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3호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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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팀장의 말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1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 다가 옵니다. 오 영 은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 , [email protected]) 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입니다 이 날 5 15 . 은 전 세계 병역거부자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행 동하고 연대하는 날입니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 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월 일 평화수감 1981 , 12 1 자의 날 행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작년에 처음으로 그 의미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 , 일은 전쟁없는세상이 빛을 본 날이기도 합 5 15 니다 후원인의 밤에 와주셨던 수많은 분들과 . ' ' 함께 만들어낸 훈훈한 평화의 기운이 아직도 기 억나는군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병역거부 운동의 역사가 매우 짧고 그런 만큼 모자란 것도 많고 새롭게 , 돌파해야 할 장벽도 많습니다 새롭게 알아야 할 . 사실도 참 많습니다 병역거부 운동에 있어 이미 . 한 세기 이전부터 계속된 수많은 고통과 변화의 기억들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주고 있 습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는 . 과정 자체가 매우 지난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평화를 갈구했던 작지만 소 중한 행동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사람들 가슴 속 깊이 평화를 아로새기게 된 희망의 역사를 보기 도 합니다. 이 번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는 칠레에서 진행되며 이 행사와 때를 맞추어 국내에서도 캠 , 페인 강연회 직접행동 강철민 씨 농성 다큐멘터 , , , 리 시사회 후원인의 밤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준 , 비하고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 두 번째 후원인 . ' 의 밤은 이런 맥락 속에서 함께 연대하고 행동 ' 하는 과정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 는 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구속되 . , 고 있는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준비가 조금씩 갖춰지기를 바랍니다. 이 번 소식지에는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의 의 미와 행사 참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 습니다 또 전면 인 전쟁없는세상 페이지 개 . , 편 작 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 보다 후원인들 . 정 후원 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병역거 부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 하는 목표 를 두 고 있습니다. 따뜻 입니다 가 은 하 을 보며 수감 . 되어 있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서 한 통 보는 까요 당신 에도 평화가 들기를 바 ? 랍니다. 작년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5 15 , 스라엘 대사에서 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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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3호 (2004년 3월)

소식지 팀장의 말

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1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 다가 옵니다.오 영 은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 [email protected])

월 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입니다 이 날5 15 . 은 전 세계 병역거부자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행동하고 연대하는 날입니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은 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월 일 평화수감1981 , 12 1자의 날 행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작년에 처음으로 그 의미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 월 일은 전쟁없는세상이 빛을 본 날이기도 합5 15

니다 후원인의 밤에 와주셨던 수많은 분들과 . ' '함께 만들어낸 훈훈한 평화의 기운이 아직도 기억나는군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병역거부 운동의 역사가 매우 짧고 그런 만큼 모자란 것도 많고 새롭게 , 돌파해야 할 장벽도 많습니다 새롭게 알아야 할 . 사실도 참 많습니다 병역거부 운동에 있어 이미 . 한 세기 이전부터 계속된 수많은 고통과 변화의 기억들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는 . 과정 자체가 매우 지난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평화를 갈구했던 작지만 소중한 행동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사람들 가슴 속 깊이 평화를 아로새기게 된 희망의 역사를 보기도 합니다.

이 번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는 칠레에서 진행되며 이 행사와 때를 맞추어 국내에서도 캠, 페인 강연회 직접행동 강철민 씨 농성 다큐멘터, , , 리 시사회 후원인의 밤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준, 비하고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 두 번째 후원인. '

의 밤은 이런 맥락 속에서 함께 연대하고 행동'하는 과정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계속해서 구속되. , 고 있는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준비가 조금씩 갖춰지기를 바랍니다.

이 번 소식지에는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의 의미와 행사 참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전면적인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개. , 편 작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후원인들. 이 재정 후원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병역거부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입니다 가끔 맑은 하늘을 보며 수감. 되어 있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엽서 한 통 써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의 삶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 랍니다. ☮

작년 월 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5 15 , ▲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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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

소식지 월호3☮ 2

병역거부자 임태훈 씨 옥중서신임 태 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 , )

구치소 입소한지 벌써 사흘이 지나버렸습니다 모. 든 것이 낯설고 어색할 따름입니다 왼쪽 가슴에는 . 이름대신 수번이 오른쪽 가슴에는 방번호가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몸에도 맞지 않는 수인복을 입고 있. 답니다 바지 기장이 너무 짧아 팔보 바지가 되어 . 버렸구요 또 사타구니 사이 정중앙은 구멍이 뽕. ' ' 뚫려있어 자연 통풍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옷이 . 너무 얇고 박음질 상태가 좋지 못해 항상 춥게 지냅니다 여기선 입소 할 당시 막 던져 준 옷을 알아서 . 잘 골라 입어야 한답니다 작거나 크다고 해서 교환. 해 달라고 하면 교도관에게 잔소리 듣기 십상입니다.

수요일 아침 일찍 강남경찰서 유치장에서 서울지검 구치감으로 이송하는데 사람을 굴비 엮듯해서 차에 태운 다음 구치감 도착해서 본인 확인을 합니다. 구치감에 배속된 경찰들의 계급은 경사 무궁화 잎( 4개 들인데 본인확인 과정에서 존칭은 빼더라도 반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반말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어렵나 봅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있는 경사가 본. 인확인 과정에 피의자들의 얼굴을 쳐다보기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보다 더 아래에 위치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져서 인지 모르겠지만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있는 피의자들에게 바닥에 쪼그려 앉으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저는 왜 앉아야 하는지 몰라 그 .

경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대뜸 화를 내면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지라며 핀잔을 들었습니다 결국 그냥 . 버티고 있었고 계속되는 명령에 앉아야 할 행형법 , 조문을 제시하라는 말에 그 경찰은 입을 다물어 버리더군요 그 경사는 여기 끌려온 사람들은 모두 죄. 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치감에 수감되어 검찰조사를 기다리는데 그곳은 마루바닥에 난방이 전혀되지 않는 곳입니다 약 . 명정도가 각기 다른 경찰서에서 검찰에 조사받기 10

위해 구치감에 왔는데 아침 시부터 오후 시 분까8 1 30지 시간 동안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다들 이런저런 6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각자의 사건이야기와 . 구속적부심 및 심재판에서의 형량과 피해자와의 합1의서 등등을 변호사도 아닌 제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아니라 인권활동가라고 했는데. 도 불구하고 그래도 자기들 보다는 재판과정도 잘 , 알 것이고 법률도 잘 알 것이라며 잡다한 문제들을 집중 질문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답변을 . 드리고 나머지는 가족들을 통해 대한법률구조단을 직접 방문하여 문의하거나 구치소에 방문하는 공익, 법무관에게 면담요청하면 자세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화기애애. 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밖에 있던 결찰들이 죄인이

임태훈 씨는 년 월 일 입영을 거부했습니다 임태훈 씨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며2003 7 22 . ,

현재 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평화주의자로서 또 성적 소수자로서 이중의 장벽에 맞서 싸1 . ,

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구속된 상태에서 한 달에 가까운 단식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임태훈 . .

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홈페이지 에 올라온 편지글과 자료실에 있는 병역거부 이(www.withoutwar.org)

유서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Page 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3호 (2004년 3월)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3

반성은 하지 않고 떠든다며 우리 방문을 밖에서 닫어 잠궈버리는 겁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가만히 보. 고만 있었습니다.

곧이어 오후 시 분이 되자 조사받기 위해 문을 1 40열어 주었습니다 약 명의 남녀가 밖으로 나와서 . 30수갑을 차고 포승줄로 팔목 양팔꿈치와 몸통을 꽁, 꽁 묶었고 또 열종대로 서게 한 다음 긴줄로 엮어 , 2매어 마치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봉추가 조조에게 알려준 연환지계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졸지에 줄줄. 이 비엔나 소시지가 되어 호 조사 대기실에서 746 80년대 초등학교 교실 또는 인사동 학교종이 땡땡땡' '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의자가 교회당 의자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들에게 경찰. 관은 앞만보고 뒤돌아 보지 말 것과 대화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우린 쥐죽은 듯 조용하게 있었고. , 침묵이 연이어 계속되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이 침묵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포승줄이 팔목을 . 너무 조여 피가 통하지 않는다며 항의하기 시작했고 이을 본 경관의 태도는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엄살 . 피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느슨하게 풀어달라는 . 요구와 안된다며 비아냥거리는 실랑이가 계속되었고 보다 못한 제가 입장 바꿔 당신들이 묶여 보면 , 엄살인지 아닌지 알 것 아니냐는 소리에 소란이 멈춰지고 이윽고 경관들이 한사람 한사람 팔목을 느, 슨하게 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명이 남았고 오후 시를 가리키고 5 , 5있었습니다 팔목이 많이 아프고 따분한 찰라에 옆. 과 뒤에 계시는 대 대 남성분이 대화를 걸어 60 , 50왔습니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 는데도 성질 못된 김 경사가 반말로 시끄러워 떠00 ! 들지마 똑바로 앉어 반말을 하기 시작했고 어간이 ! ! , 멍해져 있는 나는 정신을 차려 왜 반말 하느냐 항의 했지만 김 경사의 그 다음 말은 반말도 아닌 육두00

문자로 이어졌습니다 더욱더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 화가 너무 많이 났고 우리들의 인격권은 안중에도 , 없어 보였습니다 항의해도 소용없었고 국가인권위. , 에 진정요청 또한 묵살 당하였습니다 참으려고 했. 지만 이곳을 거쳐갈 피의자들이 그 김 경사에게 00 당할 것을 생각하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통해 더 이상의 인격권 침해가 자행되는 것을 근절시켜야 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치장부터 인권위에 면전진정을 요청했지만 지금 이시간까지 아무런 소식도 방문도 없군요 검찰조사부터 입소하면서 구치소에서 벌어진 사. 건들을 다음 서신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토요일 2004. 3. 6.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호 20서울구치소에서 수번 임태훈 3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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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3호 (2004년 3월)

번역글

소식지 월호3☮ 4

병역거부자 염창근 씨 출소 인사염 창 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학원생( , )

출소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제 소식 기다렸을 . 분들에게 많이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반갑게 맞이해 . 주신 분들께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 , . '나왔어요 외치면서 팔 활짝 펴고 인사드리고도 싶!' 지만 저 때문에 염려해주시고 고생해주신 것이 밀, 려와 쑥스러움부터 생깁니다 보내주신 고마운 마음. 들을 기억하며 그리고 또 한 걸음에 같이 할 것을 다짐하며 출소 이야기를 드립니다.

출소하는 날 월 일 재판 때 말로만 듣던 혁신적인 판사를 3 3

만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판사가 헌법 재판. 소 판결 이후에 재판하겠다며 다음 재판은 추후지정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저의 작은 마음 속으로 설레, 임이 쑤욱 들어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 좋.

아보이는 그 판사님이 피고인의 이야기를 단지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성실히 들어주시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날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 단독 재판에는 저 9말고도 두 명의 여호와의 증인 젊은이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판사님은 그냥 살겠다 는 두 여호와. ' '의 증인 젊은이에게도 판사 직권으로 내보내겠다고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현행 병역법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것 아시'지요 여호와의 증인임을 확인하고 나더니 이렇게 ?' 물었답니다 젊은이는 예하고 답하자 보석으로 . ' ' , '내보내겠습니다 재판을 헌재 판결 이후로 미루도록 . 할께요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증인 젊은이는 잘 . ?' '모르겠습니다 그냥 살면 안될까요 하고 물었답니. ?' 다 그러자 판사님은 방청석에 어머니를 불러 의견. , 을 물었고 어머니는 본인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했, 답니다 그러자 판사님은 판사 직권으로 오늘 보석. , '으로 내보내겠습니다 주 후에 재판을 다시 잡을테. 2니 그때까지 잘 생각해 보세요 헌재 판결까지 기다, . 려볼 것인지 어떤지에 그때 이야기하죠.'

현행 병역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판결나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피고인, 을 구속시킬 수 없다고 그 판사님은 생각하였습니다 구속되고 나서 처음으로 병역기피자의 굴레에서 . 벗어나는 기쁨을 누려 보았습니다 그동안 병역기피.

염창근 씨는 년 월 일 입영일이었으나 반전평화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습니다 현재 2003 11 13 , .

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얼마 전 보석으로 출소했습니다 이 글은 지난 월 일 보석으로 출소하면1 , . 3 4

서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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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 활동수기

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5

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앞에 두고 순식간에 오고가는 대화 속에 저의 생각을 어떻게 담을까 전전긍긍했거든요 진땀을 흘리고 마음을 졸이며 몇 마디 대화 . 속에 병역거부의 이유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말주변 없는 제가 감당하기엔 . 너무 역부족이었죠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젊은이들. 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자신의 양심을 실천해왔기에 쉽게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 신념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최소한 그 젊은이들, 이 결코 남을 해칠 사람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서부터 커져갔던 혼자의 싸움 같은 기분이 안개 걷히듯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결코 .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며 이 수감의 공간에서도 수, 많은 사람들이 같이 싸우고 있었고 또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도 손을 잡아주는 판사가 있었습니다 이 . 사실들이 조금씩 가라앉던 저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렇게 보석결정이 났습니다 우리방 하 방 사. , 11 4람들은 모두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습니다 갑갑한 . 자신들의 마음을 감추고 밖에 나가서 만나자며 그동안 고생했다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쯤부. 5터 조금씩 내린 눈이 성동구치소 사동 전체를 덮는 것을 조그마한 창문으로 보며 출소를 축하하는 눈, '이 내리네 라는 말도 빼먹지 않고 해 주었습니다' .

낭랑 세 한 달 전 방영분이 시 분에 마치' 18 ' 8 30고 취침을 위해 담요를 깔려고 하는 찰라에 구치소, 에 들어올 때 봤던 경비교도대원이 와서 염창근씨' , 출소 하며 불렀습니다 챙겨놓은 짐을 부랴부랴 들' . 고 동 하층 방 사람들이랑 급한 인사를 나누었습11 4니다 철커덩 철문이 열렸습니다. , .

컴컴한 통로를 빠져나오면서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통로 창가로는 눈이 퍼내리는 장관이 계. 속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운치가 있다고 해야될 지. ,

뭐라 해야될 지 모르겠지만 마치 영화 속에 있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안내하는 경비교도대원은 내일 . 이 눈을 어찌 치울지부터 걱정합니다.

수의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소지품 점검을 . 간단히 받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영치금도 받았습니다 다시 발목까지 덮히는 눈밭을 거닐어 나왔고 교. 무과에서 마지막 신원확인과 형식적인 설문지 작성도 하였습니다 이제 막 시 뉴스가 교무과 에서 . 9 TV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들어와서 처음보는 생방송 . 뉴스에는 폭설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덮고 잠을 자는 듯한 컴컴한 구치소를 그렇게 빠져나왔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 속을 걸으며 . 나오는 게 너무 어색해 어찌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눈을 선물해준 그 사람 도 고마웠습니다 동생. (?) . 들과 동료들이 저기 철문 밖에서 저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감옥을 갔다왔다는 것도 바, 깥에 나와 있다는 것도 잘 실감나지 않습니다 이곳. 을 바깥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아직 마음은 그 ' ' , '안에서 완전히 못 떠나온 듯 합니다 오랫동안 있' . 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감옥에 있었던 것이 꿈같기도 하지만 감옥의 경험을 소중한 밑거름으로 만들어가, 고자 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보내주. 시고 보태어주신 그 마음들을 어찌 다 갚을 수 없겠지만 저의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것으로 , 대신하겠다고 염치없게 말씀을 드립니다.

오랫동안 좌절하고 시련을 겪을 지라도 멀고 험한 길 손 잡고 가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내일 주점에서 만나뵈면서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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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

소식지 월호3☮ 6

병역거부자 임성환씨 목요집회 편지임성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출판업( , )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우리에겐 두가지 길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양갈래 길에서 선택을 강요 받고 있는게 아닐까.

그 길이란 바로 삶의 길과 죽음의 길 입니다.

오늘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어 갔습니다 상당수는 굶주려 죽었고 또 상당. 수는 전쟁에 의해 죽어 갔습니다 그 죽음은 우리가 . 눈 앞에서 볼 수 없을 뿐 또 그 고통을 직접 느낄 수 없을 뿐 그 어떤 영화보다 그 어떤 뉴스보다도 큰 아픔입니다.

아마도 오늘 어디선가는 여전히 그 사람들은 고통속에 죽었을 겁니다 그중엔 아직 말을 시작하지 . 못한 아이도 있을 것이고 또 그 아이들의 부모도 있

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전쟁을 생중계 할 때 . 또 영화에서 동정을 빙자 해서 타인의 고통을 팔아 먹을 때도 여전히 사람들은 고통 속에 죽어 갑니다.

만약 정말 삶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다면 아주 불행한 일이지만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죽음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드는 사이 한켠에선 더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 갑니다 국가라는 . 이름으로 수만명을 학살하는 전쟁을 우리의 이익을 위해 그럴수도 있다고 용인하는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 사실상 이에 동. 참하고 있습니다.

삶을 위해 불행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어떤 분들은 환경운동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난민과 아사자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분들은 전쟁에 반대. 합니다 이 모든 행동을 같이 하는 분도 있겠죠 그. . 리고 그중 우리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이 일들은 모두 같은 맥락의 일들입니다 이 . 모든 것들이 연계되어 있으니까요 아마도 여기 동. 참하고 있는 분들은 모두 전쟁에 반대할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삶과 미래를 생각하는 환경주의자이고 또 이웃의 아픔과 굶주림에 마음 아파하는 분들 일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알았으면 합니다 사는 지역이 다르. 다는 이유로 피부색이 혹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 , 다는 이유로 오늘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 갑니다 국가가 다르다는게 종교가 다르다는. ,

임성환 씨는 년 월 일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현재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불구속으로 2003 7 1 . ,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Page 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3호 (2004년 3월)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7

게 인종이 다르다는게 과연 죽음의 이유가 될까요, . 그러나 현실속에서 이 어처구니 없는 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실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러한 고통속에서 삶의 길을 선택하려 한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다른사람들. 의 고통을 또 죽음을 더 민감하게 나의 일처럼 느, 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외면하는 것. 이 싫었던 사람들이고 그로인해 전쟁의 동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특별해 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로 인해 국가가 또 그 국가에 속해 있는 개. 인들에게 돌을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지구위의 이웃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과 그 전쟁의 당사자인 군대를 거부 했다는 이유로 수 백명의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 한 곳에선 국가라는 이름으로 석. 유를 빼앗기 위해 또는 자신의 세력권을 넓히기 위해 분쟁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 까요 전 모. 든 개인들이 삶의 길을 위해 자신이 뜻을 관철 시키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

병역거부 양심수에게 편지를!!현재2004. 2. 15

5 2 1명명단을 보실 분은 으로( peace.jinbo.net !!)

☮ 최 준 호우 충남 홍성 홍성우체국 사서함 ( : 350-800)

호 홍성교도소 수감번호 9 840

전자서신 보내기 홍성 교도소 홈페이지 :

http://hscorr.go.kr

☮ 강 철 민우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이황( : 467-909) 3

리 사서함 강철민 900-10

지원단 홈페이지 : peace.gg.gg

☮ 임 태 훈우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 435-050) 20

서울구치소 수감번호 번 3318

전자서신 보내기 서울 구치소 홈페이지 :

http://www.moj.go.kr/corrections/seoul/index

Page 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3호 (2004년 3월)

번역글

소식지 월호3☮ 8

기획글 병역거부자 구속수사 부당하다1 - 정 리 오 영 은: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 [email protected])

아마도 법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영장실질심사 무죄추정의 원칙 구속적부심제 등, , 등 법률용어들이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 어느 누군가가 구속되었다고 하면 그 사람을 죄를 지은 사람 범죄자라 인식하기 쉽다 한국 사회에서 , .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속 처벌 범죄자라고 생각한' = = '다 그렇게 구속받은 사람들은 나중에 무죄판결을 . 받더라도 구속의 경험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범죄자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 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속되는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은 사람 즉 유죄는 아니다 형사 소송 절차의 진행 과정에서 , . 구속 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주' '의 우려가 있거나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는 자에 한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국가형벌권을 실. 현하기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구속제도는 개개인에 대하여 신체의 자유를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는 강' '제 처분으로 볼 수 있다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는 . 수사나 재판상의 편의를 위하거나 신속하고 용이하게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되어 온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한국의 헌법 및 형사소송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본 이념으로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제 조 항 형[ 27 4 , 사송법 조의 헌법재판소도 불구속수사와 불275 2]. 구속재판의 원칙이 형사절차의 전 과정을 지배하는 기본원칙이라 선언한 적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란 누구든지 법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범인으로 단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 칙은 신체의 자유보장을 위한 규정이다 이 원칙에 .

따라 불구속수사가 원칙적이며 예외적으로 구속수, 사가 인정되는 것이고 구속수사의 경우에도 구속기, 간은 가능한 한 최소한에 그쳐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형사 절차는 이와 정반대로 운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여 년간 교정시설의 . 20일 평균 수용 인원 중 약 가 미결수용자였다1 42% . 각종 구금시설의 수용자 명중 명이 아직 유죄 판10 4결을 받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다 지난 년부터 영. 97장실질심사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이 제도는 피의자 신청이 있어야만 심사가 가능하여 모든 피의자들에게 영장실질 심사를 받을 기회가 돌아가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구속제도 자체가 부당하거나 위법이라는 것은 아니다 구속의 기준인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에 대한 입증이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역거부자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구속수사를 . 받아오고 있다 이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음에도 불. 구하고 구속수사 결정이 난다는 것은 한국의 법조계가 주장하는 구속제도의 기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현행법. 에서 위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고 그럼에, 도 불구하고 부당한 법이나 제도에 불복종함으로써 저항한다.

이들은 법의 부당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내고자 하고 여론을 만들어 법과 제도가 바뀌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내고 여론을 만들어 . 가는 과정은 공개적이고 대중적일 수밖에 없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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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글

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9

리고 그 과정에 앞장서며 오히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신념과 양심을 가지고 있는지 많은 사람, 들에게 알려내려 노력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과연 . 도주나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또한 피고인들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더불어 피고인 방어권의 주체이기도 하다 피고인이 검사와 대. 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무죄와 관련한 자료를 법정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신체상태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를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에 대입시켜 생각해 본다면 병역거부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타당성과 법제도의 부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들은 사실상 사회적 여론 환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동. 안 한국 사회에서의 군대 라는 곳이 가져왔던 의< >미와 병역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재했음을 생각하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를 인정하는 문제는 사회적' '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 제기되어야 하고 많은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수사를 받아야만 하는 현실은 병역거부자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죄를 주장. 할 수 있는 증거 마련의 과정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에 . ' '대해 또 다른 방법으로 억압하고 있다고 보여 질 수 있다.

또한 구속이 처벌의 일종이라 생각해 구속사유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장을 발부한다는 판사들의 말을 뒷받침해 보았을 때 병역거부자들을 여전, 히 병역기피자라는 죄인으로 생각하고 불충분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구속수사를 강행하고 있는 거라 생각된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구속수사는 부당하다 도주. 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들의 구속수사

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

병역거부자들 재판 소식

년 월 이후 중단되었던 -2002 6 오태양씨 재판이 월 일에 속행되었습니다 이 날 재판에서 3 17 .

오태양씨 변호인 측에서 증인 신청을 하였고 이,

를 받아들여 월에 재판이 다시 열립니다 장소4 .

는 동부지원 지하철 호선 구의역 이고 날짜는 ( 2 ) ,

확실히 정해지는대로 전쟁없는 세상 홈페이지< >

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월 일에 -3 23 강철민 씨 선고공판이 진행되

었습니다 년 월 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그 동. 1 6 .

안의 강철민 씨에 대한 기록은 에 peace.gg.gg

가시면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월 일에 -3 25 임태훈 씨 첫 재판이 진행되었

습니다 한 달 가량의 단식진행으로 몸이 많이 .

안 좋아지실까 염려되었지만 다행히 이제 단식

을 중단하고 회복단계에 있습니다 월 일 . 4 13

오후 시에 심 선고공판이 있습니다 장소는 4 1 .

남부지원 지하철 호선 교대역 입니다(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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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

소식지 월호3☮ 10

기획글 2)

세계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은 세계병역거부자회의(Interna-와 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Meeting, ICOM)

연관되어 있다 년에서 년 사이 세계병역거. 1981 1997부자회의는 매년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

의 지부조직들에 의해 네덜ters' International, WRI)란드 스페인 프랑스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헝가, , , , , 리 터키 콜롬비아 차드 등지에서 개최되었다, , , .첫 해는 전 세계 병역거부자들 사이의 네트워크와

활동경험을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춰 행사가 진행

되었으며 나중에 이것에 특별한 목표가 추가되었다. 특별히 병역거부자들의 현황이 별로 좋지 않은 국

가들 몇몇 나라들은 아직도 그러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활동이 그 국가 )병역거부자들의 활동을 도모하는 데 큰 역할을 하

고 있다 병역거부 방법의 발전뿐만 아니라 해당 국. 가의 이러한 활동을 하는 그룹들의 증가라는 매우

실질적인 차원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 최근 이러한 회의는 개최되지 않고 있다.

세계병역거부자회의는 개 이상의 나라 여명 20 100이상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던 회의이며 세계병역거

부자의 날의 배경이 된다 년 월 일 세계병. 1985 5 15역거부자회의는 최초로 병역거부 행동에 초점을 맞

추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것은 각각의 개별 국가. 의 병역거부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인지하고 국제적

차원에서 주제별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년 . 1986

그리스 년 유고슬라비아 년 폴란드, 1987 , 1988 , 1989년 남아프리카 년 스페인 년 터키 년 , 1990 , 1992 , 1993구유고슬라비아 년 콜롬비아에 초점이 맞춰졌, 1995다 또한 주제별 포커스도 있었다 년에는 여성. . 1991징병문제를 년에는 징집을 거부하거나 탈영한 , 1993남성과 여성을 위한 보호시설에 관한 논의를 진행

하였다 년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평의회. 2001는 앙골라의 병역거부자들과 탈영(Council Meeting)

병들의 상황에 초점을 맞출 것을 결의하였다. 2002년의 초점은 발칸반도였다.

세계병역거부자회의가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을

지라도 매년 월 일은 전 세계에서 병역거부자들5 15을 위해 단일한 액션을 취하는 날로 정착되었다 전 . 세계의의 병역거부 운동그룹들은 월 일을 병역5 15거부운동에서 주목하고 있다 이 날에는 전 세계에. 서 동시에 공개토론회 철야농성 시위 각종 행동, , , 들 세미나 캠페인 등과 같은 행동이 벌어진다 최, , . 근에는 각 국가나 지역의 병역거부 운동그룹들이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그 나라의 구체적 이슈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고 공동의 행동이 일정한 한

계를 갖고 있지만 이 날의 의미는 아직까지 병역거

부가 단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이

슈이며 따라서 이러한 국제연대는 병역거부 운동에

특별한 힘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역사

부러진 총 년 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Broken Rifle) , 2002 5『 』5 Caledonian Road, London N1 9DY, Britain Tel.: +44 20 7278 4040; fax 7278 0444; email [email protected]; website: wri-ir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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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글

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11

기획글3)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년 월 일(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 : 2004 5 15

칠레와 라틴아메리카 국제세미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군사화 신세계질서 에 대한 저항의 경험“ : (New World Order) "그리고 국제비폭력행동트레이닝

년 월 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2004 5 15칠레와 라틴아메리카:

년대부터 월 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로 1980 5 15기념하였다 원래는 세계병역거부자회의[1]. (Interna-

에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Meeting, ICOM)서 조직했던 것인데 세계병역거부자회의가 년 1995차드 에서의 마지막 회의를 가진 이후 전쟁저(Chad)항자인터내셔널이 이를 이어서 조직하고 활성화하

기 시작했다 살상을 거부할 권리. (Right to Refuse 라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프로그램의 to Kill)[2]

일환으로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은 월 일 전 세, 5 15계의 다양한 행동과 함께 어떤 병역거부 투쟁을 지

원하는 국제비폭력직접행동의 전통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년에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은 발칸의 병역거부 2002

운동 을 지원하기 위해 브뤼셀의 나토본부 앞에서 [3]

비폭력직접행동을 조직하였다 년에는 이스라엘. 2003의 평화운동 단체 뉴프로파일 과 함[4] (New Profile)

께 텔아비브에서 국제트레이닝을 조직하였다.

올해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과 전쟁저항자인터내

셔널의 칠레 지부인 가 공동Ni Casco Ni Uniforme으로 칠레에서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조직하게 되

었다 칠레는 년 콜롬비아에서의 연례세미나 이. 2003후 결정되었는데 라틴아메리카 병역거부자들의 현

황과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사회적 군사화에 보다

많은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세미나 트레이닝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병역거부 코, 디네이션(Coordinadora LatinoAmericana de

회의가 개최될 Objecion de Conciencia CLAOC) 예정이다.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Peace House, 5 Caledonian RoadLondon N1 9DXBritaintel +44-20-7278 4040fax +44-20-7278 0444email [email protected]://wri-irg.org

Ni Casco Ni Uniforme(No Helmet No Uniform)Roberto Espinoza 1839,SantiagoChiletel +56 2 556 6066email [email protected]://www.objecion.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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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

소식지 월호3☮ 12

목표

병역거부자 조직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Ni ☮ 그룹들과 같은 조직Casco Ni Uniforme, CLAOC

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강화한다.칠레와 라틴아메리카 병역거부자의 처우에 대한 ☮

국제적 관심을 높인다.병역거부 문제를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군사화☮

와 사회적 군사화에 대한 비폭력저항과 연계시킨다.라틴아메리카와 해외의 그룹들 사이에 비폭력직☮

접행동의 경험 특히 병역거부 문제에 관한 경험을 , 교환한다 이것에는 트레이닝 경험과 기술을 나누는 . 것도 포함된다.

트레이닝과 행동을 함께하는 것을 통해 병역거☮ 부자들의 국제네트워크를 강화한다.

캠페인

년 월 일을 전후한 행동들은 하나가 아니다2004 5 15 .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과 다른 그룹들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칠레와 라틴아메리카의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할 수 있다 년 월 일 최고점에 달하는 . 2004 5 15국제캠페인을 조직할 수 있다.

이번 캠페인에서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은

칠레와 라틴아메리카의 병역거부자들의 현황에 ☮ 대한 기초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이 정보는 전 세계 . 어디에서라도 사용할 수 있다.

부러진 총 특별호를 발간 영어{Broken Rifle) ( , ☮ 『 』스페인어 불어 독어로 발간 하여 캠페인 자료로 , ,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년 월 일 칠레와 라틴아메리카 병역거부2004 5 15 , ☮ 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 세계의 다양한 행동을 조

직한다.국제비폭력트레이닝주간과 월 일 칠레에서 5 15☮

비폭력직접행동을 조직한다.병역거부자를 지원하고 군사주의에 맞서 활동하☮

는 칠레와 다른 라틴아메리카 조직 간의 연계를 촉

진한다.

이 캠페인을 위한 국제적 조직화는 런던의 전쟁저

항자인터내셔널 사무국에서 하고 있다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 사무국은 캠페인 자료들을 만들고 세계

적인 활동을 증진시킬 예정이다. Ni Casco Ni 은 칠레에서의 활동계획을 담당하고 있고 Uniforme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그룹들과 연락을 취하는 일을

하고 있다.

활동

칠레에서의 활동은 다음의 세 가지 부분으로 진행

된다.년 월 일 회의2004 5 8~9 : CLAOC ☮ 일 국제세미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10~11 : “☮

군사화 신세계질서에 대한 저항의 경험 칠레: ” / , 산티아고 대학, Bolivariana 산티아고 근처에서 여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40☮

국제비폭력행동트레이닝

이 주간은 산티아고에서 일 참가자들이 계획한 15국제비폭력행동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Notes1 Rudi Friedrich: History of Conscientious Objectors’ Day, Broken Rifle No 55, May 2002, page 8 (http://wri-irg.org/pubs/br55-en.htm#art5)2 http://wri-irg.org/co/rrk-en.htm3 http://wri-irg.org/news/2002/press15may02.htm4 http://www.peacenews.info/issues/2451/245108.html, see also The Broken Rifle No 58, May 2003,

http://wri-irg.org/pubs/br58-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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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13

송환 을 보고' '썰

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

송환 은 개봉 이전부터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 >을 받았던 영화다 시사회를 본 사람들은 시간이 . 2넘는 상영시간동안 눈물을 한 바가지는 쏟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혹시 신파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 ‘ ?’들었다 그러던 차에 전쟁 없는 세상 의 부르뎅. < > , 영은씨와 함께 개봉작을 봤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 참 잘 만든 다큐였다 하지만 눈물을 펑펑 쏟지는 ‘ ’ . 않았다 아무리 슬퍼도 분노해도 힘들어도 눈물을 . , , , 흘리지 않는 성격 탓 인가보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중에 몇 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이 있었다 선택 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 < >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김선명씨와 노모의 만남 혈. 육에 대한 집착과 말로 다하지 못할 정이란 것이 지금 같은 의 시대엔 너무 낡아버린 구닥다‘Cooooool ’리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시시. “하네 뻔한 가족주의잖아 라고 말하는 도도함을 보. !”여주는 것이 더 세련된 지식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정말 가슴 찡했다. . .

그런 찡한 재회의 장면이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

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만감을 교차하게 하는 장면, 도 있었다 주변의 눈이 있으니 빨갱이 가족이라는 . , 사실 때문에 너무 괴로웠으니 제발 빨리 어머니를 , 만나고 돌아가 달라는 김선명씨 가족들의 말 누가 . 그녀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추호도 그 사람/ ? “들에게 누를 끼치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데 차라.” “리 나 하나만 사선 을 넘나들었으면 이렇게 가( )死線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서슬 푸른 반공의 .” 시절에 빨갱이 가족이라는 오명과 그에 따르는 철저한 사회적 격리는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지금의 신용불량자들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 빨갱이 가족들에게 돌을 던지고 손가락질을 , 한 사람들은 어땠을까 인민군에 의해 소중한 사람? 이 죽었다면 모를까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 맞대고 , 웃던 이웃집에 순경들이 들이닥치고 빨갱이 가족‘ ’ , 이라는 소문이 돌고 말이라도 한 번 건넸다가 . “……나까지 엮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그리고 그런 ?” .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적극적 비난 분단과 반‘ ’ . 공이라는 압도적인 시대정신은 그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금을 그었다.

그렇게 고통 받은 가족들은 또 얼마나 북한이 싫었고 빨갱이정신을 바득바득 놓지 않았던 장기수들, 이 얼마나 싫었을까 누가 이런 반목을 만들었나? ? 누가 이 엄청난 미어짐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가‘ ’ ? 그냥 뭉뚱그려서 시대가 그랬지 라고 말하면 참 쉽“ ”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차. . 라리 박정희나 김일성에게 독박이라도 씌워서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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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월호3☮ 14

에 두고 실컷 패대기라도 쳐주고픈 마음이다 보는 , . 내내 이 같은 상념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송환 이 슬픔으로 점철된 영화는 아니< >다 장기수들의 삶이 그러했기에 어쩔 수 없이 따르. 는 아픔이 있을 뿐 억지로 그런 장면을 모아둔 것, 은 아니다 오히려 감옥소의 삶에 집중함으로써 관. 객의 감정을 슬픔과 분노로만 몰았던 또 다른 장기수 영화 선택 에 비하면 송환 은 장기수들의 , < > < >일상을 기록한 충실한 다큐다 그래서 장기수들을 ‘ ’ . 신념의 강자 영웅으로 만들기보다는 한명의 사람, ‘ ’으로서 우리 앞에 서게 한다 비전향은 물론 대단한 . 일이다 하지만 감독의 카메라는 전향한 사람들의 . 삶과 고뇌도 비켜가지 않음으로서 한 개인에 대한 , 가치평가 이전에 그를 둘러싼 쉽지 않은 상황들을 공감케 했다.

아직 비전향장기수라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큰 반향을 만들지는 못하나보다 금기에 대한 도전이 상. 업적 성공의 키워드가 되는 요즘의 문화코드를 생각해볼 때 송환 은 꽤나 많은 관객을 동원하리라 , < >예상했었다 하지만 개봉관에는 여명의 사람들을 . 40앉아있었을 뿐이다 금기 폭로 비극 그리고 . , , ,

을 적당히 버무려 예술성이란 칭호도 잃지 Coooool , 않으면서 챙길 건 다 챙기는 영화들에 비하면 추천의 글이 아깝지 않은 작품인데 아쉬움이 남는. ……다 그나마 비전향장기수의 존재라도 아는 사람이라. 면 꼭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다 무엇이 . “그들을 버티게 했는가 이 물음에 대해 참으로 상?” 식적이지만 정치색으로 덧씌워지지 않은 대답을 듣고 싶다면 꼭 한번 송환 을 볼 것을 추천한다< > .

마감 하루 전에 부탁 받은 인스턴트 글이라 감상을 잘 담지는 못했지만 다큐가 극장가에서 흥행작, “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는 한 후배의 염원에 동조”

하면서 년 강추영화 로 자신 있게 송환 에 , ‘2004 ’ < >올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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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 History about Conscientious Objection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

ANTON BEBLER번역자 나동혁( : )

이 장에서는 소위 사회주의 라 불리며 공산당의 “ ”통치를 받았던 국가에서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양상을 다룬다 초점은 공산주의 시기의 동유럽 사회. 주의 국가들에 맞추어져 있지만 그 이전 시기도 간, 단히 관찰하고 넘어갈 것이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이전 시기에 사회적 조건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반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이 지역의 대다수 국가들은 오랜 기간 동안 징병의 전통을 유지해왔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 짧은 기간. 을 제외하면 동유럽 국가들은 정치적 관용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으며 정당정치가 빈약했고 사법부 독, , 립이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더욱이 평화주의 . 교단의 힘은 서유럽에 비해 훨씬 미약했다 간단히. , 약간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동유럽의 사회적 상황은 , 병역거부에 매우 비우호적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사. 회주의 사회 성립 이후에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스탈린주의와 co1)들

사회주의 국가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다루는 양상은 일반적으로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현상“ ”과 꽤나 잘 맞아 떨어진다 스탈린주의는 년대 . 1930초반 소련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분적 병역거부자.

1) 보통 양심에 따른 conscientious object(or), 병역거부 자 의 줄임말( ) .

에 대해서는 종종 임의로 비전투 복(patial objector)무를 허용했으나 철저한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는 거칠게 억압했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의 . , co존재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논, 의되기는 더 힘들었고 와 관련된 객관적 데이터, co는 구할 수도 없었다 병역거부를 대하는 스탈린주. 의적 분위기는 이후에 소련 이외의 사회주의 국가로 확산되어 나갔는데 적군의 임무를 부과하던지 소비, 에트 모델을 모방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이. 런 특징은 년대 중반까지 계속된다1980 .

를 대하는 스탈린주의적 방식과 공산주의 스타co일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몇몇 증거들을 통해 보일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 상당한 차이에. 도 불구하고 유사한 군사시스템이 발전했다 보편적, . 으로 남성에게 군복무 의무가 주어졌으며 또한 어떤 (것들은 여성들의 의무로 제한되기도 했다 국제 프) 롤레타리아트 연대라는 강력한 맑스주의 이데올로기가 항상 따라다녔다 군복무와 국방의무를 묘사한 . 용어들의 유사성이 매우 두드러진다 불가. “highest"(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헝가리 루마니, ), ”holy“( , , 아 폴란드 동독 정당한 ), ”holiest“( ), ”honorable"( ). “조국의 방어 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사람은 배신자와 ”똑같았으며 범죄자였다 제국주의 와 잠재적인 군. “ ”사적 대결은 어떠한 공식적인 민간대체복무의 수용도 가로막았다.

를 대하는 스탈린주의적 방식은 여타의 권위주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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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

소식지 월호3☮ 16

의적인 공산주의 시스템의 특징들 예컨대 실질적인 -정치적 경쟁의 제거 반대의견에 대한 억압 종교적, ,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한 가혹한 정책 폭넓게 퍼진 , 인권침해 과 함께 형성되었다 꽤나 다른 두 연방 - . 국가 소련과 유고에서는 국민 방위군(territorial

의 폐지 군대 내 소수민족 언어의 금지militias) , , 사회주의적 인간 창조를 위한 문화적 동화 정책 “ ”

등등과 동시에 대체로 를 범죄로 다루는 경향이 co있었다 소련에서 이러한 변화는 년대 일어났고. 1930 , 유고에서는 년대 전후 기간에 일어났다1940 .

그러나 스탈린주의와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공산, 주의가 반드시 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지는 않는co다 공공연히 합법적으로 병역거부자들을 보호하거. 나 또는 관용하거나 적어도 침묵하던 기간이 있었, , 다 공산주의의 모국 소련이 가장 좋은 보기다. , .

년 월 일에 소비에트 러시아의 창시자 레닌1918 1 23 , 은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시민봉사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첫 번째 법령에 서명했다 년 월 일. 1919 1 4에 소련은 모든 종교적 동기의 병역거부자들을 징, 집으로부터 면제시켜주는 법령을 발표했다 년 뒤. 1 ,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정이 세워졌다 사실에 . 입각해서 말하자면 레닌 시대 소련은 에 대해 짜, co리즘보다 훨씬 관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 대부분 서유럽 국가보다 훨씬 진일보했다.

에 대한 소비에트의 관용은 년대 스탈린주co 1930의로 통합되면서 사실상 끝났다 어떤 사람도 그런 . 지위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짓된 이유로 에 1939 co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가 폐지되었다 최근 년. 1990대 후반까지 소련의 형법체계는 입대 등록 병적, ( ), 훈련 등등을 기피 한 경우에 매우 강력하게 처벌했“ ”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병역거부 선배들은 철저한 종교상의 병역거부와 연관이 깊다 러: 시아 정교 오순절 교회파 나자레파, (Pentecostals),

톨스토이 신봉자들 재림(Nazarenes), (Tolstoyans), 론자 그리고 무엇보다 여호와의 증인의 (Adventists), 오랜 신도들 년대 병역거부자 수가 급증하면서 . 1980병역거부의 동기도 크게 바뀌었고 비종교적인 병역, 거부자들이 가시성이나 숫자의 양 측면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스탈린주의의 침식

를 대하던 스탈리주의의 양상은 년대 중반co 1960부터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병역거부의 가능성. 이 인지된 첫 번째 사회주의 국가는 동독이었다. 13장에서 윌프리도 폰 브레도우(Wilfried von Bredow)가 이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는 동독이 .

년에 들이 복무할 수 있는 비무장 건설부대1964 co를 만듦으로써 (unarmed military construction units)

스탈린주의에 첫 번째 틈새를 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동독은 에 대한 서구. , co적 기준이 가장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사회주의 국가였으며 특히나 서독으로부터 접해있기 때문에 그랬, 다 년대 후반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이와 . 1960유사한 건설부대 를 사용하(construction battalions)기 시작한다 년에 이르면 위와 같은 건설부대. 1972는 소련에서도 등장한다 일명 은 양심에 . ‘stoybat’따른 병역거부자들 뿐만 아니라 반체제 인사나 국, 가의 적으로 간주되었던 부르조아 계층의 후손들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행정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제거하는 또 다른 방법은 정신적으로 미친 사람들로 분류함으로써 징병 명단에서 병역거부자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덧붙일 필요도 없이 이런 식으로 면제된 사람들. , 은 그 후에 계속해서 직장 배치나 고등교육 허용, , 기타 여러 가지 사항에 있어 차별을 받았다.

몇몇 사회주의 국가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형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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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17

군복무 면제는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육체적으. 로 힘든 일을 요구받는 직업의 노동자들은 징병이 면제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불가리아에서는 제철공. , 장 조선소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면제를 받, , 았다 폴란드 석탄 광산 노동자들도 비슷한 대우를 . 받았다 이런 직업상의 면제를 받은 병역거부자가 . 존재하는 여부는 알려진 바 없다 물론 스탈린주의 . 하에서도 사실상 가장 확실하게 면제를 받았던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업상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사람들 예를 들면 군산복합체에 종사하는 사람들 에 ( )대해서는 다수의 면제 또는 징병유예가 존재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세속적 병역거부자들이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동유럽에서 전형적인 정치적 반대는 각 . 정부의 군사정책과 소련의 존재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대항적인 행동은 정치. 적인 동기에 의해 군복무를 거부한 수십 가지 잘 알려진 사례를 만들어냈다 지식인 학생 그리고 중간. , , 층에 속하는 일부 자영업자들이 가장 왕성한 세속적 반대 그룹이었다 동독의 복음교회. (Evangelical

는 잘 알려진 대로 면제를 받았고 폴란드나 Church) , 헝가리에서 카톨릭 성직자들도 일부 면제를 받았는데 동유럽에 설립된 교회들은 대체로 정당한 전쟁‘ ’ 교리와 일반화된 국가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동유럽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합법화와 대체복무 도입은 명확히 서유럽의 경험 특히 서독 네덜, , 란드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 , 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반면 사회주의 체제. 는 구성원들 가운데 평화주의자들과 반체제적인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드는 사상적인 독단주의 국가주, 의 외국인을 혐오를 강요했다, (xenophobic) .

그 때까지도 몇몇 국가들은 어떤 양보를 결정하, 는 데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년 헝가리. 1977

는 동독을 따라 평화주의적 분파의 구성원들에게 비무장 부대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 가톨릭이나 비종교적인 병역거부자들에게 까지 그런 조건을 적용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또 여호와. , 의 증인 같은 절대적 거부자들에 대해서도 허락하지 않았다 년 폴란드는 무기나 화기. 1980 (fire-fighter)없이 병원이나 사회 봉사기관 같은 곳에서 인도주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 복무를 조용히 도입했다 병역거부자들은 봉급과 군복 없이 복무했다 육. . 체적으로 부적당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종교적 비종, 교적 거부자들 모두 대체복무를 할 수 있었다.

몇몇 동유럽 국가에서는 정치적인 반대도 원칙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동기로 받아들였다. 그런 까닭에 체코슬로바키아의 헌장 77(Charter 772) 과 폴란드 자유노조연대) (Solidarity3) 의 대표자들)이 소련의 체코침공 주년에 맞춰 체코와 폴란드 19국경에서 만났을 때 그들이 낸 공동성명에는 민간 , 대체복무를 수행할 권리에 대한 요구도 포함되었다. 특별히 몇몇 반체제적인 평화주의자들은 중등학교와 대학에서 시행되는 의무적인 군사 교육에 대한 저항을 발전시켰다 정치적인 반대자들은 체제의 억압적. 인 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대개 종교적인 병역거( ) 부자들을 박해했던 잘 알려진 사례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근본적인 평화주의자 그룹들은 , 정치적 반대 그룹들과 함께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았

2) 년 설립된 반체제운동 단체인 헌장 그 1977 77 (Charter 77)

룹은 현 체코 대통령인 하벨 과 체코 지식(Vaclav Havel)

인의 상징인 하예 등을 포함한 지식인들과 작(Jiri Hayek)

가 예술가 등이 주축이 된 반체제단체이자 체코슬로바키,

아 시민사회의 효시로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개입으로 , 무산된 이후 다시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새로운 봄을 일,

으키고자 하는 시도였다.

3) 연대 는 년 여름 폴란드 위기 때 일약 각 (Solidarity) 1980 ‘ ’ 광을 받았던 바웬사가 이끄는 폴란드 자주관리노조의 정식 명칭이다 노동조합활동으로서 기업에 대해서 뿐만 아.

니라 제 회 전국대회 년 월 는 정치 사회에 이르, 1 (1981 10 ) ·

는 자주관리공화국 이라는 이상상 을 내세웠다‘ ’ ( ) . 理想像

이 자유노조에는 만여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고 있으1000

며 폴란드의 민주화 자유화를 향한 조류의 원동력이기도 ,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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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월호3☮ 18

으며 대신 정부를 향해 조용히 변론하는 편을 택했, 다.

폴란드가 여전히 군사정부의 지배 아래 있었을 때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종교적 세속적, , ("도덕적 병역거부자 모두에게 민간 대체 복무를 허") 용했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단호히 평화. "를 지키기 위한 소비에트 군대 및 그 동맹군대와 형제로서의 동맹 이라는 징병자 선서 문장을 두고 당"시 존재하던 군사시스템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이 오갔다 징병 저항 조직체였던 자유와 평화. (Freedom

에 자극을 받아 장교 and Peace) , Woljciech 가 병역거부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한 단계Jaruzelski

들을 밟기 시작했다 년 월에 단호한 조처가 . 1988 7취해졌으며 폴란드는 공식적으로 젊은 남성들이 , 2년간 의무 군복무를 대신해서 년간 대체복무를 수3행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생은 졸업 후에 년간 군. 1복무를 대신해서 년간 민간 복무를 수행할 수 있었2다.

그러나 폴란드 시스템은 절대 북 대서양 패턴을 , 따라 설계된 게 아니었다 양심을 결정하는 것은 군. 대와 경찰의 보호 아래 운영되는 위원회였다 병역. 거부자들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방과 식사를 제공 받았지만 보수는 없었으며 병원이나 사회봉사기관에서 불편하고 힘든 작업을 수행했다 새로운 법이 제. 정되고 처음 석 달 동안에 명이 양심에 따른 병764역거부를 주장했고 그 가운데 명이 인정받았다480 . 세속적인 병역거부자들이 종교적 병역거부자들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년에 병역거부자 숫자는 약 . 1989

명이었고 그 중 오직 만이 군복무를 했다1500 1% . 폴란드에서 일반 대중이 징병제를 지지한다는 말은 새롭게 합법화된 병역거부를 인정받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년 공산당 내 개혁주의자들의 반란에 뒤 이1988어 헝가리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 중 병역거부,

자들에 대해 가장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채택했다. 년 월에 유럽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1989 1 , " "

으로 헝가리는 헌법에 민간대체복무 조항을 삽입했다 곧 이어 의회는 필요한 입법절차를 밟았는데 양. , 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보편적 권리 민간 대체복무, , 투옥 중지 공평한 판정 기구 구성 등 유엔 인권위, 원회가 기본적으로 추천한 사항들을 명확히 포함시켰다 처음 입법이 되었을 때 헝가리의 민간대체복. , 무는 징병 기간인 년보다 달이 더 길었다2 10 .

또 헝가리의 경우 년 옛 체계에 따라 투옥된 1988 (마지막 해 에 투옥된 병역거부자들의 배경과 수가 )나타내는 특징도 매우 흥미롭다 여호와의 증인 . 148명 로마 가톨릭 신도 명 나자레파 명 안식일 재, 6 , 1 , 림파 명 그리고 비종교적 거부자 명 이 숫자를 1 , 5 . 통해 권위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절대적 병역거부의 사회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대략 훑어볼 수 있다.

유고슬라비아

년대부터 년 티토1940 1980 4) 사망 때까지 와 관 co련된 유고슬라비아의 시스템은 전형적인 스탈린주의 양상을 따랐다 유고슬라비아 사회가 다른 동유럽 . 사회주의 국가와 비교하여 훨씬 자유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이상한 일이었다. 군복무 거부 징병 통지 수령을 거부하거나 소재를 ( , 알리지 않거나 무기 소지를 거부하거나 기타 경우, , 를 포함하여 는 여러 가지 형법을 통해 처벌 받을 )

4) 유고슬라비아 초대 대통령재임 년 ( 1953 1980). 1948 6∼

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코민포름에서 제명되고 그의 정강 은 수정주의라는 낙인이 찍혔으나 그는 독자( ) , 政綱

적인 사회주의를 목표로 한 비동맹중립외교의 정책을 굳

게 지켰다 년에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1969 , 1974

년 월 연방의회에서 종신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민족적 5 .

종교적으로 복잡한 유고슬라비아의 통일을 지키며 경제·

건설을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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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World Without War)☮ 19

수 있었다 징병을 거부한 사람은 군재판관이 재판. 을 주재했는데 이 경우에 독립적인 변호 공개 재판, , 효과적인 호소 등 여러 면에서 권리가 매우 축소되었다.

법률상 최고형은 년까지 가능했지만 유죄를 선10 , 고 받은 병역거부자들은 대개 년형을 받았다 중복 3 . 처벌을 할 경우 년까지 붙잡아 두는 것이 가능했30다 명백히 이 체계의 목표는 병역거부를 제거하는 . 것이었다 이 시스템의 고의적인 잔인함은 여호와의 . 증인인 이반 체코 의 사례에서 가장 두(Ivan Cecko)드러졌는데 그는 동일한 죄로 네 번에 걸쳐 년이, 12나 형을 살았다.

유죄로 판정을 받은 병역거부자들은 유고슬라비아 군사법정에서 형을 선고 받았는데 년 초반 1970이후 평균적으로 한 해 열 명 정도 되었다 국제 앰. 네스티의 보고에 따르면 년에는 최소 명의 병1989 20역거부자가 투옥되었다 물론 일부 병역거부자들은 . , 간단히 지역 징병 사무소 에서 (local induction board)부적합 으로 분류되어 효과적으로 소집자 명단에서 " "

제외될 수 있었다 여전히 유고슬라비아에서 양심에 . , 따른 병역거부를 대하는 방식은 매우 퇴보적이었다.

년대 중반부터 유일당 정치체제를 유지하던 1980티토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자유화의 과정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대중적인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가유고 연방 내에서 가장 서구적이며 자유주의. 적 경향이 강했던 슬로베이아는 병역거부자들을 거칠게 대하는 데 제일 강력하게 반발했다 년 여. 1986름 슬로베니아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합법화와 민간대체복무 도입의 요구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연방 의회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을 . 요청했다 그러나 연방 내 전문적인 군사주의자들은 . , 로비를 통해 훼방을 놓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방해하는 데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 별 셋 퇴역장교

였는데 그는 사회주의자 동맹Milian Daljevic의 단체 리더라는 새로운 지위를 (Socialist Alliance)

이용 남용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하- -였다 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합법화는 유. Daljevic고슬라비아 시민들 사이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며 유고슬라비아의 방어지침과도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또 유고슬라비아인들 중 아주 극소수만이 군복무 , 거부의 자유화를 옹호한다고 주장했다 을 . Daljivic지지하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들이 국토를 방어하는데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보호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매우 비도덕적인 행동이라거나 국가로부, 터 교회를 분리시키는 것이 종교적 병역거부가 인정받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거나 종교적인 믿음이 시, 민으로서 의무이행을 방해할 수 있다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러한 주장의 밑바탕에는 병역. 거부자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병역거부자가 넘쳐날 것이며 결국 연방 군대의 토대를 허물어 뜨릴 것이, 라는 유고슬라비아 군부의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공개적인 사전 발표 없이 갑작스럽게 다시 이 문제가 표면화 되었을 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 정하기 위한 노력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듯 보였다 년 월 유고슬라비아 최고간부회의. 1989 2 , 5) 집단(적인 지도체제와 최고지휘기관 에서 완강했던 소수)파는 보수적인 입장을 뒤엎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합법화시키기 위해서 다른 멤버들을 무던히 설득했다 최고간부회의의 이러한 움직임은 . Ivan Cecko의 고통스런 처지와 서방세계에 유고슬라비아의 이미지를 개선시켜야 할 필요성 때문인 듯 보인다 어. 쨌든 최고간부회의는 연방의회에 징병법 개정을 제, 안했다 개정안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지역 유고. -슬라비아 직업 군인 가운데 수의 균형이 맞지 않았던 지역들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었- 다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처럼 좀 더 개발된 지.

5)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최고간부회 Presidium,

의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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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월호3☮ 20

역의 대표들은 대부분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년 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매우 한정된 1989 4범위에서 합법화되었다 오직 종교적 거부자들만이 . 허용되었다 병역거부자들은 비전투 분야에서 무장. , 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 복무해야 했다 더구나 병역거부자들은 징병된 사람들보다 . , 복무 기간이 두 배나 길었다 민간대체복무는 없었. 고 다만 군대 내 지휘관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을 가졌다 군대 외부에 .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명백. 하게 이러한 병역거부 관련 조항들은 유엔인권위원회나 안보협의회 등이 제시(Conference on Security)한 기준에 훨씬 못미쳤다.

유고슬라비아 붕괴가 임박하자 상황이 달라지기 , 시작했다 가장 정치적으로 자유적이었던 슬로베니. 아는 년 월에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유1990 10고슬라비아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갔다 민간대체복. 무가 종교적 세속적 거부자 모두에게 허용되었고 , 기간은 군복무 기간과 동일했다 병역거부 지원자. ( ) 들을 처리하기 위한 민간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본. 질적으로 슬로베니아는 발전한 서유럽 국가들과 동일한 병역거부 시스템이 갖추어졌다.

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시민전쟁이 발발함에 1991따라 실질적인 상황이 어떻게 전환될 것인가 예측,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년에 탈영과 징병 . , 1992기피가 옛 유고슬라비아의 중심 지역이었던 세르비아에서조차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비록 이런 군. 복무 회피가 대개의 경우 의심할 여지없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양심에 따른 병, 역거부 문제는 유고슬라비아와 유고슬라비아를 계승한 곳6)에서 계속 확대될 것이다.

6) 구 유고연방의 개 공화국 중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 ) 6舊

개 공화국이 합쳐 년 월 신유고연방 구성 슬로베2 1992 4 .

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 , - 4

개 나라가 새롭게 독립했다.

년 혁명 이후1989

년 동유럽에서 일어난 중대한 사건들을 따라 1989의 상황도 드라마처럼 바뀌었다 년 월 동co . 1990 10독이 붕괴하면서 새롭게 독일연방공화국에 귀속된 5개의 주에서 이전 서독의 시스템이 확장되었다.

년 월에 체코슬로바키아 의회가 종교적 세속1990 5 , 적 거부자 모두에 대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합법화했고 대체복무를 도입했다 폴란드는 전통적인 . 평화 분파들과 비종교적 거부자들 모두 부분적으로 병역거부를 합법화했다 년까지 오직 루마니아. 1991와 알바니아만이 오래된 스탈린주의 모델을 고수했고 이 국가들의 경우에도 포괄적으로 보면 군개혁, 의 차원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합법화되면서 자유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구소련에서 변화는 특히 중요하다 소련 붕괴 직. 전 징병 저항은 마치 풍토병처럼 번져 소비에트 군, 대의 기초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모스크바의 . 유력한 정보에 따르면 년에 소련에서 만1989 400,000명이 군복무를 거부했다 그러나 이 중에 오직 .

명만이 종교적이거나 또는 나름의 신념을 갖2~3000춘 병역거부자로 간주되었다 발트해와 카프카스 지. 방에서는 대중적인 견해와 지역정부 당국 모두 소비에트 군대 복무 회피를 지원했다 년에 리투아. 1990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는 군복무를 피하고자 하, , 는 사람들을 위해 대체복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라트비아의 경우 새로운 대체 복무가 병역거부자 , 뿐 아니라 모든 지원자에게 개방되었다, .

그러나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소련 말년의 거, 의 모든 징병 거부자들이 군복무 자체가 아니라 소비에트 군대에 대한 복무 거부에 기초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때 적군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의 . 궁극적인 구현물이었던 곳에서 년에 이르면 적,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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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소련이 해체되는 격렬한 긴장과 분해의 반영물이 되었다 되살아난 민족 국가주의 속에 새로운 공. ( )화국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완결되지 않았다 단명했던 . 소련의 첫 번째 계승자 주권국가연합(the Union of Sovereign States)7)은 년 월 일에 새롭게 제1991 8 15정된 징병법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조항도 포함시켰다 징병법은 징병된 복무자들보다 긴 기간의 대. 체복무를 인정했다 전통적인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 라 도덕적인 거부자들 모두 병역거부자로 인정받았다 년 막판에 구성된 독립국가연합. 1991 (the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d, CIS)8)에서는 포괄적인 군개혁이 지연되는 바람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조항들이 미정인 채로 남았다 독. 립 러시아 군대의 경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시, 스템은 다소 이전에 사회주의 체제였던 국가들의 상태를 닮아 있는 듯하다 완벽하게 전문화된 군대를 . 지향하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중심으로 한 열띤 논쟁에서 많은 부분 긴장을 완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향해

사회주의 체제 그리고 그 이후에 이러한 발전들이 이 책에서 서술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단계와 그리고 병역거부의 세속화라는 주장과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양심에 따른 병역? , 거부가 현대에 이르러 주로 세단계를 밟았던 변화를 따라 동유럽의 현상들도 일반적으로 병역거부의 세

7)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독립국가연합 결성 이전에 (CIS)

구성된 과도적 단계

8) 소련은 개국 연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라 15 .

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발트해 개국은 소련 시3

대에 년에 이미 따로 독립했으며 나머지 개국이 1989 12

년 월 독립국가연합을 형성함로써 소련은 해체되1991 12

었다.

속화 경향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전형적으로 초. , 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다가 스탈린주의로 변모한 이후에 병역거부자들을 탄압하는 방향으로 퇴보하였다 스. 탈린주의 후기에 완고한 종교적 거부자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병역거부를 인정했고 비무장 부대

복무를 허용했다 년 (unarmed military service) . 1989공산주의 국가들이 내부로부터 붕괴하면서 좀 더 경제적으로 발전한 사회주의 이후 국가(ex-socialist) 들은 북서부 유럽 국가들을 따라 병역거부자들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정책들을 신속히 도입하였다.

결론을 내리자면 병역거부와 관련된 정책들은 이, 전 공산주의 국가 단계에 비하면 좀 더 다양한 형태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는 모두 좀 더 . 자유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역시나 년. , 1990대 초반에 좀 더 발전한 국가들은 특히 폴란드 헝- , 가리 체코 슬로비키아 슬로베니아 발트해 국가들 , , ,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나토에 가입한 지-

중해 연안 국가들보다 더욱 인본주의적인 정책들을 도입하고 있었다 특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 , 해서 몇 몇 사회주의 이후 국가들은 남부유럽에서 오래 동안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던 나라들을 앞지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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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월호3☮ 22

3월 회계

수 입내 용 금 액

대화마당 후원금 16750

피자매연대 후원금 300000

모금함 후원금 22000

은행이자 310

후원회비 352000

합계 701060

총계금 액

월 이월금2 1381722

월 수입3 701060

월 지출2 -1113950

총합계 968832

지 출내 용 금 액

월 전기세 월세 전화세2,3 511000

선전물품구입 27500

월대화마당준비2 47630

광목천 18000

월소식지 인쇄우편발송2 ( , ) 351760

쓰레기봉투 5100

플랭카드 64000

생수 통4 20000

월 신문대금3 12000

연대회의 회의준비 6960

수감자 영치금 30000

제네바비행기취소 20000

합계 1113950

We wait for Volunteer!! Action Together for World Without War

자원활동가를 기다립니다캠페인 집회 퍼포먼스 상영회, , , ☮

병역거부권 실현 캠페인 행사 거리 대학- ( / / )

매달 민가협과 함께하는 병역거부 양심수 석방을 위- 한 목요집회

다큐멘터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대학 상영회- ' '

월 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준비팀- 5 15 ,

평화인권열린대화마당☮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주제를 정해서-

영문자료번역☮영어를 잘하고 병역거부 운동에 애정이 많은 사람- ,

온라인 행동☮홈페이지 공동 기획 관리 제작- / /

소식지☮소식지 기획 취재 제작 전과정을 함께- / / !

월 일 후원인의 밤5 15☮결성 주기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후원인의 - 1 ,

밤 행사를 함께 준비

전쟁없는세상 평화영화제' '☮월 여주 여성생활사 박물관에서 펼쳐지는 야간 영- 6 ,

화제를 함께 준비 숙식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