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2호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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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소식지 22 1 도대체 얼마나 세월이 지났을까 격월간을 지향하는 전쟁없는세상의 최신 소식지가 나온 것이 지난 월그 . 4. 동안 모아놓았 날의 소식지마 서 이제는 정 로 소식지를 내야 하는 상 이 도 래했 다다 . 변명 요없고 게을 서 그렇다 핑계 거리들도 생 각할 있겠 지만 암튼 게을 게 나온 것이 . 가장 다그 서 아무 면목 이 없다 . . 기간이 어 정도 요한 것은 의 소식지가 나 기 위한 수조 지만 기간은 오히려 소식지 기사들의 장감을 리는 결과 를 가 져왔 촛불 집회 이 기를 하고 싶었 지만 무 지나 버린 . ( 도 진행중인 기가 버렸 고 교 석은 지난 소식지와의 사이가 무 벌어 로운 이 ) 느껴 진다 이길 농성 이나 전의경제도에 대한 들도 보다 리 나 시기와 더욱 결되 어 보다 . 들이 되었 을 것이다 지나 버린 시간들 버린 게으 들을 탓해 서 무 . . 소식지에서는 교 석을 이어가 국사교 서를 석하 판단 으로는 만한 선 . 다물 기획기사들도 아무것도 모 는 상 에서 세 나를 하고 부를 하 써왔 지만 부를 . , 막막 하고 세 나를 도 우리의 능력 이 안 것이라고는 생 못했 다어 쩌면 쭙잖 은 역사에 대한 시 직과 . 견해 로 정 중요한 작업 들에 지는 았을지 정이다 기간이 길어진 만 하고 지나가 야할 . 기들이 어서 이 소식지에서는 기획기사가 하나 들어가 다 전의경제도 지에 한 기획기사는 . 들어가 한다는 비해 서 기사 준비 은 시간을 자하지 못해 서 아 느낌 다. 소식지에서 아 운 것은 기획연재 코너 가 한 다는 것이다 이어가고 싶었 쨌든 , . , 식지 다시 는 것에 주안을 다 보 기획연재가 무 부 되었던 것이 사 이다 그 도 그 도 아주 정 . 하게 속까지는 하지만 다 소식지에서는 기획연재가 다시 것이다 다 그리고 . . 22 호의 평화에세이는 특별 하게 꾸며졌 다이길 농성 했던 사람들의 기 아보고자 기 다 . . 와 입장에서 이길 저항 함께 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마 에 기 억되 농성 장의 모 들은 어 일까 기대가 된다 ? . 마지 으로 호 소식지는 에 나 력할 것을 속하 소식지를 함께 만들 사람이 23 2 . 좋겠 다. Editorial 한가지의 변명 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 활동가 + stego @ j inb 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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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2호 (2008년 9월)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2 1

도대체 얼마나 세월이 지났을까 격월간을 지향하는 전쟁없는세상의 최신 소식지가 나온 것이 지난 월 그. ‘ ’ 4 . 동안 모아놓았던 옛날의 소식지마저 다 떨어져서 이제는 정말로 소식지를 새로 내야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다른 . 변명 다 필요없고 게을러서 그렇다 뭐 다른 핑계거리들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암튼 게을러서 늦게 나온 것이 .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아무런 면목이 없다. .

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좋은 질의 소식지가 나오기 위한 필수조건이겠지만 너무 긴 기간은 오히려 소식지 기사들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촛불집회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지나버린물론 . (아직도 진행중인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교과서 분석은 지난 소식지와의 사이가 너무 벌어져 마치 새로운 이야기) 인냥 느껴진다 이길준 농성이나 전의경제도에 대한 글들도 보다 빨리 나왔으면 시기와 더욱 잘 연결되어 보다 . 좋은 글들이 되었을 것이다 지나버린 시간들과 끝나버린 게으름들을 탓해서 무었하랴. .

이번 소식지에서는 교과서 분석을 이어가 국사교과서를 분석하였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너무 오만한 선택. 이었다 물론 다른 기획기사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세미나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써왔지만 공부를 해도 . , 막막하고 세미나를 해도 우리의 능력이 안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쩌면 어쭙잖은 역사에 대한 시직과 . 견해로 정말 중요한 작업들에 누가 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다 기간이 길어진 만큼 꼭 지금 하고 지나가야할 이. 야기들이 있어서 이번 소식지에서는 기획기사가 하나 더 들어가 있다 전의경제도 폐지에 관한 기획기사는 꼭 . 들어가야한다는 내부적인 당위성에 비해서 기사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서 아쉬운 느낌이 든다.

참 이번 소식지에서 아쉬운 것은 기획연재 코너가 한 번 쉰다는 것이다 쭉 이어가고 싶었는데 어쨌든 소, . , 식지 다시 내는 것에 주안을 두다 보니 기획연재가 너무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그래도 아주 정. 직하게 약속까지는 못하지만 다음 소식지에서는 꼭 기획연재가 다시 찾아갈 것이다 꼭 그러고 싶다 그리고 . . 22호의 평화에세이는 약간 특별하게 꾸며졌다 이길준 농성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보고자 했다 각기 다. . 른 위치와 입장에서 이길준의 저항에 함께 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되는 농성장의 모습들은 어떤 풍경일까 기대가 된다? .

마지막으로 호 소식지는 달 후에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소식지를 함께 만들 사람이 더 23 2 . 많으면 좋겠다.

Editorial

단 한가지의 변명 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tego @ 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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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 시위를 하는 이유1

남자가 자길 여자라고 말하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행위 예술이나 광고를 위해 이렇게 서있는 . ? 걸까요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 ? 걸 알고 있나 봅니다 당혹감과 놀라움이 섞인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 . 는 정말로 몸만 남자인 여자입니다 그럼 길거리엔 무슨 일로 서있게 됐을까요. ?

세상은 육체척 성별과 다른 성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병에 걸렸다 말을 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 을 병에 걸린 사람으로 인식하고 두려워하거나 피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창피하다 여기고 살아올 .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길거리로 나와 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저는 그런 인식을 바꿔보고자 합니다. 1 .

제가 몸은 남자이지만 내면은 여자라는 것을 처음 인식한 때는 살 무렵입니다 아마 그 당시의 세상8 . 도 남자가 여장 하고 다니는 것을 병으로 취급 하던 세상이었겠죠 전 그런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 던 순수한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엄마 나 여자야 수줍 라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은 . " , ~ ( )" 이후로 세상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차차 알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저와 같은 사람을 보고 병에 걸린 거라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몸이 바뀌어 태어난 이 사람. 들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무서워했습니다 냉담하다 못해 비난 공격 야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자가 . . , , . 사내들처럼 하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특히 남자가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 건 혐오의 대상, 이었습니다 그 사람 내면 속엔 정말로 여자가 있는데도 말이에요. .

저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 저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은 이. 후로 제 느낌을 말하는 것은 죄였고 두려움 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표현해서는 안 될 말이었고 여성스런 . ,

군대 가기 싫어요 감옥 가기 싫~ 어요 성전환도 싫어요~ ~이의정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경찰조사 후 재판 대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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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나오지 않게 제 자신을 꼭꼭 억누르기도 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 다 마치 무슨 잘못을 저지른 양 제가 누군지 들키진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 했습니다 저는 바짝 긴장해서 . . 남자처럼 행세하기 시작했고 이내 제 내면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럼 됐지 남자로 살면 됐지 뭘 이제 와서 . , 자길 여자라고 밝히냐 하는 의문이 있을 겁니다.

내가 남자로 보입니까 나는 이래봬도 여자랍니다 여자로 태어나고 싶었던 남자? ! 억누르는 게 너무 갑갑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게 두려워 저의 . ..

여성스러운 성격을 표현하는 걸 항상 억누르고 있다 보니 저는 무엇 하나 자신 있게 저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의사표시도 감정 표현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눈물도 흘리지 못하게 됐. . 고 밝게 웃지도 못하게 돼버렸습니다 누가 절 괴롭혀도 화도 내지 못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 , 사랑한다는 감정 표현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표현되려 하는 제 성격 여자로서의 성격은 단. -지 두려움 때문에 억눌러져 버렸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남자로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위기의 연속이었, , .. . 죠 특히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는제 정체성과는 극명하게 다른 사회였습니다 헬스몸매 이야기니 . , . ( ) 성 에 관한 이야기니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자 학교 특유의 험악한 분위기도 너무나 참기 . 性힘들었습니다 머리를 항상 이하로 잘라야 한다는 것은 꾸미고 싶은 욕구를 가진 제 내면에 있어서 . 3cm 참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심리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정도로요 당. , . . 시에는 힘든데 왜 힘든지 이유를 알지 못 했습니다 설마 내면이 여자여서 힘든 것인 줄은 상상도 못했습. 니다 나 자신은 여자라는 인식이 새하얗게 지워진 채로 살아와야 했거든요 자신을 남자라 믿고 살아왔지. . 만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고통의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지를 못하니 고통에 대해 . 뭐라 하소연 할 수도 없었고 말하더라도 부모님과 선생님은 사춘기라 그런 것이야 라는 말만 해줄 뿐, " !" 이었죠 방과 후 집에 돌아와서 현실과 나 자신을 잊고 백일몽에 빠질 때 가끔씩 몸을 잘못 타고 태어난 . 자신에 대해 원망할 뿐이었습니다 학교 생활은 제게 있어 정말로 끔찍한 아픔이었는데 그런 제게 또 원. 치 않는 남자들과의 사회생활남자로서의 생활인 군대가 주어지려 합니다 학교는 자퇴할 수 있어도 군대, . 는 안 가면 감옥이라고 하니 제 막막함 조금은 공감이 되시리라고 믿어요.. . .

사회 학교 군대에 대한 고민 이런 제게 있어 유일한 위안은 음악을 듣는 거였어요 자연스레 음악, , . . 이 하고 싶어졌구요 하지만 자신을 억누르는 게 뿌리 깊은 습관이다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 꿈인 음악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억누르느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노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 전 더욱더 깊은 좌절에 빠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정되고 있는 제 자신의 정체성 남자의 육체엔 남자의 . -정신이 있어야 되는데 왜 난 여자의 정신일까 에 대한 끝없는 고민은 결국 저를 심각한 두통 속에 빠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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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저는 아픔을 외면하며 사는 수밖에 없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통증 . , 속에서 년을 살아왔어요4 .

이런 상황에 대해 전 아무런 불평도 못하고 살아왔어요 세상이 말하는 게 당연하다 믿었고 그에 속하. 지 못하는 제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제가 제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이. 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제 몸이 남녀인지를 떠나서 제 내면이 여자인 것은 그냥 저만의 독특 고! 유한 자아이지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 아니었어요 누구에게나 자아가 있듯 저에겐 저만의 자아가 있는 거. 지요 저와 같은 사람을 장애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세상이 여기고 있는데 정. 말 몹쓸 병인 것인지에 대한 그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냥 막연한 편견만이 있을 뿐이지요 사실을 깨닫고 . . 나서 보니 힘들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다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 니다 그래서 전 제 자신의 자아를 지키고 표현하기 위해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인시위를 시작했습니다. 1 .

저는 보통 사람입니다 몸만 남자인 여자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세상은 지금껏 . . 이들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것이지요 저를 장애라고 하는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요 남. ? 녀의 역할 관념이 뚜렷한 세상에서나예외를 인정치 않고 남녀 기준을 정해놓은 세상에서나 장애로 보이, 고 비정상인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저와 같은 사람들은 이방인처럼 세상에서 소외되어 . 왔습니다 남녀의 기준에서 벗어나 좀더 보편적인 인간 관점에서 보면 저는 그냥 몸만 남자인 여자이고. , 고유의 내면을 가진 한 사람일 뿐입니다 저와 같은 모든 사람들이 정상인입니다 획일적 남녀관념과 편견. . 이 사라진 세상에선 몸만 남자인 여자가 여장을 하고 다녀도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사회가 저를 고유한 자아로 인정해 줄 것이냐단지 몸과 성별이 다른 사람으로 인정해 줄 . , 것이냐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그럽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

군대를 거부하는 이유

제 이야기를 읽어보셨다면 알겠지만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제게 철저한 남자들만의 사회인 군대는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몸이 남자란 이유로 군대를 가야만하고 입대를 거부하면 징역으로 처벌받게 하는 현 . 병역법은 정녕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느껴집니다 얼마나 많았을 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이 . 감옥 때문에 마지못해 입영하진 않았을까 그랬다면 군대에서 얼마나 상처받고 고통 받았을까 심히 염려되, 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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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월 일 현역 전경이었던 유정민석씨는 휴가 중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여성2006 3 6 , 에 가깝다는 선언을 기자회견에서 밝힌 뒤 병역거부를 선언했었습니다 그후 유정민석씨는 여주교도소에서 . 수감되어 있다 지난 월 일 특별사면으로 출소하였습니다8 14 , 815 .

저는 지난 월 일에 논산 훈련소에 입영해야만 했지만 입영 당일 병무청에 병역거부 의사를 밝혔습7 7니다 그 후 병역기피로 고발을 당해 월 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연이어 월 일 법원에서 영. 8 18 8 25장실질심사를 받았습니다불구속 판정을 받은 저는 이제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병역기피 죄. . 로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징역 년 개월 가석방을 고려하면 년 개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1 6 , 1 2만 합니다.

우리 사회는 편견으로도 모자라 저에게 크나큰 짐을 씌우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무죄판. 결을 끌어내볼 거에요 말이 안 되는 처우를 받을 수는 없잖아요 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 ?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여전히 필요로 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

이의정입영일에 병역거부 2008.7.7

경찰조사 2008.8.18 영장실질심사불구속결정2008.8.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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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전 대통령과의 대화가 로 중계되었다죠 로는 못보고 무슨 얘기와 포즈가 있었는지 궁금TV . TV해 신문에 실린 기사로 좀 봤는데 역시 별 감흥이 없더군요.작은 목소리들은 묻혀져가고 북쪽 독재자의 건강상태에 호들갑을 떠는 요즘 그나마 제게 재미있는 , ,

소식은 강입자가속기 실험이에요 양성자들을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빅뱅을 재현하고 그 안에서 다른 입. , 자와 접촉해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나 다른 입자와 짝이 되며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구성입자와 숨겨진 고차원을 발견하게 해줄 초대칭 입자 같은 것들을 찾는 거죠인상적이고 상상력을 불. , 러일으키고 알게 모르게 삶을 바꿔놓을 거에요 소통이란게 이런게 아니겠어요 이 실험 자체가 거대한 , . ? 소통이죠 모인 과학자들 사이의 소통이자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 간의 소통 더 잘 알기 위한 실험은 . , . 정복적 지식욕이라기보다 매혹적인 소통의 제스추어죠더 많은 이해는 더 깊은 소통을 불러오고 소통들. , 은 또다른 이해를 불러오니까요 충돌과 빅뱅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의미들 힉스입자처럼 각자의 삶에 질. , 량을 부여하는 수많은 관계들초대칭 입자처럼 사회의 암흑물질을 파악하고 숨겨진 차원을 발견하도록 자, 극하는 소통의 흐름들 소중하지만 망각하기 쉬운 것들. .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팀은 밀란이에요 그런데 이탈리아에선 구단주 때문에 그 팀을 응원하지 2. .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 구단주가 이곳의 어떤 분이랑 이미지가 비슷하다 보시면 이해가 빠르. 실텐데기업 최고경영인 출신으로 국가수반에까지 오른 현직 정치인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있고 부, 정부패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하죠 바로 이탈리아의 총리인 베를루스코나인데 돈도 많고 축구에 대한 안. , 목도 있는 듯해 구단주로는 괜찮지만 그래도 팀의 팬 입장에선 정치나 팀 둘 중 하나에선 손을 떼면 좋겠어요.

어쨌거나 이 사람이 하던 기업이 건설업체였고 열심히 삽질하려하면 그것도 피곤한 일일텐데그건 아, 니지만 또 언론사라 그게 피곤한 모양이에요언론사 세 개가 이 사람 소유거든요 여기와서 이 사람에 대. .

소통의 풍경들 힉스입자 나폴리의 쓰레기 그라운드 제로 조형기: , , ,

이길준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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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큐를 봤는데 아마 사장문제로 시끄러울 때 가 만든듯 대단하더군요 오래전부터 방송을 통해 - KBS - . 베총리가 내세우는 가치들이 삶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아왔고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경제를 위해 또 그를 , 찍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언론인들은 한없이 무기력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고요 베총리가 가진 부와 . . 권력이 모두 그의 이미지 플레이에 동원되죠축구조차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에 대한 지지가 되고 응. ! , 원구호는 정치적 구호가 되죠 하긴 그런 일은 이곳에서도 있었군요. .

뭐 개인이든 단체든 얼마간의 언론 플레이는 필요하고 충분히 유쾌할 수 있는거라 생각해요 문제는 , . 그 뒤에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열망이 있을 때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많은 해석과 . , 논의과정을 무시한 채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이끌려는 열망 대단하달 수도 있겠지만 어긋난 소통의 모습. , 이기도 하죠 편견이 만든 편견에 의해 통제하여 통제되는 폭력적인 소통의 연계들. .

이런 것들은 숙고해서 전략을 짜 복잡하게 기획됐을 수도 있지만 작동방식은 단순해요 베총리가 한 . 것 중에 밀란의 전통적 라이벌인 나폴리의 쓰레기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이 쓰레기들을 전 정권의 기간과 일치시키는 거죠 이런 식으로 언론은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또 권력을 낳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 , , 우리는 희생자이면서 공조자가 되고 사회는 만들어진 가치로 굴러가죠 그저 눈 크게 뜨고 쓰레기는 쌓이, . 기 전에 치우고 만들어내지 않아야겠어요, .

그러고보니 며칠 전은 테러 주기이기도 했어요 먼산 바라보고 살짝 찌푸리며 허허 벌써 3. 911 7 . , , 7년이라니 라고 하기라도 해야할 기분 그때 전 학교에서 내준 과제로 도장에 이름을 새기고 있었어요.. . . 마천루를 뒤덮은 연기와 비행기가 거짓말처럼 쏘옥 안기는 광경도 제 머릿 속에 새겨지고 있었죠 그 광. 격이 생중계되는 동안 전 메신져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 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엇나간 소통이 만든 참극, 이었어요.

다시온 그날을 맞아 추모의 빛도 쏘고 새 건물도 짓는 걸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저 잿더미 위에 쌓, 아올릴 것 새 랜드마크 뿐 아니라 평화적인 소통에 대한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폭력은 폭력을 부, . 르고 먼저 폭력을 그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구호가 반복되며 밋밋해지난 만큼이나 일상에서 반복되는 폭, . 력들에 무감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엇나간 소통으로서의 전쟁이 정말 잔인하다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낀 건 전설로 들은 베트남 전쟁, 도 동네 애들하고 스커드가 이길지 페트리어트가 이길지 내기하던 걸프전도 입으로만 반전구호를 외치던 , , 이라크 전쟁도 아니었어요 그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었는데 어떤 사진 때문이었죠. , .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미사일에 낙서를 하는 사진이었어요 폐기되는 미사일에 평화의 메세지를 적나 .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레바논에 발사될 미사일에 저주의 말을 쓰는 거더군요 세상에 그 무자비한 소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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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풍경 이웃나라 사람이 죽는게 그리 신나는 축제인가요 그 어린 애들한테 그 증오는 웃는 얼굴 뒤의 . . ? , 무심한 잔인함은 어디서 체득한건지 서핑하다 우연히 본 사진이 퍼뜩 정신을 들게 하더군요 그 또한 언. . 론플레이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도 여기에선 증오의 비행기가 날고 냉혹한 미사일이 쏟아지고 있어요 무너지는 잔해에 . 비명들이 묻히기 전에 너무 늦지 않아야할텐데요 한편으론 희망적이지만 또 한편 막막한 기분, . , .

어떤 것이든 소통은 삶의 기본 단위라 생각해요 각자의 방식대로의 이해가 부딪히고 접점을 찾으4. . 며 새로운 의미들을 만드는 과정은 유쾌하고 떠들썩하고 따뜻한 것이죠 타인에 대한 권력욕이 움직일 , , . 때 생기를 잃고 족쇄가 되어버리곤 하지만 소통을 하고 그 속에서 주체로 서기 위한 움직임다양한 생각. , 이 뒤섞이고 재조합 재생산되는 과정 그 기본이 되는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제가 지키려했, , . 고 지키려하는건 이런 것들일지 모른단 생각이 드네요.

방 사람들에게 저의 인터내셔널한 프랜드쉽을 알리고자 쉼리얼마전에 한국을 방문한 이스라엘 병역거(부자 씨의 메세지를 읽어주었죠 발음이 그게 뭐냐고 조형기냐고 그러더군요 답장을 쓰고 싶어도 헬) . , . , '로 아임파인 땡큐에서 진전이 안되고 정보화시대에 공용어도 제대로 모르는걸 통탄하며 방성대곡하다 ? , ' . 문득 어뤼지날 잉클리쉬의 터득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소통에 있어서 이해와 인정이 아닐까 싶, 더군요 그리하야 연휴 끝무렵 반성하며 이런 얘길 쓰고 있네요. .

처음에 입자가속기 얘길 했죠 이 실험의 부작용으로 블랙홀이 생겨나 모든걸 삼킨다는 말도 안되는 . 얘기가 떠도는데 현실에선 이 블랙홀이 모든걸 삼키며 질량을 부여하고 숨겨진 차원을 찾는 일들이 무너, 지는 것 같아요 굴하지 않는 야릇한 입자들의 꿋꿋한 활약을 응원합니다 얍. , . !

2008. 9. 15.

이길준전경복부무중 휴가를 나와서 양심선언 기자회견 후 농성 2008.7.25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결정 2008.8.7 성동구치소 이감 2008.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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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2 9

징역도 리콜이 되나요 징역도 할부가 되나요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잠깐 심심하거나 뭔가 자기? ? ... , 쇄신이 필요할 때 혹은 이외수처럼 소설의 영감을 얻고 싶을 때 잠깐 몇달씩 징역을 개월씩 무이자 할, 3부로 살다나온다던가 지금까지 힘들게 견딘 시간들에 대한 보상으로 국가가 강남 버블 세븐 지역에 주상...복합을 얻어준다면 징역도 꽤나 갠춘을 텐데 말이죠 쿄쿄쿄

안그래도 요새 절 사면해주신 엠비님의 은혜를 실감하면서 종부세를 내리고 재산세를 올리는 그분의 , 현명하고 혜안이 넘치는 정책에 넘우나도 감동을 받고 있어요 유후. ~~ (' ' ) ( ' ')♪∩ ∀ ∩ ≡∩ ∀ ∩♪

죄송해요 아직 징역 생활 후 사회적응을 못하고 있고 정신줄 놓은게 아직 감기질 않았나 ...;;Orz 요 한달이나 지났는 데도 어떻게 지났는지도 뭐르겠어요 뭔가 정신도 없고 앞뒤도 없고 두서도 없BOA . .

고 짜여진 일과표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어상반 중간은 되서 묻어가는 징역생활과 달리 바깥에는 내가 ... , 스스로 나의 시간을 조율하고 분배하고 정렬해야 한다는 것이 오방 매콤하더라긔요, , .

그점에서 보면 여기나 거기나 자유롭지 못한건 궁뎅이 방뎅이 엉뎅이 같아요 그게 그거 ㅎ 아침에 . ( ) 눈이 저절로 떠지는 습관과 요가를 안하면 찌뿌둥한 습관은 잘 갖고 나온듯 하나 거기서 와방 빠졌던 ....살은 순식간에 원상복귀 되어가는 중이랍니다 추석연휴에도 겁내 많이 먹고 또 바깥엔 먹을 것이 무궁. - 무진 하자나요ㅎㅎ 출소했다고 어중이 떠중이 분들이 겁내 오이시한 음석들로만 이넘 저넘 사주셔서.. ....사주시는 족족 다 받아서 오미아미 먹었더니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탄력성잇게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네요 ㄷㄷㄷ 완전 쩔어요;;; .....( )∏ε∏

요즘 일과는 와우를 드디어 다시 시작햇쪄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요 이양반아 월 일날 대망... . . 11 28의 확장팩인 리치왕의 분노가 발매되는데 제 출소일보다 글쎄 더 설레이는거 잇죠 므흣해여 만랩' ' .... . . (70랩 을 며칠전에 찍엇는데 아직 템을 못맞춰서 템 셋팅좀 해야될꺼 같아요 아는 누나가 길드로 자꾸 오) .... . 라는데호드쪽이라 종족이 달라서 쌈싸먹으라고 해줫쪄여 잘햇져 그리고 시간나면 야동도 잘 챙, ? ;;

나 나왔어 이 양반들아!!!효웅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월 일 특별사면으로 출소 +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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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보고 잇긔 징역 가기 전에 관리햇던 네이버 까페가 잇엇는데 시부야계 음악이라고 일본의 시부야 지.... ...역에서 유행햇던 그런 클럽음악들의 장르 무브먼트 를 일컫는 말인데 그런쪽 음악을 오방 조와해서 겁? ? ....내 운영을 햇엇걸랑여 관심잇으신 분들은 나중에 놀러와 듀세여.. ...http://cafe.naver.com/shibuyakeii 이게 주소고여 ㅎㅎ 그리구 전쟁없는 세상 분들께 완전 감사하고 잇구 저도 관심잇어서 같이 이런저런 ... ...활동을 쌍지팽이 짚고선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 잇쪄여 대체복무제가 뭥미 되고 나서 지못( ) ?  ′∀`  미한 기분도 들고 해서 그리고 요즘은 칭구들이랑 영어 스타디도 하구 또 군사주의와 젠더 섹슈얼리티... , 에 대한 스타디도 하려고 하고 잇쪄여.

사실 거기서 힘들 때 나름대로 그 외로움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는걸 잊기 위해 나름대로 묘안을 생각한게 있었거든요 자기 최면을 걸어서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호텔이다 저기 있. " .." "는 사동 청소부 및 교도관들은 메이드 호텔리어들이다 나는 지금 스위트룸에 투숙되어 있는 장기 투, ..." "숙객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오죽 외로왔으면 그랬겠어요 이 양반아 힝 스톡홀롬 신..." . ... ... .. ( ) ∏ ε ∏드롬인진 몰라도 ㅎㅎ 그런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다 보니 다소 기분도 좋아지고 힘든것도 많이 없어, 지더라긔여 여기도 지낼만 한 곳이라는 생각도 쬐까 들기도 하궁 ㅋ . ...

이방법이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지만ㅎㅎ 저 나름대로는 징역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방법이였던;;것 같애요 그리고 년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면 긴 시간이기에 어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 1 ...가지고 그것을 달성하는 재미 로 지는것도 전 좋았던것 같애요 일테면 거기서 응시하는 한자시험에 도(?) . 전을 해본다던지 전 급쳤다가 냉큼 떨어졋떠여 ㅜㅡㅜ 아님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짱이 된다던지...( 2 ) .... ..ㅋㅋ 여튼 그런 목표가 잇음 권태롭고 단조로운 징역 생활을 버티는 힘이 되는거 같긴 하걸랑요 ㅋ 요새...는 방황하고 불안해 하면서 앞으로 뭘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요 세상은 좀더 살기가 겁내 병맛날텐. 데...;;

그럼 넘 떠들엇구 졸려 죽겟어요 ㅎ 출소인사치곤 차암 두서업져 더 좋은 글로 찾아뵐께... . ?? ( o ; 요 그래 안그래 그럼 아무 이유없어 피쓰. !!! ( ) , , !!!! ′∀`  

효웅씨는 년 월 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후 2008 8 14징역에서 망가진 몸을 치료하면서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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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2 11

작년 월 경 부터 내 책상에는 노동을 거부하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독일의 비판그룹에서 낸 10 ‘ ’ . 책이라고 하는데 뭐 매우 급진적이고 근본적이며 비실천적이다 그래도 강렬하게 책을 읽었는데 자본주의 . 사회에서 내가 하는 활동이 노동이 되는 순간의 비참함 지루함 지겨움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기 ‘ ’ ‘ ’ , , 때문이다.

흔히들 지역에 주목하는 여러 이유에 끌려 그리고 집에서 가까워서 일정한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 , 나가게 된 단체에서 나는 뒤에 언급한 두 가지 이유만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부터 단체에서 활. 동하게 되었지만 여름에 알게 된 아버지의 병은 나를 지극히 수동적 관조적이게 했다 마치 시한폭탄의 . 초침이 돌아가는 것처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폭탄은 터졌지만 치료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 겠다 문득문득 우울해지고 생각나고 얽매여 있다 언제쯤 자유롭게 풀릴 수 있을까. . .

동시에 사무실에 앉아있는 나에게는 퇴근시간이라는 초침도 돌아가고 있었다 이건 뭐 돈을 많이 벌겠. 다는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풀겠다는 목표를 찾겠다는 것도 아니고 참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일한 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다는 인사성 말을 . 많이 했는데 정말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랬. 다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안주고 내가 할 일은 꾸역꾸역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 아니었다 최소라는 규정은 없다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둘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 ’ . . . 최소는 꾸역꾸역 하는 노동일뿐이다 그래서 지역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고 관심 있는 운동을 ‘ ’ ‘ ’ . , 즐겁게 고민하려고 하고 있다 적어도 지난 달간은 고민도 많이 하고 공부도 하고 사람들과 좀 더 적극. 1적으로 이야기하려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있다 왠지 내 주변이 조금은 밝아진 느낌이다. .

괜찮아질거야오정록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삼양주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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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활동하다보니 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영역의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지역아동센터지역자. , 활센터 사회복지사 청소년문화센터 각종 경제공동체들 이미 그 활동으로 지역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 , , . 존재들이지만 그 활동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 세력화하고 조직화하는 데 미숙하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다 가난한 여성 아이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 , , 에서 목소리를 듣기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즐겁게 일으켜 세우는데 촉매제가 되고 싶. 다 그래서 다양한 운동영역과 접속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

지역주민들과 좀 더 가까이 생활하면서 내가 느낀 것 중 하나는 사는 게 참 힘들다는 것과 역시 나는 그들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확실히 나는 가진 게 많고 힘 있는 사람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 이며 그 사실이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들과 어떤 관계 맺기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 오늘도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아 질 거야. ‘ ’

오정록씨는 년 월에 출소한 후에 강북구지역에서 2007 4지역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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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마 출역을 나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일 겁니다 일을 . . 나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 사이로 혼자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사실, 이 무척 생경했습니다 지금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벽과 천장 책장이 나의 . , , 현재라는 사실이 다시 생각나더군요 내가 언제 밖에서 생활하긴 했던 걸까 이전의 내가 생각나지 않았습. . 니다 그리고 생활의 익숙함은 점차 제가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역설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 눈을 뜬 채로 모두 일어나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들이 무척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내일을 기약할 . 수 없는.막상 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그때 생각이 납니다 아마 그때만큼 내가 징역을 살고 있구나 CO .

하는 생각이 철저하게 들었던 순간도 없었나 봅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 정반대의 제 자신을 발견하. 게 됩니다 내가 언제 징역을 살기는 했었는지 정말 그랬는지 싶게 그 시간들이 쏙 빠진 채 예전으로 돌. , 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썼던 노트를 다시금 꺼내볼 때에야 그때의 고민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기도 .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편지에서 그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지금의 그 시간들이 자신의 삶. . 에서 박탈된 시간이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한다고 다른 분들의 생활은 지금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

사실 출소 이후의 생활은 이전과는 연속성을 갖기 힘들더군요 적어도 제게는 말입니다 담장 안에서 . . 바라보던 세상도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막상 출소하고 하나 둘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상상하던 제 계획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런 관계들 속에 반. , , 응하고 어쩌면 너무 당연한 사회적 과정인데 정작 징역을 살면서는 혼자 상상하고 계획하며 깨닫지 못했. 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 요즘 한창 이곳에서는 촛불집회로 정신이 없습니다 인터넷과 뉴스에는 연일 촛불집회에 대한 기, . 사로 가득하고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안에서도 그 분위기를 알 . 수 있겠지요많이 다른 분위기지만 오랜만에 사람들 속에서 희망과 절망을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 들어서 조금은 들뜬 기분이 드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제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은 한미 와 대운하 그리. FTA , 고 태안 기름유출로 참 시끄러웠는데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함께 호흡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거든요 그. 런데 정작 요즘도 촛불집회에는 열심히 참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몰래 몰래 갔다오곤 하지만 아직 가석.

들에게Co ... 경수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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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중이라는 사실이 저를 그렇게 만들더군요 혼자 조심하게 되고 친구의 걱정 어린 전화를 받고는 광화. , 문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도 몇 번이나 됩니다 그 벽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 요한데 징역을 살명서 정말 나쁜 습관이 하나 들었나 봅니다 알아서 조심하게 되는. .출소하면 들과 자주 연락을 해야지 하는 약속은 구치소에 남겨두고 나왔나 봅니다 그때 그 약속을 CO .

지키지 못해 다시 작아지고 마네요 이 편지를 계기로 그때의 고민과 약속을 다시금 꺼내볼 수 있었으면 . 하고 혼자 다짐해 봅니다.

2008. 6. 12경수

경수씨는 년 월에 출소하였고 2008 2현재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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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자본이 만났을 때

년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2008 ‘ ’1)을 기념하여 월 일 토요일 인사동 북인사 마당에서 5 17 , 병역거부권을 위한 평화놀이 가 열렸다올해는 < > . 특정국가의 병역거부가 아닌 직업군인 의 권' , CO리 신병모집 반대 캠페인라는 주제로 병역거부자, '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미 많은 국가들에서. 는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군대를 구성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군대를 선택한 사람들의 병, ‘ ’ ‘역거부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면하기 어’ 렵다 한국에서는 아직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지. 는 직업군인이야기이다 하지만 군대라는 폭‘ ’ . 력이 자본과 만났을 때 얼마나 더 잔인하고 효율적이 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총을 들 , ‘수 없는 양심신념 과 대면한 사람들의 병역( )’ ‘거부권 또한 소중하다는 것은 만국의 공통언어’

일 것이다.

평화야 노올 자~ 조금은 따갑기까지 한 봄 햇살이 가득한 주

말 오후 인사동 거리에 함께 평화를 노래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병역. ‘거부권을 위한 평화놀이에 주인공 따위는 없다’ . 이름하나못짓고 밴드 박하재홍 크라잉넷 고동, , , , 루드의상상력 빈집 밴드 별음자리표 등 많은 노, ,

1) 월 일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정한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5 15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 ) (International 줄여서 데이 이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은 전쟁을 거부하고 총을 들기를 거부한 사Conscientious Objector's Day, CO ) .

람들을 생각하는 날이다 나날이 짙어가는 전쟁과 폭력의 광기에 저항하며 사람으로 살고자 총을 내린 사람들과 함께하. 는 날이다 데이에는 주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한 나라 또는 지역을 정해 국제적인 공동행동을 진행하며. CO , 동시에 각 나라 상황에 맞는 다양한 평화 행동들을 벌이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년부터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2003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병역거부권을 위한 평화놀이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스케치-2008 ‘515 ’ ․

현지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공연을 하는 루드의 상상력 전쟁없는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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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공연팀들이 멋진 공연을 선보여주고 병역거부, 로 수감되었던 경수 년 월 성동구치소 출소와 (08 2 )송인욱 년 월 영등포교도소 출소 의 출소인사(08 1 )가 이어졌다 그들의 반가운 얼굴을 뒤로 여전히 . 감옥을 준비하고 감옥에 있는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얼굴 마주보고 손 맞잡고 . 이야기할 수 없지만 감옥에서 온 편지와 감옥으로 보내는 편지는 모두의 마음을 한 자리로 모아주었다.

모두 함께하는 다이인 퍼포먼스 따뜻한 이야기 따뜻한 음악이 가득하던 인사,

동의 길 한복판을 탱크소리와 총소리가 채우며 사람들이 쓰러졌다 이 날 병역거부권을 위한 평화. <

놀이 행사의 마지막은 그 자리에 함께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이 인 퍼포먼스를 하며 마무리 ‘ - ’되었다 이라크에서 날아온 소녀의 편지로 우리는 . 다시 한 번 년 전의 이라크 그리고 여전히 전쟁5 , 이 끝나지 않은 그 곳을 기억해본다 여전히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삶의 전부인 이라크에서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소녀의 바람이 누워있던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고 모두들 ,

노래를 부르며 행사는 끝이 났다<Imagine> .

내년 한국의 병역거부를 주제로‘ ’ 내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는 한국의 병역‘

거부를 주제로 열리게 된다 작년 가을 병역거’ . 부자들의 대체복무제 시행을 추진하겠다던 정부의 발표를 정권은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MB보란듯이 뒤집어 엎어놓았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 병역거부권 하나 가지지 못하고 또 다시 사람‘ ’ 들의 발걸음을 감옥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내년 . 월 일에는 부디 한국의 병역거부권을 축5 15 ‘ ’

하하는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를 할 수 있길 바래본다.

인사를 하는 경수와 송인욱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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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 일 아랫집에서 조촐한 책읽기 모5 27임이 진행되었다 이번 책은 조한혜정 선생의 다. <시 마을이다 로 평소 공동체나 교육운동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아 적극 추천된 책이었다 이 날 . 모임에서도 역시 공동체에 대한 단상들이 쏟‘ ’아져 나왔다.

공감대는 이미...

평소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많 ‘ ’았던 이들이 모였기 때문인지 짧은 호흡의 칼럼들을 모아 놓은 책에 대한 공감은 이미 많이 이루어진 상태라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에서 이야기되는 소규모 공. 동체의 필요성과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으로 돌봄과 소통문제를 지적한 ‘ ’ ‘ ’부분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환상 속의 공동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몸

과 마음의 안식처를 그리게 된다 그 중 많은 사. 람들이 마음 맞는 사람들과 모여 사는 공동체‘ ’

를 꿈꾼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 어디든 항상 평온할 수만은 없다 이 날 모임에서. 도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와 갈‘ ’등이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들이 중요하게 거론되었다실제로 많은 경우 . 공동체가 깨지는 이유가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갈등들에 대해서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고 그런 면에서 공동체를 하나의 과, 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희생과 소통 어떤 공동체이든 특정 몇 명의 희생이 전제

될 때가 많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어머니. ‘ ’의 희생이 당연시 되듯이 어느 집단을 가든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희생을 하는 누군가가 있‘ ’다 어떤 경우는 그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시 되어 . 정말 희생자가 되어버리거나 그 희생이 ‘ ’ , ‘ ’하나의 권력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으로 작용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희생은 무조건 나. ‘ ’쁘고 피해야 하는 무언가로 치부할 수는 없다 공. 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람이 그, 러한 일이 고정되지 않도록 항상 긴장하고 고마움

행복한 책읽기다시 마을이다 -현지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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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피로감이 서로 잘 소통될 수 있는 구조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상상하기 각자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마구 쏟아내는 자

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공동체에 대한 단상도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 꿈꾸고 있다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소통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 날 모임에 모였던 사람들은 년 쯤 후. 10에 가까운 곳에 살면서 서로 도움 주며 지내면 좋겠다고 했다는데 작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꾸려....

가길 바래본다.

다음 책은 국가는 폭력이다‘ ’ 다음 행복한 책읽기의 책이 국가는 폭력이 ‘

다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톨스토이 로 선.( )’[ ]정되었다 오프라인 모임은 월 중 진행될 예정. 11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책 읽으시고 모임에 함. 께 해보는 것도 좋겠다 자세한 내용은 행복한 . ‘책읽기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

(www.withoutwar.org/happybook)

전쟁없는세상 이 사무실을 꾸리고 활동을 한 < >지 년이 되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5 . 활동의 중심에 있던 병역거부운동은 성장과 진통을 반복하였다 운동과 함께 전쟁없는세상 도 성. < >장과 진통을 거듭하며 많은 문제제기와 반성들이 있었다 지난 년의 시간을 정리하고 좀 더 잘 . 5 ‘해보기 위해 재정비의 시간들을 가지기로 하였’ 고 년 상반기 내내 많은 논의들을 진행하였, 2008다 그 결과물을 월 분 수다와 재활용. 7 ‘100 ’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용기주기파티 자( ) ’

리를 통해 함께 나누었다.

분 수다100

전쟁없는세상 안팎으로 가장 많이 진통을 < > 겪었던 것은 무엇을 위해 가 아니었나 싶다‘ ?’ . 무엇이 하고 싶어서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 공간, 으로 모여 들었는지 제각각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달랐다 하지만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 않았고 그러한 단절은 수많은 오해와 상처들을 서로에게 안기고 말았다 단체의 내규를 강화하고 . 단체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결코 전‘ ’ <

재도약을 위한 분 수다와 재활용파티100현지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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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2 19

쟁없는세상 이 추구하는 운동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많은 우려와 비판들, 을 들었지만 전쟁없는세상 은 무엇을 하려고 하< >는지에 대해 정리하기로 하였다.

월 일 새로 이사한 망원동 사무실에 모여 7 4앉아 그동안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병역거부운동을 중심. 으로 하되 더 폭넓은 평화운동을 지향하겠다는 것과 년 동안 끊이지 않았던 활동비 지급문제5 ‘ ’였다 이번 수다회와 파티를 기점으로 전쟁없는. ‘세상은 책임활동가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다양한 평화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책임활동가들. 에게 턱없이 적지만 최소한 생계에 대한 불안감은 덜어줄 수 있는 활동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재활용파티

많이 변한 것은 없지만 좀 더 잘 해보겠다는 전쟁없는세상 을 축하하기 위한 재활용 파티도 < >열렸다 월 일 저녁 홍대 앞 클럽 빵에서 . 7 8 ‘ ’

행사가 열렸다 시와 실버라이닝 등의 멋진 공연. , 들이 어우러져 조촐하지만 즐거운 자리가 만들어졌다 일에 있었던 수다회에서 나눈 이야기들도 . 4함께 이야기하고 책임활동가를 맡아 하게 될 여옥과 용석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잘 되야 할텐데~

많은 고민과 토론의 시간을 거친 만큼 지난했던 고민과 갈등들을 뒤로 하고 산뜻하게 출발하, 는 전쟁없는세상 이 되길 바래본다 그리고 많은 < > . 분들이 들려주었던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들 잊지 말기를.

파티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시와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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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일부터 일까지 일본 도쿄 옆 치바라는 도시에서는 전쟁을 없애기 위한 헌법 조 컨퍼런스라는 5 3 6 ' 9 '국제회의가 열렸었다 교전권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일본 헌법 조. ( ) 9交戰權 2)를 지키고 그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조회의 참가한지 벌써 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전쟁없는세상의 이름으로 다녀온 대9 . 5회이기에 응당 이 소식지에 글을 싣는 것이 맞는 거 같아서 늦은 후기를 쓴다 전체적인 참관기는 프레. <시안 에 연재를 했기에 자세한 내용은 그 글들> 3)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이미 자세한 후기가 있는 상황. 이기에 이 소식지 글에서는 보다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본의 평화주의에 대한 짝사랑 그 시작은 서울구치소,

병역거부로 징역살이를 하면서 나는 꽤 열혈 평화운동가로서 자신을 구성하면서 앞으로 한국 병역거‘부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같은 엄한 고민들을 많이 했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는가 평소에는 열심히 ’ . . 안하다가 어디 가거나 무슨 일 생기면 정색하고 열심인 척 하는 사람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난 . 여전히 지금 여기를 살고 있지 못하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꽤 진지했었다‘ , ’ , .

그때의 고민 중에 하나가 평화운동의 국제연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왜 서울구치소 상‘ ’ . 10 14 교통사범 방에서 고민했을까 싶지만 나름 꽤 진지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에서 번역된 책을 보면서 . 일본의 평화주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일본과의 안정적인 연대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 때 , . 읽었던 책들이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 노다 마사아키의 전쟁과 인간 이토 나리히코의 일본 21 , , 『 』 『 』 『

2) 일본의 헌법 조는 다음과 같다 9 . 제 장 전쟁의 포기 제 조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 발동으 2 9 1) ,

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 2)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 · .3) 프레시안에는 총 회로 연재를 했는데 제목은 다음과 같다 군대없는 나라 일본을 만들려는 사람들 살리자 헌 6 . <' ' >, <'법 빛나라 조 육군은 개미 공군은 새 해군은 물고기 군대폐지 국민투표가 가능합니까 누군가의 희생을 , 9 '>, <" , , ">, < ?>, <딛고 있는 일본의 평화헌법 평화에는 애국자가 필요없다>, <" ">.

평화헌법의 나라 일본 짝사랑은 벗어났다, 전쟁을 없애기 위한 헌법 조 글로벌 컨퍼런스 일본 조회의에 다녀와서-‘ 9 ', 9

재성 | 병역거부자 대학원에서 아등바등 논문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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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 조를 통해서 본 또 하나의 일본 등이었다9 .』전쟁의 책임에 대한 법률적 고찰을 넘어서는 철학적 윤리적 접근 한 인간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 .

겪어야 하는 심리적 갈등과 전후의 그 갈등이 사회화되는 과정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군대를 폐지하는 . 것을 받아들이는 일본의 양심적인 세력에 대한 역사적 서술 이러한 내용들은 나름 평화운동을 해보려고 . 고민했던 나에게는 일본은 정말 멀리 나가있구나 하는 경외감을 만들어주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넘어서 . 일본을 양심적 군대거부 국가로 만들자는 주장에서는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막연한 경외감 멀리서 ‘ ’ . . 바라보는 짝사랑과 같은 느낌 당시에는 그랬다. .

사실 년도에 용석이가 일본을 돌면서 강연을 한 적이 있고2004 4) 많은 일본 활동가들이 전쟁없는세, 상 사무실을 방문했기에 일본 역시 한국의 병역거부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 만 연대라고 할 것도 없는 회적인 만남들만이 있었던 것이 당시의 수준 그러다가 수감 이후의 독서를 1 . 통해 가해자의 나라는 이렇게 평화와 폭력 군대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피해자의 나라는 이리도 일천할까, , 이런 모습 역시 폭력의 악순환일까 하는 고민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나름의 고민 속에서 병역거부운동이 앞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일본과의 연대를 통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거 같다는 막연한 느낌과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들뜬 마음에 일본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맘먹. 었지만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외우고 나온 것이 전부 출소 이후 대학원 입학시험으로 정신없다가 시험이 . 끝나고 학원에 등록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내내 일본에 .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생활이 치여서 무언가를 시작해보지는 못했었다.

일본으로 떠날 준비 차곡차곡,

그렇게 대학원을 다니던 년 월초한국 병역거부자로서 일본조 회의에 참가해볼 생각이 있는지 2008 4 , 9연락이 왔다 제안한 사람오리 이야 그냥 시간되는 병역거부자를 물색한 것이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 ( )런 고민들이 있었으니 그 제안이 얼마나 기쁘던지 게다가 일체의 경비를 지원받아서 간다는 것이 더욱 . 그랬다 좋아했던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는 느낌이랄까. .

구체적으로 제안이 온 것은 군대 없는 세상을 향하여라는 섹션에서의 발표였다 패널 구성은 한국‘ ’ . 의 병역거부자 스위스에서 군대폐지 운동을 하는 활동가 코스타리카의 정부 관료로 되어있었는데 개인, , , 에서 국가의 차원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군대를 극복해 나가는 활동의 경험을 나눠보자는 구상으로 짜인 섹션인 듯 했다 말로만 들었던 코스타리카 박노자 선생님의 책에서 읽으면서도 신기하기만 했던 스위스. , 의 군대폐지 국민투표 이런 내용들을 옆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경험이겠다 생각했는. 데 전체 일정이 나오는 것을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대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4) 이는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호에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만나다 로 정리되어 있다 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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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정한 것이 참관기의 언론 기고 세 가지 이유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데 첫 번째는 경비지원까. 지 받으면서 나 혼자 좋은 거 보고 나 혼자 감동받고 돌아오는 것은 좀 이기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 두 번째는 이러한 대회의 내용들을 한국에 알림으로써 보다 다양한 평화주의의 담론들이 소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스스로가 보다 적극적으로 그 대회를 참여할 수 있는 기. 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자승자박이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개의 기사를 쓰는 과정은 없는 실력에 . . 6참 피 말리는 과정이었지만 그러한 기제가 없었다면 그처럼 진지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발표문 준비 취재 기획서 작성 현지에서 다양한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기 위한 준비 조사 등 이것저, , . 것 꽤 바쁘게 참가준비를 했다 수감시절 읽었던 일본 관련 책들도 다시 꺼내서 읽어나가면서 헌법 조의 . 9의미를 다시 고민해보기도 하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코스타리가의 일간지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참을 . 자료조사를 위해 헤맸던 시간이다 결국 코스타리카 아저씨의 인터뷰는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월 일 . . 5 2일본으로 출발했다.

거대한 규모 거대한 박수 속에 쌓인 헌법 조, 9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규모가 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월 일 첫 날 전체대회의 참석자는 . 5 4 1만 천여 명 그나마 표를 구입하도고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는 천여 명을 넘는다고 했2 . 3다 입장료만 해도 우리나라 돈으로 만 천원이 넘는 행사임에도 말이다 행사가 열렸던 마쿠하리 홀의 맨 . 5 . 바닥까지 빼곡하게 앉아계신 연세 지긋한 노인 분들의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그러한 규모보다 더 감. 동적이었던 것은 참가자들의 태도였다 상당수의 이들은 작은 기자수첩을 들고서 연단의 이야기들을 받아. 서 정리하고 있었다 무얼까 이렇게 많은 이들의 열정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얼까. . .

우리에게 군부독재 아래에서의 탄압과 그것에 맞선 싸움 그리고 년 민주화 항쟁이 하나의 세대를 , 87형성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된다면 일본에서는 전범국가로서 책임과 반성의 바탕으로 평화헌법을 , 지켜왔던 역사로 바로 그것이다 년대 미일 안보조약 반대투쟁은 마치 우리의 년 항쟁이 비교될 . 1960 · 87수 있으며 이후 평화헌법을 둘러싼 논쟁은 일본 내에서 정치적 사상적 논쟁의 핵심에 있었다 바로 그 , , . 행사장에 모인 분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헌법 조를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9 . 젊은 날을 바쳐가며 싸워왔던 것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이렇게 다시금 모이신 것은 아닐까, .

이렇게 거대한 세계대회를 통해서 수많은 해외 활동가들을 초청한 행사인 이번 조 글로벌 컨퍼런스, 9를 보면서 일본 내의 호헌파는 개헌저지 운동의 또 다른 동력을 모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어. 느 시기보다 헌법조에 대한 개헌의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호헌세력의 논리는 오히려 공세적이었다 헌법9 , . 조는 세계 평화의 유산이며 오히려 인류 모든 나라가 이러한 헌법 조를 자신의 나라에서 실현할 수 있9 9

도록 해야 한다는 것 헌법조의 수출이랄까 연단에서의 연설과 참가자들의 반응도 같은 맥락이었다 노. 9 . . 벨 평화상 수상자들이나 국제 평화단체의 유명한 활동가들은 헌법 조를 지킨 일본인에게 감사를 표했고,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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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류의 미래를 세계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하자고 외쳤다‘ ’ .분쟁해결의 수단으로서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며 이를 위해 육해공 일체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

헌법조 이러한 가치가 실제 헌법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9 . . 이것은 인류 공통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평화운동가로서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당시 대회. 의 느낌은 무언가 탈맥락적인 평화만이 이야기된다고 느껴졌다 조의 빛나는 가치에 대한 박수와 함께 . 9현재 형애화된 헌법조에 대한 반성이 함께 이야기 된다면 어땠을까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 베트남 전쟁9 . 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들에 부역한 역사에 대한 성찰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 도 등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부재했다.

물론 그곳의 참가자들이 일부러 그러한 내용을 생략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또한 연설자들의 발언에서. , 구체적인 워크샵에서 그러한 고민들은 묻어났다 그러나 전체적인 무게 추는 박수 받는 조 에 실려 . ‘ 9 ’ 있었고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이다오히려 헌법조가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헌법조를 지켜온 일본. 9 , 9인들에게 감사하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이런 현재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급하게 변경한 발표 한 명 한 명이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결정의 무게,

한국이라는 평화운동하기 너무 척박한 환경에서 그것도 병역거부라는 엄청 욕먹는 운동을 해서 그럴, , 까 세션 준비를 위해 사전에 모임을 가지면서 다른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러한 느낌이 역시 . 강하게 들었다 없이 사는 마이너의 시각일까 우리나라의 육군은 개미이고 공군은 새이고 해군은 물. . ‘ , , 고기라는 멋진 이야기를 하는 코스타리카영세중립국이라는 조건과 나토라는 지역군으로 인해서 자국의 ’ , 군대를 바라보는 입장이 우리와 상이할 수밖에 없는 스위스의 이야기는 나에게 분명 중요한 사례이긴 했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못했다 이러한 발표내용으로 채워질 섹션이라면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 즉 군대. , ‘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와 같은 선언과 사례 소개에 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랬기에 한국 사회의 징병제 시스템과 년 이후 등장했던 병역거부 운동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로 2001발표를 하려던 처음의 계획을 바꾸어서 한 개인이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는 과정의 무게를, 본인과 가족이 그 결정으로 겪게 되는 고통을 담는 방향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가지고 갔던 강철민 농성 . 다큐에서 강철민 어머니가 농성장에 오셔서 오열하는 모습으로 시작한 발표는 이 젊은이들 한 명 한 명의 고통과 연대하고 이들의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 비록 군대를 없애자 라는 거창한 구호에 비하면 보잘 것 , 없지만 전쟁을 멈추는 가장 근본적인 길임을.또한 한국 병역거부자들은 군인들이 행한 한국전쟁 시기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년 광주를 기억하80

고 있으며 베트남에서의 그 용맹했던 파병 위의 한국군을 기억하고 있다 평화란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 2 . 직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 헌법조를 지키는 길은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피해자들의 고통을 직시. 9 ,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전날 밤 새벽까지 끙끙거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절실했던 거 같다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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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생각하는 평화를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일본이 가진 매력 하지만 변하는 그것,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하지만 사랑은 변할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알게 되면서 좋은 모습 싫은 모습 . , 발견하고함께 나눈 추억이 쌓여가면서 나의 삶에 일부가 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그렇게 변하면서 , . 사랑은 진정 매일매일 새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 뜨겁게 불타오르던 수감시절의 사랑 그리. . . 고 한동안의 냉각기 그럼에도 쭉 가지고 있었던 흠모의 마음 이번 조대회의 참가를 통해서 그 냉각기는 . . 9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지만 그 사랑은 예전과는 다른 무엇이었다.분명 일본은 평화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나라이다 전범국가로서 여전히 군국주의를 부활시키.

려는 이들과 그것에 대항해서 적극적인 평화운동을 펼치는 이들 이들이 만드는 대립지점은 한국의 그것보. 다 훨씬 선명하고 굵었다 세계 유일한 원폭국가로서 반핵평화의 성지가 된 히로시마 반기지 운동의 감동. . 적인 사례를 만들고 있는 오키나와 그리고 이렇게 오랜 시간 헌법 조의 명문을 지켜온 일본의 모습 그. 9 . 러나 거기까지만 알았다면 그 사랑은 온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평화의 메카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의 기념비가 최근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에 몰아넣고 미국의 핵우산 속에서 지켜온 헌법 조는 그 자체로 냉전시대의 한 . , 9변형이라 할 수 있다 무임승차 세대라고 불리는 일본 젊은 세대의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결국 . 전후의 반성과 평화헌법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은 그렇게 그 시점에서 머무른 상태로 말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이다 국가주의가 전쟁으로 연결되었던 기억을 가진 이들은 기. 미가요와 히노마루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반대를 고민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태극기를 평화의 . , 관점에서 비판하고 접근하기 위해서 우린 일본의 고민과 실천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밖에 없다 징병제가 . 없는 국가에서 커온 젊은이들이 군대를 가지 않으면 감옥에 간다는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반문하는 모습에 답답해 하면서도 어쩌면 응당 저런 모습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도 가지게 해준다 더 나아가 비록 일본 내에서는 소수일지라도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발전해있는 평화학과 평화운동. , , 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방문이었지만 가기 전의 준비와 이후의 원고정리 및 정리 작업까지 , 합하면 거의 주를 조회의 더 정확하게는 일본의 평화운동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지냈던 것 같다 야스3 9 , . 쿠니 신사와 여성을 위한 평화박물관의 견학 헌법대회의 참가 역시 조회의 참가만큼이나 많은 고, 5·3 9민 지점을 주었고 한정된 시간에서 그나마 일본 평화운동의 여러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또한 한국 참가자, . 들과 함께 다니면서 나눈 이야기들은 눈앞의 것들을 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온전하게 평가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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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거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야말로 좋은 계기에 좋은 사람들과 압축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 배웠던 시간. 막연하게 책 몇 권을 읽으면서 시작한 일본의 평화헌법에 대한 짝사랑을 조금 더 공부를 하면서 그것

이 가진 명암을 알게 되었다 그런 지식이 조금씩 늘어갔지만 그냥 지식으로 남았던 시간을 지나 우연히 . 생긴 기회를 통해 일본의 평화운동을 직접 만나본 지금 비록 잠깐의 시간이지만 막연히 바라만 보았던 . 짝사랑은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이제 좀 진지한 이야기를 떠내면서 사랑을 진척시켜 나가고 싶은데 아직. . 은 막연하고 자신도 없지만 그래도 사랑은 이어질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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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여러 논의 끝에 전쟁없는세상 차원에서 참가를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 월 중순쯤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이 일본 자전거여행을 떠나고 혼자 남겨져서 잘 쉬어보려고 3 . 했으나 뜻대로 되지않던 월 말 청평으로 박일간 워크샵을 다녀오게 되었다출발하기 며칠 전까지 교4 , 4 5 . 육을 신청했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다가 박 일이라는 일정을 빼려다보니 출발 전날 밤도 꼬박 새고 좀 4 5허둥지둥하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열기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딱 보. 기에 비폭력직접행동을 할 것 같지 않은 ‘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고나 할까 다양한 . 연령대의 사람들과 종교적인 포스를 마구 풍기시는 분들도 계셨고 스무명이 넘는 낯선 . 사람들과 보내야하는 시간들을 게다가 정확, 한 시간과 정확한 내용이 결정되어있지 않은 데다가 강의가 아닌 강도 높은 참여형 프로그램들을 엄청난 부담으로 느끼면서 강사인 조지 레이키 와 다니엘 훈터(George Lakey)

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생(Daniel Hunter) . 각했던 것과 초점이 좀 다르다는걸 가서 알았는데비폭력직접행동에 대해 배우고 훈련하는 워크샵이 아니, 라 비폭력직접행동을 기획하는 워크샵을 진행하는 것을 배우는 워크샵이었던 거였다 간단히 말해 트레이. 너를 위한 워크샵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비폭력직접행동에 대한 워크샵도 들어본 적이 없고 막연하게 . 비폭력직접행동에 대한 동경심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소화해내는 것은 아‘ ’

비폭력직접행동 전문훈련가양성 워크샵-Direct education for teaching nonviolent direct action여옥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틈틈이 진행되었던 몸풀기 맘열기 게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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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훌륭한 강사가 있었더라도 무리였을 거라 는 게 박일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4 5 .

다같이 모여서 소개를 하고 간단한 게임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그 이후에도 워크샵 시작 전에 . 참가자들이 간단히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나 노래를 함께 부르고 게임을 하는 등 함께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사전 활동들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참여형 . 워크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마니또처럼 매일매일 챙겨주기도 했다 내 짝은 청년평화센터 푸름의 . 정혁씨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질 . 수 있었고 그 인연으로 평화교육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 찾아가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토론은 항상 , . 소규모 그룹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고 식사 후에는 충분한 휴식시간이 주어져서 함께 농구도 하고 산책도 , 하고 그러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저녁에는 젊은 사람들끼리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고민도 나누. 고 그러다보니 처음 만났지만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점차 가까워지게 되었다. .

경험을 통해 배우는 이론과 방법들

워크샵은 대부분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활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참가자들 각자가 부당. 한 것에 저항하여 성공했던 경험을 나누어 보기도 하고 그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고 정리하고 일반화시켜서 내용을 만들었다 거기에 조지가 파키스탄 독재정부에게 미국무기를 파는 것을 막기 위해 했던 . 비폭력직접행동의 성공 이야기 다니엘의 카지노 없는 필라델피아 만들기 조직운동 이야기 등 직접적인 사, 례를 들으면서 더 많은 내용과 결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문제를 지탱하고 있는 지주를 찾는 권력분. 석틀에서는 그림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매트리스를 가지고 와서 지주로 선정된 사람들이 들고 서있게 해서 그것을 유지하는 힘이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그 지주들을 무너뜨리기 , 위한 각각의 설득논리를 만들어 설득에 성공하면 빠지게 해서서 결국엔 모든 지주를 무너뜨리기 전에 매트리스가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커다란 전지에 살고싶은 마을을 다같이 재미. 나게 그렸는데 투자자와 자본 역할을 하던 진행자가 더 좋은 마을을 만들어주겠다며 전지를 조금씩 가져, 가다가 나중에는 마음대로 찢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으로 드러누워 막았던 경험은 워크샵 과정에서 실제로 직접행동을 하게했던 경험이기도 했다.

문제를 지탱하는 지주가 되어 직접 매트리스를 들고있는 사람들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형으로 진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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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진행했나요“ ?”

프로그램 시간표도 대략적인 가이드라인밖에 없었는데 미리 읽어볼 수 있도록 주어지는 자료도 없었, 다 주제만 정해진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했는데 그것마저 계획되어 있었나보다 참여하느. , . 라 정신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두 명의 진행자는 이렇게 물었다 진행자가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대답과 . , 표정과 행동을 취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는지 등등을 기억하냐고 얼마나 관찰했, . 고 파악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대답으로 정리한 다음 그것들을 참가자들에게 직접 해보게 했다, . Direct

이라는 것은 경험 활동 방법들을 사용하여 직접 참여하게 하고나서 그 느낌과 기억들을 반영Education , , 하고 일반화시켜서 다시 적용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다워크샵에서의 오후 실습은 그룹으로 나뉘어서 . 자기가 선택한 주제에 대해 한두가지 진행도구를 선택하여 진행을 해보고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렇게 한다는게 시험받는 기분이라 좀 난감하기도 했지만 진행방식을 익히는 것. 은 실습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다양한 분석방법을 거쳐서 실제 활동계획을 짜보는 단계에 왔는데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만 고민하다보니 정작 대충 잡은 주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어서 분석이 잘 . ‘ ’안되서였을까앞의 고민과정과 분리된 채 영향력있는 전술짜기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자꾸 나타났다 다시 , . 예전의 방식이 반복되는 느낌도 들고 열심히 분석했는데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결국엔 똑같은 방법의 행동을 하게되는 듯 했다 참가자들도 답답하고 진행자들도 다른 무언가를 끌어내기 위해 전술에 대해 대. 결 소통 균형찾기도 해보고 각 그룹의 내용에 다른 사람들이 의견추가하기도 해봤지만 속시원히 해결되- , 는 느낌을 들지 않았다 비폭력직접행동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도 하기 힘들었던 것을 진행까지 하게 . ‘ ’ 하려다보니 어느 한 쪽도 충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비폭력직접행동을 위해

참가자 중 채식을 하는 명을 위한 식탁이 따로 마련되어서 박일간 조지 다니엘과 같이 밥을 먹었4 4 5 , 다 알고보니 다니엘은 나와 동갑이라서 같이 밥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 War Profiteer 모임 얘기도 하게 되었다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에 대항하는 직접행동에 대해 물어보고도 싶었고 . 다니엘도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어했으나 영어의 장벽은 높고도 높았다. 워크샵 마지막날 수입쇠고기반대 촛불집회에 만명이 모였다는 기사를 보고 모두가 놀랐다 그 이후 2 .

촛불집회는 엄청나게 확대되고 다양해졌는데 정작 비폭력직접행동을 고민했던 활동가들은 촛불을 든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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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시민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일반시민들은 비폭력에 대해 밤새 끝장토론을 . , 하며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있을 때 오히려 활동가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워크샵에서의 고민들. 이 실제 현장과 맞닿아있지 않다면 비폭력 직접행동 교육이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요즘에도 계속되는 후속모임에서 어떤 내용을 고민해야할지 여전히 고민 중? 이다.

워크샵이 끝나고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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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소식지의 도덕교과서 분석에 이어서 국사교과서를 분석해보고자 했다 생각보다 훨신 어려운 작업. 이었다매체편집팀 구성원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우리는 근현대사가 선택과목으. . 로 분리된 것은 알았지만 국사 교과서의 구성이 시대순의 서술에서 분류사 정치사 문화사 사회사 경( , , , 제사 로 바뀐 것도 몰랐다근현대사 교과서의 경우에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진보성 으로 우) . (?)리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은 무척 다양하다 학계에서는 활발히 토론되고 있는 다양한 관점들이 교과서에서는 . 주류학계의 의견만이 존재하는 양 생략되고 있었다 다양한 관점들에 대한 판단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 것은 맞는데 그렇담 교과서에 소개되어야 할 관점들의 선정기준은 무엇이어야 하지, ?

민족과잉과 폭력에 대한 성찰이 없음을 찾아내고 싶었다 의도적으로 잘못된 그림이나 지나치게 자의‘ ’ . 적으로 해석된 사례들을 많이 찾아내고 싶었다 부족한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차 사료를 활용할 수 . . 1없는 우리들의 능력은 곧바로 한계에 부딪혔다 또한 세미나 과정에서 매체편집팀 내부의 의견이 다르. 기도 했었다 우리 또한 역사교육을 통해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둔감해진것인지 부족한 전문지식을 . , 가지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어쨌든 기사를 완성하였다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부족하고 마음에 안들기도 . 하지만 우리의 부족함을 안타까워하며 누군가 훗날 우리 스스로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역사교과서를 , -평화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국사교과서 분석을 들어가며 매체편집팀 여옥 용석 현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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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사가 아니라 국사인가‘ ’ ‘ ’ ?

국사 사전적인 의미는 나라의 역사( ). ‘ ’國史이다 그렇담 국사는 어느 나라의 역사일까. ‘ ’ ?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사라는 교과목은 어느 ‘ ’나라의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일까 이 질문은 어? 찌보면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애시당초 던져봤어야 할 질문이었다 국사과목에서 배우는 것이 세. ‘ ’계사에서 국가라는 정치적 체계가 어떤 모습‘ ’들로 형성되고 발전해왔는지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기원을 따져보고 현재의 사람들이 , 이땅에 어떤 문화적 생활적 정치적 뿌리를 내려왔

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라면 마땅히 한국사라는 ‘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역사교육의 커다란 문제? 점 중의 하나는 이미 국사라는 이름으로 나타‘ ’나고 있다.

역사라는 학문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사실을 사료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 는 사람들의 눈으로 재해석되고 그 시선은 현재, 를 넘어 미래를 응시하고 있어야겠지만 역사학의 기본사료들은 과거의 것임은 변함없는 사실이‘ ’다 과거의 사실에 어떤 숨결을 불어넣을 때 역. , 사가의 상상력과 주관은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

국사교과서를 뜯어보다용석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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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학문적인 차원의 것이지 학문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감정이입은 결코 아니다 국사. ‘ ’라는 과목명은 역사를 공부하는 개인들을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이라는 . 국가를 학문의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나의 삶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 의 동일시는 사실상 개인의 상실과 국가주의의 만연으로 나타난다 나를 배반한 역사. ‘ ’5)는 역사교육에서부터 이루어진다.

국사교과서의 머리말을 보면 이런 부분이 명확히 드러난다 물론 국가와 민족은 동의어. ‘ ’ ‘ ’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 모두 . ‘ ’ ‘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 후에 나타난 개념들이‘ ’다 그 두 가지가 엄격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 닐지라도 한국 사회에서 두 가지의 결합은 국가, 와 민족을 절대적인 차원으로 올려놓는 안좋은 시

너지효과를 발휘한다 국가와 민족이 뒤. ‘ ’ ‘ ’범벅이 되어 개인을 배반해 버린 것이 바로 ‘ ’국사교과서인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 다양한 틀거리로써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 ’ ‘ ’념은 물론 유용한 틀거리 중에 하나일 수 있다. 그런 틀은 너무도 많다 여성 계급. ‘ ’, ‘ ’, 지역 문화 등등 역사를 바라보는 다‘ ’, ‘ ’ ... 양한 프레임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역사서술을 다층적이고 생동적으로 만들어 낸다 불행은 한 . 가지만이 역사를 바라보는 틀로 절대화 된다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민족의 과잉

국사교과서의 민족의 과잉 문제를 좀 더 다뤄보자 사실 민족 과잉의 역사서술은 국사교과서 .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 때문에 어디 한 부분을 딱

5) 박노자의 책 제목 나를 배반한 역사 에서 차용 『 』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외세의 이용과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한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의 세력을 무력으로 몰아 낸 사실에서 자. 주적 성격을 인정 할 수 있다 국사 교과서 쪽. - 55

→당시 신라인들에게 고구려와 백제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있었을까 굳이 민족이라는 개? 념이 근대 이후 등장했다는 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신라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역사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든데 고구려에서 내려온 세력이 토착민들과 함께 국가를 건, 국한 백제의 경우 고구려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랐을 수는 있지만 신라인들의 입장에서는 고구려, 와 백제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지금의 우리가 민족이라는 틀거리로 묶어서 신라의 정치적인 선택. 을 한계로 이야기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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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집을 필요도 없다민족과잉 역사서술의 문제점. 은 특히나 고대사 부분에서 많이 드러난다 민족. 이나 국가나 모두 근대 이후 형성된 개념인데 이를 무리하게 적용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고대 시대에는 당시인들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의 정체성이나 민족의 테두리와 같이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성격자체도 현재의 . 국가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근대 이. 후 국민국가의 형성은 하늘 땅 바다 세상의 모, , 든 곳을 국가의 통치범위 안에 집어넣는 아주 중앙집권적인 형태이지만 고대 국가로 갈수록 국가의 힘이 미치는 영향은 아주 좁은 지역으로 한정 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국가들이 지금의 민족과 . 국가에 대한 틀거리로 고대사를 제각각 판단해 버리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동북공정의 문제. 를 비롯한 현대의 많은 영토분쟁들은 이런 시각들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결합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역사교육에 있어서 민족 과잉의 문제는 위와 같은 정치적인 문제만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제기되는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하여 역사학의 위기는 단순히 밥벌이가 안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세상을 해석하는 인문학이 위기에 처. 했다는 것은 작금의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삶의 모습들이 기존의 학문적인 틀거리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학도 마찬가지. 다 인문교육은 해당분과 학문의 전문적인 지식인. 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소양을 지닌,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과 비판과 성찰이 가능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라면 인문학으로써의 역사교육은 현재 우리가 처한 세

상살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 다 민족이라는 담론은 세기까지 긍정적으. ‘ ’ 20로로 부정적으로도 꽤 유의미한 담론이었을 수 있지만 지금의 세상살이를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 해 보인다특히나 민족이라는 거대한 담론아래서 . 배반당한하고 삭제당한 개인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를 보자면 민족과잉은 굉장‘ ’히 위험하다 물론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들에서 . 민족국가의 형성이 가장 큰 목표였었고 국가의 , 교육정책 또한 그 목표에 복무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세계 속의 강소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역

발해는 영역을 확대하여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였다 비록 그 영역에 . 말갈족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지만 발해는 , 일본에서 보낸 국서에 고려 또는 고려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사실이라든지 문화, 의 유사성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였다.

국사교과서 쪽- 57

지배층이 고구려의 유민이면 피지배층이 →

다른 민족이어도 그 국가를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보고 민족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정당한가 만약 지배층이 다른 민족이고 ? 피지배층이 한민족이었다면 그 역사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할까 문화의 유사성이 같은 ? 민족국가의 이유라면 왕실의 문화보다 오히려 , 민중들의 문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인데 만약 말갈 민중과 고구려 민중들의 문화가 비슷하다면 말갈은 한민족과 무슨 관계인가 단일? 민족의 신화는 깨어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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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서 민족의 과잉이 불러올 모습들은 ‘ ’과연 긍정적인 역동의 에너지일지 부정적인 파괴의 에너지일지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폭력의 세기 근대를 성찰하라

국사교과서에서 민족과 함께 가장 과잉되‘ ’어 있는 근대적인 담론은 바로 국가주의다 그것. 도 국가의 팽창에 대한 무비판적인 오히려 크고 , 강한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이 바로 국사교과서가 가지고 있는 국가주의의 실체다 근대국민국. 가의 형성과정은 모든 물리적인 폭력을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국가는 .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비극은 시작되었다 세기와 세. . 19 20기 초에 걸친 제국주의 국가들의 팽창욕구와 그들의 폭력이 인류역사에 얼마나 크나큰 재앙을 불러왔는지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다 국가들 간의 . 폭력적인 충돌로써의 전쟁이 아니더라도 국가폭력의 무수히 많은 희생양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시대가 바로 근대라는 시공간이다 국가폭력‘ ’ . 의 책임주체는 물론 국가다 그리고 그 국가는 바. 로 근대의 산물로써의 국민국가이다 근대가 가진 . 본원적인 폭력성을 성찰하지 않고서는 국가폭력의 역사를 온전히 이야기할 수 없다.

국민국가의 건설과 산업화로 대표되는 근대가 가지는 본원적인 성격은 팽창이다 산업화로 ‘ ’ . 인해 성장한 자본은 끈임없이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넓혀가야만 한다근대국민국가 형성시기에 각 . 국은 영토 확장에 대한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이러한 바탕에서 제국주의가 등장했던 것이다. .

국가의 정치적 영토적 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제국주의 시대처럼 영토에 대한 무차별적인 침략은 드물지만 자본주의의 , 시장 팽창의 욕구는 아직도 유효하다 특히 세. 20기 초반에 식민지를 경험한 많은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한국에서는 근대화에 대한 욕구는 거의 신성화되어 있다 현재의 맹목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 욕망 또한 그러한 근대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총칼로 침략하지 않을 뿐이지 이러한 ? 성장과 팽창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과 시도는 결국 또 다른 누군가를 폭력의 피해자로 만들면서 피로 얼룩진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역사교육은 이러한 근대성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교육은 아이들에게 . 과거 어느 시대의 전지전능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왔는지 그리고 현대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이전 역사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을 키워줘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교육은 여전히 팽창과 . 성장의 근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구한말의 개화기에서부. 터 현대의 산업화 시대까지 쉬지 않고 근대 국가의 형성을 위해 매진해 온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 국가에 의한 시민들에 대한 폭력이나 대운하 건설과 같은 자연에 대한 폭력 그, 리고 한국이라는 국가가 세계사회에서 다른 어떤 가난한 나라의 더 가난한 국민들의 빈곤에 미치는 영향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 힘들 것이다.

근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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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교육이 나아가야할 미래는 근‘대 너머에 있다 근대 너머의 시선으로 역’ . ‘ ’ 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현재나 미래의 가치판단을 가지고 과거를 재단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 와 민족 그리고 성장과 팽창 속에 잊혀지고 삭제, 된 역사의 주체들을 복원해내는 따뜻한 시선이 바로 근대너머의 역사교육이 가져야 할 모습이다. 거대한 정치주체들에 묻혀있는 개인들의 이야기-교과서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농민들과 교과서에 ,

한 번 제대로 등장해보지 못한 여성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역사적인 상상력이 역사교육을 통해서 키워져야 한다 경쟁. 을 통해서만 존재를 인식하고 성장과 팽창을 통해서만 공동체가 유지될 것만 같은 한국사회와 그 한국사회의 완벽한 축소판 학교 아니 어쩌면 경, 쟁과 성장지상주의를 온몸에 각인시키는 교육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의 학교 역사교육에서 우리가 . 배웠던 희망을 가장한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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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언론장악이 한국사회를 한 번 뒤MB ‘ ’집어 놓더니 이번에는 죄편향 교과서가 뜨거운 ‘ ’감자로 등장하였다 다들 내가 중립이라고 주. ‘ ’장하며 빨갱이니 시장주의자니 목에 핏발세우‘ ’ 기만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좌편향 교과. ‘서논쟁을 단순히 이념논쟁으로만 이해하고 논의’하는 것은 위험하다 힘을 가진 자들의 이념논쟁이 . 교육의 장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부터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좌편향교과서 개정논란 전체적 개괄‘ ’

교과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부터 교과서 수정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 왔다 김도연 전 . 교과부 장관은 지난 월 공개 석상에서 현재의 5 “

역사교육은 편향돼 있다 며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이어 월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현재 교. 7 “과서가 좌편향 돼 있어 청소년들이 반미반시장적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고 말했었다 월 국무회.” . 7의에서는 이러한 김도연 당시 교과부장관의 보고에 대해 한승수 국무총리 또한 교과서를 학자들에게“만 맡겨둘 게 아니라 각 부처가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취합해 교과서를 통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

야권과 진보학계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하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각계의 교과서 수정 요청이 시작되었다 교과서 개정에 대한 각계 요청은 항상 있어 . 왔지만 올해 정권이 바뀌면서 교과서 수정에 대한 보수단체의 주장이 한층 더 거세졌다 지난 년간 . 10

현지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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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향 되었던 교과서를 이번 기회를 통해 전‘ ’ 면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교과서 수정보완을 요구한 기관 및 단체는 ․모두 곳으로 수정을 요구한 수정 건수는 건19 3732이다 논란의 핵심에 놓여 있는 한국근현대사 교과. 서와 관련한 개정의견을 낸 곳은 국방부 통일부, , 대한상공회의소 세 곳이다 특히 국방부는 전두환 . 정권을 옹호하고 제주 사건을 좌익반란으로 43 ‘ ’․규정하는 등 상식 이하의 개정요구를 하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손발이 척척 시도 교육감들도 나서. ․

또한 월 초에는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편향된 9 ․교과서를 일선학교에서 선정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 서는 교장이 근현대사 교과서 채택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벌써부터 교육감들의 발언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교과서 집필자들은 교과부 장관에 이어 교육감들까지 나서 특정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은 집필자들의 자기검열을 강화할 ‘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교육감들이 직접 나서 . 자기들 의도에 맞지 않는 교과서는 걸러지도록 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집필자들이 정부의 역사관을 고려해 스스로 사전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다양한 , 관점을 가진 교과서들이 나올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과부는 현재 교과서 수정 요구 의견을 모두 모아 국사편찬위원회에 분석을 의뢰한 상태이고, 편찬위원회는 개정 요구 의견의 타당성 여부를 따진 뒤 월 중순쯤 분석내용을 교과부에 전달할 10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과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 어떤 부분을 수정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교육을 위한 논쟁은 사라지고 이념논쟁만 남아...6)

교과부의 역사교과서 개정 발언이 나온 이후 수많은 논쟁들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논쟁 속에서 . 그 누구도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에 대한 고민은 제기하지 않았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이념을 뜯어 . 고치기 위해 교과서의 의미를 운운하며 학생들‘ ’을 망칠 것이라고 저마다의 이념이 진리인양 중, , 립인양 이념논쟁만 하기에 바빴다.

교과서는 근대교육의 생성물이다 노동과 삶을 . 통해 후대로 이어지던 예전의 교육이 근대에 들어서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과서를 매개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근대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수. 동적이고 애국심 강한 국민을 만들어내는 것, ‘ ’이었다 여전히도 주입식 교육이 판치고 있는 한국. 의 교육현실에서 교과서에 드러나는 이념은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교과서 이념논쟁을 보며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는 교과서 서술내용과 서술방식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관점만을 . 단정적 서술형 문장으로 교과서의 내용을 외우‘ ’

6) 교과서를 장악하라 이용석 참고 교과서의 의미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호 교 ‘ ’( ) . < > 21 ‘中 과서의 존재의미에 대한 단상들 근대 교육을 넘어서는 새로운 학습론에 대하여 기사를 참고 하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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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만 만들고 있는 교과서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이념논쟁은 끝나지 않고 학생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진정한 교육의 목표는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는

이성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에 . 걸맞는 교과서는 다양한 고민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져야 한다 국가가 정해준 교육. 과정과 내용들이 하나의 미리 고정되어 있는 진리로 여기며 소위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해서 이미 정해진 정답에 대해 의심을 품지 말고 일단 외‘ ’워야만 하는 교육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교과. 서에 주어진 주제들을 자신의 삶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결론

지난 촛불집회에 쏟아져 나온 중고등학생들을 ․바라보며 어른들은 저마다 그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온 이유를 분석하기에 바빴다 누군가는 논술교. ‘육의 결과라 하였고 누군가는 세대를 부모’ , 386로 둔 세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였다 수많은 . 분석들이 나왔지만 그 분석들의 공통전제는 아이들을 수동적 주체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 ’ . 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다하여 부당함을 외치러 나온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다 누구 덕이다라는 ‘ ’껍데기를 씌우느라 바빴다.

이러한 인식은 교육에서 학생들을 주체로 ‘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정, ‘ ’도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교육의 도구로서의 . 교과서를 장악한다면 그들의 신념 그들의 ‘ ’ , 충성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 ’ . 학생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한홍구 교수가 지. 적하였듯이 정권이 꿈꾸는 교과서보다 더 MB ‘쎈교과서로 공부했던 학생들이 대학에만 갔다 하’면 다 극렬 좌경 용공이 되던 시절이 있었‘ ’다.7)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념을 주입식 교육으 로 세뇌만 시키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을 우매한 어른들의 자의적 판단일 뿐이다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교과서 논쟁. 은 학생들을 위해 진정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가 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7) 역사교과서 충성경쟁이라니 한홍구 한겨레 시론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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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경제도 연혁 및 도입배경0. 8)

년 월 일 전투경찰대설치법이 제정되1970 12 31어 그 동안 일반경찰관으로 구성된 전투경찰이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병력자원으로 전환되어 군대식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전의경 제도의 근거법률은 . ․병역법과 전투경찰대설치법 및 같은 법시행령으로서 법령상 작전전투경찰순경으로 되어 있는 전경의 주요임무는 대비정규전 국가중요시설방호 요, ,

인 및 신변보호 작전상 취약요소제거 및 경비업, 무수행 등의 대간첩작전으로 년 월 창설되1976 9었다 법령상 의무전투경찰순경으로 되어 있는 의. 경은 시위진압 범죄예방 순찰 교통 등 치안보조 , , , 업무수행을 목적으로 년 월 창설되었다1982 12 .

외국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경비업무 기능은 이루어지지만 징병제에 의한 복무지원 및 대체모집에 의한 복무형태가 아닌 직업 경찰관제에 의한 제도로 운영되며 전 의경 징병, ?

8) 국가인권위원회 전의경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종합제도개선 권고 ‘ ? ’

전의경제폐지를 위한 연대에서 주최한 년 월 일 전의경제도의 실태와 문제 토론회의 발* 2008 7 23 < > 제문 전투경찰대설치법에 대한 법률적 검토 염형국 변호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을 재구성한 글‘ - ( , ‘ ’)‘입니다

여옥 매체편집팀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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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에 의한 제도 운영은 우리나라가 유일한 경우이다.

국방의 의무와 전환복무1.

헌법 제 조는 제 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39 1 ‘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고 .’명시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는 외국 또는 외적의 . 침략으로부터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국토방위의 의무를 말한다.

전투경찰대설치법 제 조에서는 간첩무장공비1 ‘ (를 포함한다 의 침투거부포착섬멸 기타의 대) · ·간첩작전을 수행하고 치안업무를 보조하기 위하여 지방경찰청장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국가경찰기관의 장 또는 해양경찰기관의 장 소속하에 전투경찰대를 둔다 고 하여 대간첩작전을 수행하고 치안.’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전투경찰대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전투경찰순경의 임용과 관련하여 법 제 조의2 3 제항에서는 대간첩작전의 수행을 임무로 하는 1 ‘전투경찰순경은 병역법 제 조 제항의 규정에 24 2의하여 전환복무된 자 중에서 이를 임용한다 고 .’규정하고 있고 법시행령 제 조 제 호에서 이와 , 2 4같이 임용된 자를 작전전투경찰순경이라고 하고 " "

있다 또한 법 제 조의 제항에서 치안업무. 2 3 2 ‘의 보조를 임무로 하는 전투경찰순경은 병역법 제

조 제항의 규정에 의하여 전환복무된 자 중에25 1서 이를 임용한다 고 하고 이러한 자를 의무.’ , "

전투경찰순경 이하 의무경찰이라 한다 이라고 ( " " )"하고 있다법시행령 제 조 제 호( 2 5 ).

국방의 의무를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전

경으로 전환복무하여 대간첩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국방의 의무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처럼 광의의 개념으로 국방의 의무를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에서 헌법적 원리로 강조실천되어온 군사영역과 치안영역은 엄격히 분․리한다는 점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 보면 전환복무된 전경이 대간첩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시위진압에 동원되는 것까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전투경찰대설치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소수의견은 전투경찰순경은 국방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군현역병으로 입영한 자 중에서 전투경찰대로 전임되는 자이고 그 임무는 구 전투경찰대설, 치법 제 조의 제항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대2 3 1간첩작전의 수행이므로 무장공비가 준동하는 사태가 없는 한 통상의 불법한 집회 및 시위의 진압 등 순수한 경찰업무는 그의 임무라고는 볼 수 없다 또한 국방의무라 함은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 보위해서 국가의 정치적 독립성과 영토의 완전성을 지키는 국토방위의 의무를 말하며 적극적으로, 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군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 의무병역법 향토예비군설치법 민방위( , , 기본법 전시근로동원법 등에 따라 현역군 조직은 , 물론 예비군 조직 민방위 조직 전시근로동원 조, , 직 등에 참여해서 국가의 안전과 국토방위를 위한 의무와 소극적으로는 국토방위를 위해서 불가피) , 하게 군작전명령에 복종하고 협력해야 하는 의무군작전상 불가피한 재산권의 수용사용제한( · · ,

거주이전의 제한 등을 수인할 의무 를 통칭하고 · )있을 뿐이고 전투경찰대로 전임되는 현역병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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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작전의 수행을 임무로 하고 있을 뿐이므로, 경찰의 순수한 치안업무인 집회 및 시위의 진압의 임무는 결코 국방의무에 포함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9)

헌법 제 조 제항에서는 대통령은 전시사77 1 ‘ ·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고 규정하.’여 군병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국가비상사태의 수습이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계엄을 선포하여 군병력으로써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현행 전투경찰제도는 비상계엄. 이 선포되지 않는 한 군인을 공공질서유지를 위해 출동시킬 수 없다고 하는 헌법 규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와 시위진압명령2.

전경들은 현역병으로 입영할 때 전경이 되어 집회나 시위 현장에 출동하여 이를 진압하는 일을 하게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단지 군인의 신분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입영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전투경찰순경으로 전환복무되고 국방의 의무와는 관계없, 는 시위진압을 하도록 명령받는다 이는 전경 본. 인의 정치적 견해나 양심에 반하여 시위진압명령

에 따라 시위진압을 해야함으로써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게 된다. 헌법 제 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19 ‘

가진다 라고 하여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 양심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유지와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위해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을 보장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인간의 존. 엄성 유지와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 헌법상의 기본권체계 내에서 양심의 자유의 기능은 개인적 인격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유지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 가 되고 인류의 진보와 발전에 불가결한 것이 되어 왔던 양심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외의 어떠한 정신적 자유보다 보장되어야 할 정신적 기본권이며 또한 민, 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발전을 최후에 담보하는 기본권이다10).

이처럼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시위진압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은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인 양심유지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영창징계와 벌칙3.

전투경찰대설치법 제 조에서는 전투경찰대 대5원에 대한 징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바 제항, 1에서는 전투경찰대의 대원중 경사경장 또는 ‘ ·순경전투경찰순경을 포함한다에 대한 징계는 파( )면해임정직감봉견책영창 및 근신으로 · · · · ·

9) 헌재 헌마 재판관 김문희 황도연 이재화 조승형의 반대의견 1995. 12. 28. 91 80 , , , 10) 헌재 선고 헌마 결정 2002. 4. 25, , 98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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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제항에서는 영창은 전투경찰대 또는 .’, 2 ‘함정 기타의 구금장에 구금함을 말하며 그 기간은

일 이내로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영15 .’ . 창 징계는 형사상의 제재인 구류처분죄인을 구치(소나 유치장에 가두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조치과 유사한 것으로서 개인의 인신구속이 징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영창의 징계권자는 전. 투경찰대의 장 및 이에 준하는 부대의 장이며 관할 징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이루어지고 있․다.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한 법관의 결정없이

지휘관의 명령에 의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영창제도는 세계인권선언 및 국제인권 규약에서 규B정한 자의적 구금의 금지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며, 나아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처분을 하는 경우에 법관의 결정 절차를 요구하는 우리 헌법정신에 위배될 소지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제 조에서는 이러한 영창 징계처분을 받, 6고 불복하고자 하여 소청징계처분이나 불리한 처(분을 당했을 때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을 한 )

때에도 이에 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는 당해 징계처분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법시행령 , 제 조에 따라 소청심사를 맡은 징계위원회는 구41성된 날로부터 일 이내에 소청에 대한 결정을 20하도록 하고 있어 최대 일인 영창징계에 있어서 15사실상 그에 대한 불복가능성을 차단시키고 있다. 그리고 영창 입창자에 대하여 가족 면회 시에 한하여 영창이 설치된 경찰기관의 장의 허가를 받아 면회하도록 하고 면회시간 및 장소 등은 허가하, 는 경찰기관의 장이 정하도록 하고 있는 것11)은 외부와의 소통권의 과도한 제한이다.

제 조 제항에서는 직무상 공격하여야 할 적9 2 ‘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공격하지 아니한 자는 무기 또는 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고 1 .’규정되어 있다 대간첩작전으로 투입되는 경우가 . 거의 없고 시위진압에 투입되고 있는 상태에서 , 전투경찰순경이 맞닥뜨려야 할 적은 바로 국‘ ’민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히 존재한다.

11) 전투경찰순경 등 관리규칙 제 조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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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경찰의 추억

도둑잡으라고 있는 경찰들이 나랏돈 도둑질해먹는 치들은 안잡고 생사람만 잡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박종철을 잡았고 강경대를 잡았. , 다 이들은 그나마 대학생이어서 우리 귀에 익숙. 한 이름들 일 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 름들이 경찰에게 맞아죽었다 그리 옛날 이야기만. 은 아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농민이 달걀을 던지. 면 얼마든지 맞겠다던 노무현이 청와대에 있을 때에도 붉은 흙에서 태어나 푸른 밭 일구다 검은 흙으로 돌아가야 할 농민 두 분이 환한 대낮에 여의도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서 맞아죽었다 세상이 .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천수를 누리다 곱게 가시는

분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스팔트에서 맞아죽는 것은 차마 사람으로 겪어야 죽음이 아니다 그 예. 의없는 죽임에 여러 인권단체들이 서울경찰청 기1동대 앞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의 퇴진과 기동대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었다 기자회견을 하. 는 사람들 뒤에서 맞을만 하니까 맞았지“ .” 여기가 중국이었으면 너흰 다 죽었어 라며 죽“ .”음을 조롱하는 기동대를 보면서 무언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인간성 같은 절망을 경험했었다 무엇이 . 그들의 마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그 치떨리도록 . 무섭던 폭력의 얼굴 경찰청장은 퇴진시켰지만 기. 동대를 해체시키지 못한 것이 이토록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을 그 당시도 알고 있었다.

용석 매체편집팀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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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촛불시위 그리고 어청수 경찰, 청장 그럴 줄은 몰랐다 저항도 하지 못하는 여. . 성을 땅바닥에 눕혀놓고 군화발로 짓밟을 줄 아, 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에 소화기를 분사할 줄 색, 소 탄 물대포를 사방에 낙인찍듯 뿌려댈 줄 몰랐다고들 한다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서 어느 정. 도는 예상했지만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며 세상이

년 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이야기한다 그런10 , 20 . 데 약간의 정도 차는 있겠지만 경찰들의 이런 행, 패는 저들에겐 친숙하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누군가에게만 일어났던 일들. 이 내 앞에 펼쳐지니 감당할 수 없을 따름인 것이다 이제는 서울시장보다도 더 유명한 어청수 경. 찰청장은 사실 폭력진압으로 악명이 높은 인사였다 참여정부 시절 과잉진압의 중심에 그가 있었. 다 유난히도 뒷머리에 부상당한 사람들이 많았. 던12) 대추리 싸움에서 그는 총 책임자인 경기지 방경찰청장이었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경찰폭력. 의 반인권성과 잔인성을 사람들은 년 촛불집2008회를 통해 새롭게 자각했다 이제 사람들은 어청. 수의 퇴진을 요구한다 물론 귀닫은 청와대와 이. 명박 대통령은 그럴 마음이 아직까지는 없어 보이고 뻔뻔한 어청수는 반성은 커녕 오히려 위풍당당이다 몇 몇 사람들은 어청수의 모가지뿐만 아니. 라 전의경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문제투성이 전의경제도

전의경제도의 문제점은 인권단체들과 일군의 법조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년대 초반 군사정권의 민주화 운동 탄압이 1990극시하던 시기에 현역 전의경들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동네 어르신들을 상대로 방패를 휘두를 수 . 없었던 사람 살인마 전두환이 머무는 백담사의 , 경비를 설 수 없었던 사람 강경대라는 대학생을 , 때려죽인 집단에 속해있을 수 없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전투경찰대설치법이 헌법에 . 위반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었다.13) 또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경찰들에게 맞아죽었을 때 인권단체들은 기동대, 의 해체를 요구했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는 년에 전의경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해 2005보고서14)를 내놓기도 했었다 인권단체들과 몇몇. 의 사람들이 중심이던 전의경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전의경제 폐지의 주장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전의경제도가 가지는 수많은 문제점들 예컨대 .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적인 부분이라던지 전의경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의 상황 등은 일단 논외로 하자 물론 앞의 것들만으로도 전의경제도 폐. 지의 이유는 하고 넘친다 전의경제도가 특히나 . 야만적인 이유는 그 폭력성이 너무나 잔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진압 후 내 안의 인. ‘간성이 하얗게 타버렸다는 이길준의 낮고 깊은 ’절규와 년 부안에서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2003

12) 도망가던 사람들을 방패로 찍어서 생긴 상처 13) 년 월 일 전투경찰대 해체를 요구하며 양심선언한 박석진씨는 헌법소원까지 갔으나 당시 헌법 1991 5 4 ,

재판소는 합헌 위헌 명으로 전투경찰대설치법의 존치를 인정5 414) 전의경의 인권실태 및 개선방안마련을 위한 기초조사 국가인권위 ,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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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역주민들을 진압하는 군화발로 참여한 경험이 소박하게나마 다른 이들을 배려하며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스스로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최재완15)씨의 밭은 외침을 들어보면 전의경제도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저 착하게 살고자 하. 는 젊은이들을 강제징집하고 부당한 명령에 대해, 서 거부하거나 비판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폭력의 도구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그들 중 아주 극소수는 이길준처럼 새로운 . 저항의 삶을 헤쳐나가지만 그 또한 쉬운 길은 아니며 대다수의 폭력을 내면화하는 사람들은 자신, 들이 휘두른 폭력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아로새기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전. 의경들을 미워하게 되고 전의경들은 폭력을 휘두, 른 스스로와 폭력에 맞선 우리를 미워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폭력이라는 매개로 관계를 맺어서 서. 로를 미워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공권. 력이라는 아주 지저분한 물리적이고 권력적인 힘을 전의경 개개인의 몸을 빌어서 사용하고 그 책임은 온전히 전의경들과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국가권력이 치졸함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

전의경대신 경찰기동대?

촛불집회에서 전의경들의 지나친 폭력진압이 연일 문제시 되면서 전의경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는 직업경찰관으로 구성된 경찰

기동대를 꾸려서 시위진압에 나서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된 경찰기동대의 훈련모습. 은 가히 독수리 오형제를 능가하는 몸짓이었다. 사람들은 경찰기동대의 매서운 눈빛과 포효가 어디를 향해있는지 알고 소름 돋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사실 전의경제도를 폐지하고 필요하다면 . 시위대처 경력을 훈련된 직업경찰들로만 운영하라는 것은 전의경제 폐지를 주장하는 쪽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훈련은 이런 훈련은 아니었. 으리라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집회 및 시위의 자. 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집회 상황에서 개개, 인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집회시 발, 생하는 어쩔 수 없는 시민들간의 이익의 대립은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갈 것인지 하지만 경찰기... 동대 창설의 목적은 집회와 시위의 보호가 아니라 더 강하고 더 폭력적으로 진압함으로써 공포를 확산시키고 그로 인해서 집회와 시위가 위축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실제 촛불집회에서 경찰기동대. 는 심각했던 전의경들의 폭력진압을 저리 가라 ( ) 할 정도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속에서 마구잡이 연행을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사복경찰끼리 서로를 . 연행하려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발생했다.

전의경제도가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제의 뿌리는 국가경찰제도, ‘ ’ 혹은 경찰의 국민에 대한 인식과 맥이 닿아있다. 즉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전의경제도는 백번 만번 폐지되어야 하지만 전의경제도가 폐지되고 직업경찰이 그 역할 대신한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기동대의 창.

15) 이길준 이경의 양심선언을 지지하는 저의경 출신 예비역 모임 회원인 최재완씨가 기자회견에서 낭송한 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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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그들의 활약 에서 보듯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생략된 채 시민들, 의 인권보장에 대한 악의적인 무시가 경찰들에게 익숙한 채 경찰의 존재이유에 대한 스스로의 고, 민이 없는 제도적 개편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밖에 안된다.

경찰국가를 꿈꾸시나요?

한국사회에선 경찰은 공포의 대상일지언정 외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폭력을 독점한 근대 국( ) . 畏敬

가는 경찰력을 사회의 핵심 요소로 인정해왔다. 경찰력을 통한 치안의 확보와 사법권을 통한 처벌의 작동 속에서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기강을 잡았던 것이다 즉 경찰은 우리 모두의 안정을 위한 . ‘담보자 공익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 ‘ ’ . 한국에서는 경찰은 물리적인 폭력은 독점하여 공포의 대상으로는 자리잡되 공익이나 사회 ‘ ’ ‘안전의 물신으로 외경의 대상이 돼지는 못했다’ . 경찰력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빈약한 포졸을 가진 조선은 유교적 온정주의에 기반해 무력보다는 백성들의 교화와 각종 무마책으로 년 넘게 유지500되었다 구한말 온갖 의병과 민란세력들이 무섭고. , 부자가 흉년에 세금을 면제해주고 가난한 이를 돕는 풍속은 부담스럽던 조선의 부호들에게 근대국가의 경찰력은 그들의 재산을 지켜줄 수호천사였을 것이다.

도적하나 잡지 못하게 부패한 무능한 국가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결국 소수의 부자들 재산 지

켜주려고 만들어진 경찰에 대해 조선의 민중들이 좋은 감정을 가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제국주의 .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군대와 경찰의 일상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으면서 경찰집단을 민중의 지팡이로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해방 . 후 친일파가 모조리 장악해버렸던 경찰16)을 달가워 하는 사람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육체에 . 각인된 경험은 근대국가의 경찰이 무엇을 지키기 위함인지 특히나 한국 현대사에서 경찰력이 누구, 로부터 누구를 지켜왔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런 태생적인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 경찰은 무섭고 공포스러운 대상일 뿐 결코 사회의 안전의 상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근대경찰국가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개인, 적으로는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그것을 논외로 하고라도 전의경제도 폐지에 있어서 시민사회와 국, 가모두 한국에서의 경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을 스스로 던져보지 않는다면 여전히 경찰은 그저 공포스럽기만 한 집단일 뿐이다 사회의 안전은 . 오히려 경찰들로부터 지켜져야 할 무엇이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국가경찰이 사회 안전의 상징이 . 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 지금과 같은 폭력의 화신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상처만을 입히는 존재로 지속된다면 경찰은 명백히 민주주의 반대편에 서게 될 것이다 전의경제. 도의 폐지는 국가폭력의 도구로서의 경찰력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폭력과 공포로 유지되는 사회질서가 아닌 참여와 배려를 통해 지켜지는 사회 안, 정에 대한 의미있는 시도들을 자극해야 할 것이

16)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에서는 빨치산들이 그래도 독립군이 조금은 남아있고 없는 집 자식들이 끌 『 』려가는 군대보다 친일파들이 장악한 경찰을 훨씬 적대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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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참고문헌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박노자 인물과사상사, , , 2005『 』전투경찰제도의 운영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김상균 법학연구 제 집, , 19 , 2005「 」

지역경찰활동과 로컬 거버넌스 박영미 , 「 」

경찰들 당신 자리로 돌아가시오 집시법 경찰관직무집행법 전의경 제도 어청수 경찰청장 퇴" , " , , , 「

진에대한 제언 토론회 자료집 인권단체 연석회의, , 2008 」

전의경제도의 실태와 문제 토론자료집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연대, ,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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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현역 의경으로 복무를 하다 특별외박을 나와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하려 합니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결정이 야기할 수많은 고통과 상처들 특히 제 부모. . , 님이 겪으실 일을 수없이 생각했고 그것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과정은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 도 저는 저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꽤나 거창하게 들리죠 하지만 제가 하려는 일은 엄청난 대의를 가. . 진 일이 아닙니다 단지 삶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가지고 저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 .

그렇습니다 제게 있어 저항은 주체성을 가지고 제 삶을 만들어나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 .  에 귀 기울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니고 자신의 삶의 색채를 더해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 , 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 억압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 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껏 억압들에 대해 순응하며 살아온 제 삶을 내던지며 저항을 통해 제 삶을 찾. 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길준 병역거부자 | + 성동구치소에 수감중

현역 의경으로 복무하던 이길준씨가 양심선언을 하면서 낭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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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월 지원을 통해 의무경찰로 입대했습니다 이런 결정에 대해 수많은 비난이 있을 수 있다2 , .  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의 제 결정과 관련해서 말이죠저는 기본적으로 징병제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 , 제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게 된다면 저나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에 복무하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 에 선택한 길은 의무경찰이었죠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고 그에 대해 무책임한 선택이란 비판이 있을 수도 . ,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퇴색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의경으로 있는 동안 제가 느낀 건 언제고 우리는 권력에 의해 원치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  니다 지난 몇달 간의 촛불집회를 진압대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촛불을 들며 많. . 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미국과의 소고기 재협상 요구 공기업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경쟁으로 내, , , •

모는 교육 제도에 대한 반대 같은 것들이 이런 목소리로 느껴지더군요 권력은 언제든지 우리의 삶을 위. 협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말이에요, .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모였고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기본적,  으로 비장한 투쟁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위한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삶을 위협할 수 있는 . 권력에게는 소통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또래의 젊은이들과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 시민들을 적개심을 가지고 맞붙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았죠저와 같은 친구들이 특별히 악랄해서 시민들. 을 적으로 여기고 진압해야 했을까요 모두가 저처럼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위해 년이라는 시간을 ? 2복무하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 누가 집회를 참여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 갔겠어요 하지만 권력은 시위대는 적이 아니라고 명심하라는 위선적인 말을 하며 실질적으로는 이미 우리. 에게 시민들을 적으로 상정하게 하고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힘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집니다 방패를 들고 시민들 앞에 설 때 폭력을 가하게 . ,  될 때 폭력을 유지시키는 일을 할 때 저는 감히 그런 명령을 거부할 생각을 못하고 제게 주어지는 상처, , 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에요 우리를 사지로 내모는 권력은 어디 숨. . 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암묵적으로 그저 적으로 상정된 시위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상처를 덮고 합리, 화를 시키는 거죠.

이런 나날이 반복되고 저는 제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압작전에 동원될 때도, . ,  기약 없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를 받을 때에도 아무 말 못하고 명령에 , 따라야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이 늘어나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따. 르는 건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제가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인가를 생각하면 더 괴로, 워지더군요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갓 스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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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폭력적인 억압의 도구가 되어도 괜찮은가요 그런 정당성은 누가 보장해주나요? ?

힘든 시간 동안 전 일단 어떤 식으로든 도피를 모색했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도피는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에 있든 제가 그곳에 남아 있는 한 결국 억압의 구조를 유지시키는데 일조할 것이. 고 그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일 뿐이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 데에 있어서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금 저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로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대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명령에 순응하고 가해지는 상처를 외면하면 스스. 로에게 이율배반적이고 껍데기 뿐인 인간으로 남을 거란 불안도 있었고요.

가해자로서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고민 속에 흐려져가는 삶을 재정립하는 방법은 저, ,  항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제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늘 타협 했을 뿐 자신 있게 저항한 적. 이 한번도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이번 기회는 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느껴졌습니다힘들고 괴로운 일. . 이 많겠지만 제가 원하는 저를 찾아간다는 것은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걱정하는 것처럼 전 스스로를 어지러운 정국의 희생양이나 순교자로 생각하지 않습니 다 그렇다고 분위기를 탄 영웅이 되고 싶은 건 생각도 없어요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어떤 이. . 득을 취할 생각도 없고요 전 단지 스스로에게 인정될 수 있고 타인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평범한 삶. , 을 살고 싶을 뿐이고 그런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에요, .

비장한 각오의 투쟁을 선언하고 싶진 않군요 전 저항의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억압의 . .  조건은 힘겹지만 그에 대항해 자신을 찾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무겁게 받아들일 일만은 아니에요 저도 . 노력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억압에 대해 저항해나가는 것도 제 작은 바람입니다.

제가 한 행동을 통해 저는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고 느끼고 아울러 폭력이 강요되고 반복되는 지,  금의 구조들도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상처를 받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고통 속에 . 밤을 지새우는 일만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끝으로 제 얘기를 듣고 저를 도와주시며 지금도 함께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못난 .  아들을 위해 상처를 감수하고 이해하고 제 편이 되어주시는 어려운 결정 내리신 부모님께 다시 한번 고, 맙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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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이길준을 처음 만난 건 월 일 그가 애초에 기독교회관에서 진압거부를 선언하기로 한 하루 전( ) 7 24 , 이었다촛불집회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관심이 많았고 그 집회를 진압하던 의경이 병. , , 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만나보기로 했다 파악의 첫인상은 매우 수줍음을 많이 , . 타는 청년이었다 한홍구 선생님을 비롯해서 함께 모인 병역거부자들 오리 여옥 등의 활동가들이 병역. , , 거부를 했을 때 예상되는 힘겨운 일들 그리고 특히 현 시점에서 병역거부를 하고 이슈화 했을 때 본인, 에게 집중되는 수많은 시선의 부담들에 대해서 애기해주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파악의 마, 음은 확고해 보였다.

다음 날 종로 가에서 파악과 조은 파악의 선배 그리고 내가 모여서 기독교회관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5 , , . 데 파악의 심정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아직 부모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편지글도 , . . 남기지 못했다고 해서 어떻게 할지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보도자료를 뿌리려고 한 시간은 다가오고, . , 파악은 일단 기독교회관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보도자료는 뿌려졌다 기독교회관에 도착해서 파악은 . . 아무래도 부모님께 말씀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그, . 런 소식을 듣고 그저 가만히 있겠는가 당연히 부모님은 한걸음에 달려오셨고 기자회견은 무산이 되었? , 고 이때부터 파악의 병역거부 입장과 신변보장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부모님을 설득해야, , 하는 길고 긴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파악의 의견이고 이대로 경찰에게 가면 이계덕 상경의 경우처럼 파악이 너무 힘들어질 수 , 있다는 것을 부모님께 설득해서 우선 신월동 성당으로 장소를 이동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나나 파악. 이나 부모님이 느꼈던 긴장감이란 전경차만 지나가도 가슴이 쿵쾅거리고파악을 가려야 하는 것이었다, . 금요일 오후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인지 택시도 잘 안 잡혀서 근처 삼성병원으로 가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그 때도 경찰차의 깜박이는 조명등만 봐도 파악은 건물의 구석으로 숨어들 정도였다 겨우 택시를 , . 잡고 나서야 긴장이 조금 풀렸고 신월동 성당에 도착했다, .

이길준과 함께하는 저항 고동 병역거부자 | 농성당시 언론담당+

P.e.a.c.e.E.s.s.a.y평화를 만드는 사람,혹은 평화로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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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동 본당 신부님은 내가 서가대연에서 집행부를 맡고 있을 때 지도신부님이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신부님이었다 그렇게 불쑥 찾아들어가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집행부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항상 . . , 신부님께는 신세만을 진다 암튼 신부님에 대한 나의 믿음대로 우리 일행을 잘 받아주셨다 그곳에서는 . . 기자회견을 할지 말지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또 부모님과 길게 상의를 해야 했다 파악과 함께하는 . 시간동안 거의 모든 부분은 시간의 압박 속에서 결정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그 속에서 내 . 속내를 많이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빨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부모님과 파악을 기다리는 게 참 힘, 들었다 파악이 느끼는 심적 부담감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파악과 부모님의 이야기를 차. ‘ ’ . 분하게 듣고 기다려주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기독교회관 호에서 강철민과 함께 했던 농성과 다르게 파악과 함께하는 농성에는 그동안 우리가 관계708를 맺어왔던 사람들 말고도 이른바 촛불시민들이 많이 참여해주었다 모두가 왕팬이 되었던 , . 82cook 언니들 다인아빠 처음엔 사복경찰로 오인을 받았던 체격 좋은 아저씨들 첫날 큰 소리가 나도록 했던 , , , 어느 여성분들이 기억난다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너무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농성이라 약. , 간의 혼란이 있었다 첫 날에는 파악이 있는 지하 요셉관의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제했었다. . 경찰의 침탈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날 밤부터 이후에는 통제 없이 자유롭게 화장실을 드나들 . 수 있도록 그냥 놔두었다 우리 안의 공포심이 어떻게 우리를 관료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 느낄 수 있. 었다 평화의 내공은 역시 쉽게 생기지 않는가보다. .

농성을 끝내야 한다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길고 서글픈 밤을 보내고 결정한 사, , 안에 대해 함께 해준 촛불시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또 걱정이었다 그동안 열성을 다해 농성. 에 함께 해준 이들이 농성을 이렇게 빨리 해산하고 기자회견으로 마무리 한다는 게 설득이 될 수 있을까 다행이 경수 씨가 설명을 차분하게 잘 해주었고 놀랍게도 대다수의 사람들도 파악과 우리들의 결? , 정을 잘 이해해주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동안의 촛불문화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지만 . ,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공동체 같은 믿음이 있었던 거 같다 매일 아침 마당 청소나 농성장 정리 등. , 을 도와주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고맙고 놀라웠다 파악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그들과 한 사람 씩 포옹. 을 하는데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몇 명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그 감정이 더했다, .. .

지금 파악은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월 말에 있었던 평화캠프 때 엽서를 써서 보냈다 처음 보내는 . 8 . 편지이다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지 빨리 나와서 끝나지 않은 농성의 진짜 뒤풀이를 함께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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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잠시 꿈을 꾸고 난 듯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농성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전화를 받았고 다음날 부. , 리나케 기자회견장으로 향했으니까요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전. , 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 역시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 의 연속이었지요 기자회견이 연기되고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는 지난한 시간들 그리고 성당에서 갑작스. , , 레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농성장을 떠올린다면 말이죠.

사실 농성을 하는 동안은 정말 농성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어떤 곳일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저 눈앞에 놓인 숙제가 너무 버거웠고 당장 오늘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 , 했으니까요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전날보다 더 많은 걱정이 밀려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고보니 . . 정작 길준씨와도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네요 정말 그렇게 무언가에 쫒기듯 시작하고 또 마무리지을 . ,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아니었나싶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뒤로한 채 이제서야 글을 쓴다는 핑계로 . 그 기억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막상 농성을 시작하기 전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가석방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해서 아니 가석방이라. , 는 핑계를 대며 촛불이라는 흐름에 열심히 동참하지 않았던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무언가 남의 . 일처럼 시작된 촛불에 의아해하기도 했고또 그러는 동안 제 역할을 찾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 . 대하지 않았던 시민들의 힘이 놀라웠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뉴스를 보고 신문기사를 읽으며 화를 내기도 . , 하고 또 혼자 답답해하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읽다가 덮어버린 책처럼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 . , 들에 적당한 생각들을 덧붙여서 어딘가에 치워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나는 출소한지 얼마 되지 않았. 고 생각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아 입으로는 적당히 미안한 마음을 이야, . , 기해야 했지요.

하지만 너무 적절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았을 때 말이죠 내일 기자회견을 하고 바로 농성을 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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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그리고 기억하기, 경수 병역거부자 | 농성당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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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할 거라는 말에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일은 다음 달에나 시작하기로 했고당장 특별한 ‘ . ,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정말 시간은 남아돌도록 많았으니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무언가 계기. , 가 필요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건 조금은 아기자기한 농성장. 의 모습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그려지는 그런 그림들 그런데 예상 밖의 사건사고들이 그. . ·렇게 일어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었죠.

지금 경찰들이 좀 수상해요 숫자도 늘어났고 이러다가 갑자기 쳐들어오는 건 아닐까요 농성을 시작한“ . ,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누군가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제게 그렇게 말을 하더군요 기자회견을 . . 시작하는 중에도 사복경찰들이 여럿 순식간에 안으로 진입하려 하던 터여서 모두 바짝 긴장을 하던 때였죠 설마 성당으로 들어올까 싶었지만 대통령이 바뀌니까 모든 것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걱정도 되었. 습니다 다행이었던 건 어디에선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사람들이 아름아름 모이기 시작했다는 거. 죠 정말 동네에서 곳곳에서 택시를 타고 성당 앞으로 모여 준 사람들이 수십이었습니다. .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하나 둘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가더라는 겁니다 제게 말을 걸어온 그 분도 . 꼭 그랬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알아서 보초를 서고 길을 지키고 청소를 하고 인터넷을 통해 . , . , 소식을 전하는 분들도 계셨지요저는 그런 것이 촛불의 힘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인터넷에 올라온 . . 기사를 읽으며 한편으론 가볍게 넘겨버리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어느 쪽도 사실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 할 거라 생각하기도 했었죠너무나 자화자찬식의 칭찬들 새로운 민주주의가 도래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 , 흥분들은 머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운동의 방식에 익숙해진 제 상상력 때문이. 었겠지요 그런데 정작 믿을 수 없었던 건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습니다. .

누군가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예수를 따르는 무리 수천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로 배를 채운 이야기 말입니다 처음에 누군가 와서 차와 음료를 나누어 주기 시작하더니 곧 라면 박스. 가 이곳저곳에서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직접 트럭을 끌고 와 맛있는 삼계탕을 만들어주. 시던 분도 계셨지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맛난 음식을 들고 끊임없이 방문해준 쿡 누님들은 허기뿐. . 82만 아니라 우리의 지친 마음까지 채워주었습니다 이런 농성은 처음이랄 만큼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었는. 데도 늘 음식은 모자람이 없었습니다현대 신학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신화적 설명을 제거하고 이렇. 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각지에서 예수를 따라온 무리 오천 중에는 각자의 음식은 챙겨온 사람들도 제법 . 있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없는 이들과 나눌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을 거라는 거죠그런데 . . 예수께서 기꺼이 아이의 떡 다섯 개와 물고리 두 마리를 모두를 위해 내어놓자 무리는 부끄러운 마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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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을 겁니다 예수께서 가르친 것은 바로 나눔이라고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나눔의 마. . . 음을 농성장에서 촛불의 무리 속에서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정작 사람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더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하. 기도 했습니다 참 이야기를 많이들 하더랬지요 사람들 속에 자연스레 앉아있다 보면 하나둘 허물없이 . .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 사회에 대한. , 이야기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까지 말입니다 그것도 참 진지한 표정으로요 엉뚱하다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 . . 힘들 이야기도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마치 그 안에서는 그것이 사실인양 말입니. 다 매시간 마다 경찰들이 곧 들이닥칠 거라는 이야기와 수만 가지 경찰들의 음모를 설명해주시. 는 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진실은 끊임없이 이야. , 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바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그 증거겠지요 그리고 모두가 . . 신문에서 보는 기사처럼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것들은 소위 선. ‘수들의 언어겠지요 그들의 말처럼 주류의 언어를 익힌 대책위도 그들의 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 . . 들이 촛불 속에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신문에 실리지도 또 뉴스에 나오지 않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 , , 기록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말입니다 그 안에는 우리네의 안타까움과 걱정 두려움 그리고 강. , , 한 믿음을 나누었겠지요 그래서 어쩌면 이길준 의경의 병역거부는 그들에게 사건이 아니라 공간이 아니. 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이었지만 그런 것들이 촛불을 끌어온 힘의 하나라는 생각을 . , 저는 하게 됩니다.

농성장에서 그런 생각들을 키워나가다가 왜 이길준 의경의 선택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호응을 얻었을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답은 촛불정국에서 전의경제도더 크게는 국가폭력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 , 상징적 행동이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 광장의 언어 속에서 길준씨의 행동과 선택. 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합니다 화려한 말잔치가 아니라 촛불을 든 이들처럼 그것이 하나의 행동. 이었기 때문에.

한달여가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가 그리워집니다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말하기가. . , 그들의 행동이 광장에서 다시금 살아났으면 하고 바래봅니다더불어 모두 담아내지 못했던 길준씨의 이. 야기들도 함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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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개월 여를 돌아보면 그 우여곡절을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기 무척 힘이 듭니다 촛불을 들기까지 4 .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고 또 촛불을 든 이후에도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깨닫기 어려운 적이 많, 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극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

촛불 집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저는 패배감과 절망에 쌓여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비록 정치가 무엇. 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이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명박씨의 방미 성과와 온갖 망국 정책이 발표되는 시점에는 최단시간 내에 신변을 정리해서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손에서 촛불이 . 빛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진보논객들의 대에게 희망을 걸어보자는 글. 10을 읽었을 때만 해도 정치 이념과 경제 논리를 별개로 생각하는 의 자식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386싶었지만 그건 저의 패배주의에서 비롯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 6촛불집회에 나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유치원 앞에 빼곡히 들어선 전경버스와 광. 장에 나온 수많은 촛불 시민들을 보고 아이 스스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하길 바랐습니다.

광장에 선 아이들을 보고 시민을 지키기 위해 길게 인간 띠를 만들던 예비군을 보고 진압 예고를 하며 , , 기자를 불러내던 경찰서장에게 노래해를 외치던 시민들을 보고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한 가슴은 결국 ' '스스로 닭장차에 올라타 자진연행을 당하던 시민들의 모습에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대포로 시민. 들을 유린하기 전 자진해서 전경 버스에 올라타며 담담하게 시대의 요구라면 받아들이겠다 말씀하시던 , 시민의 모습은 저에게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물대포가 터지던 밤 그 현장을 모니터로 보며 앉아있는 마음은 지옥이었습니다 방관자라는 죄책, . 감이 저를 괴롭히던 그 순간 물대포 뒤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주 오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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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마음을 위로해 준 한 젊은이에게 풀빵 회원 | 82COOK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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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됐습니다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는 이런 죄책감을 느끼기 싫다는 마음에 의료봉. 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촛불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레 전의경들과 최전방에서 마주서게 되었고촛불 시민과 그들 사이의 헤아릴 수 없는 간극, 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의경이 될 때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끌려온 젊은이들이며 . 저들 역시 이 시대의 희생양라는 애초의 생각은 도망치는 와중에 뒷통수를 가격당한 시민들 진압봉과 , 방패에 난타 당한 여성들을 치료하며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저들이 과연 이 시대의 희생양일까 지휘관. ? 마저 말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제 마음은 황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상자를 . 보호하며 제발 끌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면서 속으론 그들을 원망하고 욕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유발. 한 자들에 대한 증오가 현장의 그들에게 고스란히 투영됐습니다.

최악의 진압을 목격한 다음 날 첫 번째 시국미사가 열렸습니다 어떤 말씀을 듣게 될 지 감을 잡을 수 없, . 어 막막한 심정으로 시청 광장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많이 외로우셨죠 오랜 기다림 . " , ?" 끝에 들은 이 첫 마디에 단단히 굳어있던 제 마음이 녹았고 그 순간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습니다 그 . 동안 주변에서 들었던 온갖 야유와 비난으로 상처 받은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 만 아직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저 젊은이들은 우리를 증오. , , 하고 야만적으로 대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 길이 없어 또 다시 한 동안을 고민에 빠져 지냈습니? 다 까나리 액젓이 눈에 들어갔다고 호소하는 앳된 얼굴의 전경을 치료해 주며 이 젊은이는 좀 전의 대. 치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상자를 치료하는데 뛰어들어 진압봉 끝부분으로 의료봉사단 부상... , 자 가릴 것 없이 찍어대던 그 젊은이는 무엇 때문에 이성을 잃었을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월 말 한 젊은이가 고민에 빠진 저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방패 뒤7 , . 의 무표정한 그들 중에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심. ' '. 촛불의 다음 방향을 생각할 때 늘 뇌리를 떠나지 않던 양심과 인권이란 말이 화두로 다가오던 그 때' ' ' ' , 한 젊은이가 자신의 앞날을 걸고 양심을 지키겠다 선언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 . 그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습니다 자신도 우리와 같다고 그들 역시 피해자임을 역설하고 구. , 조적인 억압에 저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마지막 남은 가슴 속의 응어리가 풀렸습니다 방패 . . 뒤에 전경모 속에 숨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구나 그들도 똑같이 괴로웠구나 그의 선언이, , . 한 없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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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을 기르는 어미로서 그의 앞날이 얼마나 험난할 지 그의 . , 가족이 얼마나 애가 탈 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뜻이 같은 커뮤니티 회원들과 농. 성 중인 성당을 찾게 됐습니다 이길준씨와 그의 가족들 그를 지지하고 지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 , 도움이 되길 바라며 무작정 성당을 찾았습니다 한 회원의 제안으로 모두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자라는 . 결론을 얻고 십시일반 힘을 모아 저녁을 대접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향후 식사 제공 계획을 세우며 . 눈을 반짝이던 회원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도 잠시 바로 다음날 아침 자. , 진출두 결정을 전해 듣고 또 하염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비록 한 끼의 식사. , 한 그릇의 밥이었지만 그래도 한 끼나마 먹일 수 있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으며 이길준씨의 결정이 포기가 아닌만큼 눈물은 잠깐만 흘리자 다짐했습니다.

그후로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알음알음 들리는 이길준씨의 소식은 그간 그가 걸어 온 길도 또 앞으로 , 걸어야 할 길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무거울 . 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의 뒤에 그에게 고마워하고 믿고 있고 끝까지 지켜보겠다 다짐, , 하는 한 주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먼 훗날 그의 발자취가 이 시대에도 양심이 살아있었. 다는 증거로 기록되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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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복귀 거부 소식을 알았다 신월동성당을 찾아 그 아이를 직접 만나보. 기 전까지 나는 혹시 이 아이가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으로 변해 있지는 않, 을까하는 걱정을 했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이길준이라는 친구는 엉뚱하고 빈틈투성이에 때로는 철없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 을 당황케 만들던 아이였다 그 나름대로의 고집은 갖고 있는 녀석이지만 모질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 , 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아이가 이런 대형 사고를 터뜨렸으니 아마도 그를 아는 주변 사람. , 들 중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농성장에서 만나 본 길준이는 내가 아는 그 모습에서 그다지 변해있지 않았다 나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 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같이 방 안에 앉아서도 사소한 이야기들과 농담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이번 일과 관련한 내용들을 굳이 깊이 캐묻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사실 농성이 끝나. , 는 날까지도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친구가 성당에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바로 경찰서로 감옥, 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이 크게 실감이 나질 않았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농성장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매일 해가 지면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당 . , 마당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언론사에서의 인터뷰 요청도 계속해서 들어왔지만 찾아와서 묻는 내용들은 .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하려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고사리 손으로 그림을 그. . 려서 보내 온 어린 아이도 있었고 길준이를 위해 부적을 전해주는 할머니도 계셨다 밤을 새워 농성장, . 을 지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일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결. - 코 그렇게 할 수 없을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길준이의 농성을 바라보며 심통 이길준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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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기간 길준이가 혼자 무언가 고민을 하고 생각을 정리해 볼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는 점은 안타깝다 길준이를 도와주는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런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는 전혀 별개로 . , 길준이가 애초에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주변 상황에 휩쓸려 그 . 그림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으면 했다 물론 그것은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쉽. , 지 않은 일인 듯했다 이번 농성이 어느 정도나 길준이의 애초 생각과 일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 다만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현재의 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 차이가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생, 각할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째 되는 날 길준이는 농성장을 나왔다 사실 농성기간 중 크게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농5 . , 성이 길게 갈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했다 다만 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 5지 않느냐는 반대의 의견도 있었다 어느 개인의 힘으로 꾸려지고 이끌어져 온 농성이 아니었기에 몇 . , 명의 생각과 목소리로 바꿀 수 없는 당시의 상황이 있었다.

길준이는 성당을 나와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경찰서로 떠났다 일부러 애써 힘을 내어 웃음을 보. 이는 듯 했다 농성장에서도 유치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길 때마다 길준이는 불안해했고. , , , 이런 저런 고민들로 괴로워했다 사람들은 길준이에게 용감한 청년 의젓한 젊은이 혹은 이 시대의 살. , 아있는 양심이라는 식의 수식어를 붙여주었지만 그러한 단어들을 접할 때 내가 종종 느끼곤 하는 불편, 함은 사실 그런 길준이의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그를 근래에 보기 드문 . 용감하고 굳센 젊은이가 아니라 길거리에 널린 평범한 젊은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막, . 연히 생각하고 기대하는 이미지들이 연약한 젊은이한테 또 다른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그냥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철없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던진 질문이 종종 어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아이가 . 던지는 질문이란 아직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나 사람들의 삶에 관한 것일 수도 , 있고 어른들이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세상의 부끄러운 모습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 . 질문을 받은 어른들은 대개 너도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것이라며 아이에게 어떤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은 채 웃어 넘겨버리곤 한다.

나는 부대 복귀를 거부한 길준이를 보며 그러한 어른과 어린아이의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가 남다른 . 용기로 인한 것이 아닌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상식 수준에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진 것이- ,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그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어. 야 할 것이고 그가 잘못된 것을 제대로 지적한 것이라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적어도 용서나 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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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혹은 그의 의견에 찬성은 하지 않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 , 다는 정도의 이해심을 보여주어도 좋겠다.

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느냐는 이유로 무작정 혼을 내지만 않는다면 그의 저항은 그에게도 그와 다른 ,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을 무작정 칭찬 하지 않는다면. , 그가 사람들의 눈과 기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 자신이 궁금한 것을 세상에 질문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격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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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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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의정부교도소에서 출소 :: : 정재훈씨가 월에 의정부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7 .

효웅 여주교도소에서 출소 :: : 효웅씨가 월에 특별사면으로 출소하였습니다8 815 .

이길준 월 일에 심 차 심리공판:: : 10 31 1 2이길준시의 심 차 심리공판이 월 일 오후 시에 서울북부지원 호에서 있습니다1 2 10 31 3 101 .

이의정 경찰조사 후 재판 대기:: : 이의정씨가 경찰조사가 끝났고 영장실질심사에서 불구속 결정이 난 후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홍렬 청송 제 교도소로 이감:: : 2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안홍렬씨가 청송 제 교도소로 이감되었습니다2 .

현재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김치수 경기도 여주군 여주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30 1538 (469-600)

오승록경기도 여주군 여주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30 809 (469-600)

이길준서울시 송파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177 864 (138-709)

안홍렬경북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번지 청송제 교도소 번 _ 55-1 2 1144 (76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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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