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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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email protected] 02-6401-0514 35 군사안보를 극복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베일에 쌓인 국가안보, 멀어지는 민주주의 군인권, 군사주의에 균열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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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email protected] 02-6401-0514

35

군사안보를 극복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베일에 쌓인 국가안보, 멀어지는 민주주의

군인권, 군사주의에 균열을 내다

Page 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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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전쟁없는세상 35호 소식지

차례

소식지를 내며 Editorial

전쟁없는세상의 2012년 1

평화주의자 노트 Essay

레저 말고 삶을, 발전 말고 밭전, 공사 말고 농사 2

우리의 활동 방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야 한다 7

아픈 줄 알아야 청춘이다 10

3천 원의 결심 14

다녀왔습니다 Experience

병역거부 자료전 74년, 새롭게 정리한 병역거부 역사 18

<2012 병역거부 자료전 74년>을 보고 22

기획기사 Special

군사안보를 극복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26

베일에 쌓인 국가안보, 멀어지는 민주주의 31

군인권, 군사주의에 균열을 내다 36

리뷰-서평 Movie

산리즈카와 강정 그리고 ‘재현’ 그 사이 어딘가 49

기획연재 Series

나름의 바다 건너 일기-부끄러운, 만남 50

가람이의 좌충우돌 세상읽기 16화 55

웅이 왔져여 꾸잉꾸잉 56

재정보고 Report

후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56

Page 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소식지를 내며

소식지를 내며

전쟁없는세상의 2012년

용석 |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35호가 전쟁없는세상이 올해 내

는 마지막 소식지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올 한 해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어요. 하는 활동

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활동가들이 활동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려고 조직체계를 개편했습니다. 지난 소식지에도 밝혔듯이 병역

거부팀과 비폭력&평화교육팀으로 나누어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비폭력&평화교육팀에선 비폭력 트레이너 양성을 위한 워크숍을

6개월 동안 진행하고 10월 초에 3박 4일 동안 강화도에 모여서 집

중 워크숍을 했어요. 그 성과로 조만간 비폭력트레이너들의 네트

워크가 결성될 거예요. 비폭력 직접행동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팀에선 병역거부 가이드북을 만들고, 병역거부 자료전

시를 진행하고 있어요. 가이드북은 조만간, 꼭, 반드시,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고, 평화박물관과 국회에서 진행한 병역거부 전시도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갈 거랍니다.

우선, 비폭력트레이너 워크샵과 병역거부 전시를 이번 소식지에

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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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 노트

레저 말고 삶을, 발전 말고 밭전, 공사 말고 농사

노마드 | 두물머리 밭전위원회

4대강 사업의 마지막 저항지였던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싸움이

지난 8월 한 매듭을 지었다. 지난 4년 간 치른 산전수전 투쟁의 역

사가, 행정대집행 위기 속에서도 ‘공사 말고 농사’라는 마지막 저

항의 외침으로 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중재에

나선 천주교와 정부의 합의안이 극적으로 타결되어, 애초에 4대강

사업을 통해 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대폭 축소되고, 민관협의기구

설립을 통해 생태학습장을 조성해 나가기로 했다. 농약과 살충제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공원과 자전거 도로가, 팔당상수원과 공존

하려고 노력해왔던 40년 유기농지보다 ‘공익’적이라고 주장하는

정부, 강제철거를 해서라도 밀어버리고 4대강 사업을 완공하겠다

던 일방적 개발폭주에 제동을 걸었다.

두물머리 2라운드

아쉬움이 남았지만, 우리는 행정대집행이라는 국가폭력으로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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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화주의자 노트

될 수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고 안도했다. 무늬만 생태공원

인 여타 4대강 공원들과 달리, 유기농 기반의 해외 생태농장을 모

델로 개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앞으로 협의과정이 최소한 합

리적으로만 이루어져도, 두물머리 생태계의 상당 부분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도 기뻤다. 강변 부동산 개발이익에 올인한 토건정권,

농사의 ‘농’자만 들어도 경기를 하는 그들에게 지금 시점에서 협

상해 낼 수 있는 최대한은 ‘두물머리’라는 백지였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그동안 농민들을 내쫓기 위해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하던

논리가 ‘국가하천 경작금지’이지만, 온실, 비닐하우스를 금지하

고 있는 개정된 하천법 하에서도 유기농 노지 농사는 가능하다.국

토부가 하천법까지 왜곡해가며 애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

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4대강 사업이 하천부지 농지를 없애면서 추

구해왔던 ‘하천변 부동산 막개발’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

다. 국토부는 위헌논란에도 굴하지 않고, 하위명령인 시행규칙을

바꾸어서라도 신규점용허가를 원천 봉쇄하려 하고 있고, 끝까지

저항했던 두물머리 농민들은 다른 농지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만들어갈 생태학습장을 ‘농사’

로 잘 풀어내는 것은 두물머리 2라운드 투쟁의 중요한 지점이다.

하천부지에서의 경작권을 되찾는 싸움에서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부당하게 빼앗긴 전국의

비옥한 농지들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그런 날은 언제쯤 올까.

두물머리 저항 스타일- 외부세력과 토착미생물 그리고 밭전위원회

두물머리는 오랫동안 유기농, 생협 운동을 펼쳐왔던 곳이어서

지역사람들과 농민들이 초반부터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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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여 저항의 시간 동안 상당수 농민들

이 떠나기도 했지만, 천주교 농부학교,

록빠, 에코토피아, 노들, 녹색당 등 다양

한 외부세력들이 ‘농사투쟁’에 합류했

고 2012년에는 ‘두물머리 밭전위원회’

라는 이름으로 마지막까지 남은 4가구

의 농민들과 함께 두물머리를 지켜왔다.

내 경우는 4대강 사업의 폭주에 답답하

고 막막했던 2010년, ‘팔당은 에코토피

아’ 캠프를 계기로 두물머리와 인연을

맺었고 그 이후로 두물머리는 나에게 해

방구가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 그룹들

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두물머리에서 농

사를 지으며 서로 친구가 되었고, 4대강

막개발 때문에 농민들이 떠나간 자리를

‘점거’하는 이 행위는 두물머리를 지켜내는 강력한 연대 투쟁이

되었다.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두물머리의 보슬보슬한 흙

을 밟으며 행복했던 시간들, 그 행복은 행정대집행에 저항하기 위

해 유기농 텐트촌을 꾸리고, 언제 공권력이 들어올지 알 수 없었던

긴장의 순간들에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4대강 막개발에 맞서는 유기농지 보존싸움의 정당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피력하며 우리의 저항에 좀 더 많은 사람이 공감

하도록 초대해왔다. 4대강 포기 배추, 불복종 감자를 수확해서 팔

았고, 점용허가취소관련 소송 1심에서 농민이 이겼을때는 국토부

가 있는 정동길에 판결문을 분필로 수놓았고, 양평군이 경작금지

가처분으로 우리의 농사를 방해할 때는 3,691명의 글과 그림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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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평화주의자 노트

아 재판부에 제출한 후 탄원서 퀼트를 만들어 전시했다. 2012년 8

월 6일 새벽6시 행정대집행 개시라는 문구가 박힌 마지막 계고장

이 날라왔을때는 오이, 호박, 가지와 부들을 들고 도심에서 행진을

하며 행정대집행의 부당함에 시끌벅적하게 저항했고, 분필로 한땀

한땀 모내기를 하면서 ‘공사말고 농사’를 외쳤다. 늦은 밤에는 지

하철에서 두물머리 방울토마토를 전단지에 포장해서 나눠주며, 두

물머리가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리기도 했다. 4대강 사업 반

대와 유기농지 보존투쟁이라는 무거운 투쟁이었지만, 독특한 저항

스타일이 결합하면서, 두렵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흥겨

움에 취해있었다

밭전위원회의 한 친구는 우리를 능력이상으로 싸우게 하는 힘이

‘두물머리 토착 미생물’에서 나온다는 논리를 피력하며, 두물머

리 싸움은 더 이상 인간계가 아닌 우주계의 싸움이라는 엉뚱한 SF

농담을 하곤 했다. 행정대집행을 막아냈던 일주일을 기념하고 또

일주일을 잘 견뎌보자고 준비한 망루쇼 행사날, 억수같이 내리던

빗속 ‘두물머드’에서 몇시간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진흙범벅의 사

람들속에서, 친구의 농담을 다시 떠올렸다. 두물머리를 사랑하고

함께해 온 이곳을 지켜내고자 하는 자발적이고도 창조적인 에너지

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여기저기서 폭발하고 있었다.

공유지로서의 두물머리 실험

우리는 단지 두물머리를 현정권의 개발야욕으로부터 지켜내기

만 한 게 아니다. 행정대집행에 대비해 꾸렸던 유기농 텐트촌은 작

은 공화국이었다. 화학세제 없이도 시원하게 씻을 수 있는 생태 샤

워장, 보그지에 나올만한 비쥬얼의 숲속 생태 화장실, 혹시 모를

Page 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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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차단에 대비한 태양열 재생에너지 판넬, 지천에 널린 맛난 먹

을거리와 조리를 최소하는 요리방식, 곳곳에서 필요에 따라 벌어

지는 생활 기술 워크숍들, 밤마다 벌어졌던 토크쇼. 두물머리는 우

리의 꿈틀거리는 시도로 가득차 있는 소박한 공동체였다. 정부는

국가하천이 국유지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오히

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유지’ 실험을 여러 시민들과 함

께 하고 있던 셈이다. 그래서 합의문에 나와있는 호주의 세레스 공

원이 추구하는 바와 우리가 두물머리에 이것저것 시도해왔고 살아

왔던 것이 다르지 않다. 두물머리와 우리가 맺은 관계들,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생태체험농장 그 이상이였으니깐. 두

물머리 사람들은 합의타결 이후에도 열심히 만나고 분주하다. 새

로운 농지를 찾아 정착하는 일, 농민, 천주교, 밭전위원회가 생태

학습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해 함께 디자인해가는 일. 그동

안 두물머리 싸움이 우리사회에 남긴 의미를 고민하고, 기록하고

소통해가는 일!

정말 새로운 시작이다. 공유지로서 두물머리 실험은 더 확장되

어 계속되어야 한다.

* 본문에 쓰인 그림은 두물머리 밭전위원회 달군이 그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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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평화주의자 노트

평화주의자 노트

우리의 활동 방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야 한다

비폭력&평화교육팀은 ‘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준비모임’을

통해 비폭력 트레이너(촉진자) 양성을 위한 트레이닝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매달 한 번씩 총 다섯 차례 사전 트레

이닝과 10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워크숍이 있었다.

전쟁없는세상과 강정마을, 녹색연합, 동인련 등 다양한 곳에서 활

동하는 서른 명 정도의 활동가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비폭력 행동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비폭력 행동은 전략적으로 조직되었다기보다는 즉흥

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측면이 컸다. 하지만 국내외 사례들을 보면

성공적인 비폭력 행동은 오랜 세월에 걸친 활동가들의 훈련과 토

론과 준비가 배경이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 모임이 만들어졌다.

‘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준비모임’은 한국 사회운동에 비폭

력적인 운동 방식을 촉진하기 위한 씨앗들의 모임이다.

사전 트레이닝에서는 비폭력 행동을 위한 문제 분석, 대안 구상,

여지우 | 전쟁없는세상 비폭력&평화교육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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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전략 개발, 행동 계획 및 준비, 행동 평가 등 다양한 상황

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법들을 체험해봤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잘

몰랐던 외국의 비폭력 행동 사례들을 접했다. 서로 다른 곳에서 활

동하는 참가자들이 안면을 트는 기회이기도 했다.

3박4일 워크숍에는 영국에

서 온 활동가 하비엘과 데니

스가 촉진자로 참여했다. 사

전 트레이닝과 달랐던 점은

단순한 비폭력 트레이닝이

아닌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

이닝’의 성격이 더 분명했다

는 점이다. ‘비폭력 스펙트

럼1’이나 ‘평행선 게임2’처

럼 사전 트레이닝에서 해 본 활동을 다시 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에는 그 활동 자체를 배우기보다는 활동이 트레이닝에서 어떤 목

적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고민하고 생각을 나

눌 수 있는 자리였다.

활동을 한 뒤에는 주로 외국에서 개발된 트레이닝 도구들을 그

대로 적용하는 대신에 보다 한국적 맥락에 맞도록 어떻게 고칠지

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워크숍 첫날에 설정한 목표를 중간중간 돌

1 참가자들이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게임. ‘집회에서 경찰 버스에 낙서를 하는 행동은 폭력이다’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참가자들이 동의 정도에 따라 넓게 일직선으로 퍼지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

2 대립이나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을 역할극을 하면서 살펴보는 게임. 특정 상황(예를 들면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제주 도민과 반대하는 활동가의 대화)을 정해놓고 역할극을 한 뒤, 각자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눈다.

스펙트럼 게임을 하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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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화주의자 노트

아보면서 우리가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통해 비폭력 트레이닝이 그저 단편적

인 활동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계획된 유

기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셋째 날 오후에는 트레

이닝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각자가 직접 트레이닝을 계획하고 진

행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당초 목표로 삼았던 ‘비폭력 트레이너 네

트워크’ 구성에 대해 논의했다. 해야 할 일들을 비슷한 것끼리 묶

어 대략적인 팀을 나누고,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다. 각 팀에서는 지속적인 트레이

닝 진행과 자료집 발간 등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장단기 목표가

세워졌다.

지난 6개월 간의 트레이닝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 비폭력 행동

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 트레이닝의 전 과정이 수평적, 민주적,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활동 방식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반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모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한국에 비폭력 운동이

뿌리내릴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Page 1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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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 노트

“아프니까 청춘이다”

요즘 이런 말 하면 호되게 혼이 납니다. 청년세대의 빈곤은 개인

의 힘으로는 벗어나기 힘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마치 청춘의 특권인양 표

현한 이 말 - 아마 책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 을 하면 일단 꼰대

소리를 들어야하며 청년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물론 저도 ‘젊은 때는 고생 좀 해봐야해’라는 투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 이 말은 청년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에게 들

려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우울한 회색

의 장년들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우울하게도 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 진보신당 청년위원장보다도 어린 ‘청년’입니다.

(별로 위안은 안되는군요. 씁쓸~) 하지만 문득 세대의 경계에 들

어서버린 저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

게된 키워드가 바로 ‘아픔’입니다.

이원표 | 병역거부자

아픈 줄 알아야 청춘이다

Page 1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1평화주의자 노트

한창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진학을

하였다가 정말 모진 고생을 겪었습니다. 돈이 없어서입니다. 등록

금을 내지 못해 제적이 되었고, 수중에 학생식당 갈 돈도 없을 때

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고맙게도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 은행님 덕

분에 ‘카드돌려막기’라는 신공을 배웠다가 ‘빚더미’라는 주화입

마를 입기 시작한 것도 이 때입니다. 견디다 못해 데모가자는 선배

들의 레이더를 피해 알바전선에 뛰어들어 야간도로공사, 피씨방,

렌트카, 우체국, 물류 상하차, 인테리어 공사, 월간지 발송 등 별

의별 일을 다 하였습니다. 하루 4시간씩 자면서 일을 한 적도 있었

습니다. 그러다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하는지 눈물이 핑 돌기도 했

습니다. 다 때려치우고 도피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실

제로 연락 끊고 잠적하기도 몇 번이었습니다. 괴롭고 또 괴로웠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점점 할 말이 많아지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

지고, 투쟁심도 무럭무럭 자라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결혼 6년차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습니

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은 덕에 집도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

이 그렇듯이 내집이라고 하기엔 지분이 너무 적은 게 문제이긴 하

지만요. 대출상환, 가족들 보험, 아이들 보육비 등 한 달에 들어가

는 생활비가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을 때는 300만원씩 필요합니

다. 하지만 뚜렷한 직장은 없습니다. 어디에 직업을 써야할 때가

있으면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이라고 쓰긴 하지만

벌이가 있는 일은 아닙니다. 재작년까지는 진보신당이라는 번듯한

직장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할까요.

당연히 일을 해서 법니다. 그것도 대단히 열심히 합니다. 새벽 2

Page 1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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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일어나 8시까지 식재료 도매상 창고에서 손등이 갈라지도록

물건을 나르고, 낮에는 돈 안되는 일을 주로 하다가 궁하면 소위

노가다라는 것을 하러 갑니다. 인테리어 공사일을 하기도 하고, 석

면 철거하는 곳에서 수명을 담보로 돈을 법니다. 새벽 3시부터 저

녁 6시까지 육체노동을 하고 집에 와 밥 먹고 잠깐 애들보고 8시

에 잠들어 다음날 새벽 2시에 일어나는 고된 일과를 1년 넘게 하

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처럼 고되게 일하는 많은 분들을 보게 되

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번도 힘들어 눈물을 흘린 적이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 만에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야’라고 울부짖

다가 바로 기차타고 잠적해야 했을 일을 1년 넘게 하고 있는 겁니

다. 이제 그럴 수 없는 거죠. 그러니까 눈물도 안나오고, 괴롭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애들 보는 낙’이라

는 정말 꼰대스러운 대답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됩니다.

아프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게 청년시

기를 보낸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통각을 상실한 몸

은 결국 병을 키우기 마련입니다. 암이 무서운 것은 통증없이 진행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픔을 잊은 기성세대는 우리 사회

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만들고 맙니다.

자녀를 부양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친 노동

으로 나타날 때, 고통을 느끼고 사회에 호소할 수 있을 정도의 감

수성은 필요합니다. 보육비, 주거비 등 삶을 누르는 짐을 내려놓을

용기까지는 아니어도 같이 들자고 하소연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문제이며, 나 뿐만

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Page 1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3평화주의자 노트

거기서 시작이 될겁니다. 새로운 변화는.

아프니까 청춘입니다. 아니, 아픈 줄 알아야 청춘이죠. 우리의

기성세대가 다시 아픔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래서 아픔을 아는 청

춘을 다시 겪게 되면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변의 철든 어른들에게 집요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

프지 않냐고. 그래서 아픔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Page 1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4

평화주의자 노트

3천 원의 결심

박씨 | 감수성이 폭발해서 요즘 너무 피곤한 청소년 박씨

수능을 약 15일 정도 앞둔 날이었다. 학생회에서 수능을 맞이하

여 고3 수험생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며 이른 아침 자습

시간에 찾아와 돈을 걷는다고 통보했다. 1인당 3천 원……. 큰돈

도 아니니 선배들을 위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협조해 달라는 말이

었다. 선배들의 은근한 압박을 담은 눈초리와 청유도 아닌 명령하

는 어조가 완전 협박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돈을 내지 않는 학생은

따로 체크까지 해둔다니 아주 완벽했다. 불만이 있는 학생들도 많

겠지만 여태까지 행해온 전통이니까 참여해 달라고 말하는 학생회

임원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었다. 지난 주 대의원회의에 갔다 온

반장이 설명한 내용이여서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어이가 없었다.

자습시간이 끝나고 나서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돈을 낼 것

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대부분 ‘당연히 내야

지’라는 반응이어서 조금 얼떨떨했다. 기분 안 나쁜가? 나는 나쁘

다 못해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투덜대며 이를 바득바득 갈

고 있으려니 어쩐지 맥이 빠졌다. 학생회가 얼마나 학생들을 우습

Page 1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5평화주의자 노트

게보기에 의견조차 묻지 않고 일을 진행시키는 걸까. 친구들은 어

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공동

체 생활이니 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저 어

색한 웃음만 짓고는 자리를 피했다. 뭐라고 한 소리 톡 쏘아주고

싶은 걸 상대방이 무안해질까 꾹 참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3천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돈이며 1시간을 열심히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기도 했

다. 그런데도 3천 원이 큰 돈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는 학생회뿐

만 아니라 학생들 중에도 내지 못하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고

민 자체는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배려라는 말은 안

중에도 없나보다.

또한 ‘공동체니깐 참여해야 하지 않나’라는 논리는 돌려 말했지

만 ‘어? 넌 참여 안하니깐 우리 공동체에서 빠져’나 다름없는 협

박 아닌가. 진짜 지능적이고 악질이다. 물론 친구들이 그런 의도가

있어서 나한테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무섭다

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이런 종류의 협박에 익숙해있으면 ‘그

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걸까. 소름이 돋는다.

돈을 걷는 중에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

점에 1학년 학생회 임원이 일일이 반을 돌면서 돈을 내라고 한참

독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얼마나 집요한지 매 시간 쉬는 시간에

와서는 옆에 달라붙어 성화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돈을 걷지 못

하면 학생회 선배들에게 소위 ‘까인다’고 한다. 학생회에 친한 친

구가 있는 아이에게서 들은 소문이니 거의 확실했다. 하여튼 난 학

급에서 내 생각과 맞는 친구 한 명과 학생회의 독촉을 무시하고 있

었다. ‘까인다’는 소문을 듣고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지금 당장 돈을 내서 막아주는 것보단 이런 웃기지

Page 1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6

도 않는 전통을 거부하는 게 훨씬 더 우리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

다.

하지만 그런 완강한 태도에 질렸던, 우리 학급을 담당하던 아이

는 혼자서는 안 되겠던지 다른 임원 2명과 더불어 점심시간에 반

을 찾아왔다. 하필 그때 나와 딱 마주치는 바람에 그 세 명은 나를

타겟으로 잡았는지 주위로 몰려 왔다. 어이가 없었다. 설마 하니

이렇게 집단으로 몰려와 강요할 줄은 몰랐다. ‘니들이 지금 권력

을 등에 업고 날 협박하는구나’ 기분이 팍 상했지만 그래도 미안

한 마음이 컸던지라 꾹 참으면서 그 중에 가운데 있던 여자애의 말

을 경청했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지금 돈 내는 거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는 거 아니다. 어차피 너도 3학년 되면 다 돌려받게 돼 있다.

우리 학교는 적게 내는 편이다. 다른 학교도 다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못 낸다고 말을 해라. 그런 것도 아니면서 왜 내지 않는

가? 네가 이런 전통이 싫었으면 입학하기 전에 알아보고 다른 학

교 갔으면 되지 않냐. 너 1명만 안 내면 돈을 낸 아이들은 뭐가 되

냐.’ 등등 아주 하나 같이 참 주옥(?)같다. 미안한 마음에 끝까지

참아주고 들었던 시간이 아까웠다. 도대체 누굴 위한 선물인가?

그깟 수능이 뭐기에 나에게 마음에도 없는 선물을 하게하고 말도

안 되는 전통을 강요하며 웃기지도 않는 공동체 속에 포함 시키려

고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학생들은 말도 안 되는, 이런 권력의 행패에 수긍하는데 너무 길

들여져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생회와 학생들 또한

너무 익숙해져서 거부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역시 제일

야속한 건 선물을 기대하는 고3 수험생도, 소위 ‘삥’ 뜯는 학생회

도 아닌 ‘삥’ 뜯긴 학생들이다. 무기력하게 고민 한 번 해 보지 않

Page 1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7평화주의자 노트

고 돈을 건네는 손들이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한심했다. 그들

이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거부하지 않

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이 있었는데 늘 뒤통수 아닌 뒤통

수를 맞는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항상ㄲ 혼란스럽다. 따지고 보면 거부

하지 못하게 교육시키는 체제의 잘못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사람인

지라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고 또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휩싸이게 된다. 아무 대처도 하지 않는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뭐지? 내가 저들을 욕할 자격이 있나? 과연 난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내가 혹시 지금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까?

끊임없는 자기 검열의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가장 큰 무서움은 나도 언젠가 체념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나아가서는 체념에 그치지 않고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학생회처럼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무섭다. 혹시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 또다시 질문 속으

로 빠져든다.

이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날 의심하고 심문한다. 만약 내가 지금

이 단계에서 포기하게 된다면 이로서 학교는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또 한 명의 학생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피해

자가 가해자가 되어 또다시 피해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라니. 가

히 공포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절대 부당함에 맞서는 걸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포기하

기엔 너무 이르다. 여태까지 쌓아왔던 역사 속에서 그런 것처럼 공

포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이 글을 읽

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전하고 싶다.

Page 2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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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병역거부 자료전 74년,새롭게 정리한 병역거부 역사

아하 | 전쟁없는세상 친구+병역거부 자료전 74년 디자인 코디네이터

올 여름은, 이상 기후로 인한 폭염 탓인지 처음 준비하는 자료전

탓인지 시간이 유독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전시 준비 과정을 지나 8월 평화박물관과 10월 국회 전시

회도 마치고 언제 그랬는 듯이 바람이 차갑습니다.

병역거부 자료전 ‘74년’은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지난 74년 간

의 한국 병역거부의 역사와 평화운동으로써 병역거부운동을 재조

명하는 자리로 어떻게보면 2005년에 있었던 ‘총을 들지 않는 사

람들’ 자료전의 연장선에 있기도 합니다. 동시에 2005년 전시 이

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병역거부자들은 원하지 않은 감옥을

택하도록 만드는 제도는 변함이 없지만,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새롭게 발굴한 병역

거부 역사를 알리리고자 했습니다. 병역거부 운동이 군사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평화운동으로써 외연을 넓혀왔는지

그 동안의 활동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하였습니다.

Page 2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19다녀왔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일은, 지난 74년 동안 여호와의 증인들이 겪어

온 고초와 병역거부자들이 겪어온 과정들을 정리하는 과정이다보

니 굉장히 흥이 나거나 즐겁게 참여하기는 사실 힘든 부분도 있었

습니다. 저는 2005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전시가 있었다는

것을 그저 풍문으로만 들었습니다. 당시 병역거부에 대한 관심은

신문에서 이야기 되는 것을 몇 번 읽어봤을 정도이니 전시를 봤을

리 만무하였기에 우선 2005년 자료전을 기록한 기사와 인터뷰, 지

난 전시품들과 자료들을 찾아보는 일을 했습니다. 전시기록 사진

을 찾아보면서 판넬 한쪽에 나란히 배열된 감옥 창살을 상징한 검

은띠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병역거부자들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감옥 창살 이미

지는 7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은 현실이기에 저에게도 그 무

게가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이 될 뻔했다가 이

명박 정부로 인해 막판 뒤집기가 되버리는 바람에 상심의 시간이

길었습니다만. 제가 병역거부 운동과 실낱 같은 인연을 유지해오

면서 느낀 건 병역거부 운동에 있어 (물론 중요한 테제이지만) 최

종목표가 대체복무제 도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

시적이든 거시적이든 힘의 논리로 통제 가능한 사회에서는 병역제

도를 가능하면 유지하려하며 이러한 한국사회에 평화운동으로써

병역거부 운동이 던진 목소리와 활동을 제외할 수 없다는 점이었

습니다. 또한 감옥이라는 국가폭력이 큰 공포이지만 이런 와중에

활동가, 병역거부자 누구 할 것 없이 군사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활동하는 모습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앞의 주제와 함께 어떻게 조합하면 좋을지 고민했고 이

Page 2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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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이유로 포스터와 웹자보 같은 홍보물에 있어서 검은 창살 무

늬와 노란색을 함께 조합하여 각각의 상징을 살리면서 노란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가지는 ‘주의’의 이미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또한 전시에 있어서는 기존의 판넬과 같은 주제와 이미지를 가지

고 전시를 하되 2005년 이후 변화된 상황과 새로운 병역거부자,

그리고 병역거부 운동의 의미를 정리하고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

었을 당시 보내온 편지를 실물 전시를 하여 관람자가 편지를 직접

읽을 수 있도록 하여서 단순히 국가폭력의 피해자로만 비추어지

는게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 행위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

습니다. 또한 따로 전시구역을 두어 병역거부 운동이 평화운동으

로써 활동한 사진들과 퍼포먼스 당시 사용하였던 의상과 플랜카드

등을 전시하여 그 동안 활동들을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점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최초의 병역거부자로 알려진 오태양씨 이전의 병역거

부자(김홍술 목사, 효림 스님, 박석진씨)가 있었음을 알게된 과정

이었습니다. 활동가분들께서 고생 끝에 이 분들이 당시 병역거부

를 하게된 계기와 상황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글과 당시 사진을

구해왔고 저는 이때서야 진짜 60~80년대에도 병역거부자가 있었

다는 사실에 놀랐던 생각이 납니다. 자료를 읽으면서 당시 병역거

부라는 개념조차 한국에 전무했던 상황에서 전적으로 군복무를 거

부하거나 혹은 선택적 거부하게 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확고한 이

념이나 어떤 논리에 의하지는 않아도 양심에 따라 이것이 옳다라

고 믿고 행동하는 병역거부자가 있었고 한국의 병역거부 운동이

점점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처럼 이름이 서로에게 붙여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잊혀가졌던 역사는 재발견

Page 2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21다녀왔습니다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느 활동가가 “지난 병역거부 활동을 했던

것들이 이렇게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하였습

니다. 이렇게 오늘은 또 하나의 역사가 되고 평화주의자들과 병역

거부자들의 활동이 이처럼 쌓이고 쌓여서 다음에 전시할 때에는

더이상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는 일이 없어지고 또 다른 활동을

전개해나가게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시 관람해주신분들과 여러모로 처음 준비하는 전

시라 미흡하기도 하고 실수도 많은 상황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신

평화박물관 관계자 분들과 한홍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Page 2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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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어

떤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네 인생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

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가 한두 가지는 아닐

테지만 어쩌면 ‘그 상황’에서 했던 ‘그 선택’이야말로 개인을 구

성하는 데 결정적인지도 모른다. 매번의 선택이 인간을 만들어 내

는 거라면, 정체성이라는 건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또 새로

워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는 2년 남짓한 시간을 군대에

서 보내야만 하고, 그 때의 경험이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가 된다.

만기병장으로 제대해야만 정상적인 시민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

고, 취직할 때 ‘군필’은 기본 요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병

역거부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 군대

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감옥에 갈 수밖에 없

다. 그들이 걸어온 74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병역거부 자료전>이었다.

<2012 병역거부 자료전 74년>

을 보고

여은 | 전쟁없는세상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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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다녀왔습니다

또래의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면서 놀랐던 건,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

다. 확고한 신념과 희생정신으로 무장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그

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했고, 투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

였다. 어떠한 이유로도 총을 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

은 오히려 마음이 여린 사람들에 가까웠다. 전시회에서 접하는 얼

굴들에서 한 명의 인간이 가진 고뇌와 고민이 느껴졌던 건 그 때문

이었을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준 뜻 깊은 친

구, 병역거부자 조은이의 특별한 도슨트(전시설명)를 들으며 그동

안 유심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병역거부의 역사를 전시판넬을 통

해서 찬찬히 짚어볼 수 있었다. 병역거부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면 일제 강점기의 징병제가 있다. 집총을 거부하던 여호와의 증인

들은 일가족이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었고, 무자비한 구타로 수감

생활 중 사망하는 일도 예사였다. 병역거부의 역사는 한국전쟁과

5.16 쿠데타를 거치면서 꾸준히 이어지고, 1991년 경찰폭력에 의

해 사망한 강경대 사건을 계기로 전투경찰 박석진 씨는 “군사정권

의 방패막이인 전투경찰 해체”를 선언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2

년 2월, 36개의 시민단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

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를 결성한다. 이즈음부터 당연하

게 여겨지던 ‘국방의 의무’에 평화와 인권의 언어로 질문을 던지

는 새로운 병역거부자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등

학생 시절 언론을 통해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불교신자 오태양 씨

를 비롯해 대학생 시절 본 다큐멘터리 ‘708호, 이등병의 편지’로

알게 된 강철민 씨, 촛불정국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각인되었다가 친한 친구가 되어 이젠 앞으로의 행로가 궁금해지

Page 2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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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길준이까지. 나는 그들

을ㅇ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

만 각자의 자리에서 병역거

부를 한 많은 이들의 얼굴

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리

고 병역거부의 역사에서 한

흐름을 만들어낸 그들의 인

생은 이러한 선택 이후 어

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졌다.

그 무렵, 조은이가 날 이끈 곳

은 편지들이 담긴 상자였다. 철장 안에 갇혀있는 동안 이들이 세상

으로 띄운 편지들이었다. 감옥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때로는 좌절

을 삼키기도 했을 것이며, 어떤 포부와 결심으로 자신을 다잡았을

지도 모른다. 편지 하나를 꺼내어, 그 시간들의 결을 느껴보고 싶

었다. 그 편지들은 병역거부의 지난한 역사 안에서 병역거부자 개

개인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조은이와 나는 전시회의 대미라고 할 만한 공간에 다다랐다. 그

곳에는 ‘모든 병역거부자를 석방하라. 평화를 지키는 군대는 없

다.’는 문구가 써진 현수막과 평화를 상징하는 엠블렘, 국방색이

아닌 다채로운 색으로 덧칠한 군복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쪽 벽면

에는 사진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지하

며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병역거부의

역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존재인 여성 평화활동가들이었다. 여옥

과 아침, 오리와 같은 익숙한 얼굴들을 찾으면서 그들이 역사의 한

축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가늠해봤다. 그들 없이

는 병역거부의 역사를 완전히 쓸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시 안내를 하는 병역거부자 이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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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다녀왔습니다

다양한 색깔이 덧입혀진 군복은 74년 간, 징병제라는 야만의 역

사와 한국사회의 성역이나 마찬가지인 군대에 저항해온 이들의 노

력을 상징하는 듯 했다. 평화와 생태, 성정체성이라는 다양한 화두

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사람들 덕분에 사회는 더디지만 조금씩

진보의 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언제쯤 병역거부자

라는 정체성은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역사의 기록들을

갈무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군인이 되지 않겠다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야만적인 사회에서,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선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이를 통해 더 많은 사

람들이 폭력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병역거부 역사

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평화박물관을 나왔다.

병역거부 전시 평화운동방 한 쪽 벽에 참가자들이 붙여준 평화에 대한 생각

Page 2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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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들어가며

올해 3월, 병역거부 운동 10년을 평가하는 워크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표

현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정도 완결된 글이 지난 33호 소식지에

썼던 글이다. 그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한참 생각을 정리해

주지 않으면 글이 나오질 않는다. 멀티질 하기엔 이제 뇌가 벅차

다. 이 글은 그 후속타쯤 된다. 어느덧 한 해도 기울어가는(!!) 마

당에 자신과 조직의 목표를 돌아보는 시간이 주어지니 좋다.1

1 너무 과도한 목표설정이 두드러진다. 머쓱하다. 이것 저것 계획했지만 많은 걸 해내지 못했다. 게을렀거나 멘붕이 와서 그런 게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치였다.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할 수 있는 일 위주로 잘 꾸려가야겠다.

나동 |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Page 2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27기획기사

올해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팀과 비폭력&평화교육팀으로 재

편되었다. 양적으로는 잘 모르겠고 질적으로는 업그레이드 된 데

에는 유학파와 뉴페이스들의 힘이 컸다. (박수~~) 얼핏 보기에

비폭력&평화교육팀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 반면

병역거부팀은 기존에 해오던 일들을 이어받는 느낌이 강했다. 어

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이면의 진실도 있다는

소리. 이 글의 목표는 병역거부팀을 하면서 느꼈던 새로운 고민의

단초를 보여주는 일. 이 글에 담은 주장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 병

역거부팀 전반이 합의한 내용은 아니다. 올 활동평가를 하는 자리

가 주어진다면 병역거부팀 멤버들과 교류하고 싶은 내용이다.

병역거부팀 활동영역, 방식의 확장

10년 순환을 마감하면서 병역거부 운동을 평화운동으로 확장하

자는 게 워크샵의 주된 취지였다. 이 문제 의식은 비폭력&평화교

육팀뿐만 아니라 병역거부팀에게도 해당 사항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체복무라는 슬로건으로 외화된 병역거부 운동. 그러나 활

동가들은 대체복무 도입 운동에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나

는 적극적인 평화운동으로서 가치를 잘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다

른 하나는 제도정치와의 접점을 잘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회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 있어 그 가치나 방식을 잘 몰랐다.

올해는 이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면서 질적인 발전이 있었

다. 국회와의 교류가 단지 대체복무 도입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

라, 향후 반군사주의 운동의 협력자를 만들어둔다는 의미가 있음

을 인식함으로써 많은 부분 고민이 사라졌다. 장기적인 평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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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을 고민할 수준이 되지 않던 시절에, 당장 무엇이 좋은지 싫은지

입에 맞는 음식만을 찾는 어린아이 같았다. 하지만 이제 평화운동

은 인생의 어느 시기, 역사의 어느 시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긴 호흡이 필요함도 알게 되었으니 곳곳

에 협력자를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과거에 대체복무 도입을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땡큐 정도

의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국회에서 무엇을 더 이야기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평화운동은 병역제도, 국방제도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군사안보 관련 유통되는 담론은 대개 “국가방어를

위해 무엇이 더 좋은 혹은 효율적인 무력 시스템인가?”에 대한 답

이다. 평화운동은 군사영역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으나 아직까지

군사관련 정책을 평화주의적 관점에서 개조하려는 집단은 전무하

다. 경제민주화나 투표시간 연장 같은 핵심 의제에서 드러나듯 진

보정치의 양대 축이었던 민주주의 문제와 계급 문제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평화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점은

현실 정치 세력의 분포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

세력조차 군사안보 관련해서 군사영역의 축소 자체를 언급하는 것

은 대단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안철수만 해도 군사적으로는 대단히 보수적인 편인데

다, 문재인은 특전사 출신 코스프레를 열심히 하고 있고 이게 성인

남성들에게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 여기에 군면제 내지 병역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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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기획기사

집단인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 더하기 노무현에 대한 향수까지 작

용하고 있음은 당연. 문재인은 지금까지 행보에서 보듯 군사담론

에서는 이명박보다 오히려 더 강고한 군사안보주의자 면모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자주국방론자이므로 외교정책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가령 노무현이 초반에 제시했다가 좌초된 동

북아 평화균형자론 같은. 그리고 대체복무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고 노무현이 추진하려 했던 군의 문민통제 역시 다시 시도할 가

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전제는 모두 국방예산 확충을 전제로 군의

첨단화, 효율화 기조 아래 진행될 것이다.2 과거 군사독재 시절 반

공주의, 군사주의가 모든 의문을 가로막았다면 앞으로는 한미동맹

VS 자주국방론자들의 대결로 구도가 조금 바뀔 것이다. 이 과정에

서 군이 얼마나 시민들의 참여와 통제를 받아들일 것인지는 미지

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평화단체들이 얼마나 개입할지도 미지

수다.

확실한 것은 어떤 식으로 재편이 되든 군사주의는 약화되지 않

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강정해군기지 문제가 중요한 사

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대선주자들이 평화를 중요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평화는 시대정신처럼 도처에서 회자된다. 그러나 대개는 감

성적인 발언에 그칠 뿐 평화주의적 대안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군사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군축이다. 지속적인 군사영

역의 축소다. 지금까지 우리가 반군사주의 운동을 호소하는 방식

2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 중에 모병제를 주장하거나, 대체복무가 추가된 징병제 유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꽤 많다. 그러나 평화주의적 해법은 아직까지 이들 사이에서도 요원한 일이다.

Page 3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30

은 평화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이 주였다. 앞으로는 여기에 구체적

인 전술이 추가되어야 한다. 군사정책, 병역제도, 군사예산 등 전

문적인 영역까지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병역거부

팀은 이런 마인드를 갖춘 활동가들과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우리가 저 역할들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 세대가 지났을 때 평화

주의적 마인드를 갖춘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평화주의적 해법을 모색하는 세력이

최소한 일정 지분을 갖고 사회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지

금 그 주춧돌을 놓자는 것이다.

내년에는 무엇을 할까?

그래서 내년에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할 사람들이 병역거부팀에

함께하게 되었으면 한다. 물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고 활동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예비군 폐지

와 같은 행동부터 입법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현재 역량으로

는 동시에 많은 것을 할 수 없으므로 하나의 과제를 선택해서 사람

들을 모으고 중기적인 목표를 세워 활동하는 것도 좋다. 한동안 시

들했던 대중적인 캠페인과 행사들도 했으면 한다. 이런 과정을 거

쳐 평화주의자들의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인적교류도 왕성해

지기를. 올해 말, 내년 초 총회 자리에서 이야기해보자. 만약 위와

같은 활동들이 좀 더 가시화될 수 있다면 비폭력&평화교육팀과 더

불어 전쟁없는세상이 평화단체로서 더욱 풍요로운 모습으로 발전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Page 3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31기획기사

기획기사

여옥 |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올해 6월 확산탄 대량구매 기사가 났다. CBU-105 외에 훈련

용 CATM 미사일 28발 등 모두 3천8백억 원 규모의 무기와 수송

장비 등을 미국에서 구매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중에 367발을 도

입한다는 CBU-105는 대표적인 비인도무기로 국제적 비난이 높

은 확산탄이었다. 게다가 한발 당 가격은 36만 달러, 우리 돈으로

4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액수가 너무 많았다. 확산탄 문제로 함

께 활동하는 무기제로, 평통사,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서로 연락을

해보았지만 우리끼리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구할 수 있

는 자료라고는 이미 공개되어있는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전협력국

(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 보도자료 정도가 전부

였다. 일단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보기로 했는데, 막막했다.

국방부에서는 늘 그렇듯 국가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할 게 뻔

했다. 그래서 국회에 있는 친구를 통해 부탁을 했다. 하지만 결국

Page 3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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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공개할 수 없다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왜 지금 이 시기

에 367발을 구매해야 했는지, 왜 미국의 텍스트론사에서 생산하는

CBU-105 D/B 바람수정확산탄(WCMD)을 구매한 것인지에 대해

여러 의혹과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 찾다보니 이 확산탄을 구매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모든 것

은 확인불가능. 결국 제대로된 대응도 못해보고 시간이 지나버렸

다.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확산탄의 종류, 비축량, 도입시기,

훈련사용여부 등등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외국단체들이 낸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서 한국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우리는 우리나라의 정보를 알

수 없는 것일까.

평화군축박람회를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올

해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차기 MLRS 사업의 개발

단계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시기이다. MLRS(Multiple Lunch

Rocket System, 다연장(多宴裝)로켓 발사 시스템)는 지대지 로켓

및 유도탄 사격체계로서 육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화력무기이기도

하다. 연평도 사태 이후 서해5도에 전면 배치된 MLRS는 넓은 지

역을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확

산탄을 사용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확산탄 문제

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무기

이다. 올해 평화군축박람회에 전시할 판넬을 만들려고 정보를 찾

다보니 막상 정확한 진행상황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찾기가 어려워

서 몹시도 난감했다. 수천억을 들여 개발하는 한국형 MLRS 사업

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 그 어디에서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

었다. 그저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과 인터넷

Page 3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33기획기사

기사가 전부였다. 10년 전에 미국에서 직수입해온 록히드마틴사

의 M270(A1) MLRS가 이미 존재하고, 사격훈련 모습까지 동영상

으로 제작해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홍보하는 상황에서 왜 수천억을

들여서 새롭게 한국형 MLRS를 추가로 개발해야 하는지,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정확히 얼마이고 추후 유지비용은 얼마나 드는

지, 내년에 마무리되는 사업인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건지, 예

정된 기한 내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는 것인지.. 답답했지만 방법

이 없었다. 별다른 얘기가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당장 정부의 정책과 특정 무기사업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만

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정확한 정보 없이 비판하기는 어려웠

다.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인터넷 검색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

가 전부인데, 서로의 정보가 엇갈리는 기사도 많았을뿐더러 밀리

터리 매니아들의 각기다른 분석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원론적인 내용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사업 전

반에 대한 문제제기는 될 수 있었을지 몰라도, 현재 진행 중인 여

러 무기사업 중에 특별히 차기 MLRS 개발사업이 왜 문제가 되는

지, 그래서 이 사업을 재검토하고 예산을 깎아야 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를 비롯한 평화활동가들의 능력부족

이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뭔가 좀 억울하다. 그것도

좀 많이 억울하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구입하고 개발하는 무기사업에 모두 세

금을 쓰고 있는데,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는 왜 이 무기가 지금

꼭 필요한지, 왜 이만큼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진

행상황도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안보에 해

Page 3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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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은 늘 북

한의 위협이다. 그동안 그렇게 돈 써서 무기 사들이고 만들고 했으

면서도 여전히 위험하다고 한다.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국가안보

가 위험하다는 말은 누가 하는가. 그 ‘위기’가 필요한 사람은 누

구인가. 도대체 국가안보가 뭐란 말인가. 이는 병역거부운동을 하

면서도 늘상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보접근이 차단된 국가

안보→ 부풀려진 위협→ 과도한 소요제기→ 계속 생겨나는 무기

획득·개발사업→ 무기 팔아서 이익 보는 특정집단. 이 뻔한 시나

리오를 비판하고 싶어도, 이 고리를 끊고 싶어도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영향력 있는 문제제기나 비판을 하기가 몹시 힘들

다.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 유리한지

는 너무 뻔하다.

군대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복무제도를 허용하면 아

무도 군대에 안 가고 당장 북한이 쳐들어올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한국(남한)이 한해 국방

비로 쓰는 것이 33조1이고 무기 수입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하는데, 전력이나 경제력이나 북한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6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얼

마나 거대한 규모인지, 왜 이만큼의 병력과 복무기간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논의는 국

가안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소수의 전문가 혹

은 권력자에게 강제적으로 위임되어있다.

무기수입과 개발에 사용되는 돈은 실제로 다른 영역에 쓰일 수

있는 세금이다. 무기를 많이 사면 그만큼 복지는 줄어들고 우리의

1 2012년 국방예산 32조 9,576억, 2011년 국방예산 31조 4,031억 원, 2013년 국방예산요구안 35조 4,736억 원

Page 3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35기획기사

삶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담보로 무기를

사고 만드는 것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에게 정보라도 제공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 아닐까. 왜 이 무기를 사야 하는지, 왜 국산개발

해야 ㅇ하는지, 왜 이 정도의 규모가 필요한지 등등에 대한 설명

도 정보도 없고 개입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무기사업에 대한 문

제제기는 ‘무기는 나쁘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평화운동은 늘 뜬구름 잡는 주장만 하는 것처럼 들리

고, 현실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안보문제에 대한 시민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평화로 가는 첫걸음일 수밖에 없

다. 평화주의자 입장에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지금처럼 접

근 자체가 차단되어있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나 비판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말 안보를,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면 다 까

놓고 어떤 것이 더 우리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하는 것인지 함께 고

민해야 한다. 물론 절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겠지만. 그래서 우

리는 오늘도 자료를 내놓으라고 싸운다.

Page 3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36

기획기사

안녕하세요? 저는 군인권센터에서 기획정책팀장으로 일하고 있

는 이인섭입니다.

군인권 전반에 대한 글을 하나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조금 난감했습니다. 제가 무려 “기획정책팀장”이라는 이름의 직

책을 맡고 있긴 합니다만 군인권센터에서 활동가로서 일한 것이

그 직책에 걸맞을 만큼 오래되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그냥 지난 일년

간 군인권센터에서 일을 해오면서 조금씩 제 안에 쌓여나갔던 생

각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는 느낌으로 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

다. 읽으시는 분들도 편하게 하려다보니 형식은 은근슬쩍 편지글

처럼 되고 있네요.

이인섭 | 군인권센터 기획정책팀장

Page 3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37기획기사

이 글이 자꾸 고백성사처럼 흘러가고 있는데요. 사실 제가 군인

권센터에서 일을 하게 된 이유는 군인권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뭐 이 지면에 자세히 설명할 것은 아니지만 인연이 닿아

서, 자연스럽게 업무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

가 군인권에 관심이 없었다는 겁니다. 저는 학부 때부터 인권활동

을 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동성애자 모

임 “사람과사람”의 대표를 하면서 어쨌든 늘 동성애자의 인권 문

제에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 왜 군인권

에는 관심이 없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제가 유달리 군대 내 인권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기

보다는 군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

다. 간단하게 정리해 볼까요? 대한민국의 반여성주의를 이끄는 주

범이 군사주의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여성들은 군대나 군

생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대 문제

에 대한 관심이 적습니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군대 문제에 관심이

많아야 할 텐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남자분들이라면 대체

로 군대이야기를 많이 하긴 하는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경

험담일 뿐 지금 군대 현실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더

라구요.

기본적으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에게 군대는 더 이상 절박하

게 무언가 개선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지요. 자신은 전역했고

다시 군대 갈 일이 없으니까요. 먼 미래에 자신의 자녀가 군대에

갈 수도 있지만 그건 정말 먼 미래의 일일 뿐입니다. (써놓고 보니

까 학생의 인권에 대한 관점과 비슷하네요.) 이런 이유로 저를 포

Page 4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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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한 많은 사람들이 군대 내 인권에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대한민국에서 군대가 사회문

화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참 큽니다. 한국은 하나의 큰 군대라는 이

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고, 권인숙 선생님은 <대한민국은 군대다

>라는 책을 쓰시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군대 내

인권에는 관심이 없고, 군대는 안보의 논리를 들어 예전부터 지금

까지 폐쇄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군대 내에서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들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군인권센터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했지만 가장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는 장병들의 건강권 문제입니다. 작년 초 논산 육군훈련

소에서 故 이재연 훈련병은 야간행군을 마치고 고열 증세를 보였

습니다. 폐렴이었던 그는 촌각을 다투는 시점에 해열제만을 처방

받고 불합리한 후송체계 때문에 병원을 전전하다가 치료시기를 놓

쳐 목숨을 잃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故 정희택 훈련병은 중이

염 증세가 있었으나 꾀병으로 오인되어 군의관과 지휘관에게 폭언

을 듣고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

었습니다. 그리고 故 이재연 훈련병이 목숨을 잃고 3개월도 지나

지 않아 故 노우빈 훈련병은 야간행군 후 뇌수막염으로 고열증세

를 보였음에도 타이레놀 2알만을 처방받고 故 이재연 훈련병과 마

찬가지로 병원을 전전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쳐 사망에 이르렀습니

다. 그러나 이렇게 세 명의 훈련병이 목숨을 잃었는데, 아무도 책

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시 육군훈련소장이었던 박성우

소장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라는 요직을 거쳐 현재는 경북 세계군인

Page 4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39기획기사

대회를 주관하는 위원장으로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 또 한 명의 훈련병이 야간행군 이후 고열증세가 발생하

였으나, 이번에도 하급병원에서 상급병원으로 단계를 밟아 가느라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소중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훈련병들의 죽음은 군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병사가 죽었는데도 군대 내의 수많은 사람이 시

스템에 매몰되어 전혀 의료체계에 대한 개선을 실시하지 않고 또

다른 목숨이 스러져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죠. 한 알

의 예방약을 복용했더라면, 응급상황에서 즉시 상급병원으로 후송

하는 체계만 있었더라면 한 인간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장병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군대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

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밖에 있었다면 이 훈련병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을까요? 병사들이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목숨보다 비효율적인 체계를 우선시하는 이런 반인권적인

군대의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故 노우빈 훈련병의 어머니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

인도 아들이 죽기 전까지는 군대 내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

신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 억울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만

마치 예전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는 것이

죠. 사실입니다. 군인의 인권의 문제는 그 대상이 성인남성이다 보

니 다른 사회적 약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감정적인 관심

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

국 남성의 대부분이 군대를 반드시 가야 하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군대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반드시 군대 내

Page 4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40

의 인권문제는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저는 원래 군인권에 관심이 크지 않았다고 고

백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군 장병의 건강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조금 절절하게 이야기를 쓰기도 했지요. 하지만 뭐 그렇다고 제가

정말 이제 ‘군인권의 투사가 되어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활동을 하

겠다!’는 대단한 각오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난 1

년을 군인권센터에서 군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군대가 지나치

게 성역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힘든 한계 속에서 어려

움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함께한 군인권센터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폐쇄적

인 군대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 뿌듯한 기

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군사주의 문화가 뿌리내린 대한민국

에서 군대 내의 인권의식을 높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사

회 전체의 인권의식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군

인권센터가 해야 할 일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에는 정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군인권센터가 더욱 열심히 해야겠지요.

앞으로 군인권센터 지켜봐 주시고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릴

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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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리뷰-서평

리뷰-서평

문er | 강정앓이 + 만화교양지 SYNC 편집위원

산리즈카와 강정 그리고 '재현' 그 사이 어딘가

강정

“(전략) 무인도인 범섬과 제주월드컵경기장,

한라산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강정마을은

600여 가구에 1900여 명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

이 지역 주민들은 해군기지 논란을 지켜보다가

지난달 26일 마을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해군

기지 유치를 결정했다.“(<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수용>, 《동아일

보》, 기사입력 2007-05-15 03:01:00 기사수정 2009-09-27 08:27:39)

제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건설지역으로 결정된 5년 전 그 날

《동아일보》가 실은 기사를 보면 지금 강정마을을 뒤덮고 있는

‘해군기지 반대’ 깃발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을 총회’

* 이 글은 SYNC 9월호에 실린 글을 다듬은 글입니다.

Page 4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42

를 거쳐,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면서 왜 뒤늦게

반대를 외치는가? 이런 의문은 위 기사와 현재의 상황 사이의 모

순을 감안할 때 분명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 합리적 의문은 ‘전문

시위꾼’이라고도 부르는 ‘시민단체’, 혹은 ‘종북좌파’ 세력의 공

작에 의해 주민 일부가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거나, 더

심하게는 주민들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데 육지에서 날아들어온

‘외부세력’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으로 해소된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지식인 서비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답변이다.

그런데 <그림 1>은 이 ‘만장일치’ ‘마을 총회’를 달리 그리고

있다. 만화는 ‘마을 총회’가 아닌 ‘마을회의’라 표현하며, 그 ‘마

을회의’에 ‘80여명만이’ 모여서 ‘2시간 만에 졸속으로 결정’

<그림 1> 박건웅, <안보입니까?> 중 한 컷. http://ppuu21.khan.kr/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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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리뷰-서평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물음표를 머리 위로 띄운 ‘마을회의’ 건물

밖 사람들도 그렸다. 이 그림과 《동아일보》 기사 사이에 꽤나 큰

거리가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사실관계로만 따지면 둘 사이

에 모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동아일보》가 말했듯 ‘마을 총회’

는 열렸고, 그 회의 결과가 해군기지의 유치를 ‘만장일치’로 결의

하는 것으로 나온 것도 사실이다. 단지 그 회의에 모여 만장일치

로 결의한 사람의 수가 ‘1900여 명’ 가운데 단 ‘80여명만’이었다

는 사실을 《동아일보》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의미상으

로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림 1>이 추가적으로 제공한 정보로 인

해 ‘80여명만’의 ‘만장일치’가 되면서 ‘강정마을 전체가 해군기

지 유치를 결정했다’는 의미는 거부되고 만다. 마을 전체의 민의

가 아닌 일부의 민의만이 반영된 결정이었음이 폭로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림 1>과 《동아일보》가 아닌 다른 자료들에서는 조금 더

자세한 내용도 발견할 수 있다. 마을 향약은 주민총회를 하려면 7

일 간 공고를 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린 총

회는 고작 4일간만 공고를 했다거나(그러니 ‘마을 總회’가 아닌

‘마을회의’인 것), 수시로 하게 되어 있는 안내방송도 몇 차례 하

지 않았다거나, 공고된 총회의 내용도 ‘해군기지 관련 건’이었다

가 정작 회의 때는 ‘해군기지 유치 건’으로 바뀌었다거나 하는.(<

제주에 해군기지가 결정됐다?>, 《한겨레21》 제664호, 2007년06

월14일) 이쯤 가면 《동아일보》가 ‘마을 총會’라는 표현으로 담으

려 했던 의미, 곧 절차적 정당성까지도 부정되고 만다.

이제 마을의 ‘찬성’이 마을 사람들 일부만의 찬성임이 드러나

고 그 과정까지도 정당하지 못했음이 폭로되니, ‘뒤늦은 반대’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제기할 수가 없다. 의문이 정당하지 않으므

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이었던 ‘외부세력’의 개입을 주장할 논리

Page 4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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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개연성도 사라진다. 이런 논리적 선후관계를 따질 필요도 없이

《한겨레21》 기사의 내용을 주장한 인물이 마을 주민이니 ‘외부

세력’ 운운은 기각될 수밖에 없지만.

산리즈카

재현(re-present)된 것은, 재현되기 전의 실재(존재, presence)

와 다른 무엇이 되고 만다. 문자든 그림이든, 심지어 사진이나 영

상이든 매체(medium)을 거치는 한 그 변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다. 또한 《동아일보》 기사에서처럼 변이와 함께 정치적 혹은 이데

올로기적 의미가 재현 과정에서 삽입된다. 마치 영화 <라쇼몽>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처럼, 우리는 말하면서 왜곡한다. 따라서 만약

‘진실’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재현이

얼마나 실재에 가까운가를 확인하는 불가능한 작업이 아니라 재현

(들)을 통해 실재에 최대한 근접하려 노력하는 심판관(<라쇼몽>의

마을 원님)의 태도일 것이다. 우리가 세 가지 재현을 통해 강정마

을의 회의에 담긴 진실을 어느 정도나마 확인했던 것처럼.

일본 산리즈카 마을의 공항건설 저지 투쟁을 담은 만화 <우리마

을 이야기>(오제 아키라, 길찾기)는 이러한 재현의 문제를 뚜렷한

문제의식으로 담아낸 재현이다. 그 재현은 ‘진실’을 찾는 자에게

‘진실일 수 있는’ 재현으로서 다가가기 위해 실재를 가정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마을 이야기>는 실재와 재현의 차이를 계속

해서 그려내는 재현 방식을 통해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드러내

려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권력관계가 뚜렷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림 2>는 재현이 어떻게 실재를 대하는가를 절묘하게 그려내

고 있다. 화자인 소년 뎃페이는 마을 주민으로, 만화 속에서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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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리뷰-서평

로 가정된 인물이다. 만화 안

에서만큼은 뎃페이와 마을주

민들이 실재이자 진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뎃페이

를 신문이 날아와 때린다. 그

것도 입을 막으며 때린다. 실

재의 발화를 막으며 실재의

현실을 재현하는 신문기사 제

목은 통계적 수치와 분위기를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다. 수

치로만 존재하는 30%의 피폐

한 삶과 반대 의지는 삭제한

채로, 현지 분위기가 ‘호전’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뎃페이

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재현이다. 그에게 공항건설은 ‘기정사실’

이 아니지만, 신문은 그렇게 전하고 있다. 뎃페이는 그런 신문을

손에서 놓아버릴 수`밖에 없다.

<그림 2> 우리마을 이야기 1권 156쪽

<그림 2> 우리마을 이야기 1권 157쪽

Page 4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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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에 이르면 실재와

재현 사이의 간극은 더 확연하

게 벌어진다. 반대동맹은 공청

회에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전

했으며, 공청회 후 거리에서

반대 퍼레이드를 벌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신문기사는 공청

회가 ‘무사히’ 마쳤다고만 전할

뿐다. 이 재현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현 주체

에 따라 ‘無事’에 담는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입

장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지거나, 부상자가 나오는 일이 없으면 충

분히 무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반대주민의 입장

에서는 공청회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버린 것 자체만으로도 ‘무

사’한 일이 아니며, 공청회 전후의 반대활동과 대표의 반대발언이

모두 ‘事’에 해당할 테지만 말이다. 이런 반대주민들의 입장에서

는 공청회가 ‘무사’히 끝났다는 신문의 재현은 17쪽에 걸쳐 그려

<그림 3> 우리마을 이야기 1권 200쪽 <그림 3> 우리마을 이야기1권 204쪽

<그림 3> 우리마을 이야기 1권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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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리뷰-서평

진 주민들의 공청회 전후 사정을 모조리 삭제해 버리는 허탈하고

폭력적인 일이 되고 만다. 공청회 전에 반대주민들은 공청회를 기

대하며 들떴고, 방청석에 반대동맹원은 한 명도 들어갈 수 없게 된

사실에 분개해 항의했지만, 이런 주민들의 이야기도 재현되는 과

정에서 모두 ㅁ사라져버린 것이다.

1권의 이런 에피소드처럼 마을주민들의 실재와 신문 속의 재현

을 대비하는 장면들이 <우리마을 이야기>를 관통한다. 온도 차이

는 있다. 초반에 실재와 재현의 간극에 분노하던 인물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시작하며 심지

어는 이용하기까지 한다. 요컨대 자신들이 재현당하는 처지에 있

음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가 스스

로를 재현하려 노력한다. 마을신문을 만들고, 선전지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과정들을 그려낸 <우리마을 이야기>는 그 자체

가 재현의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재현의 폭력성을 재현해내고 있

다.

산리즈카와 강정은 폭력적인 재현의 피해자라는 면에서 40여 년

의 시간과 지리상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가까이 있다. 오히

려 먼 것은 196~70년대 산리즈카와 2천 년대 강정의 실재와 동시

대 재현 사이의 거리이다. 언론의 보도는 시간적으로 사건과 가깝

지만, 그 입장으로 인해 실재를 폭력적으로 재현하며 멀어질 수밖

에 없었다. 문정현 신부의 말대로, 산리즈카와 강정은 너무도 똑같

다. 재현의 폭력에 희생당한다는 면에서까지도.

“너무도 똑같다. / 이 만화에서 그려지는 산리즈카 마을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나라 제주의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너무도 닮았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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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과 부안 핵폐기장, 미군부대에 땅을 내준 평택 대추리에서 서울 용

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받았고 또 지금도 고

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문정현 신부의 추

천사 첫머리)

다시 강정

그리고 강정은 여전히 폭력적 재현 아래 현재진행형이다. 강정

에 대한 폭력적 재현의 주체들은, 심지어는 재현하지 않는 폭력까

지도 일삼고 있다. 지금 강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구도 알지 못하

게 하는 ‘비재현’의 폭력은 강정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진행되

어 온 시공사의 불법·탈법과 용역의 광포, 공권력의 과잉진압 등

을 은폐한다. 강정이 이슈가 되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이 강정에 힘

을 보태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천부터 차단한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강정 사람들은 사진과 SNS와 유

튜브 영상 등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강정을 재현해내고 알리

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산리즈카가 시대적으로 누리지 못했던 혜

택을, 용산이 공권력의 급작스러운 투입으로 인해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던 대안을 강정은 누리고 시도하고 있다. 가능성은 열

려있는 가운데, ‘만화’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강정은 또 하나

의 큰 가능성을 껴안고 있다. <우리마을 이야기>와 <내가 살던 용

산>이 모두 산리즈카와 용산에 연대한 작가들에 의해 뒤늦게 만

화로 재현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강정의 만화적 가능성은 특

별하다.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재현되었던 다른 두 지역과 달리

현재 많은 웹툰 작가들이 강정에 연대하고 있는 것(<그림 6>, <

그림 7>)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도 물론 고무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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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리뷰-서평

만, 다른 엄청난 강점이 강정에는 있다.

바로 지금 강정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몸으로 겪고 있는 사람

들 가운데 만화가가 넷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 두 명은 이미

프로 만화가와 에니메이터이다. 이들, 고권일과 김민수는 그들이

직접 겪은 일을 각각 만화와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하니, 그들의 재현이 선사할 진실이 기대된다. 하루빨리 강정 투쟁

이 승리로 마무리되어, 투쟁하느라 만화 그릴 여력이 없는 강정 만

화인들이 작품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강정에 이미 한쪽 발을

들여놓은 나도, 그 날이 오면, 늘 재현당하기만 하던 실재들이 스

스로를 재현하는 즐거운 일을, 기꺼이 비평해 보리라.

<그림 6> 출처=김한조 블로그

(http://sanchokim.khan.kr/123)

<그림 7> 출처=강풀 트위터

(@kangfull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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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나름의 바다 건너 일기

부끄러운, 만남

나름 | 전쟁없는세상 친구 + 스웨덴에서 공부하는 중

공항이다. 무슬림 남성이 앉아 있다. 앞에는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다. 본능적으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그는, 노르웨이 경찰.

덥수룩한 턱수염과 머리에 두른 터번이 그를 긴장시킨다. 그런데

무슬림 남성이 자신의 커다란 가방을 바닥에 둔 채, 자리를 뜬다.

의심하는 경찰. “삑, 삑, 삑…….” 가방에서 나는 소리. 폭탄이 아

닐까?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고, 경찰은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때, 무슬림 남성이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하는 말. “저는 테

러리스트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소리의 진원지인 휴대전화를 꺼

내보이며 경찰을 안심시킨다. 해맑은 웃음을 잊지 않으며. 바로 노

르웨이와 미국이 함께 만든 드라마 <릴리함메르>의 한 부분이다.

드라마는 미국의 마피아 조직원이 두목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뒤

증인보호 절차의 하나로 노르웨이에서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당 장면은 이른바 9·11 사태 이후 무슬림들이 겪는 고충을 그

려내고 있는 듯하다. 곧, 겉모습만으로 그들은 테러리스트로 간주

되는 것이다. 이는 무슬림에 대한 특정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력

Page 5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51기획연재-나름의 바다 건너 일기

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말해준다.

노스 코리아?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얼마 전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문제는 내가 당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해를 했다는 것이다. 이

곳 스웨덴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중립국가로 많이 알려졌는데,

때문에 국제관계에서 좀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와 관련된 사항

들 중 하나는 아마도‘북쪽’과 관련된 일이라 하겠다. 스웨덴은

1973년 외교관계를 맺은 뒤로 북과 꾸준히 교류를 해오고 있다(참

고로 2001년까지 스웨덴은 남북-북남 모두에 대사관을 둔 유일한

‘서구’ 국가였다). 그러니까 그 일은 학교의 전자우편에서 시작됐

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전자우편 하나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내용은 외국에서 교육연수를 받으러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행사

가 있으니 학과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것. 그런데 편지의 마

지막 줄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연수생들의 출신국가(대

부분 아시아 지역)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노스 코리아?” 그랬다. 바로 북쪽 사람도 온다는 얘기였

다. 너무 뜻밖이라 신기하면서도 좀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

에겐 스웨덴에서 북쪽과 관련된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기억이 있

었기 때문이다.

2011년, 인터넷을 통해 북쪽 연구원들이 스웨덴에서 한 달 정도

머문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장 관심이 갔던 내용은, 체류 일정 중

하나로 공개 세미나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남북-북남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교

Page 5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52

에서 공부를 했는데, 덕분에 북에서 오신 분들(이른바 이탈주민)과

학생 신분으로 만날 일이 많았다. 그리고 기회가 좋아 북쪽에 몇

번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바다건너에서 북쪽 분들을 만난 적은 없

었으니 그분들의 방문 소식이 반갑게 들렸다. 그래서 해당 연구소

로 당장 연락을 했다. 첫 답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다. 기

뻤다. 그런데 이후 연락 과정에서 갑자기 내가 남쪽 사람이냐고 물

어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자, 북쪽 연구원들이 남쪽 사람의 참

석을 불편해한다는 답변이 왔다. 다시 말해, 아쉽지만 남쪽 출신이

라 참석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내가 받은 느낌은 참 복잡했

다. 아,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반가운 마음으로 연락을 했던

나는 상처를 받고 말았다. 분단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가슴

아팠다(그런데 알고 보니, 행사를 담당하며 답변을 준 이도 남쪽

출신이었다. 참고로 그 역시 세미나에 참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기억을 가진 나였기에 위에서 말한 편지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정말 가도 될까, 괜찮을까? 환영모임이 있는 날, 망

설임 끝에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막상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몰랐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몰라 가기로 한 것이

다. 갔더니 스물다섯 명 정도 일행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관찰

이 시작됐다. 북쪽 사람을 찾기 위한. 먼저 몇 명은 사진을 찍고 있

었는데 그 사람들은 북쪽 사람이 아닐 거라 짐작하고 제외했다(북

쪽 분들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만한 상황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

고). 또 환하게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는 이들도 제외했다(북쪽 분

들은 좀 어둡고 심각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고). 아울러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봐왔던 전형적인 북쪽 외모의 분들을 찾으려고 했

다(‘전형적’이라니 누가 그 기준을 정한단 말인가). 그렇게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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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기획연재-나름의 바다 건너 일기

지나지 않아 북 출신으로 짐작이 되는 분들 몇몇을 가려낼 수 있었

다. 이제 문제는 그분들이 정말 북쪽에서 왔는지 확인하고, 그렇다

면 말을 어떻게 거느냐는 것이었다.

자기검열, 어떡하지?

긴장했던 나는, 북쪽 출신으로 짐작되는 한 분에게 ‘우연히’ 다

가가는 척 해서 일행 중에 혹시 누가 북쪽에서 왔는지 시치미를 떼

고 물어보기로 하였다. 그런 식으로 ‘우연’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북 출신이 아니었고 저 사람이 북에서 왔다

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상봉이 이루어졌다. 모두 두 분이었

는데, 내가 남쪽에서 왔다는 걸 들으시자 북쪽 분이 두 팔을 벌리

며 환한 웃음과 함께 내게로 다가왔다. 너무나 반갑게 다가와서 좀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경계심 없이 다가올 수 있을까, 신기할 정

도였다(나와는 정말 비교가 됐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

누었는데, 아, 역시 남북-북남 사이에는 뭔가 있구나 하는 걸 느

꼈다. 특히나 바다건너에서 만나서였는지 그 느낌이 특별했다. 하

지만 속으로 나는 복잡한 감정을 추스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행

중에서 북쪽 분들이 누굴까 가려내느라 떠올렸던 몇 가지 생각들

때문이었다. 북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이 여과없이 드러

났던 과정들. 그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것 말고 또 있었다. 처음 전자우편을 확인하고 들었던

생각들 중 하나로, 법적으로 북쪽 분들을 만나는 게 가능하냐는 물

음. 다시 말해, 국가보안법 문제였다. 계획되지 않은 아주 우연한

만남이지만, 일단은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접촉하는 것이기에

Page 5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54

혹시 문제가 되면 어쩌나 고민이 되었다. 또 대화 과정에서도 나는

최대한 내 개인정보를 흘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나의 이름을 포함

한 그런 것들. 왜냐하면 나중에라도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불리하

게 이용되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자기

검열인가. 그래서였다. 바다건너에서 이루어진 이 만남이 부끄러

웠던 이유. 장벽은 원래 있었다기보다 내가 만들어내고 있었다. 언

젠가 있을 다음 만남은 부끄럽지 않기를…….

[나름대로 스웨덴 소식]

# 24시간 탁아소 운영 (스웨덴 국영라디오 국제: 2012. 8. 22)

스톡홀름 시장은 밤중 교대근무를 하는 싱글/비혼 부모들을 위

해 탁아소를 24시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장은 보통의 일과 시간이 아닌 다른 때에 일하러 나가는 싱글/

비혼 부모들이 많다며 이들의 양육문제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

다. 보도에 따르면, 스톡홀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지역들도 올해

안에 24시간 탁아소 운영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 인종주의 문제의 심각성 (스웨덴 영문뉴스 <로컬>: 2012. 9.

25)

유럽연합 인종주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은 인종주의와

외국인혐오증 관련해 노력을 더욱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구

체적으로 보고서 작성자들은 학교, 건강보험, 법률체계 안에서의

차별과 인종별 거주지 분리와 관련해 많은 조치들이 있어야 할 것

이라고 권고했다. 또한 몇 년 사이 반무슬림 담론들이 확산되고 있

으며, 특히 인터넷에서의 문제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Page 5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55기획연재-가람이의 좌충우돌 세상읽기

기획연재-가람이의 좌충우돌 세상읽기

Page 5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56

기획연재-효웅의 뀨잉뀨잉

효웅 | 병역거부자(feat. 갸루상 효웅)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온라인 게임 와우 확장팩 <판다리아의 안

개> 퀘스트 작업하는 거랑 일상언어의 폭력적 혐오발화들을 화용

론적이고 메타윤리학적인 맥락에서 분석하는, 누구나 할줄 아는

거밖에 할줄 아는 게 없는 효웅이므니다. 사랑 밖엔 난 몰라!!! 안

녕하시므니까? 대선 때문에 시끄럽스므니다. 대선이 뭐임 먹는거

임? 누가 대통령느님이 되던 말던 내가 알바야 쓰레빠야 핫바야

난 그냥 게임만 하고 야동만 보면 되므니다 ^ㅅ^aa 그럼에도 불

구하고! 언젠가는 오덕 그만하고 앙가주망을 꼭 하겟으므니다. 요

새 관심사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과 진술문과 수행문(혹은 명령

문)의 구분에 관한 것이므니다. 진술문과 수행문의 묘한 차이는 개

그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소재이므니다.

이를테면 왜 “여성”이라는 기술에서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당

위가 도출되는지, “이성애만이 재생산을 할 수 있다”라는 가능적

사실로부터 왜 “따라서 동성애자는 반인륜적이다”라는 가치가 도

출되는지, 왜 “인류는 육식을 오랫동안 해왔다”라는 우연적/역사

Page 5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57기획연재-효웅의 뀨잉뀨잉

적 사실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채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범

이 도출되는지, 왜 “한국은 개고기를 식용으로 오래 해왔다”라는

사실로부터 “개고기를 먹어야한다”는 가치 판단이 나오는지, 어

떻게 “여성은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양상논리적 명제에서, “그러

므로 여성은 출산을 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당위가 도출되는지 이

런거 말이므니다.

이런 사실과 가치의 혼동을 G. E.무어라는 윤리학/논리학자는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명명했으므니다. 사실 가장 대표적 작태

는 이런 거라고 생각되므니다.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보다 성

욕이 강하다. 따라서 남성의 성욕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형태

로 말이므니다. 특히 사회생물학은 남성이 성폭행이나 바람기에

대한 유전적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거나 한다는 식으로 여기에 이

론적 근거를 대주고 앉았으므니다. 백 번 양보해서 설사 남성의

유전자가 ‘사실’로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거기에서 남성의 성욕

은 보장되어야 된다거나 남성의 성욕은 이해해 줘야 한다라는 ‘가

치’가 도출되므니까? 그렇게 따진다면 인류가 지금껏 유사이래

전쟁과 살인을 끊임없이 해왔다는건 역사적 사실이고 이는 유전자

에서도 입증되므로 계속 전쟁과 살인을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한다

는 거이므니까? 이 갸루상아?!!

김춘수 『꽃』의 패러디적 증식

군대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여성/어린애

에 지나지 않았다. 군대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진정

한 남자’가 되었다.

Page 6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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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와 유투브가 싸이를 불러 주기 전에는 싸이는 하나의 병

역기피자에 지나지 않았다. 빌보드와 유투브가 싸이를 불러주었을

때 그는 애국자가 되었다.

오리가 병역거부자들을 불러 주기 전에는 병역거부자들은 하나

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오리가 병역거부자들을 불러주었을 때

병역거부자들은 오리를 이모라고 불렀다.

여옥이 병역거부자들을 부르기 전에는 병역거부자들은 하나의

갸루상에 지나지 않았다. 여옥이 병역거부자들을 불러주었을 때

병역거부자들은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전없세가 효웅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나는 오덕에 지나지 않

았다. 전없세가 뀨잉뀨잉을 통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눈물이 나왔다.

사실 vs 규범과 당위 (feat. 데이비드 흄)

논리 실증주의자: 우리는 ‘사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사회는

정의로워야 한다”와 같은 윤리적 명제, 가치나 규범은 사람마다

주관적이고, 참과 거짓을 매기기 힘듭니다. “물은 0도 이하로 떨

어지면 언다”나 “고양이는 동물이다”와 같은 사실만을 말해야 합

니다.

흄: 너님의 주장인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라는 주장도 당위

Page 6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59기획연재-효웅의 뀨잉뀨잉

나 규범이지요 ^^*

법 실증주의자: 병역거부자는 실정법 위반입니다. 따라서 처벌

을 받아야 합니다.

흄: 고갱님 ^^* 니 말은 동어반복입니다 ^^* “병역거부는 실정

법 위반이므로 처벌을 받는다”라는 성문법의 사실 규정으로부터,

“따라서 병역거부는 처벌을 받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당위가 도출이 될순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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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 주신 분들

총 수입 총 지출 이월금 총계

7,269,093 6,977,028 5,869,096 6,161,161

가람 강돌 강민정 강성준 강소연 강은애 강지유 강진선 고동주 고동환

고태경 고희라 괭이눈 구종우 권순욱 권연재 권인숙 권혁기 김경숙 김명섭

김미선 김미현 김민경 김민영 김박가온 김반지 김범준 김보미 김선미 김선옥

김선영 김세윤 김송이 김수용 김수정 김숙희 김영수 김영준 김영환 김영효

김용엽 김은주 김윤종 김일애 김재홍 김정웅 김주현 김준희 김중미 김지호

김태훈 김한보람 김현정 김훈태 김희순 나동혁 류동훈 문명진 문상현 문수현

문연정 미자 박남식 박승호 박아름 박용희 박정경수 박조건형 박준성 박지선

박진 박채원 박태하 방강수 배사은 백가윤 백선희 백지숙 보라 상우

서범석 설순일 소란 송명관 송병채 송준 수하 시와 신기현 신순영

신유아 신은재 신희권 아하 아침 아키오 여문정 여옥 여은 여지우

염창근 오리 오정록 오하린 우경환 우완 우성섭 우지연 위양자 유은정

유현미 윤민순 윤정화 윤지환 은국 은종복 은혜와평화교회 이계삼 이덕현 이비함

이상길 이선아 이선영 이선옥 이세현 이승규 이연희 이영롱 이용석 이은주

이준규 이현우 이희진 임재성 임태훈 장기정 장대환 장미희 장성희 장정혜

장현진 전기화 정상민 정인철 정주열 정혁 정현채 정혜윤 조명래 조서연

조원영 조은 조정의민 주관수 주창언 지은 진진 진현호 진흙 참새

채승우 최민아 타랑 편설란 하동기 하승우 한주훈 햄 홍성훈 홍세은

홍수봉 홍수영 황명규 황예랑 황혜정 희원

>>전쟁없는세상 재정보고 (2012년 7월 1일~ 2012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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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2012년 11월)

발행처: 전쟁없는세상발행일: 2012년 11월 6일제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35호연락처: 02-6401-0514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121-230)http://www.withoutwar.org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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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수감자들한테 편지 써 주세요!

홍원석(홍이)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1121번 (153-600) - 서울남부교도소

전길수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1326번 (153-600) - 서울남부교도소

최기원경기도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457번 (469-800) - 여주교도소

유윤종(공현)경기도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407번 (469-800) - 여주교도소

이준규대구시 수성우체국 사서함 48호 1038번 (706-600) - 대구구치소11월 30일 가석방 출소 예정입니다

김복철제주시 오라2동 161번지 598번 (690-162) - 제주교도소

정연길제주시 오라2동 161번지 187번 (690-162) - 제주교도소

박석진제주시 오라2동 161번지 188번 (690-162) - 제주교도소

박승호제주시 오라2동 161번지 290번 (690-162) - 제주교도소

병역거부 수감자들입니다

강정에서 제주해군기지 저지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분들입니다

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