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 코스모스: 러시아 현실의 거울로서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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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승 도 (한국외대 HK연구교수) 키노 코스모스: 러시아 현실의 거울로서 우주 영화 61412유리 가가린( Юрий Гага- рин, 1934~1968) ‘보스토크 1 호’를 타고 카자흐스탄 바이코 누르 우주기지를 출발하여 108 동안 지구 궤도를 도는 비행 무사히 마치고 다시 카자흐 스탄 초원에 안착했다. 매년 412일이면 러시아 에서는 가가린의 인류 최초 주비행을 기념하는 행사가 방방곡곡에서 다채롭게 어진다. 가가린의 역사적 우주 비행 52 주년을 맞이한 올해 4 12 일에도 러시아 곳곳에서 어김없이 그의 위업을 기리는 축하행사가 풍성 하게 열렸다. 그렇지만 가가린의 우주비행은 러시아만의 쾌거이자 자랑에 그치지 않고 세계와 인류의 대한 과학적 성취이자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 2011 유엔(UN) 4 12 일을 ‘인류우주비행의 날’ ( International Day of Human Space Flight, 이하 ‘우주비행의 날’ ) 지정하여 기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스크린 속의 러시아 19 그림 1.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기념 포스터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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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키노 코스모스: 러시아 현실의 거울로서 우주 영화210.101.116.28/W_files/kiss9/53601013_pv.pdf · 세이 게르만 주니어(Алексей Герман-младший)

스크린 속의 러시아

라 승 도 (한국외대 HK연구교수)

키노 코스모스:러시아 현실의 거울로서 우주 영화

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Юрий Гага-

рин, 1934~1968)이 ‘보스토크 1

호’를 타고 카자흐스탄 바이코

누르 우주기지를 출발하여 108

분 동안 지구 궤도를 도는 비행

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카자흐

스탄 초원에 안착했다. 그 이

후 매년 4월 12일이면 러시아

에서는 가가린의 인류 최초 우

주비행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

국 방방곡곡에서 다채롭게 벌

어진다. 가가린의 역사적 우주

비행 52주년을 맞이한 올해 4월 12일에도 러시아 곳곳에서 어김없이 그의 위업을 기리는 축하행사가 풍성

하게 열렸다. 그렇지만 가가린의 우주비행은 러시아만의 쾌거이자 자랑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와 인류의 위

대한 과학적 성취이자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 2011년 유엔(UN)이 4월 12일을 ‘인류우주비행의 날’

(International Day of Human Space Flight, 이하 ‘우주비행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스 크 린 속 의 러 시 아

19

그림 1.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기념 포스터

53

Page 2: 키노 코스모스: 러시아 현실의 거울로서 우주 영화210.101.116.28/W_files/kiss9/53601013_pv.pdf · 세이 게르만 주니어(Алексей Герман-младший)

스크린 속의 러시아

올해 ‘우주비행의 날’ 기념행사에서 인상적이었

던 풍경 가운데 한 가지는 모스크바 우주인기념박

물관 기념탑 부근에서 젊은 학생들이 약속된 시간

에 모여 ‘우리가 세계 최초다’(‘Мы первые’)라는 문

구가 적힌 흰색 전단을 머리 위로 동시에 치켜든 플

래시몹 장면이었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대한

러시아인의 무한한 자긍심을 짧지만 강렬하게 표

현한 문구였다. 하지만 우주(인)과 관련하여 ‘최초’

라는 말은 유리 가가린만의 전유어는 아니다. 1963

년 6월 16일 발렌티나 테레시코바(Валентина Те-

решкова, 1937~)가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우주비행

에 나서 우주공간에 거의 사흘 동안 머문 뒤 무사히

귀환하여 최초의 여성 우주인으로 역사의 한 장을

당당히 장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6월 16일은

테레시코바의 우주비행 50주년이 되는 날로, 어쩌

면 이날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가 세계 최초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자랑스럽게 외치며 가슴 벅찬 감격

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가가린의 우주비행 52주년을 맞이한 2013

년은 소비에트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를 통틀어

처음으로 ‘우주 영웅’ 가가린의 삶을 본격적으로 조

명한 러시아 극영화가 나온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

은 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가가린을 직접 다룬 영화

가 지난 반세기 동안 러시아에서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러시아 국민이 그의 업적을 민족

문화 유산의 중요한 일부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는 점을 고려하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적 현

실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평론가이자 언론

인인 안드레이 아르한겔스키(Андрей Архангель-

ский)는 2007년 한 칼럼에서 러시아 영화계를 향해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까지 46년 세월 동

안 가가린만을 다룬 극영화가 한 편도 나오지 않은

데 대해 러시아 영화감독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러

시아 영화에서 우주비행 주제가 ‘희화’되는 경향에

대해서도 꼬집고 나섰다. 인간 가가린은 그러한 경

향 탓에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신화와 전설의 미

궁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벨 파르호멘코(Павел Пархоменко)

감독의 2013년 5월 최신작 『가가린. 최초의 우주인』

(Гагарин. Первый в космосе)이 나오기 전까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러시아 영화에서 우주비행

은 과연 어떻게 주제화되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지

적해야 할 점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에 우주비행

을 다룬 러시아 영화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추락

했던 러시아 민족과 국가의 대내외 위상이 어느 정

도 회복되고 ‘소비에트 노스탤지어’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2000년대 후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

권 2기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알렉세

이 표도르첸코(Алексей Федорченко)의 『달 위에

선 최초의 사람들』(Первые на луне, 2005), 알렉세

이 우치텔(Алексей Учитель)의 『예감으로서의 우

주』(Космос как предчувствие, 2005), 유리 카라

(Юрий Кара)의 『코롤레프』(Королев, 2007), 알렉

세이 게르만 주니어(Алексей Герман-младший)

의 『종이 병정』(Бумажный солдат, 2008)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영화가 한결같이 소비에트 우주

비행 신화를 ‘미화’하며 2000년대 푸틴 시대 러시아

사회의 ‘소비에트 노스탤지어’ 열풍을 부채질한 것

은 아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

에서 소비에트 과거와 우주비행 신화에 접근했다.

다시 말해 소비에트 시대 천재 로켓 개발자이자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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