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영광교회 12년 3월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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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일정안내 � 성찬식 3.4(주일) � 독거노인 섬김의 날 3.17(토) 하늘영광교회 무료카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오픈 : 화~금(매주) 시간 : 오전10시~오후4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캠퍼스전도 토요일 오후 1시 (청년부 게시판 참조) � 차 전 도 토요일 오후 4시 (1층 카페) � 병원전도 / 지역전도 화요일 오전 10:30 (2층 유초등부실) 5장에서 7장 사이의 내용을 간단하 게 산상수훈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 서 산에 오르셔서 그 분의 주변에 모 여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이 산상수훈의 가 장 가운데 위치한 내용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그런데 공 교롭게도 웬만한 기독교인이라면 너무나 많이 주기도문 을 외웠기 때문에 주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에 거의 관 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그저 예배가 끝날 때 외우는 신호 정도로 생각될 뿐일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 는 그저 예배의 한 순서가 아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 면서 우리의 모든 기도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두 가지 형태의 기도 를 금지하신다. 한 가지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이고, 다 른 한 가지는 이방인들의 기도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 게 기도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외식에 빠진 자 들과 이방인들이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기도했던 당사자들은 바로 산상 수훈이 전해질 때 예수님 옆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던 수 많은 무리들, 곧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 두 가지 기도의 형태는 이스라엘에 널리 퍼진 기도의 모 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는 마 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 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칭 찬을 받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한 이방인들의 기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오래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아무런 간절함이 없는, 의미 없는 중얼거림의 오랜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러한 기도를 따라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현실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긴밀 한 관계 때문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함 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고, 어떤 이들은 자 신들이 하루하루의 끼니를 이어가기 위해서 이방인들처 럼 중언부언하며 기도한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스 라엘 백성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 다. 앞부분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관련된 내용이며, 뒷부분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내용 으로 나뉜다. 이것은 우연한 내용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 성들이 그들의 삶의 필요 때문에 잘못 기도하는 내용, 그 것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이든지 하루의 끼니를 잇기 위해서이든지 간에 예수님은 그 기도를 올바로 고치고 계신 것이다. 오늘날 신비주의와 기복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자신 들의 기도를 멈추고 다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돌 아가야 한다. 어떤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남들과 달라 보 이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던 기도와 자신들의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서서 더 부요함을 얻기 위해 애쓰던 기도를 멈 추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 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가 아 닌 내가 영광을 경험하려는 기도와 먹고 사는 것에만 매 달리는 기도에 목매인 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주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살 아간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6:9) 하늘영광 칼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하늘영광교회 교회소식 하늘영광 마태복음 추천도서 갈보리의 그림자 휴 마틴 저 / 황의무, 우상현 역 / 지평서원 이 책은 개혁파 정통주의 진영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한 명저 중의 명저로 손꼽힌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잔을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가룟 유다를 비롯한 어둠의 권세에 의해 죄수로 붙잡히시고,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받고 사형을 선고받으시기까지의 상황이 신학적 연구와 깊은 묵상에서 우 러나오는 통찰력으로 잘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궁극적인 승리와 영광이 참으로 생생하게 진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은 갈보리의 그림자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게로 오는 자를 구원하시는 언약의 그림자로 변해 가는 큰 기쁨과 놀라움을 맛보 게 될 것이며, 우리를 위해 제물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더 풍성하고 깊이 경험하여 그 위대한 도를 이 세상에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 www.GloryofGod.or.kr) 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2012. 3 . 통권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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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영광교회 12년 3월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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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하늘영광교회 12년 3월 148호

� 찾아오시는 길

� 교회소식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

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 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 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도와 영적 대각

성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에 대한 사역의 부담을

가지고 귀국하여 “하늘영광교회”를 개척, 담임하고 있다.

� 담임목사 Profile

“양심에서의 도피”

2012년 3월 일정안내

� 성찬식

3.4(주일)

� 독거노인 섬김의 날

3.17(토)

하늘영광교회 무료카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오픈 : 화~금(매주)

시간 : 오전10시~오후4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캠퍼스전도

토요일 오후 1시 (청년부 게시판 참조)

� 차 전 도

토요일 오후 4시 (1층 카페)

� 병원전도 / 지역전도

화요일 오전 10:30 (2층 유초등부실)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 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

발행일 2012년 3월 1일 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134-856

☎ 2296-1586(교회) / 070-7548-1586(사역자실)

5장에서 7장 사이의 내용을 간단하

게 산상수훈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

서 산에 오르셔서 그 분의 주변에 모

여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이 산상수훈의 가

장 가운데 위치한 내용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그런데 공

교롭게도 웬만한 기독교인이라면 너무나 많이 주기도문

을 외웠기 때문에 주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에 거의 관

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그저 예배가 끝날 때 외우는 신호 정도로

생각될 뿐일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

는 그저 예배의 한 순서가 아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

면서 우리의 모든 기도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두 가지 형태의 기도

를 금지하신다. 한 가지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이고, 다

른 한 가지는 이방인들의 기도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

게 기도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외식에 빠진 자

들과 이방인들이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기도했던 당사자들은 바로 산상

수훈이 전해질 때 예수님 옆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던 수

많은 무리들, 곧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

두 가지 기도의 형태는 이스라엘에 널리 퍼진 기도의 모

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는 마

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

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칭

찬을 받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한 이방인들의 기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오래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아무런 간절함이 없는,

의미 없는 중얼거림의 오랜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러한 기도를 따라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현실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긴밀

한 관계 때문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함

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고, 어떤 이들은 자

신들이 하루하루의 끼니를 이어가기 위해서 이방인들처

럼 중언부언하며 기도한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스

라엘 백성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

다. 앞부분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관련된 내용이며,

뒷부분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내용

으로 나뉜다. 이것은 우연한 내용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

성들이 그들의 삶의 필요 때문에 잘못 기도하는 내용, 그

것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이든지 하루의 끼니를 잇기

위해서이든지 간에 예수님은 그 기도를 올바로 고치고

계신 것이다.

오늘날 신비주의와 기복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자신

들의 기도를 멈추고 다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돌

아가야 한다. 어떤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남들과 달라 보

이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던 기도와 자신들의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서서 더 부요함을 얻기 위해 애쓰던 기도를 멈

추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

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가 아

닌 내가 영광을 경험하려는 기도와 먹고 사는 것에만 매

달리는 기도에 목매인 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주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살

아간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6:9)”

●●하늘영광 칼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하늘영광교회

●●고백의 글

●●교회소식

하늘영광

주일예배 오전 11:00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 오후 8:00

새벽기도(월~금) 오전 6:00

유 치 부 오전 9:00 오후 2:00

교회학교 유·초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중·고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집 회 청년부(토) 오후 5:00

� 예배시간 안내 (모임/집회)

권세일_청년부

● 등록

박경순(2여선교회, 명일동)

전종남, 김기영(2남, 2여, 구리시)

유동현, 박성희(3남, 3여, 안성시)

하헌규(3남선교회, 중화동)

고종호(성년부, 내곡동)

김주헌(청년부, 수유동)

● 교인동정

홍세영 출국(3.10 토)

결혼 : 송혁중, 임주현(3.24 토)

● 선교사를 위한 기도

일본 토가네 은총그리스도교회와 남택수 선교사 그리고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대중교통

지하철 천호역(5호선 3번 출구), 암사역(8호선 1번 출구)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하여 양지종합시장앞 하차

04 Confession Glory of God

마태복음

퇴근 시간에 자리가 빽빽하게 채워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교회를 오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연로하신 분이 다가오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 정도

는 잠시 감출 수 있다. 평소에 발휘하지도 못하던 연기력이 발동되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눈을 감고 고개

를 숙인다. 어차피 안 일어날 거면서 마음은 왜 불편해지는지. 참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짧은 순간에조차 양심은 무엇인가 내게 말하고 있음을 난 알 수 있다.

「이성에서의 도피」에서 프란시스 쉐퍼는 하나님을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비판하

며,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이성을 잡고 일어나 각성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버린 것

은 이성뿐만 아니라 양심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

각에 양심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는 매일같이 기도할 때만 하나님이 옆에 계

신다고 생각하며 이를 무시하고 살아가곤 한다. 하지만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

가 기로에 섰을 때 방향을 알려주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들을 불러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양심을 깨끗케 하심으로써 나

를 빛 가운데로 불러주셨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사춘기를 유난히 격하게 보내면서 부모님에 대한 반항

심을 가지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난 ‘알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 난 내가 잘못하고 있는 행동을 굳이 멈추고 돌이켜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다. 성

령 하나님께선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의 빛으로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대학 새내기 생활을 하면서 내게 다가온 술의 유혹은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멀

어지게 만들었다. 성경에는 분명히 “취하지 말라.”라고 나와 있을 뿐, “한 잔도 마시지 말라.”는 말씀은

없다는 사단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대학 생활을 즐겼고 동기들과의 술 문화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물론

나중에 로마서의 교리를 배우며 연약한 자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자기도 약해지는 참된 사랑이 무

엇인지에 대해 배우므로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지만, 이미 그 당시에도 난 양심적으로 내가 잘못된 행위

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양심을 외면했던 나의 모습은 마치 “부모님께선 내게 훌륭한 사

람이 되라고 했지만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다.”라고 우기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는 왜 알면서, 예상하면서 그 길을 가는 걸까? 왜 나는 진리를 알면서 그것을 선택하기를 거부하는

걸까? 직장 속에서, 학업 속에서, 관계 속에서 매일같이 우리는 신음하며 살아간다. ‘그때 그러는 게 아니

었는데……. 안 그럴 수 있었는데…….’하고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지만 죄의 유혹이 많더라

도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모

든 사람에게 일반 은총으로 나누어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스마트 폰으로 오늘 날씨를 확인하고 집에서 나온다. 저녁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옷

을 두껍게 입고,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챙긴다. 양심은 일기예보보다 더 중요하다. 마귀와의 전투 속

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설령 무시하더라도 죄를 짓는 순간에조차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 곁

에 계심을 알려준다. 그래서 무시 받은 만큼 화난 양심은 회개할 때 심하게 우리를 매질한다. 나는 예배

속에서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시고 계시해주시길 기대했지만 그 전부터 나는 갈 길을 알고 있었다.

참 감사하다. 하나님께선 자비로 큰 선물을 주셨다. 모든 사람에게 주셨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히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있을 수 있는 양심을 주셨다. 이 양심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내게 있었지만 이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그것을 따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더라도 그

것을 따라 행할 이유와 의지가 없지만, 내겐 생긴다. 또한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그 양심으로 죄를 느낄

수 있음은 생명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왓슨의 말대로 “오직 은혜를 벗어나서는 죄를 느낄

수 없다.” 시체는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아도 불평이 없다. 은혜의 삶으로부터만 죄와의 전쟁이 있다.

지금도 양심은 내게 말하고 있다. 오늘이 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지키라고, 내게 중요

한 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때론 외면하고 싶다. 이에 따라 행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면 너무 고통스럽다. 내 힘과 의지는 너무 약하다. 하지만 약하다고 싸우기도 전에 칼을 버리는

건 더 비겁한 행위다. 또한 전쟁을 이끄실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다. 내일도 전투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

할지 모르지만 다시 양심의 나침반을 올려 들어야 한다. 우리는 전투에서 패배할 때가 있더라도 그리스도

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추천도서

갈보리의 그림자휴 마틴 저 / 황의무, 우상현 역 / 지평서원

이 책은 개혁파 정통주의 진영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한 명저 중의 명저로 손꼽힌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잔을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가룟 유다를 비롯한 어둠의 권세에 의해 죄수로 붙잡히시고,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받고 사형을 선고받으시기까지의 상황이 신학적 연구와 깊은 묵상에서 우

러나오는 통찰력으로 잘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궁극적인 승리와 영광이 참으로 생생하게 진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은 갈보리의 그림자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게로 오는 자를 구원하시는 언약의 그림자로 변해 가는 큰 기쁨과 놀라움을 맛보

게 될 것이며, 우리를 위해 제물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더 풍성하고 깊이 경험하여 그 위대한 도를 이 세상에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소식지 전체에 대한 구독은 하늘영광교회 문서선교실로 연락하시거나 본 교회 홈페이지(www.GloryofGod.or.kr)에서 e-book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선포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길 원한다.

2012. 3. 통권 148호

성도들의 개인 전도에 협력하기 위하여 신청해 주신 대상자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주 1회

직접 쓴 전도엽서를 꾸준히 보내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신청해

주시면 함께 보내드립니다.

하늘영광교회 지역 전도팀은...

Page 2: 하늘영광교회 12년 3월 148호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

셨으니 “(에베소서 1장 5절)

요즘 에베소서 말씀을 주일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명

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분의 뜻대로 창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사, 오실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여 구원하셨습니다. 순간적이거나 충동적이지 않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

가운데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비단 저와 하늘영광교회 지체들만이 아니라 역

사 속에서 삶을 살다간 성경의 많은 인물들과 또한 이름 없는 신자들이 다 포함될 것입니

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무한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인도하

심 속에서 살다 갔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특히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에 주목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그대로 좇으며 살았던 야곱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과 열심이 너무도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이 또한

야곱을 창세 전부터 예정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과연 나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선명하게 드러

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최근 제가 깨달았던 개인적인 경험을 고백하고, 지체들에게 기

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하늘영광교회에 온지 벌써 9년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사탄의 노예처럼 지내다가 하늘영

광교회에 온 것 자체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뒤에도 많은 좌절

을 겪고 죄를 지으며 들려주시는 말씀의 중함과 은혜를 모르고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교회의 예배와 성찬, 수련회, 지체들과의 교제, 성경공부 속에서 은혜가 있었고 감동

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혜에 대한 사모함과 겸손함도 사라지고 형식적이고 교만

한 태도와 마음이 자랐습니다. 그런 중에도 간혹 말씀을 통해 은혜를 맛보기도 했지만, 일상

의 냉엄한 현실과 저의 죄성, 그리고 환경의 유혹들을 적나라하게 경험하면서 늘 영혼이 목

마른 상태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선 실제적으로 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

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열심과 노력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으로 부패하고 선한 것이 전혀 없는 무능력한 존재란 사실입니다. 이

런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고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실이 새롭게 다가오고 ‘나

로서는 할 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의지, 노력, 그 무엇으로도 현실의 장벽

과 나 자신의 죄성, 환경 등 어느 것 하나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자신을 부인하고 생명 되신 예수님 한 분 만을 향해서 겸손하고 진실

하게 나아가는 것을 진실로 원하시고, 여기에 인생의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을 통해 정말 많이 들었던 말씀이지만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너무 힘들었

습니다. 제가 잘 몰랐을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끊임없이 저의 인생 속에서 저의 인

지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었지만 저는 잘 몰랐습니다. 교회를 다난지 오래되었지만 실제

적이거나 생생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

님의 능력과 사랑을 의지하여 도움을 구하는 지속적인 태도와 실천이 있다면, 하나님의 인

도하심이 얼마나 은혜롭고 실제적인지 누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반응하며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에

자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택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한 자를 반드시 끝까지 인

도하시고 자라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세상 정신, ‘무엇이든 하면 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정과 사회 속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무엇이든지 내가 노력하면 된다!’, ‘너는 할 수 있다!’, ‘뭐

든지 원하면 할 수 있다!’ 등과 같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적 성공담, 인

생의 성공담, 공부, 성취, 연구의 성공담 등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목표

를 향해서 나아가면 어떤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의

지와 노력에 의한 진보를 본성적으로, 또 사회 지식적으로, 경험적으로

모두가 강하게 신뢰합니다. 저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라는 인간의 편

에서 하는 긍정적인 행동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 영역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하나님께

서 허락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그

런 일반 은총 영역에서 있을 수 있는 노력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사람

들이 노력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자기 자신의 구원에

까지도 연관시켜 적용하는 문제입니다.

기독교 안에 들어온 세상 정신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단호한 답을 내리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하면 된다.’는 논리와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을 가지고 자신

의 구원 문제에 뛰어들지만, 예수님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

십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고자 하는 자들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

든 종교들과 빗나간 이단들은 놀랍게도 바로 이 말씀을 수용하지 못합

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구원을 추구합

니다. 그들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인간 스스

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사람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예

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구원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구

원을 위해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시작을

한 사람들은 본문의 말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실제적으

로 수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무엇인가를 행함으로써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더 호응을 얻고 인간의 본성에도 더 쉽게 수용된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의 분위기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

다.’는 말을 교회가 강력하게 말하면 극단적이라는 취급을 받습니다.

오히려 많은 교회들은 ‘당신이 구원을 얻으려면 이것을 하십시오. 저것

을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는 것을 복음처럼 말합니다. 이렇

게 마치 궤도 이탈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인 것처럼 가르치

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청년

이 내용은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배웠던 내용과 동

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구

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며 자란

모범생이 바로 본문에 등장한 부자청년입니다. 그는 16절에서 어떤 선

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무엇인가 선한 일

을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으

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생명

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라는 말씀으로 이 사람을 이끌어 가십니

다. 그러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비롯해서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까지 어려서부터 다 잘 지켰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사람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말씀하시

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힘들어 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 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그

제야 이 청년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구원이 사

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범적인 종교인이요, 진실한 추구를 하는 부자청년을 통해

서 한 가지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구원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모범적이고 아무리 최고의 행동을 하는 상태를 가지

고 있어도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게 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진리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기독교에 들어오셨습니까? 사람은 스스로

예수를 믿고 따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여러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따라와서 10년, 20년, 30년을 다녀도 사람으로는 구

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들이 외적인 행위를 잘 함으로써 얻

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회 속에서 선량한 시

민으로 살고, 직장에서 칭찬받는 직장인이 되고, 학교에서 모범적인 학

생이 되고, 가정에서 착한 아내와 남편이 되는 것은 구원과 비교하면 비

교적 쉬운 일입니다. 또 우리가 뭔가를 포기하는 것, 예를 들어 많은 재

물을 포기하는 것, 어떤 목표를 포기하는 것, 풍요와 안락함을 포기하

는 것, 자신의 능력과 실력과 탁월한 재능을 포기하는 것도 구원에 비하

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열심히 해서 인정받듯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

니다. 구원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면

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기독교에 들어오려면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부터 알아야 됩니

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교회에 잘 적응해서 신자처럼 살아간다면 그 사

람은 그로 인해서 혼란을 겪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상 그는

구원의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반드시 내면에 구원의 기쁨을 가

져다줍니다. 구원받은 자도 죄로 인해 일시적으로 구원의 기쁨을 상실

할 수는 있지만 실상 영원한 기쁨을 소유합니다. 구원받은 자가 기쁨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원의 기쁨이

없이 교회를 다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구원의 문제

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의심을 하게 되고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

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선한 행동을 많이 해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이 부자청년처럼 자신의 본성적인 욕구 하나도 사

실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굳이 증명하시지 않아도 사람은 자신

의 욕망을 온전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본성이 우리 자

신의 의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사람

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이루시는 구원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곧바로 말

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

느니라.”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구원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말씀하신 이 내용, 사람으로는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는 이 진리야말로 기독교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구원으

로 인도한 사람들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

으로서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 그런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유대 사회 속에서는 매국노요, 자기 잇속만 챙기는 죄인들로

취급당했던 세리들과 정죄 받고 기피 당했던 창녀들, 그리고 가장 극악

범으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렸던 흉악한 강도, 이런 사람들을 구

원하신 몇 가지 사례만 보아도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구원 얻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그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을 그분께로 향하고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소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수 그

리스도께서 이들을 만나주심으로써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인간의 모습

그러나 이들과 달리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구원을 얻으

려고 스스로 몸부림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는 최고로 모

범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다 이들이 제대로 된 신자라고 생각했

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진리를 수용하지 않고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래서 이들은 스스로 열심을 내어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노력했습니

다. 이들은 구원을 얻으려면 이것을 해야 된다, 저것을 해야 된다, 좀 더

열심을 내야 된다, 좀 더 잘해야 된다고 계속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러한 사람의 열심과 노력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진리에 가까운 것 같았지만 하나님 나라에

서 먼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 많

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

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행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도록 권

면을 많이 합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떤 반응이 나타

납니까?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참된 기독교

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 내어 맡기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불가능한 일을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맡

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약함과 결함이 무엇이든지, 어떤 죄가 있든

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자신을 내어 맡겨야 됩니다. 구원

은 그렇게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심으로써 얻게 되

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그렇게 구원 얻은 줄을 알고 있습니까? 혹시 자신

이 무엇을 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이 정녕 구원

얻은 자라면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이 불가능했던 여러분을 은혜와 능

력으로 구원하신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상태든지, 어떤 부

류의 사람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십자가에 함께 달린 극악범이라 할지

라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 놀라운 복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방법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떻게 구원하신다는 것입니까? 그 유일

한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 처

리하심으로써,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키심으로

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는 것은, 모든 대상을 구원하

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친히 지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내시

고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으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여러분,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나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

께 항복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 불가능한

구원을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굴복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

니다. 그 불가능한 일을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는 여러분의 시도

를 내려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신의 구원

에 대한 소망이 있음을 보고, 세리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자신을 내어맡기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

다. 세리와 창녀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었습니

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화를 선언 받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한 자는 내어맡기는

일을 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더 할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더 좋은 조건을 꿈꾸며 나아가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저 구도자의 수준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것은 구원을 얻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자기 의로 가득 채울 뿐입니다. 결국은 그는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소유하지 못하고, 그래서 구원의 기

쁨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구원의 영역은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이룰 수 있으시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속 권면하시고 역사하시고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을 해

주셔야만 된다는 것이 우리가 발견하는 결론입니다. 나의 모든 구원을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

도의 구속의 은혜에 근거를 두고 자신을 봐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하나

님이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셔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는 것

을 믿고 굴복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문의 1/3분량으로 축소 편집한 내용입니다.

“기독교의 전부”

●●영혼 구원을 위한 말씀 시리즈 24 ●● 고백의 글

박순용 담임목사

하늘영광교회에 첫발을 들인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내 생활이 고단하고 강퍅하

고 무엇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 때문에 교회를 찾았고 내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뿐

이었습니다. 내 환경이 어렵기에 하나님을 내 삶의 목적을 이루고 복을 주셔야 할 분으로

만 여겼고 그래서 최소한으로 주일만 지키려고 했습니다.

교회에 올 때마다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 여기저기 관심 가져 주시는 여러 지체들이 있었

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시들해지고 내 마음은 더 공허해 지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을 믿지 않는 가족들, 특히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남편이 하나님을 몰라 나의 신앙생활에 어

려움을 줄 때마다 ‘나는 너무 지쳤다, 이대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 죄가 어디까지인지 도무

지 알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도 성경공부를 하고 온종일 교회에 있다는 것이 참 힘들고 어렵게 느껴져 그런

것들과 씨름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매번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

은 마음이지만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막막할 때 ‘난 아직 멀었구나.’하며 또다시 패

배감에 휩싸였고, 교회 문을 나와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난 여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세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에게 두 자녀를 통해 희망을 보이셨고 조금씩 믿음이 생기

게 해주셨습니다. 두 아이가 없었더라면 교회에 나가는 것도, 하나님을 만나는 일도 없었

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것도 분명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계획의 일부분이란 생각에 ‘참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구나.’하며 하나님을 경험해봅니

다.

또 「복음의 진리로 나아가라」 성경공부를 하면서 주중 예배를 나오면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말에 ‘그래,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누려보자.’ 그런 생각에 힘들어도 꾹 참

고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드리기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두 아이들에 이끌려 예배를 드

리고 있습니다. 확실히 주일예배 한 번으로 끝이 아니고 주중에도 예배를 드리고, 갬트(구

역)모임까지 참석하게 되면서, 세상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마음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힘을 얻게 해 주셔서 그것 또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아직은 믿음이 너무나도 얄팍하고 제대로 아는 교리도, 지식도 적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진실로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만은 분명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날 사랑

해달라고, 축복해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좀 더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바뀔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에게 불행인지 행복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하나 찾아왔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너무 힘들고 너무나도 고

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드리는 중에 이제는 감사

와 축복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싫어할 것

같았는데 저를 위로하면서 예쁘고 건강하게 잘 낳아서 키우자는 말에 감사했고, 주변의 많

은 사람들이 축복해주고 직장에서의 문제도 해결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계

획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감

사하게도 아빠의 극진한 보호 아래, 오빠, 언니의 사랑 속에서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고 복된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일이 여전히 어렵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삶 속에서 체험

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며, 더욱 진실함으로 기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남편도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 고백의 글

임재근_성년부

이숙희_3여선교

Glory of God 03Confession02 Preaching Glory of God

유동현,박성희(3남,3여선교회)박경순(2여선교회)

● ●

새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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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

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

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19:25-

“복된 고난”

하헌규(3남선교회) 고종호(성년부) 김주헌(청년부)전종남,김기영(2남,2여선교회)

Page 3: 하늘영광교회 12년 3월 148호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

셨으니 “(에베소서 1장 5절)

요즘 에베소서 말씀을 주일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명

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분의 뜻대로 창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사, 오실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여 구원하셨습니다. 순간적이거나 충동적이지 않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

가운데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비단 저와 하늘영광교회 지체들만이 아니라 역

사 속에서 삶을 살다간 성경의 많은 인물들과 또한 이름 없는 신자들이 다 포함될 것입니

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무한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인도하

심 속에서 살다 갔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특히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에 주목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그대로 좇으며 살았던 야곱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과 열심이 너무도 가감 없이 드러납니다. 이 또한

야곱을 창세 전부터 예정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과연 나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선명하게 드러

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최근 제가 깨달았던 개인적인 경험을 고백하고, 지체들에게 기

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하늘영광교회에 온지 벌써 9년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사탄의 노예처럼 지내다가 하늘영

광교회에 온 것 자체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뒤에도 많은 좌절

을 겪고 죄를 지으며 들려주시는 말씀의 중함과 은혜를 모르고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교회의 예배와 성찬, 수련회, 지체들과의 교제, 성경공부 속에서 은혜가 있었고 감동

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혜에 대한 사모함과 겸손함도 사라지고 형식적이고 교만

한 태도와 마음이 자랐습니다. 그런 중에도 간혹 말씀을 통해 은혜를 맛보기도 했지만, 일상

의 냉엄한 현실과 저의 죄성, 그리고 환경의 유혹들을 적나라하게 경험하면서 늘 영혼이 목

마른 상태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선 실제적으로 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

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열심과 노력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으로 부패하고 선한 것이 전혀 없는 무능력한 존재란 사실입니다. 이

런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고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실이 새롭게 다가오고 ‘나

로서는 할 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의지, 노력, 그 무엇으로도 현실의 장벽

과 나 자신의 죄성, 환경 등 어느 것 하나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자신을 부인하고 생명 되신 예수님 한 분 만을 향해서 겸손하고 진실

하게 나아가는 것을 진실로 원하시고, 여기에 인생의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을 통해 정말 많이 들었던 말씀이지만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너무 힘들었

습니다. 제가 잘 몰랐을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끊임없이 저의 인생 속에서 저의 인

지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었지만 저는 잘 몰랐습니다. 교회를 다난지 오래되었지만 실제

적이거나 생생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

님의 능력과 사랑을 의지하여 도움을 구하는 지속적인 태도와 실천이 있다면, 하나님의 인

도하심이 얼마나 은혜롭고 실제적인지 누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반응하며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에

자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택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한 자를 반드시 끝까지 인

도하시고 자라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세상 정신, ‘무엇이든 하면 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정과 사회 속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무엇이든지 내가 노력하면 된다!’, ‘너는 할 수 있다!’, ‘뭐

든지 원하면 할 수 있다!’ 등과 같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적 성공담, 인

생의 성공담, 공부, 성취, 연구의 성공담 등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목표

를 향해서 나아가면 어떤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의

지와 노력에 의한 진보를 본성적으로, 또 사회 지식적으로, 경험적으로

모두가 강하게 신뢰합니다. 저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라는 인간의 편

에서 하는 긍정적인 행동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 영역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하나님께

서 허락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그

런 일반 은총 영역에서 있을 수 있는 노력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사람

들이 노력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자기 자신의 구원에

까지도 연관시켜 적용하는 문제입니다.

기독교 안에 들어온 세상 정신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단호한 답을 내리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하면 된다.’는 논리와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을 가지고 자신

의 구원 문제에 뛰어들지만, 예수님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

십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고자 하는 자들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

든 종교들과 빗나간 이단들은 놀랍게도 바로 이 말씀을 수용하지 못합

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구원을 추구합

니다. 그들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인간 스스

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사람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예

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구원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구

원을 위해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시작을

한 사람들은 본문의 말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실제적으

로 수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무엇인가를 행함으로써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더 호응을 얻고 인간의 본성에도 더 쉽게 수용된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의 분위기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

다.’는 말을 교회가 강력하게 말하면 극단적이라는 취급을 받습니다.

오히려 많은 교회들은 ‘당신이 구원을 얻으려면 이것을 하십시오. 저것

을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는 것을 복음처럼 말합니다. 이렇

게 마치 궤도 이탈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인 것처럼 가르치

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청년

이 내용은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배웠던 내용과 동

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구

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며 자란

모범생이 바로 본문에 등장한 부자청년입니다. 그는 16절에서 어떤 선

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무엇인가 선한 일

을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으

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생명

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라는 말씀으로 이 사람을 이끌어 가십니

다. 그러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비롯해서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까지 어려서부터 다 잘 지켰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사람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말씀하시

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힘들어 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 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그

제야 이 청년은 자신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구원이 사

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범적인 종교인이요, 진실한 추구를 하는 부자청년을 통해

서 한 가지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구원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모범적이고 아무리 최고의 행동을 하는 상태를 가지

고 있어도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게 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진리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기독교에 들어오셨습니까? 사람은 스스로

예수를 믿고 따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여러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따라와서 10년, 20년, 30년을 다녀도 사람으로는 구

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들이 외적인 행위를 잘 함으로써 얻

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회 속에서 선량한 시

민으로 살고, 직장에서 칭찬받는 직장인이 되고, 학교에서 모범적인 학

생이 되고, 가정에서 착한 아내와 남편이 되는 것은 구원과 비교하면 비

교적 쉬운 일입니다. 또 우리가 뭔가를 포기하는 것, 예를 들어 많은 재

물을 포기하는 것, 어떤 목표를 포기하는 것, 풍요와 안락함을 포기하

는 것, 자신의 능력과 실력과 탁월한 재능을 포기하는 것도 구원에 비하

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열심히 해서 인정받듯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

니다. 구원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면

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기독교에 들어오려면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부터 알아야 됩니

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교회에 잘 적응해서 신자처럼 살아간다면 그 사

람은 그로 인해서 혼란을 겪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상 그는

구원의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반드시 내면에 구원의 기쁨을 가

져다줍니다. 구원받은 자도 죄로 인해 일시적으로 구원의 기쁨을 상실

할 수는 있지만 실상 영원한 기쁨을 소유합니다. 구원받은 자가 기쁨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원의 기쁨이

없이 교회를 다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구원의 문제

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의심을 하게 되고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

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선한 행동을 많이 해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이 부자청년처럼 자신의 본성적인 욕구 하나도 사

실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굳이 증명하시지 않아도 사람은 자신

의 욕망을 온전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본성이 우리 자

신의 의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사람

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이루시는 구원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곧바로 말

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

느니라.”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구원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말씀하신 이 내용, 사람으로는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는 이 진리야말로 기독교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구원으

로 인도한 사람들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

으로서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 그런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유대 사회 속에서는 매국노요, 자기 잇속만 챙기는 죄인들로

취급당했던 세리들과 정죄 받고 기피 당했던 창녀들, 그리고 가장 극악

범으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렸던 흉악한 강도, 이런 사람들을 구

원하신 몇 가지 사례만 보아도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구원 얻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그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을 그분께로 향하고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소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수 그

리스도께서 이들을 만나주심으로써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인간의 모습

그러나 이들과 달리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구원을 얻으

려고 스스로 몸부림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는 최고로 모

범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다 이들이 제대로 된 신자라고 생각했

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진리를 수용하지 않고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래서 이들은 스스로 열심을 내어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노력했습니

다. 이들은 구원을 얻으려면 이것을 해야 된다, 저것을 해야 된다, 좀 더

열심을 내야 된다, 좀 더 잘해야 된다고 계속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

러한 사람의 열심과 노력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진리에 가까운 것 같았지만 하나님 나라에

서 먼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 많

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

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행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도록 권

면을 많이 합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떤 반응이 나타

납니까?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참된 기독교

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 내어 맡기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불가능한 일을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맡

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약함과 결함이 무엇이든지, 어떤 죄가 있든

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자신을 내어 맡겨야 됩니다. 구원

은 그렇게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심으로써 얻게 되

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그렇게 구원 얻은 줄을 알고 있습니까? 혹시 자신

이 무엇을 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이 정녕 구원

얻은 자라면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이 불가능했던 여러분을 은혜와 능

력으로 구원하신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상태든지, 어떤 부

류의 사람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십자가에 함께 달린 극악범이라 할지

라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 놀라운 복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방법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대체 어떻게 구원하신다는 것입니까? 그 유일

한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 처

리하심으로써,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키심으로

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는 것은, 모든 대상을 구원하

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친히 지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내시

고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으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여러분,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나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

께 항복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 불가능한

구원을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굴복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

니다. 그 불가능한 일을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는 여러분의 시도

를 내려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신의 구원

에 대한 소망이 있음을 보고, 세리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자신을 내어맡기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

다. 세리와 창녀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었습니

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화를 선언 받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한 자는 내어맡기는

일을 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더 할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더 좋은 조건을 꿈꾸며 나아가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저 구도자의 수준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것은 구원을 얻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자기 의로 가득 채울 뿐입니다. 결국은 그는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소유하지 못하고, 그래서 구원의 기

쁨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구원의 영역은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이룰 수 있으시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속 권면하시고 역사하시고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을 해

주셔야만 된다는 것이 우리가 발견하는 결론입니다. 나의 모든 구원을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

도의 구속의 은혜에 근거를 두고 자신을 봐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하나

님이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셔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는 것

을 믿고 굴복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문의 1/3분량으로 축소 편집한 내용입니다.

“기독교의 전부”

●●영혼 구원을 위한 말씀 시리즈 24 ●● 고백의 글

박순용 담임목사

하늘영광교회에 첫발을 들인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내 생활이 고단하고 강퍅하

고 무엇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 때문에 교회를 찾았고 내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뿐

이었습니다. 내 환경이 어렵기에 하나님을 내 삶의 목적을 이루고 복을 주셔야 할 분으로

만 여겼고 그래서 최소한으로 주일만 지키려고 했습니다.

교회에 올 때마다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 여기저기 관심 가져 주시는 여러 지체들이 있었

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시들해지고 내 마음은 더 공허해 지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을 믿지 않는 가족들, 특히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남편이 하나님을 몰라 나의 신앙생활에 어

려움을 줄 때마다 ‘나는 너무 지쳤다, 이대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 죄가 어디까지인지 도무

지 알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도 성경공부를 하고 온종일 교회에 있다는 것이 참 힘들고 어렵게 느껴져 그런

것들과 씨름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매번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

은 마음이지만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막막할 때 ‘난 아직 멀었구나.’하며 또다시 패

배감에 휩싸였고, 교회 문을 나와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난 여전히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세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에게 두 자녀를 통해 희망을 보이셨고 조금씩 믿음이 생기

게 해주셨습니다. 두 아이가 없었더라면 교회에 나가는 것도, 하나님을 만나는 일도 없었

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것도 분명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계획의 일부분이란 생각에 ‘참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구나.’하며 하나님을 경험해봅니

다.

또 「복음의 진리로 나아가라」 성경공부를 하면서 주중 예배를 나오면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말에 ‘그래,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누려보자.’ 그런 생각에 힘들어도 꾹 참

고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드리기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두 아이들에 이끌려 예배를 드

리고 있습니다. 확실히 주일예배 한 번으로 끝이 아니고 주중에도 예배를 드리고, 갬트(구

역)모임까지 참석하게 되면서, 세상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마음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힘을 얻게 해 주셔서 그것 또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아직은 믿음이 너무나도 얄팍하고 제대로 아는 교리도, 지식도 적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진실로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만은 분명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날 사랑

해달라고, 축복해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좀 더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바뀔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에게 불행인지 행복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하나 찾아왔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너무 힘들고 너무나도 고

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드리는 중에 이제는 감사

와 축복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싫어할 것

같았는데 저를 위로하면서 예쁘고 건강하게 잘 낳아서 키우자는 말에 감사했고, 주변의 많

은 사람들이 축복해주고 직장에서의 문제도 해결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계

획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감

사하게도 아빠의 극진한 보호 아래, 오빠, 언니의 사랑 속에서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고 복된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일이 여전히 어렵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삶 속에서 체험

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며, 더욱 진실함으로 기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남편도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 고백의 글

임재근_성년부

이숙희_3여선교

Glory of God 03Confession02 Preaching Glory of God

유동현,박성희(3남,3여선교회)박경순(2여선교회)

● ●

새가족

등록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

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

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19:25-

“복된 고난”

하헌규(3남선교회) 고종호(성년부) 김주헌(청년부)전종남,김기영(2남,2여선교회)

Page 4: 하늘영광교회 12년 3월 148호

� 찾아오시는 길

� 교회소식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

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 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 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도와 영적 대각

성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에 대한 사역의 부담을

가지고 귀국하여 “하늘영광교회”를 개척, 담임하고 있다.

� 담임목사 Profile

“양심에서의 도피”

2012년 3월 일정안내

� 성찬식

3.4(주일)

� 독거노인 섬김의 날

3.17(토)

하늘영광교회 무료카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오픈 : 화~금(매주)

시간 : 오전10시~오후4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캠퍼스전도

토요일 오후 1시 (청년부 게시판 참조)

� 차 전 도

토요일 오후 4시 (1층 카페)

� 병원전도 / 지역전도

화요일 오전 10:30 (2층 유초등부실)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 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

발행일 2012년 3월 1일 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134-856

☎ 2296-1586(교회) / 070-7548-1586(사역자실)

5장에서 7장 사이의 내용을 간단하

게 산상수훈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

서 산에 오르셔서 그 분의 주변에 모

여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이 산상수훈의 가

장 가운데 위치한 내용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그런데 공

교롭게도 웬만한 기독교인이라면 너무나 많이 주기도문

을 외웠기 때문에 주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에 거의 관

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그저 예배가 끝날 때 외우는 신호 정도로

생각될 뿐일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

는 그저 예배의 한 순서가 아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

면서 우리의 모든 기도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두 가지 형태의 기도

를 금지하신다. 한 가지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이고, 다

른 한 가지는 이방인들의 기도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

게 기도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외식에 빠진 자

들과 이방인들이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기도했던 당사자들은 바로 산상

수훈이 전해질 때 예수님 옆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던 수

많은 무리들, 곧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

두 가지 기도의 형태는 이스라엘에 널리 퍼진 기도의 모

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는 마

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

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칭

찬을 받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한 이방인들의 기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오래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아무런 간절함이 없는,

의미 없는 중얼거림의 오랜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러한 기도를 따라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현실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긴밀

한 관계 때문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함

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고, 어떤 이들은 자

신들이 하루하루의 끼니를 이어가기 위해서 이방인들처

럼 중언부언하며 기도한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스

라엘 백성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

다. 앞부분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관련된 내용이며,

뒷부분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내용

으로 나뉜다. 이것은 우연한 내용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

성들이 그들의 삶의 필요 때문에 잘못 기도하는 내용, 그

것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이든지 하루의 끼니를 잇기

위해서이든지 간에 예수님은 그 기도를 올바로 고치고

계신 것이다.

오늘날 신비주의와 기복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자신

들의 기도를 멈추고 다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돌

아가야 한다. 어떤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남들과 달라 보

이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던 기도와 자신들의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서서 더 부요함을 얻기 위해 애쓰던 기도를 멈

추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

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가 아

닌 내가 영광을 경험하려는 기도와 먹고 사는 것에만 매

달리는 기도에 목매인 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은 주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살

아간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6:9)”

●●하늘영광 칼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하늘영광교회

●●고백의 글

●●교회소식

하늘영광

주일예배 오전 11:00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 오후 8:00

새벽기도(월~금) 오전 6:00

유 치 부 오전 9:00 오후 2:00

교회학교 유·초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중·고등부 오전 9:00 오후 2:00

집 회 청년부(토) 오후 5:00

� 예배시간 안내 (모임/집회)

권세일_청년부

● 등록

박경순(2여선교회, 명일동)

전종남, 김기영(2남, 2여, 구리시)

유동현, 박성희(3남, 3여, 안성시)

하헌규(3남선교회, 중화동)

고종호(성년부, 내곡동)

김주헌(청년부, 수유동)

● 교인동정

홍세영 출국(3.10 토)

결혼 : 송혁중, 임주현(3.24 토)

● 선교사를 위한 기도

일본 토가네 은총그리스도교회와 남택수 선교사 그리고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대중교통

지하철 천호역(5호선 3번 출구), 암사역(8호선 1번 출구)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하여 양지종합시장앞 하차

04 Confession Glory of God

마태복음

퇴근 시간에 자리가 빽빽하게 채워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교회를 오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연로하신 분이 다가오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 정도

는 잠시 감출 수 있다. 평소에 발휘하지도 못하던 연기력이 발동되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눈을 감고 고개

를 숙인다. 어차피 안 일어날 거면서 마음은 왜 불편해지는지. 참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짧은 순간에조차 양심은 무엇인가 내게 말하고 있음을 난 알 수 있다.

「이성에서의 도피」에서 프란시스 쉐퍼는 하나님을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비판하

며,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이성을 잡고 일어나 각성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버린 것

은 이성뿐만 아니라 양심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

각에 양심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는 매일같이 기도할 때만 하나님이 옆에 계

신다고 생각하며 이를 무시하고 살아가곤 한다. 하지만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

가 기로에 섰을 때 방향을 알려주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들을 불러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양심을 깨끗케 하심으로써 나

를 빛 가운데로 불러주셨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사춘기를 유난히 격하게 보내면서 부모님에 대한 반항

심을 가지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난 ‘알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 난 내가 잘못하고 있는 행동을 굳이 멈추고 돌이켜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다. 성

령 하나님께선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의 빛으로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대학 새내기 생활을 하면서 내게 다가온 술의 유혹은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멀

어지게 만들었다. 성경에는 분명히 “취하지 말라.”라고 나와 있을 뿐, “한 잔도 마시지 말라.”는 말씀은

없다는 사단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대학 생활을 즐겼고 동기들과의 술 문화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물론

나중에 로마서의 교리를 배우며 연약한 자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자기도 약해지는 참된 사랑이 무

엇인지에 대해 배우므로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지만, 이미 그 당시에도 난 양심적으로 내가 잘못된 행위

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양심을 외면했던 나의 모습은 마치 “부모님께선 내게 훌륭한 사

람이 되라고 했지만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다.”라고 우기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는 왜 알면서, 예상하면서 그 길을 가는 걸까? 왜 나는 진리를 알면서 그것을 선택하기를 거부하는

걸까? 직장 속에서, 학업 속에서, 관계 속에서 매일같이 우리는 신음하며 살아간다. ‘그때 그러는 게 아니

었는데……. 안 그럴 수 있었는데…….’하고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지만 죄의 유혹이 많더라

도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모

든 사람에게 일반 은총으로 나누어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스마트 폰으로 오늘 날씨를 확인하고 집에서 나온다. 저녁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옷

을 두껍게 입고,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챙긴다. 양심은 일기예보보다 더 중요하다. 마귀와의 전투 속

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설령 무시하더라도 죄를 짓는 순간에조차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 곁

에 계심을 알려준다. 그래서 무시 받은 만큼 화난 양심은 회개할 때 심하게 우리를 매질한다. 나는 예배

속에서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시고 계시해주시길 기대했지만 그 전부터 나는 갈 길을 알고 있었다.

참 감사하다. 하나님께선 자비로 큰 선물을 주셨다. 모든 사람에게 주셨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히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있을 수 있는 양심을 주셨다. 이 양심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내게 있었지만 이제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그것을 따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더라도 그

것을 따라 행할 이유와 의지가 없지만, 내겐 생긴다. 또한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그 양심으로 죄를 느낄

수 있음은 생명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왓슨의 말대로 “오직 은혜를 벗어나서는 죄를 느낄

수 없다.” 시체는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아도 불평이 없다. 은혜의 삶으로부터만 죄와의 전쟁이 있다.

지금도 양심은 내게 말하고 있다. 오늘이 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지키라고, 내게 중요

한 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때론 외면하고 싶다. 이에 따라 행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면 너무 고통스럽다. 내 힘과 의지는 너무 약하다. 하지만 약하다고 싸우기도 전에 칼을 버리는

건 더 비겁한 행위다. 또한 전쟁을 이끄실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다. 내일도 전투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

할지 모르지만 다시 양심의 나침반을 올려 들어야 한다. 우리는 전투에서 패배할 때가 있더라도 그리스도

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추천도서

갈보리의 그림자휴 마틴 저 / 황의무, 우상현 역 / 지평서원

이 책은 개혁파 정통주의 진영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한 한 명저 중의 명저로 손꼽힌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잔을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가룟 유다를 비롯한 어둠의 권세에 의해 죄수로 붙잡히시고,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받고 사형을 선고받으시기까지의 상황이 신학적 연구와 깊은 묵상에서 우

러나오는 통찰력으로 잘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궁극적인 승리와 영광이 참으로 생생하게 진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은 갈보리의 그림자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게로 오는 자를 구원하시는 언약의 그림자로 변해 가는 큰 기쁨과 놀라움을 맛보

게 될 것이며, 우리를 위해 제물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더 풍성하고 깊이 경험하여 그 위대한 도를 이 세상에 외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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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통권 148호

성도들의 개인 전도에 협력하기 위하여 신청해 주신 대상자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주 1회

직접 쓴 전도엽서를 꾸준히 보내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신청해

주시면 함께 보내드립니다.

하늘영광교회 지역 전도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