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영광교회 10년 7월 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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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 www.GloryofGod.or.kr) 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외부교인 중에서 수련회 참석을 원하시는 분은 교회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2010 온가족 여름 수련회 주제 순종으로의 부르심 (벧전2:21) 일시 2010. 8. 1(주일) ~ 8. 4(수) 장소 양평창신수양관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새롭게 하실 주님의 은혜때문에.. 미자립 농촌교회 지역전도 일시 2010. 8. 8(주일) ~ 8. 12(목) 장소 충남 서천 심동교회 하나님의 큰일에 복음 전도와 기도로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2010. 7 통권 128호 하나님은 창조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질 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부터 당연하게 창조에 반 영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세계는 규칙, 일관성이 있어 서 아름다움과 추함, 정상과 비정상을 자연스럽게 구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가장 탁월 하게 가지고 있는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왜곡되었습니 다. 그래서 그 분별력이 가장 취약하게 드러나는 곳은 종 교의 영역입니다. 피조물 중 초월상식적인 것은 인간에 게만 있고, 그것을 경험하는 영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인데 그것을 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종교의 장을 만들고 몰상식한 것들을 심오한 것처럼 꾸미는 일을 하 는 것입니다. 초월상식적인 것을 상실했기 때문에 몰상 식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근본 적으로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 나타납니다. 먼저 성경을 해석할 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어에 집착 하는 일, 상징적 단어를 지나치게 유추하는 일, 과도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들을 무조건 신비롭게, 과장된 심오성을 추구하면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성경에 나오 는 상징을 현실의 사건이나 인물에 급진적으로 연결시켜 서 뭔가 서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 때문에 몰입하는 알레 고리적 관점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사이비 기독교, 이 단 신학이 그런 관점으로 만들어진 체계를 가집니다. 이 런 관점은 그나마 분별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문자 그대로의 분명한 명령이고 사건인데 상징이 나 비유로 여기고 도덕적 의미만 추출해 내는 일 등이 발 생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초월상식적인 부분들이 인간의 이성, 과학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됩 니다. 하나님이 초월적인 절대자로서 당연히 하실 수 있 는 일들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고 부정하는 자세가 이성 적이고 세련된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몰 상식을 추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은 초월성 에서 동력을 얻는데 그 초월상식적인 것들을 무시한 자 신들에게 종교심, 심오함이 결여된 것을 발견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버린 ‘오직 성경’을 위한 초월 상식적인 것을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데 그런 일은 자신 들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다른 것을 더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초월적으로 보이는 몰상식을 심오하 게 위장하여 그것으로 종교심을 고취시킵니다. 이것은 마치 이성적인 우월함을 보였던 자신들이 초월적 계시와 경험 앞에 겸손함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장일 뿐입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에게 상식과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언어적, 문학 적, 성경역사와 문화에 대한 상식이 있어야 합니다. 피조 세계와 역사를 통해 주신 일반계시를 정상적으로 인식하 는 사람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한 논리와, 일관된 주제,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 니다. 그 체계는 인격적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의한 체계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아무렇게나 순간적으 로 깨닫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적 앎, 깨달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질서와 일관성, 하나님의 주권 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성경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깨닫게 하시고, 납득 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초월적인 사역을 하십니다. 상 식적 노력 없이 깨달음을 초월상식적으로 얻으려 하면 신앙과 삶은 몰상식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그림 으로, 음성으로, 영상으로 주시지 않고 배우며 읽고 깨달 아야 하는 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앞 에서 우리가 갖출 수 있는 겸손한 성실로 최선을 다할 때 초월상식적인 도우심을 허락하십니다. 모든 지식의 근원 이시고 인격적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상식을 가 지고 성경을 대할 때, 신뢰와 순종은 초월상식적으로 있 성경에 대한 몰상식, 상식, 초월상식하늘영광 칼럼 추천도서 이 책은 세계적 기독교 지성이라 일컫는 존 스토트가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그는 2007년 4월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뒤 세인트바 나바 칼리지의 공동체에서 마지막 시간 을 보내며 친필로 ‘The Radical Disciple’ (원제)을 저술했다. 그가 말한 ‘급진적 제자도’의 특징은 세상을 거스 름(불순응),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성숙,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 단순함, 균형,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 죽음인데 그가 생각하는 온전한 제자상을 강렬하 게 그려내고 있다. 구순에 이른 나이에 도 그만의 명쾌함과 힘찬 열정, 그리고 죽음을 가까이 바라보는 영적 거인의 인 간적인 면모가 곳곳에 배어 있어, 읽는 이의 심금을 깊이 울린다. www.GloryofGod.or.kr 하늘영광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제자도, 변함없는 8가지 핵심 자질 존스토트 저 / IVP 주일학교 여름사역 안내 ●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주제 섬김으로 세상을 바꿔요! 일시 2010. 7. 22 (목) ~ 7. 23 (토) 장소 하늘영광교회 4층 유치부실 ● 유●초등부 여름성경학교 주제 섬김으로 세상을 바꿔요! 일시 2010. 7. 22 (목) ~ 7. 23 (토) 장소 하늘영광교회 2층 유·초등부 ● 중●고등부 여름캠프 일시 2010. 7. 24 (주일) ~ 7. 26 (화) 장소 대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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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영광교회 10년 1월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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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하늘영광교회 10년 7월 128호

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www.GloryofGod.or.kr)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외부교인 중에서 수련회 참석을 원하시는 분은 교회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떻게 구원의 일을 이루셨는지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하늘영광

교회에 등록한지 4년 반 정도 되었고, 그 이전에도 이미 모태신앙인으로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었습니다. 신앙이 확실한 가정 안

에서, 주일에 교회 안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좋은 환경 속에서 매우 착실하고 바르고 칭찬 받으며 자랐고, 대학 졸업과 동시

에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면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대학 때부터 한 가지 의문과 답답함이 있었는데,

‘신앙’이라는 세계가 내가 아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나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

나 사랑 같은 것도 몰랐고 그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정도가 전부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때 전도사님에게 여러 번 진지

하게 이 질문을 했었지만, 원래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다 그런 고민을 한다면서 그렇게 심각하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하셔서

그 마음을 접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2002년 26살 때, 한 목사님이 제가 다니던 교회에 부임하셔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지, 죄와 천국과 지옥,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대한 집중적인 설교를 하시면서 저의 흔들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성경에 쓰인 내용을 설교하

시는 분명한 진리는 맞는데, 그 내용을 제가 실제로 아는지, 그 내용을 실제로 소유했는지를 제 안에서 찾아보면 한 가지도, 아니

한 가지의 10%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적인 신앙의 세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제 마음을 시원하게 한 부분이었지만, 26년 간 쌓아온 저의 신앙생활과 교회 봉사,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들, 그 26년의 인생을 다

부인해야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에게 진실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결국 계속되

는 정죄감으로 인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는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교회를 안 갈 수는 없고, 천국에도 가야 되니까 그리스도인이 되

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노력들을 시작했었습니다. 새벽기도도 가고 경건서적을 읽고 한 시간이나 되는 설교들을 빠짐없

이 들었고 남들이 한다는 것, 목사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따라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고 토론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정작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않는 이상한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얻고자 한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인이 되어서 내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런 동기까지 살피게 되면 정말 괴로운 마음이 들었었습니

다.

그 와중에 결혼하고 이사하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2006년에 교회 바로 옆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와서

약 2년 이상, 저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계속 뭔가 신앙의 행위는 하고 있는데, 진실하게

따지면 저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2, 3년의 시간 동안 계속 파내려갔던

저의 내면에는 점점 더 건질 것이 없고, 선한 것이 없는 상태임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면서, 급기야 이런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

다. ‘하나님, 아무리 해도 저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 같아요. 이런 인간을 구원하시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이렇게 구원

을 얻으려는 노력과 선하게 해보려는 모든 시도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걸 절감하고 완전히 자포자기하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제

가 지옥에 가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포자기의 순간부터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찐하게 마음에 와 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 바

로 옆에 살아서 예배와 모임을 빠질 핑계가 없으니 꾸준히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그리고 2005년부터 매년 참석했던 수련회를 통

해서 자주, 꾸준히, 많은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이 아주 서서히 제 영혼 안에 어떤 일을 이루셨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지극한 사랑, 그리고 저의 피조물된 것을 조금씩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누리는 중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는 항상 좀 희미하고 예수님과 그분이 지셨던 십자가와 나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늘 불안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문제도

최근 1,2년 사이에 확연한 변화를 주셨습니다. 저의 모든 죄, 인간의 모든 죄가 하나님을 향한 죄라는 것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

고, 이 죄를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 예수님이 저의 구원과 인생의 문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에

서 이미 이루신 것, 그리고 부활로 저의 구원에 대해 확증하신 것, 이 모든 것을 매주 드리는 예배를 통해 더욱 분명하고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제가 추한 죄인임을 알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런 저를 위해 대신 자기 목숨을 버리셔서 저를

구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더더욱 크게 느껴져 감격하고 힘을 내게 됩니다.

정말 기독교의 복음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거라는 사실, 또 기쁜 소식인 복음이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평생 아무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가장 최고의 기쁜 소식이 된다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사실 지금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직장도 5년이나 쉬고 경

제적으로도 이전보다 여유 없이 아이들에 매여 지지고 볶으며 살지만, 편안하고 잘 나갔던, 연애하며 마냥 즐겁고 프리했던 26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 누리는 영혼의 안식과 확신이 제 인생에 가장 귀하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

다. 또 이전엔 성경에서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든지, 주님을 사랑한다든지 하는 표현이 다 과장법적인 표현이고 꼭 그렇게 돼야

하는 건 아니라고 여기며 지나쳤었는데, 이런 표현이 실제로 성도의 마음에 일어나는 사실임도 이제는 압니다.

저는... 말씀을 깨달으면 무릎을 치며 좋아했지만 실상은 그것으로 만족할 뿐, 순종하여 그 말씀에 나를 맞추기는 지독히도 싫

어했던 사람. 듣는 것은 감동스럽고 좋지만 내 본성은 끝까지 유지하고 내가 경험하며 살아온 방식은 절대 굽히지 않았던 사람.

간단히 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숭배하면서, 그런 나를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쓰려고 했던 무지하고

배은망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이고 은혜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저 같은 사람도 구원하기를 기뻐

하셔서, 30여 년간 오래 참으심으로 불신앙과 불순종과 비인격적인 태도로 똘똘 뭉친 저를 말씀으로 끊임없이 비추시고 기다리

시고, 또다시 비추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내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이젠 하나님을 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신 일입니다.

복음초청잔치에 오신 여러분들, 혹 이미 교회생활 하셨던 분도 계시겠고, 교회가 처음인 분도 계실 텐데, 여러분을 이 자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섭리가 우연이 아님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열망과 사랑으로 활활 불타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들어보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 우리 영혼의 영원한 세계,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자녀 됨을 누리

는 자유와 죄사함의 기쁨,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생명력을 반드시 얻고 누리게 되실 겁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실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공지사항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 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 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도와 영적 대각성

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장로교회에서 담

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에 대한 사역의 부담을 가

지고 귀국하여 “하늘영광교회”를 개척, 담임하고 있다.

담임목사 Profile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신 일

2010 온가족 여름 수련회

주제 순종으로의 부르심 (벧전2:21)

일시 2010. 8. 1(주일) ~ 8. 4(수)

장소 양평창신수양관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새롭게 하실 주님의 은혜때문에..

미자립 농촌교회 지역전도

일시 2010. 8. 8(주일) ~ 8. 12(목)

장소 충남 서천 심동교회

하나님의 큰일에 복음 전도와 기도로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 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

발행일 2010년 7월 1일 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134-856

☎ 2296-1586(교회) / 070-7548-1586(사역자실)

2010. 7 통권 128호

하나님은 창조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질

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부터 당연하게 창조에 반

영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세계는 규칙, 일관성이 있어

서 아름다움과 추함, 정상과 비정상을 자연스럽게 구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가장 탁월

하게 가지고 있는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왜곡되었습니

다. 그래서 그 분별력이 가장 취약하게 드러나는 곳은 종

교의 영역입니다. 피조물 중 초월상식적인 것은 인간에

게만 있고, 그것을 경험하는 영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인데 그것을 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종교의 장을

만들고 몰상식한 것들을 심오한 것처럼 꾸미는 일을 하

는 것입니다. 초월상식적인 것을 상실했기 때문에 몰상

식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근본

적으로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 나타납니다.

먼저 성경을 해석할 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어에 집착

하는 일, 상징적 단어를 지나치게 유추하는 일, 과도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들을 무조건 신비롭게, 과장된 심오성을 추구하면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성경에 나오

는 상징을 현실의 사건이나 인물에 급진적으로 연결시켜

서 뭔가 서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 때문에 몰입하는 알레

고리적 관점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사이비 기독교, 이

단 신학이 그런 관점으로 만들어진 체계를 가집니다. 이

런 관점은 그나마 분별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문자 그대로의 분명한 명령이고 사건인데 상징이

나 비유로 여기고 도덕적 의미만 추출해 내는 일 등이 발

생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초월상식적인 부분들이 인간의

이성, 과학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됩

니다. 하나님이 초월적인 절대자로서 당연히 하실 수 있

는 일들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고 부정하는 자세가 이성

적이고 세련된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몰

상식을 추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은 초월성

에서 동력을 얻는데 그 초월상식적인 것들을 무시한 자

신들에게 종교심, 심오함이 결여된 것을 발견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버린 ‘오직 성경’을 위한 초월

상식적인 것을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데 그런 일은 자신

들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다른 것을 더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초월적으로 보이는 몰상식을 심오하

게 위장하여 그것으로 종교심을 고취시킵니다. 이것은

마치 이성적인 우월함을 보였던 자신들이 초월적 계시와

경험 앞에 겸손함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장일

뿐입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에게 상식과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언어적, 문학

적, 성경역사와 문화에 대한 상식이 있어야 합니다. 피조

세계와 역사를 통해 주신 일반계시를 정상적으로 인식하

는 사람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한 논리와, 일관된 주제,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

니다. 그 체계는 인격적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의한 체계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아무렇게나 순간적으

로 깨닫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적 앎, 깨달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질서와 일관성, 하나님의 주권

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성경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깨닫게 하시고, 납득

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초월적인 사역을 하십니다. 상

식적 노력 없이 깨달음을 초월상식적으로 얻으려 하면

신앙과 삶은 몰상식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그림

으로, 음성으로, 영상으로 주시지 않고 배우며 읽고 깨달

아야 하는 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앞

에서 우리가 갖출 수 있는 겸손한 성실로 최선을 다할 때

초월상식적인 도우심을 허락하십니다. 모든 지식의 근원

이시고 인격적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상식을 가

지고 성경을 대할 때, 신뢰와 순종은 초월상식적으로 있

“성경에 대한 몰상식, 상식, 초월상식”

●●하늘영광 칼럼

●●고백의 글

●●추천도서

이 책은 세계적 기독교 지성이라 일컫는

존 스토트가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그는 2007년

4월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뒤 세인트바

나바 칼리지의 공동체에서 마지막 시간

을 보 내 며 친 필 로 ‘The Radical

Disciple’(원제)을 저술했다. 그가 말한

‘급진적 제자도’의 특징은 세상을 거스

름(불순응),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성숙,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 단순함,

균형,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 죽음인데

그가 생각하는 온전한 제자상을 강렬하

게 그려내고 있다. 구순에 이른 나이에

도 그만의 명쾌함과 힘찬 열정, 그리고

죽음을 가까이 바라보는 영적 거인의 인

간적인 면모가 곳곳에 배어 있어, 읽는

이의 심금을 깊이 울린다.

www.GloryofGod.or.kr

하늘영광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제자도, 변함없는 8가지 핵심 자질

존스토트 저 / IVP

주일예배 오전 11:00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 오후 8:00

새벽기도(월~금) 오전 6:00

유치부 오전 9:00

교회학교 유·초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중·고등부 오전 9:00

집 회 청년부(토) 오후 5:00

예배시간 안내 (모임/집회)

임주영_2여선교

● 등록

이유선(성년부, 안산시) 강승실(청년부, 경기 광주시)

정한옥(1남선교회, 도곡동) 박태이(1남선교회, 암사동)

황기욱(2남선교회, 암사동) 이해령(2여선교회, 암사동)

송정아(1여선교회, 구리시) 안상예(1여선교회, 성내동)

● 성찬식

7월 4일 오후예배시 있습니다.

● 이사

임재근(암사동)

● 담임목사 동정

7. 5 ~16 성지순례

● 선교사를 위한 기도

일본 토가네 은총그리스도교회와 남택수 선교사 그리고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대중교통

지하철 천호역(5호선 3번 출구), 암사역(8호선 1번 출구)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하여 양지종합시장앞 하차

주일학교 여름사역 안내

●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주제 섬김으로 세상을 바꿔요!

일시 2010. 7. 22 (목) ~ 7. 23 (토)

장소 하늘영광교회 4층 유치부실

● 유●초등부 여름성경학교

주제 섬김으로 세상을 바꿔요!

일시 2010. 7. 22 (목) ~ 7. 23 (토)

장소 하늘영광교회 2층 유·초등부

● 중●고등부 여름캠프

일시 2010. 7. 24 (주일) ~ 7. 26 (화)

장소 대부도

04 Confession Glory of God

Page 2: 하늘영광교회 10년 7월 128호

5년 전 하나님께서 저 개인에게 일본에서 임하셨

던 은혜를 생각해보며 또 지금 홍콩에서 임하고 계

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지혜와 그의 인도하심은 너무 놀라워서 감사하

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 수련회 때... 죄의 깊은 낙망과 죄를 사랑함

과 그래서 죄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우매하고 어

리석은 자신을 회개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가지

고 내려온 것을 기억합니다.

처음에 작은 죄 하나였는데, 그 죄가 그대로 방치

되자 점점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자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싶고 외식하며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죄는 그런 무서

운 힘을 가진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저를 하나

님께서 자신의 어떠하심을 따라 다시 저에게, 아무

말 할 것 없는 저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도

예기치 않게, 바랄 수 없는 중에 그렇게 주셨기 때문

에 저는 정말 하나님께 빚진 자가 됩니다. 그것은 제

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난 열심이 그렇게 은혜로 오신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알 수 없었던 그분의 마음이 지금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

기서 무엇을 눈에 띄게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주님의 마음을 제게 더 주시기를, 그 마음을 품

기를 소망하고 기도할 따름입니다.

지금은 몸이 떨어져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은 늘

하늘영광교회 성도님들과 목사님께 가 있습니다. 매

번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수련회를 참석할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좋습니다. 만약 수련회가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성도님이 계시다면, 그분

은 꼭 그 자리에 참석하셔야 할 분입니다. 집중적으

로 은혜를 주시는 그 자리. 은혜를 사모하고 나아오

는 자를 하나님은 절대 거저 보내시지 않습니다. 오

히려 그러한 자를 찾으십니다. 진리가 진리로, 절대

로 혼합되지 않고 타협할 수 없는 진리가 선포되는

자리에 계시고, 그것을 사모하는 여러분이 부럽습니

다.

이번 수련회는 준비된 마음으로 가고 싶습니다.

더 하나님을 알고 싶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을 가슴

에 새겨서 내려오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께 압도되어서 그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자 나

아오는 자리를 소망해 봅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제가 하나님 앞에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루하루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해주시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다시 눈으로

볼 날을 소망하고 기대해 봅니다.

하늘영광교회를 주안에서 사랑합니다.

본문의 배경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내용이 참 재밌습니다. 우리는 길에 대해 굉장히 익숙해 있습니

다. 차를 가지고 가더라도 길 위를 달려야 하고 산에 가더라도 길

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걷든지 차를 타든지 길을 따라서 가

기 때문에 ‘길’이라는 개념에 굉장히 익숙해 있습니다. 그래서

길이 없다거나 길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 사전에 거의 없는 일입

니다. 우리 삶의 경험 세계에서 길이 없다거나 길을 잃는 것은 굉

장히 끔찍한 일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일

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바로 그 중대한 내용을 자기에게 적용하

셔서 “나는 길이다. I amtheWay.”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배경

을 살펴봐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13장 후반부에서 유다가 자신

을 배신해서 팔 것을 언급하신 뒤에 육신적으로 제자들을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작별을 하는 분위기입니다. 오랫

동안 같이 동고동락하며 사랑하고 교제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바로 그 상황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나서 더 이상 지금처럼 함께 계

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을 때 이들은 굉장히 당황하게 됩니

다. 예수님은 그것을 간파하시고 14장 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

심하지 말라”고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 이전에 베드로가 먼저 끼어들었습니다. 항

상 생각보다 말이 더 빠른 베드로는 근심과 불안 속에서 참지

못하고 곧바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36절에 “주여 어디로 가십

니까?”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고 하시

자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습니까?(왜 안 됩니까?)”라고 하면서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막상 현실 가운데 부딪힐 때 갖는 인간의

연약함을 암시하는 것이면서, 주님을 따라 가는 그 길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갈 수 없으며,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던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주님 앞에서 부족함과 결핍이 드러나고 마음에 변덕

이 일어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

를 붙드시고 자신이 길이 되셔서 그분에 의해서만 가게 하신다

는 것을 암시해 주는 배경적인 내용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여

러분 스스로 믿음을 지켰습니까? 자기 결심으로 지켰습니까? 여

러분 중에는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

지력이 믿음을 갖게 했습니까? 신앙은 내 힘으로 지켜지지 않습

니다. 넘어지는 것이 빈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말을 앞세우기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길이신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된다는 것입

니다.

근심하지 말고 나를 신뢰하라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마지막이라는 생각 속에서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미래에 대해 특히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예수

님은 하나님과 그분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아니 떠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신

뢰하라? 답답하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 감각이 예

민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이지? 지금 같이 있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떠나겠다며 우리를 당황케 만들어 놓고 그분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시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너무 비현실적이다.’라고 여길 수

도 있습니다. 지금 앞이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좀 더

구체적이고 시원한 답, 그야말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시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를 신뢰하라.” 이렇게 말씀하시니 말입

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막막한 상황과 현실로 우리들의 판단이 흐

려지고 공황상태가 될 때, 또 마음의 감정이 복잡해질 때, 눈에 보이

는 게 다 싫고 뒤집어지고, 그렇게 좋았던 것, 당장 하겠다던 것도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크게 동요될 때 일차

적으로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현실적으로 여겨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거처를 예비하시는 예수님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덧붙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

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한 후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

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현재 제자들의 근심을 궁극적으로 해결

하시겠다는 대답을 해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것은 분명히 미래를 불안케 하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신

뢰하라고 하시면서 확고한 미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가장 일반

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험입니까? 연금입니까? 그것이

있으면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됩니까? 아마도 제자들 역시 그런 식

으로 예수님이 계속 같이 계시면서 안정을 보장하는 뭔가를 이루어

주시길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떠난다고 하시면서

생뚱맞게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신다고 하니 당황한 것입니다. 그러

나 잘 생각해 보면 주님은 여기서 아주 중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

다. 그것은 우리들의 영원한 안정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하늘의 거

처, 현재 안정의 연속선상에서 계속 누리게 될 영원한 안정, 즉 미래

가 확고히 보장되는 것을 예비하러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예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

자신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래를 보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뒤이어 14장 4절에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

가 아느니라.”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도마가 탁 끼

어들었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

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의 이 같은 반응은 예배당

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설교자가 열심히 설교를 해도 ‘도대체 저

양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모르겠다.’ 고 하는 사람들을 생각

나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도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

꾸 자기 관점이나 자기 욕심, 욕구, 자기의 경험과 이해 차원에서 듣

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관점에서 듣기 때문에 못 알아듣습니

다.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거나 초점을 놓쳐도 도마의 이런 식

의 표현과 태도는 똑똑해 보입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어도 똑똑하게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현실적인 차원에서

대답을 하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본문

의 도마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여기 14장 1절부터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않을 수 있

는 열쇠로서 언급하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여

러분! 우리들은 현실 속에서 답답할 때, 도마와 같은 상황에서 답을

찾을 때 의외로 하나님을 전제한다면서 한쪽에 제쳐 놓고 이야기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하

나님입니다. 결국 신뢰라고 하는 것이 답이 되겠습니다만 궁극적인

열쇠는 하나님입니다. 계속되는 내용을 보면 미래를 보장하는 주체

가 누구인지를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의 주어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고 내

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고 나 있는 곳에 있게 하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미래의 보장으

로서 하늘의 거처를 예비하시고 자신이 영접하여 이끄시겠다는 것

입니다. 이 모든 것의 주도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미래에 대한

확고한 보장과 과정, 그 모든 것의 주도자는 주님이십니다. 결국 우

리 주님을 신뢰하면 현재의 근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

다.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이미 얻은 것으로부터 시

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사는 것이며, 이 영생에 영구성이

있으므로 이 세상에서 칠십을 살든 팔십을 살든 그것이 문제되지

않고 이후까지 지속성을 갖는 미래적인 전망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잠언 16장에서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굉장히 재밌어 보이

고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길을 가면 좋겠구나. 이 길

로 가면 성공할 거야.’ 판단해도 어떤 길은 생명이 아닌 사망의 길

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없이 가는 길은 아무리 바르게 보여

도 사망의 길입니다. 하나님 빼고 가는 길은 반드시 사망의 길입니

다. 그런 길이 우리의 시야에 얼마나 많습니까?

본문은 생명으로 가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

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불안과 근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길, 생명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그 길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합니

다. 그렇지 않고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피해 간다면 결국 그는 길

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을 잃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고 인생

의 방향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

의 길이 되셔서 인생의 방황과 혼란 가운데서 생명으로 인도하셔

서 우리를 영원한 목적지, 우리의 영혼이 이르러야 할 목적지에 이

르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길 되신 주님을 이런 사실 때문에 전적으로 신

뢰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도 그를 신뢰하며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분! 인생의 길을 잃으셨습니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막막

하십니까? 미래가 막막해서 길을 잃은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십니까? 감정이 격동하며 성질이 나고 감정을 이기지 못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자처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습니까? 혹시 판단이 서지 않아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될

지 몰라 길 잃은 자와 같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존재와 삶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는 것입니다. 현실의 답답함에서 눈을 떼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기독교 신앙은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닙니

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독교 신앙만큼 현실적인 종

교는 없습니다. 단지 그 현실 속에 내가 답답하다고 성질을 내거

나 내 방식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살 뿐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길이다. 너희를

위한 길이다. 네가 어디를 가는지 길을 찾지 못하고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곧 길이다. 생명으로 가는 길이며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며 너의 감정의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이며 판

단의 갈림길에 섰을 때 명확한 길을 제시하는 길이다.” 그는 우리

를 위해서 확실한 미래를 예비하시고 안내하시는 길입니다. 여러

분이 붙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은

현재의 우리 인생 여정의 길이시며 궁극적인 생명으로 안내하는

길이십니다. 그 주님을 진실로 신뢰하십시오.

전문의 1/3분량으로 축소편집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2003년 너무나도 보채던 큰 아이와 둘이 갔던 첫

번째 수련회, 4개월 된 둘째 아이와 온 가족이 함께

갔던 두 번째 수련회, 시부모님과 함께 했던 세 번째

수련회, 셋째 아이를 난 후 교회 옆으로 이사 와서

갔던 네 번째 수련회, 영덕으로 이사한 후 ‘광야의

복’이란 주제 말씀이 생생했던 다섯 번째 수련회,

다시 서울로 이사하여 교회와 지체가 무엇인가를 깨

닫고 갔던 여섯 번째 수련회, 중국 상해 발령을 받고

준비시간을 가지면서 갔던 일곱 번째 수련회...

그리고 지금 중국 상해에서 꼭 갈 수 있기를 갈망

하며 기도하고 있는 여덟 번째 수련회에 이르렀습니

다. 매 수련회마다 각자의 영혼에게 주시는 부요한

말씀과 그 말씀 안에서 나눴던 풍성한 교제를 사모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내일도, 그 이후에도 현재 누

리는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소

중히 여기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지난 5월,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 한국을 다녀

오면서 새벽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금요예배 그

리고 지체와의 교제 등 이런 일상의 삶이 얼마나 귀

한지... 그 소중함을 깨닫고 왔습니다. 작년에 일본

으로 간 한 자매가 수련회를 그토록 오고 싶었지만

올 수 없어서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또 외국에 사

는 한 자매는 매년 이 여름수련회를 얼마나 기다리

며 살아가는지 이제는 그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반복적

인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오늘이 내일과 같을 수 없

으며 오늘 만나는 이들을 내일 만난다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 곳을 떠나온 것이 그 증거이

며, 또 이곳 이민사회에서는 이별과 만남이 너무나

잦아 그 말을 더욱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그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오늘이라는 날에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그 받은 은혜의 복음

을 전하지 않으면 또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알고 소유하게 하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현재 은혜의 중심에 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수

련회를 비롯하여 현재 어쩌면 부담으로 여겨지는 모

든 시간을 우리는 아직도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 편에서의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 은혜의 중심에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2010년 수련회를 사모하며, 갈망하며...

우리의 길이신주님1

●●에고 에이미의 은혜 8 ●● 고백의 글

●●고백의 글

박순용 담임목사

김은경_2여선교,중국

한희명_1여선교,홍콩

Glory of God 03Confession02 Preaching Glory of God

황기욱·이해령(2남·여선교)안상예(1여선교) 강승실(청년부)박태이(1남선교)송정아(1여선교) 이유선(성년부)정한옥(1남선교)

●●새가족

Page 3: 하늘영광교회 10년 7월 128호

5년 전 하나님께서 저 개인에게 일본에서 임하셨

던 은혜를 생각해보며 또 지금 홍콩에서 임하고 계

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지혜와 그의 인도하심은 너무 놀라워서 감사하

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 수련회 때... 죄의 깊은 낙망과 죄를 사랑함

과 그래서 죄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우매하고 어

리석은 자신을 회개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가지

고 내려온 것을 기억합니다.

처음에 작은 죄 하나였는데, 그 죄가 그대로 방치

되자 점점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자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싶고 외식하며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죄는 그런 무서

운 힘을 가진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저를 하나

님께서 자신의 어떠하심을 따라 다시 저에게, 아무

말 할 것 없는 저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도

예기치 않게, 바랄 수 없는 중에 그렇게 주셨기 때문

에 저는 정말 하나님께 빚진 자가 됩니다. 그것은 제

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난 열심이 그렇게 은혜로 오신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알 수 없었던 그분의 마음이 지금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

기서 무엇을 눈에 띄게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주님의 마음을 제게 더 주시기를, 그 마음을 품

기를 소망하고 기도할 따름입니다.

지금은 몸이 떨어져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은 늘

하늘영광교회 성도님들과 목사님께 가 있습니다. 매

번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수련회를 참석할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좋습니다. 만약 수련회가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성도님이 계시다면, 그분

은 꼭 그 자리에 참석하셔야 할 분입니다. 집중적으

로 은혜를 주시는 그 자리. 은혜를 사모하고 나아오

는 자를 하나님은 절대 거저 보내시지 않습니다. 오

히려 그러한 자를 찾으십니다. 진리가 진리로, 절대

로 혼합되지 않고 타협할 수 없는 진리가 선포되는

자리에 계시고, 그것을 사모하는 여러분이 부럽습니

다.

이번 수련회는 준비된 마음으로 가고 싶습니다.

더 하나님을 알고 싶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을 가슴

에 새겨서 내려오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께 압도되어서 그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자 나

아오는 자리를 소망해 봅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제가 하나님 앞에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루하루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해주시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다시 눈으로

볼 날을 소망하고 기대해 봅니다.

하늘영광교회를 주안에서 사랑합니다.

본문의 배경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내용이 참 재밌습니다. 우리는 길에 대해 굉장히 익숙해 있습니

다. 차를 가지고 가더라도 길 위를 달려야 하고 산에 가더라도 길

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걷든지 차를 타든지 길을 따라서 가

기 때문에 ‘길’이라는 개념에 굉장히 익숙해 있습니다. 그래서

길이 없다거나 길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 사전에 거의 없는 일입

니다. 우리 삶의 경험 세계에서 길이 없다거나 길을 잃는 것은 굉

장히 끔찍한 일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일

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바로 그 중대한 내용을 자기에게 적용하

셔서 “나는 길이다. I amtheWay.”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배경

을 살펴봐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13장 후반부에서 유다가 자신

을 배신해서 팔 것을 언급하신 뒤에 육신적으로 제자들을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작별을 하는 분위기입니다. 오랫

동안 같이 동고동락하며 사랑하고 교제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바로 그 상황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나서 더 이상 지금처럼 함께 계

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을 때 이들은 굉장히 당황하게 됩니

다. 예수님은 그것을 간파하시고 14장 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

심하지 말라”고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 이전에 베드로가 먼저 끼어들었습니다. 항

상 생각보다 말이 더 빠른 베드로는 근심과 불안 속에서 참지

못하고 곧바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36절에 “주여 어디로 가십

니까?”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고 하시

자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습니까?(왜 안 됩니까?)”라고 하면서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막상 현실 가운데 부딪힐 때 갖는 인간의

연약함을 암시하는 것이면서, 주님을 따라 가는 그 길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갈 수 없으며,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던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주님 앞에서 부족함과 결핍이 드러나고 마음에 변덕

이 일어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

를 붙드시고 자신이 길이 되셔서 그분에 의해서만 가게 하신다

는 것을 암시해 주는 배경적인 내용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여

러분 스스로 믿음을 지켰습니까? 자기 결심으로 지켰습니까? 여

러분 중에는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

지력이 믿음을 갖게 했습니까? 신앙은 내 힘으로 지켜지지 않습

니다. 넘어지는 것이 빈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말을 앞세우기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길이신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된다는 것입

니다.

근심하지 말고 나를 신뢰하라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마지막이라는 생각 속에서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미래에 대해 특히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예수

님은 하나님과 그분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아니 떠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신

뢰하라? 답답하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 감각이 예

민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이지? 지금 같이 있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떠나겠다며 우리를 당황케 만들어 놓고 그분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시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너무 비현실적이다.’라고 여길 수

도 있습니다. 지금 앞이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좀 더

구체적이고 시원한 답, 그야말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시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를 신뢰하라.” 이렇게 말씀하시니 말입

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막막한 상황과 현실로 우리들의 판단이 흐

려지고 공황상태가 될 때, 또 마음의 감정이 복잡해질 때, 눈에 보이

는 게 다 싫고 뒤집어지고, 그렇게 좋았던 것, 당장 하겠다던 것도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크게 동요될 때 일차

적으로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현실적으로 여겨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거처를 예비하시는 예수님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덧붙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

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한 후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

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현재 제자들의 근심을 궁극적으로 해결

하시겠다는 대답을 해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것은 분명히 미래를 불안케 하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신

뢰하라고 하시면서 확고한 미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가장 일반

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험입니까? 연금입니까? 그것이

있으면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됩니까? 아마도 제자들 역시 그런 식

으로 예수님이 계속 같이 계시면서 안정을 보장하는 뭔가를 이루어

주시길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떠난다고 하시면서

생뚱맞게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신다고 하니 당황한 것입니다. 그러

나 잘 생각해 보면 주님은 여기서 아주 중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

다. 그것은 우리들의 영원한 안정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하늘의 거

처, 현재 안정의 연속선상에서 계속 누리게 될 영원한 안정, 즉 미래

가 확고히 보장되는 것을 예비하러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예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

자신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래를 보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뒤이어 14장 4절에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

가 아느니라.”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도마가 탁 끼

어들었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

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의 이 같은 반응은 예배당

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설교자가 열심히 설교를 해도 ‘도대체 저

양반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모르겠다.’ 고 하는 사람들을 생각

나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도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

꾸 자기 관점이나 자기 욕심, 욕구, 자기의 경험과 이해 차원에서 듣

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관점에서 듣기 때문에 못 알아듣습니

다.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거나 초점을 놓쳐도 도마의 이런 식

의 표현과 태도는 똑똑해 보입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어도 똑똑하게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현실적인 차원에서

대답을 하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본문

의 도마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여기 14장 1절부터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않을 수 있

는 열쇠로서 언급하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여

러분! 우리들은 현실 속에서 답답할 때, 도마와 같은 상황에서 답을

찾을 때 의외로 하나님을 전제한다면서 한쪽에 제쳐 놓고 이야기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하

나님입니다. 결국 신뢰라고 하는 것이 답이 되겠습니다만 궁극적인

열쇠는 하나님입니다. 계속되는 내용을 보면 미래를 보장하는 주체

가 누구인지를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의 주어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고 내

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고 나 있는 곳에 있게 하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미래의 보장으

로서 하늘의 거처를 예비하시고 자신이 영접하여 이끄시겠다는 것

입니다. 이 모든 것의 주도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미래에 대한

확고한 보장과 과정, 그 모든 것의 주도자는 주님이십니다. 결국 우

리 주님을 신뢰하면 현재의 근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

다.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이미 얻은 것으로부터 시

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사는 것이며, 이 영생에 영구성이

있으므로 이 세상에서 칠십을 살든 팔십을 살든 그것이 문제되지

않고 이후까지 지속성을 갖는 미래적인 전망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잠언 16장에서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굉장히 재밌어 보이

고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길을 가면 좋겠구나. 이 길

로 가면 성공할 거야.’ 판단해도 어떤 길은 생명이 아닌 사망의 길

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없이 가는 길은 아무리 바르게 보여

도 사망의 길입니다. 하나님 빼고 가는 길은 반드시 사망의 길입니

다. 그런 길이 우리의 시야에 얼마나 많습니까?

본문은 생명으로 가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

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불안과 근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길, 생명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그 길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합니

다. 그렇지 않고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피해 간다면 결국 그는 길

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을 잃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고 인생

의 방향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

의 길이 되셔서 인생의 방황과 혼란 가운데서 생명으로 인도하셔

서 우리를 영원한 목적지, 우리의 영혼이 이르러야 할 목적지에 이

르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길 되신 주님을 이런 사실 때문에 전적으로 신

뢰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도 그를 신뢰하며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분! 인생의 길을 잃으셨습니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막막

하십니까? 미래가 막막해서 길을 잃은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십니까? 감정이 격동하며 성질이 나고 감정을 이기지 못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자처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습니까? 혹시 판단이 서지 않아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될

지 몰라 길 잃은 자와 같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존재와 삶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는 것입니다. 현실의 답답함에서 눈을 떼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기독교 신앙은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닙니

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독교 신앙만큼 현실적인 종

교는 없습니다. 단지 그 현실 속에 내가 답답하다고 성질을 내거

나 내 방식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살 뿐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길이다. 너희를

위한 길이다. 네가 어디를 가는지 길을 찾지 못하고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곧 길이다. 생명으로 가는 길이며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며 너의 감정의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이며 판

단의 갈림길에 섰을 때 명확한 길을 제시하는 길이다.” 그는 우리

를 위해서 확실한 미래를 예비하시고 안내하시는 길입니다. 여러

분이 붙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은

현재의 우리 인생 여정의 길이시며 궁극적인 생명으로 안내하는

길이십니다. 그 주님을 진실로 신뢰하십시오.

전문의 1/3분량으로 축소편집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2003년 너무나도 보채던 큰 아이와 둘이 갔던 첫

번째 수련회, 4개월 된 둘째 아이와 온 가족이 함께

갔던 두 번째 수련회, 시부모님과 함께 했던 세 번째

수련회, 셋째 아이를 난 후 교회 옆으로 이사 와서

갔던 네 번째 수련회, 영덕으로 이사한 후 ‘광야의

복’이란 주제 말씀이 생생했던 다섯 번째 수련회,

다시 서울로 이사하여 교회와 지체가 무엇인가를 깨

닫고 갔던 여섯 번째 수련회, 중국 상해 발령을 받고

준비시간을 가지면서 갔던 일곱 번째 수련회...

그리고 지금 중국 상해에서 꼭 갈 수 있기를 갈망

하며 기도하고 있는 여덟 번째 수련회에 이르렀습니

다. 매 수련회마다 각자의 영혼에게 주시는 부요한

말씀과 그 말씀 안에서 나눴던 풍성한 교제를 사모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내일도, 그 이후에도 현재 누

리는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소

중히 여기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지난 5월,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 한국을 다녀

오면서 새벽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금요예배 그

리고 지체와의 교제 등 이런 일상의 삶이 얼마나 귀

한지... 그 소중함을 깨닫고 왔습니다. 작년에 일본

으로 간 한 자매가 수련회를 그토록 오고 싶었지만

올 수 없어서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또 외국에 사

는 한 자매는 매년 이 여름수련회를 얼마나 기다리

며 살아가는지 이제는 그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반복적

인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오늘이 내일과 같을 수 없

으며 오늘 만나는 이들을 내일 만난다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 곳을 떠나온 것이 그 증거이

며, 또 이곳 이민사회에서는 이별과 만남이 너무나

잦아 그 말을 더욱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그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오늘이라는 날에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그 받은 은혜의 복음

을 전하지 않으면 또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알고 소유하게 하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현재 은혜의 중심에 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수

련회를 비롯하여 현재 어쩌면 부담으로 여겨지는 모

든 시간을 우리는 아직도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 편에서의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 은혜의 중심에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2010년 수련회를 사모하며, 갈망하며...

우리의 길이신주님1

●●에고 에이미의 은혜 8 ●● 고백의 글

●●고백의 글

박순용 담임목사

김은경_2여선교,중국

한희명_1여선교,홍콩

Glory of God 03Confession02 Preaching Glory of God

황기욱·이해령(2남·여선교)안상예(1여선교) 강승실(청년부)박태이(1남선교)송정아(1여선교) 이유선(성년부)정한옥(1남선교)

●●새가족

Page 4: 하늘영광교회 10년 7월 128호

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www.GloryofGod.or.kr)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외부교인 중에서 수련회 참석을 원하시는 분은 교회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떻게 구원의 일을 이루셨는지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하늘영광

교회에 등록한지 4년 반 정도 되었고, 그 이전에도 이미 모태신앙인으로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었습니다. 신앙이 확실한 가정 안

에서, 주일에 교회 안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좋은 환경 속에서 매우 착실하고 바르고 칭찬 받으며 자랐고, 대학 졸업과 동시

에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면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대학 때부터 한 가지 의문과 답답함이 있었는데,

‘신앙’이라는 세계가 내가 아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나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

나 사랑 같은 것도 몰랐고 그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정도가 전부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때 전도사님에게 여러 번 진지

하게 이 질문을 했었지만, 원래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다 그런 고민을 한다면서 그렇게 심각하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하셔서

그 마음을 접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2002년 26살 때, 한 목사님이 제가 다니던 교회에 부임하셔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지, 죄와 천국과 지옥,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대한 집중적인 설교를 하시면서 저의 흔들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성경에 쓰인 내용을 설교하

시는 분명한 진리는 맞는데, 그 내용을 제가 실제로 아는지, 그 내용을 실제로 소유했는지를 제 안에서 찾아보면 한 가지도, 아니

한 가지의 10%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적인 신앙의 세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제 마음을 시원하게 한 부분이었지만, 26년 간 쌓아온 저의 신앙생활과 교회 봉사,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들, 그 26년의 인생을 다

부인해야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에게 진실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결국 계속되

는 정죄감으로 인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는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교회를 안 갈 수는 없고, 천국에도 가야 되니까 그리스도인이 되

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노력들을 시작했었습니다. 새벽기도도 가고 경건서적을 읽고 한 시간이나 되는 설교들을 빠짐없

이 들었고 남들이 한다는 것, 목사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따라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고 토론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정작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않는 이상한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얻고자 한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인이 되어서 내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런 동기까지 살피게 되면 정말 괴로운 마음이 들었었습니

다.

그 와중에 결혼하고 이사하면서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2006년에 교회 바로 옆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와서

약 2년 이상, 저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계속 뭔가 신앙의 행위는 하고 있는데, 진실하게

따지면 저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2, 3년의 시간 동안 계속 파내려갔던

저의 내면에는 점점 더 건질 것이 없고, 선한 것이 없는 상태임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면서, 급기야 이런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

다. ‘하나님, 아무리 해도 저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 같아요. 이런 인간을 구원하시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이렇게 구원

을 얻으려는 노력과 선하게 해보려는 모든 시도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걸 절감하고 완전히 자포자기하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제

가 지옥에 가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포자기의 순간부터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찐하게 마음에 와 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 바

로 옆에 살아서 예배와 모임을 빠질 핑계가 없으니 꾸준히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그리고 2005년부터 매년 참석했던 수련회를 통

해서 자주, 꾸준히, 많은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이 아주 서서히 제 영혼 안에 어떤 일을 이루셨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지극한 사랑, 그리고 저의 피조물된 것을 조금씩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누리는 중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는 항상 좀 희미하고 예수님과 그분이 지셨던 십자가와 나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늘 불안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문제도

최근 1,2년 사이에 확연한 변화를 주셨습니다. 저의 모든 죄, 인간의 모든 죄가 하나님을 향한 죄라는 것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

고, 이 죄를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 예수님이 저의 구원과 인생의 문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에

서 이미 이루신 것, 그리고 부활로 저의 구원에 대해 확증하신 것, 이 모든 것을 매주 드리는 예배를 통해 더욱 분명하고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제가 추한 죄인임을 알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런 저를 위해 대신 자기 목숨을 버리셔서 저를

구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더더욱 크게 느껴져 감격하고 힘을 내게 됩니다.

정말 기독교의 복음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거라는 사실, 또 기쁜 소식인 복음이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평생 아무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가장 최고의 기쁜 소식이 된다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사실 지금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직장도 5년이나 쉬고 경

제적으로도 이전보다 여유 없이 아이들에 매여 지지고 볶으며 살지만, 편안하고 잘 나갔던, 연애하며 마냥 즐겁고 프리했던 26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 누리는 영혼의 안식과 확신이 제 인생에 가장 귀하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

다. 또 이전엔 성경에서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든지, 주님을 사랑한다든지 하는 표현이 다 과장법적인 표현이고 꼭 그렇게 돼야

하는 건 아니라고 여기며 지나쳤었는데, 이런 표현이 실제로 성도의 마음에 일어나는 사실임도 이제는 압니다.

저는... 말씀을 깨달으면 무릎을 치며 좋아했지만 실상은 그것으로 만족할 뿐, 순종하여 그 말씀에 나를 맞추기는 지독히도 싫

어했던 사람. 듣는 것은 감동스럽고 좋지만 내 본성은 끝까지 유지하고 내가 경험하며 살아온 방식은 절대 굽히지 않았던 사람.

간단히 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숭배하면서, 그런 나를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쓰려고 했던 무지하고

배은망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이고 은혜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저 같은 사람도 구원하기를 기뻐

하셔서, 30여 년간 오래 참으심으로 불신앙과 불순종과 비인격적인 태도로 똘똘 뭉친 저를 말씀으로 끊임없이 비추시고 기다리

시고, 또다시 비추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내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이젠 하나님을 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신 일입니다.

복음초청잔치에 오신 여러분들, 혹 이미 교회생활 하셨던 분도 계시겠고, 교회가 처음인 분도 계실 텐데, 여러분을 이 자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섭리가 우연이 아님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열망과 사랑으로 활활 불타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들어보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말씀, 우리 영혼의 영원한 세계,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자녀 됨을 누리

는 자유와 죄사함의 기쁨,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생명력을 반드시 얻고 누리게 되실 겁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실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공지사항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 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 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도와 영적 대각성

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장로교회에서 담

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에 대한 사역의 부담을 가

지고 귀국하여 “하늘영광교회”를 개척, 담임하고 있다.

담임목사 Profile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신 일

2010 온가족 여름 수련회

주제 순종으로의 부르심 (벧전2:21)

일시 2010. 8. 1(주일) ~ 8. 4(수)

장소 양평창신수양관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새롭게 하실 주님의 은혜때문에..

미자립 농촌교회 지역전도

일시 2010. 8. 8(주일) ~ 8. 12(목)

장소 충남 서천 심동교회

하나님의 큰일에 복음 전도와 기도로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 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

발행일 2010년 7월 1일 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134-856

☎ 2296-1586(교회) / 070-7548-1586(사역자실)

2010. 7 통권 128호

하나님은 창조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이 질

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부터 당연하게 창조에 반

영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세계는 규칙, 일관성이 있어

서 아름다움과 추함, 정상과 비정상을 자연스럽게 구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가장 탁월

하게 가지고 있는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왜곡되었습니

다. 그래서 그 분별력이 가장 취약하게 드러나는 곳은 종

교의 영역입니다. 피조물 중 초월상식적인 것은 인간에

게만 있고, 그것을 경험하는 영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인데 그것을 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종교의 장을

만들고 몰상식한 것들을 심오한 것처럼 꾸미는 일을 하

는 것입니다. 초월상식적인 것을 상실했기 때문에 몰상

식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근본

적으로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 나타납니다.

먼저 성경을 해석할 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어에 집착

하는 일, 상징적 단어를 지나치게 유추하는 일, 과도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들을 무조건 신비롭게, 과장된 심오성을 추구하면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성경에 나오

는 상징을 현실의 사건이나 인물에 급진적으로 연결시켜

서 뭔가 서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 때문에 몰입하는 알레

고리적 관점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사이비 기독교, 이

단 신학이 그런 관점으로 만들어진 체계를 가집니다. 이

런 관점은 그나마 분별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문자 그대로의 분명한 명령이고 사건인데 상징이

나 비유로 여기고 도덕적 의미만 추출해 내는 일 등이 발

생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초월상식적인 부분들이 인간의

이성, 과학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됩

니다. 하나님이 초월적인 절대자로서 당연히 하실 수 있

는 일들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고 부정하는 자세가 이성

적이고 세련된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몰

상식을 추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은 초월성

에서 동력을 얻는데 그 초월상식적인 것들을 무시한 자

신들에게 종교심, 심오함이 결여된 것을 발견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버린 ‘오직 성경’을 위한 초월

상식적인 것을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데 그런 일은 자신

들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다른 것을 더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초월적으로 보이는 몰상식을 심오하

게 위장하여 그것으로 종교심을 고취시킵니다. 이것은

마치 이성적인 우월함을 보였던 자신들이 초월적 계시와

경험 앞에 겸손함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장일

뿐입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에게 상식과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언어적, 문학

적, 성경역사와 문화에 대한 상식이 있어야 합니다. 피조

세계와 역사를 통해 주신 일반계시를 정상적으로 인식하

는 사람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한 논리와, 일관된 주제,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

니다. 그 체계는 인격적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의한 체계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아무렇게나 순간적으

로 깨닫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적 앎, 깨달음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질서와 일관성, 하나님의 주권

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성경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깨닫게 하시고, 납득

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초월적인 사역을 하십니다. 상

식적 노력 없이 깨달음을 초월상식적으로 얻으려 하면

신앙과 삶은 몰상식으로 갑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그림

으로, 음성으로, 영상으로 주시지 않고 배우며 읽고 깨달

아야 하는 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앞

에서 우리가 갖출 수 있는 겸손한 성실로 최선을 다할 때

초월상식적인 도우심을 허락하십니다. 모든 지식의 근원

이시고 인격적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상식을 가

지고 성경을 대할 때, 신뢰와 순종은 초월상식적으로 있

“성경에 대한 몰상식, 상식, 초월상식”

●●하늘영광 칼럼

●●고백의 글

●●추천도서

이 책은 세계적 기독교 지성이라 일컫는

존 스토트가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그는 2007년

4월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뒤 세인트바

나바 칼리지의 공동체에서 마지막 시간

을 보 내 며 친 필 로 ‘The Radical

Disciple’(원제)을 저술했다. 그가 말한

‘급진적 제자도’의 특징은 세상을 거스

름(불순응),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성숙,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 단순함,

균형,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 죽음인데

그가 생각하는 온전한 제자상을 강렬하

게 그려내고 있다. 구순에 이른 나이에

도 그만의 명쾌함과 힘찬 열정, 그리고

죽음을 가까이 바라보는 영적 거인의 인

간적인 면모가 곳곳에 배어 있어, 읽는

이의 심금을 깊이 울린다.

www.GloryofGod.or.kr

하늘영광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제자도, 변함없는 8가지 핵심 자질

존스토트 저 / IVP

주일예배 오전 11:00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 오후 8:00

새벽기도(월~금) 오전 6:00

유치부 오전 9:00

교회학교 유·초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중·고등부 오전 9:00

집 회 청년부(토) 오후 5:00

예배시간 안내 (모임/집회)

임주영_2여선교

● 등록

이유선(성년부, 안산시) 강승실(청년부, 경기 광주시)

정한옥(1남선교회, 도곡동) 박태이(1남선교회, 암사동)

황기욱(2남선교회, 암사동) 이해령(2여선교회, 암사동)

송정아(1여선교회, 구리시) 안상예(1여선교회, 성내동)

● 성찬식

7월 4일 오후예배시 있습니다.

● 이사

임재근(암사동)

● 담임목사 동정

7. 5 ~16 성지순례

● 선교사를 위한 기도

일본 토가네 은총그리스도교회와 남택수 선교사 그리고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대중교통

지하철 천호역(5호선 3번 출구), 암사역(8호선 1번 출구)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하여 양지종합시장앞 하차

주일학교 여름사역 안내

● 유치부 여름성경학교

주제 섬김으로 세상을 바꿔요!

일시 2010. 7. 22 (목) ~ 7. 23 (토)

장소 하늘영광교회 4층 유치부실

● 유●초등부 여름성경학교

주제 섬김으로 세상을 바꿔요!

일시 2010. 7. 22 (목) ~ 7. 23 (토)

장소 하늘영광교회 2층 유·초등부

● 중●고등부 여름캠프

일시 2010. 7. 24 (주일) ~ 7. 26 (화)

장소 대부도

04 Confession Glory of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