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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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2014 05 / 06 VOL.68 ISSN 2288-2782 특집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 어떻게 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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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2014 05 / 06 VOL.68

ISSN 2288-2782

특집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 어떻게 풀까

Page 2: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2014May / JuneVol.68

02 권두 인터뷰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

남북 문화재·역사학 교류는 통일시대 준비의 첫 걸음입니다 | 이경형

08 특집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 어떻게 풀까

· 서울·평양 남북장관급 회담 제안하자 | 유호열

· 드레스덴 구상과 북한의 경제특구전략 접목해야 | 추원서

· 남북 농업협력 성공하려면 남북 상설협의체 구성 필요 | 김영훈

· 대북 억제력 강화와 진정성 담긴 제안 병행해야 | 이대우

24 논단

· 북 토양에 맞는 적절한 비료지원해야 한다 | 강희설

· 인도주의 실현과 통일 위해 ‘초국적 네트워킹’ 필요하다 | 문경연

30 진단

· 오바마 방한, 무엇을 남겼나? | 김준형

·북일관계 개선, 정부의 대응은? | 진창수

38 통일교육·평화교육

남북청소년 마주 보며 서로 껴안다 | 이미숙

40 분단과 삶

분단이 낳은 가족해체의 과거·현재·미래 | 박희진

44 2030통일론

통일 대박, If를 기대하기보다는 How를 생각하자 | 한 솔

COVER STORY드레스덴에서 밝힌평화와 통일을 위한 구상

Contents

민족화해 2014년 5-6월호(격월간, 통권 68호)

등록번호 종로, 마00069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69, 구세군회관 3층

전화 02.761.1213

홈페이지 www.kcrc.or.kr

발행일 2014년 5월 2일

발행인 홍사덕

편집인 이경형

홍보위원장 김영만

편집기획위원 공용철, 김용현, 노태호, 오한샘,

윤법달, 정영태, 정은미, 정진아, 조동호

편집장 이운식

편집부 이현희, 염규현

디자인 및 제작 (주)풍경인소풍 070.7433.1123

지난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남동부에 위치한 드레스덴에서 남북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3대 제안,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밝힌 새로운 구상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어갈 수 있는 구체적 성과와 진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사진은 3월 26일 독일 메르켈 총리와

의 정상회담 후 미소를 짓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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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지금 북한은

김정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딜레마에 빠지다 | 이기동

50 르포 북한군만 남은 ‘적군 묘지’를 돌아보며

·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동족상잔의 비극

내년이면 ‘분단 70년’, 평화적 관리가 중요 | 이경형

54 특별연재

건축가의 눈으로 본 평양과 서울 그리고 통일 하

사회주의 도시 평양이 주는 세 가지 교훈 | 임동우

58 통일디자인 북한의 주거실태와 협력방안

· 북한주민의 주거생활, ‘국가’에서 ‘개인’으로 | 정은미

· 남북 경제 선순환 위해 북한 주택건설 방안 마련해야 | 박용석

64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복식과 패션 사이의 균열, 북한의 복식정책 | 전영선

66 그린 코리아

DMZ 세계평화공원, 생태계 보전 함께 고려해야 | 강택구

70 현장

일본군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해외 여성토론회

다시 남북 여성들이 만나다 | 여혜숙

72 무대 혹은 스크린 연극 봉선화

‘왜 그 절규를 되받아 외치지 못했을까요?’ | 윤정모

74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76 민화협 NEWS

80 독자 의견

08

02

30

72통일을 준비하는 격월간지

Page 4: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이명박 정부 시기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

재청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역임하

며 ‘전통과 현대의 융화를 통한 문화와 산

업의 공생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최광식 고

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또한 그는 올

해 창립 10주년을 맞는 남북역사학자협의

회 위원장으로서 남북 문화재·역사학 교

류를 위해 앞장서 왔다. 이제 다시 학교에

돌아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최 교수

를 만나 남북 문화재·역사학 교류의 성과

와 중요성 그리고 바람을 들어보았다.

남북 문화재·역사학 교류는

통일시대 준비의 첫 걸음입니다

대담 이경형 『민족화해』 편집인 | 정리 염규현 정책홍보팀 부장 | 사진 김성헌 객원작가

최광식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

권두 인터뷰

Page 5: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03

장관 퇴임 이후에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신 줄 압니다. 문화부장관 등 공직 재임 시 활동

을 정리한 책을 두 권 펴내고, 삼국유사 역주본도 최근 발간하셨는데요.

“퇴임 후 휴식 없이 바로 학교에 돌아왔어요. 지난 학기엔 두 강좌를 맡았고, 이번 학기는

3강좌 9시간을 맡고 있습니다. 다시 학생들과 함께 하게 되어, 바빠도 기분이 좋습니다.

덕분에 공직으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삼국유사 역주본도 펴낼 수 있었고요.”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은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지난 3월 열린

‘통일시대를 대비한 남북 간 문화재 협력’ 학술회의에서는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교류 중 문

화재 교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기도 했는데, 남북 문화재·역사학 교류의

그간 성과를 소개해 주세요.

“역사 및 문화재 분야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바가 매우 큰 분

야입니다. 남북은 분단 이전까지 공통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치적,

비이념적 분야이기에 남북 모두 교류와 협력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런 이

유로 2004년 역사학계가 힘을 모아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협의회는 남북학술공동토론회, 전시회, 유적 보존사업, 역사용어 공동연구사업 등

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사업은 역시 남북이 공동으로

북한의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발굴한 일입니다. 그동안 남북이 공동으로 북한 문화재를 조

사한 것은 금강산 신계사 발굴조사, 개성공단 부지 지표조사, 평양 일대 고구려 고분군 조

사, 안학궁 조사,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 등이 있습니다.

저는 2006년 4월, 고구려 고분군 조사 시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고구려 특위 위원장으로

서 남측 조사단장을 맡아 참여했습니다. 이 사업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남북이 함께

대처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된 사업입니다. 그만큼 의미가 크지요. 진파리 1호분, 4호분, 호

남리 사신총, 덕흥리 벽화고분, 강서대묘 등 8개 고분을 조사했어요. 사실 그 이전까지 북

한은 남측에 고분들을 공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왜곡에 공동으로 대

처하자는 설득이 통했고, 조사 이후 보존 문제도 함께 협력하자는 우리의 제안도 받아들였

습니다. 봉쇄해 놓은 고분을 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죠. 현재 2007년 2차 조사 이후 중

단된 상태인데, 하루속히 재개해야 합니다. 그 사이 평양 근처에서 새로운 고구려 벽화고

분 3기가 발견되었는데, 일본, 중국학자들이 발굴조사에 참여했거든요. 우리 민족의 공동

유산을 제3자가 개입해 발굴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월대 공동발굴, 남북 교류의 ‘창구’ 역할 할 수 있어

협의회에서 진행해 온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사업은 2007년 시작해 2011년까지 중단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관계 경색으로 여타 사회·문화 협력사업이 전면 중단되

었던 상황에서도 이 사업은 유지되었습니다. 여기에 교수님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업의 진행과정과 성과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Page 6: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0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개성 만월대는 송악산 기슭에 위치한 고려의 궁궐터입니다. ‘황성 옛터’로도 잘 알려진 곳

이죠. 고려 태조 때 창건된 이래 공민왕 때 소실될 때까지 고려 왕조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중요한 역사유적입니다. 이러한 곳을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발굴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어요. 발굴조사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4차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수해로 피해를 입은 구역의 유적과 유구를 복원하는 작업을 했고요. 말씀하신대로 많은 어

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천안함·연평도, 5·24조치 등으로 남북관

계가 꽁꽁 얼어있을 시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최소한 문화재·역사학 교류는 지속되

어야 한다고 호소했어요. 당시 통일부장관 등을 만나 사업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중국이 계속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유적 공동발굴 등을 통해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더욱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우리의 문화유산을 중국이나 일본 학

자들이 먼저 가서 조사하게 둘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설득했습니다. 게다가 이 사업은 비

정치적인 분야이고, 남북관계가 어렵더라도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사업은 반드시 필요

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소한의 ‘창구’ 역할로서 만월대 사업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이러한 취지와 중요성을 이해해주셔서, 사업이 유지될 수 있

었습니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우리 정부의 방침에 따라 발굴단이 철수하

며, 사업이 중단되었는데 그런 일이 없었으

면 2012년에도 이어졌을 것입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들이라도 조상이나

부모님 제사에는 한자리에 모여 예를 다하

듯, 남북의 공동문화유산을 조사하고 보존

하는 사업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이어

져야 합니다. 또한 통조림 뚜껑을 따서 놔

두면 그 안의 내용물이 상하는 것처럼, 발

굴을 하다가 중단하고 유적지를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

해요. 하루라도 빨리 발굴 사업이 재개되어

야 할 것입니다.”01

02

01 2004년 9월 12일 금강산에서 열린 ‘고구려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기념 남북공동학술회의와 사진전시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최광식 당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부위원장.

02 2007년 5월 평양 일대에서 진행된 ‘고구려고분군 남북공동

보존사업’ 남북조사단이 평양시 역포구역에 위치한 진파리

4호분 앞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Page 7: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05

교수님은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분으로 잘 알려

져 있습니다. 과거 남북관계가 어려웠던 시기마다, 문화재

및 역사학 교류를 위한 큰 사업들을 성공시켰습니다. 어

떻게 보면 지금 남북관계도 의지는 있지만 무언가 ‘안 되

는’ 상황인데요. 이러한 ‘막힘’을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

각하십니까.

“고려대학교 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에 6·15공

동선언 5주년, 광복 60돌, 고려대 설립 100주년을 기념

해 북한의 고구려 유물을 남측으로 가져와 전시회를 열

었습니다. 남북과 일본의 중요 고구려 유물을 한데 모은

전시회로 많은 주목을 받았죠. 유물을 빌려오기 위해 북

한 측을 설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제3국을 통한 탈북자 대량 입국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

색된 상황이었거든요. 중국 심양을 비롯해 평양, 개성,

금강산 등을 오가며 협의를 진행했는데, 전시회 예정 한

달 전에야 유물 대여가 최종 확정되었어요. 주위에선 아

무래도 힘들겠다며 포기하자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하

지만 이번에 못 하면 영영 못 한다는 각오로 끝까지 노

력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한 번은 갑자기 북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부랴부랴 개성에 갈 준비

를 하는데 하필 그날 개성공단행 버스가 없는 겁니다. 현대아산이 운행하는 셔틀버스인데

그 날은 운행 일정이 없었나 봐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차량 운행허가를 겨우 받아가지

고 제 차로 군사분계선을 넘었어요. 아마 개인차량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 나중에 통일이 되면 제 차를 박물관에 기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역사적인 일이잖아요.

마침내 고구려 유물을 금강산에서 인도받아 남쪽으로 운송하던 날도 잊을 수 없습니다. 혹

시라도 이동 중에 불의의 교통사고 등으로 파손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유물들이

깨지면 남북관계도 깨진다’는 생각으로 정말 조심스럽게 운송했어요. 오전에 금강산을 떠

났는데 서울 고려대 박물관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으니까요.

고구려 고분군 조사사업이나 만월대 발굴 사업 추진과정에서의 어려움도 말로 다하기 힘

들어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내가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지요. 결

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사업들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

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북측 역

시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고,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문화유산

의 보존과 민족동질성 회복을 강조해 왔기에 다른 일은 안돼도 이 분야에서 만큼은 접점을

“통조림 뚜껑을 따서 놔두면

그 안의 내용물이 상하는 것처럼,

발굴을 하다가 중단하고 유적지를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Page 8: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0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찾을 수 있었고요.

박근혜 대통령도 문화 부문의 남북교류협력을

강조하고, 문화의 융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

다. 아주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으로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첫 단

추로 문화재 교류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봐요.

서로 부담도 적고, 민족적으로 볼 때도 시급히

추진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정부가 나서기 힘들다면 남북역사학자협

의회 등 민간단체를 통해 먼저 물꼬를 트고,

그 후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당국 간의 협의를

통해 문화재 및 역사학 교류를 위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추진기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남북문화재협력추진위원

회’를 만드는 것이죠. 처음에는 실무급에서 시

작해서 성과가 이어지면 장관급으로 격을 높

이면 되고요. 이처럼 남북 간 문화재 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교류를 이어가기 위한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드레스덴 3대 제안 속에도 ‘남북동질성 회복을 위한 역사 연구’와 같은 내용이 포

함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좋은 구상과 제안들을 실천에 옮

길 때가 되었어요. 무엇보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개성에 ‘평화박물관’을 설립하자

예전 개성을 방문했을 때 고려박물관의 시설이나 관리 상황이 너무 열악해 보여 마음 아팠

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남북이 서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사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만월대 조사 다음 사업으로 구상했던 것이 개

성에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도 만월대 사업이 중요한 것입니

다. 남북이 발굴을 통해 수시로 만나고 소통하며 다음 단계 사업들을 논의할 수 있거든요.

처음 저희가 생각한 것은 박물관을 새로 지어, 현재 개성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고려

성균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려 문화재들과 만월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망라하여 전시하

는 한편, 향후 개성관광 활성화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고려해 현대적인 콘셉트도 가미하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평화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생각

했어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가 개성의 박물관을 통해 분단의 상처와 아픔, 평화

에 대한 지향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통일 후에는 ‘통일박물관’으로 발전시

켜 운영하고요. 우리처럼 역사를 하는 사람들은 호흡이 깁니다. 만월대 발굴사업도 총 40

03

04

03 2007년 5월 평양 일대에서 진행된 ‘고구려고분군 남북공동보존사업’ 당

시 평양시 역포구역에 위치한 동명왕릉 앞에 선 최광식 남측 조사단장.

04 2014년 3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통일시대를 대비한 남북 간 문화

재협력’ 학술회의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는 최광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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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년 계획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박물관 건립도 이에 맞추어 장기적으로 의미 있게 추진해나

갔으면 합니다. 문화유산은 보존도 잘해야 하지만, 활용도 잘해야 합니다. 지금 DMZ 일

대에는 땅굴과 통일전망대 등 안보관광지 성격의 시설만 있는데 DMZ와 잇닿아 있는 개

성 지역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박물관을 남북이 함께 세운다면 그 자체가 바로 통일

을 위한 준비가 아닐까요? 평양 일대 고구려 고분군 조사도 재개된다면 고분과 똑같은 크

기의 모형을 제작해 실물 옆에 두어 많은 이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이를 남쪽으로도 가

져와 전시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문화재를 보존하면서도 활용하는 효과적

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위해 남북관계 발전돼야

장관 재직 시 한류 문화의 세계적 확산, 한글날 공휴일 지정 등 많은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과 아쉬움으로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한류의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으로 남습니다. 드라마로 시

작된 ‘한류 1.0’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 K-Pop을 통해 2.0으로 진화했다면, 저는 그것

을 ‘K-Culture’ 즉 ‘한류 3.0’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류를 문화적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산업과 경제로 연결시키자는 것이었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아 기쁩니다.

한편 아쉬운 점은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한 환경 조성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2018년 평창동

계올림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있어야겠지만, 남북관계가 안정되는 것도 매

우 중요합니다. 물론 그것이 문화부 장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요. 북한이 올

림픽에 참가해 공동입장이나 공동응원단 구성 등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겠

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한 전 세계 선수들과 방문객들이 설악

산, 오대산뿐만 아니라 금강산까지 찾아 관광을 즐길 수 있다면, 우리는 평창올림픽을 통

해 남북의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평창올림픽은

현 정부의 마지막 사업입니다.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충분히 살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

른다면 현 정부는 마지막을 성공적으로 장식할 수 있을 것이고 박 대통령 역시 역사에 기

록될 큰 성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부친이 7·4공동성명을 발표했듯, 올림픽을 통해 남북이

하나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평창올림픽의 성공이 현 정부의

평가에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를 가르는 시

금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남북의 평화와 화해, 통일에 있어서도 중요한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명실상부한 통일시대의 준비입니다.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문화와 스포츠, 관광 등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풀어가야죠. 남북 모두가 win-win 할 수 있는 진정

한 의미의 통일시대를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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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지난 3월 말,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을 국빈 방문하고 통일 독일의 실상을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구동독 지역의 드레스덴 시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대

북 제안을 담은 드레스덴 통일구상을 발표하였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여 북한의 핵개발포기 및 핵안전문제

의 위험성 등을 경고하였으며, 한중 및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비핵

화 및 대북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관련국들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였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을 실천에 옮겨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교류협력의 확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남북 간 교류협력을 제

안한 드레스덴 통일구상은 박 대통령의 평소 소신과 비전을 구체화한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더구나 드레스덴 구상은 논리적이면서도 절제된 표현 방식으로 구성되

어 있다는 점에서 현 단계 남북관계의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남북교류협력 추진

드레스덴 구상에서 박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불신과 대결 등 4개

의 장벽을 거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였고, 이 과정에서 남북 주민들이 서로 이해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단계

로까지 발전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드레스덴 구상에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제로서 남북한의 교류협력이 확대되어야 하고, 이러한 교류협력은 일

방적이고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져

야 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와의 협조와 연계망을 통해 북한의 영유아 및 산모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하는 등 인도적 지원을 대폭

서울·평양 남북장관급 회담 제안하자

유호열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SPECIAL1

특집 |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 어떻게 풀까

Page 11: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09

다. 김정은 시대의 첫 번째 최고인민회의

구성을 통해 북한은 내각 및 주요 국가 및

정부 기구의 주요 구성원들을 대부분 유

임함으로써 김정은 중심의 유일체제를 공

고히 하고 체제 안정화와 정책의 일관성,

특히 경제정책의 근간을 유지하는 방향에

서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였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북한은 이미 지난 3월 말

핵-경제 발전 병진정책 관철을 재차 천명

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나 핵개발포기 의

사가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드레스덴 구상에 강한 거부 밝힌 북한

최고인민회의 이후 북한은 국방위 대변인

확대하고, 북한의 농업, 농촌 생활을 근본적이고 본격적으로

개선, 개량하는 사업과 남·북·중, 남·북·러 등 국제 컨소

시엄을 통해 북한 경제의 토대를 건설하는 등 주민들의 민생

인프라를 실질적으로 구축하고, 나아가 남북 주민들 간의 동

질성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남북 간 협력채널을

조속히 가동하자고 제안하였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구상에

서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실질적 진전을 논의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사무소’의 설치 운영을 제안하였다. 드레

스덴 구상에서 인도적 지원이나 교류협력과 관련하여 구체적

인 제안을 했어도 현 단계에서 관련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

서는 남북 간 고위급 후속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를 통해 김

정은을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재추대

하고 국방위원회, 내각 등 정부 핵심 권력기구를 재정비하였

ⓒ연합

지난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공

대를 방문해 통일 프로세스, 이른바 드레스덴 구상을 밝

히고 있다.

01

Page 12: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1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성명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일환으로 간주하여 공식 비난, 배격하였다. 당초

북한은 대규모 식량과 비료 등을 반대급부로 기대하거나 금강

산 관광사업의 재개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실망

했을 것이고 최소한 농업분야와 북한 내 특구개발에 대한 컨

소시엄 접근의 구체적 청사진이 제시되기를 내심 기대했을 것

이란 점에서 반발했을 것이다.

동시에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재천명한 박

근혜-오바마 한미정상회담을 비난하며, 대미, 대남 적대적

공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을 비난하고 그 철회를 요구하면서 이와 연관하여 한미합동군

사훈련을 대북압살공세로 규정, NLL을 위협하는 포사격 훈

련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강행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북 적

대정책이 지속될 경우 자신의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

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4차 핵실험)을 배제하지 않을 것임

을 위협하는 등 공세적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장성택 처형 이후 내부 통제와 결속을 강화하며 진행

되어온 일련의 조직 및 간부 재정비 작업이 일단락되었으나

최근 2인자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와병설과 그를 대

체해 황병서 당조직지도부 1부부장의 급속한 세력화 등 내부

정세는 여전히 유동적인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김정은 중심

의 유일체제가 출범하였으나 김정은 정권의 내부 상황과 대내

외 정책 방향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

다. 장성택 일파에 대한 숙청이 진행 중이며 김일성 가문 정

통성의 근간인 김경희의 거취 역시 불분명한 상태여서 김정은

의 권력기반이 안정화되었다는 주장은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

다. 특히, 권력구조의 맥락에서 김정은에 대한 충성 맹세가 각

부문에 걸쳐 진행되고 있으나 실제 북한 내부에서 정책의 일

관성이나 지속성이 확보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대외정책

에서도 북일관계 정상화 협상이나 북중, 북미, 남북관계에 임

하는 북한의 전략적 판단이 부재하거나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으로 인해 대북정책 추진 시 낙

관적 희망에 근거하기보다는 보다 냉철한 현실 판단에 입각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북한의 내부 정세에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

북정책의 목표와 이행 전략을 다층적으로

수립하고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되,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전략 목표에 따라 한

반도 정세를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통일정책 체계적으로 재정비 해야

드레스덴 구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동

안 박근혜 정부에서 제시되거나 추진되었

던 각종 대북, 통일정책이 일원화되고 체

계적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

부 출범 이후 정부의 공식 방안이나 접근

책으로 부각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서

울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

시아 이니셔티브는 물론 이번에 박 대통

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제안한 통일구상

및 통일준비방안까지도 체계적이고 유기

적으로 정비하고,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

성을 제고하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박 대통

령이 누차 언급한 “북핵 불용”과 “튼튼한

안보”에 기반하여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

시켜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것

임을 분명히 하여야 하고 관련 정책의 우

선 순위와 전략적 접근 및 대내, 대외 및

대북관련 정책 수립과 이행구조를 종합적

으로 체계화하여야 할 것이다. 북핵 불용

과 튼튼한 안보를 위하여 6자회담에서 북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진전을

담보로 주변국과의 협력, 공조체제를 강

화하고 튼튼한 안보를 위하여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한·미·일 공조체

제 및 한중관계의 전략적 협력구도를 유

지,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의 사

전 조치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북한의 추

Page 13: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11

유호열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

위를 받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선순위에 따라 완급과 규모 및 방식을

재조정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기구가 개

입하는 대북 인도적 지원의 장점인 분배

투명성 확보와 신뢰성 확보를 적극 활용

하는 동시에 직접 지원방식을 전술적으로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생 지원에 상응하여 이산가족상

봉과 납북민간인과 국군포로, 그들의 직

계 가족의 송환 및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

에 감금된 정치범의 송환, 석방을 함께 모

색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산가족상봉사업

의 정례화 및 생사확인규모의 대폭 확대

를 대북 인도적 지원 및 민생 지원과 적극

연계해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드레스덴 구상이 새로운 남북관계를 견인

함에 있어 기존의 정부 중심 체제에서 민

관역할분담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실

질적으로 대북사업의 정치적 효과, 통일

준비역량확충 등과의 역학관계를 고려하

여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북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긴장 완화 등 정

치군사문제를 포함하여 박 대통령의 드레

스덴 구상의 이행문제를 비롯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남북 인도적 사업과 인적

교류협력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고위급 접촉을 북측에 제의할 필요가 있

다. 이번 고위급 대화에서는 회담 의제 확

대와 논의 심화를 감안하여 판문점보다

양측 수도인 서울과 평양에서 3박 4일 정

도의 일정으로 장관급 회담으로 제안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가 핵실험에 대비한 안보적 측면의 대북억지력의 확충과 대북

제재에 대비한 내부 정책 조율과 국제사회와의 협력기반을 유

지하여야 할 것이다. 이미 4월 25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하

였듯이 전시작전권 전환과 관련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

는 상황에서는 한미연합사체제를 유지하고 전시작전권 전환

기일을 연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

해서는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이 반발하거나 우려하고

있지만 최소한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방어적 목적의 연합

훈련임을 확고히 알릴 수 있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구하면서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고위급 회담 통해 단계적 접근 필요

박근혜 정부는 튼튼한 안보를 강조하면서 NLL 등 영토와 주

권을 확고히 할 것을 명시하였고, 제2의 천안함, 연평도 사태

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으며 자위권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

든 수단을 동원하여 강력한 억지력을 구축할 것임을 천명한

만큼 이에 합당한 강력한 안보태세를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

다. 북한은 국지적 도발과 비대칭적 저강도 도발은 지속할 것

이므로 안보 분야에 있어서 분명한 대북 억지 시그널을 유지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실천적 과제이자 남북관계의 새로운

진전을 위해 5·24조치의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

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전면 해제는 현실적으로, 그리고 전략

및 전술 차원에서 불가하며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문제 역시

아직 시기상조이다. 5·24조치가 시행된 지난 4년 동안 남북

관계의 경색을 가져왔을 뿐, 북한에 대한 압박의 효과가 적고

향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진척을 위해 필수적인 교류협

력과 인도적 지원 확대를 위해서도 이제는 해제되어야 한다

는 지적은 또 다시 북한의 ‘도발 - 대화 - 보상 - 도발’의 악순환

을 반복하고 실질적인 남북관계 진전과 진정성 있는 평화통일

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유념해

야 할 것이다.

드레스덴 구상에서 제기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생 지원 및

남북교류협력활성화는 남북관계 단계별 개선 조치로서 의미

있는 제안이나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우리 내부 정책의

Page 14: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12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28일 독일 방문길에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해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공동번영의 민생인프라 구축, 남북한 주민의 동질성 회복 등의 내

용을 담은 이른바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 이후

북방 한계선(NLL) 인근에서의 해상 도발과 4차 핵실험을 언급한 데 이어, 4월 12일

북한 국방위원회의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제안에 대한 거부 입장을 밝혔다.

북한당국의 부정적 반응은 한미군사합동훈련 및 인권 문제와 노동미사일 발사에

대한 UN의 규탄 등에 대한 반발과 함께 ‘드레스덴 선언’이 흡수통일 기도를 담고

있다고 보는 등,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우호적인 것으로 인식하면서 진의를

크게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신뢰를 기반으로 보다 건설적인 남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박근혜표 대북정책’은 발걸

음도 떼기 전에 큰 시험대에 접어든 셈이다. 막힌 남북관계의 숨통을 틔우고 드레

스덴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대책과 처방을 제시하고 이어 드레스덴 구상을 남북

상생의 경제협력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큰 그림의 경제협력 전략을 살펴본다.

드레스덴 구상 성공 위해 5·24 조치 해제 결단 필요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김정은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국정목표로 내걸면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적극적인 개혁·

개방 정책을 모색해왔다고 볼 수 있다. 협동농장과 국영기업 운영에 시장경제적 요

소와 자율성 확대를 도모한 ‘6·28 방침’과 2013년 5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11월에 14개 경제개발구를 선포한 것이 대표

적인 예라 할 것이다. 내년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이하여 집권실적이 필요한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무엇보다 경제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고 있다. 따라

서 북한의 드레스덴 선언 거부는 남북관계 개선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남북경

드레스덴 구상과

북한의 경제특구전략 접목해야

특집 |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 어떻게 풀까SPECIAL2

추원서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 소장

Page 15: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13

협을 가로막고 있는 5·24 조치 해제와 같은 전향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

한 시그널이 보이지 않은 데다,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일련의 발언

과 제안에 대한 항의와 반감의 표시로 해석된다. 따라서 ‘드레스덴 선언’을

현실화하고 남북관계를 보다 안정적이고 생산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

음 두 가지의 처방이 필요하다.

첫째, ‘5·24 조치’를 빠른 시일 내에 과감히 해제하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5·24 조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북방국가들과의 협력을 의미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자체를

형해(形骸)화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변화만을 기다리기에는 아까운 시

간들이 지나가고 있으며 너무 많은 기회비용이 들고 있다. 더욱이 5·24 조

치 이후 남북교역은 북중 교역으로 대체되면서 북한의 교역규모는 오히려

증대되는 등 경제제재 효과는 적고 남한 기업의 피해만 커지고 있다. 남북

01 2013년 4월 중단된 후 우여곡절

끝에 9월 재가동에 들어간 개성

공단의 전경. 개성공단은 남북이

현실적으로 운영·발전 시킬 수

있는 경협모델의 좋은 예이다.

ⓒ연합01

Page 16: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1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경협을 추진했던 기업들은 이미 도산했거나 숨이 넘어가기 직

전이다.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남북경협의 모멘텀을 찾기도

어려워지며 한국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안함 사

건에 대한 책임문제와 관련하여 실현가능성 없는 북한의 굴복

을 요구하기에 앞서 “역사는 항상 진실한 자의 편에 서 있다.”

는 경건한 믿음으로 5·24 조치를 해제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드레스덴 선언의 두 가지 핵심내용인 인도적 사업과

민족동질성 회복 사업은 5·24 조치와 관계없이 추진이 가능

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5·24 조치라는 족쇄를 달고 행해지는

인도적 사업이나 사회적 교류는 궁색하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드레스덴 선언의 핵심축인 복합 농촌단지 조성과

남·북·러 및 남·북·중 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인프라 구

축은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구상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

다. 따라서 다가오는 6·15 선언 14주년을 기하여 5·24 조치

를 해제한다면 북한에게는 남한 정부가 일관되게 화해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드레스덴 선언에 호응을 유도하는 효

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둘째, 남북경협 등 북한문제와 북핵문제의 분리대응이 필요하

다. 지금까지 남북 간 경제협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

은 북핵문제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특성상 한국의 주도로 해

결될 수 없는 국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 어차피 세계 핵질서

를 주도하는 미국의 리더십 하에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중국

과 한국이 적극 협력하고 러시아 및 일본 등이 힘을 합치는 방

법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한국은 북핵문제 해

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지나치게 연계하지 말고 핵문제 해결은

국제사회의 공조에 맡기면서 남북 간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

원 등을 통해 상호 신뢰를 축적하는 역할분담이 오히려 핵문

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으

로 하여금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해주면서 국제사회의 일

원으로 나오게 하는 전략이 절실하다. 정서적 접근법도 필요

하다. 남한이 핵문제 해결에 집착했을 경우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지면서 쓸 수 있는 카드는 전혀 없게 되고, 결국은 미국

이나 주변국에게 매달리게 됨으로써 많은 비용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교훈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선택과 집중 가능한 남북경협사업 만들자

남북 간 경제협력은 경제통합을 목표로

하면서 정치통합과 묶어 상호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남북정치경제공동체’ 형성의

큰 그림 속에 추진되어야 한다. 즉,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과 ‘남북연합’ 구축을 병

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류협력을 확대·강화하여 ‘남

북경제공동체’를 심화·발전시키면서, 동

시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남북

연합’의 실현을 준비하는 이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남북연합’은 그 자체가 통일로

가는 과도기 정치연합이라는 점에서, 또

한 남북정상이 분단 이래 최초로 합의한

통일방안의 현실적 구현이라는 점에서 북

한정권의 호응을 유도하기가 수월할 것이

다. 박근혜 정부에서 차기 정부에 이르는

약 10년간은 남북 간 신뢰를 바탕으로 남

북연합을 착실히 준비하고 남북경제공동

체 형성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연내 정상회담을 개최하

여 1992년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등

기존의 남북 당국 간 합의내용과 ‘6·15

선언’과 ‘10·4 합의’ 등 남북정상 간에 합

의했던 내용에 대해 이를 상호 존중하겠

다는 다짐과 함께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합의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발족이 예상

되는 통일준비위원회에서는 이러한 구상

을 남북한 통일을 위한 중장기 협력의제

로 상정하여 북한과 합의 하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남북경협은 가용자원의 한계와 국내적 지

지의 확보 필요성 등으로 인해 많은 사업

을 대상으로 역량을 쏟을 수는 없다. 남북

경제사업의 발굴은 첫째, 실현가능성이

Page 17: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15

제의 평화적 해결은 물론 한반도 평화정

착과 민족이익에 부합한 통일한국 건설의

강력한 수단이자 합리적 방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협력의 길로 나서야 한다. 특히 북

한의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특구 추진 전

략과 드레스덴 구상을 접목하여 상호 윈 -

윈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신뢰는 무엇

보다 소통과 만남 속에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기다리는 정책이 아니라 변화를 주

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지

금부터라도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남

북 모두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교류협력

의 장을 열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경제의

활로를 찾고 민족경제의 잠재력을 키워

통일시대를 준비하여야 한다.

높은 사업. 둘째, 상호 이익(win - win) 실현이 가능한 사업.

셋째, 사업의 파급효과가 큰 사업들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것

이 바람직할 것이다. 개성공단이 좋은 예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 중 추진해야 할 경협사업은

이러한 원칙 하에 무엇보다 북한이 원하고 남한에게도 필요한

상생의 사업들을 발굴하여 위의 표와 같은 사업들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의 원칙 하에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러

시아나 중국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프로젝트도 선별적으로 추

진하면 리스크 분담은 물론 북한을 국제협력의 무대로 나서게

하는 효과를 안겨줄 것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거나

리스크가 큰 사업은 뒤로 미루고 그동안 여건이 성숙된 사업

들을 중심으로 하나씩 성과를 축적해나감으로써 성공사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민족경제의 잠재력을 키워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올해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경협을 복원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다. 그러나 남북 양측은 모두 냉전시기의 관성과 ‘안보

딜레마’에 빠져 있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과 경협의 중요성

을 인식하면서도 대국(大局)을 보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다. 이제라도 남북 모두 경제협력이야말로 북핵문

추원서는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

며, 산업은행 동북아연구센터장, 상하이 지점장을 거

쳐 산은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였다. 현

재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중앙

대, 강남대, 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임기 중 추진 가능한 경협사업>

국 면 드레스덴 선언 경제협력사업 기 간

1국면

(남북경제협력

기반구축)

인도적 사업

동질성회복 사업

① 5·24 조치 해제, 교역과 투자 조치 이전수준 회복

②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

③ 개성공단 1단계 마무리 및 기업 입주 완료

④ 라선 특구, 남·북·러 가스관 등 참여방안 검토

⑤ 남북 농업 및 환경협력 재개

임기 2~3년 차

2국면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민생인프라 구축

①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② 남북 간 교통물류체계 획기적 개선(개성 - 신의주 철도,

개성 - 평양고속도로, 라진·청진항 개보수 사업 등)

③ 라선 특구 - 청진공업지구 연계개발 참여

④ 경공업제품 생산과 자원연계 개발협력(수출산업 육성) - 송림수출가공구 참여 등

⑤ 에너지산업 협력 개시(남·북·러 가스관 사업 등)

⑥ 농업협력 지속(자생력 회복)

⑦ 백두산 관광 시행

⑧ 초보적 수준 금융협력 및 북한 ‘개발은행’ 정착 지원

4~5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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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SPECIAL3

특집 |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 어떻게 풀까

1990년대 들어 북한 경제는 심각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농업생산에 필수적인 농

자재 조달이 어려워졌으며 농업기반시설도 지속적으로 낙후되었다. 1990년대 중

반에는 북한의 농업생산 침체에 따른 식량난이 심화되어 아사자가 대량으로 발생

하는 위기상황에 봉착하기도 했다.

김정일 정권은 당면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한편 실천

적인 농정시책도 펼쳤다. ‘종자혁명’, ‘두벌농사’, ‘감자재배 확대’ 등이 강조되었으

며, 전국적인 토지정리사업과 관개체계 개선사업도 추진했다. 축산부문에서는 식

량난을 반영해 초식가축 사육을 촉진했다. 또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농업개혁조치

를 취하고 식량생산부문에 가용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북한의 농업은 여전히 저생산에 머물고 있다.

북한 농업이 장기 침체에 놓인 근본적 이유는 개혁 부진과 자본 부족에 있다. 북한

은 중국의 ‘생산책임제’와 같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에 착수해야 하지만 체제 붕괴

의 위험부담으로 주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한 농업의 비효율적인 집단체제에

주목하며 대규모 자본지원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이 조건에서 북한 농업이 ‘개혁부진과 자본부족의 함정’에서 단기간에 탈출할 수는

없다. 다만 단계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

요하다. 그러나 그 역할은 북한 농업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소하는 ‘해결사’가 아니

라, 그 해결 방도를 함께 모색하는 ‘안내자’와 ‘조력자’로서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

야 한다.

남북 농업교류협력, 북 주민 인도적 상황 개선도

과거 남북 농업협력은 정부와 민간의 인도지원사업, 민간과 지자체의 개발협력사

업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우리 정부가 수행한 대북 인도지원에서 가장 큰 부분을

남북 농업협력 성공하려면

남북 상설협의체 구성 필요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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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한 것은 식량과 비료 지원이다. 지원 규모는 각각 330만 톤과 255만 톤

에 달한다. 이들 지원이 북한의 식량난 완화와 농업생산 증대에 큰 기여를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민간단체와 지자체가 추진한 대북 농업협력사업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지원과 협력사업을 통해 북한의 농업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었으며

주민의 인도적 상황도 개선시킬 수 있었다. 선진 농업기술을 북한에 소개하

고 전수한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또 민간 특유의 유연함으로 경직되기 쉬

운 남북관계를 이어주는 촉매 역할을 수행한 것도 숨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식량과 비료 지원은 북한 농업에서 확대 재생산을

촉발하는 자본으로 전환될 수 없었다. 민간단체와 지자체의 농업협력사업

은 북한 농업의 변혁과 자활능력 향상을 유도할 만한 규모가 되지 않았으

며 연계 프로그램도 부족했다. 협력사업의 목표와 비전이 뚜렷하지 않았다

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연합

01 지난 3월 13일 북한의 농업근로

자들이 올해 농업생산에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고자 영농준비에 나섰

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한

편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

을 통해 북한에 복합농촌단지 조성

협력사업을 제안했다. 이는 북한 농

업의 자생력 강화에 정책적 목표를

둔 선도형 협력사업이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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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주체별로

역할을 분담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민간의 농업협력사

업은 소지역 중심의 인도적 목표 달성을 위한 단위 프로젝트

를 중심으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부문은 생산기

반 및 국토환경의 복구와 농업과학기술교류 등 규모가 큰 개

별 프로그램과, 북한농업의 자생력을 견인하는 종합적 농업협

력프로그램을 집중 추진해야 한다.

민간은 ‘북한 맞춤형’ 협력,

정부는 복합농촌단지·대규모 개발협력사업 필요

민간단체의 농업협력사업은 종전의 추진체계에 모니터링 기

능을 강화하고, 민간단체의 기술 수요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

의 기술지원체계를 덧붙여 추진해야 한다. 또한 협력분야는

효과성과 수용가능성을 고려해 ‘북한 맞춤형 사업’으로 선정

할 필요가 있다.

효과성은 북한의 경제와 농업·농촌 현장의 사정에 맞추어진

농업협력사업에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북한의 수용성은 과

거 북한이 국제사회(UNDP, FAO, IFAD 등)에 공개적으로 요

청했던 협력사업과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농업협력사업에

서 높아질 것이다.

효과성과 수용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북한 맞춤형 농업협력사

업으로는 식량공급 증대, 소규모 농업기반 조성, 축산 지원,

산림복구 및 환경 복구, 신재생 에너지 개발, 농촌생활환경 개

선, 취약계층 지원 및 농업기술 지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협

력사업은 추진 주체의 역량에 따라 개별 사업 혹은 개별 프로

그램의 형태로 수행될 수 있다.

공공부문이 준비해야 할 농업협력사업은 북한 농업의 변화를

유도해 자생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하는 사업과, 예산 소요가

비교적 큰 대단위 기반조성사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구상에서 제안한 ‘복합농촌단지’ 조

성 협력사업은 북한 농업의 자생력 강화에 정책적 목표를 두

고 추진하는 선도형 협력사업으로 볼 수 있다. 이 협력사업은

북한의 경제특구나 접경지 배후 농촌을 대상으로 먼저 농업·

농촌개발에 필요한 모든 협력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그것을 기

반으로 남북교역과 투자협력사업을 추진하며, 북한 내 경제

특구나 인근 도시와 교류하며 함께 성장

한다는 발전전략을 내포하고 있는 종합적

농업개발협력사업이다.

이 협력사업의 첫 번째 의의는 ‘종합적인

지원사업’이라는 데 있다. 협력 대상으로

선정된 북한의 시범농장을 중심으로 농자

재 지원, 농업생산기술 지원, 지역 내 생

산기반 조성 지원, 농촌생활환경개선 지

원, 황폐산림 복구지원 등 종합적인 개발

협력사업을 추진하면, 북한 농장의 생산

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질 좋은 농산물 생

산도 기능해진다. 이러한 패키지 협력방

식은 개별 프로젝트 협력사업에서 기대하

기 어려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두 번째 의의는 복합농촌단지의 향상된

능력을 토대로 남북 간에 교역, 계약재

배, 투자협력사업 등 상업적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즉, 기능적

패키지로서 물리적 농업개발협력과 상업

적 교류협력이 결합된 협력사업을 추진하

자는 것이다.

세 번째 의의는 농업개발협력을 북한의

경제특구 개발과 연계 추진해 동반성장

을 모색하자는 데 있다. 즉, 공간을 결

합시킨다는 의미의 패키지형 농업협력

이다. ‘복합농촌단지’는 농산물을 생산하

고, 인근의 ‘특구’와 ‘접경국’은 농산물 시

장, 농산물 가공, 농자재 조달, 농업금융

제공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교류할 수 있

다. 이 협력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면 북한 농촌지역의 개발모델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지원에 소요되는 예산 규모가 커

공공부문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단

위 농업개발사업도 있다. 농업기반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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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으로는 관개체계 개편사업, 간척지 복구사업, 저수지 개

보수사업, 홍수피해 농지와 하천 복구사업, 황폐산림 복구사

업 등이 있다. 양측 농업과학원 간의 과학기술협력과 농업대

학 교육과정 지원 등 과학기술 교류사업도 공공부문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이외에 여전히 중요한 원조사업으로서 식량과

비료 지원도 있다. 이들 개발협력사업과 원조사업은 남북 합

의에 따라 유상이나 무상 원조로 추진할 수 있다.

효율적 추진체계 미리 구축하자

남북 농업협력사업 추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 당국

간 상설협의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국 간 협의가 이루

어지지 않는다면 농업협력사업은 질서 있는 추진이 어려워지

고 사업의 확대도 불가능해진다. 또한 북한 농업의 발전과 남

북 양측의 상호이익 추구라는 농업협력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

하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도 드

레스덴 구상에서 양측에 ‘남북경협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제안

을 한 바 있다.

민간단체 농업협력사업을 위해서는 재정지원과 모니터링이

포함된 과거의 민관협조체계를 먼저 복원해야 한다. 또한 민

간단체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농업기술과 전문가를

조직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도 새로 만들어 가동할 필요

가 있다.

공공부문 주도의 대단위 개별 농업협력사업과 복합농촌단지

협력사업은 남북 농업협력을 전담하는 사업단을 만들어 시행

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 경우 참여기관 간에 역할 분담이 필

요하다. 통일부와 농식품부는 대북협상, 재정지원, 정책조율,

사업관리를 담당하고, 사업단은 다양한 분야와 사업 파트너를

망라한 조직으로 구성해 사업 추진의 효

율화를 꾀해야 한다.

한편, 당국 간 접촉과 인적교류가 수반되

는 농림업 협력사업에 대한 북한의 소극

적 태도가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 당국을

설득할 수 있는 준비도 갖추어야 한다. 우

선 우리가 제안한 농업협력사업에 대한

정책 담당자의 이해도가 높아야 하며, 북

한의 적극성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적절

한 레버리지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민간 협력사업 중 뚜렷한 성과가 있어도

능력의 한계로 확대가 불가능한 사업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 공적

사업단이 민간의 사업을 인수해 추진할

수 있는 방안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국제기구 및 국제 NGO와의 협력 과정에

서도 두 가지 문제가 예상된다. 하나는 한

국과 외국의 협력 주체에 대한 북한 측의

분리 대응에 따른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측 참여자가 소외될 수 있는 개연성

이다. 이 문제는 국제사회의 협력주체를

국내 주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원·관리

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

과거 경험을 통해 대북 농업협력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

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준비

와 계획이 철저해야 한다. 북한 농업의 발

전뿐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위해 북한 측

을 설득하고 목표와 비전에 맞게 수행하

며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훈은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

국농업경제학회 사무총장, 통일부장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국농촌경

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구상에서

제안한 ‘복합농촌단지’ 조성 협력사업은

북한 농업의 자생력 강화에

정책적 목표를 두고 추진하는

선도형 협력사업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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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독일 드레스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강조해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그리고 최근 언급한 ‘통일대박론’을 융합하여 매우 함축

적인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궁극적

으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 남북한 사이에 가로 놓인 장벽들 - 군사적 대결

장벽, 불신의 장벽, 사회·문화적 장벽,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북한과 국제

사회 사이의 ‘단절과 고립의 장벽’ - 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장벽 제거를 위한 첫 걸음으로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한 공동번

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한 주민 간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남북한이 공동

으로 노력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산가족상봉 정례화, 모자패키지

사업, 북한 식량문제 해결, 남북 철도 연결, 남·북·중 경제협력을 위한 물류단지

조성 등을 제의했고,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는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교류, 스

포츠 교류 등을 제시했다. 이 외에 박 대통령은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임도 밝혔다.

북 역제안에 우회적으로라도 대답 필요

북한의 반응은 예상대로 싸늘했다. 통일구상 발표 즉시 북한은 4차 핵실험 가능성

을 발표했고, 박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순수한 의도를 정치군사적 의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노동신문은 “남

북관계에 대한 남측의 의견을 주시하겠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최근 북

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질

문장’을 통해 북한이 가장 원하는 ‘5·24조치 해제와 서해의 평화수역 조성’을 우선

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북남관계의 전도는 전적으로 박근혜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북한의 반응으로 보아 박 대통령의 제

대북 억제력 강화와

진정성 담긴 제안 병행해야이대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SPECIAL4

특집 |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 어떻게 풀까

Page 23: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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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북한이 완전히 거부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물론 우리 정부

는 북한의 질문에 대해 대응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우회적으로라도 북한

의 역제안에 대답을 해야 한다.

이산가족상봉조차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북한에게 기능주의로 접근

하기는 어렵다. 즉 점진적·단계적 남북관계개선 보다는 정치적·군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도적 지원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평화통일 구상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과제는 정치적 신뢰구축, 남북회담

정례화, 남북협력 제도화이다. 물론 이러한 과제들은 북한의 호응을 필요

로 하며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정부는 대북제안

과 대북지원 정책을 구체화하여 북한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 실현을 위한 첫 작업은 하루빨리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민관 협의기구인 통일준비위원

회를 발족시켜 북한이 우리의 제안에 호응해 올 때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

길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실행정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물론 구체적 실

행정책은 국민정서에 부합해야 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을 훼손해

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해서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5·24조치 해제와 서해 평화수역 조성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야 할

ⓒ연합

01 지난 2월 14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2차 남북

당국간 고위급 접촉에서 우리측 수

석대표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

차장(오른쪽 세번째)과 북측 수석대

표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 참

석자들이 전체회의를 하고 있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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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것이다. 5·24조치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

한 사과 없이는 5·24조치를 해제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5·24조치 내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의 최대치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5·24조치의 적용을 완화할 수 있다는 대북 메시지로

간주할 수 있다.

확고한 원칙으로 다양한 카드 준비해야

그리고 북한이 요구하는 서해 평화수역 조성은 우리 정부가

이미 거부 의사를 밝힌 사안이며, ‘해양주권은 포기할 수 없다’

는 것이 우리 정부의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오

래 전부터 강조해온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연계해 우리

의 해양영토가 보장되는 전제하에 ‘공동어로구역’을 지정하는

문제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평화공원 조성 문제는 북한의

정치적, 군사적 결단을 동시에 내려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양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조성에 관한 남

북협의가 진행될 때, 개성 주변의 북한군의 후방이전이 불가

피했고, 북한 군부의 동의를 받음으로써 개성공단이 조성되었

다. 마찬가지로 DMZ 내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는 문제는

북한의 정치적 결단과 군사적 결단을 모두 필요로 한다. 따라

서 남북한 고위급회담과 장성급회담이 동시에 또는 합동으로

개최되어야 한다. 평화공원 조성이 가시화된다면 남북한 간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점에서 중요

하다. 게다가 남북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에 평화공원

을 조성한다면 한반도 긴장완화에 큰 도움을 줄 것이므로 우

리가 원하는 지역에 평화공원을 조성할 수만 있다면, 남북 공

동어로구역조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다. 이를 위해 통일준비위원회는 평화공원의 위치와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가능하면 순차적으로 두

세 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

토해야 한다. 예를 들면, DMZ 서쪽과 동

쪽, 그리고 중간 지점에 세 곳 정도를 선

정해 놓자는 것이다.

동시에 평화공원 조성 과정에서 우리가

북한을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가

를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식

량지원 규모, 비료지원 규모, 의약품지원

규모 등을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언제든

지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렇듯 확실히 정리된 우리의 입장과 준비

된 ‘당근’을 가지고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제의하되, 의제에 평화공원 조

성문제와 남북교류협력사무소 개설도 포

함시켜야 한다. 물론 대사관 또는 영사관

역할을 하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 개설은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사무소를 남북한의

상설 ‘협의창구’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

에 북한이 거부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실질적으로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최우

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는 북한

의 비핵화이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에

서 대북지원과 연계시켜 다자간의 비핵화

노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

를 표명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개최

되지 못한 6자회담을 다시 가동시키기 위

해서는 참여국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강조하는 ‘한반도 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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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능동

적 억제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KAMD와

Kill-Chain 구축 시기를 앞당기며, 한반

도 유사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

억지력’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조속히

도출해야 함으로써 대북 억제능력을 제

고해야 한다.

북한의 드레스덴 제안 거부 이유였던 한

미연합 군사훈련도 종료되었고, 박근혜

정부는 흡수통일이 아닌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한다는 입장을 지

속적으로 표명했으며, 김정은 정권도 안

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이다. 전술

한 바와 같이 북한도 노동신문과 조평통

공개질문을 통해 북한이 원하는 바를 우

회적으로 우리에게 전달함으로써 박 대통

령의 제안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인내심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

는 의지를 표명한 만큼, 북한 행동(반응)

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아니라 남

북관계 개선을 위해 확고한 원칙을 기반

으로 진정성이 담긴 대북지원의 구체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북한의 호

응을 유도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북한의

반발과 무인기 사건에 대해 인내하면서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바람직

스러운 자세라고 판단된다.

현재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미국은 북

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한 6자회담에 나설 수 없

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도 4차 핵실험 강행

의지를 밝히면서 ‘핵주권 수호의지’를 거듭 다짐하고 있다. 이

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을 재개시

키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위한 우회적인 노력으로,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체 설립을 전제로 한 박 대통령의 ‘동북아평화협력구

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구축

에 대한 관련국들의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고, 북한의 제

2차 핵실험(2009. 5. 25.) 강행 직전까지 동북아 다자안보협의

체 구축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2007년 ‘2·13합의’를 통해

북한 핵폐기를 가속화하기 위해서 6자회담은 5개의 실무그룹

(working group) 중,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구축을 위한 실

무그룹의 활동을 통하여 ‘동북아 평화안보 기본원칙’의 초안도

거의 완성단계까지 갔다.

북 반발 행동에 일희일비 말아야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6자회담과는 별개로 동북아 평화·

안보 체제 실무회의를 재가동시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다자안보협력체 출범 시 북한이 꼭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북한의 참여 없이 출범하

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를 관련국들이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북한 비핵화에 대해 한 목

소리를 내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모습

을 보여주어야 한다.

끝으로 드레스덴 구상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드레스덴 대

북제안 뒤에는 ‘튼튼한 안보’가 전제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

은 항상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형성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해

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강력

하게 대응하기 위해 ‘능동적 억제전략’을 마련했고, 북한의 핵

미사일공격에 대비해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와 Kill-

Chain 구축을 서두르고 있으며,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대북

이대우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

재 세종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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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국제기구 조사단이 조사한 2014년 북한 식

량수급 전망을 보면 총 소요량은 최소 537만

톤이며 텃밭을 포함한 총 생산량은 503만 톤

으로 예상되어 34만 톤의 국내 식량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족분은 30

만 톤을 수입으로 충당한다 해도 4만여 톤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

다. 세계식량계획(WFP)에서 발표한 2013년

도 기아 지도(map)를 살펴보더라도 북한은 4

그룹에 분류되어 20∼34%의 인구가 기아상

태에 처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총 5

그룹 중에 4그룹은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를

제외한 식량 부족 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것으

로 볼 때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매우 심각하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 북 식량생산 증대 불구 여전히 외부지원 절실 |

북한은 1990년대 식량의 절대 부족으로 고난의 행군을 겪었고, 이후에도 홍수, 가뭄 등 자

연 재해와 비료 등 농자재의 부족 등으로 식량 생산량이 부족하여 기아에서 고통 받고 있

다. 북한 스스로도 침체된 농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종전의 주체농법에서 탈피하여 보다 선

진화된 과학적 농법을 채택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여전히 식량난을 해결

하지 못하고 있다. 농경연의 북한농업 동향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은 알곡을 늘리는데 주

력하고 있는데 두 가지의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하나는 경작면적의 확대에 의한 방법이

고, 다른 하나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다. 경작지 증대는 알곡 생산을 늘릴 수

북 토양에 맞는 적절한 비료지원해야 한다강희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한우시험장

논단 | 농업협력과 비료지원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의 화학공업기지인 남흥청년화학

련합기업소에서 비료생산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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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토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경지면적당 수확량을 높여

식량 생산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즉 농업과학 기술

의 성과들을 농업생산에 적극 도입하여 생산량을 높

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북한의 만성적인 식

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은 없는가 하는 것이

다. 기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기다. 북한의 식량부족 원인으로는 농지기

반의 취약, 농자재의 공급부족, 농업기술의 미비 등

많은 요인이 내재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비료 부

족이 절대적이라고 판단되어 정부에서는 1999년부

터 비료지원을 개시한 이래 총 255만 5천 톤의 비료

를 지원하였다. 북한의 비료 필요량은 2012년 68만

6천 톤 정도인데 비해 생산량은 20만 3천 톤으로 나

머지는 수입이나 원조 등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작물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는 토

양의 비옥도, 기후조건 등의 자연 조건과 품종, 비

료 등의 기술조건이 있지만 비료가 현실적으로 가

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북한의 토양 여건을

살펴보면 북한의 논토양은 갈색, 충적지, 진펄, 간

석지 논토양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충적지 논토

양이 55%, 갈색 논토양이 37%를 차지하고 있다. 북

한의 토양은 비료 흡수에 필요한 유기물을 거의 상

실할 정도로 척박한 상태여서 지속적인 작물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그동안 지원한 비료가 복

합비료도 있지만 주로 질소질 비료 위주로 지원되

어 인산, 가리, 칼슘, 마그네슘, 미량요소가 절대적

으로 부족한 상태이다. 비료를 시용 유무에 따라 작

물별로 차이를 보면 시용하지 않을 때와 비교해 벼

는 12.8%, 감자 47.2%, 배추는 58.5%의 생산량 증

가가 있었다. 결국 작물의 생육에 일정량의 비료성

분이 필요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최대의 생산

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알맞은 양의 비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작물의 생리적, 병

리적 장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산, 칼리 비료의 균

형적인 시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 토양의 척박

성을 고려하여 비료 3요소(질소, 인산, 가리)를 공급

시 수량은 벼는 15%, 밭작물 30%, 채소는 40% 정도

생산성이 올라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입되는

비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토양 산도가 중요

한데 북한은 토양이 산성화 되어 질소, 인산, 칼리,

유기물 등의 흡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

에 대한 대안 마련도 필요하다. 토양 내의 부족한 영

양소를 외부에서 비료로 시비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

두 작물의 생육에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공급된 비료의 성분을 토양 속에서 분해하여 작물이

흡수 이용하게 해야 하는데, 지력의 수준을 반영하

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토양 중의 유기물 함량이다.

| 인도적 차원의 비료지원 필요 |

유기물 함량은 토양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북한의

토양 부식함량은 평균적으로 1.78%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이 정도의 수준으로는 부식함량이 낮은 편

이다. 1920년대에 논토양 유기물 함량이 전국 평균

4.4%였으며 1945년에는 3.0%로 낮아졌다는 자료를

근거로 한다면 지력이 매우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양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토양의 부식 함량이

3.0%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북한의 작물 생산

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토양의 비옥도를 파악하여 그

에 맞게 비료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북 관계

가 평화적으로 개선되어 2007년에 구성된 남북농업

협력위원회가 가동되고 민간단체, 전문가 등과 협력

하여 남북이 보유한 자연적, 지리적 환경과 노동력,

농업 기술력을 융합해 추진해 나간다면 북한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통일 한국으로 뻗

어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강희설은 충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장을 역임했다. 통일부 통일교육원 통

일미래지도자과정을 마치고 현재 국립축산과학원 한우시험장장으

로 재직 중이다.

Page 28: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2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논단 | 대북지원과 국제 NGO 협력

인도주의 실현과 통일 위해 ‘초국적 네트워킹’ 필요하다글 문경연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RINK) 부연구위원

사진제공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Page 29: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27

대북협력 사업에 있어 국제 NGO와 국내에 기반을 둔 대북협력민간단체들과는 큰 차

이가 존재한다. 국제 NGO의 경우, 모국 정부 혹은 유럽국가들의 경우 EU의 안정된 재

정지원을 바탕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미국에 기

반을 둔 NGO들의 경우, 미국 정부의 NGO 채널을 통한 대북지원 방식에 힘입어 대규

모 원조가 가능하였고, 이러한 규모의 힘을 바탕으로 북한에 분배모니터링 확보를 위

한 현장 접근권을 점차적으로 강화하여 왔다. 하지만 대북지원을 북핵문제 해결을 위

한 협상카드로 사용하였던 미국 정부의 대북지원은 북핵문제의 악화와 함께 중단되는

위기에 처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유럽 NGO들의 대북지원 사업에 있어 지속성은

안정적 재원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즉, 미국과 달

리 대북지원에 대한 인식에 있어 북핵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유럽의 국제

NGO들은 남북관계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대북지원 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

던 것이다.

| 경험과 노하우 갖춘 국제 NGO, 북한 보고서만 800여 개 |

그렇다면 상주 형태 혹은 국내 NGO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

유로운 현장방문을 통한 사업운영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확

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제 NGO들이 대북지원 사업

의 원조효과성 측면에서 국내 NGO들보다 더 높은 수준을

달성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북한의 폐쇄

성으로 인해 국제 NGO의 대북사업에 대한 외부기관의 객

관적 평가는 어려운 실정이며, 북한 내 사업에 대한 외부

언급이 진행 중인 국제 NGO들의 북한 내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사업의 투명성과 효과성

을 평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여 왔다. 하지만

이것이 국제 NGO의 대북사업이 인도주의 상황 완화에 기

여한 측면이 적다는 점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식

량계획기구(WFP)의 평양사무 소장을 지낸 후 계속해서 국

제기구 및 국제 NGO의 대북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헤이젤

스미스(Hazel Smith)의 주장처럼, 이들 국제 NGO의 대북

사업의 의의는 폐쇄된 북한에 외부사회에 대한 정보 유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북한의

폐쇄성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는 점과, 이들 국제 NGO가 펴낸 다양한 사업보고

서가 국제사회로 하여금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북한

의 인도주의 상황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우려스러운 상태라는 점을 국제

사회에 알려주는 통로가 됨으로써 개별공여국의 대북 직접지원 혹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을 촉진하게 만든 요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갖는다.

01

02

01 WHO 평양사무소 전경

02 평안북도 향산군 태평리협동농장 감자 저장고를

둘러보고 있는 국제 NGO 관계자들.

Page 30: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2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 국제 NGO와 국내 NGO 간 상이한 대북지원 접근 |

국제 NGO의 북한 ‘상주’를 바탕으로 하는 사업수행이 원조의

투명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앞서 지적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NGO가 대북지원 사업에 있어 국내

NGO보다 투명성과 효과성을 확보했다고 평가받는 일반적인

믿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것은 국제 NGO들이 북

한이 아닌 다른 개도국 사업을 통해 획득한, 혹은 보여주고 있

는 사업 수립, 집행, 평가에 있어서 투명성과 체계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neutrality)을 바탕으로 인도주의적(human-

ity) 가치에 기반한 사업 대상자의 선정과 수행이라는 기본적

인 원칙에 대한 준수가 북한에서도 지켜지고 있다는 믿음에

서 기인한다. 또한, 북한 사업에 참여한 국제 NGO는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공급하는 기부자 혹은 공여국 정부(resource

providers)에 대한 책무성(accountability) 그리고 사업 수혜 대상자에 대한 높은 책무

성을 요구하는 국가들에 뿌리는 둔 기관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과 인

도주의 원칙 그리고 책무성 확보의 의무는 사업의 투명성과 효과성 확보를 위한 북한

당국과의 지속적인 협상, 협상과정에서 비연계 전략을 통한 인도주의 가치의 실현과

공여국과 후원회원들에 대한 책무성 확보를 위한 끊임없는 자기쇄신의 노력이 북한당

국과 국제사회 간 정치적 관계의 부침 그리고 북한 내 열악한 사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국제 NGO들이 사업을 지속하며 일련의 투명성과 효과성을 확보하였다고 평가받는 이

유이다. 이에 반해 국내 NGO의 대북사업은 인도주의적 가치와 함께 동포애에 기반한

통일의 실현이라는 타(他) 가치가 밑바탕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을 확

보하기 어려우며, 이 때문에 비연계 전략을 취하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대북지원의

근본적인 목적이 인도주의 정신의 실현과 통일이라는 가치의 혼재로 인해 통일의 대의

를 위해 원조의 투명성 확보를 통한 수혜자 그리고 재원 제공자들에 대한 책무성을 희

생시킨 결과 투명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국제 NGO와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내 NGO는 대북사업에 있어 투명성 확보는 미흡하였으나, 효과성

측면에서는 남북한 화해협력에 기여한 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조 효과성 개념을 국제

NGO들의 효과성과 같은 요소로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처럼 상이한 목적과 특성을 바탕으로 대북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국제 NGO와 국내

NGO 간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대북지원 사업은 북한의 인도주의 사

태 완화라는 국제 NGO의 접근법과 통일이라는 인도주의 가치 이외의 목적 또한 견지

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는 국내 NGO의 접근법 모두 북한을 대상으로 할 때 필요하

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과 국제사회 정치관계의 부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제 NGO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인도주의 사태 완화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북한

03 지난 2012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주최한 인도

적 대북지원을 위한 국제 NGO 컨퍼런스.

04 평안북도 구장군 유치원에서 협의 중인 EU 대표단.

03

Page 31: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29

에 대한 지원은 아동, 여성, 환경, 농업, 보건 등 다양한 측면을 포괄한다. 이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국제 NGO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인도주의 사태 완화 및 개발에

필요한 국제적 전문성과 초국적 재원 동원(transnational resource mobilization)이 가

능하다. 둘째, 국제 NGO와 국내 NGO 간 협력은 국제 NGO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우

호 세력으로 확산시킴으로써 초국적 한반도 통일운동 환경 마련에 기여할 수 있다. 통

일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주장이 되풀이 되고 있다. 국제사

회의 지지와 협력 기반 확산은 기존에 대북지원 사업에 참여해온 국제 NGO를 대상으

로 할 때 용이하게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이들 국제 NGO가 북한당국과 이미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는 대북관계에 있어 정치적 레버리지로써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제

NGO와 국제 NGO 간 협력은 통일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꼭 필

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삼각협력과 트위닝 기법을 활용한 국제 NGO 협력사업 |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삼각협력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2010년, 한국정부는 원조 수

원국에서 원조 공여국이 된 최초의 국가로 OECD 내 국제개발협력 선진국 그룹인 개

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이 되었고, 2011년에는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를 개최하여

원조 효과성을 위한 남남협력과 삼각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선진국의 자본

과 기술, 개도국의 경험과 조직, 그리고 수원국이 참여하는 방식의 국제개발협력 사업

방식은 닫힌 남북관계 가운데 북한개발협력 방식을 모색하는 데 있어 유용한 시사점

을 가진다. 즉, 국제개발협력에서 사용되는 삼각협력의 방식을 활용하여 남한정부의

남북협력기금과 국내 NGO의 자원, 국제 NGO의 전문성과 조직을 활용하여 북한에 개

발 및 인도적 사업을 활성화하는 대안적 접근을 모색하여야 한다. 또한 UN의 인도주

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기구(WFP)는 특정 개도국이 국제협력의 차원에서 자국의 잉

여 자원을 공여하고 싶지만 필요한 운송비를 비롯하여 분배를 위한 경제적, 물리적 여

력이 부족할 경우 이것을 담당할 국가나 조직(counterpart)을 매칭 시켜주는 트위닝 기

법(twinning)을 활용하여 인도적 사업을 시행하기도 한다. 필요 시 WFP는 직접 개도

국으로부터 공여된 자원을 분배하기도 한다.

닫힌 남북관계 속에서 남북 간 직접지원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국제기구나 국제 NGO

를 통한 대북지원 사업을 재개함으로써 북한의 인도주의 사태 완화와 한반도 평화 통

일을 위한 우호적 국제환경 조성을 모색할 때이다.

문경연은 영국 크랜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원, 연세대학교 빈곤문제국제개발연

구원 전문연구원,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연구교수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RINK) 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04

Page 32: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아시아 4개국

을 방문했다. 금번 순방은 작년 10월에 예정되어 있었던 동남아 방문이 연방정부폐쇄(shut

down)로 취소된 일정의 부활이다. 여기에 일본의 요청을 수용해서 1996년 클린턴의 방일 이

후 18년 만에 국빈 방문이 추가되었다. 2011년 천명된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알맹이

없는 허울뿐인 정책이라는 국내외 비판이 커진 데 대한 대응의 성격이 큰데, 특히 시리아 사

태와 크림반도 사태로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대내외의 문

제제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 북핵 해결보다 아시아전략에 활용

당초 한국은 방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한국 정부의 요청과 미국 내 지한파 인사들

의 촉구로 2월에 와서야 포함되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

국이 빠질 경우 아베 정부의 우경화를 미국이 지원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방

한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이를 두고 정부는 외교적 승리로 홍보하지만 손익계

산의 대차대조표를 면밀히 따져본다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북한이 지난달 외무성 성명을

통해 4차 핵실험을 예고한 것은 크지 않았던 오바마 방한에 대한 필요성은 증가시켰을지 모

르지만 방한결과와 맞물려 한반도 주변의 어려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일컫는 ‘전략적 인내’는 지금까지도 사실상의 무전략이자 방치였지

만, 최근에는 북한에 대해 더욱 강경해졌다. 전임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의 키워드였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원칙’까지 다시 불러오고 있을 정도

이다. 부시 임기 8년 중 초기 6년간의 강경책 이후 2년간 대화분위기로 돌아섰던 것과는 정

반대의 흐름을 오바마 정부는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 특히 2013년 초의

위기가 큰 역할을 했지만 미국 역시 북핵문제의 해결보다는 자신의 아시아전략에 활용하고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대체로 예상했던 합의들이 도출되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4차 핵실험을

포함해서 추가도발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고 비핵화의 CVID 입장을 천명했으며, 한발 더 나

아가 북한의 인권침해에 대해서 추궁하고 압박했다. 한편 전작권 환수시기에 대한 재검토

진단 | 오바마 방한, 무엇을 남겼나?

한미 ‘상호운용’ 가능한 MD구축,아시아 재균형 정책 재확인김준형 한동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Page 33: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1

에 합의했고,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한

미 상호운용성을 강조했으며 한·미·일 3국의 정

보공유에도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높은 수준에

서 달성하기 위해 양국이 긴밀한 협력을 하기로 했

다고 발표했다.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대북강경자세

에 대한 유연화나 대화재개의 신호는 없었으며, 오

히려 최근 미국의 태도를 반영하듯 전체적인 톤은

더 강경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과 일본 방문의 성과에 대해서 미국 언론들의

평가는 일단 한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일본에

서는 오바마가 내심 가장 공을 들였던 TPP 합의도

출에 실패하고, 오바마의 면전에서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던 것을 두고 ‘후퇴’

또는 ‘좌절’이라는 표현을 썼다. 반면에 한국은 견고

한 한미동맹을 과시했다는 부분과 세월호 참사에 대

한 애도표시로 양국 간 친밀도를 높였다고 긍정적

인 평가를 했다.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미국의 관점

에서는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속을 들

여다보면 전혀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이번 한미정

상회담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문제점들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미정상회담의 3가지 문제점

먼저 작년에 국내외로 많은 논란을 빚었던 전시작

전권 환수시기의 재검토 부분이다. 결국 박근혜 정

4월 25일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

령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

Page 34: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2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부의 요구대로 되었고, 이것이 정부와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대미외교의 승리이자 오바마 방한의 최

대 선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 자존

심 문제나 국내정치용 외교라는 비판을 차치하고서

라도 이를 통해 미국에게 반대급부로 제공해야 하

는 것이 간단치가 않다. 그 일부가 곧바로 이어진 합

의사항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 한국의 KAMD

개발과 한미 간 상호운용성을 증대하기로 했다. 작

년 5월 미국에서 있었던 한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

견에서 오바마가 북한미사일 위협에 대해 포괄적이

고 상호운용이 가능한 연합방위력을 지속적으로 강

화하는데 합의했다는 식으로 한국의 MD 참여에 대

한 부분을 시사했었다. 그리고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킬체인과 KAMD 조

기구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같은 달 방한

했던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전작권 전환을 위해 한

국군이 갖춰야 할 역량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

사일방어능력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이 두 가지 문제

를 직접적으로 연관 지었다. 그리고 이번 한미정상

회담에서 마침내 박 대통령이 직접 상호운용성을 높

이겠다고 한 것이다.

미국의 MD에 대한 한국의 참여여부 의혹을 제기하

게 만든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이 이제 양국합의사항

으로 한국 대통령의 입으로 추인되었고, 연이어 전

작권 환수 재연기 합의가 뒤따라 나온 모양새이다.

지난 1년간 모종의 합의에 의한 일정한 흐름을 가지

고 진행되어왔다는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국방부

는 여전히 MD 참여를 부인하고 있지만 KAMD가 미

국의 조기경보 지원이나, 관련 무기구입, 지휘체계

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미국

의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한미양국은 국내 여

론과 중국을 의식해서 겉으로는 독자개발이고 MD

체제 편입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하

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런 합의가 반영된 매직

키워드(?)가 ‘상호운용’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

작권 환수가 같은 패키지로 돌아간다면 KAMD의

완성시기로 못 박은 2020년이 연기된 환수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로 제기되는 문제점은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에 합의했다는 부분이다. 2012년 7월 이명박 정

부가 한일정보보호협정을 밀실에서 추진하다가 국

내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이후 이 문제는 수

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일본우경화로 인해 국민

감정이 악화되면서 꼼짝도 하지 못하다가 최근 미

국이 악화된 한일관계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조금

씩 제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일관계가 걸림돌

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 헤이그에서의 한·

미·일 3자회담의 분위기를 타고 한·미·일 차관

보급 안보토의(DTT)에서 한·미·일 군사정보교류

MOU를 체결하는 방안이 본격 거론되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위해 필수적인 한·미·일 3각 군사

협력을 절실하게 원하는 미국의 입장이 빠른 속도

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3국간 군사정보교류

MOU라는 의미는 눈속임의 우회전술일 뿐이다. 한

미 그리고 미일협정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3국간이라는 말은 결국 한일의 정보교류협정을 의

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24개국과 협정을 맺고 있고,

이번 오바마의 순방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 추진에 대한

재확인의 의미가 크다.

한국과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서

동북아를, 그리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과의

경제협력과 군사협력을 다짐으로서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다지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Frederic Legrand / Shutterstock.com

Page 35: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3

대북정보수집에 있어 일본의 정보수집능력이 필요

하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지만, 일본의 우경화와

미국의 대중봉쇄의 일부로 추진된다는 것이 문제다.

대중봉쇄 라인에의 편입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번 오바마의 순방은 아시아 재

균형 전략 추진에 대한 재확인의 의미가 크다. 한국

과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서 동북아를, 그리고 말

레이시아와 필리핀과의 경제협력과 군사협력을 다

짐으로서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다지겠다

는 포석인 것이다. 미국은 부인하지만 이는 중국에

대한 봉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작년 10월 2+2 미일

장관회담에서 합의했던 사항이지만, 미국 대통령으

로선 처음으로 오바마가 집단자위권과 센카쿠열도

(중국명 다오위다오)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강력 지

지했다. 말레이시아도 TPP와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

를 지니는 것이 아시아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지나

친 경제의존도를 해소하는 한편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위하는 선봉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

막 방문국인 필리핀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더 큰 의

미를 가진다. 현재 중국과 영토분쟁, 해양통행을 두

고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필리핀은 미국의 군사

협력을 강하게 원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중국은 매

우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한국 정부가 이번 오바마의 방한을 성사시킨

과정부터 결과까지 외교적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는 달리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모두 미국의 대중

견제망의 일부로 인식될 수 있는 측면이 커졌다. 게

다가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

를 관철시켰다고 하지만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할 때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가를 따져봐야 하고,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심각

한 것은 미국의 정책을 우리가 거의 수용하고, 미국

의 이익을 위한 세계전략에 그대로 편입되어가고 있

다는 점이다. 나날이 강경해지는 미국의 대북강경책

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면서 대화재개의 어떤 유연한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북핵위

기를 빌미로 중국견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군사

협력이 가시화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국내정치적 이유와 일본의 위상 부활을 위해 미중이

갈등구조로 가는 데 아예 촉매가 되기로 작정했고,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난처해하면서도 한미동맹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양상인 것이다.

그동안 아베 정권의 우경화 드라이브로 인해 미국의

구상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었으나 그 빗장이 열리

고 있는 것을 감지하게 만든 것이 이번 순방의 가장

중요한 함의가 될 수도 있다.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직전에 북경을 방문했던 척 헤이글 미국방장관은 창

완취안 국방부장과의 설전을 벌였다. 미국은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해서 비판하고, 영

토분쟁에 있어 일본과 필리핀을 지지할 것임을 분명

히 하자, 중국은 영토보호에 관해서는 양보하지 않

을 것과 필요하다면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맞

받아쳤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바마가 센카쿠열도

에 대한 지지를 밝히자마자 중국은 즉각 강력하게

반발했다. 오바마는 한국을 떠나면서 동맹국을 보

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아시

아에서 영토분쟁이 민족주의의 발화점이 되고 미국

은 이에 편승해 대중봉쇄의 연대를 구축하려하고 있

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어떤 식으

로 포장한다고 해도 기저에 냉전적 동맹체제를 깔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을 강화하되, 정치군

사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봉쇄한다는 이중포석이

지만, 전자의 강화를 통해 후자의 약화를 끌어내려

는 노력은 드물고 후자의 강화를 통해 전자가 미국

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

에만 집중하고 있다.

김준형은 미국 George Washington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동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Page 36: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진단 | 북일관계 개선, 정부의 대응은?

ⓒ연합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지난 3월 30일, 북한과 일본이 중국 베이징에서 1년 4개월 만에 정부 간 공식 협상을 시작했다. 이번 국장급 협상은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개최됐으며 북한 측에서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가, 일본 측에서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수석대표로 참가했다.

일본 과거사 문제와 북한 문제, 분리해서 접근해야

Page 37: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5

일본의 북일 관계 개선은 국내외 환경의 변화로 인해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다. 국제

정치의 환경이 대북 해빙기를 맞이하면, 북일 교섭이 적극성을 띤다는 가정은 점차 설

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북한의 핵 실험 이후 일본 내 대북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일

본 내 북일 교섭을 추진하는 동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납치 문제가 일본 국내

의 정치적인 쟁점이 되면서 일본 정치가들이 북한의 요구에 선뜻 응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 예로 2002년 북일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납치 문제를 인정하는 대신 경

제적인 지원을 원했으나, 일본 국내의 역풍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 또한 2004

년의 북일정상회담에서도 결국 일본은 북한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

라, 오히려 일본 내에서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경향마저 나타났다. 또한 북한의 정책도

일본을 카드로 이용하면서 미국이나 한국의 압박을 피하려는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

게 되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를 일본이 무시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의 대북 정책은 국제정치의 흐름

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독자적으로 북일 교섭을 하기에는 국내의 강경 여론이 걸림

돌로 작용하고 있다.

아베, 납치 문제 해결에 주력

이처럼 일본 국내외의 대북 강경론이 강화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권이 북일 교섭

으로 납치 문제를 풀려는 정치적인 이익은 커져가고 있다. 납치 문제의 해결이 정권의

정치적인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잘 해결하기만 하면 정권의

역사적인 성과로 남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북 문제 해결이 정권 안정과 지지로 이어지

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과제인 것이다. 현재 아베 정권의 이지마 내

각관방 참여의 방북에 이은 잇따른 북일 교섭의 시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

다. 일본의 대북 강경 여론은 현재 아베 정권 하에서도 계속 지속되고 있지만, 아베 총

리는 독자적인 대북 정책을 통하여 정치적인 지지를 확대하고자 한다. 아베 총리의 독

자적인 대북 정책은 그의 외교적인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아베 총리는 기존의 자민당 정권의 중국 견제와 더불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어느 정권보다 강하다. 아베가 국제사회에서 적극

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미일동맹을 강화시키고, 가치관 외교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

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외교적 과제이다.1) 여기에 일본 외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

한과의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국내적인 지지와 연관된 아베 자신만이 할 수

1) 중국과의 타협도 아베 총리의 경험에서 할 수 있는 외교적인 실험이다. 제1기 아베 정권 하에서도 중일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취임 후 처음으로 선택한 방문지가 중국이었으며, 중국과의 관계를 타협으로 이끌어내었던 경험이 존재한다. 이를

생각하면 제2기 아베 정권은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외교를 실시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타협

을 모색하는 다면적인 전략으로 변화되었다.

Page 38: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있는 과제로 생각할 수 있다. 납치 문제를 통해 성장

한 아베로서는 납치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려

고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아베의 독자적인 대북 정책은 2013년 5월 14일 전격

방북한 일본의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

여(총리의 자문역)의 활동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지마의 방북으로 아베 정권은 납치 문제에 대한 북

일 교섭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즉, 이지마 참여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재일 총

련) 인맥을 이용해서 방북했으며 그가 북한에서 총

련 본부 토지·건물 경매 문제를 ‘교섭 카드’로 삼아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 모종의 진전을 꾀한 것이다.

이지마 참여가 북한의 명목상 서열 2위인 김영남 최

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만큼 납북자 문제와

관련한 아베 총리의 담판 의지가 북한 최고위층에

전달됐다고 봐야 할 상황이다.

이지마 방북과 급속한 일본의 대북 교섭

아베 총리가 이지마 방북을 추인하게 된 이유는 1)

아베는 납치 문제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납치 문제 해결을 자신의 정치적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납치 문제

를 완전히 해결하고 싶어 한다. 2) 납치자 가족의 고

령화로 인하여 조기에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

각한다. 이미 납치자 가족들도 북한과의 교섭을 요

구하고 있었다. 3) 한·미·중이 핵·미사일 문제를

중시하고, 납치 문제에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기 때

문에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독자적

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4) 아베 총리는 납

치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임으로써 2013년 7월

참의원선거에서의 득표로 연결시켜 아베 정권을 안

정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지마 방북은 아베 총리가 납치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국민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나름의 국내

정치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지마 참여가 2013년 5

월 14일∼17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뒤 일본

정부는 이런 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 예로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 관방장관은 5월 20일 기자회견에서 “아베 정

권은 납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강한 책임감과

결의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납치자 문제와 관

련해 북한에 납북자 생환, 진상 규명, 실행범 인도

등 세 가지를 요구하는 강경한 입장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아베 정권과 김정은 정권 사이의 대화채널을

만든 것도 성과다. 이지마 참여의 방북을 통해 북한

이 향후 대화국면에서 ‘일본 변수’를 무시할 수 없도

아베 정권의 대북 독자 외교의 강화는 한반도 정세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베 정권의 독자적인 대북 외교는 한국의 대북 정책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현재처럼 한일이 갈등하는 상황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일본의

대북 정책 간의 조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360b / Shutterstock.com

Page 39: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7

록 하는 ‘주의환기’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이지마의 방북 결과를 토대로 아베 정권은 납치 문

제 해결을 위한 북일 대화를 계속하고자 하였다. 그

예로 북한과 일본이 4월 12일, 13일 중국 다롄(大連)

에서 극비리에 과장급 회의를 개최, 일본인 납치 피

해자 재조사 대가로 일본의 독자적인 경제 제재조치

를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4월 15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오노 게이이

치(小野啓一)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과 북한의

과장급 당국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런 방안에 대한

최종 조정을 진행했다.

양측은 이르면 이달 중 국장급 협의를 재개, 납치 문

제 재조사에 합의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일 양측은 3월 30일,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이하

라 준이치(伊原純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송

일호 북일국교정상화 교섭담당대사가 참석한 가운

데 1년 4개월 만에 정부 간 공식협의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보름 만에 3차례나 회의가 이뤄지는 등 탄력

적인 대화가 지속되고 있어 향후 북일 관계 개선에

속도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일본의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접근의 움직임은 강화될 가능성이 높

으며, 지속적으로 일본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려

고 노력할 것이다.

비핵화 진전없이 대북제재 완화 쉽지 않아

아베 정권의 대북 독자 외교의 강화는 한반도 정세

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베 정권의 독자적

인 대북 외교는 한국의 대북 정책에 부담을 줄 수밖

에 없다. 현재처럼 한일이 갈등하는 상황에서는 박

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일본의 대북 정

책 간의 조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대북 독자 외교는 한일 양국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

고, 한미동맹, 한중관계 그리고 동북아 질서에도 영

향을 줄 수 있다. 만약 북한과 일본이 납치 문제로 타

협하게 되면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조치를 풀 수 있

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아베 총리는 4

월 5일, 6일 열린 국장급 비공식 회의를 토대로 외무

성 간부와 대응책을 논의, 북한이 납치 피해자 재조

사에 응할 경우 ‘인적 왕래’, ‘전세기 항공 노선 연장’

등 일본이 독자적으로 취하고 있는 제재조치를 일부

해제할 방침을 굳혔다고 전해진다. 만약 이것이 현

실화되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뢰프로

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한·미·

일이 공조하여 중국이 북한 압박을 독려하도록 하는

상황에도 큰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

오는 일본의 대북 제재완화로 인해 북한에 대한 국

제적인 압박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결과이다.

그러한 가정이 현실에서는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아베 정권의 독자적인 북일 관계 개선에는 많은 어

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이 일본과 타협하

기가 쉽지 않고, 일본이 국내를 설득하는 것도 어려

운 과제이다. 또한 비핵화 진전 없이 일본이 대북 제

재를 완화한다면 국제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아베 정권의 독자적인 대북 정

책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

한국은 아베 정권의 독자적인 대북 관계에 대비하여

일본의 대북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가

져야 할 것이다. 우선 한일 간 안보 정책 협의를 확

대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간의 과

거사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대응할 필요가 있

다. 또한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한·미·일 안보대

화를 강화시켜 일본이 국제사회와의 합의를 유지하

도록 해야 한다.

진창수는 도쿄대학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Johns Hopkins University SAIS 방

문학자, 북해도대학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Page 40: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통일교육·평화교육

남북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미래 통일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통일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시작한 ‘남북학생 마주보기 워크숍’

이 올해로 벌써 세 번째를 맞았다.

우리 사회에 ‘먼저 온 미래’인 탈북청소년들과의 만남은 지금은 졸업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이 된, 2011년 당시 본교(서울고등학교) 2

학년이었던 명재연 학생의 부탁에 의해서였다. 필자는 당시 2학년 부

장이었고 윤리교과 수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학생은 자신이 몇 년 전

부터 가져온 탈북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학교 친구들과 공유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교과의 성격상 통

일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KPX문화재단

에 탈북청소년과 우리 서울고 학생들 간 워크숍 개최 및 결과를 중심으

로 저널을 발간해 전국 인문계 고등학교에 배포하고자 하는 제안서를

내게 되었다. 당시 KPX문화재단에선 해마다 탈북청소년에게 장학금

을 수여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장학금 수여만이 아닌 더 의미 있는 도

움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고, 우리의 제안은 재단 측의 기대와도

부합하는 것이어서 제안서는 쉽게 채택되었다. 드디어 2012년 2월 서

울고 학생 11명과 한겨레고 및 재단에서 장학금을 수여하는 학생들 10

명과의 첫 워크숍을 서울고 회의실에서 갖게 되었다.

남북청소년 마주 보며 서로 껴안다이미숙 서울고등학교 교사

이미숙은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

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석사를 취득

했으며, 서울대 박사과정을 수료했

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했

으며, 현재 서울고등학교 2학년 부

장으로 재직 중이다.

Page 41: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39

다양한 주제를 함께 고민하며 동질성 느껴

같은 해 5월엔 《남북마주보기》 저널 1호를 발간하여

전국 인문계고에 배포했다. 당시 주로 참여했던 서

울고 학생들은 3학년이었음에도 만남의 감동을 ‘소

논문연구 - 탈북자 인권보호 전략 : 국제기구의 활용

을 중심으로(명재연)’, ‘새터민 청소년의 심리적 적응

과 문화적응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홍석훈)’로까지

발전시키는 열정을 보였다. 또 워크숍 이후 서울고

학생과 탈북청소년들은 이메일을 통해 서로의 생각

을 나누고 이를 발전시켜 같은 주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정리해 저널에 담기도 했다. 따라서 저널은

새터민 학생들의 생각과 우리 학생들의 생각 간 공통

점과 차이점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어 지도교사였던 필자도 조금이나마 통일에 기여

하는 것 같아 흥분되기도 했다. 2013년 2차 워크숍이

끝난 이후 역시 소감문과 주제에 대한 생각나누기를

통해 못 다한 이야기도 모아보고, 주제에 관해 더 고

민해 보고 싶은 내용을 정리해 ‘탈북청소년의 재사회

화 과정의 문제점과 극복방안’(고정우), ‘외모지상주

의와 경제적 효과’(김형중), ‘남북한 언론체제 비교를

통한 자본주의 미디어의 부정적 사회화 기능과 해결

방안’(백인구), ‘남한청소년 및 탈북청소년의 용돈 사

용 실태 및 경제의식 비교’(송한), ‘탈북자 자립을 위

한 지원 정책’(서규헌), ‘새터민 청소년의 성공적 정착

을 위한 지원에 관한 연구’(이현호) 등 훨씬 다양한 소

논문으로 발전시키는 열의를 보였다.

학생들은 워크숍에 참여하기 전과 후에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전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그

를 따르는 나쁜 상상들 때문인지 모두 무서워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탈북청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그

들도 똑같이 놀이를 좋아하고 꿈을 가진 청소년이라

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순수함을 볼 수 있었다. 그

들에 대한 감정은 우리가 학기 초에 만나는 낯선 친

구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았다”, “마치 남북정상회담처럼 보이지 않는 긴장감

과 차가움 속에서 만났는데, 이러한 나의 편협한 생

각은 탈북청소년들과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여가생활이

우리와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신기했다”고 전하고 있다.

‘먼저 온 미래’에 대한 달라진 학생들의 생각

올해 3월 29일 3차 워크숍에선 천안함 사건 등으로

지난해까지 다소 경색되었던 분위기에 비해 올 들어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통일

을 대비하는 남북청소년들의 마음가짐’이란 주제로

만나기로 했다. 서울고 학생들 20명과 한겨레고 학

생들 10명이 만나 사전 글을 통해 합의된 통일의 필

요성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가까운 장래에 다가올

통일을 대비하여 우리 청소년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했다. 그 과

정에서 소통의 기회를 가능한 많이 다양하게 가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당장 우리의 만

남을 한 번 더 밤새 가지자’는 제안에 박수로 환호하

는 등 훈훈한 풍경이 있기도 했다. 탈북한 후 정착에

성공해 로스쿨에 재학 중인 분의 생생한 삶의 여정을

특강으로 들으면서 가슴 찡해하고, 남남북녀에 대해

남남남녀라는 새터민 학생의 재치 있는 발언에 웃고

울던 학생들은 지금은 중간고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

다. 서울고 학생들은 중간고사가 끝나면 선배들이 했

던 것처럼, 저널 발간을 위해 자유토론의 내용 녹취

록 및 다양한 글들을 쓰고 저널을 발간하여, 전국 인

문계고 학생들과 공유할 것이다.

Page 42: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4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분단과 삶

분단이 낳은 가족해체의 과거·현재·미래박희진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교수

Page 43: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41

이산가족이란 분단과 분단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을 의미한다. 전통적

접근에 의하면 분단이 이루어진 시기, 즉 1945년 8·15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기간 및 그 이후에 북한지역에서 월남한 사람과 북한에 잔류

하고 있는 가족들을 일컫는다. 그리고 현재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에 등록된 상봉신청 이산가족 중 생존자는 70,899명이다. 계량적 숫

자로만 보았을 때 천만 이산가족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산가족

하면 고통과 그리움의 감정이 통곡의 울음바다를 이루는 상봉장면이

연상되지만, 이제 이와 같은 장면은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렇다면 더 이상 이산가족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이산가족 문

제는 소멸되는 것인가?

헤어진 가족 아닌

해체된 가족에 초점 맞춰야

한반도 분단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분단과 가족은 상호 밀접한 관계

를 맺고 있다. 분단은 가족 구성과 해체 등 가족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

쳤고, 역으로 가족은 분단질서를 수립하며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재생

산하는 사적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즉, 이산가족이란 ‘가족이산

(separation)’에 초점이 맞춰진 개념이지만 그 본질은 한반도 분단(be

devided)이다. 분단의 외형적 현상 중 하나였던 이산가족의 실재적 숫

자가 줄었다고 분단이 해소되고 이산가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분단이 지속되는 한 미래에도 다양한 형태의 이산가족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분단으로 인해 가족 해체를 경험하는 수많은 분단가족

은 여전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이제는 헤어진 가족(현상)이 아

니라, 헤어짐을 이유로 해체된 가족(내용)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기

에 돌입했다. 분단이 얼마나 개개인들에게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삶을

Page 44: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42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강요했는지, 가족들의 삶을 파괴하고 지역공동체와의 관계가 헝클어지고 단절되는 고통을

감내하도록 했는지 분단과 그 가족이야기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분단가족은

여전히 재생산 중

현재 이산가족은 월남실향민, 월북인, 미송환 국군포로, 비전향장기수, 납북인, 북한이탈

주민 및 해외 디아스포라 한인 등으로 유형과 범위가 확대되고 있고, 이를 학문적으로 정

의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적 의미로는 월남인과 월북인, 재외한인으로 구분하고, 시기별로

는 전쟁 전, 전쟁 중, 전쟁 후로 나누며, 원인이 자의적이냐 타의적이냐에 따라 미송환 국

군포로, 납북인, 납남인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산가족이라 하면 보편적으

로 월남인과 전쟁 시기, 그리고 타의적으로 납북된 이산가족에 보다 주목한다. 그리고 이

들에 대한 시각과 관점은 이데올로기적이다. 피난, 귀순, 반공의 테두리 속에 갇혀있다. 이

들이 북에 가족을 놓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죄책감, 미안함을 한편으로 하면서 다른 한편으

로는 남쪽의 순결한 국민이 되기 위해 북의 경험을 잊고 부정하며 그 속에 놓아진 가족마

저도 부정해야만 했던 고통을 간과하고 있다. 가족 이산의 상태를 밖으로 드러내지 조차

못하는 이산가족도 존재한다. 월북인과 전쟁 후 시기, 그리고 자의적이라 판단되는 이산가

족의 경우이다. 빨갱이란 붉은 딱지는 불고지죄, 반공법,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수많은

가족을 해체시켰다. 해외 한인들은 어떠한가. 일제 식민지를 피해 떠난 이들은 분단된 조

국의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이산을 굴절시키게 되었다. 남쪽에서

태어서 일본을 거쳐 북쪽을 조국으로 삼거나, 북쪽에서 태어나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남쪽

을 조국으로 선택하여 내려오거나 하는 경우이다.

새로운 분단가족,

탈북자

북한을 연구하고 있는 필자에게 북한이탈주민 흔히 탈북자라 호칭되는 이들의 삶은 더더

욱 가족해체의 관점에서 분단을 고찰하게 한다. 2012년 6월 북한으로 재입국했다고 국내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박정숙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6년 3월 탈북한 박씨는

한국전쟁 때 월남한 아버지와 오빠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남측의 시각에서 보면 박씨의

아버지와 친오빠는 월남인이고, 박씨는 월남인 가족의 구성원이다.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생부에 대한 그리움과 오빠를 믿고 남측으로 탈북을 감행했지만 분단 60년의 세월이 이들

가족을 재형성시키지는 못했다. 생부는 끝내 돌아가셨고 미국의 오빠는 삶의 터전을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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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은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 박사로 북한 경제의 시장화 과정을 ‘계획과 시장’의 관계로 해석한 논문으로 학위

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로 북한 도시사 연구(함흥시, 평성시)를 진행하고 있다.

했다. 박씨는 월남인의 가족이 아니라, 그저 탈북자일 뿐이었다. 탈북자로서의 박씨의 남

한살이는 편편치 않았다. 고단한 노동과 불편한 이방인 취급, 차별적 처우 등등. 무엇보다

북측에 남겨두고 온 가족의 고초 어린 소식은 자신의 선택을 되돌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금 북으로 돌아간 것이다. 박씨의 행보는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모든 형태가 고스

란히 녹아있다. 부모님은 월남인이며, 친오빠는 분단을 모체로 하는 해외 한인이다. 자신

은 탈북자이며 동시에 분단 후 이산가족의 실재이며, 다시 북으로 돌아간 박씨는 재입북자

이다. 만약 박씨의 입북이 타의라면 그는 납북자이다.

한반도 평화와

가족이산의 재복원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 세계화에 적응하며 경제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삶의 현실

에서 분단과 이산가족 이야기는 케케묵은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되기 일쑤이지만, 오늘날

에도 가족 이산과 가족 해체는 형태를 달리하면서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뿌리는 결국

분단에 닿아있다. 흔히들 분단을 이데올로기 대립의 결과로 간주하지만, 가족 이산을 통

해 본 분단은 생존의 결과였고 가족희생을 전제로 구축된 정치적 도구일 뿐이다. 정치가

들에게 분단은 유용한 정치적 책략으로 간주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땅에 터전을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 그 결과를 안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였

는지 우리는 충분히 돌아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가족 이산의 존재와 이산가족의 실재적

현상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잊어야 할 과거로 강요당했고, 때론 활용되어야 할 정책으로

왜곡되어 왔다. 그리고 분단된 양쪽 땅의 사람들은 장벽에 갇혀 가족 이산의 고통 속에 분

단국가의 순결한 국민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족 공동체는 국가와 개인의 영

역을 넘나들며 때론 가족의 이름으로 국가에 순응하고, 때론 원자화된 가족 해체의 형태

로 침묵했다. 이 모두 가족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산가족들

은 깊은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트라우마로 지니게 되었다. 이들의 고통과 상처는 어떻게

치유 가능한 것일까.

이산가족 이들에게 한반도 평화란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의 삶과 가족의 울타리

가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보편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평화를 우리 왜 만들지 못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로 대물림을 하고 있는 가족 이산과 가

족의 해체를 보다 깊이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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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2030통일론

통일 대박, If를 기대하기보다는 How를 생각하자한 솔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는 위기 뒤에

찬스가 따르기 마련이고, 끝날 때까지 끝

난 게 아니다. 오죽하면 ‘야구는 9회말 2

아웃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야구는

한 사람만 잘한다고 해서 이길 수 없는,

협력의 스포츠다. 또한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이길 수도 있지만, 9회말 2아웃에 날

리는 역점홈런도 있다. 나는 이렇게 짜릿

한 야구가 정말 좋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

와 내가 꿈꾸는 통일도 닮은 점이 많다.

가장 큰 공통점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

하다는 것이다. 이는 학문의 폭이 깊고 끝

이 없는 북한학을 공부하며, 고민하고 생

각한 결과 얻게 된 깨달음이다.

통일, 금강산에서 느끼고

북한학과에서 꿈꾸다

나는 북한학과 학생이다.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주최한 평화캠프에

참가해 금강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해금

강호텔에서 객실 열쇠를 잃어버리고 복도

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는데, 북한 청소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열쇠를 찾게 되었

다. 북한 사람은 말투도 이상하고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우린 한민족이고 통일은 꼭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금강산의 기억이

나를 북한학과로 이끌었다. 학창시절 통일교육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기에, 전공수업은 흥미로움과 동시에 어려웠다. 북한

학과라고 소개하면 ‘북한말을 해보라’거나 ‘그러다 북한에 가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올 땐 속상하기도 했다. 전공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고 있던 1학년 말, 학교로부터 정치외교학과로

의 통폐합을 통보받았다. 북한학과 학생회로 활동하던 나는 선

배·동기들과 학교 측에 통폐합 반대 의견을 피력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떻게 ‘전공을 살릴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북

한이탈주민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이 수업을

들으며, 통일 한반도를 함께 살아갈 북한이탈주민과 북한주

민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새터민 아동 멘토링 봉사활동’을 시

작했다. 북한이탈주민과는 강연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기 때문

에, 처음 몇 번의 수업에서는 혹시나 말실수에 아이들이 상처

받을까봐 매우 조심스러웠다. 당연히 이런 나의 행동에 아이

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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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아닌 친한 언니·누나로 다가가

야겠다고 생각했다. 딱딱하게 수업을 진

행하기보다는 남학생에게는 운동 이야기

를 하며 다가갔고, 여학생에게는 피아노

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한 달이 지난 후 아이들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고, 색찰흙으로 만든 리본 머리

핀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느

낀 경험이었다.

내 꿈은 북한전문기자이고, 그래서 디지

털미디어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다. 북

한전문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사람들에

게 북한과 관련된 정확한 보도를 하고 싶

고, 북한 주민들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싶

은 두 가지 마음에서다. 나는 현재 6기 통

일부 대학생기자단으로 활동 중이다. 주

로 북한과 관련된 스포츠나 문화, 음식 등

친근하고 흥미로운 소재들로 기사를 작

성하는데, 얼마 전 소치올림픽 때는 ‘북한

의 동계올림픽’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

다. 나는 통일문제에 무관심하던 주위 친

구들이 내 기사를 읽고 재미있다며 관심

을 표할 때 뿌듯하다. 통일부 대학생기자

단의 기사는 ‘통일 미래의 꿈’이라는 블로

그에 게재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기

사를 읽고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

하고, 함께 통일을 꿈꾸길 바란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는 말이 있지 않은가.

꿈은 준비된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

는 말이 국내외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나

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통

일을 어떻게 대박으로 이끌 것인가’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 통

일을 어떻게 대박으로 이끌 것인가? 야구 속에 힌트가 있다. 우

선 야구는 사람 중심이며, 팀원이 협력해서 치르는 경기다. 이

를 남북관계로 보면 일단 남북이 만나서 대화를 통해 교류·

협력해야 한다. 국내로 좁혀보면 정부와 민간, 그리고 국민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야 하며, 특히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통일로 나아가는 길은 험

난하다. 다 갖춰진다고 해도, 야구에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

듯이 한반도를 둘러싼 각종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통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야구가 별다른 개입 없이 오직 두 팀

이 자웅을 겨루듯이, 무엇보다도 주변국들의 관여 없이 한반

도의 주인인 남과 북이 주축이 되어서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야구에서 타석에

선 선수는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둘러 안타를 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극적인 공격으로 볼넷을 골라 출루하기도 한다. 또

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팀원의 진루를 위해 희생번트를

대기도 한다. 타자가 선구안으로 투수의 공을 골라내듯이 상

대의 행동과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적극적이

면서도, 때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처럼, 남북은 비방을 중단하고 정정당당하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관계에 임해야 한다. 한반도는 분단된 지

어언 60여 년이 지났다. 분단된 시간만큼이나 남북의 각 부분

의 간극은 크다.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차곡차

곡 점수를 쌓을 것인가, 9회말 2아웃 역전홈런처럼 실낱같은

가능성만 기대하며 손 놓고 있을 것인가? 통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

화 부분의 간극 해소뿐 아니라 보건의료·인구·교통 등 준

비해야 할 부분은 매우 많다. 급격한 변화는 혼란을 초래한

다. 따라서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승리를 이루듯이, 점진적이

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준비해야 한다. 야구는 홈에

서 출발한 선수가 베이스를 밟고 다시 홈으로 돌아와야 점수

가 난다. 남북이 떨어져 있던 시간은 60년이 넘었지만, 함께

였던 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과 북이

홈에서 떠나 각자 그라운드로 나가 있지만, 곧 다시 돌아와 홈

에서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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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북한은 지난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는 최고주권기관으로 헌법 개정과 일반 법률의 제·개정을 비롯한 입법권을 행사

하는 비상설 헌법기관이다.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기간에는 최고인민회

의 상임위원회가 그 임무와 권한을 대신한다.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하는 대의원은

5년 임기이며 인구 3만 명 단위로 설치된 687개 선거구에서 17세 이상 유권자의 과

반수 찬성으로 선출된다. 대의원 후보는 유권자들이 추천하거나 정당·사회단체

가 공동 또는 단독으로 추천하며, 한 개 선거구당 대의원 후보자 수의 제한은 없으

나 대개 단독 출마를 원칙으로 한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는 장성택 숙청 이후 처음 개최되는 회의이자

지금 북한은 |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 분석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김정은,과거와 미래사이의딜레마에 빠지다

Page 49: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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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공식 개막 이후 첫 구성된 최고인민회의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집중

시켰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북한이 안정보다는 변화를 선택할 것으로 예

상하였다. 주로 핵심적인 노령 엘리트의 퇴장과 국가권력체계의 개편 가능성을 점쳤

다. 16년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을 맡아온 김영남(89세)과 내각 총리 박봉주(75

세)가 교체대상으로 거론되었다. 또한 1998년 헌법 개정 이후 사실상의 최고 국가통치

기구로 군림해온 국방위원회 체계의 개편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빗나

갔다. 북한은 기존의 노·장·청 엘리트 배합 구조를 유지하고 국방위원회 체계를 존

치시킴으로써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하였다. 왜 이와 같은 예측의 오류가 발생하였

을까? 비록 사후적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통해서 북한정치를 관찰하는 원칙과

패턴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변화보다 안정성 추구

첫째, 북한은 혁명전통을 무엇보다 중시해왔다. 혁명전통을 통해서 정권과 체제의 정

당성을 확보해온 것이다. 혁명전통은 사상적 전통과 역사적 전통으로 구분할 수 있으

며, 역사적 전통은 혁명역사의 고수와 더불어 ‘혁명선배에 대한 존대’를 통해 계승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의 계승은 ‘만경대 가문’ ‘백두 혈통’과 함께 노·장·청 엘리트

배합 구조로 발현되었다. 그러므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비록 노령이더

라도 심각한 와병상태가 아니라면 혁명 2세대를 대표하는 김영남의 존속을 통해 혁명

전통의 계승성을 담보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북한은 이용

무(89세)·오극렬(83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같은 노령 엘리트들을 유임시켰다. 그

리고 최룡해 총정치국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조춘룡 제2경제

위원회 위원장(추정) 등 장령 엘리트들을 새롭게 국방위원에 임명하였다. 아울러 53%

의 대의원을 신진 엘리트들로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북한은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일컬어지는 신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시범운영

중이다. 박봉주 내각 총리는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주도했으나 인민생활 향

상보다는 정권의 안정과 개인의 기득권을 우선시한 당 세력의 반격으로 좌절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작년 4월 내각 총리직에 복귀하여 신경제관리개선조치를 현재 주도

하고 있다. 일종의 ‘신경제관리개선조치 = 박봉주’라는 등식관계가 암암리에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신경제관리개선조치의 좌절이나 실패로 규정할 만한 징

후들이 포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박봉주의 실각은 성급한 예상이었다. 특히, 신경제관

리개선조치는 작년 3월 31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핵·경

제 병진노선을 수행하기 위한 과제들 중의 하나로 제시되었다. 이 점에서 내각 차원의

조치였던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는 정치적 위상과 정책적 구속력에서 큰 차이가 있

다. 부득불 ‘신경제관리개선조치 = 김정은’이라는 도식관계도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박봉주의 실각은 신경제관리개선조치의 실패, 신경제관리개선조치의 실패는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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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정은의 실패로 귀착될 수 있는 조건에서 김정은이 자충수를 둘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은 아직도 김정은의 인격적 리더십 확립 작업에 한창이다. 그리고 이 작업

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혈통 계승의 정당성에 중점을 두고 진행 중

이다. 즉, ‘백두혈통’의 계승과 김정은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연

계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북한은 올해 김정일 출생 기념일(2·16) 행사와 김일성 출

생 기념일(4·15) 행사를 계기로 ‘백두 혈통’을 최대의 화두로 삼았다. 또한 북한은 김일

성·김정일주의를 지도사상으로 공식화한 가운데 각종 선전매체를 통해 김일성·김

정일주의 일색화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맞는, 또는 북한이 선호하는 표

현인 ‘변화된 정세와 조건’에 맞는 통치이데올로기가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렇게 볼 때, 북한지도부는 김정은 유일영도체계 확립 과정에서 아직까지는 경로의존적

접근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이런 가운데 국방위원회 중

심의 국가권력체계의 개편은 시기상조이다. 국가권력체계 개편을 예상한 입장은 다름

아니라 1998년 김정일 시대의 공식 출범과 더불어 헌법 개정을 단행, 기존의 중앙인민

위원회와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위원회와 국방위원장 체계를 수립한 점을 예상 근거

로 들고 있다. 물론 새로운 지도자의 시대가 개막한 것은 동일하지만, 김정일과 김정은

의 정치 역정은 큰 차이가 있다. 김정일은 1974년 이후 20여 년간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해온 리더십과 경험을 바탕으로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정당성을 지녔지만 김정은은

오히려 정당성의 경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 4월 9일 개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

의 결과를 놓고 다양한 분

석과 전망이 제기되었다.

대체적으로 권력기관 인사

가 소폭에 그치면서 예상과

달리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

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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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단속과 다양성 외교 동시에 추구할 것

그러면 이번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와 관련한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자. 첫

째, 북한은 리수용을 외무상에 임명하였다. 리수용은 오랫동안 스위스 대사를 역임, 오

랜 서방생활을 경험하였으며 합영투자위원장으로서 외자유치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

였다. 이러한 리수용의 경력으로 유추해볼 때, 앞으로 북한은 EU를 비롯한 서방국가

를 대상으로 한 외자유치 외교노선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외교노선

은 중국일변도 외교노선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분산시키는 차원에서 일종의 헤

징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외교관계의 중요성을 고

려, 최고인민회의 하루 전에 열린 당 정치국회의에서 북한 외교의 대표격인 강석주 부

총리를 당 국제부장에 기용함으로써 대중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 장성택 계로 알려진 권력 엘리트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하

는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문경덕 당 비서 겸 평양시 당 책임비서가 이번 최고인민회

의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만일 문경덕이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면 대

의원 명단에서 누락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또한 리영수 당 근로단체부장과 리병삼 인

민내무군 정치국장도 대의원에서 제외되고 해임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김정은의 고모이자 후견그룹의 주축이었던 김경희 비서의 거취도 주목할 만하

다. 김경희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나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높

다. 최근 북한이 기록영화에서 김경희를 삭제 조치한 것은 김경희의 실각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이며, 그녀의 실각이 건강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아울러 김경희의 실각은 장성택 숙청과정에서 그녀의 주도설과 방관설에 오류가 있었

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김정은은 현재 정당성의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과거 구속적

정당성과 미래 지향적 정당성 사이에서 진퇴양난인 셈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버리

거나 과거를 위해 미래를 무시하면 정당성에 문제가 생기는 구조이다. 역사는 과거를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배워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미래를 지향하는 지도자에게 성

공의 축배를 선사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김정은은 현재 정당성의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과거 구속적 정당성과 미래 지향적 정당성 사이에서 진퇴양난인 셈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버리거나 과거를 위해 미래를 무시하면 정당성에 문제가 생기는 구조이다.

이기동은 건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

위원을 거쳐 현재는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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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동족상잔의 비극

내년이면 ‘분단 70년’, 평화적 관리가 중요

북한군만 남은 ‘적군 묘지’를 돌아보며

글·사진 이경형 『민족화해』 편집인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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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이 20도를 오르내린다. 4월 하순 치고는 더운 편이다. 바람이 휙 불자

묘역에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봄 가뭄 탓도 있지만, 잔디를 심은 데 보다 흙으로

드러난 데가 더 많아 보였다. 평지에 기단으로 화강암 판석을 깔고, 그 위에 가로

30cm, 세로 20cm, 높이 15cm의 똑같은 크기의 흰 화강암 푯돌이가 대오를 맞춘

군대 행렬처럼 놓여 있다. 한 표석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왼쪽 위엔 일련번호를

나타내는 ‘북한군 535’, 오른쪽 위엔 매장 날짜를 표시한 ‘2008. 4. 17.’이 적혀 있

다. 중앙엔 큰 글씨로 ‘무명인’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엔 작은 글씨로 발굴 장소

인 ‘경기 파주시 박달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북한군 유해 769구가 묻혀 있고,

중국군 437구는 본국 송환돼

“적군 묘지에는 이제 북한군만 남아 있습

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00부대 관계자는 휴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에

묻혀 있던 6·25전쟁 당시 사망한 중국군

유해 437구는 지난 3월 28일 중국 측에

인도되었다. 중국군의 표석은 아직 정리

가 되지 않아 그대로 남아있으나 유해는

모두 떠난 것이다. 적군 묘지는 이제 더

이상 ‘북한군/중국군 묘지’가 아니라 ‘북한

군 묘지’로 개명될 수밖에 없다.

적군 묘지는 1996년 6월 DMZ 남방한계

선에서 불과 5km 떨어진 경기도 파주

시 적성면 답곡리 산 55 일대 6,099㎡(약

1,800평)에 조성되었다. 한강변 자유로의

북쪽 끝자락과 연결되는 당동IC를 빠져나

오면, 동서로 흐르는 임진강과 평행선을

이루는 국도 37번을 만난다. 20여 km를

더 달리면 답곡교차로가 나온다. 교차로

에 도착하기 직전 오른쪽으로 빠져 내려

가 자장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토끼굴

다리를 지나 U턴 식으로 다시 37번 국도

의 반대 차선을 타고 500여 m더 간다. 길옆 오른쪽에 ‘북한

군/중국군 묘지’라고 적힌 안내 입간판이 나온다.

제네바 협정 추가 의정서 34조는 “교전 중 사망한 적군 유해

를 존중하고 묘지도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제네바 협정과 인도적인 차원에서 6·25 당시 격전지

를 중심으로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하여, 전국에 산재한 중국군

과 북한군 유해 1,200여 구를 이곳에 안장해 왔다. 북한군 유

해 표지석의 일련번호 1번은 ‘소위 곽재천’이다. 그는 한국전

쟁 당시 어느 지역에서 전사했는지 분명하지 않아 ‘6·25 불

상 전투’로 새겨져 있고, 1996년 6월 12일에 이곳에 안장되었

다. 2014년 4월 22일 현재 마지막 일련번호는 1,175이나, 북한

군과 중국군의 유해를 구분하지 않고 발굴 순서대로 일련 번

호를 부여한 것이라고 한다. 매장일이 작년 12월 20일로 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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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진 표석은 4개인데, 마지막 표석 일련번호는 1164 - 1175로 ‘북

한군 12구’라고 새겨져 있다. 12명의 유해가 한꺼번에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망자들의 표석 앞면은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

다. 고향이 북녘 땅인 망자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남쪽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적군 묘지는 제1묘역과 제2묘역으로 나눠져 있다. 제1묘역, 제

2묘역 사이에는 1천 평이 넘는 민간인의 밭이 파종을 기다리

고 있고, 언덕바지에는 흰 조팝꽃무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

다. 그 아래로 검은 색과 파란 색의 햇빛 가리개 그물망을 친

인삼밭이 연이어 있다. 파주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야산

끝자락에 인삼밭이 이어져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제1묘역 조성 당시인 1996년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로 북핵문

제가 국제적으로 부각되고 판문점 남북회담에서 북측 대표가

‘서울 불바다’라는 발언을 해서 남북이 긴장상태에 있는 등 한

반도 주변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이었다. ‘국방백서’에도 북한

을 ‘주적(主敵)’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응당 ‘적

군 묘지’라고 불렀다. 그 후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0년에

제2묘역을 만들면서 ‘적군 묘지’를 ‘북한군, 중국군 묘지’로 이

름을 바꿨다. 지금 묘지 입구에 서 있는 안내 간판에도 ‘북한

군/중국군 묘지 안내도’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파주 지역에

서는 이곳을 통상 ‘적군 묘지’라고 부른다.

제1묘역은 북한군의 묘지인데, 여기에는 1968년 1·21사태

때,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김신조와 함께 내려왔다가 사살된

무장공비 ‘소위 김달신’ 등 30명과 1987년 김현희와 함께 대한

항공 858기를 폭파하고 자살한 김승일, 1998년 남해안 반잠수

정 침투사건 때 사망한 공작원 6명의 유

해도 묻혀 있다. 제2묘역은 북한군과 중

국군이 함께 매장되어 있었으나, 중국군

묘역은 작년 12월 개토되어 60년 동안 묻

혀 있던 한국 땅을 떠나게 되었다. 북한

군 유해는 북한의 거부로 인계되지 못하

고 있다. 북한군 유해는 6·25뿐만 아니

라, 북한이 남파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

고 있는 냉전시대의 무장공비들의 유해도

있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1981년부터 1989년

까지 판문점을 통해 중국군 유해 42구를

인수해 중국 측에 인계했으나, 1997년 1

구 송환을 마지막으로 북한을 거쳐 가는

중국군 유해 송환을 거부해 왔다.

적군 묘지는 동북아 정세의 축소판

북한군 유해만 묻힌 적군 묘지는 이곳을

찾는 이에게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를 일깨워준다. 중국군 유해는 중국으로

송환된 반면, 북한군 유해는 아직도 기약

없이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 바로 한중관

계,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한

국과 중국은 새로운 ‘전략적 협력 동반자’

로 거듭나고 있는 반면, 남북한 관계는 박

근혜 대통령정부에 들어와서도 좀처럼 풀

리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과거사 인

식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의 대척점에 서

있다.

박 대통령은 작년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군 유해 송환을 제안했다. 그 후

양국이 수차례 실무협의를 거쳐 송환에

이르게 되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

의 기간 중 박 대통령과 회담을 하면서 “

Page 55: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53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중국 외교부 대변인 표현) 각별한

감사를 표시했다. 한국은 중국군 유해 송환, 중국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 시안 독립군 기념 표지석 설치 등의 합의

를 실행에 옮기면서 양국 간 소프트 외교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론’이라

고 싸잡아 비난해왔고, 최근 4차 핵실험으로 위협하면서 대

남기구인 조선평화통일위원회의 명의로 박 대통령에게 “평

화통일을 바라는가, 전쟁을 바라는가를 대답해야 한다”는 내

용으로 공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봉분 모두 없애고, 화강암 표석으로 리모델링

제2묘역에는 강원도 인제, 횡성, 영남의 낙동강 전투를 비롯,

경북 칠곡 다부동, 경남 마산, 함안, 진동 등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에서 전사한 유해가 많았다. 이런 지역에서는 백병전

을 벌여서인지 국군과 함께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들이 한꺼

번에 발견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 무더기로 발굴된

유해는 분리하기 쉽지 않아 수십 구씩 합장을 한 묘지도 여러

곳이 있다.

이곳에 묻힌 수많은 ‘북한군 무명인’들도 결국은 이데올로기

의 노예일 뿐이다. 전란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민초들이야 이

데올로기의 실체를 알기라도 했을까 싶다. 오직 상대방을 죽

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전쟁의 법칙’에 따라 거의 무의

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같은 핏줄을

나눈 형제끼리 죽고 죽이는 참혹한 아비규환이 6·25 참화가

아니었던가.

‘북한군 무명인’ 표석들 앞에 드문드문 핀 키 작은 보라색 제비

꽃과 노란색 양지꽃, 연보라의 꿀풀이 바람에 가늘게 떨고 있

다. 마치 ‘무명인’들의 원혼이 들꽃으로 환생하여 망자끼리 서

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듯하다.

국방부는 2012년 8월부터 4개월여 동안 기존의 봉분을 모두

없애고 평분으로 만드는 묘역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과거 봉

분 자리에 화강암 표석을 놓았고, 보안등을 새로 설치했으며,

폭 5~6m의 진입로를 시멘트로 다시 포장했다. 잔디를 심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했고, 군데

군데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공사를 하기 두 달 전인 재작년 6월, 취

재 차 이곳을 둘러본 때와는 묘역의 모습

이 매우 다르게 보였다. 당시에는 높이

30cm, 지름 60cm의 야트막한 봉분으로

되어 있었다. 봉분마다 흰 페인트칠을 한

높이가 1m 남짓한 비목이 있었다. 비목

앞면에는 ‘무명인’이라고, 옆면에는 ‘낙동

강 전투’라고 쓰여 있었다. 일반 봉분에 비

하면 그야말로 ‘애기 봉분’ 같은 모양이어

서 죽어서도 고향에 못 가는 ‘적군 병사’의

처연한 원혼을 만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평장하여 덩그러니 표석만 있으

니, 묘지 같은 느낌은 덜했다. 이렇게 리

모델링한 것은 아마도 봉분 벌초문제와

폭우로 인한 봉분 붕괴, 썩어 부러지기 쉬

운 비목 등 묘역관리가 어려운 점을 고려

했을 듯싶다.

남북 공동 유해발굴단을 구성해야

동족상잔의 참화를 겪은 지도 벌써 60년

을 훌쩍 넘어섰다. 내년이면 한반도 분단

70년이 된다. 남쪽에서는 ‘통일 대박’의 무

지개가 북녘 하늘에 걸려있다고 하는데,

막상 북쪽은 핵과 미사일로 남쪽을 위협

하고 있다. 통일 대박으로 가기 전에 우선

분단의 평화적 관리가 중요하다. 북한군

유해만 남은 ‘적군 묘지’를 돌아보며, 하

루 빨리 이곳의 북한군 유해들도 북쪽으

로 돌아가기를 기원해본다. 아울러 북한

에 생존하고 있는 국군포로의 송환과 함

께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조사단을 구

성해 북녘 땅 어느 곳엔가 묻혀 있을 국군

유해도 찾아내 남쪽 고향 땅에 안장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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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특별연재 | 건축가의 눈으로 본 평양과 서울 그리고 통일 하

사회주의 도시 평양이 주는 세 가지 교훈임동우 건축가, 설계사무소 PRAUD 소장

요즘은 어딜 가나 복지가 화두인 듯하다. 보수와 진보, 좌우를 막론하고 복지

정책을 공약으로 들고 나온다. 어떠한 복지정책이 현실적이고 어떠한 복지패

러다임이 추구되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은 지속되겠지만, 우리 사회에 ‘복지가

확대 되어야 한다’는 큰 밑그림에는 다수가 공감하는 듯하며, 이는 그만큼 우

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의미도 된다. 그동안 성장에만 집중을 하였다고 하면

이제는 어떤 방식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즉 우리 사

회에 ‘사회주의의 개념’이 점차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도 사회주의 도시의 요소들을 적절히 담

아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도시 역시 그동안 성장만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서울은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간 전 세계 어떠한 도시

도 이루지 못한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북한은 1950년대 평양 마스터플랜

수립 당시부터 상징광장을 도시 구

성의 주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비록

주체사상의 선전, 우상화 작업으로

인한 광장의 성격에 변수가 있어왔

지만, 상징광장의 구성은 사회주의

도시개념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

다. 이에 반해 우리는 비교적 최근

에야 광장의 개념에 주목하기 시작

했다. 사진은 서울광장의 모습.

Page 57: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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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시에 마치 우리 사회에 복지패러다임이 확

대되듯 사회주의 도시의 요소가 수용될 수 있을 것

인가. 우선 그 질문에 앞서 과연 우리의 도시가 받아

들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회주의 도시 요소는 무

엇이 있을까.

한때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로 평가받았던 평양 역

시 완벽한 사회주의 도시를 이룰 수는 없었다. 도시

라는 것이 워낙 오랜 시간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

지라 어떠한 도시이론이 있다고 해서 한 도시가 그

이론을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

깝다. 하지만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평양이 추구

하고자 하였던 사회주의 도시개념은 분명히 있다.

즉 도시 내 농업생산시설구성, 마이크로 디스트릭

트, 상징광장의 구성 등은 우리가 한 번쯤은 다시 생

각해볼 만한 개념들이다. 우선 도시 내 농업생산시

설은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와 구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재의 평양에도 비교적 잘 실현되어

있다. 두 번째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북한에서의 주

택소구역계획)의 특징은 작업장 등 작은 소비재의

생산시설을 주거의 영역과 함께 둔다는 점이다. 마

지막으로 상징광장 구성의 경우 주체사상의 선전과

우상화 작업으로 인한 광장의 성격에 변수가 존재하

지만 대체적으로 평양에서는 1950년대의 마스터플

랜 수립 당시부터 상징광장은 도시를 구성하는 주요

한 원칙으로 존재하였다.

도농공존, 지역 공동체 그리고 대중광장

이들 요소는 고도의 성장을 해온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들이다. 이들 요소가

단지 우리의 도시에 없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할

이유도 없고, 또 무작정 도입을 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 중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특징은 현대의 도시에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봄직한 중요한 요소들이다. 첫

째로 도시 내 농업생산이라고 하는 개념은 요즘 서

방의 도시들에서도 도시농업(Urban Farming)이라

는 개념으로 다시금 재조명 받고 있는 개념이다. 근

대적인 개념에서 도시화라고 하는 것은 농촌을 잠식

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성장세가 둔화된 서

방의 도시들에서는 자생적인 도시에 대한 논의가 활

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자생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도시농업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는

밀도가 높은 도시 내에서 건물의 옥상이나 작은 버

려진 공간 등을 활용하여 작은 규모의 농작물을 재

배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에서도 텃밭 가꾸기 등

도시 내에서 농업생산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자 하

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 도시 혹은 평양에서 농업생산영역을 도시

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통한 도시농업개념의

실천은 조금은 단조롭고 제한적으로 보인다. 현대

의 도시에서는 단순히 농지가 행정구역상 함께 도

시로 묶이는 것만으로는 자생적인 도시모델을 만들

수 없다. 도시에서의 농업은 환경과 생산성을 극복

할 수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농업생산모델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주의 도시에서 이야기하는 도시와 농촌의 융합이 중

요한 이유는 이 개념 안에서 우리가 흔히 구분 짓곤

했던 도시인과 농촌인이 함께 공존하면서 살 수 있

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앞으로의 도시에서

는 취미로 자신의 텃밭을 가꾸는 도시인을 넘어 전

문농업인이 새로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 이후 줄곧 경쟁관계 혹은 수탈, 피수탈자의 갈

등관계에 있었던 도시와 농촌이 하나로 융합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좀 더 친환경적이고 자생적인 도시구조를 갖춤으로

써 도시가 더욱 다양한 계층과 문화를 수용할 수 있

게 됨을 의미한다.

둘째로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의 특징은 작은 규모의

소비재 생산시설을 주거영역과 함께 두는 것인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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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는 방금 위에서 살펴본 농업생산시설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예가 바로 된장공장이다. 북한

에서는 한 주거단위 구역에서 생산된 된장은 그 구

역에만 배급되고 다른 구역은 다른 된장공장에서 공

급을 한다. 이 부분 역시 최근 들어 흔히 윤리적 소비

(Ethical Consumption) 혹은 로컬소비(Local Con-

sumption)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운동과 연관 지

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로컬소비라는 것은 그 지역에

서 생산되는 것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고 하는 운

동이다. 이는 크게는 시장자유화 및 기업화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생

산자와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공동체

를 살리고자 하는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

리는 지금껏 도시 혹은 주거영역에서 어떻게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에만 집중을 하고 어떻게 누가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만약 우리가 도시공간의 평등화를 이루기 위하여 계

획된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같은 개념을 생각한다고

하면 윤리적 소비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의 고

리로 연결됨으로써 얻게 되는 사회적 가치를 더욱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상황에서는, 생산자와 소비

자는 각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생산, 소비한

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하나의 도시공간 단위에

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이들은 그 단위 즉 커뮤니

티를 위한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아가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위에서 살펴본 도시농업과도 비슷

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존의 도시구성방식에

서는 생산지역이 아무래도 소비지역의 주거지역 보

다 덜 발달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생산지역 인근

의 주거환경은 그다지 좋기가 힘들었으며 이러한 부

분이 도시공간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

만 우리가 소비지역과 생산지역의 분배만 잘 이루어

도 어느 정도의 공간의 평등은 이루어 낼 수 있을 것

이다. 생각해보라. 대기업 맥주공장에서 생산된 맥

주를 편의점에서 소비하는 생활과 자신이 살고 있

는 지역의 소규모 양조장(micro brewery)에서 생산

된 맥주를 그 자리에서 마시는 생활은 분명 다른 도

시생활의 모습이고 후자의 도시는 맥주생산자를 도

시로 끌어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다양한 문화를

생산해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 것이다.

다양한 계층, 문화 아우를 수 있는 광장의 문화 만들자

마지막으로 도시 내 공공공간의 확보에 관한 시각

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평양 내 상징광장 등은 북한

의 주체사상과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우상화작업

과 구분되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이

야기하는 광장의 성격과는 상이하다. 하지만 사회주

의 도시에서의 상징광장은 우상화의 공간이기 이전

에 도시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물리

적인 장치였으며 이는 평양의 마스터플랜이나 이후

일부 실현된 광장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다. 특히 김일성의 교시에서 나타나듯 광장은 인민

들의 휴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고,

그 주변은 문화시설 등의 공공시설이 들어섰어야 하

는 것이었다. 광장에 대한 인식과 필요성은 한국사

회에서도 많이 자리 잡은 듯하다. 전통적으로 광장

문화 대신 마당문화가 있었던 한국에서 다양한 공공

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광장이 형성되고 있다

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의

필자가 뉴욕에 제안한 도시농업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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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광장은 중심성을 강하게 띤 관공의 공간으

로 구성되어 있다. 광장이 어떤 이벤트를 보기 위해

서 찾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 조그마한

규모로 산재해 있어 일상에서 쉽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될 필요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한국

의 도시 특히 서울은 이제는 한두 개의 대규모 광장

으로 도시의 광장수요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도시가 되어 버렸다.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등의 규

모 있는 광장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일상은 광장과 동떨어져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월

드컵을 위한 광장도 필요하지만, 오가다 동네주민

과 마주치고 잠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예전 우리네

시골마을의 동네 어귀 같은 소규모 광장공간이 도시

곳곳에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 한국의 도시는 성숙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도시의 성장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농촌의

인구가 유입이 되면서, 양적인 성장을 하기 마련인

데 이제는 한국의 도시와 농촌의 비율이 어느 정도

안정화에 접어든 것이다. 특히 이미 국제적인 규모

와 수준을 갖춘 서울은 더 이상 양적팽창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서울은 인구감소 추세가

나타나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성숙한 도시를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

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가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이

루어 나아가는 과정에 있듯이 앞으로 서울을 비롯

한 우리나라의 도시 역시 그 균형을 이루어 나아가

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노력은 자본주의 도시들보다는 사회주의 도

시가 더 관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주의 도시에

서는 도시공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

히 인식하고 있었던 반면,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아

무래도 모든 공간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이 되다 보

니 개발의 논리가 공공의 논리에 앞서는 경우가 많

았다. 하지만 성장이 아니라 성숙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효율성과 경제성이 아닌 시민을 위한 공간

과 도시조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

시 내 농업으로 도시민과 농업인이 함께 융화되어

살 수 있는 환경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또 소비

자와 생산자의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고 그 가

운데 ‘커뮤니티를 형성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시

구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이

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공간의 사회적 역할은 잘 분

포된 광장 및 공공공간을 통해서도 확보될 것이다.

‘성장’이 아닌 ‘성숙’한 도시 공간을 위해

최근 여러 전문분야에서 통일을 화두로 많은 논의

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축과 도시분

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통일을 전제로 북한의 도시

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어떠한 건축이 보존가치

가 있고 어떠한 도시공간이 재생산될 수 있는지 많

은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이미 변

화하기 시작한 북한의 도시들은 새로운 시장경제의

도입이 점차 증가되어 이로 인한 새로운 물리적 변

화를 맞이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전문가

들의 역할 역시 기대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통일

이 하나의 급작스러운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로 융합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 도시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도시의

발달은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도시가 다양한 사회계층,

소득계층 및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

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의 사회가 다

양한 계층과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이나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지난 60여 년간 자본

주의 도시의 길을 걸어왔던 우리의 도시에 부분적인

사회주의 도시개념의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동우는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

교에서 도시설계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림건축, 미국의

Machado-Silvetti Associate, 일본 Maki & Asssoc., 네덜란드 West

8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 미국 보스턴에서 설계사무소 PARUD를 운

영하며, 건축설계 프로젝트와 여러 리서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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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통일디자인 | 북한의 주거실태와 협력방안

북한에서는 주거단위 또는 주택을 ‘살림집’이라 부른다. 주택의 규모, 구조는

입주자의 직장과 직위를 기준으로 1~4호, 특호 등 5개의 유형으로 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1호는 방 1~2개와 부엌이 딸린 집단 공영주택 혹은

방 2개에 부엌과 창고가 딸린 농촌 문화주택으로 말단 노동자 및 사무원, 그리고 협

동농장원에게 배정된다. 2호는 방 1~2개에 마루방과 부엌이 딸린 일반 아파트로 학

교 교원이나 일반 노동자에게 배정된다. 3호는 기업소 부장, 중앙기관 지도원, 도 단

위 부부장에게 배정되는데 방 2개에 부엌과 창고가 딸린 중급 단독주택이다. 4호는

중앙당 과장급, 내각 국장급, 대학교수, 기업소 지배인 등에 배정되는데 방 2개 이상

에 목욕탕, 수세식 변소, 냉·온방, 베란다 시설이 달린 아파트이다. 마지막으로 특

호는 독립식 다층 주택으로 정원, 수세식 변소, 냉·온방 시설이 갖춰진 고급주택으

로 중앙당 부부장 이상, 내각 부상 이상, 인민군 소장급 이상이 배정받는다.

살림집 공급부족 만성화 심각해

간부 및 엘리트 계층 등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북한주민의 주택보급률

은 일반적으로 50~6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택을 신청하고 ‘입사

증’을 받기까지 4~5년이 걸리며 최근에는 10년을 기다려도 주택을 배정받기 힘들다

고 한다. 따라서 하나의 주택에 여러 세대(가구)가 함께 동거하는 경우가 비교적 흔

한 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엔에 제출한 2008년 북한 인구센서스 보고서에 의하

북한주민의 주거생활, ‘국가’에서 ‘개인’으로정은미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Page 61: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59

면, 총 가구 수는 약 588,7만이며 주택에 살고 있는

가구 수 역시 약 588,7만으로 동일해 북한의 주택보

급률이 100%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 보고서에

의하면, 전체 가구 중 원거가구는 99%에 이르고, 동

거가구는 1%에 불과하다. 따라서 탈북자들을 통해

서 알려져 있는 북한의 주거생활 실태와 유엔에 보

고한 북한의 인구센서스 보고서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오랫동안 북한의 살림집 건설사업

은 심각한 침체기에 놓여있고, 당연히 살림집 공급

부족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당국이 2012

년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여러 가지 대규모 사업들

중 하나로 평양 10만호 건설이 포함될 만큼 살림집

부족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이미 여러 경로를 통

해 알려져 있는 것처럼 2008년부터 시작된 평양 10

만호 건설사업은 재원 및 건설자재 조달 문제로 인

해 일부지역의 살림집 ‘만수대지구의 초고층 아파트

건설’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살림집 유형은 크게 단독주택, 연립주택, 아

파트, 기타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

을 차지하는 것은 연립주택이다. 2008년 북한 인구

센서스 보고서에 의하면, 총 588만 가구 중에서 약

258만 가구가 연립주택에 거주하여 43.8%를 차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단독주

택으로 약 198만 가구가 거주하며 33.8%를 차지하

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는 약 126만 가구가 거주하며

21.4%를 차지하고 있다. 또 도시와 농촌의 주택유형

을 비교해보면, 도시의 경우는 연립주택(49.5%), 아

파트(32.5%), 단독주택(17.2%) 순서로 거주 가구 수

가 많으며, 농촌의 경우는 단독주택(59.4%), 연립주

택(35.1%), 아파트(4.2%) 순서로 나타났다. 특히 아

파트의 보급률이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가 극명하

게 나타났으며, 따라서 일반적인 현대사회와 마찬

가지로 북한에서도 아파트가 도시화의 상징적 주택

임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북한사회에서 시장화가 급속

히 확대되고 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사람들의 경우

아파트에 거주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는 점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2~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북한사회변동조사 분석 결과

에 의하면, 상층과 중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 연립주택 거주자는 줄어들고 아파트 거주자

는 늘어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반대로

하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연립주택이나 단

독주택에 살았다는 응답이 많았다.

개인 간 주택거래 활발히 진행 중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가보다는 민간 부문이

살림집의 공급과 수요를 주도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합법적이진 않지만 살림집이 사고 팔리는

경제적 교환 대상이 되었다. 기존에 국유 대상이었

던 살림집이 개인이 돈을 주고 사는 경우가 많아진

다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와 같이 소위 부동산시

장이 형성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부동산시장의

존재 유무는 북한사회의 사적 소유제의 부활 여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북한사회변동조사 결과

에 의하면, “국가에서 배정받았다”고 응답한 비율

은 2011년 28.6%에서 2012년 14.3%로 절반으로 감

소했다. 반면 “내가 돈을 주고 샀다”고 응답한 경우

는 2011년 46.0%에서 2012년 66.9%로 크게 증가했

다. 국가에서 배정받은 집에서 사는 사람보다 돈을

주고 산 집에서 사는 사람이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따라서 이 결과는 북한사회에서 이미 살림집이 개인

과 개인 사이에 사고파는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으

며, 주택시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작동하고 있

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것은 대다수의 북한주민들

에게 사적 소유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과 욕구가 있

음을 보여준다.

Page 62: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정은미는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민화협 정책위

원과 <민족화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사회의 살림집 문제는 양적 부족뿐만 아니라 질

적 측면에서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수

도, 화장실, 난방, 취사 등 살림집의 인프라 수준이

매우 낙후하거나 후진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력 부족은 주거생활 수준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

이기도 하다.

2008년 북한 인구센서스 보고서에 의하면, 집안에

개별 수도가 있는 비중은 85%에 달하나 실제로는 전

력부족으로 인해 하루에 2∼3시간 제한적으로 식수

가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화장실의 경우 수

세식 화장실 보급률은 59.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재래식 화장실 형태다. 평양시의 경우는 76.1%가 수

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으나, 농촌과 지방 도시의

경우에는 보급률이 떨어져 황해남도의 경우 55.1%

만이 수세식 화장실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수세식 화장실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전력부

족으로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수

세식 화장실의 이용률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난방 시설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동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의 난방 방식은 석탄(연탄)과

목탄 난방이 각각 47.1%와 45.1%로 주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취사 연료 역시 석탄이 46.1%, 나무땔감

이 46.9%를 차지한다. 이와 같은 난방 및 취사 연료

의 구조는 결과적으로 대기오염뿐만 아니라 산림훼

손과 홍수피해와 같은 자연재해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앞서 조사에서 “돈

이 많이 있다면 제일 먼저 살림집의 무엇을 바꾸고

싶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위생실, 난방, 수도시설과

같이 인프라 시설과 관련된 문항보다는 “살림집의

크기나 방의 수를 늘리고 싶었다”와 “가구, 벽지, 장

판 등 살림집 내부를 좋게 바꾸고 싶었다”의 문항 선

택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

다는 점이다. 집의 크기나 방의 수를 늘리고 싶어 하

는 수요에는 사적 영역의 확보라는 욕구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탈북자 심층면접을 해보면, 북한사회에

서 살림집의 크기와 인테리어는 자신의 부 또는 권

력을 과시하는 문화적 상징물이기도 하다. 북한주

민들이 집의 크기를 늘리거나 집안을 화려하게 꾸미

기를 희망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문화자본의 획득 욕구로서 ‘과시’하기 위한 생활양식

의 욕구가 있음을 시사한다.

비공식 가구 총수입과 살림집 개조 희망사항을 교

차 분석해본 결과, 가구의 월수입이 많을수록 집 크

기 혹은 방의 수를 늘리거나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

어 하는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이

처럼 북한주민의 주거생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시

장을 매개로 한 급격한 사회변동과 조응하며 빠르

게 변화하고 있다. 북한주민의 주거공간은 국가라

는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시나브로 옮겨

가고 있다.

평양의 수많은 아파트들(위)와 북한 농촌의 연립주택(아래)

Page 63: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1

통일디자인 | 북한의 주거실태와 협력방안

북한은 ‘주택의 국유화, 무상분배, 저임대료라는 사회주의적 주택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헌법과 토지법은 주택과 토지는 국가와 협동단체만이 소유권을 갖고

사적 소유를 금지하며, 국가 소유의 주택을 거래하거나 승인 없이 이용하는 것은 엄

격히 규제하고, 주택은 국가의 부담으로 건설하고 공급할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주택의 규모와 형태의 획일화, 집합(공동) 주택 위주의 건설, 주택생산의 공업화를

강조하고 있다.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집단화하고 밀집화하기 위하여 도시는 고층아파트,

농촌은 연립주택을 중심으로 건설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단기간에 주택을 대량

으로 건설하기 위해 설계의 표준화, 규격화, 건자재 생산의 공업화, 주택건설의 기계화 등

을 추진했다. 북한은 하절기에는 농업부문에 인력을 집중 배치하므로 주택건설은 주로 농

한기에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동절기는 길어 건설공사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인력문제

와 기후조건을 감안하여 콘크리트 양생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조립식 공법에 대한 의존

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낙후된 북한 주거환경, 건설 잠재력 충분

북한의 주택분배는 1세대 1주택 배정이 원칙이며, 주택에 대한 ‘이용권’을 부여하고 저렴

한 사용료를 납부토록 하고 있다. 가족 수, 출퇴근 거리, 직업 특성 등을 고려하여 주택

을 배분하고 이용허가증인 입사증 없이는 주택을 사용할 수 없다. 주택은 당성과 직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된다. 북한의 정책 결정은 대체적으로 경직적이며 중앙집권적이어

서 주택에 대한 개인의 선호가 반영될 여지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주택 건설은 전국가적인 동원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평양에서의 주택건설은 ‘속

도전청년돌격대’와 같은 조직과 군인 등이 동원되어 건설되고 있다. 도·시·군 지방기관

에 의한 주택건설은 지역 내 공장 기업소의 노동자들이 동원되는데, 노동자가 많은 공장

기업소는 자체적으로 주택을 지어 노동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주택건설에 관한

재원과 자재 부족으로 주민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

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지역별로 노동력과 자재를 자체 조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자

남북 경제 선순환 위해 북한 주택건설 방안 마련해야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Page 64: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2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력갱생은 숙련된 건설인력에 의한 전문화된 시공을

기대하기 어렵고, 건설자재를 지역 단위에서 자체적

으로 조달 또는 생산하기 때문에 중소도시와 농촌주

택의 질적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부터 주택의 사적 거래시장이 형성된 것으

로 알려지고 있다. 주택의 사적 거래는 ‘주택교환’

의 형식을 빌려 웃돈을 주거나, 1세대용 주택에 다

른 세대가 동거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주로 직

장과의 거리, 교통편리성 등의 문제 해결이 목적이

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경제난으로 중앙배급제도

가 마비되면서 주택거래가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다

고 한다. 한국은행(2002)에 따르면 1998년 각 지역

의 주택(입사증) 매매 사례를 보면 도시지역의 경우

10~20% 정도의 주택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2000년대부터 시장 활동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면서

주택의 교환과 매매, 증축 등 다양한 사적 주택거래

가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택 매매가격

은 상하수도, 물자운반, 시장과의 인접성, 편의시설

과의 접근성, 주거환경의 쾌적성, 주거면적, 집의 구

조 및 리모델링 여부 등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기관, 기업소, 자

금력이 있는 개인 등이 권력기관의 비호 아래 다세

대 주택을 건설하고 주택을 분양하는 사례가 발생하

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택을 전문적으로 매매

하거나 서로 맞바꾸는 것을 소개하고 중개료를 받는

전문업이 등장했다.

이같이 주택 거래가 발생하는 것은 주택이 부족하

고 주거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신혼부부의 경

우 4~5년 정도 기다려야 주택을 배정받을 수 있고,

한 주택에 2가구 동거가 많을 정도로 주택이 부족하

다고 한다. 주택의 질적 수준도 열악하여 난방과 취

사는 대부분 나무와 석탄을 사용하고 전기와 수돗물

이 부족하여 단전, 단수가 빈번하며 지방의 아파트

나 연립주택의 경우 온수관 자체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토연구원(2008)은 북한의 주택보급률을 2006년

에 77~83% 수준으로 추정했다. 가구당 가구원 수

를 4.3명, 가구 수는 537만 호, 주택 수는 412~447

만 호로 가정했다. 그런데 주택보급률을 2013년 기

준으로 개략적으로 다시 추계하면 약 74~80% 수준

으로 2006년 보다 주택사정이 더 악화된 것으로 추

정된다. 2008년 북한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북한의

세대(가구) 수는 588만 호, 인구는 2,405만 명으로

가구당 가구원 수는 4.08명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2013년 북한 인구를 2,454만 명으로 추계하고 있는

데, 2008년의 가구원 수에 변동이 없다고 가정하고

4.08명을 적용하면 세대(가구) 수는 601만 호로 추

계할 수 있다. 북한은 2010년대에 주택건설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다. 평양에 약 3만호, 함남 검덕지

구에 1천여 세대, 평성에 1,600세대 등의 주택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07~2013년간 매년 5

만 호를 공급하고 멸실이 없다고 가정하면, 2013년

까지 35만 호의 주택이 증가하여 2013년 북한의 주

택 수는 447~482만 호로 추정할 수 있다.

통일 후 북 지역 공공임대주택 대량공급 준비해야

향후 북한의 주택 수요 유형을 신규 주택 공급과 노

후 주택에 대한 리모델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

선 주택 보급률 10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 100

만 호 이상의 주택 건설이 필요하다. 2013년 기준

으로 북한의 가구 수는 601만 호, 북한의 주택 수

는 447~482만 호로 추정되는데, 이 격차를 해소하

기 위해서는 119~154호의 신규 주택 공급이 필요하

다. 현재 북한 주택의 절반 이상이 노후주택일 것으

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화장실, 난방설비 등의

개선, 주택 확장 등에 대한 주택 리모델링에 대한 수

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점차 개방되어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이 활성

화되고 외국 자본의 투자가 본격화 되면 라선, 개성,

Page 65: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3

신의주, 해주 등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신규 주택에

대한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경제특구를 건설하기 위한 건설 인력이 거주할 집단

거주 시설이 있어야 하고, 경제특구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근로자와 가족들을 위한 주택이 필요하다.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형식적으로 보장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

고 있으며, 타 지역으로의 주거 이동은 매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인구센서스 조사에서

도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지난 15

년간 거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

나 북한이 개방될 경우 농촌지역에서 일자리가 상

대적으로 많은 북한의 주요 도시지역으로 인구 이

동이 예상되고 이에 따른 주택수요가 발생할 것으

로 보인다.

남북 통일 시 북한 지역에서 남한 지역으로 이주하

는 인구도 있을 것으로 보여 남한의 대도시를 중심

으로 주택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인

구는 1990년 통일 이후부터 2012년까지 192만 명이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동독 지역은 179만 명

이 감소했다. 2000~2005년간 서독지역으로 이주

한 동독 주민은 연평균 6만 6천명으로 주로 젊은 층

이 취업을 위해 이주했다.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 저렴한 임대료를 기반으로

한 공공임대주택의 대량 공급이 필요할 것으로 보

인다. 통일 이후 초반기에는 북한 주민들의 주택 구

매력이 충분치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국가가 무료로 주택을 공급한다는 인

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주택의 사유화를

추진하고 주택시장을 형성시켜야 한다.

북한 지역에 대량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서는 주택 건설자금의 확보가 필요하다. 우선 국내

적으로 주택기금을 확충해야 하고, IMF, 세계은행,

유럽부흥개발은행 등을 통한 국제협력기금의 활용

도 모색해야 한다.

통일 이후 양질의 주택을 북한 주민들에게 공급하

여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현 지역

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

다. 북한의 주택이 노후화되고 그 기능도 저하되고

있는데, 통일 이후에도 북한 주민들이 현재의 주택

에 계속 거주하게 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상대적 박

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으며 통일에 대한 당초의 기

대와는 멀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통일 이후 우선적

으로 북한 주택의 전면적인 개보수 및 신규 공급이

필요하다. 이 같은 주택공급 확대는 북한 주민의 고

용 확대에 영향을 주어 소득증가 → 소비확대 → 생

산증대 → 고용확대와 같은 북한 경제의 선순환 구

조를 구축하고, 북한 지역경제의 경기부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주택 공급과정에서 건설 및 건축자재, 각종 전

기·전자제품 등은 남한 제품을 대부분 사용할 것으

로 보이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북한 특수 붐이 예상

된다. 특히 주택공급 과정에서 북한의 제대군인, 청

년층 등의 건설업 취업이 확대되고 취업을 통한 소

득 확대는 북한 체제의 안정과 경제 재건에 기여하

는 바가 클 것이다.

현재의 남북한 정세를 보면 본격적인 남북경제협력,

더 나아가 통일이 아득한 얘기로 느껴질 수 있다. 하

지만 언제인가는 가야 할 길이기에 지금부터 착실히

북한 경제의 재건과 주택공급에 대한 관심과 준비

가 필요하다.

박용석은 단국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유통연구

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

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북한 농촌의 단독주택 모습

Page 66: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김정은 체제가 본격화된 이후 ‘변화’는 북한 사회를

설명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

망이라는 다소 급박한 상황에서 진행된 김정은으로

의 후계구도 과정에서 북한의 선택은 ‘새로운 시대’

였다. 2012년부터 북한은 젊은 지도자 김정은을 중

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강조하면서 ‘세계적인 추세’

를 명분으로 변화를 추진하였다.

정확히 주체 100년을 맞이하는 절묘한 타이밍은 김

일성의 재림(再臨)이라는 신비주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생김새는 물론이요, 행

동이나 몸짓을 통해 김일성의 이미지를 차용(借用)

했다. 김정은의 최대 약점이었던 정치경력은 누구

도 범접할 수 없는 김일성의 후광효과를 통해 해소

해 나갔다. 김일성 시절의 기억을 불러낼 수 있었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자산이었다. 주체 100년을 맞

이하여 기획되었던 성과들을 새로운 젊은 지도자의

치적으로 만들었다. 유희장을 건설하고, 대규모 살

림집과 물놀이장, 편의봉사시설 건립이 김정은 시대

의 ‘변화’를 상징하는 성과가 되었다.

화려해졌다. 모란봉 악단 배우의 옷차림이 화려해졌

고, 조선중앙방송의 아나운서 패션이 밝아졌다. 젊

은 예술인들로 세련된 미모와 공주풍의 드레스, 경

쾌한 음악에 맞추어진 어깨선과 쇄골이 드러나는 과

감한 연주복, 허벅지가 드러나는 반짝이 초미니 원

피스는 한층 젊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모자

람이 없어 보인다. 북한 주민이 일상으로 접하는 텔

레비전도 화려해졌다. 방송화면도 화려해지고, 첨

단 모니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연출도 이루어졌다.

도시 건물도 회색을 벗고 밝은색으로 갈아입었다.

시민들의 옷차림도 밝아졌다. 2000년대 초반만 해

도 평양 주민의 옷차림은 갈색계통의 어두운색 위

주였는데, 요즘에는 색깔도 다양해지고 한층 밝아

졌다.

복식, 통제와 균열 사이의 줄다리기

북한에서 복식은 통제 대상이 하나이다. 어떤 옷차

림을 해야 하는지를 규제하고 통제한다. 천리마 시

대에는 여성의 의복은 짧게 입을 것을 권장하였다.

‘짧은 치마는 보기에도 좋고 활동에도 편리하며 천

도 많이 절약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긴치마는 ‘잔치

할 때나 명절 같은 때 그리고 외국손님을 맞이할 때

예복으로 입을 것’을 권장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의복은 개인의 취향이나 유행의 문제이지만 북한에

서는 정치사회적인 생활 영역이다.

북한 주민의 옷차림은 정책에 영향을 받고, 정책에

따라 바뀐다. 기본적으로 대중의 욕구를 창출하고

이를 산업으로 연결 짓는 남한의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생산을 책임지는 주체가 국가이기에 북한 주

민의 의복은 정책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옷차림이 화려해지고 달라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옷

차림을 뒷받침할 옷감이 생산되어야 한다. 옷을 생

산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래서

북한의 옷차림 변화는 곧 북한 체제의 정책적 변화

를 엿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북한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1980년 초반 김일성

은 평양시민들의 옷차림이 다양하지 못한 것을 개선

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평양시민들이 화려하고

맵시 있는 옷을 입지 않고 옷차림을 되는대로 하고

다니기 때문에 도시가 환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경

공업 분야의 일꾼들이 시민들의 옷을 여러 가지 색

깔로 꼭 맞게 입고 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복식과 패션 사이의 균열, 북한의 복식정책

Page 67: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5

여성들이 옷을 화려하게 입고 다니는 것을 시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까지 하였다. 여성들은 자기 몸

매와 계절에 맞게 모자와 수건도 쓰고 꽃 양산도 쓰

고 다니는 것이 좋다고 권장하였다. ‘생김새와 나이,

직업에 맞게’라는 애매한 테두리를 정하기는 하였지

만 다양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1990년대 이후 경제적인 영향으로 축소되었던 옷차

림은 최근 들어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다시 다양해지

고 있다. 과거와 같지는 않다. 당에서 공급하는 방식

에서 일정 정도 비켜 있다. 서양의 캐릭터나 상표가

붙은 옷차림이 등장하였다. 정책으로 규율하지 못

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황색바람으로 이어질까봐 걱

정하고 있다.

옷차림이 규범에 맞지 않으면 ‘생활총화’나 ‘단속 통

제 사업’을 통해 규제한다. 옷차림을 ‘어떻게 하느냐’

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옷차림과 몸단장은 ‘단순

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로 본다. ‘단정한 외모’는 사람들의 인품

을 높이고 사회적으로 ‘문화적인 정서와 풍치를 돋

우어 준다’는 것이다.

복식에서 중요한 것은 시대적 미감에 맞는 옷차림

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는 옷차림

이다. 최근 노동신문은 봄철 ‘위생월간’(3월~4월)을

맞이하여 도시와 농촌의 환경을 깨끗이 하고, 주민

의 옷차림 등에서 사회주의 문화를 확립할 것을 촉

구하였다. 집과 거리와 일터를 알뜰하게 꾸미고, 옷

차림과 몸단장을 우리 식대로 고상하게 하여 사회주

의 생활양식을 철저히 확립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가면 안 좋게 보고, 미니스커

트나 가슴이 좀 파인 옷은 부정적으로 본다. 여성뿐

만 아니라 남성들도 남한에서 유행하는 스키니 진이

나 야한 의상에 대한 통제도 강화되었다.

‘단정’과 ‘다양’의 모순을 파고드는 미감(美感)의 욕망

대체로 북한에서 권장하는 복식은 단정함과 간결함,

실용적이면서 기능성을 갖춘 것이다. ‘깨끗하고 단

정한 옷차림’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양한 옷차림’을

통해 미감을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옷차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는 민

족성이 결합되었다. 사회주의적 미감을 더하여, 조

선옷을 통해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자고 하

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지는 교

양방송이나 옷 전시회, ‘따라 배우기 운동’ 등을 통해

인민에게 제시한다. 남한 주민들은 유행에 민감하면

서도 똑같은 옷을 입고 싶어 하지 않지만 북한에서

는 같은 옷을 입는 것을 선호한다.

북한 당국에서 제시하는 옷차림은 시대의 미감에도

맞으면서 인민의 요구가 잘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복정책이 인민의 생활 전반까지 영

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정해진 규격에 따

라 짧고 단정하게 머리 손질하려는 주민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지만 실제 생활에는 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이 많아지는 모양이

다. 남조선풍으로 불리는 옷차림도 많아졌다. 남한

드라마에서 유행한 패션이 그리 긴 시간을 지나지

않아서 유행할 정도라고 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

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악을 만들어내는 생활양

식’이라고 규정해도 감각적인 세련미는 어쩔 수 없

는 모양이다.

전영선은 한양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학교 아태

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01 02

01 평양애국모란피복공장02 예복으로자리잡은한복

Page 68: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그린 코리아

DMZ 세계평화공원, 생태계 보전 함께 고려해야강택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

Page 69: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7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산물로 설정된 비무장

지대(Demilitarized Zone, 이하 DMZ)의 원래 목적

은 남북 간의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경계선의 역할이

었다. 그러나 지난 60여 년간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

면서 DMZ는 자연 천이가 이루어진 생태 현장으로

변하였고, 천혜의 자연보고로서 그 국제적 가치 역

시 커졌다. DMZ의 공존, 공영의 역할이 커짐에 따

라 박근혜 대통령은 분단과 갈등으로 얼룩진 민족의

아픔을 치료하고, 남북 간 중무장화된 지역을 평화

의 지역으로 바꾸기 위한 교두보로서 ‘DMZ 세계평

화공원’ 구상을 내놓았다.

우리 측의 이러한 제안에 북한은 “민족 분열의 불행

과 고통을 안고 사는 온 겨레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

독”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

년대 이후 DMZ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경의선과

동해선이 개통된 바 있으며, 금강산관광, 개성관광,

개성공단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DMZ 세계평화공

원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북한은 우리의 제안에 대해 별다른 호응

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우리 내부

로 눈을 돌려보면,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관련

이 있는 DMZ 인접 지자체들은 평화공원 유치에 과

열된 경쟁을 보이고 있으며, 자칫 DMZ 평화공원 조

성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생태적 측면을 무시한

난개발의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생태계의 보고 DMZ

환경부 또는 환경과학원 등의 주관으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DMZ와 민통선 이북지역을 서부권, 중

부권, 동부권의 세 권역으로 나누어 생태계 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일련의 조사와 현장 확인을 통해

DMZ가 생태계의 보고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

다. 각 지역별 생태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DMZ 서부와 중부 지역의 경우 산양, 삵, 사향노루

등 멸종 위기종을 포함한 450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며 대규모 묵논 습지 등이 조성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우선 DMZ 서부지역(파주와 연천 지역)

의 경우 347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거나 도래

하고 있으며, 수달, 두루미, 검독수리, 장수하늘소

등 멸종 위기 야생동물 18종이 서식하거나 도래하고

있다. 과거 농경지나 민간지역으로 사용되었던 연

천평야지역은 자연 습지로 변해 국내 최대의 습원을

형성하고 있어 두루미의 안정적인 휴식처를 제공하

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궁예도성과 노동당사 등 문화재가 인접하고

있는 DMZ 중부지역(연천과 철원지역)의 경우 동물

308종과 식물 334종이 서식하고 있고 산양, 두루미,

흰꼬리수리, 구렁이 등 10종의 멸종 위기 야생동물

이 서식하고 있다. DMZ 동부권은 2010년에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조사가 진행되

지 못하였다.

민통선 이북지역인 동부지역에는 멸종 위기종인 사

향노루, 산양, 수달 등 총 19종의 포유류가 서식하

고 있으며, 구렁이, 칠성장어 등 멸종 위기종 II급 7

종이 서식하고 있다. 민통선 이북지역의 중부지역

에 대한 생태계조사는 2013년 이루어졌으며 민통선

DMZ는 6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천혜의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일 이후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잇는 동북아 생태네트

워크의 기지로서의 가치도 적지 않다.

Page 70: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이북지역의 서부권은 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의 국경 간 평화공원 조성 사례

국가 간 접경 지역에 생태 또는 평화공원 조성이 당

사국들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에 기여할 수 있

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국가 간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 간

접경지역에 평화공원을 조성하여 생태계 보전과 평

화를 촉진하기도 하였다. 데탕트나 긴장완화에 기여

한 평화공원의 사례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

나, 나미비아 간의 ‘칼라가디 국경 평화공원(Kgala-

gadi Transfrontier Peace Park)’, 에콰도르-페루

간의 ‘코르디예라 델 콘도르 평화공원(Cordillera del

Condor Peace Park)’, ‘동카르파티아 생물권보전지

역(East Carpathians Biosphere Reserve)’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나미비아 간의 ‘칼라

가디 국경 평화공원’은 이들 국가들의 국가공원과

민간보호지역을 합쳐 약 3만 5천 Km2 규모의 생태

계를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 최초의 평화공원이다.

1992년 남아프리카와 보츠와나는 국경관리위원회

를 구성하고 이 지역을 단일 생태계로 하는 공동 관

리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였고, 일련의 협의를 거쳐

2000년 5월에 개장하였다. 2012년에는 기존의 공동

관리 계획을 검토하고 이에 기초한 통합적 개발 계

획을 논의한 바 있다.

‘코르디예라 델 콘도르 평화공원’ 역시 분쟁해결과

화해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그림 1 참조).

에콰도르와 페루는 19세기 초부터 불분명한 국경선

으로 인한 영토분쟁으로 여러 차례 갈등과 전쟁을

겪었다. 그러나 1999년 에콰도르의 엘콘도르 국립

공원, 페루의 보호지구와 산티아고-코마이나 보존

지역 등을 포함한 약 1만 6천 Km2 규모의 공원을 조

성하면서, 이를 통해 양국은 공동 관리와 자유통행

을 보장하고 국경 간 보호지역을 마련하여 전설의

새로 불리는 안데스콘도르 등 멸종 위기종의 보호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카르파티아 생물권 보전지역’은 폴란

드,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의 접경지역으로 국경

선을 둘러싼 전투가 수차례 발생했던 곳이다. 이 지

역 역시 1992년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간에 설립된

생물권 보전지역을 시작으로 1993년 우크라이나 지

역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추가됐으며 1998년 3국

그림 ➊

코르디예라 델 콘도르 평화공원

•자료 : http://www.docstoc.com/docs/112848841/Cordillera-del-

Condor-_Peru-Ecua(검색일 : 2014. 4. 21.)

DMZ는 6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천혜의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횡축을 담당함으로써 종축의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축을 이루고 있다.

Page 71: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69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통합됐다.

이들 지역은 14개의 국립공원과 국가급 생물권 보

전지역 등을 합한 약 2천 Km2 규모로, 1998년 유

네스코 접경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가

간 우호 관계 증진과 자연보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

한 산림이 우거진 산악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1995

년 동카르파티아 생물다양성 보전재단을 설립하였

고, 해당 재단은 3개 국가들 간의 협의체로 기능하

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지원

하고 있다.

분단의 또 다른 이름 DMZ, 생태적 가치 함께 보전해야

생태적 측면에서 한반도의 DMZ가 갖는 의미는 다

양하다. DMZ는 6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

은 천혜의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

반도 횡축을 담당함으로써 종축의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

이다. 이와 더불어 백두대간과 DMZ는 통일 이후

남북의 지리적 범위를 넘어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을 잇는 동북아 생태네트워크의 기지로서 가치도 적

지 않다. DMZ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

는 생태적 가치 역시 크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5%는 DMZ를 ‘특별한 생태계’라고 인식하

고 있을 정도로 자연환경에 대한 이미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DMZ는 남북한 관계에서 정치군사적 중요

성을 가지고 있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자연의 보

고라는 점에서 환경생태적 측면을 간과한 세계평화

공원의 조성은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세계

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평화공원은 “생물

다양성과 자연자원 및 연계된 문화자원을 보호하고

관리하면서 평화와 협력의 촉진에 기여하기 위해 만

들어진 국경 간 보호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생

물다양성과 생태계 보전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극

단적인 생태주의적 접근을 지양해야 하지만, 한반도

DMZ 평화공원 후보지 선정 과정과 선정 후 조성 과

정에서 생태계 보전의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평화공

원 조성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생태적 가치가 큰 한반도 DMZ의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와 민간 차원의 노력뿐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협조를 통해 북한의 참여 유도를 위한

여건 조성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2014년 10월 강원

도 평창에서 개최할 예정인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사국 총회

에서 한반도 DMZ의 생태보전을 위한 논의를 통해

DMZ의 생태적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것

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번 당사국 총회에서

DMZ의 생태보전을 위한 관련 이슈를 논의 안건으

로 포함하고 관련 내용을 총회 성명서로 도출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강택구는 중국 청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 동서문제

연구원과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자료 : http://edoc.hu-berlin.de/dissertationen/kuemmerle-tobi-

as-2007-09-26/HTML/chapter3.html(검색일 : 2014. 4. 21.)

그림 ➋

동카르파티아 생물권 보전지역

Page 72: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2014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심양에서 ‘일

본군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해외 여성토론

회’가 개최되었다. 2007년 서울에서 열린 제8차 아

시아 연대회의 이후 7년 만에 이뤄진 남북 여성들의

공식 만남이었다. 2013년 8월 말 중국 심양에서 실

무대표자회의가 있은 후 그해 11월에 토론회를 개최

하려고 했으나, 여러 사정에 의해 미뤄지다 어렵게

성사 되었다.

우리는 1991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

회로 남북 여성 교류가 시작되었듯 다시 이 기회를

통해 남북여성교류가 재개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를 갖게 되었다. 또한 이른 바 보수 혹은 진보로 분

류되는 여성단체들이 한 주제로 함께 모였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필자는 민화협 여성위원회 공동

위원장의 자격으로 진민자 위원장과 함께 대표단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북여성교류뿐 아니라 대부분의 민간교류

가 남북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형편이라 토론회를 준

비하며 변화하는 정세에 마음 졸이기도 하고 남북

여성교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했

다. 또한 오랜만에 개최되는 남·북·해외 여성 행사

이기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음에도,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참가자를 단체당 두 명 이

내로 제한한 것과 신청한 대표가 통일부의 불허로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리고 제3국에

서 만나야 하는 복잡함과 함께, 넉넉지 못한 민간단

체들이 비용을 마련하느라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3국에서 북한과 북한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을 주기도 했다. 분단과 통일

의 문제는 동북아시아, 그리고 세계와 연결되어 있

다는 것을 다시 생각게 한 시간이었다.

“훨훨 날아 고향으로 가고 싶어”

어쨌든 만남은 소중한 것이었다. 남측은 윤미향 한

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를 단장으로 한

대표단 11명과 참관단 11명, 실무팀 3명으로 총 25명

이 참여했고, 북측(단장 김명숙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해외측(단장 안병옥 6·15

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명예의장)은 각각 대

표단 10명씩 참여했다. 남측에서도 20대부터 80대

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했고, 북측에서도 20대부

터 세대가 골고루 참여해 세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

꼈다. 이번에 처음 참여한 남측의 젊은 활동가는 “북

한 사람들은 우리네 엄마시절의 사람 같다. 서로 말

을 섞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또

북측 대표단이 무서운 줄 알았는데 유쾌하고 재미

있는 분도 있다는 평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

만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 분단 전에 같은 역사를

현장

다시 남북 여성들이 만나다

일본군성노예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해외 여성토론회

여혜숙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지난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심양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문제 해

결을 위한 남·북·해외 여성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토론회와 더불어 위

안부 할머니 관련 자료 전시회 등을 통해 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과와 역

사청산을 요구했다.

Page 73: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1

가지고 있다는 것, 같은 여성이라는 것,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같이 갖고 있다는 것에서 마음은 금방 열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갖는 만남이라, 언론의 관심도

많았다. 북측 대표단은 많은 취재진의 모습에 당황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첫 만찬에서 필자는 옆에 앉은 북측 대표단에게 ‘얼

마 전 있었던 3·8절(세계 여성의 날)은 어떻게 지

냈는지’, ‘남성들에게 많이 대접받았는지’에 대한 질

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식이야기나 생활 속

의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낙지와 오징어를 남

한과 반대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알

게 되었다.

토론회는 남·북·해외 측의 인사말 후 남측 대표단

과 함께 온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되었다.

올해 87세인 길원옥 할머니는 평안북도 희천 태생

이다. 13살이었던 1940년 고물장사를 하던 아버지

가 감옥에 가게 되어 벌금 이십 원을 구하기 위해,

취직시켜 준다는 말을 믿고 만주 하얼빈으로 끌려가

위안부로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러다 해방이 되어

도 좋은 줄도 모르고, 이젠 살았다는 생각도 없고 그

저 무의미하게, 너무 허무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들

이 끔찍했다”고 증언하셨다. 이런 자리에 참여해 증

언하는 것은 후세들에게 진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일본정부로부터 한 마디라도

진실한 사과의 말을 듣고 싶다고 하셨다.

“무기를 사들이고 전쟁을 하면서 그것이 평화를 위

하는 일이라 하지만 휴전선에 봄이 와야 진정한 새

벽이다. 아~ 나비가 되어 날고 싶다. 훨훨 날아 고

향으로 가고 싶다. 가시덤불을 걷어 내고 평화, 통일

을 만들어 나가자.”

할머니가 증언하시는 내내 참석자들은 눈물지으며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이 진행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과거 일제 식민지 범죄, 두 번째는 일본

군성노예범죄, 세 번째는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동

향이었다. 토론들을 모아 공동결의문을 채택했다.

“다음엔 우리 땅에서 만납시다”

일본이 과거 식민지통치하에서 일본군성노예로 20

만 명의 여성을 비롯해 조선인 인구의 20%에 해당

하는 840만 명 이상을 강제 징병과 징용으로 피해를

준 사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되풀이되는 망언, 일본

의 재무장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을 모았다. 뿐

만 아니라 현재 일본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재일조

선인에 대한 반인권적 행위와 이에 맞서 싸우며 지

켜내려는 이들의 모습을 영상과 증언을 통해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후세들에게 역사를 바르게 교육

시켜야 할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남북 여성

들이 평화의 기운을 가지고 더욱 연대해 나가야 한

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2박 3일의 짧지만 꽉 찬 만남 뒤에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참여자 모두 둥글게 손을 잡고 ‘다

시 만나요’를 부를 때는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으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공항으로 향하는 남측 대표

단을 배웅하는 북·해외 대표단과 인사를 나누는 실

무팀은 끝내 서로 포옹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남북 여성이 만나 교류하고 이해하며 서로의 의견을

치열하게 토론하기도 하고, 여성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협력하고 통일을 일구어 가는 일은 여전히 멀

기만 한 일일까?

“다음엔 우리 땅에서 만납시다”라는 약속이 빈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여성들이 통일을 만

들어가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여성들의 평화감수성을 발

휘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만

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민화협 여성위

원회의 활동이 조금 더 활성화 되어야겠다는 반성도

하게 된 시간이었다.

여혜숙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갈등해결교

육 강사, 조정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민화협 여성위원회 공동위원

장을 맡고 있다.

Page 74: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2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왜 그 절규를 되받아 외치지 못했을까요?’

무대 혹은 스크린 | 연극 봉선화

윤정모 소설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는 4월 25일부터 5월 11일까지 서울시극단의 연극 〈봉선화〉

가 상연 중이다. 1980년대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바탕으로 윤정

모 작가가 극본을 다시 쓴 연극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의 인생

역정과 아들 손녀세대 이야기를 함께 녹여낸 작품으로 위안부 문제를 과거사가 아니

라 현재 우리가 짊어지고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임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말 초연 당시 관객들로부터,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큰 감동과 울림을 준 명작’, ‘대한민

국 국민이라면 꼭 봐야 할 연극’,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재공연 요청이 쇄도했고, 사회 각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연극 〈봉선화〉와 동행하는

겨레운동’이라는 후원운동도 진행 중이다. 이 연극의 극본을 쓴 윤정모 작가에게 연극

〈봉선화〉가 가진 의미를 들어봤다.

Page 75: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3

여성들이 성 노예로 징집 당했던 것이 올해로 꼭 75년이 됩니다. 세탁소, 군수공장,

식당 종업원,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꼬임과 강압에 의해 전쟁터로 보내졌고 그 중 과

반수가 성 노예로 배속되었습니다. 일본은 패전했고 우리나라는 독립했습니다만 여

성들의 피해상황은 아무도 들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겪은 수모를 세상에 처음 알린 분은 미얀마에서 돌아오지 못한 봉선이 할머니

였습니다. MBC에서 이 사실을 집중 조명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 여성들이 세계 유례가 없는 참혹한 학대와 수모를 당했는데도 국

민들은 왜 그 절규를 되받아 외치치 못했을까요? 민족의 부(富)를 독식했던 친일파들,

그들 세력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두 번째로 피해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식민지 폭력에 무참

히 당한 재앙, 그 재앙이 여성 개인적 수치가 되는 현실이 참을 수 없어 당신께서 당

한 일들을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속임수로 위안소에 배치된 여성은 10대에서 30대

까지였다. 우리는 하루에 40명에서 50여 명을 상대했다. 거부하면 매질, 칼로 몸에

상처를 냈고 우리 동료 몇 명은 칼에 찔려 죽었다. 자살도 불가능했다. 죽을 수도 없

는 처참한 성 노예였다.”

1995년 무야마라 총리가 반성과 사죄를 했습니다. 56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지

방 대학에 초청강연을 갔고 그때 학생들에게 사죄의 배경과 내막을 물어보았습니다.

몇몇 학생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내용을 열거했으나 성 노예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득 프랑스가 처리했던 나치 부역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조사대상자가

2백만 명, 사형이 약 7천 명, 정치, 언론, 시인 작가는 가중처벌까지 받았습니다. 그리

고 대통령 드골이 대국민 선언을 했지요. “프랑스가 다시 외세 지배를 받을 수는 있을

지라도 민족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친일이 청산되었다면 성

노예 사실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모든 젊은이들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봉선화〉는 젊은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극본입니다. 대학원생 수나는 위안부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역사의 표층을 걷어나갑니다. 부유층으로 잘 포장된 외가는

친일, 친가는 위안부 피해 집안으로 설정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 조명하면서

각각의 심리와 인식의 격차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일본은 다시금 모든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성적 노

예 희생자(Sexual Slavery Victims for the Japanese imperial army), 이 치욕과 아픔

을 준 일본은 하루 빨리 죄과를 인정하고 깊이 사죄해야 할 것입니다.

윤정모는 1986년 『무늬져 보는 바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양심수후원회 부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표작으로는 『고삐』, 『실천문학』(1988. 9, 장편), 『나비의 꿈』(한길사,

1996, 장편),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당대, 1997, 소설집), 『그들의 오후』(창작과비평사, 1998, 장편), 『딴 나

라 여인』(열림원, 1999, 소설집), 『슬픈 아일랜드 1-2』(열림원, 2000, 장편), 『꾸야삼촌』(다리미디어, 2002, 장

편), 『벌새』, 『현대문학』(2003, 단편), 『수메리안 1-2』(파미르, 2005, 장편) 등 다수가 있다.

Page 76: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4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1 『변방이 중심이 되는

동북아 신 네트워크』

이창주 저 | 산지니 | 2014

공존과 소통으로 평화를

New Books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저자 미니 인터뷰

이창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중국연구센터 연구원

편집부

Q.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새로운 통일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다. 동북아 각 국가의 변방 도시가 연

결되면서 이뤄지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강조하고 싶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러시아 극동지역, 일본의 서부 지역 등을 살펴보고 그 한 가운데에 한

반도가 있음을 다시 주목했다. 우리는 서울, 베이징, 도쿄만 동북아의 전체

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내륙이나 해양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지역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동북아 변방 지역이 네트워킹하는 그림 속에서 한

반도의 통일을 구상한 것이다.

동북아의 평화는 서로 충돌이 발생했던 지역들이 공존과 소통의 장소로 바

뀌면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한반도 통일도 이런 동북아의 평화로운 국면에

서 가능하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동북아 네트워크 속에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공간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달

하고자 했다.”

Q. 동북아 신 네트워크는 변방이 중심이 된다는 점이 기존 패러다임과 차

별성을 갖는다. 이것이 줄 수 있는 혜택과 통일 준비과정에서의 의미는 무

엇이라 생각하는가.

“남북 모두 정도의 차이는 크지만 변방이 아닌 수도를 중심으로 개발이 이

루어져 있다. 이런 수도 중심의 개발 체제를 주변국의 변방과 연계해 지방

개발 및 투자로 진행하게 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한반도에 국한되었

던 ‘파이’를 해양과 대륙으로 연결된 주변 국가 변방과도 연계하여 확대시

키는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속초와 금강산을 연결할 수도 있고, 한국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투자하여 북한 신의주와도 연결할 수 있다. 또 중국 지린성 옌지에 투

자하면 북한 나선특별시와 연결된다. 중국 산둥반도에 남·북·중 경제협력

체를 만들어 중간 지점에 연결 지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 전체를 둘러싼 변방을 활용한 이 패러다임은 단순히 민족으로서의

통일 당위성의 차원을 뛰어 넘어 통일 이후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점을

앞당길 수 있다.”

[편집자 주] 정치·군사적으로 긴장된 남북한 상황에서 평화를 향한 구체

적인 수단은 단연 경제 협력이다. 현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중국연구센터

연구원이자 상하이 푸단대학교에서 외교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는

『변방이 중심이 되는 동북아 신 네트워크』를 통해 통일 한국을 준비하기 위

한 수단으로서 삼각축 해양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물류·구조 네트워크

시스템을 제시했다.

Page 77: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5

Q. 동북아 신 네트워크 구상이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관

련,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서 주목했던 점은 복합 물류네트워크 부분이다. 도

로, 철로, 항만, 항공의 일체화를 이루어 러시아 TSR과 연결을 위한 포석을

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본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강조한 ‘실크로드 경제벨트’에 집중해야 한다. 실

크로드 경제벨트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로 나뉘어 진행 중이다. 실제 중국

시안이나 충칭에서 시작된 라인이 신장 위구르 지역을 거쳐 중동 아시아, 동

유럽까지 연결되는 라인으로 개발 중이다. 이 라인이 바로 육상 실크로드 경

제벨트다. 해상 실크로드 경제벨트는 중국의 연안에서 남중국해를 거쳐 인

도양으로 나아가는 라인이다. 해상 실크로드 경제벨트는 해상으로 대외 개

방을 이루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두 라인을 유라

시아 이니셔티브의 범위로 포함시켜야 한다.

동유럽 - 신장위구르 - 네이멍구 - 선양 - 단둥 - 신의주 - 개성라인과 동유럽 -

신장위구르 - 시안 - 베이징 - 선양 - 단둥 - 신의주 - 개성라인, 동유럽 - 신장위

구르-충칭라인을 한반도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그 거점 지역에 한국기

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책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 해상 실

크로드 경제벨트와의 연계는 보하이만 경제벨트, 산둥 블루경제권, 장강삼

각주, 주강삼각주와 한반도 연결을 위한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둥반도와 발해만 지역에 남·북·중 경협의 추진 등의 방법이 있

을 것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크로드 경제벨트, 북극해 개발 등이 책

에서 말한 ‘거시적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내용이다.

이런 네트워크가 인체의 동맥에 해당한다면, 미시적 네트워크는 모세혈관

에 해당된다. 각 항구를 중심으로 동북아의 연결을 꾀하고, 특히 북한에 대

한 접근을 육로뿐만 아니라 해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물류비용 절감은

물론 한반도 안보 위협도 줄어든다.”

Q. 향후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현재 중국 동북3성의 개발이 어떻게 중국 주변 외교에 영향을 줄 것인지

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 서해지역은 중국 동부 연안, 한국 동해지역은

일본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지리적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중국 동북

3성의 개발에 맞추어 북한을 생산기지 및 한반도 교통 중심지로 삼아 동북

3성을 새로운 내수시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계

획이다.”

2

『통일,

RE - START』

통일, 정치, 외교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

성된 코리아연구원이 분석한 지난 한 해

동안의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 및 주

변국들과의 외교 방향에 대한 연구결과물

들을 책으로 엮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의 평화와 우리 민족의 삶에 밀접한 영향

을 미치고 있는 미·중·일·러와의 외교

방향, 남북관계의 신뢰 회복을 위한 정책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코리아연구원 저 | 타임북스 | 2014

3

『지속가능한

통일론의모색』

대북·통일정책을 둘러싼 한국 내부의 갈

등, 즉 남남갈등의 뿌리를 살펴보기 위해

해방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대 정권

의 대북·통일정책을 검토했다. 북한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

지,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내적 모순이

어떻게 뿌리내리고 자라게 되었는지를 파

악할 수 있다. 남남갈등의 원인과 문제점

을 올바르게 파악해야, 그에 대한 해결책

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병로 외 | 한울 | 2014

Page 78: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6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홍사덕)는 3월 6일 오후 2시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명

동 소재)에서 “제16차 정기대의원회”를 개최했다. 대의원회에서는 민화협 홍사덕 대표상임의장의 대회사

와 류길재 통일부장관의 축하연설 및 통일부장관 표창 수여, 팝페라 가수 한아름 씨의 축하공연이 있었

으며, 안건으로 제출된 임원 보궐 선출, 2013년 민화협 사업보고 및 결산 승인, 2014년 사업계획 및 예산

안에 대한 승인이 이루어졌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축하 연설을 통해 남북교류협력 추진시 신뢰형성이라는 장기적 비전을 갖고, 절

차와 과정을 투명하게 하면서, 민관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화협 우

수회원에게 통일부 장관 표창을 수여했다. 수상자는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통일교육문화원 등의 단체

와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김영만(민화협 홍보위원장), 김은주(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

장), 박우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부장), 박제영(민화협 중국협의회 공동의장), 백대진(한국노총 대외협

력본부장), 신기화(세계평화여성연합 남양주지부장), 양덕창(한국천주교주교회의 부장), 이재선(천도교청

년회 집행위원), 임소연(한겨레통일문화재단 간사), 최수산나(한국YWCA연합회 부장) 등 개인 11인이다.

한편 회의에서는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을 상임의장

으로, 김옥수 대한간호협회 회장, 고승하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을 공동의장으로 추가 선출했다.

이로써 민화협 상임의장은 홍사덕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을 비롯하여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금

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설

훈 국회의원(민주당),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조성우 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황

영철 국회의원(새누리당) 등 9인이 되었다.

민화협 NEWS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민화협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N e t w o r k

민화협 “제16차 대의원회”

“북한에 비료 100만 포대 보내기” 운동 추진

홍사덕 의장이 대의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 표창을 받은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age 79: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7

홍사덕 대표상임의장은 대회사를 통해 북한에 비료 100만 포대 보내기 국민운동을 제안했다. 이에 대의

원들은 홍 의장의 제안을 승인하고, 이후 민화협 의장단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실

행해 나가기로 했다.

이어 3월 12일 열린 제6차 의장단회의에서는 ‘북한에 비료 100만 포대 보내기 운동’ 실행 계획을 심의하

고, 본격적인 비료보내기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의결했다. 이후 민화협은 각계 단체 및 개인의 후원을

받아 4월 28일 현재 96,278포대의 비료를 모금하였다. 모금된 비료는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북한에 전달

할 예정이다.

이날 의장단 회의에서는 집행임원에 대한 추가 선임도 이루어졌다. 우선 현재의 문화예술체육위원회를 문

화예술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체육위원회를 신설했으며, 문화예술위원장으로 배인석 현 민예총 사무

총장을 추가로 선임하고, 체육위원장에는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을 선임했다.

2014 여성통일포럼 “통일준비와 여성의 참여”

민화협 여성위원회(위원장 : 진민자·여혜숙)는 4월 24일(목)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2014 여성통일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통일준비와 여성의 참여’를 주제로 윤미

량 통일교육원 원장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윤미량 원장은 한반도의 통일비전과 통일

편익을 이야기 하며, 통일은 무엇보다 평화, 자유, 인간의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높이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통일준비

과정에서 여성의 공감·소통능력으로 이야기 되는 여성의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며 역사적으로도 위기의 순간에 여성들의 역할이 컸음을 강조했다. 덧붙여 여성

들이 앞장서 새터민 문제와 통일 준비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행사에는 민화협 여성위원회 및 유관단체 관계자 80여명이 참여했다.

동참해 주세요.

북녘에 비료 100만 포대를!! 1구좌 1포대 1만 2천원

북한 비료보내기는

• 북한 농민의 영농의식을 높여주고,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 북한의 주민들과 함께 살아갈 건강한 통일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일입니다.

• 남북 상생의 통일농업을 준비해 나가는 기반이 됩니다.

후원방법

• 후원계좌 신한 001-002-001-01 (예금주 민화협) ※1포대1만2천원을기준으로참여할수있습니다.

• 후원문의 민화협 사무처 02-761-1213

Page 80: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78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민화협은 4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

자회견장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과 남북 교류협력 발전

방향”을 주제로 제1차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박

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 실현에 따른 과제와 전

략을 모색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을 중심으로 남

북 교류협력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홍사덕 대표상임의장의 인사말에 이어 본격적으로 진행된

토론회는 최대석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의 사회로 정낙

근 여의도연구원 기획실장,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

원,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제를 맡

았다. 토론에는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고

유환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최창용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드레스덴 선언과 남북관계’를 주제로 발표한 정낙근 실장

은 “드레스덴 선언은 한반도 통일을 ‘흡수통일’이 아니라

‘합류통일’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한국 경제의 돌파

구를 통일에서 찾고 통일역량 강화를 위해 경제혁신이 필요

하다는 인식 아래 북한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통일한국으로

의 합류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통일‘대

비’위원회가 아닌 통일‘준비’위원회의 출범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가 아니라 미래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점진적 ‘준비’ 의

지를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드레스덴의 후속조

치 미흡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면서도, 아직 성과 여부를 평

가할 단계는 아니라며 정부의 정책 의지가 실천으로 옮겨질

것을 기대했다.

이어 ‘북한 주민의 생활 향상을 위한 인도적 대북지원 방안’

을 주제로 발표한 조한범 연구위원은 미래지향적 선도형 통

일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내적신뢰프로세스, 정치·

경제·사회·환경 등 각 분야의 연결점 형성,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상 북한 주

2014년 제1차 정책토론회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과 남북 교류협력

발전 방향”

민 역시 우리의 국민이라며,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인식

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의 문

제가 곧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화협이 진행하고 있는 비료 보내기 운

동도 이런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발표를 맡은 권태진 연구위원은 ‘북한의 민생 인프

라 구축을 위한 개발협력 추진 방안’ 주제 발제에서 드레스

덴 연설로 다시금 주목받는 남북농업협력 방안과 관련, 비료

등 필수 영농자재 지원과 농업기술 교류를 우선 추진할 필

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권 연구위원은 “북한의 식량문제 해

결을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분야에서 신뢰를 쌓으면서 지

속성 있게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는 “그러나 단순한 물자지원보다는 기술과 전문인력 교류를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덧붙이며, 공동영농 시범사

업, 축산분뇨 교환 등 축산분야 협력, 조림·산림 병충해 방

제 등 황폐화된 산지 복구, 온실사업 등 북한의 농업정책과

보조를 맞추는 협력 등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어 그는 남북농업협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성공업지

구나 금강산국제관광특구 배후지, 신의주·평성·남포·원

산 등 중앙급 경제 개발구를 적극 활용해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세월호 참사로 모든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차분히 진행되었으며, 김민하 민화협 상임고문, 조

성우 상임의장, 마의웅·이장희·정의화 공동의장, 박유철 광

복회장, 이완영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민화협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N e t w o r k

Page 81: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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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 체육위원회 위원 위촉식

민화협은 체육위원회(위원장 김경성) 위원 위촉식을 4월 24

일(목)에 민화협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위촉식 후에 개최

한 회의에서는 민화협 체육위원회의 역할과 사업 방향에 관

한 협의가 이루어졌다. 앞으로 체육위원회는 다양한 종목

의 교류를 지원·추진하고 지자체, 체육단체 등 관계 기관

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남북 체육교류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

해 나가기로 했다.

체육위원회 위원

강태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 김광선 KBS 복싱 해설위원, 김

광회 경기도의회 의원, 김동선 민족통일체육연구원장, 김석현 대

한축구협회 사무차장, 민경원 경기도의회 의원, 박정근 MBC 콘

텐츠협력국 부국장, 박종필 SBS미디어홀딩스 경영지원팀 부국

장, 배경미 대한산악연맹 국제교류이사, 신종호 서울아산교향악

단 음악감독, 이상현 대한체육회 남북체육교류위원회 위원, 이주

철 KBS 보도본부 박사연구원, 조문수 숭실대학교 교수, 한명우 대

한레슬링협회 부회장

※ 이상 가나다 순, 위원은 추가 위촉 예정

민화협 청년 포럼

“청년, 통일을 말하다”

민화협 청년위원회는 4월 29일(화)에 민화협 대회의실에서

“청년, 통일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2014 민화협 청년 통일 포

럼’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김영윤(남북물류포럼 회장),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이운식(민화협 사무처장)이 발표

자로 참가하여 최근 남북관계와 남북경협, 민간교류 현황

등에 대해 발표했다. 민화협 청년위원회 소속 단체 대표자

와 회원 등 30여 명이 참가했으며, 통일문제와 관련한 청년

들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을 통해 통일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

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또한 민화협이 추진하

고 있는 비료 지원 사업 등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이

해를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석 달 열흘만 지나면

이 세상

나신지 꼭 百年

통일되기 전에는

저승사자도

날 잡아가지 못한다며

동지섣달 따가운 추위에도

얼음 속 강물로 머릴 감구요

참빗 살 촘촘히 빠져드는

한 올 머리칼도

놓치지 않고 건져내어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시고요

뒷마당에 맑은 물 한 대접 떠 놓고

통일...

통일...

그저어 南北統一

할머니 손바닥은

맷돌처럼 분단을 갈아 대구요

큰 아들 작은 딸

영감까지 앗아간 피난길의 포탄 냄새는

아직도 허파 속에 남아돌고

틈만 나면 바라보는 북쪽 하늘은

온통 한숨으로 덮이는데

석 달 열흘만 지나면

이 세상 나신지 꼭 百年

당신은 역사를 다 아시는데

당신은 역사를 다 아시는데

무심한 태양은 꾸역꾸역 붉은 눈물로

恨스런 세월만 쌓아 가구요

박미출 시인은 경남 김해 태생으로 실상문학 신인상(詩) 당선

으로 등단했으며, 『자갈길을 맨발로 걸으며』 『은혜와 원수는

반드시 갚자』 『하늘과 사랑과 시Ⅰ,Ⅱ』등의 시집을 출간 했다.

현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독자의 시

석 달 열흘만 지나면

박미출(朴彌出)

Page 82: 민족화해 5/6월호 vol 68호

80 민족화해 VOL.68 May / June

READER'S 2014. 03+04 Vol.67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해드립니다.

〈독자엽서〉로 정답과 의견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67호의 정답은 ④번 ‘통일준비위원회’입니다.

채택되신 분들께는 문화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독자 의견

뜨거운 가족애의 느낌이 전해지는 표지의 『민족화해』 감사히 잘 보

았습니다. 『민족화해』는 가지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입

니다. 옆에 두고 매일 읽어도 어제와 다른 내용이 보인답니다. 민화협

의 소식은 물론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사와,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힐

링 페이지가 가득한 『민족화해』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

“북한산림녹화, 난방방책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기사를 매우 흥미롭

게 읽었습니다. 오래전 2007년 평화의 숲 주최로 금강산에서 열린 남

북나무심기행사 사진을 보니 다시금 이런 행사가 자주 열려 통일의 문

을 열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심은 나무도 푸르러서 꼭 통일의

나무가 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 정 호 전남 순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언제쯤 말끔히 청산될

까요? 가족은 헤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이번 상봉을 통해 다

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정부에서도 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노

력들이 좋은 결과를 이루어 통일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 조봉래 부산 금정구

‘남남대화 - 통일대박론과 통일논의’에 대한 고유환 교수와 남성

욱 교수의 논의를 잘 읽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장점을 묶어 통일역

량으로 결집하자는 고유환 교수의 주장은 통일은 신중한 논의 속에 이

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남성욱 교수의 ‘국민공감대 형성이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통일 대박을

논의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공감합니다. 빈틈없는 준비 속에

통일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송두월 서울시 도봉구

‘북한산림녹화 협력사업’ 기사를 잘 읽

었습니다. 과거 울창했던 북한의 산림이 황

폐화된 원인을 찾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올바른 정보를 통해 남북교류협력이 어떻게

발전되어야 할까에 대한 좋은 이정표가 되

어주는 기사였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 후손

이 함께 살 터전인 북한의 산림이 더 이상 황

폐화되지 않도록 깊은 교류와 협력이 절실

하다고 생각합니다. - 조한석 경기도 의정부시

TV프로그램 ‘별친구’를 제작한 이용우

대표의 인터뷰를 잘 읽었습니다. 남과 북의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을 더 많이 갖고 서로 가까워져서 아이들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봤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대북 영양지원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북한의 아이들이 마치 제 자식 같아 너무 안

쓰러웠습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

는 그런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

각을 해봅니다. - 이정호 충북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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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8. 15 통일맞이 대축전

www.kcrc.or.kr

사진으로 보는 민화협 통일바라기 15년 ➋

KCRC

민화협은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통일시대를 준비하고,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실천을

기원하기 위해 국민과 함께하는 ‘2000 통일맞이 대축전’ 행사를 개최했다. 2000년 6월 10일에는 1만 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광화문에서 ‘겨레대합창’을 열었고, 6월 25일에는 전쟁기념관에서 ‘온겨레평화대행

진’을 개최했다. 8월 15일 광복절에는 광화문에서 3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통일맞이 대동제’를 개최

하여, 화해와 협력, 통일의 새 시대를 염원했다.