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브리프-기록하자[haja] 2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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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월간브리프 기록하자 [haja] 20154Contents 활동 오픈소스 아카이브시스템 보급.확산 416기억저장소 구축 지원 출간정보1) 아카이브즈의 체계화 - 작은 아카이브즈를 위한 실용적인 정리 기술 방법 출간정보2)기록관리관련법령(한국국가기록연구원 교육총서4) 20153512일기 수집 이벤트 이슈 박종철 고문치사 수사기록 비공개를 통해 특수기록관리 실태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 전직 대통령의 딜레마인가? 정책 기록관리 정책의제 공론화를 제안하며 칼럼 416말하는 - 실천적 아키비스트와 일상의 진보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월간브리프 기록하자[haja]통해 연구원의 활동과 고민을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RIKAR ()한국국가기록연구원 /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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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의 활동과 고민을 정리하여 쓴 글. 2015년 4월 창간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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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월간브리프-기록하자[haja] 2015년 4월호

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월간브리프 기록하자 [haja]

2015년 4월

Contents 활동 오픈소스 아카이브시스템 보급.확산 416기억저장소 구축 지원 출간정보1) 아카이브즈의 체계화 - 작은 아카이브즈를 위한 실용적인 정리 및 기술 방법 출간정보2)기록관리관련법령(한국국가기록연구원 교육총서4) 2015년 제3회 5월 12일 일기 수집 이벤트 이슈 박종철 고문치사 수사기록 비공개를 통해 본 ‘특수기록’ 관리 실태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 전직 대통령의 딜레마인가? 정책 기록관리 정책의제 공론화를 제안하며 칼럼 416이 말하는 것 - 실천적 아키비스트와 일상의 진보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월간브리프 기록하자[haja]를 통해 연구원의 활동과 고민을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RIKAR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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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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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KAR 활동 브리핑

RIKAR 활동브리핑은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의 다양한 활동(연구, 교육, 오픈소스아카이브시스템 확산, 대외협력, 출판 등)에 대한 소개와 구체적인 실행 내역의 공유를 지향합니다

오픈소스 아카이브시스템 보급.확산

일상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테스트베드로써 인간과기억아카이브를 설립한 연구원은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오픈소스 기반의 아카이브시스템의 개발 및 확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간영역의 아카이브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록관리적 전문성’과 ‘시스템 구축 및 운영상의 합리적인 비용’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AtoM, OMEKA, Curatescape, Achivematica 등을 인가과기억아카이브에 적용해보고 있으며, 그 성과를 토대로 호스팅 및 컨설팅 등의 보급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2014년에는 10개 기관을 대상으로 AtoM 호스팅 시범사업을 진행하였고, 올해부터는 OMEKA 호스팅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성공회대학교 노동사연구소 등과 협력하여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참여형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OMEKA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상반기 중 오픈 예정), 서울시 동대문구청 기록관과 협력하여 기록물 콘텐츠 개발 및 전시를 위한 Curatescape 컨설팅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8월 경 오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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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기억저장소 구축 지원

세월호참사 1주기가 지나가도록, 사고원인과 이후 대처 등에 관한 진실규명은 여전히 요원하며 이를 밝혀줄 특별법의 시행령은 특별법 제정의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지금, 세월호참사에 대한 기억소환은 우리가 지켜내야 할 양심의 마지막 보루일지 모른다. 세월호참사 기억소환의 구심이 될 416기억저장소 1호관이 안산에 문을 열지도 반년이 지났으며, 416기억저장소의 공간 마련과 시스템구축 논의를 시작한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연구원은 기록관리계의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416기억저장소 구축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성과로 4월 2일, 전시 공간으로 조성된 416기억저장소 2호관 ‘416기억저장관’이 문을 열면서 기념전시(‘아이들의 방’展)도 시작되었다. 오프라인 서고인 4호관(기록물 보존공간 )과 온라인 서고인 아카이브시스템 (http://archives.sa416.org)도 단장을 하고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전과 같은 조직 차원의 전면적 지원은 하지 못하겠지만, 연구원은 앞으로도 416기억저장소 운영에 지속적이 관심과 지원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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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3회 5월 12일 일기 수집 이벤트

인간과기억아카이브에서는 제3회 5월 12일 일기 수집 이벤트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매년 5월 12일 하루를 기록하는 일상아카이빙 프로젝트이다. 인간과기억아카이브는 2013년부터 영국 서섹스 대학교의 MOA(Mass Observation Archives)와 이 행사를 공동 주최하고 있다. 2013년 제1회 이벤트가 기획된 이래 지금까지 1,500여 명의 시민들이 그림일기, 메모, 전자문서, 음성녹음,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일기를 제출하였다. 1937년부터 시작된 영국 인류학자들의 일상기록화프로젝트가 한국, 중국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집된 5월 12일 하루의 일기는 훗날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고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벤트 홈페이지 http://omeka.hmarchives.org

출간정보

아카이브즈의 체계화 - 작은 아카이브즈를 위한 실용적인 정리 및 기술 방법 (데이비드 W. 카마이클 지음 / 신필립 옮김 / 도서출판 선인 / 2015)

이 책은 역사적 기록물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기록 업무와 관련해 정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을 위해 쓰여졌다. 역사협회, 종교기관, 학교, 도서관, 시 정부 등 어디에서 일하든, 상황이 어떻든 간에 이 책의 목적은 주어진 기록 업무를 조금 더 쉬워지게 해주는 데 있다. 이 책은 기록학에서 말하는 정리와 기술에

관한 이론의 일부를 설명한 후에 단계별로 기록물과 매뉴스크립트의 정리와 기술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방법이 역사적 기록물을 정리 기술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며, 실용적이라고 증명된 한 가지 방법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록관리관련법령 (한국국가기록연구원 교육총서4) (이원규 지음 / 도서출판 선인 / 2015)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에서는 지난 2013년 제1회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시험을 맞이하여 기록관리 기본지식의 범위를 명확히 하여 기록관리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정의하고, 기록관리학 대학원 및 교육원 교과과정의 안정화 및 발전에 기여하고자 교육총서를 발간한

바 있다. 교육총서는 총 6권(기록조직론, 전자기록관리론, 기록보존론, 기록관리관련법령, 기록평가선별론, 기록정보서비스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4권(기록조직론, 전자기록관리론, 기록보존론, 기록관리관련법령)이 발간되었다. 이 책은 기록관리규정 각 분야의 의의 및 구 법령과의 비교, 현 법령의 해설 외에 보완가능성까지 아우르고 있다. 역사의 기초 자료가 되는 공공기록은 앞으로 관련 제도·법령의 변화와 발전이 계속될 것이지만 아직 관련 서적이 많지 않으므로, 이 책을 통하여 해당 법령에 관한 전문가의 의견과 일반인의 관심 확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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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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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브리핑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 기록관리분야 뉴스를 중심으로 기록관리 관점에서의 시사점과 이슈 등을 정리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수사기록 비공개를 통해 본 ‘특수기록’ 관리 실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제출된 지난 1월 이후 꾸준히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의혹 사건 수사 및 공판기록의 송부를 공식적 자료요구 절차를 통해 요청해 왔지만 현재까지도 법무부로부터 1·2·3차 수사기록을 포함한 관련 자료를 제출받지 못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이미 국회에 자료를 제출할 기한이 지났음에도 법무부는 ‘전례가 없다’며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현행 인사청문회법 12조는 자료제출을 요구받은 기관은 5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하여야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던 1차 공판기록이 발굴되면서 수사 당시 박상욱 후보자가 축소·은폐에 가담하였다는 의혹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 글은 4월 초 작성되어 그 때까지의 논의가 반영되어 있음)

경찰 및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 요구에 대한 묵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 1월 19일 용산구 남일당 점거농성을 하면서 경찰에 부상을 입힌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 등으로 구속기소된 피고인들의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전체 1만여쪽의 수사기록 가운데 경찰 핵심 지휘라인의 진술이 포함된 3000여쪽을 변호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가 핵심 쟁점인 상황에서 1심 재판부는 열람·등사를 허용하라고 결정했지만, 검찰이 9개월여 동안 ‘재판과 관련이 없는 내용’, ‘사생활 보호’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하자 피고인들은 헌법소원을 냈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검찰 수사기록이 비록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이어도 법원이 이를 공개하라고 결정하면 검찰은 즉시 이행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으며, 2012년에는 검찰이 용산참사와 관련된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한 데 대해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헌재와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용산참사 관련 피고인

들은 2015년 1월 남경남 前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을 끝으로 만기출소한 상태이다.

인사청문회법과 형법이 강제하고 있음에도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는 여전히 미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공개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 조항이 경고조치 등으로 너무 경미한 탓이다. 그에 비해 비공개 되었을 때의 공개요구 주체들의 손해는 구속수감 등 대단히 막대하다. 한편, 수사기록을 안전하게 관리하여 이용제공 할 의무가 있는 특수기록관이 설치되어 있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다.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제14조는 ‘통일·외교·안보·수사·정보 분야의 기록물을 생산하는 공공기관의 장은 소관 기록물을 장기간 관리하려는 경우에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특수기록관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특수기록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관시기 연장, 비밀기록 유지 등의 단서 조항들이 있음에도,‘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국가정보원, 검찰청, 경찰청 등에서 생산한 기록 가운데 핵심 기록인 수사·정보 관련 기록은 이관되지 않고 있으며, 경찰청과 검찰청의 경우 기록관리법 시행 이후 15년이 넘도록 특수기록관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 또한 경찰청과 검찰청 기록관이 해당기관의 수사기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기록관리법 제정 이후에도 국가기록원은‘특수기록’을 통제하지 못하였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곧 국가 아카이브의 낮은 위상으로 인한 통제력 상실, 법제도화의 한계, 비공개기록 이관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의 부족 등이다. 그러나 국가 아카이브의 올바른 역할을 위해 권력기관의 핵심기록은 이관되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할 때 민주주의시대 기록문화가 창달될 수 있다.(곽건홍, 2014, 특수기록관 비공개기록의 이관에 관한 연구, 『기록학연구』 42, 328p)” 국가기록관리체제의 개편에 발맞춘 ‘특수기록’의 민주적 관리를 위한 법제 개혁에 본격적으로 돌입해야 때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 전직 대통령의 딜레마인가? 지난 2월초,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혐의

로 재판에 넘겨진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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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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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이 ‘삭제’한 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이 대통령기록물인지 여부였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회의록 초본을 작성해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전자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e-知園)’을 통해 전자문서 형태로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노 전 대통령이 전자서명함으로써 결재받은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를 ‘삭제’한 행위는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위반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회의록 초본 전자문서를 처리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명시적인 ‘재검토’ 지시 내용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의사는 해당 문서를 공문서로 성립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 전 비서관에게 반환하면서 수정하도록 지시하는 것임이 명백하다”고 설명하며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현재, 검찰은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이다.

2013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 당시 국회는 재적의원 2/3의 찬성 표결을 통해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기록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던 이전까지의 논쟁은 기록물 폐기 의혹으로 구심이 이동되었고, 결국 검찰은 회의록 유출 및 폐기 의혹 관련 수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혼란의 시작은 정상회담 회의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었을 것이라 판단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참여정부 당시의 청와대 핵심 인물들은 회의록이 지정기록물로 지정되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학계조차도 같은 생각을 했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국가정보원의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관련 전문가 분석(2013)』과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이슈페이퍼인 『NLL 대화록 실종을 둘러싼 기록관리 쟁점들(2013)』 등은 회의록을 지정기록물로 전제하고 해당 사안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은 지정기록물로서의 성격을 갖지 않고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주로 국회의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므로,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처럼 국회 정보위원회, 외교통상위원회 등에 내용 비공개를 전제로 자료 제출을 할 필요가 있는 기록물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의 기록물 담당관이 해당 기록물을 대통령기록물로서 국가 1급 비밀로 분류하여 관리하다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 관리하는 것이 가장 적법한 처리였을 것이다(김

익한, 2014,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문제와 대통령 기록물 관리, 『역사비평』 106, 275p).” 조명균 비서관의 현장 실행상의 미숙함과 대통령기록관의 통제능력의 한계로 인해 회의록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았고, 이명박 정권 이후 대통령기록 관리체계의 후퇴가 가중되면서 국가기록원 스스로 2008년 이관 당시의 문제점을 바로 잡을 기회마저도 놓치고 말았다. 최근 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도 지정기록물

제도의 이면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단 한 건의 비밀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1,088만 건의 기록 중 비밀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 이 기록 중 약 24만여 건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란 대통령기록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퇴임 시점에 대통령이 접근 제한을 지정해 놓은 기록으로, 국회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이나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15년에서 30년 동안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24만 건의 기록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만이 접근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청와대에서 비밀기록을 한 건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업무의 연속성 차원에서 후임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도록 남겨둬야 할 비밀기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기록 중 비밀기록은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고, 재임 기간 중에도 비밀기록의 관리에 대한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정기록물 열람을 위한 사저 내 열람장비 설치 의혹, 지정기록물에 담긴 비밀 누설 의혹 등도 여전히 논쟁중이다.

대통령기록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보호’와 ‘공개’를 둘러싼 기록관리적 쟁점이 늘 존재한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이러한 쟁점을 반영한 제도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경우는 대통령기정기록물의 ‘보호’ 측면의 쟁점을,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의 경우는 ‘공개’ 측면의 쟁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이 제정된 이후의 두 대통령 모두가 지정기록물 제도와 관련한 논쟁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제도적 보완 및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기록의 생산 및 온전한 이관’과 ‘대통령의 정책적 권한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절충안으로서 도입된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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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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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책 브리핑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기록관리 법제화의 실효성을 높이고, 새로운 기록문화 정착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조성하기 위해 기록관리분야의 정책적 의제를 개발․연구․확산하려 합니다.

기록관리 정책의제 공론화를 제안하며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노웅래 의원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이 발의된 직접적인 계기는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안건심의 등 국회의 행정부 견제역할 수행시 행정기관의 관련 자료 제출이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 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 법안에서는 기록물 보존기간의 자의적 설정 및 그에 따른 기록물 폐기 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모든 전자기록의 영구보존과 비전자 기록물의 전자적 관리 의무화 등을 신설하고 있다.

법안 내용의 사실관계나 현실화 가능성, 보존기록 평가선별의 가치지향성 등에 대한 기록학적 문제제기는 수없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정치권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국가기록관리 체제 개편의 방향이 현실적 필요에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단 노웅래 의원 발의안 뿐만 아니라 19대 국회의 기록관리 법령 제․개정 발의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제․개정 법령안을 종류별로 살펴보면,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13건 (2012년 4건, 2013년 6건, 2014년 2건, 2015년 1건),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9건 (2013년 8건, 2014년 1건), 국가기록원법안 1건 (2013년 1건)으로 총 23건에 달한다. 18대 국회 4년간 발의된 법령 개정안이 총 17건이며, 현재 19대 국회가 임기의 중후반에 해당함을 고려하면 19대 국회의 발의 건수는 18대에 비해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2012년 10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 이후 불거진 이른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과 관련이 있다. 중요 회의 회의록 및 속기록 작성 의무화, 대통령기록물의 범위 확대 및 이관 시점 조정, 대통령지정기록물과 동일한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 기록물의 이관 문제, 특수기록관 설치 강제, 기록물 위변조 및 비밀 누설에 대한 처벌 강화,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의 소속 변경을 통한 공공기록 관리의 독립성 및 중립성 담보 등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과 관련된 주요 이슈들이 망라되어 있다. 기록관리 법제의 안착화와 국가기록관리 체계의 발전적인 개편을 위해서는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이슈들이기는 하지만, 법안 내용상의 정합성 및 기록관리상의 합리성 등을 고려하면 다분히 정치적 논쟁의 자장 속에서 법령안들이 제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이라는 정치적 현안 외에도 국정감사나 예산심사 등 국회일정에 따른 법령안 개정 발의도 상당수 발견된다. 공공기관의 관련 기록물 미제출 문제가 대부분으로 기록의 미생산, 이관에 따른 부존, 조직 및 프로젝트의 해산에 따른 관리 소홀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치적 현안이나 국회 일정에 따라 기록관리 법령의 제․개정 논의가 촉발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정치적 현안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기록관리의 투명성 제고 및 공익성 확보라는 기록관리 법령 본래의 취지에 대한 이해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법령 제․개정 과정에서 관련 전문가 및 이해당사자들(기록학․역사학․행정학 등 학계, 기록관리 전문가 및 공공기록관리기관, 시민사회 등)의 목소리가 제대로 담겨야 한다. 다수의 법령이 발의되고 논의되는 과정에서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관련 논의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기록관리계의 ‘조용하거나 간헐적인 대응’에도 책임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 당시 기록관리계는 기자회견과 성명서 등을 통해 자칫 정쟁으로만 치달을 수 있는 이슈들을 사실관계의 확인과 기록관리적 전문성에 입각하여 제대로 된 논의의 장에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후 관련 법제화 과정에는 개입하지 못하였고, 사안에 대한 정책적 주도권을 상실한채 정치하고도 학문적인 분석에 그쳤던 것이 아닌가 싶다. 1999년 공공기록물관리 법령의 제정이 당시 학계와 시민사회, 정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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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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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록보존소), 정치권 사이에 형성되었던 협력관계의 성과임을 상기하면 그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기록관리계의 ‘조용하고도 간혈적인 대응’의 원인은 공공기록관리의 민주적 제도화의 ‘공고화’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공공영역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길레르모 오도넬(Gullermo O’Donnell)이 지적했듯 민주적 제도의 도입이 민주주의의 안착과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공공영역 구성원들의 권력관계와 이질성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해 기록관리에의 ’참여’를 기정사실화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때이다.

국가기록관리 체제의 전면적인 개편 논의 국면에서 기록관리계의 정책적 개입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 범위 확대와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 기록관리 법제상의 미비점과 개선점에 관한 전문적인 분석과 연구에 더해 관

련 법제가 제도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실행전략 차원의 모색과 정치권 및 시민사회를 상대로 한 여론조성 등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정책 및 제도 집행과정의 분석을 위한 ‘현장연구’ 강화와 행정학․정치학․법학․역사학 등과의 ‘학제간 연구’의 모색이 이뤄져야 하며, 관련 의제를 적극적으로 이슈파이팅 하여 한국 사회 내 제 주체들과의 협력체계 형성에도 주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요구들은 국가기록관리 체제 개편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전제로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담론에 대한 기록학적 변용, 거버넌스 담론의 가능성과 한계 인식, ‘투명성’ 담론의 역습(공공기록관리의 형식화)과 기록관리의 공공성 회복 등에 대한 진전된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전혜영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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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haja]

칼럼

416이 말하는 것 : 실천적 아키비스트와 일상의 진보

현장의 울림

진도체육관 부스에서, 그리고 고잔동을 오가며 현장주의를 배웠다. 2014년 5월 초, 처음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을 때의 막막함, 며칠을 체육관 2층에서 자고나서 얻은 혜안들이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처음 맞닥뜨린 문제는 공공과 민간의 계선이었다. 하지만 진도체육관 밥차에서 본 당시의 실종자 가족들, 새마을부녀회 천막에서 야밤에 만난 그들의 표정과 말들이 아주 간단하게 문제를 풀어주었다. 그들은 공공을 ‘벌레’ 보듯 했다. 매일같이 아이를 건져 달라 애원하지만 그저 벽처럼 존재하는 공공을 경험한 그들이었다. 그러니 416 현장에는 애초부터 공공이라는 관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고, 공적 성격을 갖는 기록은 공공에서, 사적 성격을 갖는 기록은 민간에서 수집하는 전략의 설계 등은 그저 사치스런 논리에 불과함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가족들과 민간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카이브가 답임을 현장의 울림을 통해 알았다. 진도군 기록관과 약간의 불편한 관계가 잠시 있었지만 현장의 울림은 그 조차 잠재웠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민간 주도의 아카이브를 향해 나아갔다. 덕분에 유가족협의회 산하기관으로 416 기억저장소가 버젓이 섰다.

6월 중순 이후 단원고등학교 옆 동네인 고잔동을 오가면서도 현장주의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절절히 경험하였다. 기억저장소 1, 2호관의 내부공사를 어찌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의 일이었다. 당연히 우리도, 유가족대책위도 돈 한 푼 없이 알몸으로 일하던 시기였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새로운 건축사 협의회’의 건축가들과 접촉을 시작했었지만 그들 역시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턱대고 협의회 부회장인 윤승현 건축가를 안산에서 보자고 제안했다. 단원고와 기억저장소 공간 현장을

보더니 “어떻게든 저희가 해 보겠습니다”라고 선뜻 답을 해주는 것 아닌가! 현장의 울림이 명분이나 백번의 설득보다 더 강했다. 덕분에 1호관은 2014년 8월말에, 2호관은 2015년 4월 초에 개관했다. 1호관에서는 기록 수집과 정리뿐만 아니라 고잔동 하늘땅별마을 공동체와 꿈숲 교육공동체 준비모임도 이뤄지고 있다. 7반 예지, 10반 주희 생일도 1호관에서 행복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진행되었다. 2호관에서는 4월 2일부터 ‘아이들의 방’ 전시가 시작되었다. 11일에는 2호관 천장에 304개의 도기로 제작된 기억함이 건축가들과 유가족들의 손에 의해 걸렸다. 아이들의 기억함이 별이 되어 땅을 비추고 땅을 상징하는 벽면에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 담긴 별 스티커가 붙는다. 이런 일들 모두가 바로 현장의 울림의 산물이다.

전문가 전유에서 열린 참여로

내 제자를 포함해 기록인 몇 사람이 기억저장소에 투신했다. 특히 한신대 대학원생과 졸업생의 헌신은 실천적 아키비스트가 갈 길을 잘 보여주었다.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의 선임연구원들과 임진희 교수 역시 기억저장소의 토대를 만드는데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허둥거리는 나의 속사포 잔소리를 잘 견디며,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해주었다. 덕분에 기록의 수집에서 시스템 구축, 공간 마련에 이르기까지 착착 일을 진행해갈 수 있었다. 모두 처음해보는 실천이라 곳곳에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유가족들과의 공감과 참사의 무게가 극복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수집된 기록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일은 이현정 선생의 몫이었다. 안산 상록 서고를 묵묵히 오가는 이현정 선생의 모습은 전문가의 최대의 덕목이 겸손과 성실임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억저장소를 이끌어온 사람들은 아키비스트뿐만 아니었다. 안산에서 미디어 운동을 하던 김종천 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은 처음부터 기록인들과 달랐다. 그는 기록을 위해 일하지 않고 유가족들을 위해 일했다. 수집하고 정리하고 서비스하는 일에 대한 그의 관점은 기록학적이기보다는 ‘유가족적’이었다. 나는 종합적인 기록화 전략의 수립이 중요하다 말했지만 그는 유가족들이 기록해달라는 요구에 응하는 길을 택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의 선택이야말로 현장적 기록화전략이었고, 덕분에 기억저장소는 30여만건의 기록을 소장한 명실상부한 아카이브가 될 수 있었다. 아키비스트 심성보 선생의 방식은 또 하나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항상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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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haja]

비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했다. 김종천 사무국장의 곁을 지켰고, 사진가, 작가, 영화전문가들에게 세세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분주했다. 심성보 선생의 노력 덕분에 아키비스트와 현장 운동가들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유가족들의 투쟁을 기록화하는 일은 독립영화가들과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맡았다. 참사 이후 지금까지 시위나 농성현장에서 땡볓이건 비가오건 그들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거의 매주 진행되었던 유가족 총회와 임원회의 역시 그들의 노력에 의해 대부분 영상기록으로 남겨졌다. 유가족들의 마음의 아카이빙은 르포작가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접근하기 쉽지 않았던 유가족들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나누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로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2015년)이 출간될 수 있었다. 이 책은 책이 아니라 마음을 아카이빙한 기록물이었다. 유가족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기록을 수집했다. 아키비스트가 동행했지만 연극인 임기현과 예술학을 전공한 이해리, 그리고 사진가들이 수집의 주체였다. 임기현에게 유가족 엄마들은 모두 ‘누나’이다. “누나, 저 기현인데요”하며 전화하는 그에게 방문 수집을 거절하는 유가족은 없었다.

현장에서의 기록관리는 아키비스트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르치고 지도하려는 아키비스트가 설 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득하려 달려듦과 동시에 현장은 저 멀리 떠나가고 만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가슴 깊은 곳과 손끝에 있는 것이지 마음과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의 마음은 이론을 관철하려는 의지나 집착대신 겸손, 배움, 사랑 같은 것이어야 하며, 말은 법이나 이론의 교조적 적용이 아니라 ‘누나’하고 다가가는 공감의 표시여야 한다. 열린 참여의 공간을 열어두고 참여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현장의 실천적 아키비스트가 갖아야 할 ‘전문성’이다.

일상의 진보

몸이 거기 가 있어야 현장도 있고 참여도 있다. 그러려면 일상의 변화, 진보가 필요하다. 현재의 일상을 그대로 두고 현장주의를 실천할 방법은 없다. 몸이 거기 가 있으려면 다음의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는 사회적 삶으로의 변화이다. 전문가는 자신의 영역에서 하는 일 그 자체가 사회적 삶이라 착각하기 쉽

다.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적 기억을 형성해가는 책무를 지닌 아키비스트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아키비스트의 책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삶이다. 하지만 평상시의 일터만이 현장일 수는 없다. 거주 지역, 관심집단, 나라 전체를 적극적으로 대면하면서 실천을 고민하는 아키비스트가 될 때 비로소 사회적 삶의 길은 열린다. 그 고민이야말로 일터에서의 길고 험난한 혁신의 길을 뚜벅뚜벅 걷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416은 우리가 일터에서 애쓰는 동안 ‘불가피하게’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던 세상에서 생긴 일이다. 우리의 거리두기가 초래한 근본에서부터의 뒤틀림이다. 416을 겪으며 나는 나의 일터에서의 ‘성과’들, 사회적 실천들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하였다. 개인적 차원에서 본다면 416은 나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 근본에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416 이후 안산에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만이 사람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있었다.

둘은 시간 내기이다. 일터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 정기적으로 시간 내기다. 하지만 일터 이외의 현장 실천을 하기 위해서 이는 필수조건이다. 정혜신 박사 부부가 운영하는 치유공간 ‘이웃’에는 매주 주말 하루와 월 1회 평일 하루를 할애하는 자원봉사자가 많다. 기록관리계에 이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저장소 등의 일을 위해서도, 그리고 기록관리계의 자기 혁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나도 매주 화요일 하루와 수요일 오전을 안산에서 보낸다. 하루 반을 할애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는 데만 두 달 정도 걸렸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마을 공동체 기록에서 안산의 416 기억저장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현장이 존재한다. 현장주의와 열린 참여의 원칙을 관철하며 사회적 실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갈 때다. 사회 기록화의 전반적 성장을 위해서도, 실천적 아키비스트 문화의 확산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도 말이다.

셋은 전공의 벽 뛰어넘기다. 현장에서의 요구에 대응하려면 세부전공을 갖은 사람들이 여럿 협업을 하거나 한 사람이 그 모두를 수행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은 한 두 사람이 모든 일을 수행해야하는 상황임에도 자신의 세부전공을 고집하는 경우이다. “제 전공이 아니라서”라고 말함과 동시에 현장은 그를 떠난다. 취향이나 전공에 따라 선택 가능한 수준의 현장이라면 세부전공에 맞춰 일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이 과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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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긴박성이 높을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실행학문인 기록학이 맞닥뜨릴 현장은 대체로 조정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실천적 아키비스트는 전공의 벽을 뛰어 넘어 현장에서 배우고, 현장에서 공부하며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전공을 뛰어 넘는 것이 ‘오만’이지만 현장에서는 전공을 뛰어 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오만’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416이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416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처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니 우리 가슴 속에 답이 있다. 416이 아니어도 실천적 아키비스트를 지향했어야 했다. 우리가 남겨둔 여백들이 416을 불렀다고 자성하지 않는다면 416은 그저 ‘도와줘야할 눈물겨운 대

상’일 뿐이다. 그 눈물겨운 대상들은 사실 전문가인 우리보다 훨씬 더 치열한 삶을 살았다. 아이에게 나이키 신발 하나 사주려고, 그놈의 돈 때문에 아침 밥상에서 말다툼부터 해야 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안산의 가족들은 이미 권력에 의해 훈육된 생각들을 모두 버린 ‘진보’된 일상을 살고 있다. 도와야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해갈 주체들이라는 말이다.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에게 배움으로써 실천적 아키비스트 역시 일상의 진보를 꾀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안산뿐만 아니라 모든 현장들이 함께 진보해갈 주체들이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한국국가기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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