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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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은 직관적으로는 강력한 호소력이 있지만, 조금만 자 세히 따져보면 사람의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 적합하지 않음이 드러난 다. 본 논문은 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을 탐색한다.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기억 이론이 형이상학적 동일성과, 그와 상이한 어떤 심리적 관계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심리적 관계는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자기-동일 (self-identification)의 관계라고 제안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증을 제시한다. 이 논 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기억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직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현상이다. 필자는 이 현상이 보이는 바는 자기-동 일화와 기억의 연속성 간에 구성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 제 심리철학, 형이상학 주요어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일인칭적 믿음, 자기-동일화(self-identification), 오 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 : 2018. 05. 23 : 2018. 06. 19 : 2018. 06. 20 2014 ( ) (NRF-2014S1A5B5A01015382). . 39 (2018) pp.13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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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권 홍 우

    12)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은 직관적으로는 강력한 호소력이 있지만, 조금만 자

    세히 따져보면 사람의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 적합하지 않음이 드러난

    다. 본 논문은 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을 탐색한다.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기억 이론이 형이상학적 동일성과, 그와 상이한 어떤 심리적 관계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심리적 관계는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자기-동일화”(self-identification)의 관계라고 제안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증을 제시한다. 이 논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기억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직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현상이다. 필자는 이 현상이 보이는 바는 자기-동일화와 기억의 연속성 간에 구성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 제 심리철학, 형이상학

    주요어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일인칭적 믿음, 자기-동일화(self-identification), 오

    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 투고일: 2018. 05. 23 심사 및 수정완료일: 2018. 06. 19 게재확정일: 2018. 06. 20† 이 논문은 2014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NRF-2014S1A5B5A01015382). 본 논문에 대한 유용한 지적을 해주신 철학적 분석의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철학적 분석 39 (2018) pp.137-162

  • 138 권 홍 우

    1. 서론

    사람의 동일성(personal identity)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가장 영향력 있

    는 견해를 꼽자면 단연 “기억 이론”(memory theory)이다. 이 이론에 따르

    면, 과거의 어떤 사람을 지금의 나와 동일인이게끔 하는 것은 영혼(그런 것

    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의 동일성이나 육체의 동일성이 아니라 기억의 연

    속성이다. 가령, 4세 때의 나1)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인 것은 4세 때의 그

    어린이가 경험했던 것들, 행동했던 것들을 지금의 내가 (내적인 관점에서)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가 가진 직관적 호소력은 강력하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

    어보자. 당신이 뇌의 치명적인 종양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며칠 안

    에 죽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하자.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 받는다.

    한 가지는 종양 제거 수술을 받는 것이다. 단 이 수술을 받으면 그 이전까지

    의 기억을 깡그리 잊은 채 완전히 “새 사람”처럼 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당신의 기억을 다른 사람의 두뇌에 “이식”하는 것이다. 기억을 이

    식하는 수술 뒤에 당신이 깨어나면,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이 삶을 지속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선택에 직면한다고 가정할 때, 많은 사람들은 망설

    임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기억의 연속성을 생존의 기준

    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또 한 가지, 이미 비철학자들 사

    이에서도 잘 알려진 사례를 들어보자. 어떤 미래학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사람의 기억을 인공지능체에 “업로드”하여, 그 사람이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

    들은 대개 그런 인공지능이 가능할지를 의심할지언정, 그것이 “영생”을 누

    리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 같지 않다. 이 역시 사람들

    1) 여기서 “4세의 나”와 “지금의 나”라는 표현은 모두 “나”를 포함함으로써 둘의 동일성을 이미 가정하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엄격히 표현하자면, “4세 때의 나로 여겨지는 어떤 아이”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번거로움을 피해서 앞으로도이런 식의 표현을 사용하겠다.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39

    이 동일성의 기준을 기억의 연속성에서 찾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이론

    으로서의 기억 이론은 상당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위에 언급했던 시나

    리오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자. 만일 하나의 인공지능체가 아니라

    두 개의 인공지능체에 내 기억이 업로드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와 동일한

    두 인격체(이를 A와 B라 부르자)가 생기게 될 것이다. 사람의 동일성에 대

    한 기억 이론에 따르면, 이로부터 A와 B가 동일하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반직관적인 귀결이다. 그 두 인격체는 여느 두 사람과

    같이 서로 대화도 가능할 것이며, 서로 싸울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

    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본래의 직관적 호소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기억 이

    론을 구제하는 것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기억 이론은 딜레마에 직면하

    는 것 같다. 한편으로 사람의 동일성이 기억의 연속성에 기반한다고 믿을

    만한 강력한 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이 이론이 사람의 동일성

    에 대한 이론으로서 적절치 못하다고 볼 좋은 이론적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철학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 “직관”이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강력한 이유가 있다면 직관을 포기하면 될 일이다. 하지

    만 사람의 동일성 문제는 이런 점에서 특수한 위상을 갖는다. 사람의 동일

    성의 문제가 “생존”에서 우리 자신이 중요시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

    다. 기억 이론은 사실은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이 어떤 조건에서 동일

    한가에 대한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그와 혼동되기 쉬운

    어떤 다른 관계에 대한 이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다면, 애초의

    딜레마는 두 개념을 혼동하는 데에 기인한 착각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 것

    이다.

    이런 전략의 예로 볼 수 있는 견해들이 몇몇 저명한 철학자들에 의해 시

    도된 바 있다. 잘 알려졌듯이 데렉 파핏(Derek Parfit)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

  • 140 권 홍 우

    작 Reasons and Persons 및 몇 편의 논문에서 형이상학적 동일성과 생존에서 “중요한 것”(what matters)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역설하였고, 후자를 “관

    계 R”이라 불렀다.2) 파핏은 기억을 포함한 심리적 연속성에 기반을 둔 것은

    동일성이 아니라 바로 이 관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보다 최근에 데이

    빗 벨만(David Velleman)은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논의에서 두 가지 문제

    가 혼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는 형이상학적 동일성이고, 다른 하나

    는 그가 “관점적 동일성”(perspectival identity)이라 부른 것인데, 그는 기억

    의 연속성이 뒷받침하는 바가 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3)

    필자는 이런 종류의 견해가 가진 핵심적인 통찰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런 견해들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발전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형이상학적 동일성과 혼동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결여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관계

    가 독립적으로 이해가능하고 또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있는 어떤 다른 개념

    을 통해서 해명이 되지 않는 한, 이런 입장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문

    제가 되는 개념에 단순히 이름을 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에 필자가 본 논문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동일성의 기억 이론에

    대한 논의에서 형이상학적 동일성과 혼동되어 온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 제안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필자는

    소위 “일인칭적 믿음”(first-personal belief)이라 불리는 일단의 믿음에 대한

    논의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다. 이러한 믿음에는 명제적 요소로는 포착되지

    않는 “자기-동일화”(self-identification)라 불릴 수 있는 심리적 관계가 연루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기억의 연속성이 지지하는 관계는 형이상학

    적 동일성이 아닌 자기-동일화의 심리적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기억 이론이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이 아닌 자

    기-동일화의 관계에 대한 이론임을 뒷받침하는 독립적인 근거가 있음을 주

    2) Parfit (1971, 1984).3) Velleman (1998), 특히 4절을 볼 것. 필자가 제시할 견해는 벨만의 견해와 어떤 점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이를 일일이 지적하지는 않겠다.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41

    장하겠다. 이를 위해 필자는 종종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을 지지하는 직

    관적 근거로 여겨지는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immunity to error

    through misidentification) 현상에 주목한다. 필자는 이 현상을 제대로 해석

    하면, 기억 이론이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자기-동

    일화의 관계에 대한 이론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타당함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하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우선 2절에서 사람의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 기억 이론이 갖는 문제점들을 간략

    하게 개괄하면서 논의를 시작하겠다. 그 후의 논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3절과 4절에서는 “자기-동일화”의 관계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기억의

    연속성이 지지하는 관계는 형이상학적 동일성이 아니라, 자기-동일화의 관

    계라고 제안한다. 5절과 6절에서는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에 대한 재

    해석을 통해서 이에 대한 독립적인 논증을 제시한다. 7절에서 이런 견해를

    “미래의 자아”로 확대하는 문제를 간략히 논의하고 논문을 마치겠다.

    2. 사람의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기억 이론의 문제점

    필자가 본 논문에서 수행하려는 작업에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기억 이론이 갖는 문제점을 개략적으

    로 지적하면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다.

    기억 이론: S가 X가 했던 일들, 경험했던 바 등등을 기억할 경우 오직 그

    경우에 S는 X와 동일인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여기서의 경험이 “내부로부터의”(from the inside)

    또는 “일인칭적인 관점”에서의 기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

  • 142 권 홍 우

    는 점이다. 가령, 나는 내가 어젯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치질을 했다고

    판단하는데, 이는 내가 양치질 할 당시에 내가 내 관점에서 경험했던 바를

    그대로 기억함으로써 내리는 판단이다. 이하에서 “기억”은 항상 이런 종류

    의 기억만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기로 하겠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견해가 가진 직관적 호소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령,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은 5세 즈음에서 멈춘다. 즉, 나는 3세 때에 내가 했던 것들과 경험했던 것

    들에 대한 기억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기억 이론은 3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이 아니라고 판정하지 않는가? 이것은 명백히 반직

    관적이다. 또 내가 어제 밤에 술을 많이 마시고, 소위 “필름이 끊겨서” 아무

    런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기억 이론에 따르면 술에 취했던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내가 당시에 저질렀던 일에 대해

    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 아닌가?4)

    언뜻 보기에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기억에 의

    한 직접적인 연결뿐만 아니라, 기억의 연속성에 의한 “간접적” 연결도 포함

    하도록 기억 이론을 수정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5세 때 내가 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5세 때의 나는 3세 때의 내가 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므

    로, 3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기억의 연속성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

    다. 술에 취한 경우도 비슷하다. 술 취했을 때의 나는 아마도 술을 마시기

    직전의 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지금의 나 역시 술 마시기

    직전의 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의 나와 술에 취했을 때의 나

    는 기억의 연속성에 의해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애초의 기억 이론에 대한 비교적 간단한 수정이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되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기억 이론을 이런 식으로 수정하는 것은 기억 이론이 갖는 직관적 호소력을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다. 기억 외의 어떤 외적인 요소가 사람의 동

    4) 이런 종류의 반론은 기억 이론에 대한 근세의 논의 때에도 잘 알려졌던 것이다. 가령, Perry (1975)에 실린 버틀러의 로크에 대한 반론을 볼 것.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43

    일성에 중요함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점에서 이런 해결

    책은 지나치게 강하다. 가령, 내가 1000년의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해보자.

    약 500년이 지나면 지금 가진 모든 기억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수정된 기

    억 이론은 기억의 간접적인 연결성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의 나와 500년 후

    의 나를 여전히 동일인이라고 판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다지 직관적이

    지 못하다. 기억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동일성도 “약화”된다고 보는 것이 직

    관적으로 더 적절치 않은가?5)

    하지만 기억 이론은 이 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다. 본 논문

    의 서두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던 소위 “복제 문제”(the duplication problem)

    가 그것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기억은 일종의 정보이며, 그런 점에서 쉽게

    복제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나의 기억은 두 사람(또는 두 기

    계)에게로 이식될 수 있다. 기억 이론은 이 두 사람 모두를 나와 동일한 사

    람으로 판정하게 될 것인데, 이는 명백히 불합리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기억 이론을 적절히 수정해서 그것을 살리려는 시도

    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경쟁 없음” 규칙을

    추가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는 기억의 연속성의 기준에다가, 기억의

    연속성을 가진 대상이 둘 이상이면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결책 역시 기억 이론이 애초에 가졌던 직관적 호소력을 상당

    히 약화시키는 것이다. 기억의 연속성과는 무관한 외적인 요소가 사람의 동

    일성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기억의 연속성 자체가 동일성을 뒷받침하기에는 부

    적절하다는 것이 애초부터 분명했어야 했다. 기억의 연속성은 동일성의 관

    계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형식적인 성질조차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

    다. 동일성의 관계는 재귀적이고, 대칭적이고, 이행적이지만, 기억의 연속성

    은 이런 성질을 만족시킨다는 보장이 없다. 설사 기억의 연속성 개념을 이

    용해서, 이런 성질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관계를 성공적으로 정의해 낼 수

    5) 데이빗 루이스는 성서에 969년을 산 것으로 기록된 메두셀라의 예를 들어 이런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Lewis (1976), pp. 65-6을 볼 것.

  • 144 권 홍 우

    있다 한들, 이런 관계가 애초의 기억 이론이 갖는 직관적 호소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이 틀렸다고 결론내리는 게 옳

    을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애초에 기억 이론이 가졌던 직관적 호소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그럴듯한 생각은 사

    실은 기억의 연속성이 지지하는 것이 사람의 동일성이 아니라 그와 혼동하

    기 쉬운 어떤 다른 관계라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는 과연 이 관계가 무엇인

    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하의 논의에서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그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

    3. 일인칭적 믿음과 “자기-동일화”

    필자가 일인칭적 믿음이라고 일컫는 것은 기존의 문헌에서 “지표적 믿

    음”(indexical belief), “데 세(de se) 믿음”, “자신을 위치지우는(self-

    locating) 믿음” 등등으로 불려온 것이다. 이런 믿음을 특징지우는 한 가지

    편리한 방법은, 이를 “나”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문장을 통해서 적절히 표현

    될 수 있는 믿음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배고프다,”

    “나는 당뇨병이 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것은 나의 전

    화기이다”와 같은 문장으로 표현할 만한 믿음이 모두 일인칭적 믿음에 해당

    한다.

    일인칭적 믿음은 기존의 믿음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

    키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6) 믿음에 대한 기존의 철학적 이해의 핵심은 다

    음과 같다. 첫째, 믿음은 주체가 믿음의 대상, 곧 그 명제적 내용에 대해서

    갖는 태도로 이해된다. 둘째, 믿음의 명제적 내용은 절대적인 참, 거짓의 담

    지자로서, 공유되고 소통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6) 일인칭적 믿음의 특수성을 지적한 고전적인 저작으로 Perry (1977), Perry (1979), Lewis (1979) 등등이 있다.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45

    하지만 일인칭적 믿음은 이런 이해로 완전히 포착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7) 철수는 “나는 강도에

    게 좇기고 있다”라고 외친다. 조금 떨어져서 이 말을 들은 영희는 철수를

    가리켜, “너는 강도에게 좇기고 있다”라고 말할 위치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이 정확히 동일한 명제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볼만한 좋

    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즉 두 사람은 모두 철수(철수가 “나”로 지칭하고,

    영희가 “너”로 지칭한 사람)가 강도에게 좇기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믿음에는 무언가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직

    관적으로 말해서 철수만이 강도에게 좇기고 있는 그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강조할 것은, 위의 경우 두 사람의 믿음 사이에 차이가 있다 판단

    은 단순히 직관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의 예에서 철수와 영

    희가 같은 명제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리고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은 확실히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가령, 철수는 그 강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고, 영희

    는 그를 돕는 방식으로 (가령, 경찰에 신고를 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행동

    을 할 것이다. 이는 일인칭적 믿음의 특수한 요소에 고유한 모종의 기능적

    역할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어떤 심리적 요소가 행동에 있어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요소가 실재함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일인칭적 믿음의 경우 그 명제적

    내용 외에 그것을 구성하는 어떤 추가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8) 어떤 철학

    자들은 이를 (프레게적인 방식으로) “S에게 X가 일인칭적 방식으로 제시된

    다”(X is presented to S in a first-personal way)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S가 X를 일인칭적 방식으로 생각한다”(S thinks of X in a first-personal

    way)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S가 X를 자기 자신

    7) 이는 존 페리에 기인한 유명한 예를 각색한 것이다. Perry (1977), p. 494를 볼 것. 8) 어떤 철학적 주장에서나 그렇듯이, 이것이 만장일치로 동의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최근에 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영향력 있었던 견해로 Cappelen & Dever (2014)가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 논증을 전개하는 것은 본 논문의 범위를 넘어선다.

  • 146 권 홍 우

    으로 여긴다”(S identifies himself as X)라고 하여 표현하도록 하겠다. 어떤

    식으로 표현되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일인칭적 믿음의 특수한 요소는 주체가

    어떤 대상과 맺는 2항 관계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필자는 일인칭적 믿음이 다음과 같은 두 요소로

    분리될 수 있다고 가정하겠다.

    (i) S는 X는 F라고 믿는다.

    (ii) S는 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 (S identifies himself as X).9)

    여기서 첫 번째 요소 (i)은 (이를 명제적 요소라 부르자) 다른 사람과 공유

    할 수 있는 명제적 믿음에 해당한다.10) 가령, 철수가 “나는 강도에게 좇기고

    있다”라고 말하고, 영희가 철수를 가리켜, “너는 강도에게 좇기고 있다”라

    고 할 때, 두 사람이 공유하는 바가 바로 (i)에 해당한다. 이는 철수가 “나”

    라는 말을 통해 지시하고, 영희가 “너”라는 말을 통해 지시한 그 사람이 강

    도에 좇기고 있다는 취지의 명제적 믿음일 것이다.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하는 (ii)의 요소는 명제적 요소로 포착되지 않는다

    고 생각되는 요소를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이 관계를 “자기-동일화”의 관

    계로 부르겠다. 약간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자기-동일화의 요소를 다음과 같

    이 “정의”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자기-동일화 = 일인칭적 믿음 – 그 명제적 내용.

    일인칭적 믿음에 명제적 내용으로 포착되지 않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

    9) 자기-동일화(self-identification)을 정확히 이런 의미로 사용한 것은 가렛 에반스(Evans 1981, 1982)이다. 에반스는 이를 “나”라는 표현에 프레게적인 의미(Sinn)에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하겠다.

    10) 극히 일부이지만 어떤 철학자들은 일인칭적 믿음의 경우 명제적 요소에 해당하는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도 한다. 특히 Recanati (2007)가 대표적이다. 더 자세히 따져 보아야할 문제이지만, 필자는 앞으로 개진할 견해가 그러한 이론과도 잘 융합될 수 있다고 본다.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47

    정하는 한, 자기-동일화의 관계가 실재함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11)

    이제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하는 자기-동일화의 관계가 가진 몇 가지 중요

    한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어떤 주체 S와 X가 실제로 동일인임은 S가 X를 자기 자신으로 여

    기기 위한 충분조건도 아니고 필요조건도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길 건너 유리 창에 비친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 아침부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군”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유리창에 비친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말이다. 이런 경우 유리창에 비친 사람과 나는 동일

    인이지만, 나는 그 사람을 내 자신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사한 이

    유로 필요조건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다시 말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나 자신으로 오인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둘째, “S가 X를 자기 자신으로 여김”이라는 관계는 내포적 관계

    (intensional relation)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X=Y이고, S

    가 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고 해서, S가 Y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는 보

    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위의 예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서서 유리창을 응시하며 상념에 젖은 사람을 나 자신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상념에 젖은 사람은 유리창에 비친 사람과 동일인이다. 하지만 앞에서

    확인했듯이, 그렇다고 해서 유리창에 비친 사람을 나 자신으로 여긴다는 보

    장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런 점 때문에 자기-동일화의 관

    계를 어떤 신비로운 관계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내포성은

    11) 한 가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는, 자기-동일화의 요소가 믿음의 내용을 이루는요소라고 보아야 할지의 문제이다. 앞서 말했듯이, 적어도 믿음의 내용을 고전적인의미에서의 “명제”로 보았을 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게주의를 지지하는 일부 철학자들은 여전히자기-동일화의 요소를 믿음의 내용을 이루는 요소로 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Evans 1981, 1982).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지만, 지금 필자의 목적에서 이것이 맞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만약에 일인칭적 믿음의 자기-동일화의요소가 일인칭적 믿음의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로 보는 것이 맞는다면,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하는 요소를 (i)과 (ii)로 구분하는 것은 꽤나 인위적인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이라 한들, 둘을 억지로라도 분리해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이견이 없을 것으로 본다.

  • 148 권 홍 우

    어떤 심리 주체와 어떤 대상 사이에 성립하는 심리적 관계 또는 지향적 관

    계가 일반적으로 갖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질을 만족시키는 자기-동일화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이냐 하는 것

    은 철학자들 사이에 동의된 바가 없으며, 규명되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필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가지고 있고, 이는 필자의 나중의 논증(6

    절에서의 논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잠시 뒤로 미루

    어 두기로 하겠다. 현재의 단계에서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를 인지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으며, 이것이 잘 정의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다.

    이제 명제적 믿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기-동일화의 심리적 관계를 일반

    화시켜보자. 대개의 경우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하는 자기-동일화의 관계는

    어떤 시점 t에 어떤 주체 S와, 같은 시점 t에 존재하는 사람 사이에성립하는관계라고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일단 이 관계를 인지하고 나면,

    임의의 두 대상에 대해서 자기-동일화의 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묻는 것이 가

    능해 진다. 가령, “영희는 이 책상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가?”, “철수는 도

    날드 트럼프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가?” “동수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

    트맨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가?” 등등. (물론 일반적으로 이런 물음에 대

    한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 시점에 존재했던

    (또는 주체가 과거 시점에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대상, 또는미래 시점에 존재할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같은 종류의 물음을 물을 수

    도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물음은 모두 유의미하다.

    S는 1999년 마지막 날에 서울 광장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그 사람을 자

    기 자신으로 여기는가?

    S는 1909년 3월 26일의 안중근 열사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가?

    S는 내일 3시에 203호 강의실에서 강의를 할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

    는가?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49

    또한 이런 질문 중 어떤 것은 긍정적으로 대답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직

    관적으로 그럴듯해 보인다.

    4. 자기-동일화와 형이상학적 동일성

    이제 필자의 논의가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해 졌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자

    의 핵심 주장은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논의에서 형이상학적 동일성과 혼동

    되었던 관계는 다름 아닌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하는 요소인 자기-동일화의

    관계라는 것이다.

    다음의 두 질문을 비교해 보자.

    (a) S가 1999년 마지막 날에 서울 광장에서 떨고 있던 바로 그 사람과 동

    일한 사람인가?

    (b) S가 (현재의 그의 관점에서) 1999년 마지막 날에 서울 광장에서 떨고

    있던 그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가?

    (a)는 “이 랩탑이 내가 3년 전에 구입했던 것과 동일한 그 랩탑인가?”라

    는 물음이나, “이 고양이가, 내가 전에 잃어버렸던 것과 동일한 그 고양이인

    가?”라는 물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형이상학적 물음이다.12) 반면에 (b)는,

    앞 절에서 보았듯이, S가 과거의 어떤 사람에 대해서 취하는 심리적 태도의

    문제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관계임이 분명하다. 앞 절에서, S=X인 것은 S가 X

    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것의 필요조건도 아니고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것

    을 본 바 있다. 이는 이미 (a)와 (b)가 다른 관계임을 함축한다. 물론 통상적

    12) 형이상학적 문제라고 해서, 반드시 어떤 “심오한” 해답이 있는 문제임을 가정하고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에 관한 한, 다분히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규약주의”(conventionalism)를 옹호한다.

  • 150 권 홍 우

    인 경우에 두 관계는 외연적으로 일치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경우

    나는 나와 동일한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만을, 나 자신으로 여긴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에 이 두 관계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어떤 뇌과학자

    나 최면술사가 내 친구 철수의 기억을 나에게 주입한다고 하자. 나는 철수

    가 경험했던 바를 마치 나의 것인 양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그 기억의 주체를 나 자신

    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나=철수”가 참이 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조금 더 미묘한 문제는 과연 (b)가 다음의 물음과도 구분되는가 하는 것

    이다.

    (a’) S는 1999년 마지막 날에 서울 광장에서 떨고 있던 바로 그 사람과

    S가 동일인이라는 명제적 믿음을 갖는가?

    이는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해서 주체가 가진 명제적 믿음의 문제이다.

    앞서 보았듯이, S가 X를 자기 자신으로 여김은 어떤 명제적 믿음으로도 환

    원되지 않는 관계로 생각해야할 좋은 이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b)의 물음

    은 (a’)과도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 두 가지 물음(즉, (a’)과 (b))이 직관적으로 구분가능한지에 대

    해서 의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X를 Y로 여긴다”는 표현

    은 “X는 Y임을 믿는다”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a’)과 (b)도 일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해 우선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여기서 “X를 Y로 여긴다”라는 일상적인 표현에 의해 오도되지 말

    아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표현을 다소 특수한 의미로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직관적인 수준에서도 (a’)와 (b)의 두 물음이 구분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가령, 당신이 어떤 이유로, 당신이 과거의 악명 높은 연쇄살인

    범의 영혼(실체로서의 영혼)을 이어 받았다고 믿고 있다고 하자. 즉, 당신은

    그 살인마가 당신과 동일하다는 명제적 믿음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51

    여 당신은 (b)의 의미에서 그 살인자를 당신 자신으로 여길까? 또는 당신은

    일인칭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까? 이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당신에게 살인을 저지른 그 사람은 여전히 타인처럼 느껴질 것이

    다. 당신이 진정성 있게, “그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이 바로 나이다”라고 고

    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필자의 주장은 기억의 연속성이 보장하는 관계는 형이상학적 동일성이나

    그에 대한 믿음이 아닌, 자기-동일화의 관계라는 것이다. 내가 5살짜리 소년

    이 경험한 것들, 행동한 것들을 기억한다는 사실은, 나를 그 5세의 소년과

    동일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소년을 나 자신으로 여기게끔 만

    드는 것이다.

    사람의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기억 이론의 핵심적인

    문제는, 기억의 연속성 관계가 동일성 관계가 갖는 기본적인 형식적 특성조

    차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동일화의 관계는 이런 특성

    을 만족시킨다고 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

    지 않는다. 가령, X가 Y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고 해서, Y가 X를 자기 자

    신으로 여긴다는 보장은 없다. (즉, 자기-동일화의 관계는 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다.) X가 Y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Y가 Z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고

    해서, X가 Z를 자기 자신으로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즉, 자기-동일화의

    관계는 이행적인 관계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의 형이상학적 동

    일성으로 해석된 기억 이론이 직면하는 “복제 문제”도 이 견해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의 기억이 두 사람(또는 인공지능체)에게로 이

    식이 된다면, 그 두 사람은 지금의 나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게 된다. 이로부

    터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자기 자신으로 여길 것이라는 것은 따라 나오지 않

    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물음은 일인칭적 관점

    에서 뿐만 아니라, 제 삼자의 관점에서도 물을 수 있고 동일한 방식으로 답

    해져야 할 질문이라는 점이다. 가령, “내가 그 5세 어린이와 동일인인가?”라

    는 질문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네가 그 5세 어린이와 동일인가?”라고 묻

  • 152 권 홍 우

    는 질문과 정확히 같은 질문이다. 하지만 자기-동일화에 대한 물음은 그렇

    지 않다. 일인칭적 관점에서만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이며, 이에 대응하는 삼

    인칭적인 물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논의에서 왜

    일인칭으로 묻는 질문과 삼인칭으로 묻는 질문에 대한 직관이 정확히 일치

    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잠재성을 갖는다.

    이 절에서 필자는 기억 이론에 대한 논의에서 동일성과 혼동되어 온 관계

    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 그럴듯한 가

    설로 들린다면, 필자는 이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하겠다. 필자는 이 주장이 단순

    히 기억 이론이 직면하는 딜레마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그것이 참

    이라고 믿을 독립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겠다.

    5. 기억 이론과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앞서 언급했듯이 기억 이론의 배후에 있는 직관은 강력하다. 그렇다면 이

    직관이 말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많은 철학자들은 기억 이론이 기반하

    고 있는 핵심적인 직관을 기억에 근거한 판단이 소위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이하에서 줄여서 “오류면역성”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을 드러낸

    다는 것에서 찾는다.13) 대략적으로 말해, 기억에 근거한 판단의 오류면역성

    이란 다음과 같은 현상을 일컫는다: 내가 생생한 기억에 의거해서 “나는 어

    젯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치질을 한 것이 틀림없다”라고 판단한다고 하

    자. 이런 경우에 “누군가 어젯밤에 양치질을 하긴 했는데, 그것이 정말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인가?”라고 묻는 것이 부조리하게(nonsensical) 들린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는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보

    인다. 이 현상은, 내가 기억에 근거해 어떤 것을 경험했다든지 어떤 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때, 그 경험 또는 행위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13) 가령, Shoemaker (1970), Evans (1982) (특히 7.6절), Hamilton (2009) 등을 보라.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53

    이 지극히 불합리함을 시사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오류 면역성 현상은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을 직접적으로 지지하지 않나? 필자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오류면역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오류면역성” 현상 일반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현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이다.14) 그는 다음과 같은 판단에 주목한다:

    “나는 어떠어떠한 것을 듣는다.”

    “나는 이빨에 고통을 느낀다.”

    “나는 어떠어떠한 것을 생각한다.

    이런 판단을 했을 경우, “누군가 어떠어떠한 것을 듣는데, 그것이 정말 나

    인가”와 같은 물음을 묻는 것은 부조리(nonsensical)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판단이 이런 특성을 나타낼까? 우선 이런 현상은 “나”를

    포함하는 문장으로 표현되는 판단(즉 일인칭적 판단)에서만 볼 수 있다. 가

    령, 창밖으로 철수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철수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 나의 확신의 강도에

    상관없이,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게 과연 철수인가?”라고 묻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또 “나”를 포함하는 판단이라고 해서 항상

    이런 특징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가령, 방금 전에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

    한 것 같이 느껴지는데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었는

    데, 그것이 나의 이름인가?”라고 묻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오류면역성

    현상에 대해서 연구한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내가 내 자신의 마음 상태나

    신체 상태에 대해서 내성(introspection)의 방법에 기초해서 이러한 판단을내릴 때, 그리고 오직 그럴 때에만, 이런 특성이 나타남을 지적하였다.15)

    14) Wittgenstein (1958), pp. 66-7.15) 이를 처음으로 지적한 철학자는 시드니 슈메이커(Shoemaker 1968)이다.

  • 154 권 홍 우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이런 특성이 과거의 자신에 대한 판단까지 적용된

    다는 것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의 철학자들은 (내적) 기억에 근

    거한 판단 역시 정확히 같은 특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깨달았다.16) 가령, 기

    억에 의해서 내가 어젯밤에 핸드폰을 탁자 위에 놓았다고 판단한다든지, 또

    는 1999년 마지막 날에 서울 광장에서 추위에 떨면서 서있었다고 판단을 한

    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은 부조리하게 들린다.

    “어젯밤에 누군가 핸드폰을 탁자 위에 놓기는 했는데, 그것이 정말 다른

    사람이 아닌 나였나? “

    “그해 추운 겨울에 누군가 서울 광장에서 떨면서 서있었는데, 그것이

    나였나?”

    내성에 근거한 판단이나 기억에 근거한 일인칭적 판단이 이런 특성을 나

    타낸다는 것은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현상이다. 도대체 믿음을 획득하

    는 내성적 방법과 기억에 의존하는 방법이 어떤 성격을 가지기에 이런 특이

    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오류면역성에 대한 “표준적 견해”라 불릴 수 있는 입장은 이에 대한 다음

    과 같은 설명을 제시한다. 오류면역성은 믿음을 획득하는 내성적 방법이나

    기억에 의존하는 방법이 갖는 어떤 특수한 인식론적인 지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이라는 다분히 “인식론

    적인” 이름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내성적 방식으로 도달

    한 판단의 경우에 오류가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종류의

    오류, 즉 다른 사람을 나로 오인해서 발생하는 오류는 불가능하다는 점 때

    문에 이런 부조리성이 발생한다고 보았다.17) 다른 철학자들은 오인으로 인

    해 발생하는 오류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내성적 방법이 가진 인식적 지

    16) 대표적으로 슈메이커(Shoemaker 1970)와 에반스(Evans1982, ch. 7)를 들 수 있다. 17) 특히, Shoemaker (1968)을 볼 것. 오류면역성에 대한 표준적 견해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 권홍우 (2017)에서 상세히 논의한다.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55

    위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누군가 이빨

    에 고통을 느끼는데, 그것이 나인가?”라고 묻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 아니기

    때문에 부조리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18)

    이제 기억에 근거한 판단의 오류면역성에 대한 표준적 견해가 옳다고 가

    정해 보자. 그렇다면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은 자연스럽게 시

    사되는 듯하다. 엄밀하지는 않지만 이를 대략적인 논증의 형태로 구성해 보

    겠다.

    (1) 내적 기억에 근거한 판단은 오인으로 인한 오류에 면역적이다.

    (2) 따라서 내적 기억에 근거한 판단은 나 자신에 대한 것임에 의심의 여

    지가 없다.

    (3) 따라서 기억의 연속성은 동일성의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따져봐야 할 것은 과연 오류면역성에 대한 표준적인 견해가 과

    연 맞는가 하는 것이다.

    6. “오류면역성”과 자기-동일화

    앞 절에서 보았듯이, 기억 이론이 바탕하고 있는 직관이 오류면역성에 다

    름 아니라는 것과, 오류면역성에 대한 표준적인 견해가 주어지면, 사람의 형

    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기억 이론이 강하게 뒷받침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오류면역성에 대한 표준적 견해가 옳지 않다고 본다.

    필자는 다른 논문에서 (내성적 판단의 오류 면역성에 국한해서) 이를 상세

    하게 논증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인 견해를 주장하였다.19) 본 절에서는 이를

    간략히 요약하고, 이것이 기억 이론의 위상에 대해서 갖는 귀결을 끌어내려

    고 한다.

    18) 이런 입장을 취하는 철학자로 Pryor (1999), Stanley (2011, 7장) 등등을 들 수 있다. 19) 권홍우 (2017). 약간 방향은 다르지만 Kwon (2017)도 유사한 아이디어에 기반한다.

  • 156 권 홍 우

    오류면역성에 대한 이론은, 내성이나 기억에 근거한 일인칭적 판단을 했

    을 때, “누군가 F인데(또는 F였는데), 그것이 나인가?”와 같은 물음을 묻는

    것이 부조리하게 들린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표준적인 견해는 과연 이

    부조리성을 만족스럽게 설명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이런 식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라

    면, 표준적 견해가 강하게 지지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이

    런 오류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기술적으로 요원

    한 이야기 같지만, 신경 체계에 조작을 가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내

    성적 방법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을 나로

    오인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철학자들은 내성적

    방법에 의해 도달한 판단의 경우 그 판단이 나 자신에 대한 것임을 의심하

    는 것이 인식적으로 불합리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인식적 불

    합리성이 관련된 의미에서의 부조리함을 일으킬 수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

    럽다.20)

    그렇다면 오류면역성에 대한 어떤 대안적 설명이 있을까? 우선 앞서 보았

    듯이, 일인칭적 믿음은 다음과 같은 두 요소로 구분될 수 있음을 상기하자.

    (i) S는 X가 F라고 믿는다.

    (ii) S는 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

    표준적 견해는 오류면역성 현상이 (i)에 관련되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필

    자는 오류면역성은 (ii)의 요소에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류면역성에 대한 필자의 대안적인 가설은, 자기-동일화의 관계와 믿음을

    획득하는 내성적 방법 사이에 “구성적(constitutive) 관계”가 있다는 것이

    다.21) 다시 말해, 내성적 방법에 의해서 “X는 F이다”라는 믿음에 도달했다

    20) 이에 대한 자세한 논증은 권홍우 (2017), III절을 볼 것. 21) 필자가 알기로, 이런 견해를 명시적으로 주장한 철학자는 없다. 다만, 조셉 캠벨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57

    는 것 자체가, 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핵심 아이디어를 정식화 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S가 내성에 의해서 라는 판단

    을 내릴 경우, S는 F인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

    이것이 주어지면, 왜 내성에 의해서 “나는 F이다”라고 판단했을 경우,

    “누군가 F인데 그것이 나인가?”라고 묻는게 왜 부조리하게 들리는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내성적 방법에 의해서 그런 판단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나”라는 말을 통해 적절

    히 표현될 수밖에 없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내성에 의한 판단이 보이는 오류면역성과, 내적 기억에 근거한 판단이 보

    이는 오류면역성은 동일한 현상이거나, 적어도 긴밀히 연관된 현상이라고

    보는 데에 큰 이의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기억에 근거한 판단과

    과거의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것 사이에 역시 구성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시사된다.

    필연적으로, S가 내적 기억에 근거해서, 라고 판단한다면, S는 F였던 주체를 자기 자신으로 여

    기지 않을 수 없다.

    내적 기억을 통해서 믿음을 형성하는 방식과 자기-동일화 사이에 구성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과거의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

    긴다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 사람과 기억을 통해서 특정한 방식

    으로 연결되어 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기억의 연속성이 자기-동일화

    의 관계를 지지함을 의미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필자의 제안에 따르면, 자기-동일화가 정도

    (Campbell 1999)의 견해가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 158 권 홍 우

    (degree)의 문제일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기억은 또렷할 수도 있고 흐

    릿할 수도 있다. 기억의 연속성과 자기-동일화 사이에 구성적 관계가 있다

    면, 어떤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정도도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2절에서 천 년을 사는 사람의 사람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이

    는 필자의 견해의 장점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필자는 기억 이론의 직관의 근원이 오인

    으로 인한 오류면역성 현상에 있다고 가정하였다. 오류면역성 현상에 대한

    표준적 견해를 받아들였을 때에, 사람에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기억

    이론이 어느 정도 지지되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표준적 견해가 거짓이라

    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억의 연속성이 자기-동일화를 구성

    한다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이것이 옳다면, 결국 기억 이론은 과거의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 즉 자기-동일화에 대

    한 이론으로 해석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7. 미래의 자아로의 확장?

    3-4절의 논증의 핵심적인 단계는 일인칭적 믿음을 구성하는 자기-동일화

    의 관계가, 지금의 사람과 과거의 어떤 시점의 사람 사이에 성립하는지를

    묻는 것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주체가 미래

    시점에 존재할 어떤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물음도 유의미

    하고, 또 직관적으로도 중요해 보인다. 가령, 나는 미래에 존재할 어떤 백발

    의 노인을 나 자신으로 여기는가? 또는 내 정신이 업로드될 컴퓨터를 나 자

    신으로 여기는가? 필자가 지금까지 개진한 견해가 옳다면, 이 견해가 어떤

    미래의 사람을 나 자신으로 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로도 자연

    스럽게 확장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이 견해가 미래의

    자아와의 자기-동일화의 관계로의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간략히 논의하

    면서 본 논문을 마치고자 한다.

    사실 필자의 5-6절에서의 논의는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단서를 제시한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59

    다. 만약 나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 방식 중에 오류면역성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면, 그런 방식이 미래의 사람과의 자기-동일화의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방식이 있을까? 필자는 그렇다

    고 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미래 행위에 대해서 믿음을 획득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 가령, 나는 내가 10분 후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외출할 것이라는 믿

    음을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을까? 또는 내가 60세 되는 해에 산티아고 순례

    길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이 10분 후에, 또는 20년 후에 무엇을 할지는, 그 사람의 평소 행동 양

    식, 그 사람이 한 말 등등의 증거에 기반하여 예측을 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하지만 내 자신이 10분 후에 또는 20년 후에 무엇을 할지를 알기 위해서,

    이런 식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나는 내가 어떤 것을 하기

    로 단순히 결정을 함으로써 내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된다.22)

    그리고 과연 나의 미래의 행위에 대해서 이런 방식으로 판단을 내릴 경

    우, 그러한 판단에서 오류면역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다음과 같

    이 질문하는 것은 부조리하게 들린다.

    “누군가가 10분 후에 강아지를 산책시킬텐데, 그것이 나인가?”

    “누군가 60세가 되었을 때에 산티아고 순례길로 여행을 갈텐데, 그것이

    나인가?”

    필자의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이는 미래에 존재할 어떤 사람을 나

    자신으로 여긴다는 것과 그 사람의 미래의 행위를 “결정을 통해서” 안다는

    것 사이에 구성적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23) 이는 직관적으로도 상당히 그

    럴듯해 보인다.

    22) 이런 생각의 연원은 앨리자베스 앤스컴의 저작이다 (Anscombe 1957). 23) 미래의 행위에 대한 지식을 자기-동일화와 연결시키는 통찰은 Stalnaker (1999)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스톨네이커의 논문은 본 논문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초기 단계에서필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160 권 홍 우

    논문을 마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언급해야겠다. 논문의 서두에서 필자의 주장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견해로, 파핏의 견해를 언급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생존에서 우리가 중요

    하게 여기는 것은 형이상학적 동일성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어떤 관계이다.

    이런 주장을 함에 있어서 파핏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가 미래의 자아에 대

    해서 갖는 태도의 합리성을 규명하려는 것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물음은

    필자의 견해가 이런 문제에 어떠한 함축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는 다른 논문의 주제로 남겨두겠다.

  •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1)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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