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북전략과 북중관계 · 2012-04-06 · 다자회의 참석이 극히 제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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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률 / 동덕여대 한글 초록 천안함 사건 직후 중국은 적지 않은 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3차례에 걸친 김 정일의 중국방문을 수용하고 양국관계의 긴밀함을 과시하였다. 이 글은 3회에 걸친 북 중 정상회담의 내역을 주로 중국의 공식 발표 자료를 중심으로 내용 분석을 통해 그 의미와 성격을 규명하고 아울러 이를 근거로 중국의 대북 전략과 북중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2010년 세 차례 정상회담은 장소와 형식은 달리했지만 중국의 북한에 대한 메시지 는 비교적 명료하게 제시되고 있다. 즉 첫째, 전략적 소통의 강화이다. 권력승계의 과 도기에 처한 북한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체제 관리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둘째, 경제협력과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의 유도를 통한 친 중국 체제의 연착륙이다. 셋째, 북핵 6자회담의 재개이다. 이를 통해 북핵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어 중국 부상의 걸림 돌이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체제의 특성, 과거 북중관계 의 기복 등을 고려할때 이러한 중국의 대북 전략이 실제 관철되기에는 여전히 적지 않 은 한계도 지니고 있다. 주제어: 북중정상회담, 중국의 대북전략, 김정일 중국방문, 북핵 . 문제 제기 2006년과 2009년 북한의 연이은 2차례 핵실험 이후 상당기간 소원했던 북중관계는 200910월 수교 60주년 행사 차 이루어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북한 방문 을 기점으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사건으로 인한 한반 도의 긴장고조, 한미동맹의 강화, 그리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 심화가 역설적으로 북중 관계 강화를 촉발하였다. 심지어 일부에서 혈맹관계의 복원을 제기할 정도로 양국은 중국의 대북전략과 북중관계: 2010년 이후 김정일의 중국방문 결과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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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률 / 동덕여대

    한글 초록

    천안함 사건 직후 중국은 적지 않은 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3차례에 걸친 김

    정일의 중국방문을 수용하고 양국관계의 긴밀함을 과시하였다. 이 글은 3회에 걸친 북

    중 정상회담의 내역을 주로 중국의 공식 발표 자료를 중심으로 내용 분석을 통해 그

    의미와 성격을 규명하고 아울러 이를 근거로 중국의 대북 전략과 북중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2010년 세 차례 정상회담은 장소와 형식은 달리했지만 중국의 북한에 대한 메시지

    는 비교적 명료하게 제시되고 있다. 즉 첫째, 전략적 소통의 강화이다. 권력승계의 과

    도기에 처한 북한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체제 관리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둘째,

    경제협력과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의 유도를 통한 친 중국 체제의 연착륙이다. 셋째,

    북핵 6자회담의 재개이다. 이를 통해 북핵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어 중국 부상의 걸림

    돌이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체제의 특성, 과거 북중관계

    의 기복 등을 고려할때 이러한 중국의 대북 전략이 실제 관철되기에는 여전히 적지 않

    은 한계도 지니고 있다.

    주제어: 북중정상회담, 중국의 대북전략, 김정일 중국방문, 북핵

    Ⅰ. 문제 제기

    2006년과 2009년 북한의 연이은 2차례 핵실험 이후 상당기간 소원했던 북중관계는

    2009년 10월 수교 60주년 행사 차 이루어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북한 방문

    을 기점으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사건으로 인한 한반

    도의 긴장고조, 한미동맹의 강화, 그리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 심화가 역설적으로 북중

    관계 강화를 촉발하였다. 심지어 일부에서 ‘혈맹관계’의 복원을 제기할 정도로 양국은

    중국의 대북전략과 북중관계: 2010년 이후 김정일의 중국방문 결과를 중심으로

  • 298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전통적 우의를 강조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역시 이러한 전반적인 북중

    관계의 회복 흐름에서 이루어졌다. 김정일은 천안함 사건 직후인 2010년 5월 이후 1년

    사이에 세차례에 걸쳐 연이어 중국을 방문해서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

    중관계 60여년 역사를 통해서도 전례가 흔치 않은 단기간에 걸친 연이은 전격적인 정

    상회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공교롭게도 2010년 9월28일의 조선노동당 대표자 대회, 10

    월10일의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일, 10월25일 항미원조 60주년 기념일 등 양국

    사이의 주요한 기념일이 이어지면서 양국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분명하고 일치된 목소

    리로 전통적 우의를 대내외에 강조하고 있다.

    북중관계의 이러한 변화는 2006년과 2009년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으로 인해 최악

    상황으로 치닫던 때와는 너무도 분명한 대비가 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2차례에 걸

    친 핵실험을 상당한 충격과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중국 정부는 한중수교이후 북한에게

    했던 그 어떤 대응보다도 강경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반대의사

    를 표명했다. 중국이 북한문제와 관련하여 유엔 제재 결의안에 찬성한 것도 역사상 처

    음이다. 북한 또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 이후 “미국과 그에 아부, 추종하는

    세력들의 책동” 이라면 중국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마다하지 않았다.1)

    짧은 기간에 진행된 이러한 북중관계의 기복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적지 않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직후 중국은 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세 차례에 걸

    친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수용하고 양국관계의 긴밀함을 애써 과시한 것이 과연 북중관

    계 변화의 신호탄인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야기된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북중관계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양국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상회담

    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일반적으로 북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대북 정책과 전

    략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료와 정부 문서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회담

    은 상대적으로 중국의 대북 전략과 북중관계의 내면을 포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

    료원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1년 사이에 3회에 걸친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기 때문에 최근의 중국의 대북 정책기조와 북중관계의 추이를 이해하

    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분석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3회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의 내역을 주로 중국의

    공식 발표 자료를 중심으로 내용 분석을 통해 그 의미와 성격을 규명하고 아울러 이를

    근거로 중국의 대북 전략과 북중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

    래서 우선 이 글은 북중 수교이후 정상회담 개최의 패턴과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1)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 (2009.5.29.).

  • 이동률 ∥ 299

    양국관계에서 정상회담이 갖는 특별한 함의를 도출하였다. 그리고 한중수교 이후 북중

    간 정상회담의 패턴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기초로 2010년 이후 이

    루어진 3회의 정상회담 개최의 배경, 내역, 그리고 의미를 당시의 국제환경과 중국의

    공식 문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정상회담의 내역과 의미를 근거로 중국

    의 대북전략의 기조와 향후 북중관계의 향배를 전망하였다.

    Ⅱ. 북중 정상회담의 의미와 현황

    1. 북중관계에서 정상회담의 의미

    냉전시기 북중관계는 특별한 동맹관계, 즉 소위 ‘혈맹관계’로 회자되어 왔다. 양국의

    혈맹관계는 1949년 수교이전의 역사적 관계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일제 식민시기의 공

    동 항일투쟁, 국공내전에서의 협력,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 양국은 그야 말로 피로 맺

    어진 혈맹으로서의 역사적 유대감을 축적해 왔다.2) 중국은 북한과의 이러한 특수한 혈

    맹관계를 유지하는 기본 틀로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방식을 견지해 왔다. 즉 양국 정

    상간 정기적인 상호방문을 통한 정상회담과 지도부간의 인적 유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 북한 입장 지지, 그리고 구상무역과 우호가격제로 대표되는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과 군사협력을 유지해왔다.3)

    이 가운데 특히 북중관계는 전통적으로 양국 정상간 정기적인 상호방문을 통해 특수

    관계를 과시해왔다. 양국 정상간 상호방문 외교는 1958년 ‘중조 수뇌방문에 관한 협정’

    체결로 명문화되었다. 그런데 이 협정은 역설적으로 양국간 상호불신의 역사적 경험으

    로 인해 최고지도자간의 직접 의사소통이라는 기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즉 중국입장에

    서는 1956년 ‘8월 종파사건’이후 북한 권력중심에서 ‘연안계’가 숙청되면서 중국의 대

    북 인적 채널이 사라지게 되자 북한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으로서 김일성과의

    직접적 소통을 위해 정상회담의 정례화라는 대안을 모색했던 것이다.4)

    이렇게 형성된 북중 정상간 상호방문 외교의 연례화 전통은 북중 특수관계의 상징이

    되었고, 역으로 정상외교의 부재는 바로 북중 관계의 이상 징후로 해석하는 주요 근거

    2) 이종석, 북한-중국관계 1945-2000 (서울: 중심, 2000), pp.105-108. 3) 이동률,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에 대한 실증연구”, 중국의 대내외 정치환경의 변화와 한

    국의 대응전략 (서울: 전경련, 2005), pp.132-134.4) 최명해, 중국.북한 동맹관계; 불편한 동거의 역사 (서울: 오름, 2009), pp.105-108.

  • 300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가 되었다. 실제로 1950년 5월 김일성의 비공식 중국방문으로 시작된 양국 정상간 방

    문외교는 한중수교 이전까지는 세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연례행사처럼 진행되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전후한 시기(1954-58), 1960년대 중반 중국의 문혁시기

    (1964-1969), 그리고 마오쩌둥 사망을 전후한 시기(1976-77)에는 정상간 방문외교가 중

    단되었으며 사실상 북중관계가 소원했거나 갈등 국면에 있었던 시기였다.5)

    이를 통해 북중관계는 냉전시기 ‘혈맹적 동맹관계’에서도 갈등이 주기적으로 발생하

    는 불안정한 관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냉전기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했던 시

    기는 중국 지도부의 안보 위협과 세력관계의 변화에 대한 인식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

    고 있었다. 중국은 한국전이후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북한이라는 완

    충지대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으며, 1960년대 초 소련과의 분쟁마저 격화되면서

    북한이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

    리고 1970년대 초 중국이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

    게 되면서 중국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방해하는 모험주의적 행동을 하거나 또

    는 소련과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되면서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

    를 재인식케 되었다. 이에 따라 1970년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가 5년만에 북한을 방

    문하여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대북원조를 재개하면서 문혁시기 악화된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다.

    2. 한중수교이후 북중 정상회담 진행 상황

    북한과 중국의 정상간 방문외교는 한중수교 직전인 1992년 4월 양상쿤(楊尙昆)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을 마지막으로 상당기간 중단되었다. 북한도 1991년 10월

    김일성 주석의 중국 방문 이후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중국을

    방문 할 때까지 최고위층 인사가 단 한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다. 양국 정상회담은 2000,

    2001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2001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답방으로

    비로소 회복되었다. 일단 외견상 8년 간의 공백 끝에 정상간 방문외교가 재개됨으로써

    북중관계의 회복을 상정케 한다.

    그렇지만 북중간 정상회담이 비록 재개되기는 했지만 과거와 같은 정례성을 회복하

    지는 못했다. 정상회담은 다시 4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인 2004년 4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으로 재개되었다. 이 정상회담은 당초 2002년 11월 중국 공산당 16차 당대회에서

    5) 북중 정상간 방문외교에 대한 제세한 일지는 이종석 (2000), pp.309-312.

  • 이동률 ∥ 301

    후진타오(胡锦涛) 체제가 출범한 직후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1년여간 지연된

    이후에야 비로소 성사되었다. 그리고 다시 양국 정상간 방문외교가 일시적으로 재개되

    었다. 2005년 10월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과 2006년 1월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으

    로 이어졌다. 그리고 재차 2009년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때까지 양국간 정상회담

    은 중단되었다가 2010년 5월과 그 이후에 매우 이례적으로 김정일의 중국방문이 연이

    어 이루어진 것이다.

    북중 정상외교가 비록 2천년이후 회복되고는 있지만 과거와 같은 정기적인 정상간

    상호방문외교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과거의 특수 관계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특히 한중간에는 수교이후 최근까지(2011년 10월기준) 무려 29회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과는 분명한 대비가 된다. 북중 특수 관계의 주된 축의 하나가

    양국 최고지도부간의 긴밀한 인적 유대와 교류에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양국간

    특수관계의 성격 변화를 상정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다자간 국제

    기구를 통해 양자간 정상회담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추세에서 북한 지도부의 국제

    다자회의 참석이 극히 제한적인 까닭에 북중간의 정상 회담은 상호방문외에 다른 대안

    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마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002년 북핵 위기 이후 북중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갖는 상징성외에도 중국

    의 대북 지원 통로로 활용되어 왔다. 예컨대 2004년 김정일 중국방문시 5천만 달러 상

    당의 경제지원이 이루어졌다.6) 2005년과 2006년의 정상간 상호교환방문 때에도 사실상

    의 지원의 성격을 지닌 중국의 대북 투자와 무역이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2005년 후진

    타오의 북한 방문때는 5년간 20억 달러의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7) 따

    라서 양국 정상회담의 위축은 중국의 대북 지원 감소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양국간 정상 회담이 줄어든 반면에 오히려 실무급 교류와 회담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예컨대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2002년이후 부터는 북핵문제와 관련하

    여 실무자급의 교류와 접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02년 1월부터 2007년 1월 까지

    5년간 중국의 고위지도자의 상호방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상간 방문은 3회에 그쳤

    지만 그 외에 부부장급 이상의 고위 실무자들간의 교류는 29회에 달했다.8)

    6) Samuel S. Kim, “China’s Conflict-Management Approach to the Nuclear Standoff on the Korean Peninsula,” Asian Perspective 30,no.1 (2006), pp.5-38.

    7) Ralph Jennings, “China’s Hu visits Landma가 North Korean Factory, Talks Trade,” Kyodo News International, October 29,2005.

    8) Li Kaisheng. “China’s Role in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A Quantitative Analysis.” World Economics and Politics No. 4 (2007), pp.48-53.

  • 302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2003년 이후 양국 지도부 인적 교류의 패턴을 정리해 보면 중국은 북한의 6자회담

    참여를 설득 또는 요구하기 위해 고위 실무자를 북한에 파견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원조를 얻어 내는 데 활용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어 왔다.

    실제로 북중 고위 인사간 교류는 북핵문제가 고비에 처했을 때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

    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 역할은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닌 중국이

    주도하는 북핵 6자회담을 유지 또는 재개하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직후인 10월 18일 탕자쉬엔(唐家璇) 국무

    위원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북핵 6자회담 복귀를 종용했고, 2007년 7월에도 양제

    츠(楊潔篪)가 외교부장 취임 후 평양을 첫 방문하여 후진타오의 구두서신을 전달했다.

    그리고 2009년 1월에는 김정일 와병설 이후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장과 면담으로 첫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왕자루이는 2004년 1월 김정

    일의 중국방문 직전, 그리고 2005년 2월 북한의 핵보유 선언 직후에도 북한을 방문한

    이력을 갖고 있어 왕자루이의 방문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요컨대 북중 정상회담을 포함한 인적교류의 현황은 북중관계가 전통적 특수관계에서

    이탈해서 일반적(normal) 국가 관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특히 2003년

    이후에는 북중 고위 인사간 교류가 북핵문제에 집중되어 왔다. 즉 중국의 대북 외교의

    초점은 북핵 문제 해결에 두고 있으며 그 방식은 고위 실무자를 파견하여 경제 원조를

    통한 설득과 구두 압력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2009년 원총리의 방북이후 중국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재가동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북한을 관리하고자하는 정상회담 본연의 목적을 추구해 가고 있다. 중국은

    당시 북한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중국의 공개적인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핵실험

    이라는 도발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북한의 고립은

    심화되고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되는 상황에 있게 되었다. 특히 이 무렵 김정일 건강

    악화설 마저 불거져 있었다. 중국은 북한의 이러한 불안한 상황에 보다 적극적인 대북

    한 관여를 통해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관리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 이동률 ∥ 303

    일 시 회담 인물 장소 배경과 주요 의제

    1992년 4월 양상쿤-김일성 베이징- 한중수교 직전의 회담

    - 중국이 북한에 한중수교 설명

    1999년 6월 장쩌민-김영남 베이징- 한중수교후 첫 최고위회담

    - 북중관계 회복의 의미

    2000년 5월 장쩌민-김정일 베이징- 한중수교이후 첫 정상회담

    - 김정일 집권 6년만의 첫 중국방문- 남북정상회담 (6월 15일)직전 회담

    2001년 1월 장쩌민-김정일 베이징- 김정일 상하이 포동방문

    -방중이후 북한 7.1 경제개혁조치 실행 (2002년) 2001년 9월 김정일-장쩌민 평양 - 11년만의 중국정상의 북한 방문

    2004년 4월 후진타오-김정일 베이징- 북핵위기후 첫 정상회담 (2개월후 6자회담 복귀)- 후진타오 집권후 첫 정상회담

    2005년 10월 김정일-후진타오 평양 - 후진타오 주석의 첫 북한 방문

    2006년 1월 후진타오-김정일 베이징-김정일 화북, 광동, 베이징 방문-BDA 문제로 6자회담 공전

    2009년 10월 김정일-원자바오 평양-북중수교 60주년 기념차 북한 방문- 제2차 북핵실험 이후 첫 고위급 방문

    2010년 5월 후진타오-김정일 베이징- 천안함 사건직후 중국방문과 정상회담

    - 전략적 소통 강화 등 협력 5개안 제시

    2010년 8월 후진타오-김정일 창춘- 창지투 개방 선도구 방문

    - 한미합동 군사훈련이후 중국 방문

    2011년 5월 후진타오-김정일 베이징 김정일의 연쇄 3회 중국 방문과 정상회담

    한중 수교이후 북중 정상회담

    Ⅲ. 2010년 이후 북중 정상회담의 내용과 의미

    1. 2010년 5월 정상회담의 내용과 의미

    김정일의 5월 중국방문은 지난 2006년에 이어 4년 4개월 만에 이루어진 5번째 방문

    이었다. 5월 방중은 비록 2차 핵실험의 충격으로 잠복기가 다소 길어지기는 했지만 기

    본적으로 지난 2000년 이후 재개된 북중 정상간 방문외교의 기본 패턴을 유지하며 진

    행되었다. 즉 2003년 2차 북핵 위기이후 북중간에 진행되어온 경제 지원과 6자회담 복

    귀의 맞교환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역시 주요 의제로 등장하였다. 심지어는 비공식의

    비공개 방문에 중국의 개혁 개방의 주요 성공사례지역을 시찰하는 일정까지도 지난 4

  • 304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차례의 김정일 방중과 흡사했다.

    그럼에도 5월 방중은 다른 어느 때 보다도 다양한 논란을 야기했다. 그 이유는 5월

    정상회담이 기본적으로 그 정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이전 정상회담과는 다른 주목할 만한 회담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5월 북중 정상회담은 큰 틀에서 보자면 북중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오랜 공백 끝에 성사된 회담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핵 6자회담이 18개월째

    중단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는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

    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 직후 예상 밖에 전격적으로 이루

    어졌다. 아울러 북한은 김위원장의 건강악화, 3대 후계 계승 추진, 화폐개혁이후의 혼

    란, 그리고 유엔 제재로 인한 경제난 심화 등 그 어느 때 보다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

    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정황적으로 볼 때 이번 김정일의 방문과 정상회담은

    천안함 사건, 후계계승을 포함한 북한 체제의 안정성, 북핵 6자회담이 주요 회담 의제

    로 대두될 환경에 처해 있었다.

    실제로 5월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 역시 이러한 관심사항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우선 후주석은 정상회담에서 5개항의 양국 협력방안을 제시하였다. 즉

    첫째, 고위 지도자간 왕래를 유지한다. 양국 지도자는 상호방문, 특사파견, 구두서신 교

    환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긴밀한 연계를 유지한다. 둘째, 전략적 소통을 강화한다. 양

    국은 수시로 또는 정기적으로 양국의 내정, 외교의 중대한 문제, 국제 및 지역 정세,

    당과 국가의 통치 경험(治黨治國經驗) 등 공동관심사에 대해서 깊이 있게 소통한다. 셋

    째,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한다. 양국 정부 유관 부서에서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하기 위

    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한다. 넷째, 인문교류를 확대한다. 양국은 문화, 교육, 체육 등

    각 영역의 교류, 특히 청소년간의 교류를 확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조 전통 우의

    를 세대를 이어 전한다. 다섯째, 국제 및 지역문제에 대한 협의를 강화한다. 그리고 이

    를 통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9)

    5개 협력안에서 특히 주목을 끈 것은 “내정의 중대 문제, 당과 국가의 통치경험에 대

    한 전략적 소통”을 강조한 부분이다. 자칫 양국 모두 금기시하는 내정간섭의 논란이 있

    을 수 있는 부분이 우회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2005년 김정일 방중때도 “상호 소통의

    강화”는 언급되었지만 동시에 “조중 양국 모두 자국의 국정에 적합한 발전 방식을 모색

    9) 中共中央对外联络部, “朝鲜劳动党总书记金正日对我国进行非正式访问 (2010.05.07.),” http ://www.idcpc.org.cn/dongtai/100507.htm (검색일: 2010년 11월 16일).

  • 이동률 ∥ 305

    한다”10)라고 일정한 한계선을 설정한 것과는 분명한 대비가 된다. 이는 중국 지도부가

    천안함 사건을 포함하여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여를 통해 관리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번 방중에서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의지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표출된 것 역시 주요한 변화이

    다. 김정일은 이번에도 지난 네 차례의 중국방문과 마찬가지로 다롄, 텐진, 중관춘 등

    중국 경제개혁의 성공사례 지역을 집중 방문하였다. 특히 이번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은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적극 지지할 것이며 북한에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건설의 경험을 소개해주고 싶다”11)며 더욱 노골적으로 의사를 타진하였다.

    그런데 중국지도부의 이러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북한이 흔쾌히 받아들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요란스러운 환대에 비해 구체적인 방문성과는 크지 않아 보였다.

    예컨대 5월 방중에서 중국이 사실상 기대했던 북한의 6자회담 복귀문제는 2009년 원

    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 당시 논의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김 위원장과 후 주석

    은 회담에서 “양국은 9ㆍ19 공동성명에 근거해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12)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6자회담 복귀에 대

    한 대가로 중국이 제시한 경제지원의 내용 역시 이전에 비해서 명료하지 않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방중이후 북한 언론에서도 북중 경제지원 및 협력 문제에 대한 구체적

    인 언급이 없었다.

    4년여 만에 재개된 정상회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보다는 성과가 분명하게 부

    각되고 있지 않다. 실제로 2003년 이후 6자회담을 둘러싼 양국 간 거래 패턴을 돌이켜

    볼 때 그동안 중국이 기울여온 노력에 비해 사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예상보다 늦

    어지고 있다. 그만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양국간 협상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유관 당사국과 함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조

    건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13)라고 6자회담 복귀의 전제 조건을 제시하여 중국측의 요

    구에 유보적인 입장이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10) 中共中央对外联络部, “胡锦涛在金正日欢迎宴会上的讲话 (全文) (2005.10.28.),” http:// www.idcpc.org.cn/ziliao/tuanzu/hjt051028/news/051028-4.htm ((검색일:2010년11월16일).

    11) 中共中央对外联络部 (2010.05.07.). 12) 中共中央对外联络部 (2010.05.07.).13) 中共中央对外联络部 (2010.05.07.).

  • 306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2. 2010년 8월 정상회담의 내용과 배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월에 이어 3개월여 만인 8월에 연이어 중국을 방문해서 후진

    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8월 방중은 5월 보다 더욱 돌출적이고 이례적이었다.

    3개월여 만의 재방문은 2천년이후 재개된 북중 정상 방문외교의 패턴에서 뿐만 아니라

    북중 정상외교 역사를 통틀어서도 흔치 않은 사례이다. 김위원장의 8월 방중은 시기적

    으로 북한에서 44년만의 당 대표자회의라는 거사를 앞둔 중차대한 시점이었을 뿐만 아

    니라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석방을 협상하기 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직후에 단행되었다는 측면에서 예상을 벗

    어난 것이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북한과 미국간의 대화 재개, 심지어

    김정일과 카터의 면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음에도 김정일은 돌연한 중국방문을

    단행하여 여러가지 억측을 불러왔다.14) 더욱이 정상회담 개최지가 베이징이 아닌 동북

    지역의 창춘(長春)이라는 것 또한 북중 정상회담의 관례에서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이처럼 짧은 간격을 두고 전격적으로 8월에 김위원장의 중국방문이 재차 이루어진 배

    경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례적인 외교행보를 보여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상식선에서 볼

    때, 8월 방중은 5월 방중의 보완 차원이거나, 또는 5월 방중이후 새로운 급작스러운 정

    세 변화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5월 방중이후

    가장 현저한 정세 변화라 한다면 북한 내부에서는 당 대표자회의를 통한 후계계승 문제

    가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천안함 사건 이후 일련의 사태 진전, 즉 7월 9일 유엔 안보리

    에서의 의장 성명채택, 그리고 7월 27일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 훈련실시와 이에 대한

    중국의 강력한 반발로 대변되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 갈등 심화가 있었다.

    우선 후계계승 문제는 비록 당대표자회의라는 일정을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5

    월 방중부터 제기되어 왔던 사안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돌출적인 새로운 이슈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설명한대로 북중관계에서 양국 정상간 상호방문을 통한 회담은 양

    국 특수관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표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양국 모두 권력 교체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특성으로 인해, 권력 교체에 대한 상호 소통과 암묵적 지지는

    양국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실제로 양국간에 권

    력 교체시 적정한 시점에 비공개 상견례라는 특수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15) 따라서 기

    14) “카터, ‘곰즈 석방’ 특사… 北ㆍ美 대화 효과,” 국민일보 (2010.08.25.). 15) 1989년 김일성의 중국 방문시 덩샤오핑이 차세대 지도자인 장쩌민과의 상견례를 주선한

    이후 북중관계에서는 상호 차세대 지도자 사전 상견례가 관례화 되고 있다고 한다. 박승

  • 이동률 ∥ 307

    본적으로 김정은 후계체제 승계를 앞두고 북중 정상회담을 매개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견례는 진행될 것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후주석

    은 “중조 친선을 시대와 더불어 전진시키고 대를 이어 전해가는 것은 쌍방의 역사적

    책임이다”, “조선노동당 전국대표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기를 기원한다”며 북한의 권

    력 승계를 염두에 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물론 3대 세습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권력세습에 대한 동의 또는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김정일의 방중

    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다소 새삼스러운 논의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5월과 8월 정상회담, 그리고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만일 김정은이 동행하여 상견례를

    했다고 한다면 이는 북중관계에서 전통적 관례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 질수 있는 자연

    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3대 후계계승이라는 전대미문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체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

    한 대내외적인 안정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고, 중국 역시 북한 체제 위기를 방

    치할 수 없었던 입장이 상호 조우하면서 이번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

    이 보다 타당해 보인다. 즉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의 권력 승계를 포함한 총체적인 북

    한체제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된 것으로 이해된다.

    김위원장의 연이은 방중 배경에는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 또한 직접적이고 중요

    한 변수로 작용했다. 미중관계는 이미 2010년 초부터 달라이 라마의 미국방문,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결정, 그리고 인민폐 환율관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악화되어 왔던 차에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면서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미중 갈등은 아세안 지

    역 포럼(ARF)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의 남중국해 자유항해권 문제제기로 확대되어 갔다.

    중국은 서해에서의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이례적으로 격렬하게 반발했다. 중국내 강

    경입장을 대변해온 일부 언론의 과격한 논조 외에도 중국 정부 역시 공식적으로 친강

    (秦剛) 외교부 대변인 등을 통해 9차례에 걸쳐 한미훈련 반대의사를 밝혀 왔다. 중국은

    특히 미 항공모함이 참여하는 훈련이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급속한 상대적 부상과정을 진행중인 중국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전개를 미국이 2001년 9.11이후 10년만에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로 귀환하는 과정으

    로 받아들이면서 민감하게 대응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중간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 경쟁적 갈등은 5월 정상회담에서 미묘한

    준, “3대세습과 한반도정세 전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주최 학술회의 (2010년 9월 9일) 「최근 북한의 내부변화와 3대 세습체제 전망」에서의 발표 논문, pp.81-83.

  • 308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입장 차이를 드러낸 북중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을 북중 양국 모두에게 제공했다.

    우선 외형적으로 볼 때 북한이 요구했던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진행되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방중을 강행했다는 자체는 적어도 북중 정상 회담이 더 중

    요하다는 판단이 전제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당시의 국제 정황상 카터와의

    면담을 통해 당초 기대했던 효과, 즉 북미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 역시 유사한 판단에서 베이징이 아닌 창춘에서의 정상회담에 전격적으로 동의

    했던 것이다. 실제로 후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발표

    뒤 한반도에 새로운 흐름들이 나타났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유지는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중국은 조선이 한반도 정세완화, 국제 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한 것을 존

    중한다”16)고 북한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북중 정상회담은 한미군사훈

    련에 대한 북중양국의 반발과 북중 연대의 공고함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성격을 지

    닐 수 있다는 것도 북중 양국은 충분히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으로도 일단 5월 정상회담에 비해 북한은 보다 전향적으로 중국의 요청에 부

    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선 북한이 북중 경제협력 및 중국에 대한 개방 의사를

    보다 명료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북중 경제협력은 중국의 동북진흥계획에 대한 북한의

    협력이 핵심이고, 그중에서도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두만강) 개방 선도구’ 사업이

    중요하다. 중국은 창지투 개발의 성공을 위해서는 동해진출로가 절실히 필요하고 북한

    은 나진, 선봉지역 개발을 위해서 창지투 개발계획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이번 방중에서 특별히 창춘, 지린, 투먼 개발지역을 방문하고 각종 산업시설

    을 시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조선은 중국 동북지역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발전 방법과 경험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할 것이다”17) 라고

    밝혀 5월과 달리 중국의 개혁 개방 방식 전수 의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습

    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김위원장은 6자회담에 대해서도 5월 보다는 분명히 진전

    된 메시지로서 중국에 호응했다. 즉 “중국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속한 시일

    안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18)고 밝혔다.

    그리고 후주석은 8월 정상회담에서도 5월과 마찬가지로 고위층의 교류 유지, 경제무

    16) 中共中央对外联络部,“胡锦涛同金正日在长春举行会谈 (2010.08.30.),” http://www.idcpc.o rg.cn/dongtai/100830.htm (검색일: 2010년 11월 20일).

    17) 中共中央对外联络部,“胡锦涛同金正日在长春举行会谈 (2010.08.30.).18) 中共中央对外联络部,“胡锦涛同金正日在长春举行会谈 (2010.08.30.).

  • 이동률 ∥ 309

    역 협력의 추진, 그리고 전략적 소통의 강화를 양국의 중점 과제로 재차 강조하였다.

    다만 내용상에 차이가 있다면 전략적 소통에서 “국제 및 지역정세가 복잡하게 변화하

    고 있으므로 중조 양국이 중대 문제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충분하고 깊이있게 소통하

    며, 특히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공동발전을 촉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강조하고 있어, 천안함 사건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에 보다 예민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북한의 개

    방 필요성은 재차 강조하고 있다. 후주석은 중국의 개혁개방 30년의 성취를 설명하면

    서 “경제발전을 하는데 있어 자력갱생도 중요하지만 대외협력도 필수적이다. 이것이 시

    대 조류에 순응하는 것이며 국가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길이다”19)라며

    더 강한 어조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하였다.

    3. 2011년 5월 정상회담의 의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10년 5월과 8월에 이어 9개월 만인 5월 20일에 다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북중관계에서 1년 사이에 3차례 연속 방문을 통한 정상회담

    이 이루어진 것은 흔치 않지만 선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1950년 한국전을 전후

    한 시기에 김일성이 3회 연이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중소분쟁이 심화되던 1964

    년에는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며 5차례의 정상회담이 이루어 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 시기 모두 북중관계 역사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긴박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20) 그

    렇다면 이번 방중 역시 앞서 두 시기에 비견할 정도로 긴박한 의제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김위원장이 조급한 여정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연이은 중국방문을 강행한데는 분

    명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과 중국이 안고 있는

    현안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되고 있다. 즉 경제지원과 협력, 후계계승, 그리고 6자회담

    재개 문제이다. 사실 이 문제들은 앞선 두 차례 방중시 제기되었던 의제와 별반 다르

    지 않다. 특히 경제지원과 6자회담은 2003년 북핵 위기가 시작된 이후 북중 정상회담

    의 단골 의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 후계 계승문제는 북중 정상회담에서 공식적인

    의제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암묵적으로 양자간에 조율되고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중국은 대만문제로 인해 불가피하게 기존의 내정불

    간섭원칙’을 공개적으로 쉽사리 놓을 수 없는 입장에 있고, 북한 역시 주체 이미지에

    19) 中共中央对外联络部,“胡锦涛同金正日在长春举行会谈 (2010.08.30.). 20) 이동률, “북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EAI 논평, 제20호 (2011 년 6 월 16 일), pp.1-2.

  • 310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손상을 초래하면서까지 공개적으로 중국의 ‘승인’을 얻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일은 불안한 후계계승 문제에 중국의 암묵적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중국 또한 북한 체제의 안정화와 영향력 확보라는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후계체

    제에 대한 파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들 세 가지 개별 현안들이 사실은 하나의 핵심적 문제, 즉 북한 체

    제의 유지와 안정이라는 사안으로 귀결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번

    김위원장의 방중이 이전과 비교하여 같은 듯 현저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조중 친선과

    전통 우의’를 대내외에 유난하게 과시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위원장은 귀국후 평양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환영대회를 개최하면서 ‘불멸의 대장정’이라며 방중성과와 ‘조중 친

    선’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북중관계의 강화를 과시하는데 있어 양국사이에 미묘한 온도

    차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김위원장은 2012년 강성대국의 해를 앞두고 체제 유

    지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이 문제를 현재 유일한 대안인 중국으로부터 해결하겠

    다는 의사를 이번 방중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출하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즉 이번 방

    중을 통해 북중관계가 강화되고 있음을 상호 재확인하는 동시에 이를 적극적으로 과시

    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관련 당사국들에게 북한과의 관계가 과대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매우 이례적으로 방중직

    후 바로 중국정부가 한국 등 관련국들에게 브리핑을 했을 뿐만 아니라 량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차 아시아 안보회의에서“우리는 그들에게 모

    험하지 말라고 권고했다(我们劝他们不要冒险)”고 밝히기도 했다. 북중 양국이 정상회담

    을 진행하면서 관련 국가들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달하려는 메

    시지에는 분명 미세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북중관계의

    복잡한 현실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북중관계를 분석하는 우리의 시각 또한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북중관계는 물론이고 향후 한반도

    정세 역시 다양한 행위자와 변수의 상호작용에 의해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불규칙

    한 경로로 진행되어 갈수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 이동률 ∥ 311

    Ⅳ. 정상회담과 중국의 대북한 전략

    1. 정상회담에 투영된 중국의 대북 전략

    2010년 세 차례 정상회담은 장소와 형식은 달리했지만 기본적인 의제는 큰 틀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과 6자회담 복귀의 교환, 북한 후계체제와의

    상견례, 북한의 개혁 개방을 포함한 장래 문제, 그리고 천안함 사건 이후 동아시아 지

    역 정세로 집약된다. 이에 대한 중국의 북한에 대한 메시지 또한 비교적 명료하게 제

    시되고 있다. 즉 첫째, 전략적 소통의 강화이다. 권력승계의 과도기에 처한 북한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체제 관리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둘째, 경제협력과 북한의 중국

    식 개혁개방의 유도를 통한 친 중국 체제의 연착륙이다. 셋째, 북핵 6자회담의 재개이

    다. 이를 통해 북핵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어 중국 부상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관리

    해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대북 정책 기조는 사실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깝게는

    2009년 10월에 이루어진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이후, 보다 길게는 2005년 후주석

    의 북한 방문을 전후한 시점에서부터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부터 중국은 북한과의 무역 및 투자를 확대해 왔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구조화시키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즉 2005년 3월과 7월에 양국은 각각 ‘투자장려 및

    보호협정’과 ‘세관협력협정’을 체결하였고, 10월에는 ‘정부주도, 기업참여, 시장운영’이

    라는 경협 3대 원칙에 합의하면서 ‘경제협력협정’에 서명하였다. 중국은 북한과 경협의

    제도화를 통해 기존의 무상지원 방식에 따른 부담에서 탈피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 경

    제체제의 변화를 견인하려는 전략을 진행해왔다.21)

    이러한 중국의 장기적인 대북 전략은 이미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유엔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하는 초강수를 두는 상황에서도 지속되었다. 예컨대 중국은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북한의 체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

    인 강력한 제재를 강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해

    왔다.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아래 와 같이 52.6%(2005년)에서 67.1%(2007년),

    73%(2008)그리고 2010년에는 무려 83%로 급증하고 있다.22)

    그리고 천안함 사건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중국방문이 성사된 배경에는 북

    21) Scott Snyder, China’s rise and the two Koreas : politics, economics, securty (Boulder, Colo. : Lynne Rienner Publishers, 2009), pp.127-130.

    22) KOTRA, 북한의 대외무역 동향, 각년판.

  • 312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한체제 불안정성이 중국에게 안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중국에게 북한은 현재 ‘전략적 부담’이지만 동시에 미래 ‘전략적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기에 북한이라는 카드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때문에 중단기

    적으로 북한이 가져오는 부담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친중국체제로

    안정화하여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시켜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관계의 변화까지도 대비하

    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 중국 무역 의존도 추이

    요컨대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와 심각한 경제난속에서 후계

    계승을 진행시키고 공언한 대로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야 하는 진퇴양난의 딜

    레마에 직면해 있다. 김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통해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현재

    유일한 대안인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정치적 지원을 획득하고, 중국과의 돈독한 관계

    를 국내외에 과시하겠다는 의지를 여과 없이 분명하게 표출한 것이다. 중국 역시 전략

    적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안정을 통한 주변안보 환경의 안정화가 임박한

    권력교체와 중국의 부상 일정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 이를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북

  • 이동률 ∥ 313

    중의 전략적 이해타산이 연이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로 인해 북한은 남한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갈수 있는 중국이라는 지렛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2. 중국의 북핵에 대한 정책

    중국은 강대국으로의 평화적 부상을 최대의 외교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

    선의 대북 정책목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친중 정권 하의 북한체제의 안정적 유

    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목표의 대전제는 북한문제로 인해 중국의 부상이 영

    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못지않게 북한의 체제위기 역

    시 중국 부상의 큰 장애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일차적으로 북한

    의 비핵화와 친중의 북한체제의 안정적 유지 가운데 양자택일이라는 딜레마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택일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어느 경우가 더 중국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키고, 부상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

    인가 하는 판단이 선택의 주요한 기준이 될 것이며 따라서 상황에 따라 중국의 선택은

    가변적이 될 수 있다.23)

    중국은 북핵이 자국에게 초미의 위협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

    핵은 자위 수단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미국 및 그 동맹국을

    겨냥한 것이지 중국이 그 대상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24) 반면에 최근 북한은 김정

    일 건강악화, 후계계승의 과도기, 경제난, 화폐개혁 이후의 혼란 등으로 심각한 체제위

    기에 직면해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현재 중국은 북핵보다는 오히려 북한체제 위기가

    초래할 안보 불안을 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중국의

    통제 범위에 관리될 수만 있다면,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매우 유용한 대미 전략카드

    확보라는 일석양득(一石兩得)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중단기적으로 북핵문제로 인해 중국의 주변 안보환경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6자회담을 통해 관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핵문

    제가 기본적으로 북미양자간 현안이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은 제한

    23) Dong Ryul Lee, “China’s policy and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denuclearization and/or stab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vol.22, no.2 (June 2010), pp.172-173.

    24) 刘阿明, 姚晓玫, “朝鲜核问题与中美利益博弈,” 国际观察 第2期 (2007), p.75; 왕지스 (王緝思)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주최 (9월 28일)한 ‘한ㆍ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비전’ 포럼에서 “북핵문제 및 당면 한ㆍ중관계”라는 주제발표을 통해 같은 주장을 했다.

  • 314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에 대해 다양한 수단을 지니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역할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었을때 6자 회담을 재가동하여 위

    기이전의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역할에 한정되어 왔다.25) 심지어 2007년 북미 2.13합의

    의 경우에는 위기국면을 전환시키는데 있어서 조차도 중국의 역할은 한계가 있음을 보

    여주었다. 중국은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북미간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

    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영향력과 수단을 소모하지 않

    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현재 중국이 지니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강제 수단은 중국이 지향하는 한반도

    의 정책 목표, 즉 한반도의 안정과 영향력 확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는 효과

    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수단을 섣불리

    소모해 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강력한 강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 자체를 적절

    히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려는 것이다. 즉 중국은 보유한 수단의 사용이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대북 압박이 북한체제

    위기 또는 북한과의 관계 악화 등 또 다른 차원의 한반도의 불안정과 한반도 영향력

    확보의 중요한 수단의 상실이라는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과의 경제 교류와 협력을 지속하여 중국식 개혁 개방 모델의 북

    한 이식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은 북한체제의 안정과 친 중국 체제의 정착, 그리고 향후 북미관계 개선에 따른 중국

    의 상대적 영향력 약화에 대비한다는 중요한 전략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중국은 미, 일에 대한 전략적 신뢰가 확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핵 해결이후의 상황까

    지 고려하면서 북핵문제에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은 이러한 장기 전략을 위해서는 북핵문제로 인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경제교

    류와 협력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3. 중국의 북한 후계계승에 대한 입장

    중국은 북한의 후계계승문제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중국의 대북 장기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북한의 권력세습 문제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인식의 일단을 들여 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과거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모두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후계계승이

    25) Li Kaisheng (2007), pp.48-50.

  • 이동률 ∥ 315

    결정된데 대해 내심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중국의 두 지도자들은 김일성

    에게 왜 아들에게 권력 세습을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에 대해 김일성이 덩샤오핑에게 북한 권력내부가 분열되어 있어 그 누구도 북한을 안

    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권위와 권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만일 권력승계를

    매듭짓지 않고 사망할 경우 북한내 권력투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

    이라고 설명 했다는 것이다.26)

    김일성은 중국 지도부가 북한 체제의 불안정과 그로 인해 중국의 동북 국경지역에

    미칠 안보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이를 중국 지도자들에게 권력 세습

    을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데 적절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이 사례는 두 가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즉 중국이 북한의 권력승계를 중국의 안보 불안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며, 아울러 김정일 역시 중국의 이러한 인식과 우려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은 내정불간섭이라는 오래된 자기 규범에 충실하기 위해 공식적인 표명

    을 유보하면서 내면적으로는 사실상 김정은 후계 체제가 과연 안정적으로 권력 승계를

    진행해 갈지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서 누가 권력을 승계하는냐

    보다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진행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승계를 이

    룰 수 있는 인물이나 세력과의 유대를 강화하여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소통과 구

    조적 관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자들은 김정일의 연이은 이례적 중국 방문을 모두 수용하고 세 차

    례의 정상회담때 마다 ‘대를 이은 조중우의’ 를 강조하여 권력교체 이후에도 북중관계

    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후계계승이라는 과도기의 불

    안정성을 관찰, 관리하고자 ‘전략적 소통’을 주장했던 것이다.

    Ⅴ. 결 론

    중국과 북한은 연이은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체제의 안정이라는 원론에서는 분명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이 기반위에서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조중 친선’을 강조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조율이 쉽지 않은 이해관계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으며 향후 북중관계 성격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흐름들이 전개되고 있다.

    26) You Ji, “Managing Post-Kim Jong-il Succession Challenge: Hypothesizing Chinese Response,”Paper to the Conference Post-Kim Jong Il Regime and the Korean Peninsula, Korea Association of Area Studies (25 October 2011), pp.2-4.

  • 316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우선 북중관계는 향후 일정기간 비대칭적 의존관계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상회동이 이전과 같은 상호방문이 아닌 김위원장의 일방적 연속 방중을 통해 진행되

    었듯이 북한이 중국에 요청하고 의존하는 불균형 관계가 심화될 수 있다. 북한의 중국

    에 대한 노골적 의존은 부상하는 중국에게는 한반도의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포착될 것이고, 반면에 중국을 경유해서 북한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입지는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중국은 향후 보다 적극적으로 북중관계를 주도해 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10년 8월과 이번 방중에서도 보여 주었듯이 과거 회귀적인 행적을 보여주

    는 반면에 중국은 오히려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 설정을 제시하면서 주도해 가고

    있다. 지난 5월 방중때 부터 후주석은 ‘치당치국의 경험 공유, 전략적 소통 강화’ 등을

    제의하면서 북중관계의 새로운 관계 규범들을 제시하며 주도해가고 있다. 원총리는 한

    걸음 더나가 공개적으로 개혁 개방을 유도하면서 북한의 체제 변화를 주문해왔다. 이는

    현실적으로 북한이 경제지원에 주로 관심을 표명하는 반면에 중국은 경제협력으로 무

    게 중심을 옮겨가는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5년부터 소위 3대 경협원

    칙을 제시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방식의 전환을 모색해오고 있다. 특히 정상회담

    직후 북중간 경협 프로젝트인 황금평(黃金坪)섬 경제구와 나선특구 개발이 신속하게 진

    행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의 최대 무역 대상이자 경제지원국가로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적 지렛대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정책 목표는 이러한 경

    제적 수단을 어떻게 사용 하여 중국 인접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가에 있다.

    우선 중국은 중단기적으로는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여 북핵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

    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이후에도 여전히 중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

    하는 북핵 해법은 6자회담을 통한 관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6자회담

    이 단기간에 분명한 성과를 내지 않는다 해도 6자회담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중국외교의 성과이며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 발생 초기부터 이미 6자회담을 통한 출구전략을 상정하고 있었

    다. 이미 5월 김정일 방중, 방중전 다이빙궈(戴秉國)-힐러리 전화통화, 그리고 방중후

    의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통해 중국이 일관되게 모색해 왔다. 그리고 2011년 후주석은

    마침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중국의 입장에서 미국에 대한 전략적 불신이 잔존하고 있고, 특히 최근에는 북한의

  • 이동률 ∥ 317

    후계체제 계승과 관련 유사사태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내부적으로 매

    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북한과 긴밀한 소통 채널을 유지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핵실험이후 공식적으로는 북한 제재에 참여했지만 그럼에도 중국

    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경제교류와

    지원이라는 카드를 계속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은 북한에 중국식 개혁 개방 모델을 이식하여 중국의 동북 변경지

    역에 구조적으로 친중국의 북한체제를 연착륙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로 인해 중국에 직접적인 심각한 안보불안을 야기하지 않는 다고 판단 할 경우,

    북핵문제를 장기적인 시각에서 관리해가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장기

    적인 전략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소모하

    기 보다는 지속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 대북전략이 의도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

    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현 단계에서 북한이 비록 권력이양기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므로 중국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도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렇지만 북한 체제의 특성, 과거 북중관계의 기복 등을 고려

    할때 북한이 과연 중국식 개혁 개방 노선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위해서는 중국의 영향

    보다는 북한 체제 자체의 근본적 전환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후계체제 공고화

    시점까지 북한지도부는 중국식 개혁개방노선이 초래할 다양한 폐단과 그 채택과정에서

    야기될지도 모르는 권력이양기의 갈등이 야기될 것을 우려하여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27) 북한은 과거 60여년 동안 중국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의 간

    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둘째, 중국은 현재 중국 부상의 장애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북한체제 안정화를

    위한 북한 껴안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반대로 소위 역사상

    유례없는 3대 세습의 독재체제를 추진하고 있는 문제 정권을 비호한다는 비판에서 자

    유로울수 없게 되었다. 요컨대 부상을 위한 환경 조성 차원에서의 중국의 북한 껴안기

    가 오히려 중국의 안보딜레마를 초래하고, 소프트 파워를 약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야

    기하면 중국 부상의 장애가 될수 있다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체제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벼랑 끝 전술을 시도할 수 있는 북한체제를 용인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어디까지 일 것인가가 관심이다.

    27) 이기동, “북한의 후계구도와 체제 안정성,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주최 학술회의 발표 논문 (2010년 9월 9일) “최근 북한의 내부변화와 3대 세습체제 전망” pp.72-74.

  • 318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따라서 북한체제의 불안정에 대한 공감대로 강화되고 있는 북중관계에 대해 ‘북한의

    대중 종속론’이나 심지어 ‘동북4성론’과 같은 과도한 경계 심리도 문제지만 중국의 북

    한 개혁 개방 유도’라는 막연한 낭만적 기대 역시 장기적으로 한반도에서 한국의 입지

    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 할 우려가 있다. 한국이 스스로의 도그마에 갖혀

    자칫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입지는 갈수록 위축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 늦기전에 향후 북중관계의 변화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 내면서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 할 것이다.

    중국 역시 북한카드 만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과 영향력 증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에게 북한을 설득하

    고 압박하지 않는다고 공박하는 네거티브한 접근 방식보다는 북한이 아닌 한국과의 관계

    강화가 오히려 중국의 한반도 정책 목표 실현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과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접근하는 실사구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향후 북핵문제 해결은 한국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남겨질 수 있다는 현실감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이동률 ∥ 319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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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idcpc.org.cn/ziliao/tuanzu/hjt051028/news/051028-4.htm ((검색일:2010년

    11월 16일)

    中共中央对外联络部.“胡锦涛同金正日在长春举行会谈 (2010.08.30.).” http://www.idcpc.org.cn/

    dongtai/100830.htm (검색일: 2010년 11월 20일).

  • 320 ∥ 세계지역연구논총 29집 3호

    ABSTRACT

    China’s Strategy to the North Korea and China-North Korea Relations: Kim Jong-il Visit to China in 2010

    Lee, Dong-Ryul(Dongduk Womens University)

    Only nine months after the visits in May and August of 2010, Kim Jong-il yet again

    made an unofficial visit to China on May 20, 2011. Although it is uncommon for three

    visits to take place within the span of a year, there exists some precedent forth is

    within the history of China-North Korea relations. Although China-North Korea

    relations have recovered somewhat in the 2000s, the fact that there are no regular

    summit meetings that resemble past practices of mutual state visits suggests that the

    current bilateral relationship is no longer as special as it once was. The content of

    recent summits has been more like a tug-of-war based on different interests than a

    relationship that is based on solid mutual trust, worthy of being defined as an

    “undefeatable friendship.” The Chinese leadership wants to manage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in order to

    prevent any recurring signs of instability and expect a transition toward a pro-Chinese

    regime in the long run. Thus, instead of continuing an exhaustive aid-oriented approach,

    Beijing is now seeking for away to nurture acompatible economic structure in North

    Korea by implanting Chinese-style reforms and opening.

    keywords: China-North Korea summit, China’s Strategy to the North Korea, Kim Jong-il visit to China, North Korea nuclear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