떻게 그 격차를 메울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과 닮

*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새로운 시장과 가치(value network)을 창조해 내는 혁신의 유

형을 개념화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로서,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 크리스텐슨 클레이튼(Christensen M.

Clayton)의 『혁신가의 딜레마』에서 주로 다루어졌다(Clayton, 1997). 기존 시장과 고객층에 영향을 미

치지 않고 제품과 서비스의 성능 향상에 초점을 맞추는 지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달리, ‘


아 있다. ‘파괴적 혁신’에서의 마케팅 전략은 현재의 ‘필요’에 근거한 수요조사 결

과와 같은 수치를 보기보다는, 사람들의 ‘행위’에 집중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

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해석하고 그들의 ‘생활세계’에 적용시킬 것인지를 해석한다.

사회적 기업가가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합리성의 영역이기보다는 사

회적 기업가의 미래에 대한 꿈에 대하여 어느 정도 공감하는가의 문제이며, 사

회적 기업가가 향해가는 미래의 어떤 지점에서 혹은, 당장 일어날 수 있는 ‘혁신’

과 ‘실천’을 통해 조금씩 검증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를 혁신과 실천의 과정 속에 변화된 결과의 영역으로 놓고, 어느 정도를 ‘합리성’

의 영역으로 놓을 것인가? 현재의 시장상황이 ‘합리성’의 영역에서 평가받는다

면, 사회적 기업가가 이루고자 하는 미래는, 그 꿈에 공감하고, 사회적 기업가의

열정과 헌신을 지지함으로써, ‘공감’과 ‘결단’이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사회적 기업가의 창업을 도우면서, ‘꿈’과 ‘합리성’의 격차에 대한 고민에 많

이 부딪치게 된다. 어떨 때는 사회적 기업가에게, 시장에서 검증이 어려운 황당

한 모델을 들고 와서 어떻게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내

가 과연 이 사람의 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내적

인 갈등을 겪곤 한다. 반면 사회적 기업가가 ‘꿈’에 열중하여,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행할 수 있는 분석, 즉 합리성의 영역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기

업이 현실세계에서 수행해야 할 작업을 충실하게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

책임함의 소산일 수 있다. 즉 사회문제 해결이나 새로운 가치 제안을 위해 사회

적 기업가는, 자신의 꿈을 ‘기업’의 방식으로 풀어가겠다는 선택을 한 이상, 자신

이 제안한 ‘혁신성’이 시장에서 구현된다는 점을 최대한의 합리적 분석을 수행

하여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파괴적 혁신’은 ‘시장의 기저(bottom of market)’에서 기존의 시장 경계선을 파괴하며 새로운 시장을 창

출한다. 저가의 표준화된 자동차 보급으로 대중교통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킨 포드(Ford)의 T 모델이 ‘파

괴적 혁신’의 대표적 예로 거론된다.


문제는, 사회적 기업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혁신성의 영역이라는 것이 사회

적 기업가의 꿈이 이루어져 있을 상황을 상정하고 그 상정된 ‘상’이 이루어지도

록 실천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성 검증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시장성은 현

재의 고객에게서 확인될 수 있지만, 사회적 기업가의 꿈은 그 혁신이 이루어진

이후를 상정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완벽하게 검증해가기가 어렵다.

요컨대 사회적 기업 창업에 있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의 가치는 현실의 합리

성의 벽을 뛰어넘는 그 무엇임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사발전은 보다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꿈을 꾼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과 실천 속에서 이루어

져 왔으며, 그 무모한 도전을 발판으로 법과 제도가 바뀌고, 정치와 경제 시스템

이 바뀌게 된 것을 우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경험해 오고 있지 않은가.

(4) 사업 기회탐색과 최종판세(Endgame)

사회적 기업가는 이루고자 하는 미래의 상을 먼저 상정하고 그것을 향해 간

다는 점에서 합리성, 즉 현재 상태의 지식에 근거하여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특성에 따라 ‘혁신’의 선택이 다수의 연결된 네트워크상에서 이

루어진다는 ‘최종판세Endgame’ 이론*을 통해 최대한의 합리성에 다가가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자.

사회적 기업가가 상정하는 미래는 혁신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미래에 대한 상

이며, 목표로 하는 시장 결과에 대한 예상이 담겨 있어야 한다. 즉 ‘최종판세’가 담

* 미국의 전략컨설팅 회사 Monitor의 바스카르 차크라보티(Bhaskar Chakravorti)가 혁신적인 제품이

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수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저서 『혁신의 느린 걸음』

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시장에서 경제 주체들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혁신적 제품(또는 서비

스)의 수용 여부에 대한 선택에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의 참가자들은 각기 자기 이익을 위해 행

동하고, 동시에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종의 역동적 정지상태인 ‘균형 상태’

가 형성된다. 혁신가는 특정 균형상태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깨트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Chakravorti, 2005).


겨 있어야 한다. 대개의 기업들은 과거의 사례를 응용하거나, 시장조사로 얻은 지

식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은 미래의 상을 먼저 설정하고, 이

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선택해나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최종판세 이론은, 기

술혁신을 시장에 구현하기 위해, 시장에서 잘 먹힐 것 같은 상품이 무엇인지를 고

민하기보다는, 먼저 기술과 상품을 상정하고, 특정 기술이 채택되는 판을 조성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즉 일반적으로 기업은 신규사업의 시장 기회를 발견하

기 위해, 소비 트렌드를 조사하고 환경분석을 통해 현실가능하고 수익성이 있는

사업을 선택하게 된다. 사회적 기업가는 이런 점에서 사뭇 다른 경로를 거치는데,

사회적 기업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최종판세’를 먼저 상정하고, 그 최종판세

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그 방법을 실천하는 가운데 방법의 유효성이

검증되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종판세’ 이론에서 전제로 하고 있는 점은 ‘혁신이 시장에 늦게 확산되는

원인은 경제주체들 간의 상호연결성’이다. 즉 상호연결된 세상에서 혁신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려면, 여러 참여자의 행동이 체계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혁신가

는 그런 변화를 ‘조직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때 특정 기술

을 수용하기 위해 네트워크 전반에 걸친 원하는 속도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

한 ‘조정’ 전략을 함께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참가자들의 행동과 선

택을 이해해야 한다. 혁신이 시장에 도입되는 과정은, 혁신이 시장에 도입되었

을 때의 최종 모습(최종판세)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 모습에서 출발해서 현재의

균형상태를 깨뜨리고 시장을 새로운 최종 모습으로 몰고 가기 위한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혁신을 위한 성공전략은 현상 유지 상태에서 다수의 행동

에 변화를 일으켜서 새로운 균형상태, 즉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가는 것

이며, 이것이 ‘최종판세’를 먼저 상정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최종판세론에서 혁신전략은, 첫째,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은 상황, 혁신이 시장에 도입되고 난 후의 상태를 확실하게 예측하여

미래의 결과를 명백하게 그려내야 한다. 즉 개별 참여자의 선택이 종합되는 형

태로 그 결과를 상상해보고, 선택의 실현가능성 및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판단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거꾸로 되짚어, 실현 과정에서의 프로그램이나 행위

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적절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혁신가의 초기 선택은 예측되는 미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그

선택이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이론은 상당히 실천적이고 변

증법적이다.

두 번째 핵심은 기존 시장의 현상유지 상태를 깨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가는 가장 효과적인 개입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셋째, 혁신가는 네트워크 내 모든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

에, 영향을 확산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해줄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을 하자

면, 선택을 함과 동시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혁신가는 확실

한 최후의 승부수를 던질 때와, 더 많은 정보가 모이기까지 결정을 유보해야 할

때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최종판세론’에서 혁신전략의 수립과정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 목표로 하는 시장 결과에 대한 예상을 포함한, 원하는 최종판세의 모습

을 명확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략이 선택된다.

• 단절화된 네트워크에 혁신가의 영향을 확산시킬 메커니즘을 고안해야 한다.

• 핵심적인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참여자들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전술

이 필요하다.

•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략이 수립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어떻게 어느 정

도의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5) 소셜 미션의 수립

사회적 기업가는 앞에서 살펴본 다양한 소셜이슈에 대하여 비판적 상상력

을 통해 사회 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대안과 혁신

을 통해 이루어내고자 하는 미래의 상을 설정한다. 또한 이러한 미래의 상을 달

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과 밀접

한 관계를 지닌다.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 수립에 앞서 사회적 기업가는 앞에서

진행한 모든 작업을 통합하여 간단하고 명쾌한 ‘소셜 미션’을 수립하여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은 비즈니스 모델로 구체화되어 밀접한 상호 관계

속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초점이 명확한 소셜 미션은 조직 구성원들의 동기부여

에 효과적이며, 창업뿐만 아니라 조직운영과 사업확장 시에 명확한 의사결정 기

준을 제공함으로써, 목표 달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게 한다.*

소셜 미션social mission, 즉 사회적 소명의식은 일반 영리기업의 창업가와 사회적

기업가를 구분 짓는 핵심적인 차이점으로, 사회적 기업가의 존재 이유이자 중

요한 활동 역량이다. 소명의식은 개인이 자신의 일에 대해 가지는 인식 중 하나

로, 일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을 깨닫고, 그 속에서 의미와 목표를 추구하며, 그

로 인해 사회의 공공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또한 수익창출에 대하여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에서, ‘소셜 미션’은 사회적 기업가의 핵

심 역량이자 존재이유가 된다.***

* Kim Jonker and William F. Meehan III, “Mission Matters Most,”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Feb. (2014); Raymond Fisman, Rakesh Khurana and Edward Martenson, “Mission

– Driven Governance,”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Summer (2009).

** Bryan J. Dik and Ryan D. Duffy, “Calling and Vocational work: Definitions and prospects

for research and practice”, The Counseling Psychologist, 37 (2009).

*** James Austin, Howard Stevenson and Jane Wei-Skillern, “Social and Commercial En-


‘소셜 미션’은 특정 비전에 대한 의식 차원을 넘어,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통

찰하는 능력과 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의지’를 의미

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소셜 미션에 대한 명확한 상像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

한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접근하여 풀어나갈

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으며, 애초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적 시스템을 이해하

고 이를 바꾸기 위해 문제의 이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Greg Dees는 사회적 기업가를 ‘사회적 소명missions’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가

적 혁신성과 추진력을 겸비한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a Rare Breed로 규정했

다. 사회적 기업가는 기업가entrepreneur에 대한 세이Say와 슘페터Schumpter, 드러커

Drucker, 스티븐슨Stevenson의 개념적 정의의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존재

로서, 일반적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사명을 다하기 위해 가차 없이 새로운 기회

를 활용하며, 지속적으로 혁신을 추구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적극

적으로 학습 과정에 참여하는 특징을 보인다. 현재의 자원에 제약되지 않고, 대

담한 행동을 구사하며, 이룬 성과와 그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의 책임

감accountability을 지닌다.* 다만 사회적 기업가는 사적 가치private value가 아닌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으며, 이를 통해 사

회의 체계적 변화systemic change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가와 차이가 있

trepreneurship: Same, Different, or Both?,” Entrepreneurship Theory and Practice 1, no.22

(2006).

* 프랑스의 19세기 경제학자 세이(Jean Baptiste Say)는 기업가(Entrepreneur, 起業家)를 경제적 자원

을 이동시켜 더 높은 생산성과 산출량을 이루는 사람으로 정의했고, 20세기 경제학자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기업가를 자본주의의 발전을 추동하는 창조적 파괴를 이끄는 혁신가(innovator)로 정

의했다. 이후 드러커(Peter Drucker)는 기업가를 변화 자체를 주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환

경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는 사람으로 정의했고, 하워드 스티븐슨(Howard

Stevenson)은 기회 포착 시 보유 자원에 제약되지 않는 기업가들의 독특한 역량에 주목했다(Dees,

J. Gregory. 2001. The Meaning of "Social Entrepreneurship”. http://www.caseatduke.org/

documents/dees_sedef.pdf)


다. Martin and Osberg(2007) 역시 Greg Dees와 마찬가지로, 역량(또는 자

질, characteristics) 면에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서 말하는 성공적인 기업

인들과 사회적 기업가가 다르지 않지만, 기존 사회제도 또는 시장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치 창출value proposition을 대규모large-scale로 실현하여 사회 전

체의 개선 또는 사회 변화적 혜택transformational benefits의 확산을 의도한다는 점에서

일반 영리기업가들과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가의 간단하고 명쾌한 ‘소셜 미션’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앞에서 다뤄진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 탐색의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통합하여 정리해보기로 하자.

내가 주목하는 사회 문제 혹은 새로운 대안적 가치에 대한 정의와 분석

먼저 주목하는 사회문제를 정의한다. 사회문제의 정의란, 이 세상의 많은

사회적 이슈와 현상들 중에서, 특별히 특정 사회적 기업가의 주의를 끄는 문제

이다. 그러한 점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가치판단과 가치관련’**이 적용된다. 사회

적 기업가가 사회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이 동원된다. 즉

하나의 사회 현상을 문제로 정의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왜 문제이며 주목할 만

한 것인가에 대하여 설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사회문제를 ‘

분석’하여야 한다. 주목하는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

회적 기업가는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게 된다.

* Martin and Osberg(2007)는 사회적 기업가정신의 개념 정의를 보다 엄밀히 규정하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 행사라는 간접적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운동가(Social Activist)와, 시스

템 차원의 영향력 파급 효과가 적은 지역의 소규모 사회복지 서비스 제공형 기관/단체(Social service

providers)들은 사회적 기업가정신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봤다.

** 본 책 제1장 2.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방법론 – 사회적 기업가의 가치관련 참고.

*** 본 책 제1장 2.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방법론 – 사회적 기업가의 상상력 참고.


사회적 기업가는 실천가이다. 그 문제의 전문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

가이기 때문에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처음에 사회적 기업가의 주목을

끌었을 당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동기에서 출발했을지 몰라도, 그 주제가

사회문제라는 것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전문서적을 읽고,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며,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

하여 객관화된 문제의식을 정립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

는 자신이 주목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관심이 아닌, 객

관화된 사회문제로서 대내외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기존 접근 방법과 한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

사회문제가 정의되면 그 다음 단계는, 사회적 기업가가 주목하는 사회문제

에 대한 기존 대안, 접근방법을 찾아보는 일이다. 특정 사회문제에 대하여 기존

정책, 시민사회, 시장 등에서 어떤 노력이 있었고 그것이 왜 실패, 혹은 부분적

으로 성공했는지를 밝힌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기업가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에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 아이디어가 의미 있는 아이디어

인지, 과거에 이미 적용되었던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 살펴보려면, 이전에 시

도되었던 다양한 문제해결 방법에 대하여 사례연구 등을 진행하여야 한다. 그

것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자신의 방법이 가진 독창성에 대하여 설득력 있게 소통할 수 있다. 그리

고 이러한 배경을 통해서, 사회적 기업가가 창출하는 가치가 보다 명확해진다.

사회적 기업은 대개 정부의 정책 실패나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다뤄지기 힘

든 분야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접근 방법으로 성공하게 되는 경우라고 이

야기한다. 그렇다면 특정 사회문제에 대하여 정부 정책은 어떤 접근을 하였고,


어떤 이유에서 실패했는지, 혹은 일정 부분이라도 성공한 부분은 없는지에 대

해 살펴보아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 개인이 아무리 문제라고 느끼더라도, 그 부

분이 정부 정책의 영역에서 이미 상당 부분 성과를 이룬 부분이라면, 사회적 기

업가 개인의 힘으로 행하기 힘든 영역이라면, 이 시점에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주목하는 사회문제에 대하여, 시민운동 분야에서는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시민운동의 역사적

성과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결

코 쉽지 않은 일임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고, 본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

에 대해 어떤 겸손함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국내외 사회적 기업들의 접근 방법의 문제점과 배울 점에 대한 분석

그 다음에, 같은 사회적 기업 중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곳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다. 해외와 국내를 막론하고 사회 혁신적 접근은 최근 들어 많은 성

과를 내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는 해외에서 시도된 방법에 대해서 국내에 적용

하는 과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영국에서 노숙자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인

<빅이슈>를 국내에 도입한 <빅이슈 코리아>가 그 예이다. 그리고 국내의 사회적

기업들이 시도한 방법들을 살펴봄으로써, 자신이 거기에 더해 어떤 혁신적 방법

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은, 자신이 가진 혁신성이 다른

선각자들에 비해 어떤 혁신성을 보태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각의 과정이다.

나의 사회혁신 아이디어 제안

이러한 바탕 위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제

안한다. 즉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적 접근’을 제안하는 과정이다. 대개 이 과정은


| 사례 소개 : 빅이슈 코리아 |

<빅이슈Big Issue>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 잡지로, 홈리스(Home-

less,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자활 계

기를 제공한다. 폴 매카트니, 데이비드 베컴, 조앤 K. 롤링 등 영국의 유명인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지며, 2014년 현재 세계 10개국에서 14종이 발행되고 있다.

<빅이슈 코리아>는 지난 2010년 홈리스 자활을 지원해 온 비영리단체 ‘거리의 천

사들’이 발행하기 시작했다. 홈리스가 스스로 판매원이 되기로 결심하면, 2주간

의 임시 판매원 기간을 거쳐 정식 판매원이 될 수 있다. 권당 5,000원인 잡지를 1

권 판매하면, 판매가의 50%(2,500원)이 판매원에게 돌아가고, 6개월 이상 판매

하고 꾸준히 저축을 하면 임대주택 입주자격이 주어진다. <빅이슈 코리아>에 따르

면, 2014년 4월 기준, 총 30여 명이 임대주택에 입주했고, 13명의 빅이슈 판매원이

<빅이슈>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앞의 모든 단계를 수행하고 나서 다음 단계에서 진행되기보다는, 위의 과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도 때도 없이 사회적 기업가의 경험과 뇌리를 스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회적 기업가들은, 사회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이미 자신은 이런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아이디어의 단초를 가

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단초는 이후에 진행되는 지난한 분석과 검증을 통해

‘혁신적 방법’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사회

적 기업가가 자신의 방법이 혁신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여기서, ‘혁신적 아이디어’ 자체를 다듬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보다

는, 이 자체가 지난한 작업이며,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에서는 ‘소셜 벤처

아이디어 창출’이라는 별도의 과목을 통해 학생들의 아이디어 창출 과정을 도

와준다.*

사회혁신 방법의 제안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마무리되는데, 이러한 혁신 방

법이 시민운동에서 제안이 되었다면, 그 다음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전략과 전

술로 넘어가는 반면, 사회적 기업가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혁신적 사업모델’ 수

* 박재환, 『사회적 기업가를 위한 디자인 접근법 Design Thinking』 (서울:에딧더월드,2015 출간예정) 참조

<빅이슈 코리아>는 홈리스에게 합법적인 일자리 제공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돕고,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서울발레시어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지자체와 기관과

의 협약을 통해 홈리스 인식개선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홈리스월드컵, 홈리스발레

단, 홈리스밴드, 홈리스합창단 등의 활동을 통해 홈리스의 사회 정착을 돕고 있다.

지난 2010년 서울시 사회적 기업 인증을 거쳐, 2013년 고용노동부 사회적 기업으

로 등록되었다.


립으로 그 다음 단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셜 미션을 간단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도출된 내용은 ‘무엇을 어떤 방법을 통해 변화시켜, 어

떤 사회적인 임팩트를 낼 것이다’라는 구조로 정리하여 간명한 소통이 가능하

도록 한 것이 ‘소셜 미션’이다.

‘주목하는 사회문제의 정의 → 문제 분석 → 이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법에

대한 분석 → 사회적 기업가의 사회혁신 방법 제안 → 소셜 미션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의 과정은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 수립 과정의 단계이며, 사회적

기업가가 외부에 자신의 미션을 소통하는 방법이자, 사회적 기업가의 사업계획

서가 일반적인 벤처기업의 사업계획서와 차별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소셜 미션이 위와 같은 내용을 통해 내용적으로 체계를 갖추었다면, 사회

적 기업가의 사업계획서는 이미 반 이상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제 혁신

적 비즈니스 모델 수립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번 강조하지만, 혁

신적 비즈니스 모델 수립의 단계에서 소셜 미션의 세부 사항은 끊임없는 재검토

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금까지 소셜 미션 수립을 목표로 한 긴 여정을 ‘소셜이슈 분석과 기회탐색

방법론’을 통해 함께하였다. 다음 장에서는 사회적 기업가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소셜이슈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기업가로서 사회혁신의

가능성을 탐색해보기로 하자.

* KAIST 사회적 기업가 MBA의 소셜이슈 분석 및 기회탐색 과목은 ‘소셜 미션 수립하기’라는 별도의

Co-Curriculum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소셜 미션을 명확하게 해나가는 과정을 워크숍

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동료들 간의 상호 피드백과, 전문가의 집단 멘토링이 이루어지

며, 학생들은 자신의 소셜 미션을 명확하게 하는 과정을 한 한기 동안의 여정을 통해 경험하고 명확한

‘소셜 미션’이라는 성과를 제출한다.

한국사회 소셜이슈의 이해와

사회적 기업의 사업기회

제2장

2-1. 도시화와 주택문제 | 107

1) 한국의 경제성장과 도시화, 주택문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식민지 기간과 전쟁 등

으로 피폐해졌던 한국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는

데, 그 성장 속도는 그야말로 ‘압축 성장’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1962년부터

정부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통해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했고, 1990년

대 초까지 일부 예외적인 때를 제외하고는 연 평균 8% 이상의 경제성장을 30년

가까이 지속했다. 그 결과 한국은 2010년 무렵, 수출액만 놓고 보면 세계 7위 국

가이며, GDP 총액은 세계 15위이다. 1인당 GDP는 세계 33위인데, 물가수준을

감안한 구매력 기준 GDP는 세계 22위에 달한다. 그 덕분에 한국은 해외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OECD 개발원조 그룹에 속한 나라가 되었으며, 이른바 G20 국

가의 일원이 되었다. 한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이나 국민소득 증가율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깨어지지 않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1

도시화와 주택문제

김수현 • 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그런데 자본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한국의 경제성장 비결은 무엇

이었을까? 학자들 사이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저렴하고 풍부한 양질의 노

동력, 성공적인 수출주도 전략, 유교적 사회관계, 권위주의로부터 민주화로의

적절한 이행, 중화학 공업 등 국가주도 성장기반 형성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

런데 이 중 주택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볼 문제는 바로 ‘저렴한 양질의 노동

력’이다. 즉, 농촌에 산재된 노동력들이 산업생산지(=대도시)로 모일 때만 실제

로 ‘저렴한’ 노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경제성장

역사는 곧 도시화의 역사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도시화는 급격히 진행되

었고, 특히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1990년까지 30년간 연 평균 약 28만 명씩 인

구가 늘어날 정도였다. 그 결과 수도권 집중률은 현재 OECD 국가 최고 수준으

로, 전국 인구의 약 50%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 정부주도로 주요 거점(=대도시 또

는 공업단지)에 산업기반을 조성하고, 농촌지역의 풍부한 노동력을 도시로 유

인pull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런데 도시화와 대도시 인구집중은 곧 심각한 주택

문제를 예고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더구나 도시유입 인구들은 농촌의 가난으

로부터 밀려날push 정도로 생계기반이 취약했다. 이들은 대도시에서 주택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리나라의 정부 주도 경제성장 전략은 철저하게 효율성에 중점을 두었다.

사회적으로 축적된 자본이 희소한 상태에서, 정부가 주도하여 도입한 외자는

산업생산과 수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주택도 그중

의 한 분야였다.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집중으로 대도시,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만성적인 주택부족 상황이었지만 주택부문에 대한 사회적 투자는 극히 제한되

어 있었다. 심지어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주택부문에 대한 은행대출이

자유롭게 될 정도였다. 그 이전까지는 주택부문에 대한 자금 대출이 실질적으

로 정부 당국의 통제 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 저소득층들이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였

다. 바로 개발도상국가에 만연해 있던 무허가 정착지(판자촌, squatter settle-

ment)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960년부터 30년간 서울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루에만 약 200호의 집이 추가로 필요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공급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구적인 방법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초부터

판자촌은 이농민들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주거확보 방안이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서울 도심 인근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판자촌들은 1960년대부터 신규

이농민들과 함께 더욱 확대된다. 이농 청년들이 곧 저렴한 도시 노동력이 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어떻게든 이들의 이촌향도를 뒷받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

부는 이들이 국공유지를 무단 점거해서 거주하는 것을 ‘묵인’함으로써 저소득층

의 주거문제를 완화한 것이다. 특히 1970년을 전후한 집단 재정착지 조성 및 철

거이주 정책은 정부가 앞장서서 국공유지에 대한 ‘계획적인’ 점유를 유도한 것이

었다. 그리고 뒤 이은 양성화 정책은 무단 점거를 사실상 합법화하면서 점유의

안정성을 높이는 조치였다. 더구나 1968년부터 71년 사이에는 서울의 판자촌을

일거에 집단적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까지 실행에 옮겨지기도 했다(광주대단지

조성사업 : 현재의 성남시 구시가지).

다음 [그림 2]는 서울시내 판자촌의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1960년대 초까지

기존 도심에 머물러 있었던 판자촌은 1970년대가 되면서 서울전역으로 확산되

었다.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비슷한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 합동재개발사업

이 본격화되면서 2000년대 들어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때문에 1980년대 초까

지는 서울시민의 10% 이상이 판자촌에서 주거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판자촌에서 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반 서민들의 주거사정도 어렵기는 마찬

가지였다. 인구 및 가구증가에 비해 더디기만 했던 주택공급 때문에, 1970년대


[그림 2] 서울시내 판자촌의 분포

자료 : 김수현, 1996, 「한국 공공임대주택의 전개과정과 성격」,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87-88쪽

1950년대-65년

1971년-82년

2000년


1950년대-65년

1971년-82년

2000년

까지 기존 주택에 방 한두 칸을 빌려 세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

려 전체를 세 얻는 ‘독채 전세’는 드문 경우였다. 그러다 1980년대 말에는 집값,

전세 값이 폭등하는 가운데 서민들이 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경

제성장과 도시인구 집중에 따라 집값 상승이 만성화됨으로써 서민들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주택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된다.

또한 경제력에 비해 낮은 주거 수준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주택의 절대적

부족 상황에서 낮은 주거수준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를 추계하기 시작한 199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부터 살펴보면, 이때

까지만 해도 무려 1/3 정도의 가구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에 살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났다. 이후 급속도로 주거사정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면적기준이 이

웃 일본에 비해 두 배나 완화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우리의 주거수준은

열악한 상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10년도 조사에 따르더라도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가 12%에 달할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바로 찾아온 경제양극화와 빈곤층 확

대의 영향으로 극심한 주거 빈곤층이 퇴적되는 것도 주목해야 될 현상이다. 외

환위기 이후 거리 노숙인이 급증하면서 응급쉼터에만 3,000여 명이 상시적으

로 생활하고 있으며, 이른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촌’ 등 비정상적인 주거

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20만 명에 달할 정도이다. 이들 주거유형은 비합법이며

위험한 데 그치지 않고, 주거비 부담 역시 일반 전세주택에 비해 오히려 더 비싸

게 운영되고 있다. 다른 나라 대도시에도 이와 같은 편법적인 불량주거가 상존

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그 사정이 열악하고 규모가 크

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판자촌이 해체된 이후 이를 대체할 수 있

는 저렴주거가 충분치 않았던 데서 기인한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주거문제는 고도 성장기에 사실상 ‘날림’으로 조성

되었던 대도시의 공간구조와 주거환경을 정상화하는 과제이다. 판자촌이 그 대


표적인 사례였지만 서울의 경우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를 거치며

사실상 해체된 바 있다. 그러나 정상적 도시로 개선하는 일은 단순히 판자촌 개

량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 주택부족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과거 단

독주택 지역을 다세대·다가구 주택으로 대량 고쳤는데, 이들 지역의 주거환경이

현대 도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주차 공간, 녹지, 공공시설 등은 물론

이고 반지하 주거공간까지 상존하고 있다. 이들 지역 대부분이 현재 뉴타운 지역

으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공공지원 없이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원거주민 재정착이라든가 저렴주택 멸실에 따른

전월세 값 상승 등이 특히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 부동산 불패론과 주택정책

(1) 만성적인 주택가격 상승과 ‘부동산 불패론’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과 급격한 도시화는 하나의 짝이었다. 즉, 경제성장

을 위해서는 도시화가 불가피했고, 또한 경제성장의 결과로 도시화가 가속화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성한’ 경제성장은 주거, 복지,

인권 등 삶의 질과 관련된 분야와는 균형을 맞추기 어려웠다. 선진국들의 동일

경제단계에 비해 현저히 취약한 복지수준이나 주거수준 등도 그러한 급속성장,

압축성장이 채 충족시키지 못한 사회적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택문제는 높은 주택가격과 주기적인 가격 폭등으로 인해, 사회적으

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대략 10년

주기로 집값이 큰 폭의 상승을 경험함으로써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만연하게

되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현대 부동산 정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967년 부


동산 투기억제특별조치법을 시작으로, 1978년에는 강력한 투기억제책을 담은

8.8조치, 다시 1988년부터 90년까지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종합대책 그리

고 외환위기로 조금 지체되기는 했지만 2000년대 초반의 높은 주택가격 상승

등 대체로 10년마다 가격상승과 그에 따른 집중적인 대책들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동산 투자는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는 ‘부

동산 불패신화’가 사실처럼 수용되기에 이른다. 특히 정부는 주택 및 건설부문

을 통해 경기를 관리하려 함으로써, 평소 집값 잡기에 주력하는 듯하다가도 경

기 하강 국면에는 다시 부동산 경기부양에 의존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이

런 이유 때문에 정부의 주택정책은 경기 상승과 하강기에 따라 그야말로 ‘널뛰

기식 정책’을 반복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처럼 정부의 주택정책이 강온을 반복함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잃기는 했

으나, 이는 앞서 설명한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과정을 감안한다면

불가피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주택의 공급과 배분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애초에 개발이익이 사유화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를 바라는 입

장에서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떻든 이는 토목건축(토

건) 경기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던 경제성장 역사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 주택정책의 현실과 과제

이제 정부의 주택정책을 수요관리, 공급관리, 시장투명화, 주거복지 네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우선 강력한 수요관리 정책은 만성적인 수요-공급

불일치가 존재한 한국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 속

도가 빠르고 그에 대한 국민여론이 민감한 상태에서 정부의 개입은 중요하다.

투기자 세무조사에서부터 양도세 중과, 보유세 강화, 개발이익환수, 대출억제

등 여러 수단이 강구된 바 있다. 그러나 주택시장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이 분


야는 경기상황에 따라 가장 많이 널뛰기를 반복했고, 또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잃은 분야이기도 하다. 실제 시장상황에 따라서는 세계적으로 유

례없이 매우 높은 세율이 적용되기도 했지만, 정작 지속적으로 주택수요에 영

향을 끼치는 보유세 강화라든가 임대소득세 도입 등은 오랫동안 정치적 수사

에 그치기도 했다. 또한 개발이익환수 제도도 1990년 이른바 토지공개념 차원

에서 도입되기는 했지만, 경기상황에 따라 들쭉날쭉 운영됨으로써 사회적 규범

으로 자리 잡는 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대출규제 역시 경기상황에 따른

관리 수준에 그침으로써, 가계나 은행의 건전성을 하나의 규범으로써 구축하

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수요관리 정책은 그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보유세, 양도세, 임

대소득세, 거래세가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원칙을 정하고,

단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그 방향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

다. 또한 주택금융은 상환능력을 고려하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이를 일종의 규

범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세제, 금융상의 원칙이 현실정책에 정착되

는 추세에 맞추어 정부의 시장개입도 일관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기상황에

따른 대응은 필요하지만, 그 정책개입의 진폭에 금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공급관리 정책에는 한국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무엇보다

택지공급의 대부분을 공공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 도입된 택지개발

촉진법은 공공기관에게 민간의 토지를 주택용지로 사용하기 위해 수용할 수 있

는 권한을 부여했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택지공급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최근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른 공영택지가 전

체 주택공급 용지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다. 시장원리에 적합한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공영택지 공급은 한국에서 주택공급을 위한 정부의

가장 강력한 개입수단으로 기능해온 것이다. 또한 청약제도는 신규주택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신규주택 배분 절차를 규정한 것으로 역시


한국적 불가피성이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정부의 직접 주택공급

은 많지 않았지만 택지공급의 공공성을 통해 강력하게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존 시가지 재생을 통한 주택공급은 그 현실적 필요성에도 불구하

고 상당히 왜곡된 형태로 추진되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판자촌 재개발은

이른바 상업적 재개발방식(합동재개발)으로 추진됨으로써 공공의 재정지출은

거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저소득층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중고소득층 주거지

로 바꾸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원거주민 재정착률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사업

과정에서 영세세입자들의 반발이 심각했다. 많은 갈등을 겪은 이후 1991년부터

세입자용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타협하기는 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판

자촌이 해체되고 난 뒤였다. 또한 2000년대부터 시작된 뉴타운사업도 기본적

으로 합동재개발사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종전에 겪었던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2009년 발생한 ‘용산사태’도 같은 맥락에 있다. 결국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태에서 개발이익에 의존한 상업적 재개발사업으로 일관

했기 때문에 겪은 문제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상당기간 부동산 경기침체가 예

상되는 시점에서 기존 시가지 재생사업은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해

답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장투명화 정책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가장 뒤처진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등기부 실거래가 기재, 과표현실화 등을 시행하기 전에

는 전근대적인 ‘다운계약서’ 등이 만연했다. 또한 부동산 관련 통계도 부정확하

거나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등 문제가 있었지만 2005년 이후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임대차 시장은 여전히 불투명하며, 부동산의 거래, 소유, 과세 등에 관

한 통계도 추가로 보완되어야 할 과제이다.

끝으로 주거복지 분야는 뒤늦게 시작했지만, 앞으로 정부가 가장 집중해야

될 영역이다. 비록 대한주택공사가 1960년대부터 임대주택을 공급하기는 했지

만, 국제적인 기준에 합당한 공공임대주택은 1989년의 영구임대주택이 처음이


었다. 그 전까지는 5년이면 분양하는 이른바 장기임대주택이 주종이었으며, 이

는 엄밀히 설명하면 분양조건부 임대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89년부

터 시작된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이후 정권에 따라 몇 차례 등락이 있기는 했지

만, 2000년대 들어서까지 공급이 계속되는 등 현재 OECD 국가 중에서는 가

장 활발하게 공급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 기간 중에는 국민임대주택을 매

년 10만호 가깝게 공급하고 매입임대주택을 도입하는 등, 일부 부작용에도 불

구하고 주거복지 확대라는 정책기조를 정착시켰다. 뒤이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도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서민주택 공급과 공공임대주택 확대라는 기조는 유

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고도성장기 주거문제와 뒤이은 과제들을 생각하면, 주

거복지 정책은 앞으로 그 정책적 중요성이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득수준

에 비해 높은 주택가격과 광범위한 주거취약계층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적절

한 주거를 찾기 어려운 계층에게 공공의 직간접적인 주거제공은 매우 중요한 과

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의 경제위기 이후에 선진국들도 부담 가능한 주택

affordable housing이 정책현안이 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다양한 소득계층이 각각

의 수준에 맞는 주택을 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주

거복지정책은 사회적 기업가들에게는 중요한 영역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이어

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3) 주거복지정책의 과제

(1) 주거복지정책의 종류

주거복지정책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주택정책과 복지정책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복지정책이란 ‘시장에서 필요한 재화를 자력으로 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유효 구매력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따라서

이 두 정책 영역이 결합된 주거복지정책은 ‘시장에서 주거를 구할 수 있는 능력

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이 적절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경제적 능력이 취약하고 고령이나 장애 등

으로 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한 가정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을

종합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주거복지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

는 공공이 직접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민간부

문에 임대를 얻어 생활하더라도 그 비용을 낮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임대료 보

조 정책이다.

공공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public rental housing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비영리의 임대목적으

로 소유·관리·운영하는 주택’을 말한다. 나라에 따라서는 민간 비영리 법인 소유

의 주택이 공공성 높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제3의 유형도 있기는 하다. 누구 소

유든 공공임대주택은 시장 논리가 아니라 공공성의 논리가 크게 작용하는 주

택들이다. 주택건설비 자체에 이미 정부의 보조가 들어가 있기에 원가가 낮은

편이며 임대료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한다. 때문에 시장임대료에 비해서는

낮은 가격으로 임대할 수 있으며 임대기간도 장기거주가 보장된다. 또한 집값이

나 민간임대료가 오르더라도 공공임대주택은 낮은 임대료를 유지할 수 있기 때

문에 시장대응력이 낮은 취약계층들에게 중요한 주거안전망이다. 나아가 공공

임대주택이 풍부한 물량을 가지고 낮은 임대료를 유지할 경우, 민간임대시장의

가격상승 압력을 억제할 수 있는 시장조절기능도 가진다. 이런 이유로 유럽 복

지국가들은 공공임대주택을 복지국가의 상징처럼 생각해 왔다. 한때 공급대상


을 저소득층에 머물지 않고, 중산층 이상까지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이고 대중

적인 주거 수단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물론 1970년대 이후 선진국들의 공공임대

주택은 대개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은 국

민 주거안정의 든든한 발판이 되고 있다([표 2] 참조).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임대주택은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당장 활용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는 거의 유일한 주거복지정책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늦게 시작되기는 했지만, 2013년 말 현재 약 93만 호(서울 약 20만 호)의 공

공임대주택 재고를 확보함으로써 전체 가구의 약 5.5%(서울 6.0%)가 생활하고

있다. 물량 기준으로 세계 7위가 될 정도로 나름대로 성취를 이루었다. 더구나

사업 승인을 받고 공사 중인 물량까지 포함하면 약 120만 호(전체 가구의 6.5%)

로 추정되어, 이들이 모두 건립되면 일본과 비슷한 재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발

전했다([그림 3] 참조).

임대료 보조

공공임대주택이 공급자 중심 정책이라면 임대료 보조제도는 수요자의 선택

권을 존중하는 정책이다. 공공이 직접 건설하고 관리할 필요가 없고 가장 적합

한 주택을 수요자가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보조받은 임대료를 이용

해 주거의 상향 이동을 추구하므로 우량 주택 공급이 확대될 수 있다. 이 때문

에 일찍부터 주거복지정책을 펼쳐온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공공임대주택 재고

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이후 대부분 임대료 보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임대료 보조제도는 기본적으로 소득 중 주거비로 지출되는 액수가 일정 비

율을 넘어설 경우 그 만큼을 보조한다는 개념에 입각해 있다. 예를 들어 한 가

정이 최저 주거 수준을 유지하는 데 소득의 30% 이상 들어간다면 소득을 넘어

서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보조하는 것이다. 이때 과다한 수준의 주택에 살면서


[표 2] 나라별 주택점유형태 분포

국가 명자가 민간임대 공공임대

비고1980 2000 2008 1980 2000 2008 1980 2000 2008

오스트리아 52 52 56 26 18 17 17 23 23

벨기에 59 68 68 33 25 24 5 7 7

덴마크 56 59 53 29 20 19 14 19 19자가에

협동조합소유 포함

핀란드 63 64 66 18 20 15 12 16 16

프랑스 47 55 57 26 24 22 15 18 17

독일 37 44 43 44 48 52 18 8 5 2000년까지는 서독

그리스 70 74 - 27 20 - 0 0 0

아일랜드 76 - - 12 12 - 12 9 -

이탈리아 59 71 69 29 13 15 7 6 4

룩셈부르크 60 70 70 36 26 29 - - -

네덜란드 42 53 58 24 11 10 34 36 32

포르투갈 52 75 - 26 17 - 13 4 -

스페인 73 84 85 21 10 13 - 1 -

스웨덴 58 53 56 22 28 27 20 19 17자가에

협동조합소유 포함

영국 58 69 69 11 10 11 31 21 20

EU-15 평균 57.5 63.6 62.5 25.6 20.2 21.2 15.2 15.1 14.5 미확인 수치는 생략

스위스 34 34 - 60 - - 3 - - EU 가입국 아님

미국 65 67 67 32 30 30 1 1 1

일본 62 61 61 32 30 31 6 7 6

한국 58.6 53.3 54.2 39.4 42.0 38.9 0 1.0 4.2

인구주택총조사를

재계산.

2008년은 2010년

조사 활용

* 기타 점유형태는 생략했기 때문에, 각 국가별 합이 100이 안 될 수 있다.

자료 : 김수현, 2013, “독일의 자가소유율이 낮은 이유”, 「주택연구」, 21(3), 10쪽.


임대료 지원을 요구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적정 주거 수준과 적정 임대료

수준을 행정 당국이 평가해 지원액을 결정하게 된다. 아울러 이 지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바우처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주택시장, 특히 민간임대시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임대료 보조제

도를 도입해야 될 필요성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대도시 지역에서 단독·다가구

주택 등에서 월세로 생활하는 고부담 저소득층에게 임대료 지원이 절실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을 갖추고 있지만, 물량이 너무 적어

서 기회가 돌아오지 않거나 그마저도 임대료 부담이 너무 높아서 포기한 경우

가 많다.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와 그러지 못한 가구 간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몇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완전한 시행이 가능하다. 우

선 저소득층 임대주택 시장이 공급자 우위 시장이 아니어야 한다. 임대료가 불

[그림 3] 공공임대주택 건립 추이

자료 : 국토교통 통계누리(stat.molit.go.kr/portal)에서 재구성

0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0,000

400,000

600,000

800,000

1,000,000

1,200,000

1,400,000

연간 착수

누계


안정하고 수요자가 다양한 주택을 선택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임대료를 지원

하면, 부담을 덜기는커녕 기존 임대료만 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

다. 공공임대주택의 재고가 일정량 확보된 이후 이 제도가 도입된 것도 그러한

상황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득 파악 문제다. 임대료 보조제도는 기본적으로 소득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주거비에 지출하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직 저소득층의 소득 파악이 매우 불완전한 상태이다. 특히 일용직이

나 자영자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소득 자료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물론 저소

득층이 근로소득을 신고하면 그에 상응하는 지원금을 주는 근로장려금이 시행

되고 있지만 아직 자영자는 대상에서 빠져 있는 등 소득 파악 수단으로는 미흡

하다. 전세 제도 역시 서구적인 의미의 임대료 보조제도 도입에 제약 요건이다.

전세 제도는 일종의 자산 개념이 있기 때문에 소득 대비 임대료 지원을 기본 틀

로 하는 임대료 보조제도를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막대한 재원이 소요

되는 것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공공임대주택 건립에 큰돈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임대주택이라는 유형적인 자산이 남는 사업이다. 반면 임대료

보조제도는 사실상 현금을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재원 부담이 지속적으로

생기고 더구나 날로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2) 주거복지정책의 과제

비록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주거복지정책은 지속적으로 발

전해 왔다.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정치, 경제적 변수에 따라 부침이 있기는 했지

만, 계속 확대되어 적어도 현재 개발도상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앞서 가고 있다

고 할 수 있다. 또한 임대료 보조제도나 집수리 사업 지원 등 다양한 주거복지

프로그램들이 운용 중이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시민사회, 정당, 정부 모두


주거복지 확대에 대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주거복

지정책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한 재점

검이 필요하다. 그 과제를 여섯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정책 목표의 명확화

공공임대주택이 유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늘리기가 쉽지 않은 주택이다. 더

구나 이미 선진국들은 공공임대주택을 줄이기 시작한 시점에 사업에 착수함으

로써 너무 높은 땅값, 나아가 아예 구하기 어려운 땅으로 인해 사업이 결코 쉽

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늘릴 것인가? 또한 어느 정도 확보하면 좋을 것인가?

사실 공공임대주택 물량 목표로 거론되고 있는 10%, 20% 모두 과학적 근거

는 없다. 그러면 현재 짓고 있는 물량까지 합해 6.5%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도대

체 얼마를 목표로 하는 것이 맞을까?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몇 가지 분석적인

수치가 있다. 건설교통부, 국토연구원 등에서 국민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가

구 수를 계산한 연구에 따르면 90~150만 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분석 방법마

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전체 가구의 10~15% 정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들

분석은 기본적으로 4분위 이하 서민층 중에서 임대주택을 원하거나 현재 최저

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가구를 수요계층으로 간주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 방법은 한계가 있다. 공급 지역, 입주계층, 공급 방식의 다

양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공공임대주택은 지역별로 요구

사항이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예를 들면 주택보급률이 110% 가까이 되는 지방

도시에서는 비록 빈곤층이 주거문제를 겪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신규 공공임대

주택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기존 주택을 수리하여 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와 함께 대도시 지역에서도 주거문제를 겪는 모든 가정

이 반드시 공공임대주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신 가구라


면 새로 짓는 아파트에 입주하기보다 기존 주택의 방 한 칸을 이용하는 것이 사

회적 자원배분이라는 점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이 직접 땅을 구해서 새로 짓는 주택만 공공임대주택이라고 생각

할 필요는 없다. 다세대·다가구 매입임대주택은 기존 주택을 활용하는 공공임대

주택이다. 또 공공이 독채를 전세 내어 싼 값에 재임대하는 전세(재)임대주택도

있다. 나아가 민간주택과 계약을 맺고 일정 가격 이하로 임대할 경우 지원하는

계약임대주택(준 공공임대주택) 방식도 있을 수 있다. 독일식 사회주택social hous-

ing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민간토지를 활용하여 공공이 주택을 건립한 후 임대

주택으로 이용한 다음 일정기간 지난 후 돌려주는 방식도 있다. 즉 지역여건과

가구특성을 감안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공공임대주택을 지역별, 계층별, 유형별로 세분화

해서 공급 목표를 정해야 한다. 직관적인 구상이지만 이런 방법을 제안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2020년 무렵까지 10%의 가구가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을 확보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 이상 늘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회적 합

의를 거치는 방법이다. 또한 10%를 달성하는 데도 민간부문의 주택재고나 토지

를 활용하는 매입임대주택, 전세(재)임대주택, 계약임대주택 등을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각각 입주대상자를 특성화하고 운영방식도 다원화하는 것

이 중요하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직접 건설보다는 민간부문 재고를 재

활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부 지역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신축을 중단하

거나, 더 나아가 매각을 통해 구조 조정할 필요도 있다. 대신 주택문제가 심각

한 지역에 더 많이 확보토록 한다.

이와 함께 재정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도 필요하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

라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비상식적으로 적게 지출해 왔다. 연

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매년 10만 호를 공급할 때도 연간 1조 원 내외의 중

앙정부 재정만 지출한 것이다. 실제로는 10조 원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을 어떻


게 그렇게 적은 재정으로 해결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사업자인 LH 공사, SH 공

사가 다른 택지개발이나 주택공급 사업을 벌이면서 얻은 수익으로 이른바 내부

교차보조를 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러고도 부족한 부분은 사업자

가 국민주택기금을 빌려서 해결했다. 그러나 이 두 방식이 모두 한계에 봉착했

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교차보

조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국민주택기금도 이미 상환기간이 도래했기 때문에 추

가 대출여력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즉 정부 재정의 책임을

대폭 높여야 한다. 선진국 어느 나라도 우리 같은 방식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공

급한 사례는 없다. 우리는 고도성장 시기에 부동산 개발이익을 사업자가 갖는

대신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던 특별한 사례이다. 이제 과거와 같은 부동산 시

장 환경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에서, 종전 방식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

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이상 사업자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적어도 소요 재원의 절반 정도는 중앙정부 재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치권도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늘릴 수 있는 재원과 제

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민간임대시장에 대한 주거복지 차원의 접근

공공임대주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임대시장 연구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케메니J. Kemeny는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가 낮고 양이 많더라도

그것이 일반 임대시장과 단절된 ‘빈곤층만을 위한 주택’인 한 그 나라의 전체적

인 주거사정은 안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공공임대주택이 민간임대시장과 연속

선상에서 운영될 때 전반적인 주거사정이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임대시장을 단일임대시장으로 부른 반면, 단절된 임대시장을 이중임대시장으


로 규정했다.

그런 점에서 공공임대주택은 민간임대주택 나아가 자가 주택과의 일정한

역할분담과 균형 속에서 그 기능을 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간임대차 제도

를 근대화시키지 않은 채 진행할 경우에는 공공임대에 입주하지 못한 빈곤층

들이 더 나쁜 조건에서 민간임대에서 생활하게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공공임

대를 확충하는 외에도 민간임대도 규제와 지원을 통해 안정화시키는 방법을 병

행해야 한다.

실제 선진국에서는 세를 놓는 여유주택은 무조건 임대전용주택으로 등록

토록 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는 세입자의 자동 계약갱신권이 보장되어 있다. 이

렇게 계약이 갱신될 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일정 수준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

하도록 한다. 더구나 임대료 수준에 불만이 있을 경우 지역별로 설치된 임대료

사정위원회에 조정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임대용으로 등록된 주택은 임대

소득세를 부담하지만 동시에 정부의 임대주택 관련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특

히 소득의 3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는 가정에 대해서는 정부가 차액만큼

을 지원하는 임대료 보조제도를 실시하는데, 이는 세놓은 가옥주에게도 도움

이 된다. 요컨대 민간임대차 시장을 투명화, 공식화함으로써 세입자와 가옥주

모두 보호 및 지원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내실 있는 임대료 지원제도 도입

박근혜 정부는 2015년 7월부터 소득 인정액이 중위소득의 43% 이하(2014

년 4인 가구 기준 월 173만 원)인 가구에 대해 평균 약 10만 원을 월세를 지원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임대료 보조제도의 도입은 주거복지정책사에서

획기적인 진전이자 이정표가 될 것이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있음에

도 부족한 물량으로 인해 입주를 못한 가구에 대해서는 형평성 차원에서 당장


필요한 정책이다. 또한 저소득층일수록 빠르게 전세에서 월세로 그 임대형태가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월세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은 체감 효과가 높을 것이

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역별 차이를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주거비를 차등화할 경우 생활보호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효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준비되고 있는 임대료 지원제도는 아직 한계가 뚜

렷하다. 무엇보다 민간임대시장의 대부분이 비공식, 비제도화되어 있고, 저소

득층의 소득파악 수준도 낮은 상황에서 형평성 있는 지원이 쉽지 않기 때문이

다. 지원액수도 실질 임대료 부담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당장 체감

하는 효과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분간은 시범사업 단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

실적이다. 임대료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지원 액수를 점진적

으로 높여갈 필요가 있다. 이때 소득, 임대료, 가구원 수 외에도 가족 형태, 최

저주거기준 미달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대차 시장을 투명화하는 것은 이 제도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병행 과제이

다. 임대차 등록제와 임대전용 주택 개념의 도입, 임대료 인상 상한제 도입 등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임대차 관련 제도들을 동시에 정

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싼 집을 보호할 수 있는 주거재생

우리나라의 소득대비 임대료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다.

집값은 상대적으로 높은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전세제도가 갖는 특수성도 영향이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특유의 저렴

주택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판자촌, 요즘도 다세대, 다가구주택이나 옥탑

방, (반)지하방 등이 싼 주거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들 주택은 열악하다. 환기


가 잘 안 되기도 하고, 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다. 조망권이나 일조권 같은 것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더 문제는 집 바깥이다. 주차공간이 문제다. 아이들이 뛰어

놀 장소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만큼 더 나은 주거에 대한 욕구는 커질 수밖

에 없다. 계속 이 상태로 갈 수는 없다.

핵심은 주거환경이 열악한 다세대·다가구 주택들을 개량하면서도 싼 집을

보호하고 나아가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다.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사업 등에서

도 소형주택, 저렴주택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실제로 도심지 내에

서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도시재생사업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

이 가능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는 공공이 개입하고, 재정 지원을 하며,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저렴주택

이 보호 내지 추가로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고령자 주거의 유동화와 청년층 구매력 지원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

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기적을 이루었음에도, 그 기적의 주역들이 절

반 가깝게 빈곤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세계

에서 가장 긴 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소비는 참았고, 낮은 복지까지 어쩔 수 없

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대신 자녀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했고, 내 집 장만을

중산층이 되는 지름길을 여겼다.

집은 노후 연금을 대체하는 수단이었으며, 또한 가족이 결속력을 유지하는

일종의 담보물이었다. 특히 계속해서 오른 집값은 이러한 믿음을 뒷받침했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유독 심한 이러한 현상을 최근에

학자들은 자산기반 복지시스템property-based welfare system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택이

라는 자산이 부실한 공공복지를 대체했으며, 자산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특유


의 가족주의 복지체제를 강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기반 복지시스템은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

년의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 유효성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산가격의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령층의

자가소유율이 70%에 달하지만 빈곤율은 45%에 이르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자

칫 자가마저 노후복지 수단으로 더 이상 기능하기 어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구나 가족해체가 가속화되면서 자녀가 노후복지를 담보하던 시절도 더 이상 기

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야말로 집만 가진 빈곤 노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셈

이다. 2012년 대선에서 노인 기초연금이나 하우스 푸어 대책이 가장 중요한 이

슈로 부각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층들은 그나마 자신의 주택을 월세로 운영하여 부족한

소득을 보충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다시 청년층(즉 자녀세대)과 일종

의 세대 간 이해관계 충돌을 일으키는 지점이다. 청년층들은 불안정한 직장과

낮은 소득으로 인해 갈수록 주택구입이 어렵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노인세대의

주택가격을 더 떨어뜨리게 된다.

따라서 집만 가진 빈곤 노인들의 주택을 어떻게 현금화할 것인가는 그야말

로 국가적 현안이 되었다. 주택연금이 그중 유용한 제도로 논의되고 있고, 가입

연령이나 대상을 더 확대하는 식으로 보완되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연금은 가

입자가 늘어날수록 수익률이 더 떨어지는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완

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아직도 자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강박

을 가진 노인세대들에게는 심리적으로도 수용하기 쉽지 않다.

그동안 실제 필요에 비해 크고 비싼 집, 즉 자산가치가 높은 집을 선호했다

면 이를 다운사이징하는 출구전략이 시급하다. 단독주택이라면 일부를 세놓을

수 있는 구조로 바꾸고, 중대형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통해 2세대 거주주택으로

전환하는 등의 사업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의 주택구매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도 주택시장의 건전성 차원에서는 중요하다. 새로운 구매

수요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노인세대의 ‘자산함정’ 탈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가격에서 거품이 빠져나가는 추세에 맞춰, 청년들의 구매력을 높일

수 있도록 모기지 제도나 세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지원이나 취득세 면제 등을 도입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주거복지 프로그램의 종합적인 연계와 효과적인 관리

이와 함께 공공임대주택 관리에 대해서도 혁신이 필요하다. 먼저, 공공임대

주택에 대한 입주우선 순위는 우리 사회가 권장하고 보호해야 될 가족형태를

우선에 두는데, 자녀와 부양 노인이 있는 가정이 우선적인 입주자격을 갖는 것

이 바람직하다. 물론 장애인이나 한 부모 가정도 우선순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대신 단신가구의 경우는 우선순위를 늦출 뿐 아니라, 주택 형태, 이용 형태를

달리해서 공급하는 것도 방법이다. 원룸형 공공임대주택은 물론이고 부엌 등을

공유하여 사용하는 그룹홈 형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복잡한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 임대료 체계를 전반적으로 조정

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누가, 어느 시기에 공급한 공공임대주택 프로그램인가

에 따라서 임대조건이 큰 차이를 보인다. 지역별 임대료 수준의 형평성도 심각

하다. 수년 내에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더 늦기 전에 관리체계의 형평성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원 등을 이유로 늦

추면 늦출수록 제도 정비는 불가능하게 될 우려가 있다.

아울러 도입을 앞두고 있는 임대료 보조제도와 공공임대주택을 연계하는

프로그램 관리가 필요하다. 공공임대라는 대표적인 공급자 보조정책과 임대료

보조라는 소비자 보조정책은 각각 관리주체와 재원이 다르기 때문에 마치 관계

없는 정책처럼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혜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둘은 동일


한 범위에 놓인 정책들이다. 대상자의 욕구와 특성에 따라 가장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재정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식의 조합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도시재생 및 주거환경 개선 정책들도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공간을 개량

하는 정책들이지만, 결과적으로 주거비와 주거수준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로 나눠져 있고, 또 지방정

부, LH 공사, SH 공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거복지정책 공급자와 관리자

문제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주거복지정책의 지방화와 NGO 등 민

간참여를 어느 수준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도 숙제이다. 당장 바우처 제도

를 도입할 경우, 그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현안이 되어 있기도 하다.

4)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

주택은 인간 생활의 필수품일 뿐 아니라, 각 가정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비

싼 상품이기도 하다. 또한 소비재이면서도 그 자체가 투자재이다. 필수품이면서

도 자산이자 투자재인 이 복잡한 성격으로 인해 주택정책은 언제나 정치, 경제,

사회의 쟁점이 되어 왔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 역시 주택이 갖는 중요성을 감

안하여 시장에만 맡겨두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거나 지원해 왔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공공임대주택과 임대료 보조를 통해 시장 취약계층을 지원하

고, 모기지 제도를 통해 자가소유를 촉진하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

장과 정부의 중간 영역에서 비영리 민간단체들도 협동조합주택 등을 통해 ‘사회

적인 주택’을 공급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택의 공급과 소비는 기본적으로 시장을 통해 이루어

졌다. 정부가 직접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의 일이

며, 그 전에는 가난한 사람의 주거까지도 시장에 맡겨져 있었다. 또한 낡고 불량


한 주택을 개량하는 일도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건설업체에 맡겨져 있었다. 대신 정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주택시장에 대한 투

기억제나 경기부양 정책을 펼치는 한편, 저렴한 공공택지를 민간에 공급하는 방

식으로 간접적으로 주택문제 해결에 개입했다.

우리나라는 시민단체 내지는 비영리 민간부문이 주택문제 해결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급격한 도시화와 개발 바람에다 수도권 신규택지 공급의 대부분을

공공택지가 담당하는 상황에서, 제3의 영역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것이

다. 선진국과 같은 협동조합주택의 전통이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이처럼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비영리 영역의 공간이 협소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빈곤층이 밀

집된 판자촌은 어떤 곳보다 사회적 기업가들의 역할이 필요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도 대부분 활동은 철거반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택문제 해결을 시장과 정부가 나눠서 맡아온 그동안의 정책들이

한계에 일정한 봉착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장에서는 주택이 남아도는

데도 청년들이나 저소득층들은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하는 모순된 현상이 발

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집이 부족해서 주택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의 배분과 활용에 우리 사회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

문에 전통적인 시장-정부 역할 틀을 넘어선 무언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은

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나 기업, 전문가들의 참

여를 통해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보완하는 노력은 의미가 있다. 사회적 기업가

라면 생각해 볼 만한 몇 가지 영역들을 소개한다.

(1) 자조주택 공급

자조주택self-help housing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저소득층들의 주거문제 해결 대안

이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구가 도시로 몰리고 있지


만, 이들 가난한 이농민들은 정상적인 주거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불가

피하게 이들은 구릉지나 강가처럼 도시 내의 버려진 땅이나 시 외곽에 대규모

로 불법적인 집단촌을 형성해서 주거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불법점유주택squatter

settlement, 자생적 주거지spontaneous settlement, 불법주거illegal housing 등으로 불리는 주택

과 주거지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판자촌, 영세민촌 등으로 불렸고, 일종의 개

발도상국 주택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UN 통계에 따르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가까운 인구가 이런 유형의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비록 빈곤에 시달리고, 열악한 주거환경과 기반시설로 고통

받고 있기는 하지만, 선진국의 빈곤지역slum 주민들과는 달리 미래의 희망을 가

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에 많은 학자들은 무허가 정착지가 일반

적인 믿음과 달리 절망적이지도 반사회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점유권만 안정

시켜 주면 스스로 개량하면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미 고전이 된 터너J. Turner의 자조주택 이론이 이를 대표한다. 이에 세계은행을

비롯한 UN 기구들도 자조주택을 지향해야 될 모델로 설정하고, 그 개량에 필

요한 자금을 지원하거나 이를 위한 주민들의 활동을 권장해 왔다. 인터넷을 검

색해 보면,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여러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파키

스탄의 오랑기 프로젝트Orangi Pilot Project, OPP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의 수도인 카라치 시의 오랑기 지역은 대표적인 무허가 정착지인데, 전

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싼 비용으로 하수도를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냈으며 이를 주민자조 활동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무허가 정착지의 점유권을 인정하고 무허가 정착지를 개량한 결과가

반드시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무허가 정착지가 개

량된다는 것은 곧 상품가치(교환가치)를 높여 공식적인 주택시장에 편입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빈민들의 소득이나 생활조건이 변하지 않고 주택만 공식 주

택시장에 편입될 경우 (자조적으로 개량된) 무허가 정착지는 상위계층들을 위


한 주거지로 변하기 쉽다. 또한 주택개량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이

추가적인 개발압력을 받게 되면, 이 지역들은 다시 철거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자조 프로그램은 아직 시장경제가 미발달한 일부 후진국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사례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 역시 강력하다. 바로 무허가 정착지 논쟁이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

적으로 무허가 정착지가 만연하고 있는 개발도상국가들에서 자조주택은 여전

히 가장 효과적이면 중요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자조주

택 개념을 적용한 주택공급이나 개량 사례도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www.selfhelphomes.org 참고).

우리나라도 광범한 무허가 판자촌을 이미 겪었다. 한때 서울시민의 1/3 이상

이 판자촌에 살았던 것이다. 1970년대 주택개량사업은 자조주택 프로그램과 동

일한 접근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합동재개발사업은 판자

촌을 근본적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자조주택론이 자취

를 감추고 말았는데, 최근 개발이익에 기반을 둔 재개발사업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서는 자조주택의 정신과 방법을 되새기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지역이 워

낙 낙후되어 전면 철거재개발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정부가 기반시설을 지원하

고 개별주택을 개량하는 것은 주민들 스스로가 하는, 즉 자조주택식 주거환경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때 주민들의 참여는 당연한 전제이지만, 전문가

나 사회적 기업의 참여도 기획할 수 있다. 자원봉사 차원의 전문가 참여뿐 아니

라 보다 전문화된 사회적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종의 마을 개량 컨설턴트

기업이자 시행기관일 수 있다.

(2) 협동조합 주택 도입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나라의 주택공급 방식은 기본적으로 시장 아니


면 정부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시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부만

정부(혹은 공공)가 공공임대주택의 형태로 공급하는 식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의 공급은 영리추구라는 본성 때문에 구매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

이 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그 공백을 정부가 직접 저렴주택을 공급하는 방식

으로 보완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재정부족에 따른 공급제약, 주민들의 주인의

식 미흡에 따른 빠른 노후화, 빈곤층 밀집에 따른 사회적 단절 등 여러 가지 문

제를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시장, 양 주체를 떠난 제3의 주택공급 방법이 주목받고 있

다. 바로 비영리 협동조합 등의 주택공급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백여 년 이상

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북유럽 국가들 외에도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도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약간의 검색만으로도 다양한 외국 사례들을 확인

할 수 있지만, 협동조합주택은 일종의 대안적 주택공급과 소비방식으로 주목받

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협동조합법이 개정되면서 정부에서조차 협동조

합을 장려하고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는 중이지만, 이를 주택분야에 적용하려

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접근이 있는데, 첫 번째가 협동

조합적인 방식을 통해 이웃과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것이다. 집이 모여서 동네와

마을을 구성하던 전통적 가치를 되살리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업화된 주택

공급 방식을 탈피하여 스스로 자신들의 집을 계획하고 건설하는 노력도 포함된

다. 성미산 공동체(cafe.daum.net/sungmisanpeople)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번째는 협동조합을 통해 주택을 보다 싸게 공급하거나 임대하는 저렴주

거 제공 측면이다. 유럽 일부 국가들이 대규모 주택협동조합을 통해 시장가격보

다 싸고 안정적으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사례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는 협동조합이 싼 토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공유지를 싸게

협동조합에 임대 또는 불하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를 통해 일

종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나 임대주택 공급하려는 구상이다. 최근 이런 방식


으로 소규모 공공 기숙사나 임대주택을 짓는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

나 국공유지를 싸게 공급해 달라고 하는 요구는 현재 공공임대주택 건립하기

에도 토지가 모자란 상황과는 모순이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적인

방식을 통한 주택의 공급과 운용은 공공의 획일성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모

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3) 주거복지 서비스의 전달

사회적 기업의 역할 중에서 세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공공 주거복지 서비스

의 전달에 참여하는 일이다. 정부는 매년 1조 원 이상의 재정과 수조 원에 달하

는 국민주택기금과 LH와 SH 공사의 자체자금을 공공임대주택에 투입하고 있

다. 그러나 이렇게 하드웨어의 건설에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에 비해, 그 관리와

운영에 지출하는 자원이나 관심은 극히 낮은 편이다. 현재는 자격을 갖춘 신청

가구를 한 번 추첨으로 선정하면, 이후에는 특별한 지원이나 관리가 따르지 않

는 방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일단 ‘운 좋게’ 입주자로 선발되기만 하면 그 뒤로는

공공이 특별히 관리하지 않는 가운데 길게는 대를 이어서까지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주거는 이웃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공간이며, 그 지역의 특성을 형성

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동시에 꼭 필요한 사람이 꼭 필요한 공공 주거서

비스를 얻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주거복지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민간, 즉 사회적 기업이 주거

복지서비스의 전달 및 공공임대주택 관리, 운영에 참여하는 일은 바람직한 방

향이 아닐 수 없다. 빈곤층이 밀집된 영구임대주택 단지나 매입임대주택 등에서

는 건물 관리뿐 아니라 복지서비스와 연계한 사회적 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소

규모로 분산된 매입임대주택의 관리를 위해서는 각 구 단위의 지역사회 기업들

이 참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4) 지역사회 서비스 제공

최근 우리는 소소한 집수리조차 각 가정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고령화가 심

화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전등 가는 일조차 각 가정에서 해결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도배나 장판 정도는 스스로 해결한 경우가 많

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의 유지, 관리, 수선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철거재개발에 대한 과잉기대 때문에 기존 주택에 대한 유지 관리

는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왔다. 거꾸로 집과 동네가 빨리 낡고 노후화되어

야 재개발, 재건축을 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쇄락을 부추겨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이제는 그런 식의 개발이익을 추구하

는 철거재개발 방식은 한계에 왔다. 부동산 시장이 양극화되는 가운데 많은

지역들이 개발보다는 보존과 유지, 관리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 주택의 지속적인 관리와 운영은 개별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 국

가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서울의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운영되고 있는

‘동네 목수’(www.jangsumaeul.com 참고)나 은평구의 ‘두꺼비 하우징’(www.

toadhousing.com 참고)과 같은 집수리 기능을 복원시켜서, 일상적인 주택의

유지, 관리를 사회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사회적 기업이 형성될

수 있는 영역이다.

이와 함께 중개업에도 사회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난한 노인

이나 근로 청소년들이 방을 구하는 일까지 영리화된 중개기능에 맡겨두는 일이

합당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지역 중개인협회에서 봉사하도록 하는 데서

더 나가, 주거복지 상담에서부터 필요한 주거서비스를 제공하는 일까지 사회적

기업화하는 방안을 구상해 볼 수 있다. 이미 서울의 관악구 같은 곳에서는 민간

활동가들이 비슷한 사업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각 지역의 주거복지센터 기능

을 강화하면서 구상해 볼 수 있는 사업이다.


Discussion Question

|�고도성장�시대의�주택문제와�저성장�시대의�주택문제는�어떻게�다른가?�양상,�발

생배경,�대책을�생각해�보자.

|�우리나라의�‘고시원’은�청년�단신�주거의�가장�중요한�수단이다.�최근�전�세계�대도

시에는�이런�식의�편법적인�주거가�확대되고�있다.�그�종류와�양상을�조사해�보자.

|�유럽�협동조합주택의�현황,�확대과정,�효과와�문제점�등을�조사하고,�그것이�우리

나라에�주는�시사점에�대해�토론해�보자.

|�전면적인�철거재개발이�어렵게�되었다.�대신�다양한�방식의�개량형,�적응형�재개

발사업이�논의되고�있다.�우리나라의�대안적�재개발사업�논의를�알아보고,�가상

의�지역을�선정하여�적용방안을�토론해�보자.

|�세대별로�주택문제에�대한�이해관계가�차이를�보이고�있다.�이�문제를�극복하지�

않으면�미래의�주택문제�해결은�쉽지�않다.�세대�연합적인�주택정책은�불가능한�

것인가?�그�방법을�토론해�보자.


1) 건강과 보건의료를 어떻게 볼 것인가*

건강과 보건의료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오류다.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

은 이론적으로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중요하다. 실천의 궁극적인 목표를 건

강 향상 또는 건강 보장에 두면서도 보건의료를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둘을 구분한다는 전제 아래, 건강을 보장하는 데에 보건의료가 어디까지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역할이 명확하지 않으면 보건의료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

가 있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더 나아가면 왜 건강과 보건의료가(아니면 건강이

* 다음을 주로 참고함. 김창엽, “건강과 복지: 권리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경제논집》 50, no.3(2011); 김

창엽, 『건강보장의 이론』(서울: 한울, 2009).

** 건강과 보건의료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 글이 보건의료 논의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주 대상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의료 내부에서도 건강과 보건의료를 명확하게 구

분하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2

건강과 보건의료

김창엽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2-2. 건강과 보건의료 | 139

나 보건의료가 단독으로)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공적으로 보장해야 하

는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이나 보건의료가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가치에

비추어 동등하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보장하기 위한 활

동이나 사회적 장치는 우연한 역사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먼저 이론적으로 구분해 보자. 건강health은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결

과outcome인 반면, 보건의료health care, health service, health care service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

는 한 가지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보건의료는 건강이라는 생산

물의 여러 투입요소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주목을 받고 있는

건강의 결정 요인이라는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보건의료는 건

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가운데 하나이다.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건강 향상을 위해 어떤 개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건강

을 결정하는 요소 중 생물학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중요한 건강문제인 전염성 질환은 생물학적 요인 중에서도 외인外因에 의한 질병

이다. 이에 비해 유전이나 체질 같은 것은 생물학적 요인 가운데 내인內因에 속하

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요인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건강에 미치는 기여도나 그것의 중요

성은 과장되어 있다. 물론 이는 건강과 질병을 설명하는 데에 생의학적 모형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가장 대표

적인 생물학적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유전적 요인도 인간수명의 15~20% 정도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생물학적 요인은 다른 요인들과 관련을 통해

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알려진 것이긴 하지만, 영향의 크기로 볼 때 생물학적 요인에 비하여 과

소평가되어 있는 것이 사회적 결정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따르면 건강

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란 사람의 출생, 성장, 생활, 노동, 노화의 조건을 말한다.


이런 조건은 지역, 국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돈, 권력, 자원의 분포에 따라 결정

된다. 건강을 주로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통념과는 달리 “빈곤층의 낮은 건강

수준, 국가 내에서 나타나는 건강의 사회적 격차, 현저한 국가 간 건강 불평등

은 국가적, 국제적으로 존재하는 권력, 소득, 물자, 서비스의 불평등한 분포 때

문에” 생긴다. 권력과 소득, 물자 등의 불평등 분포는 사람이 살아가는 직접적

이고 가시적인 환경, 즉 의료, 학교, 교육 등에 대한 접근과 노동, 여가, 가정, 거

주지역의 조건에 불공정성unfairness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면, 역설적이게도 보

건의료는 영향력이 실제보다 더 크게 인식되는 거의 유일한 요인이다. 흔히 생

각하는 것과는 달리, 적어도 집단과 사회 수준에서 보건의료가 건강에 기여하

는 비중은 절대적이지 않다. 여러 연구에서 보건의료 서비스보다 영양이나 공중

보건이 건강수준 향상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맥퀀Thomas Mc-

Keown의 선구적인 업적과 포겔Fogel, 프레스톤Preston 등의 연구가 대표적인 것이다.

하지만 보건의료의 정확한 기여 정도를 확정하기는 이르다. 영양 공급의 역

할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검토한 포겔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전체 사

망률 감소와 그 이후 사망률 감소의 절반은 영양 개선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

하였다. 그러나 이들 연구들은 주로 20세기 전반 이전을 대상으로 한 것들로,

최근 분석, 특히 선진국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보건의료가 건강수준 향

상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커틀러Cutler 등은 최

근의 수명 연장에 기여한 것이 여러 요인 가운데에 과학 발전과 기술적 진보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6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미국에서 7년의

수명 연장이 있었는데, 그중 70%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 때문이

고,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의 약 2/3는 의학 발전으로 인한 것이라

고 추정하였다.

2-2. 건강과 보건의료 | 141

2) 한국 보건의료의 현상과 구조*

겉으로 보기에 한국 보건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크게 접근성, 비용, 질의

문제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 범주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문제

의 서로 다른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필요한 때에 필요한 보건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접근성은 비용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울러

질의 문제 또한 비용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나타나는 한국 보건의료의 특성은 구체적으로는 건강보험제도와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89년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지금은 건강보험으로 이름

이 바뀌었다) 가입자가 되면서, 보건의료는 거의 전적으로 건강보험의 틀에 의

해 규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의료기술이 쓰일 수 있는가의 문

제는 의료정책과 기술의 문제지만, 실제로는 건강보험이 대상으로 하는가 여부

에 따라 의료기술의 채택과 확산이 결정된다. 이론적으로 건강보험은 어떤 제

도와 틀로 보건의료의 재정을 조달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보건의료에 자

원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재정 조달의 메커니즘을 통해) 사실상 보건

의료의 대부분을 결정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접근성, 비용, 질의 측면에서 한국 보건의료가 드러내는 문제는 이미 잘 알

려져 있다. 절대적 크기도 중요하지만 특히 불평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앞

서 말한 건강보험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면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현상보다는 이

런 현상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성격

상 근본적 구조보다는 ‘중간’ 구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다음을 일부 참고함. 김창엽 외, 《한국 사회의 불평등 – 건강과 보건의료》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

원, 2014).


(1) 건강보장제도의 한계

건강보험 또는 확대된 의미에서 건강보장체계는 보건의료의 제공과 이용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핵심 기능이다. 보건의료에 대한 필요(니즈)가 있

을 때 실제 이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경제적 능력이지만, 사회적으로

는 건강보장체계 또는 제도의 수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건강보장이 불완

전할수록 접근성과 비용의 문제, 특히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건강보장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특성이 아직 보장성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이를 나타내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공적 체계의 충실성을 나타

내는 공공 재원과 개인이 직접 부담하는 비용 사이의 분포이다. OECD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공공 재원 비중은 1995년 38.6%에서 2011년 55.3%로

증가하였으나, OECD 국가 평균 72.2%에 비하면 크게 낮다. 건강보험공단이 조

사하는 건강보험의 ‘보장률’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3년 2월에 발표된 2011년

보장률은 현금 지급을 포함하여 63.0%였다. 현금 지급을 제외한 보장률(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산출)은 62.0%로 한 해 전에 비해 오히려 낮아졌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곧 환자가 스스로 부담하는 비용의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따라

서 이런 수치는 전체 비용의 약 40%를 이용자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뜻

한다. 소득 수준이 더 높은 국가와 비교할 때는 물론이고 비슷한 수준의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매우 높은 정도의 부담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의료급여는 경제적 부담 능력이 취약한 빈곤층의 보건의료 이용을 지

원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일부 대상자(의료급여 2종)에게는 부분 비

용을 부담하게 한다는 한계 이외에도, 대상자가 지나치게 적다는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급여 통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전

체 인구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2년 연구에 따르

면, 2010년 현재 절대빈곤율이 7.1%, 상대빈곤율이 12.0%에 이른다. 이는 의료

2-2. 건강과 보건의료 | 143

급여제도가 빈곤층 전체가 아니라 아주 일부만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상당수 빈곤층이 보건의료 이용에 경제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 취약한 공공 보건의료

건강보장제도는 보건의료 이용의 수요를 보조하는 방법인 데 비해, 공급을

직접 보조하는 접근도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 보건의료 기관이 직

접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법이다. 무료 또는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공급하게 되

면 경제적 부담 능력에 따른 보건의료의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 보험 대

신 조세로 재정을 마련하고 공공이 소유하는 보건의료기관이 의료체계의 핵

심 기능을 담당하는 나라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영국이나 스웨덴 등이 대

표적인 국가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전체 보건의료체계에서 차지하는 공공보건의료의 비중

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공공보건의료를 보건기관(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에

한정하든 아니면 국공립병원까지 포함하든 그 비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또

한 공공부문의 취약성은 진료나 보건사업 어느 한 가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예

를 들어 예방접종과 같은 보건사업에서도 민간 의료기관이 여전히 더 큰 비중

과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공공 재원의 취약성도 공공보

건의료의 비중을 나타내는 간접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어떤 지표로 보나 한국의 공공보건의료는 접근성과 비용 부담 등의 문

제를 완화시키는 데에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공공보건

의료의 비중 자체가 보건의료 불평등의 한 가지 결정요인이라 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3) 민간 위주의 보건의료 체계

건강보장제도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공공보건의료의 비중이

낮고 취약하다는 것은 단지 예산이나 지표, 정책, 사업의 문제가 아니다. 현상적

으로 드러나는 특징들은 좀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와 본

질적 특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한국 보건의료의 체계적 특성은 바로 민간 부문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따라서 영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미시적으로는

보건의료의 이용과 제공자의 행동, 그리고 서비스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거시

적으로는 정책과 체계의 기본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윤 추구를 근본적 동기로 가진 민간 부문이 보건의료의 ‘상품성’을 강화하고 불

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높은 가격의 새로운 의료기술이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이용

되는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신기술 도입에는 민간 의료기관들의 이윤

동기가 작용하고 있고, 근본적으로는 전체 체계가 각 기관의 행동을 이런 방향

으로 강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촉진되고 강화되는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이 경

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접근성에 장애가 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분명

하다.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이용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적

으로는 의료비 지출을 늘림으로써 재정 부담의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

향으로 작용한다.

(4) 정치권력의 불평등

조금 비약하는 듯하지만, 권력의 불균형 분포가 건강 불평등의 결정요인으

로 작용한다는 것은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가 이미 강조한 것이다. 특별히 보

2-2. 건강과 보건의료 | 145

건의료의 불평등과 정치권력을 연관시키는 것은 건강과 보건의료를 산출하는

투입요소,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로서의 자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권력의 불평등은 재원 조달과 자원 배분의 형평과 직접 연

관된다.

보건의료와 직접 연관된 재원은 조세와 건강보험의 보험료이다. 한국에서

이 두 가지 재원 모두 형평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하고 소득 역진성이 강하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조세와 보험료를 포함한 공적 소득이전의 불평등 감소 효

과는 OECD 전체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조세/복지가 근본적

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OECD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세제/

복지 제도는 불평등과 빈곤을 타파함에 있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비효과

적”이다.

한국의 조세/복지 제도가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효과성’

을 드러내고 있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조세/복지 제도가 전형적으로 정치권

력의 지형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불평등한 정치권력의 분포가 또한 불평등한

조세/복지 제도를 낳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결국 재정을 비롯한 보건의료의

불평등 역시 이러한 정치권력의 불평등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부인

할 수 없다.

3) 새로운 위험과 보건의료 문제의 전망

접근성, 비용, 질의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불평등이 중요한 문제라고 했지

만, 이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낼 환경 변화는 바로 노인인구의 증가와 고령화이

* OECD, 『한국의 성장과 통합을 위한 틀』(한국어 판), 정책보고서 (2011). http://www.oecd.org/korea/

48225085.pdf (2014년 2월 5일 접속).


다. 한국 사회가 급속한 고령화 단계에 들어섰고, 앞으로 그 추세가 가속화될 것

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건강 문제와 질병은 근대 국가 초기부터 핵심적 위치

를 차지했던, 말하자면 오래된 사회적 위험이었다. 그런데 이제 가속화되는 고령

화의 추세 속에 건강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서의 성격을 더하고 있다.

우선 고령화가 보건의료비 지출의 급격한 증가를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위의 [표 3]은 한국에서도 노인의료비 지출 증가가 이미 현실적 문

제임을 보여 준다. 노인의료비는 1999년 전체의 17.0%를 차지하였으나 2009년

에는 30.5%에 이른다. 한해 사이에 전체 의료비는 12.5% 증가하였으나 노인의

료비는 14.8%, 특히 75세 이상의 고령 노인의료비는 19.4% 증가하였다.

물론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것만으로 보건의료비 지

출 증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보건의료의 성격 자체가 변화한 것 역시 중

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과거의 급성기 질환, 전염성 질환의 비중은 급격하게 줄

[표 3] 나라별 주택점유형태 분포

전체

의료비

65세 이상 노인의료비 전체

의료비중

노인의료비

구성비계 65-69세 70-74세 75세 이상

1999 113,79719,332

(100.0)

7,859

(40.7)

5,705

(29.5)

5,768

(29.8)17.0

2004 223,55951,097

(100.0)

20,472

(40.1)

14,819

(29.0)

15,806

(30.9)22.9

2009 394,296120,391

(100.0)

39,871

(33.1)

35,552

(29.5)

44,968

(37.4)30.5

증감(률)

(2009/2008)12.5 14.8 9.2 15.7 19.4 0.6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각 년도):『진료비통계지표』. 통계청(2010): 『한국의 사회지표 2010』에서 재인용

2-2. 건강과 보건의료 | 147

어들고 만성질환, 비전염성 질환이 건강문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반

적으로 유병률과 유병기간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노인에서

는 전체 인구가 모두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0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결과에 따

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90.9%가 만성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처럼

노령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건강문제를 가지게 되면, 사회적으로는 세대 간 위

험분산을 빼고는 ‘위험분산’의 의미가 없어진다. 질병으로 인한 많은 비용 부담

을 하나의 위험으로 보면, 질병보다는 건강이 충분히 크거나(사람들 사이에서)

길어야(한 사람 안에서) 위험이 분산된다. 노인 대부분이 질병을 가지고 비용을

지출하게 되면 이 집단만으로는 위험을 분산하기 어렵고 젊고 건강한 사람과

(즉 젊은 세대와) 위험을 분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성질환이 늘어난 것뿐 아니라, 의료기술 발전도 보건의료비 지출을 증가

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의료기술의 발전이야말

로 고령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원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연

구에서는 고령화의 기여도가 약 2% 수준인데 비하여 의료기술의 발전은 전체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의 개별 연구에 따라 38~62%, 49%, 65% 이상을 차지하

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여기에서 의료기술의 발전은 사회적으로는 단순히 비용

총량을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의료기술 발전

은 곧 건강과 관련된 자원의 가용성availability 확대를 뜻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

담 능력에 따라 가용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달라지고, 그 차이가 점

차 커지고 있는 것이 의료기술 발전의 핵심적 의미라 할 수 있다.

건강과 관련된 문제가 급격히 의료화medicalization되고 있는 것도 보건의료비 증

가의 또 다른 원인이다. 이는 한편으로 건강문제의 성격 변화와, 그리고 다른 한

* ‘유병률(有病率)’은 일정 인구 가운데에 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환율’이라는 표현

을 쓰기도 한다. 유병기간은 한 가지 특정 질병을 앓는 전체 기간을 뜻한다.


편으로 보건의료 기술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의료화를 조금 넓게 해석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의 장애에 대처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것을 의료화의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과거 일상생활 지원은 가족 안에서 비전문가가 직접 노동을

통해서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구조의 변화와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요양이나 일상생활 지원은 가족을 벗어나서 전문가가 기술집약적으로 제공하

는 서비스로 변하였다. 인공적인 영양공급이나 기계장치를 통한 이동보조는 주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료화된 일상생활 지원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노인인구의 증가와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다. 이

는 사회적으로 개입해서 보건의료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다

는 것을 뜻한다. 어떤 종류의 개입이든 효과와 반응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미국에서 가장 극적으로, 그보다는 덜

하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조만간

비슷한 도전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비용 증가는 이미 예상된 사회적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

서 진정한 위험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고령화는 진작부터 중요한 정책 환경이었

고 의료기술의 발전 역시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정책적으로도 고령화에 대

비한 다양한 접근이 있었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여러 정부에서 계속 국정

의 핵심 의제로 다루어져 왔다.

시각을 바꾸면 사회적 위험을 다른 측면에서 포착할 수 있다. 즉 급증하는

보건의료 수요와 비용 지출의 압박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에 대응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구조가 새로운 위험을 낳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보건의료비의 빠른 증

가를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보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는 핵심 전략이 위험의 ‘

개인화’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는 보건의료에 국한된 전략이 아니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유럽 국가들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영

화와 시장화를 통한 사회적 위험의 개인화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광범위하게

2-2. 건강과 보건의료 | 149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앞으로 사회적 비용이 급증하는 것에 따라 개인화의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문제 해결의 개인화 과정 속에서 드러날 광범위한 불평등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보건의료의 필요와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위험

을 개인화하게 되면 이에 대처하는 개인들의 능력은 뚜렷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는 이러한 개인의 차이 또는 불평등이 다른

요소에 비하여 더 직접적이고 극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즉 불

평등은 급박한 의료수요를 해결하는 방식이나 수명, 건강의 추구, 장애, 일상적

인 삶의 질의 차이 등으로 생활세계의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과 보건의료의 권리와 정의가 다

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즉 비용과 효율화의 압력이 커질수록 그

대항 원리로서의 권리와 정의도 더 중요한 정책적 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건강과 보건의료가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가지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

적 가치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비용과 효율성이라는 과제는 권리와

정의의 원리와 긴장관계를 가지며, 이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서의 불평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4) 보건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

노인인구의 증가와 보건의료비 지출의 급증, 그리고 민간 위주의 공급의료체

계와 공공 보건의료의 부실은 건강과 보건의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

성이 높다. 이는 접근성, 비용, 질 모두에서 나타날 문제이다.

예상되는 문제의 크기에 비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시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한국의 보건의료 공급이 구조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형’ 체계


에 포획되어 있는 한,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성과를 보이기는 매우 어려울 전망이

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의 역할은 주로 이러한 구조적 공간, 그중에서도 필연적

으로 심화될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맞추어진다.

(1) 새로운 방식의 재원 조달

공적 건강보장체계의 ‘보장률’이 미흡하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했다. 현실에

서는 많은 민간보험이 그 틈을 채우고 있다. 보험연구원의 2013년 보험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3년 5월 현재 실손의료보험 가입률은 59.1%에 이른다.

공적 건강보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하는 것 역시 불

평등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론적으로는 비영리 조직이 민간 의료보험을 운영할 수 있다. 실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공적 건강보험을 보충하는 민간보험이 운영되고 있으며, 상당

수는 비영리로 운영된다. 영국을 기반으로 한 BUPA나 미국의 Blue Cross Blue

Shield는 전형적인 비영리 민간보험이다.* 이들 비영리 민간보험은 주로 의사나

병원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 국민 의료보장체계가 없는 일부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민간 건강

보험(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그룹이 운영하는 민간보험)을 제외하면 사

회적 기업이 보험을 운영하는 예는 드물다. 보험 산업은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며 많은 나라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체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한편 비영리 민간보험이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

* BUPA는 http://www.bupa.com, Blue Cross Blue Shield는 www.bcbs.com를 참조할 수 있다. 한

편 유럽의 민간의료보험은 다음 문헌을 통해 전반적인 상황과 논점을 이해할 수 있다. Elias Mossialos

and Sarah Thomson, Voluntary health insurance in the European Union (World Health Or-

ganization, 2004). http://www.euro.who.int/__data/assets/pdf_file/0006/98448/E84885.pdf.

또한, Blue Cross Blue Shield의 간단한 역사는 다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김창엽, 『미국의 의료보장』

(서울: 한울, 2005).

2-2. 건강과 보건의료 | 151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비영리 민간보험은 영리를 목표로 하는 민간보

험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개별 기업의 성격보다는 전체 시장의 특성이 더 중요

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가 있지만,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민간 부문

재원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민간 의료보

험의 역할 역시 더욱 커질 것이다. 문제는 이들 민간보험이 이윤 극대화의 동기

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건강보장체계의 운영 원

리는 이윤 극대화보다는 건강 보장과 경제적 보장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기초하

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 보건의료 공급자로서의 사회적 기업

보건의료의 공급 측면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많이 논의되는 것이 의료협동

조합이다. ‘시장형’ 의료가 비용은 물론 보건의료의 질 측면에서도 환자와 주민

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이 의료협동조합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근거

가 된다.

의료협동조합의 기본 틀은 다른 협동조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 주민들

이 의사를 비롯한 의료전문가들과 협동하여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지역사회에

서 주민들의 일상적인 건강 문제와 장애인, 노인 등이 가진 특별한 필요를 해결

하고자 한다. 나아가 많은 의료협동조합이 지역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의료기관

을 운영하는 것을 지향하며, 보건의료의 범위 측면에서도 예방보건 활동과 노

인 요양 서비스 등 기존 의료기관의 범위를 넘는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의료협동조합이 운영 중이며, 개발도상국에

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보건의료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조직이 있는


가 하면, 재원 조달을 포함한 통합적 모델도 있다. 한국에서는 1994년 안성의

료생협을 시작으로 인천평화(1996), 안산(2000), 원주(2002), 서울(2002), 대전

(2002), 전주(2004), 함께걸음(2005), 용인해바라기(2007), 청주아올(2007), 성

남(2008), 수원새날(2009), 시흥희망(2009) 등으로 확산되었다.

설립과 운영에서 의료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분명히 친화성이 있다. 한

국만 하더라도, 2007년에 안성, 원주, 인천, 대전, 서울의료생협 등이 사회적 기

업이 되었다. 최근에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많은 의료협동조합이 사

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거나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 상황에서 의료협동조합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

비지니스’ 모델을 정립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의 핵심적

인 서비스(진료, 예방, 재정 등)가 공적 체계의 책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의료

협동조합이 충분히 가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공적 체계와는 별도로) 제공

할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운영 중인 의원 급의 의료협동조합은

물론이고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사회적 기업(예를 들어 종합병원)이 가능하다 하

더라도 마찬가지다. 핵심적인 서비스는 공적 체계에 부합해야 하고 공적 체계의

변화에 따라 핵심 활동도 변동할 수밖에 없다. 공적 체계의 핵심 활동에 대해

보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은 사회적 기업의 활동 공간을 제약한다.

물론 건강보장체계는 공적 성격을 가지지만 대부분 공급자는 민간 비영리

라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이 활동할 공간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사회적 기업이 민간 비영리와는 다른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

다. 외국의 경험(예를 들어 미국의 민간보험)으로 볼 때, 보건의료 제공자의 행

동은 개별 주체의 특성(영리, 비영리, 사회적 기업)보다 전체 체계의 특성(즉 ‘시

장’의 특성)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보건의료체계도 공공과 민간 가운데 어느 하나로 작동되지 않는다. 공

적 의료체계와 민간의 보건의료가 ‘혼합형’ 체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 공공과

2-2. 건강과 보건의료 | 153

민간의 혼합을 기본 전제로 한다면, 이들 사이의 긴장과 협력 안에서 바람직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모든 보건의료체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도전이다.

이는 또한 한국의 사회적 기업가가 혁신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3) 새로운 보건의료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

앞서 말한 보건의료 공급을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적 기업은 당분간

공적 보건의료체계가 포함하지 않은 새로운 서비스를 새로 생산하고 보급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 기업이 의의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 서비스 자체가 가치를 가

진 것이라야 할 것이다.

보건교육, 건강증진 활동, 환자 관리와 일상생활 지원 등 필요하지만, 현재

공적 체계에서는 없거나 미흡한 서비스의 종류가 많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이

들 서비스 모두 사회적 기업의 활동 대상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에 있는 환자들

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서비스,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과 서비

스를 공동으로 구매하는 기능,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음식과 식사를 제공

하거나 교육하는 활동 등이 생각할 수 있는 예이다. 다만 공적 체계가 보장성을

확대함에 따라 같거나 비슷한 서비스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서비스의 재원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면 공공성이 필요한 서비

스가 더 ‘시장화’되고 이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건강과 보건의료만큼 공공성이 강조되는 사회적 기능이나 서비스는 많지

않다. 인권으로서의 생명이나 건강권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지지하는 것

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시장형’ 보건의료의 틀 안에서 반反-공

공성이 두드러지고, 이는 때로 격렬한 사회적 긴장의 원인이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회권력(또는 시민권력)’이 시장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한국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키우기 위한 중요한 지향이자 전략일 수 있다. 물론 객관

적 여건과 주체적 역량 모두에서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과 전망을 낙관할 수만

은 없다. 그럼에도 국내외 협동조합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권력이 경제에 진입하

는 유의한 전략임에 틀림없다.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적 접근이 구체적 수준에서

새로운 공공성을 확보하는 동력이자 방법론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Discussion Question

|�건강과�보건의료는�다른�재화나�상품과�얼마나�다른가?�일반적인�시장에서�다른�

상품처럼�판매되고�거래될�수�있는�가능성은�어느�정도나�될까.

|�건강과�보건의료는�공적�체계와�공공�영역이�책임을�져야�한다는�것인�일반적�인

식이다.�그렇다면�개인과�민간이�해야�할�역할은�얼마나�될까.�사회적�기업이�주로�

이�역할을�하는�것은�타당한�위상�설정인가.

|�건강과�보건의료의�불평등이�가장�중요한�사회적�과제의�하나라고�지적하였다.�사

회적�기업의�원리로�이�문제를�해결할�가능성이�있는가?�특히�공적�체계에�의존

하지�않는�경우�가능성은�얼마나�남아�있는가?

|�건강과�보건의료에서�사회적�기업은�‘비지니스’�모델의�제약이�매우�많음을�주장

했다.�이�경우�어떤�목표를�설정함으로써�모델이�적용될�가능성을�높일�수�있을까.�

2-3. 한국교육의 현실과 교육혁신의 새로운 방향 | 155

1) 한국 공교육의 위기

한국은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으로 일반적인 교육열

과 교육 수준이 높았으며, 국가 관료는 고도의 지식인이었다. 전자의 측면은 근

대적 교육제도의 신속한 보급에, 후자의 측면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와 산업화

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교육은

마치 근대의 산물인 양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 이 교육은 전통적 교

육과 근대적 교육의 독특한 결합의 산물이다(김덕영, 2014: 159-160). 또한 한

국에는 근대화와 산업화 훨씬 이전부터 규율화된 인간 유형이 존재했으며, 이

인간 유형이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매우 중요한 문화의의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학교의 설립과 운영, 교사의 자격, 교육과정 등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

다는 점에서 한국 교육은 ‘공교육’ 체제를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땅에 근대 교육이 시작된 지 120여 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교육

3

한국교육의 현실과 교육혁신의 새로운 방향

심성보 •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빠른 속도

로 교육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면서 국가의 경제 규모 또한 엄청난 성장을 가져

와 세계 10대 국가에 성큼 다가섰다. 이러한 성장은 모두 잘살아보겠다는 국민

의 소망과 열망이 표현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눈부신 경제성장

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가족이 막대한 교육비를 지불해야 하고, 이미 영·유아기

부터 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비인간적인 입시 지옥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Sydney Morning Herald>와 <Time Magazine>은 “한국의 40명의 청

소년들이 형광등 아래서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아이들의 뇌를 착취하는 것 같

았다."는 충격적인 장면을 소개한 바 있다. <New York Times>(2013, 11. 6일자)

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그 가족

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최상위권의 실적을 내고 있지만, 비슷한 순위의

핀란드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과도한 학습 시간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흥미와 자기주도성은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초중생의 수학과 과학 성

취도는 세계 최고이지만,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업 태도’와 ‘학업 흥미도’는 평균

이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09년 실시된 국제교육협의회(IEA)의 설문조사

에서 한국 중학생은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가 36개국 중 35위로 최하위라

는 놀라운 보고를 하고 있다. 이런 결과들은 우리나라가 학교폭력과 왕따 현상

을 빈번하게 보이면서 뛰어난 학업성취도에 비해 ‘더불어 사는 능력’의 부족을

지적받고 있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학교의 붕괴, 학교폭력 등

은 물론이고 수많은 학생들의 자살자를 양산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

에 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자살자는 세계 제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처참한 양상은 한마디로 한국사회가 위험 사회임을 보여주는 징후

이다. 오늘날 한국의 공교육은 분명히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이런 문제의식

을 가지고 한국교육이 공적이지 않고 평등적인 않다는 점을 밝히고 세계교육의


동향을 통해 한국교육의 미래적 대안을 보여주고자 한다.

2) 한국교육의 현실

1) 공교육의 공공성 상실과 불평등 심화

한국의 공교육은 공공성公共性*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은

공교육제도가 확립되고 발전해 오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공교육제도의 시행 목

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교육 특성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

런데 근대 교육의 주체인 한국의 국가는 교육을 국가 발전, 보다 정확하게 말하

자면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보았을 뿐 자율

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시민을 함양하는 것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김덕영, 2014: 167-170).

한국교육은 근대국가의 의무공교육체제로 시작됨으로써 개별 어린이의 자

아 발달의 필요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통일성을 우선시하면서 ‘국민’을 기르기 위

한 목적으로 틀 지워졌다. 그런데 서구의 경우 19세기 말 20세기 초 신교육운동

으로 일컫는 학교개혁운동이 확산된 이래, 국가주의적 목적에서 벗어나 인간주

의적 목적을 지향하는 혁신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공교육체제는 일제 강

점기에 시작·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 미군정, 군부독재 등 근대화 시

기의 암울한 역사를 거치면서 관료적 통제 중심의 교육 특성은 한층 더 오래 지

속되고 강화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래 한국의 공교육 개혁은 경쟁과

* 공공성(Offentlichkeit, publicity, publicness)이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한 조직이나 어떤 사회

적 단위가 한 개인이나 특정 권력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구성원 전체를 위해서 작동할 때의 그 성격을 ‘공

공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만큼 그 조직이나 사회적 단위, 제도, 정책이 한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

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통으로 이익이 되고 그 효과가 공유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효율에 바탕을 둔 시장주의 교육 개혁이 강행되었다.

이렇게 한국 교육의 공적 성격은 국가의 행정 관리 권한에 주로 초점이 맞

춰져 있고, 교육받는 당사자로서의 사회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교육경쟁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사교육의

양극화가 더욱 심각한 문제임을 발견할 수 있다. 사교육의 양극화는 사회계급

간 실질적인 교육격차가 심화되는 현상과 직결되어 있다. 이 현상은 조기유학과

유학열풍의 심화로 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의 교육열이 순리적 경쟁

과정을 통해 공교육의 발전에 투입되기 어렵도록 만들어 온 정치적 간섭, 관료

주의적 규제와 더불어 맹목적 평등주의가 교육의 질을 높이지 못하면서 불필요

한 경쟁만 유발시켜 온 것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해 노력하였던 교육기회의 확대에

그 중심을 두었다. 하지만 교육기회의 확대가 교육의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

다. 기회의 불평등은 기회의 절대수가 부족한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더욱 직접

적인 원인은 기회의 격차이기 때문이다(오욱환, 2000: 41). 즉 저소득층 자녀의

고등교육 기회가 상당한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정부가 특별한 정

책적 배려를 취하지 않았던 결과,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가 출신가정 배경별 교

육기회의 균등화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1980년대

중반부터 교육정책의 비중을 기회의 균등이나 확대보다는 수월성과 다양성에

두게 되었다. 당연히 평등성의 원리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초

기 산업화 단계에서 세대 간 계층이동이 활발하였고, 거기에 학교교육이 중요

한 역할을 담당한 모습이 조금씩 사라졌다. 반면에 아버지의 학력과 가정의 사

회경제적 배경이 자녀의 학업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오늘날에

는 그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소득계층에 따른 대학 진학률 차이는 통계수

치로도 확인된다. 반상진(2013)의 ‘소득계층별자녀의 대학진학격차 분석’을 보면

소득 최상위(월소득 400만 원 초과) 집단 가정의 대학 진학률은 82.6%로 나타


났다. 반면 소득 하위계층(100만 원 이하)의 대학진학률은 58.3%에 그쳤다. 이

분석은 한국고용패널 조사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유명대학 진학률로 보면 세

분해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월소득이 400만 원을 초과하는 계층에서는 10

개 유명 대학 진학률이 28.4%였으나 월소득 100만 원 이하 계층에서는 1.6%에

불과했다. 소득 최상위 집단의 자녀는 소득 하위집단의 자녀보다 유명 대학 진

학률이 17배 이상 높다. 이러한 결과는 소득계층별 대학 진학률 격차는 월소득

100만 원 집단보다 소득 최상위 집단자녀의 사회·경제적 성공 가능성이 월등히

높음을 의미한다(반상진, 2013). 학교교육 외에는 사회·경제적 성공과 계층 상

향 이동의 희망이 거의 없는 저소득층 자녀의 경우 대학 진학의 실패는 부모세

대의 빈곤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인다.

교육 불평등은 올해 서울대 고교별 합격생 현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새

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지난해 서울대에서 받은 ‘2014년도 고교별 합격 현황’(최

초 합격기준)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전체 25개구의 일반고 졸업생 가운데 서울

대 합격생수는 502명이었다. 이 중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이 251명으로

50.0%였다. 서울 지역만 보면 일반고 출신 서울대 합격생 2명 중 1명이 강남 출

신인 셈이다. 서울대 일반고 출신 신입생 1580명 전체로 확대하면 강남 출신은

15.8%로, 일반고 출신 신입생 6명 중 1명꼴이다. 이 비율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

다(경향신문, 2014, 6. 13일자). 특히 다양한 잠재 능력을 계발, 평가하자는 취

지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 등 각종 입시 전형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상위권 대

학 진학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에 들어가

는 대표적인 ‘스펙’인 인턴 경력만 봐도 부모의 재력과 인맥에 의해 좌우된다. 재

력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모일수록 인맥이 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력 차이는 결과적으로 일자리와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고졸 출신들은 정

부가 정책적으로 각별히 신경 쓰지 않는 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2

년 통계층 자료에 따르면 1년 미만 경력의 대졸 이상 취업자 임금은 220만 3662


원으로 고졸 출신 임금(149만 8,142원)보다 47% 많았다. 특히 대졸자가 취직하

자마자 받는 임금은 중졸 이하 학력자가 10년 일해야 받는 임금(232만 원)과 비

슷했다. 학력격차가 소득 격차를 가져오고 소득 격차가 다시 자녀의 학력 격차

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진로 격차를 벌려 다시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

리는 이미 형성돼 있다. 사회 불평등 → 교육 불평등 → 사회 불평등이라는 매

우 부정의한 도식이 한국교육의 현실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공교육

은 겉으로 보기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접근의 기회를 열어놓는 것처럼 보였

지만, 그 안에서는 일정한 패배자를 체계적으로 생산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사

적 가치를 재생산했다. 학교는 사회 선발의 성전이었고, 교육은 그 시녀였다. 일

정 수를 차별적으로 선발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일정 수를 체계적으로 실패

자로 낙인찍어야 했다. 상대적 비율만큼 학교교육은 이른바 ‘불량품’ 혹은 ‘함량

미달 학생’을 계획적으로 생산해 온 것이다(한숭희, 2012). 한마디로 한국교육

에서 보여주는 교육의 공적 외양은 ‘국가주의’로 환원된, 불철저하고 취약한 양

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2) 교육의 사유화와 불공정한 학교선택

신자유주의 사조는 보건, 복지 그리고 운송 체제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에

도 동시에 파고들었다. 신자유주의 정책 주도로 이루어지는 ‘교육의 민영화’는

공적 영역을 더욱 기업처럼 운영하기 위해 사적 영역으로부터의 기술과 실천들

을 교육 영역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윤 창출을 위해 사적 영역의 참

여가 가능하도록 공교육 서비스를 개방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교육의 ‘사유화

privatization’라고 할 수 있다. 사적 열망이 ‘사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1995년 5·31 교육개혁 전후라고 볼 수 있다. 5·31 교육개혁에

의해 수요자 중심 교육 및 학습자 중심 교육이 부각됨에 따라 1949년 제정 이

후 39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도 명시되지 않았던 ‘학부모교육권’―학교선택권

과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한 학부모 참여권―이 1997년 교육법 재편에 따라 법령

에 반영되었다. 1990년대에는 학부모, 교사, 시민들의 교육운동이 활발하게 전

개되었고, 그 성과의 하나로 ‘5·31 교육개혁방안’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5·31

교육개혁 조치 이후 평준화 해체와 경향과 함께 공립형 자율학교와 자립형 사

립학교의 강한 부상으로 나타났다. 5·31 교육개혁 이후 한국의 교육은 시장주

의에 기초한 경제 논리를 바탕으로 경쟁 중심의 교육정책이 추진되었다. 그 결

과 교육은 서열화와 차별화, 획일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경쟁주의 교육체

제가 더욱 본격화되면서 일제고사 등 획일적 시험과 함께 경쟁 중심주의, 서열

주의, 차별주의 정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 중심적 교육 권한 행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육에서

개인들이 지니는 사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경향이 현저해졌음

을 보여준다. 5·31 교육개혁 이후 현재까지는 영미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세

계화가 한국교육에 적용되어온 과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은 교육의 다양성(특성화 고교와 자립형 사립고 설립, 수준별 교육과정, 선택형

교육과정 도입)과 선택권, 학교의 자율성 증가 및 책무성 강화를 근간으로 추

진되어 왔다. 당연히 사회적 통합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종합고등학교comprehensive

high school 체제는 경쟁과 개별주의를 지향하는 시장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이러한 세계화 사조의 대세에 눌린 종합고등학교,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

학교는 ‘침몰하는 학교’ 또한 ‘실패하는 학교’로 낙인이 찍히고 있다.


(3) 교육의 상품화와 일제교사

일찍이 해방 후부터 한국 교육은 돈을 주고 사는 ‘상품commodity’으로 자리잡

아왔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인 것

과 달리, 한국의 학교는 당연히 ‘내 돈 내고’ 다니는 것이 되어왔다. ‘내 돈 내고’

학교에 보내는 것과 ‘내 돈 내고’ 과외를 시키는 것 사이에 하등의 차별성이 존재

하지 않았다. 학교가 학원과 다른 점은 국가 인정 졸업장을 준다는 것일 뿐, 어

느 것도 ‘공공성’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교육을 ‘내 돈 내고’

구매하는 사치품이나 사유 재산쯤으로 생각했고, 명문학교는 고가의 '명품’ 브

랜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교육 명품을 구매하는 수단도 예전에 비할 수 없

을 만큼 다양화해져서, 예컨대 원정출산, 명품 유아교육, 영재교육, 특목고, 교

육특구를 향한 부동산 열풍 등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렇게 구매력에 따른 욕망의 위계가 반영되도록 학교들이 서열화되고, 보

다 정확한 상품 정보 제공을 위해 ‘일제고사’라는 표준적 잣대로 위계적으로 학

교의 품질이 매겨진다. 이 결과는 소비자들의 구매 준거로 작동되도록 공시된

다. 양화되기 어렵고 측정할 수 없는 가치들은 계산을 위해 버려지며, 학생은 더

좋은 상품으로 시장에 나가기 위해 스펙이라는 상품 명세서를 작성한다.

지금 한국의 교육은 시종일관 주입식 수업과 객관식 시험을 고수해왔다. 교

사가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무수히 많은 파편화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학생들은 수동적이고 충실하게 암기한다. 그리고 이 일방적 주입식 결과를 정

답과 오답이 명백히 주어지는 객관식 시험으로 평가한다. 그런 다음 정확하게

양화된 점수에 따라 유, 무형의 상과 벌이 주어진다. 이때 학생의 주관성과 자

율성은 ‘블랙박스’로 처리된다. 솔직히 말해 한국 학교의 교실은 ‘스키너 상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거기서는 쥐나 비둘기 같은 동물들 대신 수십 명의 학생들이

‘스키너’가 된 교사들이 외적 자극에 주관적 성찰 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순간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학습한다. 시카고 대학의 총장을 지

낸 너스바움은 시험을 위한 일제고사는 수동적인 판에 박은 수업의 분위기를

양산할 뿐이며, 획일적인 충성심과 순응을 요구하고, 학교 간의 차이에 무감각

하며, 창의성과 영감을 교육과정으로부터 몰아내고, 전문적 판단에 대한 교사

의 능력조차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Nussbaum, 2011: 221). 시험

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로지 시험 성적만을 바탕으로 교육자를

해고하고 성과급을 주며 학교를 폐쇄한다면 공교육의 목적을 전면적으로 왜곡

하는 것이다(Ravitch, 윤재원 역, 2011: 237, 251, 350). 학부모와 교사들은 시

험 성적으로 학교 교육 성과를 가늠할 수 없으며, 시험을 통한 학교 교육 개선

시도는 국가가 아동 학대를 공식적으로 재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4) 학벌사회와 길들이는 교육

결국 공교육은 이름만 남았을 뿐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실상은 끊임없이

교육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의 무한 경쟁으로 치달았다. 이 경쟁 체제는 체계적

으로 일정 수의 실패자를 양산하도록 프로그램화되었다. 학교가 규율사회에서

억압사회로 이행한 것은 ‘학벌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김상봉, 2004). 학벌

사회에서는 대학 서열 피라미드의 한 단계라도 더 높은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

는 것이 대학 이전 학교들의 지상 과제가 되며, 그 결과 학생들은 일찍부터 무

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학벌사회가 공공해지면서 이 무한 경쟁

이 시작되는 연령이 점점 더 낮아져, 심지어는 엄마 뱃속에서 태교와 더불어 시

작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어지거나, 인간을 이

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대신 인간을 억누르려고 한

다. 이러한 성향의 형성은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부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

이 지적 능력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


이다(김덕영, 2014: 265).

학벌사회가 형성되면서, 다시 말해 초·중·고등학교가 대학의 식민지가 되

고 그에 따라 학교가 규율사회에서 억압사회로 이행하면서, 아동기와 청소년기

가 부정되었다. 억압사회에서는 이미 영, 유아기부터 공부, 공부, 공부 하면서

지적 능력만 과도하게 강요하고 다른 인간적 능력에는 무관심하거나 그런 능력

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렇게 한국의 억압사회는 학교를

‘감옥’으로 만들어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모든 인간적인

욕구와 욕망을 유보한 채 공부에만 전념하고 1점이라도 높은 점수를 올리도록

총체적으로 감시하고 처벌하는 제도가 되어버렸다. 학교 공간의 주인은 학생과

교사가 아니라 어른이다. 달리 말해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이 즐겁게 배우고,

성장을 위해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조라기보다는 어른이 아이들을 편하게

감독하고 지시하기 위한 구조인”(김덕영, 2014: 270)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 마음의 교류와 소통이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학교는 규율사회에서 점차 억압사회로 이행하였다. 한국의 학교가 규율사회를

넘어서 억압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은 학생들의 자폐증, 대인 기피증, 우울증이

나 노이로제 같은 정신질환, 자실 충동과 자살, 교실 붕괴, 학교 폭력, 학생들에

의한 교사 폭행 같은 병리적인 현상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억압사회

는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먼저 가정은 아이들

이 학교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영혼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감옥이 되고 있다. 다만 감시와 처벌의 공간이 바뀌고, 그 주체가 교사

에서 부모로 바뀔 뿐이다. 그리고 학원은 억압사회의 이념을 가장 철저하게 구

현하는 곳이다. 입시와 시험 말고 그래도 이런 저런 것이 이루어지는 학교와 달

리, 학원은 오로지 입시와 시험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공

부 이외의 인간적 욕구와 욕망이 억눌리면 순치된 인간으로 만들어질 뿐이다.


즉 노예로 길러지는 것이다.

3) 세계교육개혁의 새로운 흐름

한국 공교육의 현실을 세계교육의 변화 흐름을 통해 재조명할 필요가 있

다. 세계교육개혁운동은 지금까지 네 가지 길을 걸어왔다. Andy Hargreaves

와 Dennis Shirley는 『The Fourth Way(2009)』와 『The Global Fourth

Way(2012)』에서 교육개혁의 네 가지 방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면서 이제 네

번째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교육개혁을 위한 제1의 길은 1960~1970년대에 사회적 안전망이 잘되

어 있는 복지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육의 변화 이론이다. 정부의 강력한 지

원, 교사의 높은 전문적 자율성, 교육 혁신의 초점과 질에 있어서 다양성을 특

징으로 한다. 교사의 폭넓은 재량을 바탕으로 자유학교, 탈학교 등 학습자 중심

의 혁신이 일어났다(Hargreaves & Shirley, 2009: 3-5).

그렇지만 교사와 교육과정의 자율성은 높지만 혁신은 널리 공유되지 못하

며, 학교마다 그 혁신의 질과 방법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어 일관성이 부족했

다. 즉 제1의 길은 혁신성은 높지만 정치·경제적 신뢰가 약화되면서 일관된 교육

의 목표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한편 1970년대 중반에 일어난 1차 오일쇼크

이후 재정에 긴축 운영이 필요했다. 이것이 시장주의 도입의 계기가 되었다. 아

울러 성취기준을 제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표준화, 시험, 책무성이란 개념 도입

을 통해 제1의 길이 부족했던 일관성을 보완하고자 했다. 또 효율성 제고를 위

해 학교 선택제와 경쟁이란 변화 전략을 통해 시장주의를 강화하였다. 이것이

시장과 표준화의 기치를 내건 제2의 길이 탄생된 배경이 되었다. 제1의 길의 모

순과 비일관성, 재정적인 압박, 전통과 확실성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정부의 중


앙집권적 통제, 교육 목표의 표준화, 시장주의에 의한 경쟁으로 인한 교사의 자

율성 상실을 특징으로 한다(Hargreaves & Shirley, 2009: 8-12).

그런데 불행하게도 제2의 길은 교육적 폐해가 너무 컸다. 교육목표를 사전

에 상세히 기술한 교육과정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서 모든 학교들은 학습이 시

험 준비 중심으로 가르쳐지고, 시험에 나오는 과목만 가르칠 뿐만 아니라 교사

의 자발성까지 죽이게 되어 ‘하향식 교육개혁’의 추진은 거의 다 실패로 돌아갔

다. 제2의 길의 변화 원리는 공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를 대입시험 준비를 위해

문제풀이를 하는 훈련기관으로 전락시켰고, 또한 학교를 낙오자를 양산하는 대

규모 공장처럼 변화시켰다(Hargreaves & Shirley, 2009). 지금 한국의 상황도

이와 유사한 길목에 갇혀 있다. 이렇게 진정한 교육을 죽이는 제2의 길의 방식

에 익숙한 국가/정부와 이런 교육적 폐해에 분노하는 계층 사이에 교육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히 ‘계급전쟁’이라고 불릴 만하다.

제2의 길의 단점이 극명하게 나타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주의와 국가

통제의 장점을 결합한 제3의 길이 1980년대 영미를 중심으로 모색되었다. 좌파

의 경직성과 우파의 불평등성을 모두 피하고자 하는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

다. Anthony Giddens 등의 이론에 기반을 둔 영국의 블래어 정부가 대표적이

었다. 정부 지원과 시장 경쟁의 장점을 살리고, 하향식과 상향식을 절충한 행정

을 통해 교사의 자율성과 책무성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전문가

와 대중이 변화의 주체로 참여한다. 그러나 관료주의, 과학기술주의의 맹신, 주

어진 목표달성에 급급한 학교현장의 수동성 등의 문제점을 동일하게 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좌우를 아울러는 중도적 길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신자유주

의적인 우파 이념에 편향된 교육개혁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제3의 길에서 나타

난 정부의 관료주의, 교육의 성공 여부를 학업성취도 측정 자료에 의존하는 과

학기술주의의 맹신과 폐해, 정부가 제시한 것을 따르기에 급급한 학교 현장 등

의 문제점들에서 제4의 길을 찾게 된 것이다.


[표 4] 교육변화의 길

제1의 길 제2의 길 제3의 길 제4의 길

통제전문주의,

정부의 강력한 지원

관료주의(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

시장

관료주의, 시장,

전문주의

정부 지원과 시장

경쟁의 장점을 살림

민주주의, 전문주의

목적 혁신, 영감 시장, 표준화 성과, 파트너십영감적/혁신적/

포용적 사명

신뢰 수동적 신뢰 적극적 불신 공적 신뢰 적극적 신뢰

지역사회

참여매우 결여 학부모의 선택 지역사회에 봉사

공적 참여,

지역사회 발전

교육과정 단절적 혁신상세하게 규정된

표준화

코치와 지원을

증대하는 다양한

규정

조정, 발달

가르침과

배움절충, 불균등

표준화와 테스트

요건에 직접 지시

여전히 주문에

맞추어진 전제적

자료

증거 제시, 마음을

기울인 가르침과

배움

전문주의 자율적 탈-전문화된 재-전문화된

양질의 교사가

변화의 주체

능동적이고 전문적

교사단체

전문적

학습

공동체

자율재량부자연스러운

동료성

자료에 근거,

활성화된 전문성

증거 정보에 근거

살아있는

학습공동체

평가와

책무성국부적 표본

고부담 목표,

인구조사에 의한

테스트

증대된 목표,

자기-감시, 작위적,

부여된 인구 조사에

테스트

표본에 의한 우선적

책임, 뜻을 가진,

공유된

자율성과 책임성의

균형

수평적

관계

자발적

학습자 중심의

혁신 시작

경쟁적 네트워크화된네트워크와 함께

지역 기반 협동

사례

세계 2차 대전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복지국가

1980년대 후반부터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됨.

한국 상황과 유사

1990년대 후

영국의 블래어

노동당 정부

미국의 클린턴/

오바마 민주당 정부

독일의 슈뢰더

사민당 정부의 교육

현재의 핀란드 교육

제4의 길로

근접하고 있는 국가

(싱가포르, 캐나다

온타이오 주/알버타

주 캘리포니아 주

(Hargreaves &

Shirley, 2012)

자료: <교육변화의 길>(Hargreaves & Shirley, 2009)


제4의 길은 정부 주도 학업성취도 향상이나 학업성취도 격차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다른 교육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도덕적으로나 영감적

으로 건강한 교육 목적/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또 경제적 활력, 사회통합, 그리

고 민주적 삶의 방식을 모두 고려한 지속가능한 길을 추구한다. 제4의 길은 영

감과 혁신의 길이고, 책임감과 지속 가능한 길을 열려고 한다. 엄격한 관료주의

와 시장주의 대신에 대중과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변화를 일어나도록 한다. 번

영, 기회, 창조를 목표로 하는 사회적, 교육적 비전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을 실

시한다. 관료주의, 표준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과학기술주의 등의 방해요인

을 극복한다. 교사는 정부의 강한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지만 학부모, 지역사

회, 일반 대중으로부터의 독립성은 감소함으로써 자율성과 책임성이 균형을 이

룬다. 학생들의 일상적 삶에 학부모의 관련 정보가 커지고, 지역사회는 학교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일반 대중은 주어지는 서비스의 수동적 소

비자에 머물지 않고, 교육의 목적을 결정할 때 적극 참여한다. 교사의 전문성과

신뢰에 기반하고, 교사와 대중의 참여가 활발하다. 일반 주민, 교사 그리고 정

부 사이에 평등하고 상호작용이 활발한 파트너십이 형성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부모, 교사, 정부 모두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다.

4) 새로운 교육 실험

(1) 교육혁신의 사례

197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 흐름(정부개입의 축소와 시장경제의 확대)이

일어나고, 1980년대 초엽부터는 보수 정당이나 진보 정당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정당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정책을 크게 수용하는 흐


름을 보였다. 과도한 정부 개입으로 인해 ‘기업가정신’이 고갈되고 있다는 문제의

식이 당시의 세계적 사조였다. 이 사조의 핵심은 노동시장과 서비스 제공에 대한

부적절한 국가개입이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결과는 근본적으로 ‘유모국가(nanny state;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비유)’

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이제 ‘경쟁국

가’로의 패러다임 이동을 해야 한다는 이곳저곳에서 제기되었다.

영국의 보수당, 호주의 자유당, 미국의 공화당은 1980년대 후반 종합학교의

비효율성을 공격하면서, 그 대안으로 특성화 학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

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1980년대가 되면 교육 시장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유

형의 학교 등장을 보게 된다. 영국의 아카데미Academy School와 첨단학교leading edge,

미국의 헌장학교Chapter School, 호주의 선택학교/영재학교Selective School의 실험이 대

표적이다. 학교의 다양화는 곧 '학교 선택제도'의 고양을 통한 학교의 세분화를

가져왔다. 즉 학교 선택제도는 공립학교의 다양화 유도와 비-공립학교의 급속

한 성장을 가져왔다. 비-공립학교의 부상과 학부모의 학교선택의 강조는 공립

형 자율학교나 사립학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통해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나

타났다. 작은 공립학교는 효율성을 이유로 통�폐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

립학교의 특성화와 다양화, 학교의 자율화와 자주관리 운영 등으로 나타났다.

교육과 학생을 상품화하는 학교시장, 즉 유사 시장 또는 학교의 준시장화는 학

교의 구조조정을 가져왔다.

이렇게 되자 신자유주의 이념을 대변하는 공립형 자율학교 또는 선택학교

가 강력하게 추진됨으로써 사회적 통합 정신을 보여주는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 정신은 급속도를 내며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한 마디로 이를 ‘종합중등학

교의 쇠퇴 또는 '종합학교의 사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종합학교의 쇠퇴는 곧

청소년들의 실질적 기회가 사회의 중요한 위치로부터 박탈되는 결과를 야기하

게 되고, 나아가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고착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학교의 기업화, 시장화, 상품화를 가

져왔다. 한마디로 학교교육의 계급재생산 조짐을 보였다. 결국 교육의 경쟁과

시장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불리한 계층의 아이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

를 더욱 황폐한 조건에 처하게 하였다.

이런 현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국가교육정책은 영국(SATs), 미국(NCLB), 호

주(NAPLAN) 모두 기본적인 학업 능력을 평가하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검

사를 시행하였는데, 이 시험들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

게 일어났다. 이 시험은 원래 교사가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여 도와주도록 권장하는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한 전국적인 학업성취도

검사였다. 전국학업성취도 검사가 도입되면서 자체적으로 표준화된 시험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것의 결과가 모두 웹사이트에 공개되었다. 또한 전국 학교별

성적이 신문에 공개되면서 정부재정이 시험결과에 따라 지급되고, 교사의 성과

와도 연결시켰다. 그런데 정책 당국자의 이면에는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학교를

개혁하고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 결과 학생 간,

학교 간 경쟁을 유발하는 시험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성적이 낮은 학교는 왜 성

적이 낮은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없이 질책을 받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사 또는 교장이 학생들의 시험부정행위를 눈감아 준

다든지 또는 조장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심지어 교사들 사이에 시

험부정이 일어나기도 하며, 학교가 이런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되는 경

우가 많아졌다. 과연 정책결정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좋은 정책결과라고 판단하

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시작하였다(Sydney Morning Herald, 13, May,

2013). 이렇게 되자 2011년 OECD는 전국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교사들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평가절하하고, 믿음을 약화시키고 있

다고 지적하게 된다. 전국학업성취도평가 시험이 시행되면서 교사의 역할과 권

한이 축소되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희생으로 하여 교육산업


이 번창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문제였다. 또한 전문가들은 표준화된 시험은 아

동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현재의 표준화된 시험에 맞는 수준에 멈추게 한

다고 경고하였다. 정부는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전체 평균을 향상시키고자 하

지만, 실제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다. 학교들이 교육 활동, 스포츠 활동, 과

외 특별활동 등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으나, 그것이 곧바로 '학업성취'로 귀결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대안적 패러다임의 등장과 함께 제2, 제3의 길의 교육개혁 방식이 교육

혁신을 가로막는 세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제4의 길이 제시되

고 있다. 제2의 길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모색된 제3의 길이 여전히 제2의 길의

단점인 세균의 독소를 완전히 퇴치하지 못하자, 싱가포르와 캐나다 일부 주(예:

온타리오 주, 알버타 주),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등은 모두 핀란드 교육개혁의 성

공원리를 기반으로 제4의 길 모색에 나섰다.

(2) 핀란드의 교육 실험

제4의 길을 제시한 대표적 사례는 핀란드의 교육개혁 방식이다. 과연 핀란

드의 국가경쟁력 5년 연속 1위인 핀란드의 교육 비결은 무엇일까? 핀란드는 신

자유주의적 세계교육개혁운동에 빠져들지 않았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정

책이 교육정책의 새로운 담론으로 영향을 강력하게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핀

란드는 지배적인 시장 중심적 교육개혁을 느리게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아래 표

에서 보듯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향상시키기 위한 핀란드 교육정책의 주요한 원

리와 그와 관련된 전략은 세계오늘날 핀란드의 교육정책의 중요한 흐름은 지

난 40년 동안 핀란드 사회 내에서 보여준 다양성, 신뢰, 모범, 존경의 문화를

창조해 왔던 시스템적이고 가장 의도적인 개발의 결실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Sahlberg, 2011).


핀란드는 무상교육을 실시하며, 경쟁 중심의 교육을 하지 않고,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도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교육을 한다. 그러다 보니 핀란드

의 교육은 철저히 학교 현장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정해진 교육제도 틀

속에서는 다양한 학생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조

건을 철저히 정비하고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내용을 조정하고 그 질을 유지하

며 지방자치단체와 학교는 교육과정을 결정하고 교사 각자가 교육방법을 선택

한다. 핀란드에서는 2년마다 교사평가가 있지만, 학생들이 모두 다르듯 교사의

일도 달라지는 만큼 교사능력의 비교기준이 될 수 없고, 단지 학교의 개선책을

찾는 과정의 일환일 뿐이다(후쿠다 세이지, 2009). 핀란드는 교사의 자율적 전

문성을 매우 존중하고 있다. 그러기에 핀란드는 교사들을 우수한 인재로 충원

[표 5] 세계교육개혁과 핀란드의 교육개혁 비교

세계교육개혁(신자유주의)의 지배적 흐름 핀란드의 교육개혁 흐름

표준화

• 중앙에서 규정한 명확한 고도의 학업수행

표준의 설정

• 교사와 학생은 결과의 질을 증진시키도록 함

유연성과 느슨한 표준화

• 기존의 좋은 실천에 기반을 둔 학교 중심의

교육과정의 혁신

• 정보와 지지의 조정을 통한 학습목표의

설정과 네트워킹

문해력과 수학

• 교육개혁의 주요목표를 읽기, 쓰기,

셈하기와 자연과학에서의 기본적 지식과

기술에 둠

창조성과 결합된 폭넓은 학습

• 가르침과 배움의 중심을 인성, 도덕성,

창조성, 지식과 기술 등에 있어 모든 측면의

개인 성장에 공평한 가치를 부여하는 깊고

넓은 학습에 둠

결과적 책무성

• 승진과 장학과 결합된 학교수행과

학업성취, 성공의 주요한 수단으로서

표준화된 시험 등 책무성 척도에 기반을 둔

학교와 교사에 대한 보상과 처벌에 둠

지성적 책무성

• 학생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그들의 학습발전을 안내하는 데

있어 교사와 교장의 전문성에 가치를 두는

교육체제 내에서 지성적 책무성 정책을

선택하고, 신뢰문화의 점진적인 건설에 둠

자료: Sahlberg, 2007: 152


되며 교사의 사회적인 평판 역시 매우 높다. 교육 체제도 중요하지만, 좋은 교사

의 양성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핀란드의 교육이 보여주는 가르침과 배움의 전형적인 특징은 기존의 교수법

원리를 소중히 여기면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방법을 갖도록 하

는 것이고, 혁신을 혁신적 방법으로 학습하도록 하고, 학교에서 창조성을 함양

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것은 새로운 교수법을 도입하면서도 전통적 수업과 학

교조직을 공존시키고 있다.

핀란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한다. 공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배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교사는 배움을 격려하고 학

생 개개인의 진도에 맞춰 언제든 도와줄 태세를 갖추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

이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고 공부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수 있도록 기

다린다. 핀란드는 학생이라는 집단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학습에 초점을 둔

다. 학습 속도는 개인에 따라, 같은 개인이라도 시기에 따라 균일하지 않다는 점

을 존중하고 있다. 그래서 16세까지는 시험을 치러 개개인을 비교하지 않는다.

핀란드 학생들의 사고력에는 책 읽는 습관에서도 기인한다. 핀란드는 초등

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한다. 인

재양성을 위해 국가가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후학양성을 위해 국민들은 수

입의 30~60%의 높은 세금을 내지만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핀란드에서는

대졸자와 직업학교 졸업자의 임금차이는 크지 않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공부뿐

만 아니라 기술을 배우는 곳이다.

핀란드의 초등학교의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동한다. 뜨개질을

하거나, 소파에서 쉬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물을 마시러 가는 학생도

있다. 교사는 그런 학생들의 행동을 인지시켜줄 뿐, 혼을 내거나 제재하지 않는

다. 자신이 수업을 놓친 부분은 학생 자신의 행동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에서는 16세까지의 교육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

들에게 경쟁을 시키지 않음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를 구분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둔다. 경쟁이 없는 교실에서 학생들은 서로 배

우고 가르치며 배워간다.

또한 공부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재미있어서, 하고

싶기 때문에 한다. 교사는 교과서를 직접 채택할 수 있으며, 지방자치단체 역시

자율적으로 교육방침을 정할 수 있으며, 국가는 기본 교육 정책에 어긋나지 않

으면 이에 간섭하지 않는다. 핀란드 정부는 학교 간 경쟁을 조장하지 않고, 학교

를 평가할 때도 교직원을 지원하고, 돕기 위한 목적으로 한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존경을 받으며, 초등단계 6년 학급담임 또는 중등단계

교과담임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5년 동안 다녀야 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해

야 한다. 게다가 지원자의 10%만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또한 핀

란드의 교사의 법정 근무시간은 1,600시간으로 한국의 1,613시간과 비슷한데,

핀란드의 경우 근무시간의 60%를 수업에 할당한다. 이는 교사의 복지를 높여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다. 교사는 수업시간이 끝나는 2시 이후에는 학교

에 남지 않는다. 수업 연구 등은 학교가 아닌 자신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교사는 공무원으로 분류되어 보통 오후 6시

까지 학교에 남아서 근무를 해야 한다. 야간자율학습이 의무화되어 있는 고등

학교의 교사의 경우는 교대로 밤늦게까지 남아서 학생들을 감독해야 하므로 휴

식 부족, 피로 등으로 인해 교육의 질이 저하될 수도 있다

또한 핀란드 교육에는 성별, 국적, 장애에 대한 차별이 없는데 장애를 가진

학생이나, 이민을 온 학생들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모자란 부분은 특별 활

동을 통해 보충을 하게 된다. 핀란드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그냥 두고,

잘 못하는 학생들을 뒤쳐지지 않게 힘쓴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핀란드는 수업시간이 세계 최저 수준이


며, 교외·가정 학습시간 또한 가장 적다.

핀란드의 부모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방과 후에는 학교에서 음

악, 예술, 발레, 댄스, 연극, 어학, 수학, 과학 등을 배우는 방과 후 활동을 한다.

이 활동들로 학생들은 영어, 수학, 과학 등 말고도 어려서부터 다양한 활동을

접할 수 있다. 학교 교육 외에 여러 체험, 감성 활동은 아이들의 창의력, 감수성

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핀란드는 대학들이 평준화되어 있으며, 대학입시 시험은 1년에 2회 치르며

4과목이다. 객관식이 아닌 기술식으로 어떻게 지식을 응용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기술식 시험은 단시간 공부해서 점수를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몇 점을 맞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래 직업에 필요한 과목에서 얼

마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핀란드 교육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는 과연 공부가 뒤쳐지는 학생들을 이

끌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부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들을 수준

에 맞게 보충학습을 진행하고, 수업에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

리 대학생들도 시간을 내서 아이들에게 일대일로 눈높이 수업을 하거나, 다양

한 체험활동도 함께하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에도 이러한 방과 후 교

실 같은 제도가 있는 것 같지만 초등학생 저학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

아서 아쉽다.

또한 중학교에서는 플루트, 제과제빵, 테니스 등의 방과 후 활동이 있지만,

유상교육이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쉽다. 내 초등·중등

학생 시절의 경험으로는 이러한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은 과반수 이하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교에서 단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닌

체험 활동을 많이 접하게 되면, 학교를 다니는 즐거움이나 진로탐색에도 큰 도

움이 될 것이다.

무상교육, 다양한 방과 후 활동, 학생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 자유로


운 교실, 공부에 얽매이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의 모습

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나라도 돈이 없어도 공부를 할 수 있고, 공

부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

었으면 바란다. 입시경쟁과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아침 일찍 학교를 나서

서 피곤에 절어서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닌, 활기차고 생생하고 풋풋

한 청소년들로 가득 차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서 대학생이 돼서도 취업을 위

해 토익, 토플 점수를 위해, 스펙을 위한 자격증 취득에 연연하는 학생들이 아

닌, 개성과 야망과 창의성이 넘치는 학생들로 대한민국이 세계에 우뚝 서는 날

을 꿈꿔본다.

세계 각국의 학생들의 숙제나 자신의 공부를 하는 시간(주 평균)을 비교해보

면 핀란드는 약 7시간, 한국은 약 19.49시간, 일본은 약 8.46시간, 미국은 10.8

시간 등 평균은 약 10.41시간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평균에 비해 공부시간이 많

은데, 다른 나라의 지표와 비교해보면 숙제, 과제를 하는 시간은 다른 나라와

비슷하지만, 학교의 보충학습은 4.85시간(타국 평균0.82시간), 학원이나 입시

학원에서의 수업은 3.80시간(타국 평균0.86시간), 기타 공부는 4.18시간(타국

평균 1.62)으로 월등히 높다.

(3) TFA 실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교사양성 및 지원을 하는 배움을 나누는 비

영리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으로서 TFA(Teach For America/미국을 위한 교

육)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Kopp, 최유강 역, 2009; Kopp, 2012). 미국의 빈민

가 공립학교의 아이들은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존재들이다. 교사들도 그러한 곳

으로는 잘 가려 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말썽만 피우는 아이들이란 생각에 그들

에 대한 희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욱 삐뚤어진다.


당연히 문맹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1989년 프리스턴 대학졸업반이었던 웬디

콥Wendy Kopp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미국의 공립교육의 실패와 교육의 불평등을

목격하고 빈민지역 공립학생과 중상류층 사립학교의 학생 평균 실력의 차이의

문제를 보면서 교사들의 평화봉사단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대

학 졸업생들을 훈련시켜 빈민지역 공립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웬디 콥은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

을 선발하여 그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사람들은 비현

실적이라며, 안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고 우선순위를 설정

하여 하나하나 성취해가기 시작했다.

부딪치는 난관들이 많았지만, 또한 미국이라는 특성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

다. 기부문화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Philanthropy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엔 그를 외

면했던 사람들도 TFA의 비전과 그녀의 노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과는

설립 이후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TFA의 비전에 동의한 많은 대학 졸업생

들이 지원했고, 선발된 학생들은 교사양성캠프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

야 할지를 배웠다. 이들은 정식교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른 교사들보다 부지런했고,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결과 아이들

의 학업 성취도도 많이 향상되었다. TFA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학 졸업자들에

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교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계속 교사직을 수행

한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TFA 교사로 활동한 경험을 자신의 분야에서 유익하

* 1989년 웬디 콥의 프린스턴 대학 졸업논문에서 시작되었고 미국 대학 졸업생들이 교원 면허 소지와 관

계없이 미국 각지의 교육 곤란 지역에서 2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국 뉴욕주에

본부를 두고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명문대 졸업생들이 5주간의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 미국

내 가장 가난한 지역에 교사로 배치돼 2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선호도와 지원자를 봤

을 때 엄청난 경쟁이 예상되는 이 회사가 바로 TFA이다. 2007년 비즈니스 위크 미국 대학생들이 선호

하는 직장 10위, 2010년 미국 전체 인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취업 지원 랭킹에서 구글과 애플

을 제치고 1위에 올랐으며 매년 신입사원의 15%를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 졸

업생으로 채우고 있다.


게 활용하고 있었다.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

이다. TFA는 초창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그들의 비전이 그들의 성공

을 도왔다. 미국의 공교육 제도가 해결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

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역교육위원회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TFA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무모한 도전을 해 멋지게 성공을 쟁취해낸 것이다.

TFA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 명문대 졸업생들의 가장 인기 있는 첫

직장 중 하나가 되었다. TFA은 미국 전역의 우수한 대학생들을 선발하여 교사

로 봉사하게 하는 비영리단체로 1990년에 설립되어 2007년 이후 미국인재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기업 10위 안에 드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

다. 선발된 대학생은 단기 집중훈련을 마친 후 2년간 미국 내 빈민지역 공립학

교에 일선 교사로 배치되고 빈곤 지역의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젊고,

열정 있는 미국의 대학생들의 작은 헌신은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TFA는 이를 바탕으로 1991년부터 공립학교에 강사를 보내기 시작한다.

TFA가 시작할 때는 당초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강사에 대한 평가 및 수강

생들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우려를 불식시킨다. TFA는 현재 이른바 명문

대학 학생들의 최초 취직처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0년에는 4,500명을 뽑

는데 4만 6천여 명이 몰려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하버드와 예일 졸업생

18%가 지원했으나 이 가운데 20%만이 교사로 선발되었다(ttp://www.teach

foramerica.org). 한국과 달리 미국은 교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래서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원을 나오지 않아도 학사 학위만 있으면 ‘비정규직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TFA도 정부가 인정한 대안교사 양성프

로그램 중 하나다. 첫해 500명을 시작으로 올해는 46개 지역에 5,800명의 교

사를 파견했다.

TFA가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 성공을 거둔 것은 탁월한 교육적 효과 때문

이다. 미국 내 교육 연구 보고서들은 TFA 교사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수학·독


해·과학 등에서 정규 교사들이 가르친 학생들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음을 입

증하고 있다. TFA의 경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인생도 근본적으로

바꿔놓곤 한다. TFA 평가가 높은 것은 열정적인 교사를 뽑으니 교육이 바뀐다

는 사실 덕분이다. TFA 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지역

에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으로 시작된 교육의 나눔 운동이다. 빈민가이기에 어

쩔 수 없이 여러 혜택들에 소외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

는 교육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임이자,

조금씩 성장해나가 현재는 여러 성과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주목하고 있는

시선들도 많아지고 있다.

(4) 혁신학교 실험

한국의 ‘혁신학교innovative school’란 효율성과 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교육의 본

질을 찾아가자는 새로운 교육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혁신학교는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민주적 자치공동체와 전문적 학습공동체에 의한 전인교육을

실현하는 공교육 혁신의 모델학교로 정의할 수 있다(성열관, 2014). 혁신학교는

1990년대 후반 농촌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때

성공적인 학교 모델을 만들어 냈다. '작은 학교 살기기 운동'은 농촌의 작은 분교

에서 학생 수가 줄어들어 폐교까지 가는 과정에서 학부모와 교사,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학교를 살리려는 노력에서 출발하였다. 이런 교육 주체들의 연대와 협

력은 학교의 문화를 집단 지성의 문화로 만들었으며, 그 바탕 위에 학교는 다양

한 교육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집단 지성으로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였기

에 작은 학교들의 교육적 실험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

가 남한산초등학교이다. 남한성초등학교도 2000년에 폐교될 운명에 처한 학교

였다. 처음에는 ‘학교 지키기’ 수준이었으나 차츰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으로


진화하였다(송순재, 2012: 100).

남한산초등학교와 같은 작은 학교 운동의 결과는 실패한 기존의 공교육도

교육 주체들의 협력과 열정, 헌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혁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

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공교육 혁신의 새로운 모델로서 작은

학교 운동은 농촌의 소규모 학교라는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초

기 혁신학교는 대체로 낙후된 지역의 소규모 학교에서 질 높은 교육을 통해 학

부모의 만족을 높이고 나아가 공교육 정상화 모델을 전체 학교로 확산하고자

시작하였다. 2014년 현재 전국에 580개교가 있다. 그리고 2014년 6/4 지방선거

이후 혁신학교의 설립과 확대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진보성향 교육감이 13

명이나 당선되면서 혁신학교는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혁신학교의 목적은 교육 정상화의 성공적인 사례·모델 창출 및 보급,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으로 교육만족도 제고, 교육 양극화 해소를 통한 교육복지 실현,

혁신학교 5대 기본 가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2009년 경기도교육청 혁신학교

추진 계획서에 제시된 혁신학교의 5대 기본 가치는 자발성, 지역성, 창의성, 공

공성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혁신학교 철학은 2011년에는 공공성, 창의성, 민주

성, 역동성, 국제성으로 변화 발전하였고, 2012년 경기도교육청 혁신학교 추진

계획에서 그 의미가 정교화되었다.

혁신학교는 거시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의의와 성과가 있다(성열관, 2014:

49-50; 이윤미, 2014: 27-28). 첫째, 혁신학교는 한국 공교육의 새로운 시도로

서 학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교육 혁신 프로젝트로서 의의가 있다. 둘째, 혁신학

교는 우리 교육의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담보로 하는 학교이다. 셋째, 혁신학

교는 다양한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이다. 넷째, 혁신학교를

통해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의 기반이 강화되고 있다. 혁신학교와 일반학교의

비교연구에서 학교만족도 및 교육효과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혁신학교가 보여주고 있는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혁신학교가 한국 공교육의 희망으로 자리매

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고려되어야 한다(성열관, 2014: 49-50;

이윤미, 2014: 28-30). 첫째, 미래지향적인 학력관 및 교육과정의 제시가 필요

하다. 둘째, 혁신학교 추진 동력을 마련하는 문제이다. 혁신학교는 교직원의 자

발성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학교이다. 셋째, 혁신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 체제 강

화 문제이다. 혁신학교는 구성원의 열정을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는 체제와 시

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4) 한국교육의 새로운 방향과 사회적 기업가에게 주는 함의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적 교육개혁의 흐름 중 제2의 길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제2의 방식인 학교의 준시장화는 학교를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장소로

만들었다. 그동안 세계의 주류적 동향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세계 대부분의 지

역에서 나타난 시장 개혁의 승리를 볼 때 ‘비즈니스 모델’을 학교에 적용하는 것

이 시대적 흐름의 대세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서방사회는 경제적 곤란에

직면하면서 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였다. 세계

질서의 흐름은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면서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나는 듯하였다. 그런데 국제 금융위기에서 보듯 오늘날 다시 자본주의의 쇠

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Hobsbawm, Wallerstein 등의 주장). 월가 점령 등 금

융위기에서 세계의 구조적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후기복지 사회post-welfare society의 교육이 대안으로 대두되

고 있다(Tomlinson, 2005).

이러한 가운데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핀란드 교육은 ‘빨리빨리’와

‘경제적 효율성’을 외치며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데 소홀한 우리 교육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혼이 없는 표준화’(Hargreaves, 2011: 343-346) 또는 ‘영

혼이 없는 탁월성‘(Lewis, 2007) 교육으로 치달은 한국교육의 귀중한 귀감이

되고 있다. 핀란드의 교육개혁의 방식을 통해 우리의 교육변화의 방향의 모색과

함께 새로운 교육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양질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근대의 학교제도가 정립되었듯이, 정보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정민승, 2012). 이제 세계

교육의 역사는 소수 지배집단의 배타적 교육단계에서 대중적 학교교육, 즉 공

교육 단계에 이르렀으며, 이제 ‘학습사회learning society’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

서 기존의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정보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평생교육의 담론들이 인간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기제

가 아니라 학습권과 문화적 민주주의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교육이 민주

화된 사회에 있어서는 교육을 위하여 학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위

하여 교육이 존재하는 것으로 된다. 교육권 우선의 시대로부터 ‘학습권 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김신일, 2013: 482-485).

둘째, 공교육의 학교를 비즈니스가 아니라 공공재가 되도록 발전시켜야 한

다. 학교가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처럼 작동하기를 기대하여 발전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교육제도의 문제를 넘어서서 한 사회의 건전

한 발전, 사회적 공동체성, 민주주의, 능력주의 등 수많은 가치를 훼손하고 있

으며, 향후 사회적 불안의 근원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성기선, 2014).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경쟁을 넘어 협력으로, 차별이 아니라 지원으로, 배제가

아닌 배려로, 탐욕이 아니라 이타심으로, 죽임의 교육을 넘어 살림의 교육으

로, 기만의 교육을 넘어 진실과 정의의 교육으로, 사물화 교육을 넘어 인간화

교육으로, 자본 중심의 교육을 넘어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교육으로 전환되

어야 한다.


셋째, 한국교육의 목표는 ‘알기 위한 학습’, ‘행동하기 위한 학습’, ‘함께 살기

위한 학습’, ‘존재하기 위한 학습’으로 나아가야 한다(International Commis-

sion on Education for the Twenty-first Century, 김용주 외역, 1997). 이

네 가지 역량이 21세기가 요구하는 학습 목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1

세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을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사물을 분석 비판하는 능력,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 성찰하

여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제시하고 있다. 2015년 실시될 국제학력

성취도평가PISA에선 ‘협동적 문제해결 능력’을 추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지

향해야 할 기초·기본교육의 목표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암기 능력과 함

께 4R(3R+relationship)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21세기 글로벌 리

더십으로 3R(reading, writing, arithmetic)을 넘어 ‘공동체적 관계 능력’, 즉

4R(relationship)이 더욱 요긴하다. 이전까지의 전통적 문해력은 읽기reading 중심

의 기능적 문해력이나 순응적 노동력을 중시하였지만, 최근에는 다중적 문해력

으로 조작적, 문화적, 비판적 문해력을 구성요소로 들고 있다(Pahl & Rowsell,

2012; Lankshear & Knobel, 2011; Christie & Simpson, 2010). 다중적 문

해력은 주의력, 참여, 협동/협력, 비판적 소비/헛소리 탐지, 네트워크 인지, 그

리고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실천(봉사, 집단적 행동)을 필요로 한다. 최근 유네

스코UNESCO는 이런 능력을 가진 학생을 글로벌 시대의 이상적 인간 또는 세계

시민으로 보고 있다. 경쟁을 중심으로 한 인력 양성에서 사회적 자본으로서 협

동을 중심으로 한 인력 양성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래서 ‘인문적 문해력’을 가

진 교원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문해력back-to-basics literacy뿐만

아니라, 고차적 학습기술인 다중적 문해력multiple literacy의 계발을 목표로 하고 있

다(Christie & Simpson, 2010).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순응적 노동력에서

창의적 노동력으로의 이동을 말해준다. 우리 교육체제도 이런 글로벌 사회로의

변화에 호응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도한 시험(일제교사 등)은 사실 시험

의 목적 자체를 왜곡시켰기에 시험 제도를 교육을 위한 것으로 전환하여야 한

다. 시험은 필요하고 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시험은 인간의 판단을 보충하는

수단으로만 쓰여야 한다. 시험의 목적은 배운 내용과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지,

결코 높은 점수를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교육

이란 분명 단순한 읽기 능력이나 수리 능력 그 이상이어야 한다. 시험은 그 어떤

평가 방법으로도 파악하기 어려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측정하려고 만

들어진 것이 아니다(Ravitch, 윤재원 역, 2011: 231-251). 시험을 기반으로 책

무성을 부과할 때 생기는 문제는 학생 학업성취도 평가도구인 시험이 부패할 수

밖에 없다(Ravitch, 윤재원 역, 2011: 240-246). 평균을 깎아 먹을 학생에게는

다른 학교로 전학하라고 강권하거나, 아니면 낙제시키거나 시험 치는 날 결석하

라고 한다든가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이들은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낙오된 학생을 ‘걷어낸skimming 학교는 더 좋은 학교처럼 보이고, 그

와 동시에 일반 공립학교는 더욱 질 낮은 학교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기에 시험

점수가 학교의 질을 평가하는 유일한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평가의 진정한 목

적은 학교가 폐쇄돼야 하는지를 판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학교를 가려내는 데 있어야 한다. 교육의 목표는 높은 점수를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좋은 인성을 지닌 책임 있는 시민, 참여하고 연대하는 시민,

비판적이고 정의로운 시민으로 자라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다섯째,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의 기본적 목적은 공공선을 위한 사회적 가

치를 창조하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사회적 기업인 TEA와 공

교육 안의 새로운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혁신학교’는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새

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평등한 교육기회를 위해 열정을 다한

* ‘사회적 기업’이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우선으로 추구하면서,

영업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 및 조직을 일컫는다. 기업이기에 영업 활동을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사회적


TFA는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외된 교육현실과 교육의 변화에 하나의 새

로운 롤 모델이 되어줄 수 있다. TFA는 교실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규 교육

을 받은 대학졸업생에 의한 사회적 기업인 민간기관의 의해 교사양성 프로그램

을 하고 있는 것은 위기에 처한 미국의 공교육을 개혁하는 중요한 대안으로 등

장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세계 10위권 안의 유명대학 학생들이

취업을 뒤로 하고 재능기부의 뜻을 두었다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다.

물론 TFA가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스펙 쌓기'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10년 금융위기 때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려는 대학생이 몰리기도 했

다. 5주간의 단기코스를 거친 신참교사에 의해 경험 있는 교사를 밀어내고 있다

는 것이다. 그래서 TFA의 부상이 미국 공교육의 붕괴를 의미한다며 신자유주의

개혁의 일환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Singhal, 2012: 65-71). 그렇지만

국가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인 대학생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TEA 프

로그램은 우리에게도 많은 성찰을 요구한다. 그것은 국가가 주도하는 획일적인

교사양성이 점점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교생실습이 좋은 교사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TEA를 참고하여 한국형 ’TFK’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도 ‘Teach for Korea/TFK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안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안교사대학‘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교육의 개혁 모델로 등장한 ‘혁신학교’ 운동은 공립학교를 새롭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학교의 변화로까지 추동하는 힘으로 발전할 가능성

을 보이고 있다. 그러기에 혁신학교 운동은 학교개혁뿐 아니라, 한국교육사 측

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역의 열악한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게 ‘가고

싶은 학교’가 됨으로써 ‘공교육 내의 대안학교’로 위상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혁신학교 철학을 지지하는 진보교육감이 13명이 당선됨으로

목적이 포함되어야만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다.


써 혁신교육을 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확보됨으로써 학교/교실 혁명이 가능

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과열된 경쟁과 소모적 입시에 지친 양식 있

는 지역민들은 미래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진보교육감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혁신학교 운동을 성공시켜야 한다.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는 교육

적 대안을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녀를 가진 학부모

들에게 학교교육이 변화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공

교육은 국가주도로 이루어진 관료주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아래로부터 일어난

혁신학교 운동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아직 한국의 혁신학교 운동은 이제 시작된 실험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혁신

학교의 이론과 실천을 정리하기는 좀 빠르다. 그렇지만 혁신학교 운동이 관 주

도/지역교육청 주도로 흐르게 되면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신-관료주

의가 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이런 현상을 ‘열린 교육 운동’에서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혁신학교 운동은 자발성과 헌신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물론 위로부

터의 혁신적/개혁적 행정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교육활동이 결합할 때 성공

할 수 있다. 그리고 혁신학교 운동은 지역사회의 학부모와 지역사회활동가와 결

합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혁신학교 운동은 출세지상주의와 입시위주 교

육을 넘어서는 새로운 교육을 지향하기에 지역민과 결합하지 않으면 상승효과

를 낼 수 없다.

그리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가치관, 교육관,

세계관이 충돌할 수 있는 교육현장이기에 혁신학교 운동은 학교와 가정, 그리

고 지역사회가 끊임없이 충돌·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 충돌이 대화로 타협을 통

해 극복해야 한다. 이 충돌의 완충 기능을 사회적 기업 이념을 지향하는 연구와

훈련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관과의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 관 주도가 아

닌, 민간 주도의 사회적 기업으로 위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혁신교육

을 할 수 있는 혁신적 교사와 교육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 외국에서의 혁신학


교 운동에 대한 기초 연구도 하고, 국내 혁신학교 성공 사례도 수집하기도 하고

혁신학교 평가 작업도 한다. 혁신 학교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바깥의 시

민사회 영역에서는 잘 보일 수 있을 것이다.

Discussion Question

|�사교육�의존도가�높은�한국교육에서�공교육의�공공성을�어떻게�구현할�수�있는

가?

|�가열된�교육열을�어떻게�바람직한�교육열로�변화시킬�수�있는가?�

|�혁신교육을�할�수�있는�교사를�양성하려면�어떻게�해야�하는가?

|�혁신학교가�일반학교의�변화를�유도하려면�어떻게�해야�하는가?�

|�미국의�TFA�프로그램이�한국교육에도�적용가능한가?


맺으며

강민정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이슈 분석 및 기회탐색‘은 크게 두 개의로 장으로 구

성되어 있다. 제1장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혁신적 사회적 기업’의 의미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가 창업 과정의 첫단추를 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소셜 미션 수립’의 여정을 도와 줄 방법론과 성찰적 질문에 답하고 있

다. ‘소셜이슈의 분석과 기회 탐색’이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문제의 해결을 추구

하는 가운데 사업기회를 탐색하는 과정이라면, ‘소셜 미션 수립’은 이러한 과정

을 통해 다다르는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제2장은 실제 사회적 기업가

가 주목할 만한 소셜이슈들에 대하여 그 역사성과 복합적인 사회적 맥락을 이

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깊이 있는 분석과 함께 사회적 기업가에 주는 함의들

을 다루고 있다.

두 가지의 맥락이 하나의 과정으로 통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

권과 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권에서는 제1장 전체와 제2장의 일부를, 그리

고 2권에서는 제2장 중 나머지 부분을 담아내고 있다. 독자들이 들고 다니기 편

한 분량을 고려하여 물리적으로 쪼갠 것일 뿐, 1권과 2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권의 책으로 읽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1권을 읽고 잠시 쉬어서 2권으로

넘어가는 독자를 위해, 1권을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다루어진 내용을 요약하

고, 2권에서 다루어질 내용에 대해 짤막한 소개를 덧붙이고자 한다.

1권에서는, 혁신적 사회적 기업가는 작지만 ‘결정적인critical’ 한걸음을 통해 궁

극적으로 시스템적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가이자 시스템 빌더임을 밝히고, 이와

맺으며 | 189

관련된 이론적, 실천적 논의를 전개하였다. 특히 사회적 기업가가 사회적 문제

의 해결을 넘어 새로운 대안적 가치 제안을 추구하는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격려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 역시 새로운 대

안적 가치 제안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것을 제안하였다.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은 특정 비전에 대한 의식 차원을 넘어, ‘사회문

제를 이해하고 통찰하는 능력과 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

로 한 의지’를 의미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소셜 미션에 대한 명확한 상像을 가지

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분명한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접근하여 풀어나갈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으며, 애초에 문제를 일으키

는 사회적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문제의 이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의 깊숙한 역사적 본질을 꿰뚫

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비판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즉 사회를 바라보는 기존의 눈을 바꾸면서 기존의 사회 형태를 비

판하고, 대안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가의 소셜 미션 속에서 이

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는 이를 위한 현실적인 분석을 수행해야 하며, 이

러한 분석이 비판적 상상력을 뒷받침할 때 대안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가 주목하는 사회문제는 보편적이기보다는 개별 사회가 처한

역사와 사회적 특성에 따라 중요성이나 문제의 본질이 다를 수 있다. 이 책에

서는, 사회혁신론의 보편성과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9개의 소셜이슈

를 선정하였는데, ‘도시화와 주택문제’, ‘건강과 보건의료’, ‘교육’, ‘글로벌 빈곤문

제와 국제개발협력’, ‘기후변화, 에너지 그리고 지속가능발전’, ‘이민과 다문화’,

‘소셜네트워크의 부상과 새로운 기회’, ‘문화와 예술’, ‘행복 추구와 삶의 질’이 그

것이다.

1권에서는 이 중에서 도시화와 주택문제, 건강과 보건의료, 교육 이슈를 다


루었는데, 이들은 한국사회의 발전과정과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뿌리 깊게 자

리한 이슈들로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어, 사회적 기업가로서

의 접근이 결코 쉽지 않은 이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사회적 기

업가들에게 어떤 기회가 있는지에 대하여 성찰하고, 사회적 기업가들의 대담

한 도전을 격려한다.

2권에서는 글로벌 빈곤문제와 국제개발 협력, 기후 변화와 에너지, 이민과

다문화, 소셜네트워크의 부상과 새로운 기회, 문화와 예술, 행복추구와 삶의 질

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글로벌 빈곤문제와 국제개발 협력’은 전 세계적으로 사

회적 기업가들이 보편적으로 주목하는 이슈로서 한국사회의 특수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슈이지만, 국제개발의 패러다임이 사회적 기업가정신을 통해 변

화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혁신적 사회적 기업가들의 도전을 격려하고 있

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이민과 다문화, 소셜네트워크의 부상은, 한국사회의 변

동 속에서 등장하는 이슈인데, 사회적 기업가의 사회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를 혁신적 방법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감각이 한층 발휘되어야 할 영역들이다.

문화와 예술, 행복추구와 삶의 질은 사회적 기업가의 ‘대안적 가치 제안’의 역할

이 기대되는 영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 눈에 보이게 고통을 당하지 않더라

도, 우리의 삶을 보다 가치 있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접

근, 그리고 새로운 가치에 대한 접근을 다룬다.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회적 기업가들은

혁신가이며 시스템 빌더로서 우리 사회에 새롭게 나타난 종breed이라고 할 수 있

다. 사회적 기업가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하여 직접적인 답을

내놓기 힘들다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하며, 그런 의미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정부 정책이 나서야 하는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속

에서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사회적 기

업가의 역할과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갈 수 있다.

맺으며 | 191

지금까지 1권을 통해, 사회적 기업의 혁신성이란 무엇이고 사회적 기업가가

어떤 방법으로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보았고,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일부 이슈들에 대하여 사회적 기업의 접근 방식을 통한 해결 가능성

을 탐색하였다. 다음 2권에서 한국 사회의 변동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는 이슈

들에 대하여, 그리고 대안적인 가치들에 대하여 사회적 기업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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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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