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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 브랜드 사례 공모전현대중공업/진격의 기업

유양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010-4466-2908)이상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010-4594-9367)김민율/ 한국기술교육대학교 /(010-7744-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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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요약1950 년 6 월 25 일 발발하여 3 년 1 개월간 계속된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국의 상황은 아주

처참했다. 특히 경제상황은 아주 심각하였다. 그러나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경제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이 가능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 현대의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이 꼽힌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현대토건을 시작으로 전후 복구에 힘썼으며, 또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등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에 큰 공헌을 했다. 그 후 현대는 사업 분야를 점차 확대해 갔다. 시멘트, 철강, 자동차 분야에서도 활약하며 현대중공업을 설립하였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사업계획과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을 가지고 조선소 건립과 유조선 수주를

동시에 하는 신화를 이룩하였고, 1973 년 최초로 배를 건조한 후 10 년 만에 세계 최고의 조선 기업이 되었다. 그 후 현대중공업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한국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 또 한국이 세계 1 위의 조선국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대중공업은 1983 년 이후 계속해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였으며 해양, 플랜트 등 사업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중공업이 어떻게 이러한 발전을 이룩하고, 세계적인 1 등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였다. 현대중공업이 언제 어떻게 시작하였으며,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역경들이 있었고, 또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조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발전 과정과 주요 이정표 등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조사하여 현대중공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의 발전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과거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의 경쟁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를 통해 향후 전략에 활용할 수 있다. 또 경험과 자본이 없는 상황 속에서 차관을 위해 노력한 일화들, 변화하는 시장에 맞춘 유연한 대응, 현대중공업이 가진 최고의 기술력 등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들을 배울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경제가 좋지 않아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현대중공업의 사례를 통해 난관을 극복하는 기지를 본받고 각자의 처한 상황에 알맞게 적용하여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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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현대중공업의 시작과 현재 위치

1.1 현재 1 등으로서의 위상

현대중공업은 현재 세계 23 개국에 33 개 지사와 21 개 법인을 두고 있으며 아프리카ㆍ아시아 등 34개 공사 현장에 협력사 및 현지인을 포함해 6,000 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1983 년 조선업계 세계 1 위로 올라선 이후 지금까지 부동의 1 위자 리를 고수하고 있다. 당시까지 전 세계 수주량 1 위 국가였던 일본의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1985 년 특집호에서 1983 년 건조량 기준으로 현대중공업을 1 위로 선정했다. 현대중공업은 2012 년 3 월 세계 최초로 선박 인도 1 억 톤(GT, Gross Tonnage)을 달성하며 세계

조선업계에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지난 1972 년 3 월 23 일 기공식 이후 40 년 만에 1 억 717 만 톤 기록을 세운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중공업은 49 개국 285 개 선주사에 1805 척을 인도했으며, 육상건조, 선박침수, T 도크 등과 같은 획기적인 신공법을 개발해내며 건조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1 억 톤 기록은 2011 년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인 1 억 40 만 톤과 비슷하며 전 세계 선박발주량인 4130 만 톤의 2 배에 달한다. 이를 환산하면 시내버스 320 만대 규모로 서울 월드컵경기장 59 개에 물을 가득채운 부피와 같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그 해 1 월 국내 최초로 LNG-FPSO(부유식 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 독자모델을 개발하고, 2011 년 6 월에는 세계 최초로 LNG FSRU(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를 수주했다.

<그림1-1>현대중공업의 해외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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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현대중공업은 울산과 군산에 11 개의 도크를 보유 중이며 연간 100 척 이상의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연간 최대 건조량은 1300 만 톤으로 세계최대 규모다. 아울러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현대무포조선은 각각 조선업계 세계 5 위, 중형선박 부문 1 위다. 조선해운 조사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11 년 수주량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47.4%이며 이 중 세계 1 위인 현대중공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15%에 달한다.매출액의 경우 2007 년부터 쭉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지난 2012 년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 년 상반기 수주 1 위를 달성 했으며, 2013 년 5 월 매출액이 2 조 1898 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3%증가했다고 공시했다. 2013 년 1 월부터 5 월까지 매출액 누계도 10 조 1683 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7% 늘었고, 수주액 역시 130 억 7600 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8.68% 급증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중공업이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선박 및 발전용 엔진 ‘힘센엔진’이 2013 년 2 월 누적생산량 7000 대를 돌파하였다. 2000 년 현대중공업이 자체 기술로 개발에 성공한 힘센 엔진은 2001 년 9 월 1 호기를 생산한 이후 현재 중형엔진 부문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 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 선박엔진시장은 현대중공업과 두산엔진, STX엔진 등 국내 3 사가 대부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이 중 현대중공업의 힘센엔진을 제외한 모든 엔진 제품은 독일 만디젤 등 외국 업체의 라이선스를 받아 만든 것이다. 통상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은 선주가 결정하며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은 꺼리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센엔진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선뜻 쓰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성능을 인정받아 지금은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 경쟁사가 건조하는 선박에도 탑재되고 있다.그 외에도 중남미 진출을 위해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3 년 4 월 브라질에 건설장비 생산 공장을

준공했으며 이는 중국ㆍ인도 등 브릭스(BRICs) 국가 중 3 개국에 생산거점 구축을 완료한 셈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에 위치한 이 공장은 약 17 만평 규모로 약 1 억 7,500 만 달러가 투자되었다. 굴삭기와 휠로더ㆍ백호로더 등 주력 건설장비는 연간 3,000 대를 생산 할 수 있으며 점차 중남미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각각의 모델에는 현지 작업자들의 니즈가반영될 예정이어서 시장의 관심 역시 증가하고 있다. 2014 년 월드컵과 2016 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브라질은 연방정부 차원의 경제개발 계획으로 대규모 건설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건설장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에서는 앞서 지난 1 월 외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현지에 고압차단기 공장인 '

현대일렉트로시스템(Hyundai Electrosystems)'을 준공하며 전력기기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러시아 시장 선점에 나섰다. 3 만평 부지에 총 5,000 만 달러가 투자된 이 공장은 연간 2 억 달러 규모의 고압차단기 350 대를 생산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의 전력망 현대화 정책에 따라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러시아 고압차단기 시장에서 2012 년 4,000 만 달러의 매출을

<표 1-1>현대중공업의 연도별 매출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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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였다. 또 향후 시장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설비를 증설해 오는 2015 년까지 이 공장의 연간 생산규모를 500 대로 늘릴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은 2013 년 4 월 ‘제 2 회 한·러 비즈니스 어워드 시상식’에서 한·러 간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 영예인 ‘대상’(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중남미 최대 종합전기 전시회인 ‘FIEE 2013'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하노버산업장람회‘에 잇달아 참가하는 등 종합 전기설비 메이커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1.2 현대중공업의 시작

1983 년 이후 단 한 번도 세계 조선업계1위 자리를 놓아주지 않았던 현대중공업의 시작은 거북선이 그려진 1970 년대 우리나라 지폐와

아무것도 없는 사진에서 시작됐다.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아무런

경험도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조선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하고 1971 년 차관을 도입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날아갔다. 차관을 위해 처음 방문했던 일본에서 중국과의 무역을 빌미로 거절을 당하고, 독일에서 “나무배나 만들라”는 조롱 섞인 거절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차관에 여러 번 실패한 상황이었지만 정 명예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금융회사 ‘A&P 애플도어’의 찰스브룩롱바텀 회장 앞에 거북선이 그려진 500 원짜리 지폐를 내보였다. 정 명예회장은 “우리는 벌써 1500 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1800 년대이면, 한국은 그 보다 300년이나 앞섰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배포에 감동한 롬바통 회장의 도움으로 베클레이은행과 실무 협상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은행에서 쉽게 차관을 내줄 리 없었다. 은행에서는 “배를 사줄 사람이 있으면 승인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차관을 도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만들 배가 없었기에 사실상 거절이나 다름없었다. 정 회장은 당시 황량한 백사장과 초가집 몇 채가 전부였던 울산 미포만의 사진과 50 만분의 1 지도, 그리고 외국 조선사인 스코트 리스고 에서 빌린 26만 t급 유조선 도면만 들고 세계를 돌며 수주에 나섰다. 결국 그리스 해운업자 리바노스로부터 26 만 t급 배 두 척을 수주하는데 성공하며 현대중공업은 조선소 건립과 함께 배를 동시에 진수한 유례없는 조선사가 됐다. 1972 년 3 월, 울산조선소 기공식에서 정 명예회장은 “우리나라 공업 발전과정에 획기적인 이 대사업은 초창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우리 근면과 노력으로 정부와 국민의 협력을 얻어 본 사업을 필히 성취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 년 뒤 현대중공업은 26 만 t급 2척을 리바노스에 성공적으로 진수했다.현대중공업이 세워지기 전 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대 선박이 1 만 7000 톤급이었고, 세계

시장점유율이 1%에 불과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2. 현대중공업의 역경과 극복

<그림1-2>1970 년대 500 원짜리 지폐(뒷면)

<그림1-3>미포만 사진 및 배의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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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자립의 기회가 된 일본과의 합작무산1960 년대 후반,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외국에 돈을 빌리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외화

고갈은 심각한 상태였다. 현대중공업은 먼저 조선소 건설 차관과 기술을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에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중국의 국교 정상화 기본원칙인 주은래 4 원칙에 걸려 미쓰비시와의 합작

시도는 무산됐다. 주은래 4 원칙 중에 한국에 투자한 기업은 중국 대륙에 진출할 수 없다는 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중국 대륙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던 미쓰비시가 동경에서 회의를 잡아놓고 무산시킨 것이다. 또 일본 통산성이 제동을 걸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의 기술이 아직 유치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장성을 고려할 때 최고 건조능력이 5 만 톤에 불과하기 때문에 20 만 톤급 이상의 대형 선박 건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때에 일본 통산성의 견론에 따라 일을 서둘렀다면 현대중공업의 건조 능력을 5 만 톤 이하로 묶일 뻔했고, 주은래 4 원칙이 없었다면 미쓰비시와의 합작으로 한국 조선공업이 우리만의 것으로 독자성을 띤 채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1973 년 말 제 1 차 석유파동으로 VLCC 수주가 끊겼다. 당시 VLCC 건조가 유일한 기술이었던

현대에게 큰 위기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수주 선종의 다변화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또 74 년 울산철공주식회사(현 한국프랜지), 75 년 철구사업부(현 플랜트사업본부), 수리조선소(현 현대미포조선)를 설립하여 품질관리와 생산성 향상을 꾀했다. 76 년 선가의 10%를 차지하는 엔진의 국산화를 위해 엔진사업본부 발족하고, 78 년 2 월 ‘현대중공업주식회사’ 로 사명 변경, 국내 100 대 기업 중 5 위에 오르고 명실 공히 수출부국 정책의 선도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1980 년 일본 경제전문지 ‘다이아몬드’에 조선분야 세계 10 위로 선정되었다. 그 후 1983 년 전 세계 발주량의 10.7%를 수주하고 14 억 달러를 수출하여 국내 기업 최초로 10 억불 수출탑을 수상했고, 전년도 1위인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세계 1 위 조선업체로 부상했다. 1 위로 부상해 자신감을 갖게 된 현대는 이 때부터 종전까지 고수해오던 저가 수주전략을 바꿔 기술 집약형 선박 생산에 착수하게 된다. 선진국들이 독차지해오던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겠다는 것. 1983 년 11 월 용접기술연구소를 발족하고 이어서 1984 년 2 월에는 수조시험장을, 같은 해 10 월에는 선박해양연구소를 준공한다.

2.2 ‘오일 달러’의 위기를 중동 진출의 기회로현대중공업은 고부가가치선 건조와 함께 해양개발, 플랜트, 엔진, 로봇, 중장비기계 등의 비조선

부문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확대한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은 90 년대 들어서면서 LNG 운반선 건조에

<표 2-1>연도별 한국의 외화 보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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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본사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해양산업본부를 두었고, 총 1,095,384㎡의 야드 면적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작설비와 숙련된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해양사업 참여는 1976 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항만 하역설비 공사를 수주하여

89 개의 상부 및 하부구조물을 울산에서 제작 및 해상에 설치하면서 해양제작 사업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중동의 공사를 수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73 년 1 차 오일쇼크가 시작되자 배럴당 1 달러 75센트를 하던 원유 값이 2 년도 안 되는 사이 다섯 배 이상이 치솟았다. 중동 산유국들은 세계 경제를 불황으로 이끄는 원인을 제공하고, 자신들은 막대한 오일 달러를 끌어 모으면서 선진국형 경제건설을 시작했다. 1975 년 인플레 외에도 대외 상환 결재에 쫓기며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치달은 한국의 경제는 부도 직전이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중동에 가서 그곳으로 몰려 들어가는 오일 달러를 잡아오는 것뿐이었다고 믿었다. 세계의 막대한 석유 달러가 중동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가 먼저 진출을 하느냐, 건설 시장을 개척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처음 우리나라의 중동 진출에 대해서 미국, 유럽, 일본 경제계는 처음부터 한국 건설업체들의 기술,

자본, 해외건설 경험 등을 과소평가하면서 아예 도외시해 버렸다. 국제 건설업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산업항 공사는 몇 세기에 한 번 있을 법한 일감이었다. 9 억 3천만 달러라는 공사 금액은 계약 당년인 1976 년도 환율로 4천 6 백억 원 정도로, 그해 우리나라 예산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그때까지 중동의 건설시장은 선진국들의 독무대였다. 현대가 정보를 입수한 것은 입찰 7 개월 전이었는데 미국, 영국, 서독, 네덜란드의 손꼽히는 건설업체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공사 수주를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사의 주관 부처인 사우디 체신청은 윌리엄할크로에게 기술 용역회사 공사에 참가할 열 개 시공 회사 선정 작업을 의뢰했다. 입창 초청을 받든 것은 미국의 브라운 앤드 루트, 산타페, 레이몬드 인터내셔널, 영국의 코스테인, 타막, 서독의 보스카리스, 필립홀스만, 네덜란드의 볼카스티븐, 프랑스의 스피베타놀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아홉 회사들이었다. 어떻게든 열 개 시공 회사 안에 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로 윌리엄할크로를 설득했고, 윌리엄할크로는 사우디 체신청에 현대에게 입찰 가격을 주자는 제의를 하여 체신청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입찰 참가 승차권을 손에 넣었지만, 입찰 보증금 2천만 달러가 필요했다. 액수 비밀 보장까지 하면서 2천만 달러를 빌려줄 만큼 현대를 신뢰해주는 은행이 있어야 했다. 뜻밖에도 바레인 국립은행은 선뜻 아무 조건도 없이 보증금 지원은 물론 주베일산업항 공사가 낙찰되기만 하면 공사 수행 보증금까지 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바레인 국립은행은 자본금을 넘는 보증은 할 수 없다는 제동이 걸려 있었고, 그 대신 지원을 해주겠으니 사우디 국립 상업은행에 지급 보증을 요청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바레인 국립은행의 지원 덕에 사우디 국립 상업은행은 흔쾌히 지급 보증을 해 주었다.한편 현대가 주베일산업항 건설 입찰에 끼게 되었다는 정보가 나가자 긴장한 경쟁자들의 정보 탐색전이 가열되면서, 현대의 입찰을 막으려는 갖가지 회유 공작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故) 정주영 회장은 현대가 필요한 금액을 구하지 못해 입찰을 포기할 것 같다는 소문을 전하게 하여 경쟁자들을 안심시키게 하며 방해 공격을 일소했다.사우디 측은 44 개월의 공사 기간을 조건 없이 8 개월 단축시키겠다는 제의에 감명을 받아 현대에게

그 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입찰 결과를 발표했다. ‘76 년 2 월 5 일 현재, 사우디 왕국의 전체 건설 수주고가 10 개 업체 23 건 총 7 억 8천만 달러였다면 9 억 3천만 달러짜리 이 공사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주베일산업항 건설 진출에 대해 전 세계 극소수의 독점분야였던 해상 구조물의 시공 기술을 현대가 습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점에서, 또한 기술과 모든 분야에서 현대의 도약의 기점이 되었던 것에서 이 역사는 큰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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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정기업 및 브랜드의 역사와 도전

3.1 역사적 발전과정 개괄 제시1973 년 12 월 28 일 현대조선중공업(주)으로 설립한다.

1974 년 6 월 조선소를 준공하고 11 월에 '1 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1976 년 사우디 주베일산업항(OSTT)공사를 계약했다.

1989 년 현대엔진공업(주)을 흡수합병하였다.

1994 년 6 월 국내최초로 LNG선을 인도했다

1999 년 8 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고 12 월에 '30 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2000 년 9 월 국내 최초로 대형 디젤엔진 독자모델을 개발하고 11 월 차기 잠수함 사업에 진출하였다.

2001 년 4 월 쌍축 초대형 유조선을 건조하고’40 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2002 년 2 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하여 현대중공업그룹을 출범하였다.

2007 년에는 '100 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2008 년 5 월 군산 조선소의 기공식을 갖고, 태양전지 생산 공장을 준공하였다.

2009 년 2 월 풍력발전기 생산 공장을 설립하고 11 월에 '150 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2010 년 8 월 조선업계 최초 선박 수명 주기관리(PLM)시스템을 구축하였다.

2011 년 3 월 세계 최초로 ‘스마트십(Smart Ship)'을 건조하였다.

2012 년 3 월 세계 최초 선박 인도 1 억 GT 달성!

2013 년 5 월 세계 첫 ‘바다 위 LNG 공장’ LNG-FSRU 진수하였다.

3.2 출시 전 사업 선택과 준비1960 년대 당시 조선은 원료 조달이 어렵고, 생산 공정이

복잡하며, 판로 개척이 어려운 즉 사업화되기 어려운 산업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故) 정주영 회장은 조선업을 선택했다.그 이유는 첫째, 조선은 리스크가 큰 업종이긴 하나 많은 이들에게 직장을 제공할 수 있고 많은 연관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종합 기계공업이기 때문이고, 둘째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 해 외화를 벌어들일 정도로 외화벌이를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970 년 2 월 닉슨은 국회에 외교교서를 보내어 닉슨 독트린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그 내용은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미국은 다만 동맹국이나 중요한 관계가 있는 국가들에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월남전의 개입 실패와 국제적 데탕트 무드에 따라 가능한 한 국제적 분쟁에 개입을 하지 않고, 이미 약화된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경감하고자 하였다. 닉슨 독트린은 아시아 방위책임을 일차적으로 아시아국가들 자체가 지게하고, 미국은 핵우산을 제공함으로써 대소봉쇄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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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의 계속적인 도발과 1969 년 7 월에 나온 「닉슨 독트린」은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불개입을 공식화함으로써 한국에는 자주국방의 필요성이 중심명제로 제기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히 국방산업을 위한 중공업 육성을 지시하였고 주물선 공장, 특수강 공장, 중기계공장, 조선소의 4 대 핵심 공장 건설 사업이 추진되었다. 조선의 경우 재정적 지원 가능성에 대한 논란 끝에 노동집약분야라는 점에 의해서 선정되었고 이에 실수요자로 현대건설이 선정되며 현대중공업의 설립에 바탕이 되었다.“내가 조선사를 만들겠다고 하자 백이면 백 사람 약속이나 한 듯이 반대를 합창했다. 건설만 하던

현대그룹이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을 만들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달랐다. (조선사의)철판을 잘라 용접하고 엔진을 올려놓고 하는 일은 모두가 건설 현장에서 하던 일 아닌가.”-정주영 회고록 <시련은 없어도 실패는 없다>中-

3.3 주요 이정표와 왕자의 난- 주요 이정표1974 년 수출 1 억불탑 수상을 시작으로 1983 년 수출 10 억불탑, 2003 년 수출 50 억불탑, 2007

년 수출 100 억불탑, 2009 년 수출 150 억불탑을 각각 수상했다. 현대중공업의 사업 분야는 조선, 엔진기계, 해양, 플랜트, 전기전자시스템, 건설장비 등 6 개이다. 현대중공업의 모태는 1970 년 현대건설 내부에 만들어진 조선사업부이다. 조선사업부는 1971 년 9

월 영국 조선회사였던 A&P 애플도어(A&P Appledore)사 및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와 기술, 판매 협약을 체결했다. 이 해 12 월 정부로부터 현대울산조선소 사업계획을 승인 받았다. 이듬해 2 월 그리스 리바노스(Livanos)사에 26 만 톤 급 원유운반선 2 척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1973 년 12월 현대건설로부터 분사해 현대조선중공업(주)이 세워졌다. 초대 대표이사는 현대그룹 창업자 고(故) 정주영 회장. 1974 년에 조선소가 준공됐다. 현대중공업은 1975 년 4 월 현대미포조선소를 세웠다. 1976 년 정부로부터 엔진사업을 승인 받은 뒤 그 해 7 월 엔진사업부를 출범시켰다. 1978 년 사명을 현대중공업(주)으로 바꾼 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982 년 5 월 고(故) 정주영 회장의 6남인 정몽준 씨가 제 4 대 사장으로 취임했다.조선 산업은 각종 선박 기자재의 연구개발, 설계 및 생산을 위한 지식 기반형 복합 엔지니어링

산업이다. 고도의 기술 집약형 고부가가치선박, 가까운 미래 출현하거나 진입이 필요한 차세대선박, 해양레저관련 부품 및 인프라를 포함한 해양레저선박, 고품질·고생산성 제품 생산을 위한 미래조선생산시스템 기술 등이 향후 경쟁력의 핵심이다. 1983 년 조선업계 1 위로 부상한 이후 현대는 이 때부터 종전까지 고수해오던 저가 수주전략을 바꿔 기술 집약형 선박 생산에 착수하게 된다. 또 현대중공업은 1981 년 현대특수화학, 1985 년 현대해양개발, 1986 년 현대종합제철, 1989년 현대엔진공업, 1993 년 현대철탑산업 현대로보트산업 현대중전기를 각각 합병했다. 주식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것은 1999 년 8 월이다.

- 왕자의 난2000 년 IMF 외환위기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내 최대 재벌인 현대그룹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의 2남인 정몽구와 5남인 정몽헌이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정면충돌했다. 소위 말하는 ‘왕자의 난’이 2000 년 3 월과 5 월 2 차례 발생한 것이다. 왕자의 난을 계기로 현대그룹은 자연스럽게 분리절차에 들어갔고 2남인 정몽구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5남인 정몽헌은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6남인 정몽준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을 물려받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이하 현대중공업)은 왕자의 난을 계기로 현대그룹에서 분리되었고, 2002 년에 현 체제를 갖췄다. 이 해 5 월 최대주주가 고(故) 정주영 회장에서 현대 상선으로 바뀐다. 이듬해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회장이 타계하면서 각 계열사들이 그룹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현대중공업은 2002 년 2 월 계열사였던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된다. 최대주주도 현대 상선에서 정몽준 고문(당시)으로 바뀌었다. 이 해 5 월 현대중공업은 삼호중공업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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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초 출시 때의 시장상황

4.1 최초 브랜드명, 로고현대중공업의 모태는 1970 년 현대건설 내부에 만들어진 조선사업부다. 1973 년 12 월

현대건설로부터 분사해 현대조선중공업(주)이 세워졌다. 초대 대표이사는 현대그룹 창업자 고(故) 정주영 회장. 1974 년에 조선소가 준공됐다. 현대중공업은 1975 년 4 월 현대미포조선소를 세웠다. 1976 년 정부로부터 엔진사업을 승인 받은 뒤 그 해 7 월 엔진사업부를 출범시켰다. 1978 년 2 월 사명을 현대중공업(주)으로 바꾼 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현대중공업의 심벌마크는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두 개의 정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삼각형은

인류건축을 대표하는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상징한 것이며, 황금색과 초록색은 새싹이 자라 녹음이 되듯 영원히 새롭게 번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4.2 경쟁 상황한국전쟁의 전후복구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한국의 조선업체는 국책조선공장인 대한조선공사와 그 외 민간기업으로 본격적인 출발을 하였으나 60 년대까지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선 산업체는 꾸준히 증가하여 60 년 초에는 198 개에 이르렀다. 경제적인 성과는 미비하였으나 성장 잠재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던 한국조선소는 1966 년 독자 설계한 2,600GT급 화물선이 ABS 의 입급검사를 합격하는 한편 1967 년 베트남에 30 척의 바지선을 최초로 수출하면서 그 결실을 보기 시작한다. 조선 산업 장려정책과 함께 국가지원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965 년 상공부는 대한조선학회, 한국선급,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함께 근해어선, 원양어선, 연안여객선, 원양 화물선 등 총 60 여 종의 중소형 선박 표준형선의 기본설계를 진행해 조선소에 보급했다.

<그림4-1>현대중공업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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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년대에는 한국의 대형조선소들이 하나 둘 출현하기 시작한 시기로 72 년 현대를 시작으로 대우, 삼성이 연달아 조선업에 뛰어들면서 대형선 건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여 1,2,3 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4.3 당시 주요 경쟁자-세계 최고의 조선국 일본반세기 가까이 세계 조선시장을 이끌어 온 일본의 조선 산업 지난 1956 년 신조선 점유율 세계 1 위에 오르며 유럽이 강세였던 조선 산업에 있어 최강자로 자리 잡았다. 한때 세계 조선시장의 4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양질의 선박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온 일본의 조선 산업은 선박건조의 경제성 제고, 생산성 향상 등 기술혁신을 선도했음은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해외로의 기술이전에도 기여해 왔다. 1960~1980 년대에 세계 신조선의 40%가 넘는 시장을 점유했으나, 1980 년대부터 점차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우리나라로 인해 시장 점유율이 낮아지더니 결국 2003 년을 기점으로 세계 1 위 조선국의 자리를 빼앗겼다. 조선 산업 있어 세계 1 위를 반세기 가까이 유지해오던 일본이 우리나라에 시장을 빼앗긴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90 년대 후반 조선 산업이 하강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을 축소한 것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조선소들은 과감한 투자로 설비를 확장하는 시점에서, 하강할 것이라던 조선 산업이 호황을 맞으며 전세가 역전됐다고 할 수 있다. 석유파동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조선 산업 7 개 대형업체가 전체 건조량의 70%가 넘는 수준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설비정리 및 중견 조선업체의 등장으로 대형업체들의 설비규모가 축소됐다. 이러한 설비규모의 축소가 일본 조선 산업 세계 1 위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1990 년대 현대중공업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초선소로 손꼽히던 미쓰비시중공업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2001 년 미쓰비시의 매출액은 현대중공업의 4.8 배였다. 그런데 일본은 80 년대 이후 젊은 인력들이 충원되지 않아서, 조선업이 극심한 설계 인력난에 부딪히게 되었고, 미쓰비시 중공업도 예외는 아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미쓰비시 중공업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시간 내에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회사였다. 일본의 업체들에 비해서도 20%정도 공수(1 사람이 1 시간 작업 하는 것, 선박에서는 건조시간을 몇 명이 몇 시간 일했는가 하는 척도로 측정한다.)가 적게 들어갔었다.그러나 설계 인력의 부족으로 새로운 선박을 설계하고, 이것을 생산하는데 는 문제가 많았다. 때마침 이 당시 유조선 좌초나 침몰에 의한 원유유출 사고들로 인해 전체 유조선의 이중선체가 의무화 되는 시점이어서, 미쓰비시 중공업은 이에 대해 한국 기업과 경쟁하기가 아주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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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그 당시 포지셔닝전략현대중공업은 먼저, 외국의 대선주들에게 수주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을 주도 하였다. 또한 하청기업들과의 공생을 통해 함께 발전을 꾀하며 자체적인 선박설계를 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현대중공업의 전략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우선 외국의 대선주들을 고객 겸 출자자로 해서 대형 선박 수리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며, 선박 기자재 자급을 서둘러 부품 하청업자들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세계적인 종합 조선 사업으로 이끌 생각이다. 또 기술개발을 서둘러 한 척에 몇 백만 달러씩 하는 선박 설계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 -정주영 회고록 <시련은 없어도 실패는 없다>中-또한 변화하는 경기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기 위해 현대중공업은 지난 1993 년 현대중전기, 현대중장비, 현대로봇, 현대철탑 등 4 개 계열사를 합병하여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조선분야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었으며 명실상부한 종합 중공업이 되었다.

5. 현재 상황

5.1 4P 전략- Product 휴대용 PC 로 실시간 감시·관리가 가능한 ‘스마트십‘현대중공업이 개발 중인 차세대 선박 시스템인 ‘

스마트 2.0’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현대 중공업은 울산 본사 인재교육원에서 ‘조선해양 IT융합 혁신센터 1 차 과제성과 보고회’를 개최하고, 스마트십 2.0 의 현재까지 개발성과와 향후 추진계획을 밝혔다.

지난 2011 년 3 월 세계 최초로 스마트십을 선보인 현대중공업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울산광역시, 중소 IT업체 등과 함께 ‘조선해양 IT융합 혁신센터’를 설립해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마트십 2.0 을 개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현대중공업이 중국 등 후발 조선업체를 따돌리기 위해 선박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킨 기술이다.스마트 2.0 은 대형선박에 위성을 이용하여 ‘스마트십

시스템’을 탑재하고 육지에서 프로그램에 접속만 하면 운항정보를 실시간 전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개발된 스마트십 1.0 시스템은 선주나 해운사들이 최적의 운항경로를 찾는 수준이지만, 2.0 은 선박 원격제어나 무인선박까지 가능한 기술이다.현대중공업은 스마트십 2.0 개발의 2 차년도

과제로서 이상기후 감지, 선체응력 진단 등 선박에서 파악한 운항정보를 육상 관제센터로 전송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경제적인 운항을 돕는 선박시스템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이들 사업이 완료되는 2015 년이면, 시장에서 선박기관 모니터링은 물론 기상상황과 주변 선박들의

운항정보, 항해 계획 등 각종 정보들을 종합 분석해, 선박항해를 지원하는 ‘스마트 2.0’이 완성된다.

- Price저가 전략에서 다시 고가 전략으로현대중공업은 2013 년 4 월, 적자를 감수한 원가 이하의 수주를 하였다. 조선업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세계 1 위 조선사 현대중공업의 수주잔량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대 중공업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지난 3 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323 억 달러(37 조 3000 억 원)로, 조업 기간으로 환산하면 18 개월 치 매출 물량에 불과하였다. 지난 2008 년 3 년 치 안팎의 수주잔량을 확보했던 현대중공업은 금융위기 이후 수주 가뭄을 겪으면서 수주 잔량이 1 년 6 개월 치 수준까지

<그림5-1>스마트십 개념도

<그림5-2>조선 3 사 수주잔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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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생산 물량을 채우기 위해 가격보다는 일감 확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2013 년 7 월, 현대중공업은 밀려드는 주문에 가격 인상을 추진하였다. 올해 수주가 목표인

113 억 달러(약 12 조 9000 억 원)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미 목표의 60%에 이르는 수주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조선 산업이 글로벌 선주들의 주문 감소로 휘청 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또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은 상반기에 중국 조선소의 수주 규모는 2120 만 톤으로 1660 만 톤을 기록한 한국을 앞섰으나 금액 측면에서는 105 억 달러로 한국의 185 억 달러에 밀렸다고 분석했다. 1류 조선소가 이익을 내는 이유는 글로벌 선사들은 더 좋은 성능을 보이는 배에는 가격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하반기에 고연비 선박에 초점을 두고 가격을 올릴 계획이다.

- Place 유럽을 중심으로의 유통망 현대중공업은 1972 년 2 월 유럽 그리스 리바노스(Livanos)사와 26 만 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 2 척

건조를 계약한 이래로 중동의 쿠웨이트 UASC 와 다목적운반선 15 척 수주, 유럽의 스웨덴 스테나라인사와로로컨테이너선 11 척을 수주했다. 1980 년대에는 노르웨이 베르게센사, 이바란스사와 수주 계약을 하는 등 유럽을 중심으로의 유통망을 지속해왔다. 최근 2012 년 5 월, 현대중공업은 유럽의 노르웨이 프레드올센 에너지(Fred Olsen Energy)사와 반잠수식 시추선 1 기를 수주했다. 이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노르웨이 해양산업 표준(NORSOK)'을 반영해 반잠수식 시추선을 설계 및 건조하게 된다. 또 2013 년 5 월에는 유럽 이랄리아다미코(d'Amico)사와 PC 선(석유화학제품운반선)7 척 등 총 10 척, 3 억 달러를 수주했다. 7월에는 미국 LA 에서 체계 최대의 청과 생산·판매업체인 '돌(Dole Food company)사와 총 1 억 6500 만 달러 규모의 770FEU급 풀냉동 컨테이너운반선 3 척에 대한 계약을 하였다. 이렇듯 현대에도 초기 유통망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럽을 중심으로 뻗힌 유통망을 준수하고 있다.

- Promotion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개선 현대중공업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기능인력 양성기업’으로 사내 기술교육원에 용접, 배관, 판금

등 기능올림픽 종목과 관련된 교육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전문기술교사들이 전국 특성화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연수를 실시해 기량향상을 돕는 등 미래 기능인력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교육내용은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훈련시설 견학과 직종별 산업교육 및 안전교육을 포함한 진로직업 체험교육 등을 진행한다. 그리고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그리고 직장인을 위한 학점은행제, 시민을 위한 평생교육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고, 자율형 사립고(현대청운고)의 설립으로 지역교육 풍토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학교운영비 및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다른 사회적 공헌으로는 창업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눔의 복지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한

활동으로는 경로당 자매결연,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헌혈캠페인, 사랑의 기증품 판매전, 재난구호활동,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 등이 있다. 최근 활동으로 현대예술관 연극 관람을 위해 지역 복지시설 660 명을 초청하였다. 소외계층과의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또 지역의 40 여개 경로당 순회 방문을 하여 어르신들의 말벗과 생활 도우미가 되어주었다. 그 외에도 지역 전통시장과 공공주차장 등지에서 꾸준히 환경정화활동을 하고 조손 및 독거노인 가정에서 집수리를 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사회체육시설을 함으로써 주민과의 소통을 독려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서부. 강동.

전하 등 4 계절 잔디 축구장을 건립하여 프로 선수뿐만 아니라 주민에게도 개방함으로써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 세계 최고급 시설의 스포츠 클럽하우스를 건립, 울산의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회체육시설 건립에는 서부축구장, 강동 축구장, 방어진체육공원, 히딩크 드림필드, 스포츠 클럽하우스 등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학원추구발전 프로그램을 통해 12 세 이하 유소년 팀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축구팀까지 연계지원하고, 특히 여자축구 선수 육성과 저변확대에 노력을 기우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프로그램들을 통해 국민들과 소통을 하고 현대중공업의 이미지를 고취하고 있다.

5.2 현재 주요 경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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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삼성중공업 2007 년 사상 최대이자 세계최대인 212 억 달러를 수주해 4 년 치 이상의 건조물량을 확보한삼성중공업은 2008 년에는 세계최고가 선박으로 기록된 9400 억 원짜리 드릴십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발주된 드릴십 16 척 중 9 척을 수주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 조선업계 최초로 LNG-FPSO선을 수주하는 등 고부가가치선 분야에서 2008 년 당시 세계 1 위를 기록했다. 드릴십은 2000 년대 이후 발주된 41 척중 27 척을 수주해 시장점유율 1 위를 기록했으며 삼성중공업은 2008 년 척당 평균 수주단가 2 억 7000 만 달러, 고부가가치선 비중 80%로 업계 최고의 수주실적을 기록 중이다. 대한민국 10 대 신기술로 지정된 바 있는 쇄빙유조선을 세계최초로 건조해서 발주처인 러시아로 인도했으며, 세계최대 크기인 26 만 6천㎥급 초대형 LNG 선 건조도 성공하는 등 조선업계의 각종 기록을 갱신했다.삼성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박 개발·수주에 힘을 쏟아 좋은 결과를 얻었다. 삼성중공업이 올 들어

수주한 선박은 척당 평균 수주 단가가 2 억 7000 만 달러로, 이 회사가 수주한 전체 선박 가운데 고부가가치선 비율이 80%에 달한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중공업은 2008 년 수주량이 당초 목표(150억 달러)를 넘는 등 좋은 실적을 거두었다.삼성중공업은 2000 년 이후 세계에서 발주된 드릴십 41 척 중 27 척을 수주해 시장점유율 1 위를

기록하고 있다. 드릴십은 고유가로 해양 심해 유전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발주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삼성중공업이 2008 년 스웨덴 해운회사로부터 수주한 9450 억 원짜리 드릴십은 에베레스트 산

(8848m) 높이보다 더 깊은 해저 11㎞까지 드릴장비로 파내려 갈 수 있다. 높이 16m 의 파도와 초속 41m 의 강풍에서도 일정 지점을 유지할 수 있는 최첨단 위치 제어기술을 적용하였으며 영하 40 도의 혹한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삼성중공업은 바다 위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생산하고 저장까지 할 수 있는 LNG 생산·저장설비도 세계 최초로 개발, 수주에 성공했다. 척당 가격만 1 조원이 넘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회사 측은 "영국의 FLEX LNG 사(社)로부터 10 억 900 만 달러(약 1 조 1600 억 원)에 LNG 용 부유식 생산·저장·하역설비(FPSO)를 수주했다"며 "이 선박은 연간 170 만 t 의 액화천연가스를 생산·저장할 수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선박은 천연가스 생산설비와 액화·저장설비 기능을 동시에 갖춘 신 개념의 해양 설비다. 삼성중공업은 2005 년 러시아 국영 해운사로부터 수주한 7 만 t급 극지 운항용 쇄빙유조선을

인도했다. 삼성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이 배는 2006 년 대한민국 10 대 신기술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조선) 삼성중공업(조선)

축적된 기술과 경험으로 바탕세계 최대의 LNG 선 건조세계 최대의 프로펠러 최단기간 선박엔진 6천마력만 25 년 연속 세계 우수 선박 건조선박 건조량 1 위세계 최초 선박 육상 건조세계 최대 육상 리프팅세계 최대 화물선의 건조

새로운 기술 개발세계 최초 쇄빙유조선 건조극지용 드릴쉽LNG-FPSO 건조 고부가치 창출 대당가격이 1 조원 정도

<표 5-1>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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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공요인

6.1 마케팅의 핵심- 건조기간의 단축현대중공업은 도크(Dock) 없이 육상에서 불과 55 일(근무일 기준) 만에 대형 선박을 완공하였다. 10

만 5000 톤급 원유운반선의 육상 건조공법을 개발한지 2 년여 만에 착공(Keel Laying)에서 진수(Load Out)까지의 공사기간을 85 일에서 55 일로 35% 이상 단축한 것이다. 지난 2004 년 10 월 세계 최초로 선박의 육상 건조에 성공한 이후 이 기술을 보완, 발전시켜왔다. 탑재 블록 대형화 등 공법 개발을 통해 공사기간을 도크에서 건조하는 수준(보통 50~60 일)으로 낮춰 육상 건조의 단점이었던 경제성과 효율성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현대중공업은 1500 톤급 크레인을 이용해 4 척의 선박을 육상에 병렬로 정렬시켜 순차적으로 건조해 선체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했다. 또 건조 비용을 절감해 도크에서의 작업처럼 빠르고 안전하게 선박을 건조했다. 이렇듯 현대중공업은 육상 건조공법으로 이미 6 척의 선박을 완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Step 1~2 : 대형 블록단위 건조 및 탑재완료 & 진수 바지 준비.- Step 3~5 : 진수 바지 접안 및 안벽구간 Skidway 준비/설치.- Step 6 : APS System 으로 선박을 들어 올린 후 Skidding System 으로 안벽 및 바지로 이동.

- Step 7~8 : Stability Casing 탑재 및 출항준비. - Step 9~10 : 예인선(Tug boat)를 이용 Float off site 로 이동 및 Anchoring 등 진수준비.- Step 11~12 : Ballasting 하여 진수바지가 가라않은 뒤 본선을 예인하여 안 벽으로 이동. 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림6-1>육상건조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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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적인 로드아웃 방식현대삼호중공업이 육상건조 사상 세계 최대인 16 만 5천 톤급 원유운반선 건조에 성공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이 선박의 선체 건조작업을 끝내고, 로드아웃(Load-Out, 해상으로 끌어내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2006 년 그리스 메트로스타社로부터 수주한 이 선박은 길이 274 미터, 폭 50 미터, 깊이 23 미터로 축구장 3 배에 가까운 크기며 자체 중량이 2 만 6천 톤에 이른다. 2008 년 초 현대삼호중공업은 대형 선박의 육상건조를 위해 2 만 6천 톤에 달하는 선박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로드아웃 시스템 및 초대형 블록을 탑재할 수 있는 1,200 톤 골리앗크레인, 플로팅도크 등의 시설을 완공한 바 있다. 한편 이번에 16 만 5천톤급 선박의 육상건조를 성공함으로써 현대삼호중공업의 로드아웃 시스템이

'세계 최대 중량물 운반'으로 성공했다.

- 세계 최초 <역발상신공법>현대중공업이 텐덤침수공법을 통해 진수 작업 시에도 도크 내 나머지 선박들을 침수시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국내특허 등록…140 여 국가 대상 국제출원도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선박건조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현대중공업은 대형조선소의 일반적인 건조방식이었던 텐덤(Tandem) 공법을 역으로 적용한 '텐덤침수공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도크(Dock)가 아닌 맨 땅에서 선박을 건조해 내 업계의 상식을 뒤엎었던 현대중공업이 이번에는

도크에서 선박을 진수시킬 때 선박을 물에 띄우지 않고 가라앉히는 또 다른 '역발상'으로 건조 공기를 대폭 줄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텐덤침수공법은 한 도크에서 여러 척의 선박을 동시에 건조한 후 진수할 때 건조가 끝난 선박만 띄우고, 길이 158 미터 이하의 부분 건조선박들은 바닥에 놓인 상태에서 3 분의 1 정도만 침수시킨 채 작업을 계속 진행하는 공법이다. 대형조선소 도크에서는 일반적으로 물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완공단계의 선박과 건조중인 선체 토막 1~2 개를 함께 작업하는데, 새 공법은 완공된 선박을 바다로 띄우기 위해 도크에 물을 채우더라도 선체 작업은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현재 전 세계 조선소들은 기존 텐덤공법에 따라 주수, 배수, 작업 재개시까지 소요되는 2∼3 일 동안

도크 내 모든 선박의 작업을 중단하고 있지만, 텐덤침수공법을 적용하면 작업중단 없이 연속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신공법의 개발 성공으로 진수 중에도 작업을 할 수 있고, 더욱 효율적인 공정관리가 가능해져 전체 70 일의 도크 작업일수를 13 일 정도 단축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다. 또 각종 설비 및 장비를 철거하고 재설치하는 등의 부가 작업도 없앴다.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급인 제 3 도크에서 이 공법으로 현재까지 1 만 TEU급 컨테이너선 등 총 7척의 선박을 성공적으로 침수시켰다. 현대중공업은 이 공법에 대해 지난 1 월 국내특허 등록을 마쳤으며, 국제특허는 지난해 11 월 140 여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출원을 한데 이어 현재 주요 국가별로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현대중공업 텐덤침수공법이 선박 건조에 적용되면서 더 빠르고 안전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세계 조선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6.2 1 등으로 떠오르게 한 성공 비결 요약현대중공업이 1 위의 기업으로 떠오르게 된 비결은 공정의 혁신과 기술의 혁신에 있다. 공정 과정에

경쟁사와의 차별성을 두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여 현재의 위치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 공정혁신(PI)① 다양한 형상의 배관

여러 가지 모양의 배관들을 자체 개발함으로서 일반 대형선박을 비롯한 특수선박에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게 하였다.

② 도크 없이 육상 건조하는 무도크기법배를 건조하려면 바다 속에 대규모의 웅덩이, 즉 도크를 파서 바닷물을 빼고 배를 건조한 뒤 다시 바닷물을 채워 넣고 완성된 배를 바다에 띄우는 방식인 도크방식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도크의 규모와 수에 따라 조선업체의 건조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선박 건조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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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이다. 하지만 조선소 인근의 해안에다 전부 도크를 만들어서 선박건조를 하다 보니 장소가 한계가 있으므로 당연히 선박건조능력에 한계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무도크 선박건조기술을 이용하여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제작을 하게 되면 별도의 도크를 마련하지 않아도 되니만큼 조선업체의 건조능력이 올라가게 되므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③ 물류 합리화와 레이아웃 개선배를 건조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조선기자재들이 있는데 수만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부품이 엄청나다. 그런데 이런 부품들은 각 업체로부터 각각 다르게 공급받는다면 그 비용과 시간이 많이 낭비될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선기자재 공동물류센터를 지어 물류 합리화를 이룩하였고 레이아웃을 보다 생산적인 직선형으로 바꾸어 작업능률을 올려 전체적인 생산시간을 단축하고 공장의 생산시스템을 효율화하기 위해, 기계설비나 부품창고 등의 배치와 작업의 흐름을 계획하였다.

- 분야별 기술혁신① 생산

현대중공업은 건조에 필요한 주요 부품들은 직접 생산하여 생산 원가가 경쟁상대국인 일본보다 저렴하다. 세계최대의 출력선박용 엔진생산기술과 세계최대의 선박용 프로펠러 생산기술, 세계최대의 육상리프팅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최대의 화물선 선박설계 및 디자인능력 등 다양한 자재 기술개발 등을 통해 우수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② 인적자원관리와 개발세계 1 위 기술력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적자원의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12 년 연속 무분규사업장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직원에 대해 각종 복지혜택을 제공하여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인적자원의 개발을 위해 육성형 평가제도와 사내공모제도 등을 도입하고 벤치마킹연수, 국내외연수를 통한 체계적 교육 훈련체계를 적용하였다. 그 외에도 현중 기술대학, 사내 교육기관 등을 운영하여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인재의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③ 구매재고보유와 원자재조선업의 물적 공급원은 철강, 기계, 전기, 전자 등의 여러 후방산업으로부터 지원되며, 제반 item 중 선박 Engine 및 강재류 등 일부품목을 제외한 여타의 item 은 중, 소규모의 업체들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기타 ITEM - 현대 중공업은 원료 공급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교섭력을 가진다.

④ 판매마케팅/고객서비스조선업계의 판매는 주로 직접계약(실수요자(해운선사)와 LEASE 업체가 주 고객) 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별도의 유통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조선 업체들은 구매자의 높은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평균수주잔고의 4.4 년 치를 넘고, Gas선과해양플랜트부문에 대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주와의 선박계약 협상에 있어 향후에도 상당기간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7. 선정한 1 등 기업 또는 브랜드를 위한 향후 마케팅 전략방향 제안조선업의 경우 환율, 세계경제성장률, 금리 등의 변수에 민감하다. 현재, 그리고 향후

시장경제상황이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불황을 겪고 있다. 현재의 경제상황이 조선업에 민감하게 작용하여, 이로 인해 발주 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예약된 수주도 해제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에서도 대책이 시급하다. 계속되는 경제 불황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업의

내부 강점, 약점요인을 조기에 인식하고, 외부적인 기회와 위협요인들을 분석, 판단해야한다. 또한 어느새 일본을 제치고 조선업계에서 2 위로 등극한 중국이 맹추격을 하고 있다. 후발기업(추격기업)은 선도기업을 모방, 선도기업의 단점을 보완해 시장에 진출하기에 이에 따라 만발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부 강점(Strengths) 현대중공업 자체 기술력과거 90 년대에만 해도 일반적으로 도크에서만 배를 만들었다. 현대중공업은 이러한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현대중공업은 육상건조공법과 텐덤침수공법을 개발했다. 이 공법은 도크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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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공법보다 시간적 면뿐만 아니라 원가까지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텐뎀침수공법은 새로운 역발상의 산물이자 혁신의 증거다. 이와 같은 기술개발이 기업의 강점요인으로 작용, 이를 더욱 부각시키고 보완, 개발함으로써 선박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항상 우위를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내부 약점(Weakness) 인력들의 노령화현재 현대중공업의 경우 인력들의 노령화, 엔지니어 관련 인력의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요인이 기업의 위험을 초래한다. 당장은 문제가 없을지라도, 인력들의 노령화로 인한 신기술 습득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며, 특정 엔지니어 관련 인력 부족으로 인해 타국에서 인력을 고가에 구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비슷한 현상으로 기울어진 일본의 미쓰비시 사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로 기술직이라 하면 현대인들의 인식 속에서 ‘힘들다’, ‘어렵다’라는 인식이 있기에 그러하고, 편하게 수익을 취하려는 태도에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현대중공업은 이 위협요인을 대비해 현재보다 숙련 기술자들에 대한 복리후생 제도를 더욱 확대하여

기술직에 대한 매력도를 높여야 할 것이며, 또한 전문 인력 개발을 위한 자금을 투자하여 현재의 노령화 인력들을 대비하여야 할 것이고, 미래의 엔지니어 관련 인력 양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

-외부 위협(Opportunities) 원자재 가격의 인상과 급속도로 추격하는 중국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원자재 가격이 고가가 되었다. 이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의 핵심기술로 충분한 원가절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급속도로 추격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 기업의 취해야할 행동은 선도기업은 ‘1 인자의 딜레마’에 빠지지 말고 추격기업에 대비하여야 한다. 중국은 기술적 측면에서 늦게 참여 했지만 현재 일본을 제치고 2 위로 등급,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반면에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분야에서의 1 위 기업 딜레마에 빠져 그 자존심을 지키려 하였다. 따라서 선박 판매에 있어 고기술 고가 전략을 바꾸지 않았고, 세계 경제가 좋아지지 않음에 따라 수주량도 줄어들었다. 최근에 저가 가격 전략으로 줄어들었던 수주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이러한 위기상황을 토대로 현재의 위상에 안일하게 대응하지 않아야한다. 현재 자사의 강점과 약점 이외에도 외국기업의 강점과 약점에 끊임없이 연구를 하며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외부 기회(Threats) 제 2엔진 육상플랜트 현대중공업이 전공인 선박이 아니라 화력발전소 공사 등 육상플랜트 설비 수주에서 실적을 올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불황이 한창이던 2010 년 육상플랜트에서 20 억 달러의 수주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엔 실적을 41 억 달러로 늘리며 육지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최근 들어서는 2012 년 전체 실적에 육박하는 33 억 달러짜리 공사를 따내는 개가를 올렸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 공사 덕에 2013 년 육상 플랜트 수주실적이 50 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조선업 불황을 육상플랜트사업으로 이겨내고 있다.알고 보면 현대중공업의 육상 플랜트 진출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1976 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에 참여한 이래 40 년 가까운 건설 노하우와 지명도를 쌓아온 것이 이번 중동지역 수주를 얻은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번에 공사를 따낸 발전소는 SEC 가 발전시설 중장기 확충사업에 따라 건설하는 총 발전용량 2640㎿급 초대형 중유 연소 초임계압 화력발전소다. 중동지역은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고유가와 꾸준한 인구 증가, 경제 성장에 힘입어

기간산업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에 따라 중동지역에서 현대중공업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렇게 외부 기회를 잘 파악하여 현대중공업이 강점인 선박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업을 토대로

화력발전소 공사 등 육상플랜트 설비 수주에 기회를 잡아 조선업뿐만 아니라 중공업 전체 분야를 다져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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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및 결론1973 년 설립된 현대중공업은 현재 한국의 핵심 기업 중 하나이고, 세계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세계 1 위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설립 전부터 차관 도입에 난항을 겪는 등 많은 문제들이 있었고, 설립 이후로도 오일 쇼크로 인한 세계시장의 불황과 내부분쟁 등의 크고 작은 역경들이 많았다. 그러나 창업주의 열정과 노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현대중공업은 그 심벌마크가 의미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도전하고 성장해 왔다. 끊임 없는 도전을 거듭하며 현대는 점차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어 나갔다. 현대중공업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루어냈다. 조선업계의 후발주자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배의 건조기간을 단축하는 육상건조법을 고안해 내었다. 그리고 육상건조법과 종방식 로드아웃으로 건조기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켜 세계 선주들의 신용을 얻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텐덤침수공법은 한 도크에서 여러턱의 선박을 동시에 건조한 후 진수할 때 건조가 끝난 선박만 띄오고 부분 건조선박들은 3 분의 1 정도만 침수시킨 채 작업을 하는 공법으로 더 빠르고 안전한 작업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이러한 기술력의 성장이 현대중공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또한 현대중공업은 건조에 필요한 부품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부품을 개발하였다. 선박용 엔진과 프로펠러를 개발하고, 설계 및 디자인능력 등을 자체적으로 고안해 내어 경쟁국보다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또한 이 제품들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 여러 기업들로 수출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계속해서 해양, 플랜트, 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그린에너지, 건설장비 등 사업 분야를 확대했으며 명실상부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현대중공업은 세계 조선사업의 불황이 예측되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고 도전한다면 누구나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현대중공업의 사례분석을 통해 어떤 역경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현대중공업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고 현재상태에 안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꾸준한 노력과 도전은 항상 보답받는다는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현대중공업의 사례가 계속되는 세계 경제 불황속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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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자료 원천기사문이투데이 (2013.06.21), “조선업 불황골 깊다.”한겨레뉴스 (2012.07.23), “‘스마트 선박’ 수주경쟁서 중국 따돌린다.”뉴스핌 (2013.05.23), “현대미포조선, 유럽서 선박 10 척 3 억 달러 수주 기록”파이넨셜뉴스 (2013.07.11), “현대미포조선풀냉동 컨테이너선 3 척 수주”MK뉴스 (2013.08.05), “현대重 제 2엔진은 육상플랜트”The Monthly Magazine 2032 (2012.11.02), "우리 시대의 거인 - 아산 정주영 회장"매일경제 (1970.09.01), “중공업 4 대공장 건설에 박차”Politic's (2013.04.23), "현대중공업 SWOT 분석 : 강점, 약점, 기회, 위협”Politic's (2013.04.11), "현대중공업, 2 조 2천 억 상당 EPSO 수주“Politic's (2013.05.27),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 저가 수주 경쟁”그린경제 (2013.17.16), “'맨손과 투지'로 일군 세계 최대 조선소 '미포灣의 기적'”아시아경제 (2013.02.14), “현대重 ‘힘센엔진’의 괴력”EBN (2008.07.09), “세계 1 위 현대중, 비결은 R&D 투자”서울경제 (2013.06.24), “[글로벌코리아 우리가 앞당긴다] 현대중공업”etnews (2013.01.02), "주력산업/조선/LNG 운반선의 친환경 핵심기술 개발"세계파이낸스 (2013.06.17), “현대중공업, 지난달 매출액 전년比 6.83%↑”AIRSTOCK (2011.12.30), "현대중공업, 2011 매출액 25 조 1690 억원...전년비 12.3%↑"문화일보 (2008.10.02), “글로벌 시장 호령 ‘메이드 인 코리아 파워’”SeeMore (2013.06.09), "현대중공업의 성장 과정, 과거와 현재 위상 비교, 재무 추이 및 최우선 가치 이해” 한국콘텐츠미디어 (2013.04.23), “1000 대기업 순위 리스트 "어느 기업이 장사 잘했나?" 2012 년 매출액 순위”Launch Box (2011.06.22), "우리나라 조선업의 시작”I'm Possible (2013.07.16), "현대중공업 신규수주, 조선/해양을 중심으로 순항”mlbbada (2007.12.10), "국내 조선사별 신건조 공법”네이버 지식백과 (기업사전, 2011.8.5, 굿모닝미디어), 현대중공업 [Hyundai Heavy Industries Co., Ltd., 現代重工業]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2013, 박문각), 닉슨 독트린 [Nixon Doctrine]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현대중공업(주) [Hyundai Heavy Industries Co., Ltd., 現代重工業(株)]

웹사이트한국조선해양기자재글로벌지원센터 http://www.komec.kr/현대중공업 홈페이지 http://www.hhi.co.kr/대우조선해양 http://www.dsme.co.kr/삼성경제연구소 http://www.seri.org/전국경제인연합회 http://www.fki.or.kr/

도서정주영 (1991),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제삼기획한국과학기술연구소 (1970),중공업발전의 기반: 한국의 기계 및 소재공업의 현황과 전망분석 상,하, 한국과학기술연구소박상하 (2009),이기는 정주영지지 않는 이병철, 무한김정렴 (1997), 김정렴 정치회고록-아 박정희, 중앙 M&B김정렴 (1995), 김정렴 회고록-한국경제정책 30 년사, 중앙일보사박영구 (2006), 1970 년대 중화학공업화정책에서의 과잉투자론 한국정책학회보, 제 15권제 2 호, 한국정책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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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별 후기 소감유양화([email protected])이번 현대중공업의 사례를 조사하며 제 인생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도전과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 꿈을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도전과 변화에 맞선다면 어떤 목표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 마음가짐을 계속 간직하여 어떤 상황이 와도 포기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자신감을 심어준 이런 기회를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상미([email protected]) 어느 대기업이든 처음부터 대기업이 된 기업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대기업적인 경영 마인드가 그 기업을 지금의 위치로 만든다는 것도 배웠다. 정주영 회장은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할 수 있는 뚝심. 포부. 신념을 갖춘 리더이다. 그 분의 배짱으로 만들어진 현대중공업의 조선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 1위가 되었고,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조선업계의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나 또한 그러한 자부심을 갖은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이 마케팅 분석의 기회로 현대중공업을 조사하게되어 영광이었다. 김민율(kau0927@ koreatech.ac.kr) 도전하지 않는 사람에게 새로운 미래는 없다. 이것이 내가 이번 사례조사를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보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였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경우 무모해보일지라도 소신을 가지고 도전했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내게 틀을 뛰쳐나가 새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번 조사가 내 삶의 큰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 확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