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현]헤겔의 '윤리국가'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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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헤겔의 윤리 국가이론* 백 종 현 ** 1) 주제분류사회철학, 정치철학 주 요 어자유, 정신, 윤리, , 국가 요 약 문사회계약론자들의 시민사회 이론이 근대 국가 이론으로서 갖는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과연 국가가 시민들의 자의적 계약의 산물이며, 오로지 시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 보장책으로 생겨난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 또한 그 의의가 작지 않다. 이 때문에 국가는 윤리적 전체로서 개인 들의 결집체 이상의 것이라는 헤겔의 윤리국가 이론이 의미를 얻는다. 헤겔의 윤리 국가는 두 겹의 변증법적 지양의 결실이다. 헤겔의 파악에 따르면 인간의 실천적 정신, 곧 자유의 외현 양식에는 도덕그리고 윤리가 있다. ‘은 인간 행위를 외적으로 강제하는 것으로서 객관적이되, 그 강제에는 인격의 주체[]성이 도외시된다. 그래서 헤겔은 이러한 법을 추상법또는 형식적 법이라고 일컫는다. 반면에 은 자기활동적인 주체로서 인간의 내적 당위이되, 임의적이어서 객관성 이 없고, 객체 연관성이 없어서 실재성이 없다. ‘윤리는 이런 추상법과 도 덕의 합일로서 추상법의 객관성과 도덕의 주체성을 지양적으로 결합한 객 관적 주체[]성 또는 주체적 객관성을 가진 보편적 행위 양식으로 최종적 으로는 국가의 헌법으로 표현된다.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법학연구소 공동 심포지엄>[철학과 법학의 만남](2006. 12. 11, 서울대학교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 소 강당)의 최초 발표문을 토론자 서윤호 박사의 적절한 지적을 받아들여 일 부 수정한 것으로, 그 내용은 필자가 그 후에 쓴 철학의 개념과 주요 문 (철학과현실사, 2007. 3. 10)에 상당 부분 포함되었다. **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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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백종현]헤겔의 '윤리국가' 이론

【특집】

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백 종 현**

1)

【주제분류】사회철학, 정치철학【주 요 어】자유, 정신, 윤리, 법, 국가【요 약 문】사회계약론자들의 시민사회 이론이 근대 국가 이론으로서 갖는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과연 국가가 시민들의 자의적 계약의 산물이며, 오로지 시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 보장책으로 생겨난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 또한 그 의의가 작지 않다. 이 때문에 국가는 ‘윤리적 전체’로서 개인들의 결집체 이상의 것이라는 헤겔의 윤리국가 이론이 의미를 얻는다.

헤겔의 ‘윤리 국가’는 두 겹의 변증법적 지양의 결실이다. 헤겔의 파악에 따르면 인간의 실천적 정신, 곧 자유의 외현 양식에는

‘법’과 ‘도덕’ 그리고 ‘윤리’가 있다. ‘법’은 인간 행위를 외적으로 강제하는 것으로서 객관적이되, 그 강제에는 인격의 주체[관]성이 도외시된다. 그래서 헤겔은 이러한 법을 ‘추상법’ 또는 ‘형식적 법’이라고 일컫는다. 반면에 ‘도덕’은 자기활동적인 주체로서 인간의 내적 당위이되, 임의적이어서 객관성이 없고, 객체 연관성이 없어서 실재성이 없다. ‘윤리’는 이런 추상법과 도덕의 합일로서 추상법의 객관성과 도덕의 주체성을 지양적으로 결합한 객

관적 주체[관]성 또는 주체적 객관성을 가진 보편적 행위 양식으로 최종적으로는 국가의 헌법으로 표현된다.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법학연구소 공동 심포지엄>[철학과 법학의 만남](2006. 12. 11, 서울대학교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 소강당)의 최초 발표문을 토론자 서윤호 박사의 적절한 지적을 받아들여 일부 수정한 것으로, 그 내용은 필자가 그 후에 쓴 철학의 개념과 주요 문제 (철학과현실사, 2007. 3. 10)에 상당 부분 포함되었다.

**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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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리는 인간 사회생활의 양식인 ‘가족’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를 매체로 단계적으로 현실화된다. 구성원들이 자연적 감정으로써 ‘하나의 인격’이 됨이 “가족의 원리”라면, 구성원 각자가 자기의 목적인 “원자론의 체계”가 “시민사회의 원리”이다. 그리고 이 두 원리의 “통일”을 그 진리로 갖는 것이 ‘국가’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국가는 말하자면 가족적 시민사회 또는 시민사회적 가족이다. 국가는 시민사회에서처럼 구성원 각자가 독립적 존재자이면서 동시에 사랑으로써 하나의 인격이 된 전체로서, 이 국가의 주권은 가장(家長)과 같은 군주[元首]가 표상한다. 이런 국가를 헤겔은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라고 본다.

20세기 이후에도 전형적인 전체국가들이 헤겔식의 ‘윤리 국가’의 외양을 하고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론과 실제의 차이가 특히 사회 이론에서

는 주목되어야 함을 강조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그 성원인 개개인의 결합 이상의 것’임을 받아들이는 마당에서는, 헤겔의 ‘윤리 국가’론이 하나의 이상국가론으로서 그 의의를 잃지 않는다.

I. 머리말개인으로서 인간을 자발적인 활동의 주체로서 받아들이고, 동시에

다수의 개인들이 있음이 사실로 인정되는 사회에서는 개인과 다수

또는 전체의 관계, 그리고 개인들 상호 관계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전체 관계 문제의 핵심은 개인들을 전체(totum) 사회의 부분들로 보느냐, 아니면 반대로 사회를 개인들의 구성체(compositum)로 보느냐에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보통 전체주의-개인주의, 사회주의-자유주의 사이의 이견이 나온다. 헤겔(G.W.F. Hegel, 1770-1831)이 법철학요강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에서 피력한 그의 국가철학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1815년 이후 비인체제 아래에서의 프로이센의 반동적 국가체제에 대한 어용철학적 변명으로 치부되고 있다.1) 근자에 와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물론 이에 대해서 헤겔이 법철학요강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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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1820)하고 철학백과요강 의 「객관적 정신」 부문을 수정(1827, 1830)해 나간 1820년대에 프로이센은 유럽 제국 가운데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 고, 무엇보다도 헤겔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자유의 철학’자라는 이유를 내세워 반론을 펴고, “헤겔 정치 철학은 시민사회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누가 어떤 문건을 끌어대 부정하려 해도 베를린대학 교수

헤겔이 법철학요강 에서 논하고 있는 바는 결국 군주가 주권을 갖

는 입헌군주제 국가의 정당성이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 본다. 그러나 이 논고의 의도는 헤겔의 이러한 국가철학이 한낱 시대적 산물이라거나 또는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거나를 설득하려는

데 있지 않고, 우리가 ‘국가란 진정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물을 때, “국가는 윤리적 전체”라는 헤겔의 윤리 국가론이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주지 않을까 모색해보는 데 있다. 국가는 분명 개인들의 임의적 연합체 이상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헤겔의 여타 철학이 그러하듯이 그의 법철학도 하나의 정신현상학,

다시 말해 ‘법의식의 현상학’3)으로서, 그의 국가 이론은 역사적으로

1) R. Haym의 Hegel und seine Zeit(1857) 이래 K.R.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1945) 등의 헤겔 비판에 대한 개략은 K.-H. Ilting, “Die Struktur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수록: M. Riedel 편, Materialien zu Hegels Rechtsphilosophie, Bd. 2, Frankfurt/M. 1975, S. 52 이하, 그리고 W. Maihofer, “Hegels Prinzip des modernen Staates”, 같은 책, S. 361 이하 참조.

2) 이정은, 「헤겔의 법철학 에서 시민사회와 국가의 매체」, 수록: 헤겔철학과 정신 [ 헤겔연구 12], 한국헤겔학회 편, 철학과현실사, 2002, 258면. 기타 헤겔 법철학의 현대적 의의에 대해서는 주 1)의 두 논문 외에 G.W.F. Hegel, Vorlesungen über Rechtsphilosophie 1818-1831, Edition und Kommentar in sechs Bänden von K.-H. Ilting, Stuttgart-Bad Cannstatt 1973f., Bd.1, S.25 이하 참조.

3) K.-H. Ilting의 이런 파악에 대해서는 김준수, 「헤겔 <법철학>의 구조논리에 대한 비판적 고찰」, 수록: 哲學硏究 , 48, 철학연구회, 2000, 8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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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한 국가를 고찰하여 그 형성과정의 국면국면을 변증법적 자기전

개 과정으로 파악하는,4) 일종의 ‘역사이성비판’의 결실이다. 이성이 자신을 현실화해가는 도정에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며, 그러나 실제로 제한적인 수단을 가지고서 또한 그 수단을 개선해 가면서 이성이

도달한 국면들이 어떠한가를 분간하는 역사 이성 비판의 작업이란

그 성격상 사실과 어긋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생기한 제 국가 형태들을 그것들이 전개된 형식 위에서 분석하여 그 형성요소

들의 각각의 의미와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헤겔의 국가 이론이 사실

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할 수는 없다.그렇기에 헤겔의 이론은 사실과 맞지 않음으로 틀렸다는 식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터이고, 그래도 문제로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용하는 개념의 정의와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형식이겠으나, 이것은 누구에게서나 이론 구성에서 필수적으로 전제되는 것이니 헤

겔에만 있는 허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겠다.국가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자연본성상 정치적 동물”5)

이라는 인간의 정의가 함축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의 선 개념을 중심으로 그리고 합의된 그 선을 실천하기 위하여 존립하는 것”6)이

다. 그러니까 국가가 윤리적 존재자이어야 한다는 것이 사상의 출발점을 이룬다는 것은 거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헤겔의 현실적 ‘윤리’ 개념은 한낱 당위적인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 다시 말해 ‘당위와 존재의 합일’이다. 또한 국가는 개인에 대해서 의심할 바 없이 ‘전체’이고, 전체란 ‘하나’일 수밖에 없으니 그것은 개념상 “자신의 전개를 통해 자기를 완성하는 것”,7) 그러니까 자유를 본

4) K.-L. Kunz/M. Mona, Rechtsphilosophie, Rechtstheorie, Rechtssoziologie, Bern․Stuttgart․Wien 2006, S. 84 이하 참조. 이 말의 오해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서 곤, 「헤겔 政治哲學에 있어서 人倫性에 관한 硏究」, 부산대학교 박사학위청구논문, 1995, 120면: “헤겔의 국가는 「사유된 것으로서의 국가」이며 역사적 국가는 별개의 것이다.” 참조.

5) Aristoteles, Politica, 1253a 2. 6) 백종현, 사회운 원리 ,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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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로 갖는 것, 곧 ‘정신’이다. 이 정신을 자신을 전개해가면서 자기를 완성해가는 것으로 보는 것은 헤겔의 사실 판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완성해간다는 것은 어떤 완전태, 목표, 목적에 접근해가는 운동을 말하는 것이니, 헤겔은 역사의 전개 과정을 그렇게 사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그런 사실적 판단의 근거는 자유가 확장되어온 역사적 사실이다. 고대 동방 사회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웠고’, 그리스 사회에서는 ‘몇 사람이 자유로웠으며’, 기독교적 게르만 사회에는 ‘만인이 자유롭다[인간은 그 자체로 자유롭다]’8)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

만약 누군가가 헤겔 당대의 게르만 사회가 사실적으로 그렇지 못했

다고 본다면, 과거에 비하여 ‘만인이 자유로운’ 사회가 언제 어디선가 성립할 것으로 상정하고서 — 납득하고 나면, 역사는 발전하되, 비록 일직선적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장구한 시간”에 걸쳐 “무진장한 노역”을 치루면서 “회의”와 “절망의 길”을 걸어 자각적으로 자기와 부단히 대화함으로써 단계적으로 전진한다고 능히 파악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러하니 정신현상학, 정신의 역사, 곧 정신 “자신의 도야의 역정(歷程)”9)이 변증법적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하므로 이 ‘사실’은 오로지 변증법적 ‘논리’로만 파악될 수 있고, 서술될 수 있겠다.헤겔의 윤리 국가론은 이 같은 ‘사실’과 ‘논리’ 위에서 개진된 것

이다.

II. 헤겔에서 ‘윤리’ 개념현실은 정신의 객관적 외현인데, 정신의 본질은 자유이므로, 현실

이란 곧 자유로운 의지인 정신이 유한한 객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

7) Hegel, 정신현상학 : GW9, 19. 8) Hegel, 역사철학강의 : TW12, 31 참조. 9) Hegel, 정신현상학 : GW9,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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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목적들을 실재화해 가는 전개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자유 의지는 전개될 때에 일차적으로는 서로 다른 개별적 의지로 나

타나며, 이 개별적 의지들은 상호간에 특수성을 의식하고 있다. 자유 의지는 그렇기에 우선 주관적 의지에서 현존재를 갖는다. 그러나 의지의 이성성이 진정한 현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개별적 의지에 머물

러서는 안 되며, 세계 안에서 보편적으로 형태화되어야 한다. 그때 자유 의지의 내용들이 주관적인 “실천적 감정이나 충동에서 갖는 불순성과 우연성으로부터 해방되고”, “보편성에서 주관적 의지에 그것의 습관․성향․성격으로 새겨지면, 그 내용은 윤리(Sitte)가 된다.”10) ‘윤리’란 그러니까 개개 의지가 보편성을 가진 습관 또는 성향 내지는 성격이다. “습관과 성향으로서 주관적 의지 안에 있는”11) 보편적 규정이 윤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들의 보편적인 행위방식”으로서 이미 사회성을 갖는 윤리적인 것은 개인들에게는 “처음의 한낱 자연적인 의지”를 대신하여 정립된 “제2의 자연[본성]”이라 할 수 있다.12)

이 같은 윤리의 성격, 곧 윤리성(Sittlichkeit)은 객관적 정신과 주관적 정신의 합일이자 “객관적 정신의 진리[진상]”이다. 이른바 ‘객관적 정신’은 한편으로는 실재성에 의거한다는 명목 아래 “외부에서, 즉 물건에서” 자유를 찾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성의 명목 아래 ‘보편적인 것’에서 선을 추구하지만, 누가 그것을 추구하는가가 배려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추상적이고 일면적이다. 반면에 이른바 ‘주관적 정신’은 한낱 추상적으로-보편적인 것은 비주체적인, 따라서 아무런 자기결정도 없다는 이유에서 “자기의 내면적 개별성에서” 자기규정의 힘, 곧 자유를 찾지만, 그러나 외부 세계를 도외시 한다는 점에서 그 역시 일면적이다. 이 양자의 일면성들이 지양되는 지점에서, 주관적인 자유는 “보편적인 이성적 의지”로 있게 되는바, “이 의지는

10) Hegel, 철학백과요강 , §485.11) Hegel, 철학백과요강 , §486.12) Hegel, 법철학요강 , §15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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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인 주체성의 의식 안에서 자신에 대한 자기지[自己知]와 마음씨를 가짐과 함께, 또한 자기의 활동과 직접적인 보편적 현실성을 동시에 윤리[습속]로 갖는다.”13) 이런 보편적 현실성에서 개개의 주체성이 양심이다. 양심은 주관적

인 자기의식의 절대적인 권리 주장을 표현한다. 양심은 자기 권리 주장 혹은 정당화이되, 무엇이 정당한 권리이며 의무인가를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알며, 선으로 알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권리 주장이다. 이런 양심을 매체로 실현되는 “살아 있는 선”으로서 윤리란 “현재하는 세계로 된 그리고 자기의식의 자연본성이 된 자유의 개념이다.”14) 다시 말해 윤리란 자연으로 된 “자기의식적[자각된] 자유”이다.15) 윤리란 요컨대 존재가 된 당위를 말한다.자유 의지의 현존재로서 윤리는 ‘정당한 것’(das Rechte)으로서 다

름 아닌 ‘법’(das Recht)이자 ‘권리’(das Recht)이다. 이 보편적으로 정당한 것, 권리가 개별적으로 구별되는 주관적 의지에 대해서는 ‘의무’이기도 하다. 개별적 주관적 의지는 마땅히 보편적으로 정당한 것을 행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그러므로 자기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개인들의 권리는 그들의 의무

와 함께 윤리적 실체성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의 “특수성이란 윤리적인 것이 외면적으로 현상하는 방식이며, 이런 방식으로 윤리적인 것은 실존한다.”16) 이렇게 해서 윤리는 보편적인 의지와 특수한 의지가 하나가 되는 곳에서 현현하며, “인간은 윤리적인 것을 통해서 의무를 가지는 한에서 권리를 갖고, 권리를 갖는 한에서 의무를 갖는다.”17) 이런 맥락에서 “법/권리/정당한 것인 것은 의무이기도 하고, 의무인 것은 또한 법/권리/정당한 것이다.”18) 권리와 의무가 구별되

13) Hegel, 철학백과요강 , §513.14) Hegel, 법철학요강 , §142.15) Hegel, 철학백과요강 , §513 참조.16) Hegel, 법철학요강 , §154.17) Hegel, 법철학요강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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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지의 유한성으로 인한 것으로, 실체에 있어서 그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법’이자 ‘권리’인 것은 윤리를 지반으로 갖는 것으로서 그것이 “서 있는 곳이자 출발하는 점은 자유로운 의지이다. 그렇기에 자유는 법/권리의 실체와 규정을 형성하며, 법/권리의 체계는 실현된 자유의 나라이자, 정신의 그 자신으로부터 산출된 세계, 즉 제2의 자연이다.”19) “법/권리는 도대체가 이념으로서 자유”20)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실현된 자유, 곧 자연이 된 그러니까 존재하는 당위인 것이다.칸트는 “법/권리(Recht, ius)란 그 아래서 한 사람의 의사가 보편적

인 자유의 법칙에 따라 다른 사람의 의사와 합일될 수 있는 조건들

의 총괄”21)이며, 그렇기에 “행위가 또는 그 행위의 준칙에 따른 각자의 의사의 자유가 보편적 법칙에 따라 모든 이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 행위는 정당하다(recht, rectum)”22)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니까 정당한 것으로서의 ‘법’이란 ‘나의 자유와 의사를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서 만인의 의사와 공존할 수 있도록 제한함’을 주요 요소로 가지며, 이러한 제한 아래에 있는 행위만이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권리의 규정은 루소 이래로 특히 널리 퍼진 견해를 함유하는바, 그러나 이런 견해에 따르면 자유 의지의 실체적 토대는 각기 고유한 의사 안에 있는 개별자라는 것인데, 이런 견해는 그야말로 피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이’가 개개인 모두를 뜻한다면, 그런 의미의 모든 이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 ‘나’의 자유로운 행위는 도대체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설령 내가 자연 숲 속의 열매 하나를 ‘자유롭게’ 채취해도, 그것은 능히 누군가 나중에 그 숲에 들어 그것을 찾을 사람의 앞길을 막는 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권리의 토대는 개개인의 의사 그 이상의 “어떤 신성한

18) Hegel, 철학백과요강 , §486.19) Hegel, 법철학요강 , §4.20) Hegel, 법철학요강 , §29.21) I. Kant, 윤리형이상학 , Einl. in die Rechtslehre, §B: AA VI, 230.22) I. Kant, 윤리형이상학 , Einl. in die Rechtslehre, §C: AA VI,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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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23)으로서, “정신적인 것”24)이다. ‘법’이란 정신인 자유 의지의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객관적 이법(logos)이다.

III. 정신의 발전적 외현 살아 있는 실체인 정신은 자기 전개적인 것으로서, 정신의 제 역

과 제단계는 “정신이 자기의 이념 속에 함유되어 있는 더 많은 계기들을 자기 안에서 규정하고 현실화한 곳에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자기 안에서 보다 더 풍부하고 진실로 보편적인 단계에 이름으로써 보

다 높은 차원의 법을 갖는다.”25) 이렇게 자기 전개적인 정신으로서 “의지 안에서 스스로 관철해 나가는 사고작용”26)인 ‘이성적인’ 자유 의지는 자신을 3단계를 거쳐 객관화한다. 일차적으로 자유 의지는 “개별적 의지”, 곧 “인격”(Person)으로 현

상한다. 헤겔에 따르면, “결단함으로써 의지는 자신을 일정한 개체의 의지로서 정립하고, 자신의 밖으로 나와 다른 것에 대하여 자신을 구별하는 의지로서 자신을 정립한다.”27) 이 개체가 인간으로서는 개인이며, 그것은 ‘나’로서 표현된다. ‘나’란 의지 일반이라는 구별 없는 무규정성으로부터 ‘너’와의 구별로의 이행이며, 내가 나를 타자와 구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일정하게 규정된 것으로 정립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 이것이 나의 특수화 내지는 유한성의 계기이며,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현존재 일반 속에 발을 들여놓는다.”28) 사고하는 지성에게 있어서는 대상과 그 내용이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것이며, 지성 자신이 보편적인 활동성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인식에

23) Hegel, 법철학요강 , §30.24) Hegel, 법철학요강 , §4.25) Hegel, 법철학요강 , §30.26) Hegel, 법철학요강 , §21.27) Hegel, 법철학요강 , §13.28) Hegel, 법철학요강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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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보편적 진리가 말해진다. 그러나 의지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것이 동시에 본질적으로 “개별성으로서의 나의 것이라는 의의를 가진다.”29) 이 개별화된 의지가 인격인 것이다. 그러기에 자유는 일차적으로 이 인격을 매개로 현실화된다.인격이라는 결단하는 개별자는 제일 먼저 눈앞에 발견되는 자연과

실천적으로 관계 맺는다. 이 관계 맺음에서 “의지의 인격성은 자연에 대하여 하나의 주체적인 것으로서 대립한다.”30) 개별자로서 인격은 그러나 개별자인 한에서 제한을 갖는데, 그 제한을 지양하고 자신에게 실재성을 부여하려고 능동적으로 활동한다. 바꿔 말하면 인격성은 눈앞에서 발견된 자연을 자신의 것으로 정립하려고 하는 능동성이다. ‘인격’이란 자기에 맞서 있는 자연의 “제한을 지양”함으로써 “자기에게 실재성을 부여하여” 자연적 “현존재를 자기의 것” 곧 ‘소유’ (Eigentum)로 정립”하는 행위자인 것이다.31) 개별적 의지는 자기의 개별성을 “절대적”인, 그러니까 어떤 무엇에도 묶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텅 비어 있어서, “자기의 특수성과 충만을 아직 자기 자신에서 갖지 못하고, 외적 물건에서 갖는다.”32) 인격은 자기의 의지를 물건에 “집어넣음”33)으로써 물건을 소유하며, 이렇게 해서 물건은 인격의 주체적 자유의 외적 권역을 이룬다. 다시 말해 인격은 물건을 점유하게 된다. 인격은 이 “점유물의 직접적인 신체적 장악[취득]34)에 의해 또는 물건의 형태화35)나 순전한 표지[標識]36)에 의해 물건에서 자기의 일정한 알아볼 수 있는 현존재를 갖

29) Hegel, 법철학요강 , §13.30) Hegel, 법철학요강 , §39.31) Hegel, 법철학요강 , §39; 철학백과요강 , §487 참조.32) Hegel, 철학백과요강 , §488.33) Hegel, 철학백과요강 , §489.34) Hegel, 법철학요강 , §55 참조. 35) Hegel, 법철학요강 , §56 참조. 예컨대, 토지의 경작, 식물 배양, 동물 사육 같은 것.

36) Hegel, 법철학요강 , §58 참조. 예컨대, 점령지에 꽂는 국기 같은 것.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의 의미를 통한 현존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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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91

는다.”37) 자신을 개별적 독립체로 알고 있는 인격은 물건을 매개로 해서 다

른 인격들과 관계 맺고, 점유물을 통해 인정받는다. 그런데 인격은 그의 의지를 이 물건에 집어넣을 수도 있고, 저 물건에 집어넣을 수도 있으며, 그 물건에 넣었던 의지를 다시금 빼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때에 인격의 의지는 의사 내지 자의이고, 그래서 소유는 “우연적”38)이다. 한 인격의 소유로 있던 물건에서 그의 의지가 빼내지고, 그것에 다른 인격의 의지가 집어넣어짐으로써 그 물건은 다른 인격

의 소유가 될 수 있다. 곧 소유는 이전될 수 있다. 물건은 양도되고 취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물건을 “중간자”로 하는 두 의지 사이의 관계가 “계약”39)이다.

‘소유의 외화’(Entäußerung)로서 물건의 “이전”(Übergehen)이란 곧 ‘양도’(Überlassen)를 전제한다. 이전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양도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격이 그 안에 그의 의지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물건뿐이다.40) 그래서 헤겔은 “나의 가장 고유한 인격과 나의 자기의식의 보편적 본질을 구성하는” 그런 “실체적인 규정들”, 예컨대 “나의 인격성 일반, 나의 보편적 의지의 자유, 윤리성, 종교” 등은 양도될 수 없으며(unveräußerlich), 그러니까 이런 것들에 대한 권리는 결코 “시효가 없다”(unverjährbar)고 말한다. 물건과 같은 “외면적인 것에 있어서의 자유의 현존재”가 통상의

“법”이다. “이런 외면적인 것 및 다른 인격들과의 다수의 관계 맺음으로 귀착”41)하는 이런 법을 헤겔은 “형식적인 법” 또는 법적인 ‘역할’(persona) 외에 인간의 다른 면모는 도외시한다42)는 점에서 “추상

37) Hegel, 철학백과요강 , §491.38) Hegel, 철학백과요강 , §492.39) Hegel, 철학백과요강 , §492.40) Hegel, 법철학요강 , §65 참조.41) Hegel, 철학백과요강 , §496.42) H. Schnädelbach, Hegels praktische Philosophie, Frankfurt/M. 2000,

S.20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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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92

적 법”이라 일컫는다.외면적인 것, 물건에서 자신의 현존재를 갖는 자유의지가 이제 자

기 내로 반성하여 그 현존재를 자기 안에서 가질 때 “주체[관]적 의지의 법”43)이 성립하는데, 그것이 ‘도덕성’이다. 도덕성은 자유로운 주체[관]의 내면에서 정립되는 의지의 규정성으로서, 이 의지규정성의 법칙이자 실체가 선이다. 이 주체적 내지 도덕적 자유에 힘입어 “인간은 선악 일반의 구별에 대한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갖는다.”44)

“이 자유를 가진 의지의 활동적 외현이 행위이며, 이 행위의 외면성에서 의지는 오직 그가 그것에 대해 자기 자신 안에서 알고 의욕

했던 것만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고 책임을 진다.”45)

그러나 도덕성은 자기 내 모순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도덕성이 주체의 “내면적 개별성에서 자기규정적”46)이라는 성격을 갖는 데서

기인한다. 주체성이란 “자신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로 아는 자”47)이

다. 이제 도덕성이 주체적인 내면적 ‘당위’라는 것은 이미 객관적 실재와의 불일치를 함유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보편적이어야 할 선이 “비-객관적인, 오히려 단지 자기 자신에게만 확실한”48) 특수한 것일 수 있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이제 자유 개념의 자연적 직접적 형태인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법’

과 실재적 자각적 형태인 도덕성이 통일되는 데서 자유 개념은 자기

자신과의 합치, 곧 현실성을 얻는바 그것이 진정한 객관적 정신으로서 윤리성이다. 한낱 당위적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필연적인 도덕성, 다시 말해 “생각된 선의 이념이 자기 안에서 반성된 의지와 외적 세계 안에서 실재화된 것”49)인 윤리성은 “절대적 당위가 또한 존재이

43) Hegel, 철학백과요강 , §487.44) Hegel, 철학백과요강 , §503.45) Hegel, 철학백과요강 , §503.46) Hegel, 철학백과요강 , §513.47) Hegel, 철학백과요강 , §511.48) Hegel, 철학백과요강 , §512.49) Hegel, 법철학요강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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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93

기도 한,”50) 자유로운 의지의 현존재로서 “국민” 정신에서 마침내 그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주체 안에서 자기의 개념에 적합한 현실성이자 필연성의 전체성인 실체적 의지”51)인 ‘국가’야말로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성]인 것이다. “윤리의 나라”, 그것은 “이성적 자기의식의 자기 자신을 위한 실현”52)으로서, 여기에서 개개인은 “그들이 각자의 특성을 희생시키고 [전체라고 하는] 보편적 실체가 그들의 혼이며

본질이 됨을 통하여 ― 이 보편적인 것이 그들 개개인의 소행이며

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작품이 됨을 통하여 [또한 동시에] 각자가 독자적인 존재자임을 의식한다.”53)

IV.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로서 국가1. 구체적 자유의 현실태로서 국가

형식적으로는 “다수의 인격들이 참된 법률 아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54)인 국가는 실재적으로는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이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알며, 알고 있는 것을 아는 한에서 완수하는, 현현한, 자기 자신에게 분명한 실체적 의지인 윤리적 정신이다. 국가는 윤리[습속]에서 자기의 직접적인 실존을 갖고, 개인의 자기의식에서, 즉 개인의 앎과 활동에서 자기의 매개된 실존을 갖는다. 또한 이 개인의 자기의식은 마음씨를 통하여 자기의 본질이자 자기의 활동의 목적과

산물인 국가 안에서 자기의 실체적 자유를 갖는다.”55)

50) Hegel, 철학백과요강 , §514.51) Hegel, 철학백과요강 , §487.52) Hegel, 정신현상학 : GW9, 193.53) Hegel, 정신현상학 : GW9, 194.54) I. Kant, 윤리형이상학 , Rechtslehre, §45: “Ein Staat(civitas) ist die

Vereinigung einer Menge von Menschen unter Rechtsgesetzen.” 참조.55) Hegel, 법철학요강 ,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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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94

국가는 실체적 의지의 현실태로서, 국가는 이 현실태를 보편성으로 고양시킨 특수한 자기의식에서 가지며, 그러기에 국가는 그 자체로 그리고 반성적으로 “이성적인 것”이다. 특수한 의지와 보편적 의지가 실체적으로 일체를 이룸은 절대적인 자기 목적이며, 이 자기 목적 안에서 자유는 자기의 최고의 권리를 얻게 되고, 이 궁극 목적으로서의 국가는 개개인에 대해서 “최고의 권리”를 가지므로, 개개인의 “최고의 의무는 국가의 성원이라는 것이다.”56)

“국가는 구체적 자유의 현실태이다. 그런데 구체적 자유란 인격적 개별성과 그것의 특수한 이익[이해관심]이 완벽하게 전개되고 그 권리가 자체로 (가족 및 시민사회의 체계 안에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것들이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통해 보편자의 이익으로 이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앎과 의지를 가지고서 보편자의 이익을 더욱이 자기 자신의 실체적 정신으로 인정하여 그의 궁극목적인 이

보편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데에서 성립한다.”57) 국가는 “객관적 정신”인바 개개인이 특수성과 보편성, 즉 진리성을

얻는 것은 그가 국가의 일원일 때뿐이다. 타인들과 더불어 사는 개인들의 사명은 보편적인 생활을 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각각의 특수한 만족과 활동과 행동 방식은 국가라고 하는 보편타당한 실

체를 그 출발점이자 종점으로 갖는다. 이성적인 것이란 “보편성과 개별성이 상호 침투하여 통일을 이루는 것”58)이다.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인 국가에서 비로소 객관적 자유 즉 보편적 실체적 의지와 주체적

자유 즉 개인적인 앎 및 그의 특수한 목적들을 추구하는 개인적 의

지가 일체를 이루는데, 바로 여기에서 이성적인 것이 구체화한다. 국가 내에서 의무를 짊으로써 개인은 해방된다. “이 해방은 한편으

로는 그가 순전한 자연적 충동에 종속되어 있음으로부터의 해방이자

그가 주관적 특수성으로서 해야 함과 하고 싶음에 대한 도덕적 반성

56) Hegel, 법철학요강 , §258.57) Hegel, 법철학요강 , §260.58) Hegel, 법철학요강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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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95

에서 처하게 되는 의기소침으로부터의 해방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존재에 이르지 못하고, 즉 행위의 객관적 규정성에 이르지 못하고 자신 안에 비현실성으로 머물러 있는 무규정적인 주관성으로부터의 해

방이다. 의무 안에서 개인은 해방되어 실체적 자유가 된다.”59) 국가 내에서의 의무가 제한하는 것은 주관의 자의뿐이며, 충돌하는 것은 주관성이 붙들고 있는 추상적인 선뿐이다. 사람들이 보통 ‘우리는 자유롭기를 의욕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우리는 추상적으로 자유롭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국가 내에서의 모든 규정과 분절 즉 조직 체계는 이런 추상적 자유의 제한으로 볼 수 있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법이란 각자의 자유를 모든 사람의 자유와 부합하는 조건에 맞도록 제한하는 것이다.”60) 그래서 “각자는 자기의 자유를 타인의 자유와 관련하여 제한할 수밖에 없으며, 국가는 이런 상호적인 제한의 상태이고, 법률들은 제한들이라는 생각보다 더 널리 퍼져 있는 생각도 없다.”61)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 법률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유의 추상성을 제한할 따름이며, 그것은 부자유의 제한을 뜻한다. 국가 내에서의 법적 의무는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자유의 획득인 것이다. 실현할 수 없는 공허한 구호로서의 ‘자유’를 제한 받는 대신에 이제 개개인은 윤리에 합치함으로써 국가 내에서

실재적인 자유62)를 얻는다. 헤겔의 국가는 ‘자유주의 사회’는 아니지만, ‘자유로운 사회’이다.63)

59) Hegel, 법철학요강 , §149.60) I. Kant, AA VIII, 289-290: 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61) Hegel, 철학백과요강 , §539.62) ‘실재적인 자유’란 ‘즉자 대자적 의지의 자유’를 말하겠다. “자유의 본질은 인간의 개별적, 우연적, 자의적인 것의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인에게 연관되어 있는 보편적인 것의 실현에 있다.”(강성화, 헤겔 ≪법철학≫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3, 32면)

63) 홍 두, 「칸트의 공허한 형식주의적 도덕주관성에 대한 헤겔의 비판과 인륜적 자유의 이념 ― 헤겔의 「자연법논문」과 법철학강요 의 도덕성 편을

중심으로 ―」,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청구논문, 2001, 20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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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96

2. 개인의 궁극목적으로서 국가

의지의 자기규정만이 진정한 의지 개념의 요소이다. 그리고 의지의 현존재인 주체성야말로 의지 자신의 규정이다. 그러니까 주체성이 곧 의지라는 개념을 성립시키는 본질적 계기이다. “주체에서 비로소 자유는 자신을 실현한다. 주체가 자유 실현을 위한 진정한 재료이기 때문이다.”64) 인간의 존엄성은 그가 자신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는 데에 있다. 덜 된 인간은 외부의 강한 힘이나 자연이 정해주는 모든 것에 자신을 내 맡기며, 그래서 예컨대 노예는 주인에 의해, 어린 아이는 부모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도록 내버려둔다. 그러나 개발된 인간은 그 자신이 그가 행하는 모든 것 가운데 있고자 의욕한다. “주체성은 그 자체가 절대적 형식이며, 실체의 실존적 현실이며,” “자유 개념을 위한 실존의 토대이다.”65)

그렇다면, 주체인 이 개별적 인격들의 권리, 곧 “자유이도록 주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개인들의 권리”는 도대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그것은, 개별적 인격들이 “윤리적인 현실에 속함으로써”66)만

가능하다고 헤겔은 파악한다. 그리고 개별적 인격들의 윤리적 현실은 국민임에 있다. “그 안에서 절대적 당위가 또한 존재이기도 한, 자기를 자유롭다고 아는 실체는 한 국민[민족]의 정신으로서 현실성을 갖는다. 이 정신의 분열이 인격들로의 개별화이며, 정신은 이 인격들의 독립성의 내적 힘이자 필연성이다. […] 그래서 인격은 선택하는 반성 없이도 자기의 의무를 자기의 것으로 그리고 존재하는 것으로 완

수하고, 이 필연성 속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현실적 자유를 갖는다.”67)

국가의 일은 다수의 개인들과 관련하여 이중적이다. 국가의 일은

64) Hegel, 법철학요강 , §107, 추기.65) Hegel, 법철학요강 , §152.66) Hegel, 법철학요강 , §153.67) Hegel, 철학백과요강 ,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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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97

“한편으로 개개인을 인격으로서 보존하고, 그와 함께 법을 필연적인 현실로 만들고, 다음에는 일차적으로는 각자가 스스로 배려할 것이기는 하지만 단적으로 보편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안녕을

촉진하고, 가족을 보호하고, 시민사회를 지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일은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과 시민사회를 그리고 “스스로 중심이고자 애쓰는 자인 개별자의 전체 마음씨와 활동을 보편적 실체

의 생으로 복귀시키고, 이런 의미에서 자유로운 힘으로서의 그에게 복속된 저 권역들에 간섭하고, 그 권역들을 실체적 내재에서 보존하는 것이다.”68) 살아 있는 정신으로서 국가는 “특수한 활동들로 구별되어 있는 유

기적 전체”69)로서 분절된 개별자들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그 생명성은 분절된 개별자들의 순전한 묶음 이상의 것이다. 개별자들의 활동들은 비록 충분히 의식되어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이성적 의지의 ‘하나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지속적으로 그 개념을 그 활동들의 결과로서 생산한다.”70) 그러하기에 국가는 개인들의 궁극목적으로서, 개인들이 국가에 귀속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국가계약론자의 소견처럼 “만약 국가가 시민사회와 혼동되어 국가

의 사명을 소유와 인격적[개인적] 자유의 안전과 보호에[만] 두어진다면, 개인들 자신의 이익이 곧 최종 목적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위해 통합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로부터는 국가의 성원이라는 것이 임의적인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그러나 국가는 개인에 대하여 전혀 다른 관계를 갖는다. 즉, 국가는 객관적 정신이므로, 개인 자신은 그가 국가의 성원인 한에서 객관성과 진리성 그리고 윤리성을 갖는

다. 이 [개인과 국가의] 통합 자체가 진실한 내용이자 목적인 것으로, 개인들의 사명은 보편적 삶을 위하는 것이다. 그들의 그 이상의 특수한 충족, 활동, 행태양식들은 이 실체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출발점

68) Hegel, 철학백과요강 , §537.69) Hegel, 철학백과요강 , §539.70) Hegel, 철학백과요강 ,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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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98

이자 귀결로 갖는다. ― 이성성[합리성]은 추상적으로 고찰해보면 대체로 보편성과 개별성의 서로 침투하는 통일 속에 들어있으며, 여기서 구체적으로 내용의 면에서 보자면 객관적 자유, 다시 말해 보편적 실체적 의지와 개인적 앎과 개인적인 특수한 목적들을 추구하는 의

지인 주관적 자유의 통일에 들어있다. ― 그 때문에 형식의 면에서 보자면 이성성[합리성]은 사고된, 다시 말해 보편적인 법률들과 원칙들에 따라 규정된 행위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 이러한 이념이 정신의 즉자대자적으로 원하고 필연적인 존재[임/있음]이다.”71)

루소(J.J. Rouseau)는 “의지를 단지 개별적 의지의 특정한 형식으로 파악했고, 보편적 의지를 의지의 즉자대자적으로 이성적인 것으로가 아니라, 단지 의식된 것으로서 이 개별적 의지로부터 나온 공통적인 것(Gemeinschaftliches)으로 파악함으로써, 국가 내에서 개인들의 통합을 개인들의 의사, 의견, 임의의 표현된 동의를 토대로 갖는 계약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이로부터는 즉자대자적으로 신적인 것과 이것의 절대적 권위와 존귀성을 파괴하는 한낱 지성적인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보기에 “국가에 들어간다거나 떠난다는 것은 개개인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국가는 자의를 전제로 하는 계약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다.”72) 그러므로 국가를 설립하는 것은 인민들의 계약 참여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국가계약설은 근거

가 없다는 것이 헤겔의 판단이다.73) “누구에게나 있어서 그가 국가 내에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다.”74) 개별자들이 그것을 인식하거나 말거나 또 그것을 의욕하거나 말거나 간에 “객관적 의지는 그 자체에서 그의 개념상 이성적이라는 것이다.”75) 근대에 와서 국가의 이념은

71) Hegel, 법철학요강 , §258.72) Hegel, 법철학요강 , §75, 추기.73) Hegel, 역사철학강의 : TW12, 61 참조. 이와 관련한 정치철학적 설명은 이재성, 「헤겔의 정치 철학에 대한 일고」, 수록: 헤겔철학과 정신 ( 헤겔연구 12), 한국헤겔학회, 2002, 296면 이하 참조.

74) Hegel, 역사철학강의 : TW12, 61.75) Hegel, 법철학요강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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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99

바로, “국가란 주관적 임의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 [객관적] 의지의 개념에 따라서, 다시 말해 의지의 보편성과 신성[神性]에 따라서 자유를 실현한다”76)는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 헤겔의 생각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규정이자 국가의 내

적 힘을 담지하는 것은, 국가가 보편성과 특수성의 합일이라는 점이다. 사적인 역에 대해, 다시 말해 개인이나 가족, 시민사회에 대해 국가는 외적 강제성을 가진 고차적인 지배력을 갖지만, 그 지배력은 국가의 보편적 궁극목적과 개인의 특수한 이익이 통일되는 곳에서만

타당성을 갖는 것이다. 개인은 국가에 대해서 의무를 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리를 갖는 한에서 그러한 것이다. “진실로 특수한 이익[이해관심]은 등한시되거나 결코 억압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보편적인 것과 합치되도록 해야 하거니와, 그를 통해 특수한 이익 자체와 보편적인 것은 함께 보존된다.”77)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국가가 의무로 요구하는 것은, 국가라는 것이 자유 개념의 조직화일 따름이기에, 또한 직접적으로 개인의 권리/법이기도 하기”78)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의 규정들은 국가를 통하여 객관적 현존성을 얻게 되고, 국가를 통해 비로소 진상에 이르고 실현된다. 국가는 특수한 목적과 안녕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79) 그러므로 “사회에서 개별화되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개인은 오로지 민족[국민]과 국가의 인륜[윤리]성 속에서만 자신의 근거를 유지할 수 있다.”80) 국가 안에서 “법률들은 객관적 자유의 내용규정들을 언표한다.”81)

“모든 참된 법률은 하나의 자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객관적인 정신의 이성규정을 함유하며, 그럼으로써 자유의 내용을 함유하고 있기

76) Hegel, 법철학요강 , §260, 추기.77) Hegel, 법철학요강 , §261.78) Hegel, 법철학요강 , §261, 추기.79) Hegel, 법철학요강 , §261, 추기.80) G. 괼러, 「헤겔의 시민사회와 국가의 구별에 관한 새로운 숙고」, 수록: 헤겔과 근대정신 (헤겔연구, 9), 한길사, 2000, 239면.

81) Hegel, 철학백과요강 ,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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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00

때문이다.”82) 앞서도 지적되었듯이, 법률들은 일차적으로 개개 “주체의 독자적인 자의와 특수한 이해관심에 대해서는 제한들”이다. 그러나 법률들은 “서로 다른 일반적인 특수화에서 다시금 개별화되는 신분계층들의 기능들에 의해, 그리고 개인들의 일체 활동과 사적 심려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서 “절대적인 궁극목적이며 보편적인 작품”이다. 법률들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욕 및 마음씨의 실체이고, 그래서 타당한 윤리[습속]로 드러나는”83) 것이다. 국가는 그 안에서 특수와 보편, 권리와 의무, 당위와 존재가 합치

하는 “윤리적 전체”(das sittliche Ganze)이다. “전체란 자신의 전개를 통해 자기를 완성하는 것”84)이기에, 그 자체로 자유이며,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자유의 현실화”85)이다. 또한 권리이자 법이고 법이자 정당한 것인 것의 체계인 국가는 “실현된 자유의 나라”86)이다. 자유의 현실화야말로 이성의 절대적 목적으로서, 국가는 세계 내에 있는, 세계 내에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실현하는 정신이다. “국가가 있다는 것은 세계 내에서의 신의 행보이며, 국가의 근거는 자신을 의지로서 실현하는 이성의 권력이다.”87) 그렇기 때문에 “국가 안에서 사람들은 이성성의 표현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욕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정신이 스스로 이룩한 세계이다. 그래서 국가는 일정한, 즉자대자적인 행보를 갖는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국가를 지상의 신적인 것(Irdisch-Göttliches)으로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88)

82) Hegel, 철학백과요강 , §539.83) Hegel, 철학백과요강 , §538.84) Hegel, 정신현상학 : GW9, 19.85) Hegel, 법철학요강 , §258, 추기.86) Hegel, 법철학요강 , §4.87) Hegel, 법철학요강 , §258, 추기.88) Hegel, 법철학요강 , §272, 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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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101

3. 윤리적 생의 형태화로서 입헌군주제 국가

“그 자신의 모든 이성적 규정들의 발전 가운데에 있는 자유의 현실성으로서 실존하는 정의(Gerechtigkeit)”89)가 국가의 기본틀인 헌법

이다. 그것은 국가의 확고한 토대이자 국가에 대한 개인들의 신뢰와 신념의 토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정한 국민의 헌법은 대체로 그 국민의 자기의식의 방식과 교양형성에 달려 있다.” “국민의 자기의식 속에 국가의 주관[체]적 자유와 함께 헌법의 현실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정신은 그가 스스로 알고 있는 바 그것으로서만 현실적이고, 국가는 국민의 정신으로서 동시에 모든 자기의 관계들을 침투하는 법률, 윤리습속과 그 국가의 개인들의 의식”이다. “그 때문에 각각의 국민은 각자에게 알맞고 또 그에게만 속하는 헌법을 가지고

있다.”90) “헌법은 정신 자신의 전개와 동일하게 정신으로부터 전개된 것일 뿐이며, 동시에 정신과 함께 개념에 의한 필연적인 형성과정과 변화들을 관통해온 것이다. 그에 의해 헌법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국민에] 내재하는 정신이며 역사이다. ― 그것도 이 역사는 오로지 정신의 역사일 따름이다. ―”91)

‘자연적 감정으로써 “하나의 인격”92)’이 되는 “가족의 원리”와 각자가 자기의 목적인 “원자론의 체계”93)인 “시민사회의 원리”의 “통일”94)을 그 진리로 갖는 ‘국가’의 권력은 통상 셋으로 구별되어, “a) 보편적인 것을 규정하고 확립하는 권력 ― 입법권(die gesetzgebende Gewalt), b) 특수 권역과 개별적 사안들의 보편적인 것 아래로의 포섭 ― 통치권(die Regierungsgewalt), c) 최종적 의지결정으로서의 주체성 ― 군주권(die fürstliche Gewalt)”으로 작동하거니와, “이 군주

89) Hegel, 철학백과요강 , §539.90) Hegel, 법철학요강 , §274.91) Hegel, 철학백과요강 , §539.92) Hegel, 철학백과요강 , §519.93) Hegel, 철학백과요강 , §523.94) Hegel, 철학백과요강 ,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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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02

권 안에 구별된 권력들이 개별적 통일성으로 총괄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군주권은 전체, 즉 입헌군주제의 정점이자 기점이다.”95) “자유와 평등이 헌법의 근본규정이자 최종 목표이고 결과를 이루는 것”96)

임이 전제되어 있으되, “전체를 절대적으로 결정하는 계기는 그러니까 개별성[개인들] 일반이 아니라, ‘한’ 개인, 즉 군주이며”, 이렇게 볼 때 결국 “국가의 인격성은 한 ‘인격’, 즉 군주로서만 현실적이다.”97)

“국가의 입헌군주제로의 형성은 실체적 이념이 무한한 형식을 획득한 근대 세계의 작품이다. 세계의 정신이 자신 안으로 이렇게 심화한 역사, 또는 같은 말이지만, 이념이 자기의 계기들을 ― 오로지 자기의 계기들인 것만을 ― 전체성으로서 자신으로부터 방면하여, 그것들을 실재적인 이성성이 존립하는 곳인 개념의 이상적 통일성 안에

포함하는 이 자유로운 형성, ― 윤리적 생의 이 진정한 형태화의 역사가 보편적 세계사의 일이다.”98) “하나의 법정”99)으로서 세계사는

“정신의 힘의 한갓된 법정, 다시 말해 맹목적인 운명의 추상적이고 몰이성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 이성의 계기들이 그리고 그와 함께 정신의 자기의식과 정신의 자유가 오로지 정신의 자유라는 개념

95) Hegel, 법철학요강 , §273.96) Hegel, 철학백과요강 , §539.97) Hegel, 법철학요강 , §279. 보편적 정신이 한 개인인 군주를 통해 체현된다는 헤겔의 파악이 오늘날에 와서 그다지 많은 동조자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이와 관련해서는 H. Schnädelbach, Hegels praktische Philosophie, Frankfurt/M. 2000, S.312 이하 참조. 또 강성화, 헤겔 ≪법철학≫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3, 113면 이하 참조.) 그러나 국가의 의지를 보편적으로 언표하는 한 개인, 곧 ‘국가의 원수(元首)’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헤겔의 입헌군주제는 비록 현재적 적실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가 제시한 권력의 실현방식은 정치통합의 관점에서 아직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원준호, 「포스트구조주의의 헤겔 정치철학 비판에 대한 반(反)비판 ― 헤겔에서의 가족과 국가의 가부장성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을 중심으로 ―」, 수록: 헤겔과 포스트구조주의 [ 헤겔연구 16], 동과서, 2004, 135면)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98) Hegel, 법철학요강 , §273.99) Hegel, 법철학요강 ,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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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103

으로부터 전개된 것, 즉 보편적 정신의 개진이자 그 실현”100)이니 말

이다. 국가의 성립근거인 이성은 곧 “세계정신”101)이며, 이 세계정신은

개개인들의 이해관심과 욕구와 정열을 매체 삼아 자신을 전개해 간

다. 이해관심에 매인 개별자로서 개인들은 “이성의 책략”102)에 따라

서로를 제한하고 대립하고 투쟁하지만 그것을 통해 보편자인 이성은

자신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한다. 그렇기에 현실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이성은 마침내 현실화한다. “이성적인 것, 그것은 현실적이며, 또 현실적인 것, 그것은 이성적이다.”103)

충분히 이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개별자들의 진정한 주체는

세계이성이고, 보편적인 것이며, “진상은 전체”104)이되, 그 전체는 다름 아닌 당위가 존재이고 존재가 당위인 ‘윤리적 전체’이다. “개개 인격은 당연히 윤리적 전체에 자신을 바쳐야만 하는 종속적인 것이

다. 그러므로 만약 국가가 목숨을 요구하면, 개인은 그것을 제공해야만 한다.”105) 그런 사태연관 속에서도 개인들을 전적으로 수단만으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그 자체로 원하고 신적인 것” 즉 “도덕성, 윤리성, 종교성”이다.106) 이런 성격들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보아져야 한다. 그렇기에 개개인은 윤리적 전체의 성원이면서도 보편적 이성과 하나이다.

100) Hegel, 법철학요강 , §342.101) Hegel, 역사철학강의 : TW12, 40.102) Hegel, 역사철학강의 : TW12, 49.103) Hegel, 법철학요강 , 서언: TW7, 24.104) Hegel, 정신현상학 : GW9, 19.105) Hegel, 법철학요강 , §70, 추기.106) Hegel, 역사철학강의 : TW12, 4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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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윤리 국가’ 이론 107

ABSTRACT

Hegel’s Theory of Ethical State

Paek, Chong-Hyon

Although the theory of social contract is important as a theory of modern state, whether the state is the product of the arbitrary contracts by citizens is still a controversial issue. It is the state that came to be in order to protect individuals’ life and security. For this reason, I argue that Hegel’s theory of the ethical state which describes the state as a thing beyond the composition of individuals, namely ‘ethical totality’ is valid.

Hegel’s ‘ethical state’ is the fruit of twofold dialectic sublation. According to Hegel, law, morality and ethics are the exterior modes of the practical human spirit, that is, liberty. Firstly, law constrains external human actions. Law is objective, but in the constraint of human actions the subjectivity of personality is entirely abstracted. So Hegel calls this ‘abstract law’ or ‘formal law.’ On the other hand, morality is what is regarding the internal. However, it is arbitrary and has no objectivity which, after all, has no basis in objective reality. Lastly, ethics in regards to ‘abstract law’ and ‘morality’ combines the objectivity of abstract law and the subjectivity of the morality in a dialectic sublation. So then, it has objective subjectivity or subjective objectivity. It is expressed as the constitution of the state.

Meanwhile, ethics is an actualization by the medium of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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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l society and the state which are all the modes of social life of human beings. In other words, constituents’ personality as a natural feeling is the principle of family and the system of atomism as each constituent’s own goal is the principle of civil society. What constitutes the unity of the above two principles as truth is the state. Therefore, the state is familial-civil-society or civil-societal- family. That is, the state is a totality like civil society in which all the constituents exist as individual beings and come to be a personality through their mutual love. The sovereignty of this state is represented by a monarch like the head of a household. Hegel considers this state as the actuality of ethical Ideas.

We should give attention to the historical records where typical totalitarian states of the last century have become formed on the basis of Hegel’s ethical state. The resulting differences between theory and history reality will be important in validifying social theories. For all that, in the case of considering the state as a thing beyond all the constituents’ association, Hegel’s theory of ethical state should not be neglected as an example of the theory of an ideal state.

Keywords: Liberty, Spirit, Ethics, Law,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